우주의 크리스마스
김경형 감독, 김지수 외 출연 / 알스컴퍼니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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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의 우주.


영화는 세 명의 ‘우주’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킨다.(사실 영화 제목만 보고서는 무슨 영화일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메인이라고 할 수 있는 배우 김지수가 연기하고 있는 38세의 우주는 미혼모로 어린 딸과 함께 시골로 내려와 카페를 차리려고 한다. 그리고 원래 골동품을 팔던 그 곳에서 자신의 옛 모습과 너무나 비슷한 십대 소년과 소녀를 만나게 된다.


오래 전 그녀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사랑하던 남자도 있었다. 어느 날 프랑스로 가겠다는 그의 말에 우주는 함께 떠나기를 주저했고 그렇게 두 사람은 헤어지고 만 것. 그런데 자신이 카페를 차리고자 했던 곳에서 일하던 소년에게 자신과 똑같은 성우주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친구(윤소미)가 있었고, 두 사람 모두 그림을 그리고 있었으며, 소년은 프랑스로 떠나고자 하는 꿈을 말하곤 했다.


여기에 또 한 명의 성우주가 등장하니, 골동품점에 얼마 전 팔았던 구체관절인형을 다시 찾으러 돌아왔던 20대의 우주(허이재)였다. 그리고 마침 그 자리에 있었던 38세의 우주는 그녀의 사연에서 또 자신의 옛 추억을 떠올린다. 그리고 밝혀지는 내용은, 놀랍게도 세 명의 우주는 모두 미술을 전공하는 남자친구가 있었고, 그 중 남자는 프랑스로 떠났거나 떠날 예정이었으며, 그 남자는 사실 자신의 친구와 만났거나 친구가 좋아하던 남자였다는 것. 이 무슨...




같은 관계, 같은 선택?


20대의 우주(허이재)는 30대의 우주(김지수)가 밟았던 길을 그대로 따라 걷고 있었다. 그녀는 친구의 남자친구와 만나고 있었고, 그가 만나던 남자는 그녀의 친구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프랑스로 함께 떠나자고 말하고 있었다. 30대의 지수가 그랬듯 이 제안을 거절하면 어쩌면 그녀 또한 미혼모로서 어린 딸과 함께 살게 될 지도.. 나아가 10의 우주(윤소미) 역시.


바로 눈앞에 자신의 미래가 실제로 살아서 존재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두 명의 젊고 어린 우주의 머릿속엔 어떤 생각이 떠올랐을까? 당연히 그들은 우선 놀라거나 어이없어 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앞에 있는 남자와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하지만 30대의 우주는 이 사이에서 뭐라 구체적인 조언을 던지지는 않는다. 이미 자신의 삶(과 그 속의 선택)이 다른 두 우주들에게는 하나의 예로 제시되어 있고, 그녀들은 그녀들의 결정에 따른 삶을 살면 된다고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름과 약간의 에피소드가 겹친다고 해서 그녀들이 자신과 똑같은 인생을 살게 될 거라는 건 지나친 생각이니까.






여성영화.


영화는 여성을 중심인물로 두고 그녀들의 삶의 이야기를 펼치는, 여성영화로 분류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영화의 주제는 여성의 주체적인 삶에 대한 강조, 본인의 선택과 그 결과를 떳떳하게 감당하라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녀들의 삶은 단순히 남자들에게 의존되어 있는 게 아니니까.


영화는 딱 거기까지다. 영화 속 30대 우주처럼, 가만히 좀 더 어리고 젊은 우주들이 그들만의 인생을 그려갈 수 있도록 응원한다. 지나치게 호들갑스럽지도 않고, 곁에 선 남자들을 비난하거나 추궁하지 않는다. 요샌 워낙 사나운 사람들이 많아서 이 정도만 돼도 안심(?)이다 싶은 느낌이랄까.


물론 영화 자체가 약간 세 명의 인물이 환타지적으로 엮이는 그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슨 신비한 원리가 정말 존재하고 그런 건 아니다. 어쩌면 극히 일어나기 힘든 수준의 우연의 일치가 일어났을 뿐일 지도. 내가 이렇게 살았으니 너희도 이렇게 될 것이라든가, 너희는 이렇게 살지 말아라 라는 식의 이제는 좀 스테레오타입으로 느껴지는 교훈이 아니어서 다행이기도 했다.


다만 뭔가 확 끌어당길 만한 요소가 부족하긴 했다. 영화 전체가 굉장히 잔잔하면서, 서로 다른 인물들이 처한 비슷한 상황이라는 소재 말고는 특별히 눈길을 확 끄는 부분은 부족했다. 그리고 인물들 사이의 감정적 교류도 좀 부족한 느낌. 애초에 드라마 장르로 만들 거였다면 이 부분에 좀 더 공을 들여야 하지 않았을까? 단지 이름이 같다고 해서,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해서 그토록 서로에 대해 애착을 가지게 될까? 심지어 30대 우주에게는 딸도 있는데, 어느 순간 딸은 보조인물 정도로만 여겨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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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한 목사 부부의 대화로 시작한다. 그들은 한 사내아이를 입양하려고 하고 있었는데, 사실 그들은 아들을 사고로 잃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또 아이를 입양하려는 것부터가 무리였지만, 왠지 남편인 석호(김민재)는 재촉하는 느낌이었다. 심지어 그들에게는 이미 다른 아이들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입양하려는 아이인 이삭(박재준)는 시력에 문제가 있었고, 시간이 흐르면 결국 실명을 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름부터가 뭔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려주는 복선인가 싶었지만,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를 입양하려고 했던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싶었지만, 이 역시 영화가 끝날 때까지 아무 것도 없었다.


새로운 아이가 집에 들어오자, 이미 있던 부부의 아이들은 새 아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영화 속 어디에도 부부는 아이들에게 이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거나, 갈등이 일어날 때 적절한 개입과 조정을 하거나 하지도 않는다. 이쯤 되면 감독이 가정에 대한 이해가 좀 부족한 건 아닐까 싶을 정도.




그렇게 입양된 아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서 이상한 존재를 느낀다. 공포 영화 답게 안경을 벗고 있을 때 조금은 희미한 모습으로 나와 영화를 보는 사람도 함께 헷갈리게 만드는 수법을 사용하는데, 이미 앞서 이 부부 사이에 죽은 아이가 있다는 정보가 있었던 이상 아이의 귀신일 가능성이 높게 제기되는 상황.


그럼 이 영화는 귀신을 다루는 공포영화인가 싶지만, 또 그걸 제대로 그려내지는 않는다(어쩌면 “못 한다”였을 지도). 시종일관 뭔가 있다는 느낌만 잔뜩 부여하지만 정작 그게 무엇인지는 밝혀지지 않은 채 영화는 느릿느릿 진행되는데, 이 과정에서 또 이상한 성격을 드러내는 캐릭터는 부부의 맏딸인 주은(경다은)이었다. 새로 들어온 남동생을 처음부터 밀어내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계속 악마라고 소리치며 이상한 행동을 하는 모습. 덕분에 꽤나 민폐 캐릭터가 된다.


그리고 또 갑자기 등장하는 이웃집 청년. 그는 목사의 아내인 현우(박효주) 앞에 불쑥 나타나 나무에 매달려 있는 여자가 보인다느니 하면서 뭔가 분위기를 잡는다. 그런데 또 그의 아버지는 주인공 목사에게 와서 아들이 귀신에 들렸다느니 도와달라느니 하는 말을 하고, 알 수 없는 말만 반복하던 그는 또 영화 후반에 갑자기 정신을 차렸다면서 나타나서 역시 미심쩍은 말을 던지는... 영화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캐릭터.





사실 영화는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배우 박효주 때문에 보기 시작했는데, 몇몇 드라마에서 인상적이었던 연기를 보여주었던 그녀였지만, 이 영화에서는 영화 속 캐릭터처럼 처음부터 혼돈에 빠져있었던 것 같다.그녀는 자신이 맡은 배역의 심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을까?


여기에 주인공 부부를 목사 부부로 설정해 두고, 아이들이 알 수 없는 기도문을 외우도록 시켜둔 감독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마찬가지. 이건 어디서 배워온 관행인지... 대충 귀신, 축귀, 목사 가정, 입양 뭐 이런 것들을 조합하면 뭔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전반적으로 정신이 없었던 영화. 영화를 보는 내내 잘 집중이 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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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편의 속편.


벌써 세 번째 시리즈다. 이 영화가 처음 나왔을 때를 기억한다. 아마 왕십리 CGV에서 봤던 것 같은데, 심지어 그 때 소개팅을 하고 두 번째 만난 날이었다.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전혀 없었다는 말이다. 영화는 결코 소개팅에서 볼 만한 영화는 아니었다. 폭력이 난무하고, 피가 철철 흐르는 선정적인 장면도 적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조금은 찝찝한 마음으로 극장을 나왔지만, 이게 꽤나 흥행을 했다더라. 2편이 만들어지고, 이제 3편까지 나왔는데, 심지어 한국영화계 흥행성적이 굉장히 떨어진 요즘에서도 무려 천 만을 넘겼다. 물론 요새 관객 수 통계의 신빙성에 관해 말이 좀 있긴 하지만, 이건 꽤 많이 본 것 같기는 하다.


이 영화의 흥행 포인트는 역시 마동석류 영화 특유의 피지컬을 사용한 시원한 한 방일 것이다. 영화 속 어떤 빌런과 마주하는 장면에서도 오히려 빌런 쪽이 걱정된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한결같이 마동석과 1대 1로 붙으면 칼을 들고 있던 총을 들고 있던 마동석이 이길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리고 또 마동석이 그렇게 한 방에 날려버리는 것들은 어지간히 나쁜 놈들이니까. 마치 마블 히어로 영화를 보는 듯 신나게 상대를 때려눕히는 걸 즐길 수 있게 된다.




설정의 아쉬움.


워낙에 피지컬에 중심을 두고 우당탕탕 하는 영화인지라 이야기의 전체 짜임새 쪽은 확실히 아쉽다. 이 부분은 마동석류 영화 전반에 걸쳐서 두드러지는 포인트인데, 특별히 이 영화에서는 더욱 그런 느낌이었다. 영화는 일본 야쿠자가 국내에 들여오는 마약을 중간에 빼돌린 경찰 일당이 빌런으로 등장하는데, 여기에 또 뺏긴 마약을 되찾기 위해 일본에서 보내온 해결사까지 섞이면서 이야기가 좀 복잡하게 돌아간다.(그리고 빌런도 좀 약해 보인다)


시리즈 첫 편의 흥행은 마동석 뿐 아니라 윤계상의 악역도 큰 몫을 했다. 그가 연기했던 장첸이라는 인물은 악의로 똘똘 뭉친, 입체적인 캐릭터는 분명 아니었지만 이제까지 주로 선역을 연기해 왔던 윤계상이 이런 역도 할 수 있었구나 싶은 놀라움과, 그 캐릭터가 저지르는 악행의 수준이 상상을 초월했던 점이(이런 영화를 소개팅 상대와 봤으니..) 눈길을 끌었다.


사실 마동석류 영화는 범죄도시 시리즈만 있는 건 아니다. 대부분 틀로 찍어 내듯 비슷비슷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는데, 범죄도시만큼 흥행을 거둔 영화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배경이 가정사(성난 황소), 학교(동네사람들), 조폭(악인전) 등으로 다양했지만, 경찰도 어쩌지 못하는 문제를 오직 주먹 하나로 풀어낸다는 설정 자체가 뭔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부족한 설정을 돌파하는 중요한 도구가 인상적인 악역이 아니었나 싶었는데, 이번 편에는 그 부분도 좀 부족했다. 뭐 그래도 천만을 넘겼으면 된 건가.




현실이 더 해.


나쁜 놈들을 주먹으로 펑펑 날려버리는 형사가 정말로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아마도 이 영화의 또 하나의 흥행 포인트일 것이다. 이건 최근 우후죽순으로 나오는 복수 콘셉트의 영화나 드라마가 유행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여기에는 온갖 이유로 범죄를 저지르고도 처벌받지 않는 일이 너무나 일상화되어 있다는 현실이 배경일 것이다.


대법원장 후보자가 세금을 탈루하고, 검사들은 특활비를 빼먹고도 누구 하나 사과를 하지 않는 수준이니, 이런 상황이 단시간 내에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당연히 이런 종류의 영화도 앞으로 한 동안은 인기를 끌 것 같고. 온통 빌런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니 그 중 하나씩만 골라 시리즈를 만들어도 100편까지는 나올 수 있지 않을까? ㅋ


물론 아직까지 이 시리즈에서 빌런으로 등장하는 이들은 권력의 상층부까지 올라가지는 않는다. 중국에서 온 깡패나 동남아시아에 활동하는 폭력배가 1, 2편이이었고, 이번엔 경찰까지는 올라갔다. 과연 더 올라갈까? 뭐 이 영화가 애초에 사회고발 영화가 아니었으니 그렇게까지 갈 지는 확실치 않지만, 결국 그렇게 가다보면 마석도도 급 낮은 나쁜 놈들만 때려잡는다는 한계가 두드러질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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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3-09-24 06: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동석의 입지야 확실하고 1편 윤계상의 장첸을 능가하는 아니면 완전히 다른 스타일을 찾아내느냐가 향후 포인트일것 같아요

노란가방 2023-09-26 13:40   좋아요 0 | URL
네 완전 동감입니다.
 


영화의 원제.


영화가 시작될 즈음 원제로 보이는 어구가 크게 지나간다. "A Common Man", 직역하면 보통 사람 정도가 되겠다. 이 제목이 어째서 “라이브 테러”같은 직설적인 제목으로 바뀌었을까.


영화는 원제처럼 아주 평범해 보이는(하지만 머리털은 없어 조금은 수상해 보이는) 한 사내를 따라 진행된다.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의 길을 거니며 큰 가방을 메고 버스와 기차를 타고, 쇼핑몰을 들르고, 시장에 들려 아내가 말한 토마토와 채소를 구입한다. 그리고 경찰서까지 방문해 지갑 도난신고까지 하는 남자.


얼마 후 한 건물의 옥상에서 경찰서로 전화를 건다. 자신이 지금 네 개의 시한폭탄을 장치했으며, 그 중 하나가 경찰서에 있다는 것. 실제로 경찰서에서 시한폭탄을 발견한 경찰들은 그와 진지하게 협상을 시작하는데, 남자가 요구하는 건 감옥에 갇혀 있는 네 명의 범죄자들을 자신이 지시하는 곳까지 데려오라는 것이었다.


영화의 원제는 이 모든 일을 하는 사람의 평범함을 부각시킨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한 사내가 잔인한 테러범들을 석방시키기 위해 폭탄테러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그런데 영화의 말미에 가면 여기에 반전이 더해진다. 남자가 범죄자들을 끌고 온 건, 그들을 풀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처형하기 위해서였다는 것.


남자는 평범한 사람들을 수없이 희생시키는 테러범들에게 제대로 된 처벌을 하지 못하는 무능해 빠진(그리고 무능하기까지 한) 정부와 사법기관들에 대한 평범한 사람의 자연스러운 반응을 보여준 것이었다.




무능한 심판.


영화는 테러가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세상 속에서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그런 테러에 젖어 들어가는가를 보여주는 것 같다. 테러가 횡횡하는데도 그것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고, 심지어 테러범을 잡은 후에도 그에 대한 응분의 처벌을 하지 못하는 사회 속에서, 평범한 시민들은 무엇을 믿고 살 수 있을까.


다행이 우리나라에서는 무슨 폭탄 테러 같은 것들이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수백 명의 사람들이 한 번에 죽는 사고들은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온다. 하지만 사건이 발생할 당시에만 시끄러울 뿐, 시간이 지나면 누구도 제대로 된 책임을 지지 않고 흐지부지 잊히곤 한다. 얼마 전 헌법재판소에서는 이태원 참사의 주무 장관의 탄핵안을 기각했고, 기각 판결이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짓이 지들이 잘났다고 떠들어대는 여당과 정부의 꼴사나운 행태가 나타나기도 했다.


사실 이전에는 이 정도의 사건이 벌어지면 소위 정치적인 책임이라는 걸 지겠다면서 스스로 물러나는 게 상례였다. 하지만 이젠 그런 최소한의 책임지기도 사라져버렸다. 백주대낮에 칼부림이 일어나고, 아파트에 설계대로 철근이 들어가지도 않은 채 시공이 되고, 침수 위험을 경고했는데도 교통통제를 하지 않아 지하차로에서 사람이 죽어가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기껏해야 말단의 담당자에게 뒤집어씌우고 만다.


자, 이런 각자도생의 세상에서, 평범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남자의 행동에 분명 불법적인 요소가 개입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그가 경찰서 이외의 공간에 숨겨두었다는 폭탄은 처음부터 폭발하지 않도록 되어 있었다) 영화 말미 경찰들이 그를 체포하려 하지 않았던 건 이런 상황을 충분히 이해했기 때문일 것이다. 법이 심판하지 못한 범죄자를 누군가는 해결해야 하지 않느냐는 지극히 상식적인 정의에 대한 감각.




자력구제.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자력구제 금지의 원칙을 국민들에게 강제하고 있다. 쉽게 말해, 무슨 억울한 피해를 당하더라도 직접 갚아주지 말고, 법적 기관에 보복을 맡기라는 말이다. 여기에는 사적 보복에서 나타날 수 있는 과잉을 막으려는 측면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려면 국가기관이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하고 가해자에게 응분의 처벌을 가해야 한다.


문제는 이 기본적인 과정이 어그러질 때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정의에 대한 감각과 달리 한줌밖에 안 되는 일부 인사들이 법의 제정과 그 철학에 지나치게 큰 영향을 끼친 결과, 우리는 가해자를 처벌하는 게 문제인 양, 또는 처벌의 본질이 그가 저지를 악행에 대한 보응이 아니라 그를 개선시키는 것인 양 착각하는 사회에 살게 되었다. 범죄자들은 사법제도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고, 보통의 시민들은 언제 범죄의 피해자가 될까 두려워하게 되었다.


최근 이런 사적 보복을 주제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자주 제작되고 큰 인기를 끄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그로기 상태에 빠져 있는 국가 사법제도에 대한 불신은 단지 이런 대중문화로의 반영으로만 끝나지 않고, 결국 불안한 사회를 만들 것이다.


영화 속 남자는 결국 의도했던 대로 네 명의 악질 테러범들을 하늘로 올려보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 그 네 명 이외도 또 다른 테러범들은 출현할 것이고, 사법부는 여전히 무능할 것이고, 보통 사람들은 계속해서 피해를 입을 것이다.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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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폴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 할리 베리 외 출연 / 아이브엔터테인먼트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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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영화 느낌.


1990년대 말엔 다양한 지구멸망 시나리오를 그린 영화가 나왔다뭐 이런 영화가 그 때만 나온 것도 아니고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있었지만또 세기말적 분위기가 짙게 드리우면서 그런 영화들이 꽤나 유행했던 것 같다리뷰를 쓰면서 찾아보며 알게 되었지만지금 말하려는 두 개의 영화, “아마겟돈과 딥 임팩트가 같은 해(1998)에 개봉했다고 한다.


두 영화는 뭔가 설정이 비슷하다선후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모두 지구를 행해 거대한 소행성이 날아오고 이로 인해 지구가 멸망할 지도 모른다는 위기상황을 영화의 배경으로 하고 있다그 중에서도 아마겟돈은 날아오는 소행성에 우주선을 타고 착륙해구멍을 뚫고 그 안에 폭탄을 장착해 터뜨린다는 아이디어를 담고 있다이 영화에서 영감을 받은 건지는 확실치 않지만실제로 각국의 우주관련 연구기관에서는 비슷한 실험을 하고 있다고도 한다.


새 영화에 관해 리뷰를 하면서 왜 이 오래된 영화를 길게 물고 빼느냐역시 영화를 보는 내내 비슷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20년도 훨씬 더 지난 영화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있는 2020년대 영화라니... 물론 모든 창작물이 완전한 새로운 창작일 수는 없다지만이건 뭐.. 분명 CG야 그동안 흘러온 세월만큼 발전한 느낌이 있다하지만 전체적인 감성이나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은 이제는 좀 촌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어느 날 갑자기 달이 지구를 향해 나선형 하강을 시작하고그로 인해 각종 문제들(주로 달의 인력 때문인 듯)이 발생하고웬만한 기업 회의실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는 나사 기지에서는 별다른 대책을 내지 못하는데미국 국방부에서는 수많은 핵미사일을 날려 달을 폭파시키겠다는 한심한 계획만 내고(달이 없어지면 급속한 환경의 변화로 인류는 아마 얼마 가지 못해 멸망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한 검증되지 않은 아마추어 천체관측자의 말을 따라 달로 향하는 로케트(그것도 박물관에나 있었던)를 타고 날아가는이게 최선인가요?






달이 초거대구조물이었다고?


영화의 가장 큰 상상력이라면 역시 달이 초거대구조물이라는 발상이다아마추어 천체관측가인 KC 하우스먼은 어느 날 달의 궤도가 정상범위를 벗어나고 있음을 깨닫고그것이 달이 엄청나게 큰 인공구조물일 가능성을 보여주는 거라고 해석한다당연히 그의 말은 나사 관계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도 않고 잊힐 뻔하지만우여곡절 끝에 결국 나사에서도 달 궤도의 변경을 깨닫고 그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는 내용.


여기에 나노로봇 군체들로 그려지는 비인류 지성체가 등장하면서 달이 외계인이 만든 거대한 기지일 가능성을 보여주는데직접 로켓을 타고 달의 내부에 형성된 금속제 구조물들까지 보여주면서 이런 예측이 맞나 싶을 즈음이야기는 훨씬 더 복잡하게 꼬여간다알고 보니 달은 인류의 오래 전 조상들이 만든 인공구조물이었고그들은 자기들이 만든 AI가 자의식을 갖게 되면서 도리어 멸종되고 말았다는 것그 AI가 다시 지구의 인류를 멸망시키기 위해 달을 움직이고 있다는 건데.... ...


달이 알고 보니 지구 침략을 위한 비밀기지라는 설정은 우리나라엔 지난 2012년 개봉한 핀란드 영화 아이언 스카이에서도 볼 수 있었다이쪽은 히틀러가 전쟁에서 패하기 전에 달로 로켓을 쏘았고그 후손들이 나치적 삶을 달 기지에서 이어오고 있다는 설정의 블랙 코미디 영화였는데상황은 훨신 말이 안 되어 보이긴 해도 또 블랙 코미디만의 위트가 느껴져서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종류의 웃음마저 주지 않는다달 전체가 위장된 인공구조물이라는 설정은 애초부터 말이 안 되어 보였고그건 차라리 지구 전체에 추진기를 달아 통째로 멀리 옮기겠다는 내용의 중국영화 유랑지구류의 허풍과도 비슷해 보인다영화를 보는 내내 이걸 어떻게 봐야 하는 건지 보는 사람을 전전긍긍하게 만드는.




빈틈투성이.


억지로 억지로 이야기를 끌고 오긴 했는데그 사이사이의 설정이 빈틈투성이다많고 많은 사람 중에 왜 하필 주인공 세 명이 우주선에 타야 하는지도그 중 두 명이 하필 이혼한 전처와 전남편일 이유는 무엇이며그래도 그 두 사람은 우주인으로 활동해 본 경력이라도 있는데관련 훈련이 전혀 없었던 아마추어 천체관측가가 나머지 한 자리에 앉아 있는 이유는그가 새로운 가설을 제기해서어쩌면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 될 수 있는 로켓 발사에 그런 모험을 하는 이유는 영화이기 때문일까?


그런데 그렇게 달에서 문제를 해결한 것도 정작 주인공들이라기 보다는 그들의 오래 전 조상들그러니까 AI의 반란을 초래해서 멸망했던 조상들이 남긴 프로그램이었다주인공 일행이 타고오다 완전히 망가진 우주선을 순식간에 수리할 수 있는 기술력까지 가지고 있었던(근데 왜 망했어..).


더구나 그렇게 달에서 벌어지는 일도 뭐 하나 제대로 되어가는 게 없는데위기감을 조성하려고 했던 건지 중간 중간 나오는 지구의 가족들 이야기는 또 얼마나 어설픈지주인공 커플이 이혼을 했다고 잔뜩 삐뚤어지기로 작정한 아들내미나그 아들내미와 지구가 멸망해 가는 와중에서도 썸을 실현하는 중국계 보모 여자애는 또 왜 나오는 건지(영화의 제작에 중국 자본이 합작 형태로 참여했다고 한다이게 원인은 아니었겠지?)


많은 재난영화가 그렇지만그냥 정신없이 인물들의 관계가 뻗어나가고 우연의 일치가 일어나고극단적으로 단순한 사람들이 잔뜩 등장하는 영화호감가는 인물이 별로 없다는 게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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