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은 없지만 욕구는 가득 - 뚜렷한 취향도 나만의 색깔도 없지만 그래도 괜찮아
이솜 지음 / 서랍의날씨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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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 새 없이 말을 하고끊임없이 일을 벌이고사고 또 사면서 항상 채우지만또 그렇다고 사람들이 몰려드는 고시에서는 금세 지쳐버리고잠도 일찍 드는 작가가 쓴 에세이이렇다 할 분류에 딱 맞아떨어지지도그렇다고 뭔가에 엄청난 두각을 나타내며 인정을 받는 것도 아니지만뭔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만큼은 충만한 작가는지나친 염려와 불안걱정실패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들을 내려놓고하루를 잘 살아가는 게 최고라는 자신의 깨달음을 조심스럽게 내어놓는다.


사실 우리 대부분이 그렇지 않던가예전엔 혈액형요새는 MBTI(사실 이것도 예전에 유행이 한 번 돌긴 했었다)에 따라서 나를 이런저런 틀에 따라 분류하고 따로 담는 게 유행이지만어느 날에는 이쪽에또 다른 날엔 저런 사람인 듯한 기분이 드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70억이 넘는 인류를 겨우 열댓 가지의 분류로 나누는 게 애초에 말이 될 리가 없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잘 사는 법이 어딘가 법전이나 신전의 벽에 적혀있기라도 한 것처럼 살아가곤 한다모두가 그것을 따르기만 하면 좋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비슷한 꿈을 꾸고비슷한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삶을 점점 더 팍팍해지고간절히 바라던 것이 어느 순간 버거워짐을 깨닫게 된다하지만 그 트랙에서 벗어나면 큰일이 날 것이라고 생각하니 한숨 자고 일어나서 다시 달려간다.






유통기한이 끝난 꿈이라도유효기간이 지난 건 아닐 수 있다는 말이 인상적이다작가의 어머니가 공부를 시작하셨다는 이야기와 함께 등장하는 표현인데이전보다 훨씬 더 바쁘게 하고 싶은 일들을 하시며 보내는 어머니도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우리 어머니도 이젠 그렇게 사셔도 좋을 텐데.


결국 중요한 건남에게 내가 어떻게 비출까 하는 게 아니라내가 정말로 행복할 수 있느냐다물론 다른 사람들의 인정도 행복을 느끼게 만드는 한 요소이긴 하지만그렇게 만들어진 자의식이 제제로 우리를 지지할 수 있을 리 없다마치 별풍선에 목매는 BJ처럼 점점 자극적이고 꾸며낸 모습에 집착할 수밖에뒤에 남는 공허함은 자신의 몫이고.



요즘 들어 살면 얼마나 산다고라는 식의 생각을 종종 한다사람들의 눈치를 보고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당겨서 걱정하고그렇게 삶에서 즐거운 일들은 늘 언젠가라는 뒤로 미루기만 하다가 나중에 후회하는 모습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일까그러고 보면 최근 내가 살고 있는 모습은 조금 답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또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는 거니까.


조금은 가볍게 살아다는 건 생각 없이 대충대충 시간을 보낸다는 것과 다르다이쪽은 삶을 좀 더 밀도 있게 살아갈 수 있는 한 가지 방식인 반면저쪽은 그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니까.


사실 책이 뭔가 대단한 길을 알려주거나 방식을 소개해주는 건 아니다다만 우리 어깨를 무겁게 누르고 있는하지만 굳이 지지 않아도 되는 짐을 잠시 내려놓고 나를 찾는 시간을 가져보는 게 필요하다는 메시지는 충분히 도움이 된다책 후반부에는 살짝 무게감이 느껴지는 글도 몇 개 있지만전반적으로는 가볍게 읽어나갈 수 있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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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토마토파이
베로니크 드 뷔르, 이세진 / 청미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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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프랑스의 한 작은 시골마을에서 살고 있는 90세의 할머니 잔의 일기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남편은 일찍이 세상을 떠났고물려받은 저택에서 혼자 살아가고 있지만그녀의 생활은 하루하루가 알차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소설 속 잔이 뭔가 엄청난 모험을 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90세라는 나이는 그런 것들을 하기에는 조금 무리일 테니까대신 잔은 이웃집에 사는 노부부나 마을에 사는 친구들과 만나 식사를 하고카드게임을 하고수다를 떤다일요일마다 성당에 가는 것도 잊지 않았고.


정원에서 가꾸고 있는 텃밭을 관리해 주는 정원사와일주일에 한 번씩 와서 집안일을 도와주는 가정부종종 찾아오는 자식들과 손주들도 그녀가 만나는 사람들이다여전히 스스로 운전도 할 줄 알고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조금씩 해서 냉장고에 저장해 두는 건 중요한 소일거리다.





봄부터 시작해 겨울로 끝나는 이 지극히 평온한 어떤 할머니의 일기를 보며 묘한 편안함이 느껴진다오래된 생활 습관을 그대로 유지하는 잔에게는쉴 새 없이 울리는 휴대폰의 알람도별 공감이 되지 않는 다른 사람의 글과 사진에 좋아요를 눌러야 한다는 압박도끊임없이 나의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스트레스도 없다그저 날씨에 따라몸 컨디션에 따라 하루하루 하고 싶은 일을 해 나갈 뿐.


문득 전에 봤던 일본 영화(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김태리 배우 주연으로 리메이크를 했었던) “리틀 포레스트라는 작품도 떠오른다시골 마을에 내려온 젊은 여성이 혼자 생활하면서 주변에서 나는 재료로 음식을 해 먹는 이야기일 뿐이었는데도 보는 사람에게 편안함을 주었던.


요샌 이런 걸 힐링이라고도 부르지만사실 그런 걸 본다고 뭔가 치유가 일어나지는 않는다다만 우리 안에 있는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욕구를 일깨울 뿐현대인의 삶이란 너무 많은 것을 신경 써야 하고그러다 보면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를 정도로 시간이 손에서 빠져나간다우리는 한참이나 지난 후에야그렇게 흘려보낸 날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깨닫곤 한다.


물론 잔의 모습이 우리 모두가 따라가야 할 삶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겠지만적어도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너무 각박하게여유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만들어준다잘 산다는 건 하루하루를 뭔가로 꽉꽉 채우는 것과는 좀 다르다는 걸 깨다는 건 중요한 일인 것 같다.



곳곳에서 발견되는 노인의 통찰도 인상적이고노인 특유의 고집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해 내는 부분도 재미있다전반적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작품왜 책 제목이 체리토파토파이냐면... 할머니가 파이에 넣을 체리를 냉동실에서 꺼내려다가 실수로 작은 체리토마토(방울토마토)를 꺼내 넣어버렸던 에피소드에서 나왔다토마토 파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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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웨 -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도토리숲 그림책 7
루피타 뇽오 지음, 바시티 해리슨 그림, 김선희 옮김 / 도토리숲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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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본 그림책이다표지에 통통하면서 귀여운 흑인 어린이가 뭔가를 찾는 듯한 표정으로 큼지막하게 그려져 있어서 호기심을 자아낸다전반적으로 보랏빛 바탕에 별들로 쓰인 술웨라는 제목도 썩 멋있다전반적인 그림체는 일러스트 느낌이라 이전에 봤던 책들과는 차이가 있다.


또 하나 본문으로 넘어가기 전에 언급해야 할 요소가 남아있다바로 저자인 루피타 뇽오다이 이름이 익숙한 사람은 아마 헐리우드 영화를 꽤나 좋아하는 분일 듯한데, “노예 12을 시작으로좀 더 유명하게는 마블의 블랙팬서에 여전사 나키아 역으로 출연했던 바로 그 배우다.



작품은 주인공 술웨가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받는 사건을 중심으로 진행된다이른 아침 해가 뜰 때의 하늘같은 어머니와 해가 질 무렵의 노을 같은 아버지의 피부색그리고 한낮처럼 환한 언니까지술웨는 자신이 누구와 닮지 않은 짙은 검은색 피부를 가지고 있음을 속상해 하고 있다.


그날 밤별똥별을 타고 밤과 낮이라는 자매에 관한 오래된 이야기를 듣게 된 술웨는 비로소 자신의 이름처럼(스와힐리어로 술웨는 이라는 뜻이라고 한다자신을 어둠게만 보지 않고 빛나는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이야기는 인종차별과는 또 다른 차원의 차별이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등장하는 인물들이 애초에 모두 흑인이었으니까여기서 제시되는 건 이른바 색차별이라고 불리는 차별이다오랜 유럽의 식민지 시절을 거친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는 백인들의 피부색을 미인의 그것으로 여기는 문화가 많이 남아있다따지고 보면 이 또한 제국주의의 유산인 셈이다.


동화는 다름의 이해그리고 겉모습이 아닌 내면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담고 있다한 때 세계화 시대가 온 세상을 한 가족으로 만들어 줄 거라는 순진한 기대를 하기도 했었지만오늘 우리는 곳곳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자국이기주의가 현실화되는 모습을 보고 있다자유무역의 이상은 점차 희미해지고 자국우선주의가 외교와 경제의 영역에서 점점 주가 되고 있고한 나라 안에서 민족 간인종간 갈등은 그치지 않고 있다.


낮도밤도 모두 필요한 것이라는 동화 속 메시지는 오늘 우리 사회에 얼마나 울림을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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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줄래요? - 청각을 잃자 비로소 들리기 시작한 차별의 소리들
황승택 지음 / 민음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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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복을 입고 우주를 유영하는 사람의 이미지가 크게 그려있는 표지가 인상적이다우주에서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정확히는 많은 소음들이 발생하긴 하지만그걸 우리 귀에까지 전달해줄 매질이 없기 때문에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덕분에 완전한 고요 속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런데 굳이 우주까지 나가지 않아도 이런 경험을 일상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바로 청각장애인들이다이 책의 표지 그림도 사실 이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작가는 갑작스럽게 귀에 생긴 염증으로 결국 청력을 상실해 버렸고한동안 아무 것도 들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책을 읽으면서 나오는 이야기지만다행이 얼마 후에는 인공장치를 통해 어느 정도 소리를 들을 수 있게는 되었다니 다행.


하지만 작가의 고생은 단지 이것만이 아니었다알고 보니 그는 이미 혈액암에 걸려 3년 동안 투병생활을 했다고 한다암이 완치된 후 다시 찾아온 청력의 상실그 절망적이고 답답한 상황에서 오히려 새로운 게 보였다고 그는 말한다이 책은 그런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에세이다.





역시 작가가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된 건우리 사회가 얼마나 장애인들에게 불편한 상황인가 하는 점이다귀에 이상이 생기면 단지 듣지만 못하는 게 아니다귀에는 몸의 평형을 잡아주는 기관이 있는데이 부분까지 망가져버리면 그냥 서있는 것짧은 거리를 걸어서 이동하는 것 자체가 힘들어진다휠체어를 위해 만들어 놓은 야트막한 경사로조차 무지막지한 비탈길처럼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우리 사회의 많은 것들이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을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사소한 ARS 인증절차도 청각장애인에게는 큰 벽이다할부 렌탈을 하려면 들을 수 있는 쉴 새 없이 쏟아내는 속사포 약관 설명은 거의 암호 수준이다아마 작가 자신도 알지 못했을 이런 일들을 직접 경험하면서그는 자연스럽게 배려라는 말을 떠올린다.


장애혹은 병을 오래 앓아온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주눅이 드는 경우가 많다건강한 사람에 비해 제한되는 일들이 많아지면서 필연적으로 주변의 도움이 필요하게 되기 때문이다작가도 처음에는 건강했을 때의 자신을 떠올리며 이제 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 아쉬워하거나도리어 그런 마음을 감추기 위해 애써 더 많은 것들을 하려고 오버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결국 작가가 깨달은 건자신의 상황을 정확하게 알리고필요하다면 도움을 구하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물론 일부에서 여전히 차별적 조치들을 애써 정당화하는 일베류들이 있긴 하지만그보다 많은 사람들은 기꺼이 작은 양보와 배려를 아까워하지 않고 있으니까책 제목이기도 한 다시 말해 줄래요라는 말은 부끄러운 것도이기적인 것도 아니다.



확실히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애초에 우리는 누구도 다른 사람이 될 수 없으니까그렇다면 공감이라는 게 영영 불가능한가 싶지만 또 그렇지는 않다당장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통해 사람들은 자폐스펙트럼 장애라는 현상에 대한 이해가 좀 더 깊어질 수 있었고이런 인식의 변화는 분명 상황을 좀 더 낫게 만들 것이다이런 책도 그런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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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지의 중국인 - 냉전 시대 서사에서 영토는 어떻게 상상되었는가 교차하는 아시아 6
류저우하우 지음, 권루시안 옮김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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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역사나 사회학적 연구라고 생각했으나저자는 문학연구자였다그리고 이 책 역시 몇 권의 문학작품을 제시하고 그 안에 담긴 사회적 맥락을 읽어내는 형식이었다사실 문학이나 예술에 관한 연구는 워낙 난해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많고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선연구들도 잔뜩 있는지라 평소엔 손이 잘 가지 않는 분야다하지만 이렇게 실수(?)로 손에 들어왔다면 읽어볼 수밖에도서관에 다니다 보면 이렇게 우연한 만남도 일어난다.



책은 크게 두 가지 주제를 다룬다하나는 6.25 전쟁을 배경으로 쓴 두 권의 소설을 중심으로한중 국경지대인 만주와 그 일부인 간도 지역에 살았던 한국인들의 모호한 신분과 중국의 참전으로 한반도로 들어왔다가 거제의 포로수용소에 머물렀던 인민해방군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또 다른 하나는 1950~60년대 말라카 반도에 정착한 중국인들이 겪었던 문제다이 지역에 이주한 중국인들은 영국 식민정부에 의한 노동력 동원 차원에서 유입된 이들이었는데영국은 그들에게 처음부터 토지소유권을 허락하지 않았고후에는 공산당과 연합할 것을 우려해 인위적으로 만든 집단 정착촌에 강제이주 조치를 하기도 한다이 주제는 웡윤와라는 시인의 시집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책의 제목에도 언급된 경계선에 선 존재들이다간도의 조선 농민들과 거제의 중국인 포로말라카 반도의 중국인 이주자들은 모두 합법적인 지위를 부여받지 못한 채임의적이고 잠재적인 구성원 취급을 받고 있었다당연히 그 과정에서 겪었던 차별과 각종 탄압희생은 뭐라 말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하지만 국가의 힘이 없는 상황에서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사실 주제만 보면 꽤 흥미롭게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아쉽게도 책은 그런 현장감이나 긴박감을 제대로 표현해 내지 못한다우선 문장 지나치게 난해하고학술적인 표현과 개념을 잔뜩 사용하고 있어서 쉽게 읽히지가 않는다.(문외한의 슬픔번역 과정에서 이를 좀 풀어서 설명했더라면 어땠을까 싶지만뭐 그렇게는 안 됐다.


책의 부제에 따르면 냉전 시대 서사’ 속에서 땅이 가지는 상징성’ 등등을 언급하려고 했던 듯하나개인적으로는 썩 크게 와 닿지는 않았달까물론 문학을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방식 자체는 흥미롭게 느껴졌지만애초에 언급되는 작품들을 직접 접해보지도다양한 문학 학술 용어들에도 익숙하지 않았던 내 경우엔 무리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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