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고통
테렌스 E. 프레타임 지음, 조덕환 옮김 / 시들지않는소망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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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힘겨워 울부짖습니다. 그 눈물은 기도 시간에 흘러넘칩니다. 말씀을 보고, 찬양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독서를 하고, 글을 쓰며, 일상을 살아갈 때도요.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에 관심이 없으신 것 같습니다. 몸과 마음이 무너져내릴 때, 당신은 어디에 계시나요?


묵묵부답(默默不答)인 하나님 앞에 그저 앉아 있습니다. 더 이상 질문을 던질 힘도 없습니다. 팔을 축 늘어뜨린 채, 초점 없는 시선은 어디를 향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성실과 최선의 삶이 타인에 의해 무참히 짓밟힐 때, 그 당혹스러움과 무력함에 한숨만 쌓여갑니다.


침묵으로 반항하며, 토라져있는 우리를 향해 조용히 하나님이 손 내미십니다. 그러고 보니 누구든 경험할 수 있는 사건사고와 하나님 없는 사람들이 내뿜는 이기적 욕망이 하나님의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한숨 소리까지 들으시고 함께 울고 계신 하나님을 이제야 보게 됩니다.


그제야 성경에서의 하나님을 찬찬히 돌아봅니다. 함께 아파하며 울어주시는 그분의 성품을 보게 됩니다. 신실하신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제한하고서라도 자신을 내어주시는 분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시며 애통하시는 그분을 경험합니다.


테렌스 E. 프레타임(Terence E. Fretheim)의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고통』은 통상적인 하나님의 이해를 뛰어넘어, 구약 곳곳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내재성을 설득력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초월적인 하나님은 하늘에 머물러 계시지 않으시고, 우리와 관계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성큼성큼 다가오시는 분입니다.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이 구약에서 이미 내포되어 있음을 강조합니다. 즉 구약의 하나님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구약과 신약의 연속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연속성을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은 하나님에 대한 핵심 은유를 분석하는 것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자녀를 잊지 않으시는 특별한 아버지이자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구약에서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고백을 들어보면,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자비롭고 은혜로우신 분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행하신 하나님의 일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관계를 맺으신 이유는 더 큰 세상을 구속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피조물인 세상과 화해하고 싶어 하십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이스라엘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위한 것이며, 세상으로 확장됩니다.


구약에서 발견하는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에 참여하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과 관계 맺기를 원하시며, 직접적으로 세상과 결속됩니다. 시공간과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움직이시는 것이죠. 그럼에도 하나님은 초월적이시며 신실하시며, 그 사랑은 영원토록 지속됩니다.


경험적으로도 그렇지만, 온전한 관계는 서로를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손 내미셨다는 것은 강압이나 힘의 압도를 통해 우리를 좌지우지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의 관계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시며, 일부분의 권력을 포기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관계를 위해 자신을 제한하십니다. 전적으로 자유로운 자기 제한은 자기를 비우며, 희생하는 행위입니다. 즉 창조로부터 이미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공간을 우리에게 내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들어오셨고, 우리와 관계하시길 원하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필연적으로 고통을 경험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고통받으시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피조물과 함게 하시며, 임재하십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함께 움직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정하고 온전한 관계에 수반되는 모든 위험을 감수하십니다. 능력의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을 위해 한없이 낮아지십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슬픔에 압도되거나 비통으로 인해 좌절하지 않으십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상처받으시며, 감격하시기도 하십니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변함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감정으로 인해 통제불능의 상태에 빠지거나 무력해지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구약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과 관계 맺길 원하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분은 인간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인간 가운데 임재하시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체현하는 예언자의 삶 또한 깨어지고 불완전합니다. 우리는 완전하게 이 문제를 해결할 대안과 해결책을 기다립니다.


그렇습니다. 결국 말씀이 오십니다. 하나님은 온전한 방식으로 육화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일어난 일은 결코 구약과 단절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에서 볼 수 있는 하나님의 행동, 인간과 함께 하시며 세상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시는 관계의 정점입니다.


이스라엘과 세상을 위해 기꺼이 고통 받으시기를 감내하시는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함께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역사 속에 면면히 하나님의 사랑은 이어졌고, 그 신실하신 은혜는 지금도 계속됩니다. 가슴 치며 울부짖을 때 함께 아파하시는 그분을 오늘도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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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세대입니다 - 요즘 애들에 대한 선교적 고찰
구선우 지음 / 뜰힘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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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대를 온전하게 이해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듭니다. 자신이 포함되지 않은 세대일 경우 그 힘겨움은 배가됩니다. 한 세대가 공유하는 문화와 맥락은 때로는 뚜렷하지 않게 개개인에게 스며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명확하게 지칭할 수 없는 묘한 분위기를 경험적으로 알아가기란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


그럼에도 세대를 구분하는 특정한 사건이나 문화를 인식하면서 그 세대의 특징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큰 진전이 있습니다. 가령 IMF와 2002월드컵, 스마트폰 보급이라는 굵직한 시대 상황을 경험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이며, 그 영향력이 어떠할까를 고민해 보면 그 세대의 질문과 성향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교육은 상대방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마땅히 교회 교육 또한 그러합니다. 한 국가와 한 교회에 소속되어 있더라도, 그 안에 많은 층위가 있습니다. 다음 세대를 진심으로 위한다면, 그들의 독특함을 '그름'이 아닌 '다름'으로 인식하며, 포용과 이해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 누구보다 화해와 포용에 큰 관심을 갖고 연구하며, 그것을 세상과 교회에서 구체적으로 적용하고자 하는 이 책 『다음 세대입니다』의 구선우 목사. 저자는 다음 세대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이해하기 쉽게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파악하는 단순한 인식은 온전한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이 든다면 그에 대한 다층적이며 세밀한 분석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교회가 전체적으로 어렵지만, 다음 세대는 더더욱 힘겹습니다. 그들의 고민을 함께 품어내지 못하면, 이들을 우리 곁으로 올 수 있게 하는 대안은 요원합니다.


저자는 먼저 교회 밖의 다음 세대 전반을 아우릅니다. 요즘 아이들이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지, 어떤 것에 집중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어렴풋하게 알고 있던 사실들이 좀 더 구체적으로 피부에 와닿습니다. 막연하게만 알았던 그들의 고민이 좀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그들과의 소통은 단숨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같은 단어를 쓴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다음 세대 친구들의 마음에 연결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진심으로 그들의 아픔에 닿아야 합니다. 그 눈물이 우리의 슬픔이 되어야 합니다. 함께 울고 웃을 수 있어야만 소통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독특하게도 교회 밖 아이들과 교회 안 아이들이 다른 것만 같습니다. 교회의 일에 자신을 던져 봉사하는 순종적인 친구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저 참고 있는 것이라면, 지쳐 있는 것이라면 어찌해야 할까요? 그들 또한 말 못 할 고민을 안고 힘겹게 분투하는 친구들입니다.


저자는 교회에서 다음 세대와 함께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구체적으로 모색합니다. 교회의 상황에 맞게 다양하게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핵심은 방법 자체라기보다 그들을 품고 이해하려고 하는 방향성입니다. 함께 고민하고 함께 아파하며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고 하는 의지입니다.


한 사람을 온전하게 이해하기 시작하면, 생각보다 다양한 방안이 뒤따릅니다. 뚜렷한 해결책이 없을지라도 그들과 잇닿으려 하는 노력은 무수히 많아집니다. 진정으로 그들을 품고 사랑하며, 교회의 동등한 주인으로 받아들인다면 그 어디에서보다도 교회에서 더 큰 평안과 사랑, 만족을 누리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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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된 나의 신앙이야기
이슬기 지음 / 지우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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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한 세상에서 힘겹게 살아갑니다. 눈물과 아픔, 고통이 뒤따릅니다.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좌절할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눈물을 닦는 것은 자녀들 때문입니다. 이 아이들이 부모의 한숨보다 웃음을 기억해 주길 원해서입니다. 아직 세상은 살만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입니다.


무엇보다 자녀들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의 악함과 사람의 약함이 더 크게 보일지라도, 결국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더 위대하다는 것을 알았으면 합니다. 그러한 삶을 부모가 살아내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으면 합니다.


자녀 양육만큼 힘든 영역도 없습니다. 나의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끝없는 사랑과 긍휼이 필요하지만, 우리는 나약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따스한 위로가 필요합니다. 더하여 구체적인 신앙 교육의 방법까지 있다면 훨씬 더 유익할 것 같습니다.


이 책 『엄마가 된 나의 신앙이야기』의 저자 이슬기는 복음을 전하며, 가르치는 성도이자 사모, 엄마입니다. 저자는

자녀를 양육할 때의 어려움에 대해 깊이 공감합니다. 거기에 머물지 않고,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실제적인 방법을 공유합니다.


저자의 문장들은 부모의 마음을 대변합니다. 아이를 잘 가르칠 수 있을지, 복음이 절실한데 왜 이렇게 부모 말은 안 듣는지. 넉넉하고 너른 품이고 싶은데 화부터 내는 우리가 부모 자격이 있는지, '소명으로 살기 위해 세상 공부도 중요할텐데 어떻게 균형을 맞출지'와 같은 말들입니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우리에게 들려주며, 자녀를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다양한 방안들을 들려줍니다. 신앙의 주요한 개념과 오랜 신앙 전통들을 잘 녹여내어 지금 현재 우리 아이들에게 적실하게 적용할 수 있는 방법들을 함께 모색해 봅니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모든 것을 배웁니다. 멋진 것만 따라 하면 좋겠는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완전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없지만, 분투하는 삶의 자세를 가져야 함은 나를 보고 있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눈치 보며 주눅 들어 살 필요는 없지만, 위치에 걸맞은 삶의 태도를 갖긴 해야 합니다.


우리가 연약하기에 하나님의 섭리에 기댑니다. 의지할 곳 그분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양육은 하나님께서 해주십니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도 그분을 알아야 하겠죠. 하나님을 친밀하게 알기 위해서는 그분을 만나야 합니다. 소통해야 상대방의 마음과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저자는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은혜의 방편을 소개합니다. 그것은 기도와 말씀, 예배입니다. 자녀 양육은 일상에서 이루어져야 하기에 가정은 매우 중요한 은혜의 통로입니다. 저자는 이러한 도구들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소개합니다. 저자가 섬겨온 온라인 사역 공동체가 집중하여 가르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 책이 소중함은 추상적인 말의 잔치로 끝나지 않아서입니다. 어찌 보면 건조하고 어려울 수 있는 교리교육을 현장에서 오랫동안 적용해 본 고백의 언어로 가득 차있습니다. 저자 자신이 직접 고민하고 싸워 온 삶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제 우리도 함께 은혜의 고백으로 동참해 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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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 영혼의 치료제
애덤 S. 맥휴 지음, 윤종석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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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뒤흔드는 기막힌 일 앞에 한숨과 눈물만 늘어납니다. 마음을 다잡고 일상을 살아보려 노력하지만, 또 다른 말 앞에 번번이 무너질 때가 많습니다. 붙들고 있으면 무너지는 것은 우리이기에 놓아주려 애써봅니다. 마음이 쪼그라들어 여유가 없는 것 같아 조금만 더 천천히 가보려 합니다.


이런 작은 신음도 들으시는 분이 계십니다. 너무도 힘겨워 하나님 앞에서도 머뭇머뭇거린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뒤바뀌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하나님을 원망할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상황과 고통을 잘 알고 계시며, '위로'를 선물하십니다.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7)"


그렇습니다. '위로'는 '경청'에서 시작됩니다. 들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듣고 계셨습니다. 울부짖음, 몸부림, 한숨까지도 들으십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경청하신 하나님이며, 구속의 드라마는 '들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출 2:24)"


애덤 S. 맥휴 (Adam S. Mchugh)는 『경청, 영혼의 치료제』(도서출판 CUP)에서 경청에 대한 다양하고도 새로운 관점을 제시합니다. 성경의 말씀이 중심이 되면서도, 상담의 경험들이 풍부하게 담겨있습니다. '들어줌'의 행위가 어떻게 '환대'와 '위로'가 되는지를 꼼꼼하게 살핍니다.


'경청'은 능동적 행위입니다. '들음'은 결코 수동적이지 않습니다. 마음을 내어주어야 가능한 일이기에 집중된 상태, 나의 에너지를 쏟는 순간이 됩니다. '경청'은 '나'를 열어 '너'에게 향하는 시간이며, 공간입니다. 그 순간 '너'의 고통은 '나'의 아픔이 되며, '너'의 슬픔은 '나'의 눈물이 됩니다.


하나님은 경청하시는 분입니다. 저자는 성경에서의 하나님은 우리를 듣는 분이심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들으심으로 인해 구속사가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는 말에는 행하셨다는 의미가 암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들으심은 곧 행하심입니다. 하나님은 들으시되 하염없이 들으십니다.


인격적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그 가운데 가장 적절한 메시지를 말씀하십니다. 소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듣지 않으려 합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거부합니다. 오히려 우리의 삶은 온갖 소음으로 가득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만 합니다. 나의 필요 이전에 아버지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말씀하소서, 듣겠나이다"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기도는 우리를 겸허하게 합니다. 우리를 순종으로 이끕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우리를 열어둡니다.


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합니다. 그중에 하나는 성경 읽기를 통한 기도입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은 이미 성경에 뚜렷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시편이나 복음서를 통해 조용히 주님의 음성을 묵상할 수 있습니다. 그 이야기에 풍덩 빠질 수 있습니다.


또한 온 만물에는 하나님의 흔적이 묻어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피조 세계에 가득합니다.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듣고 본다면 일상 곳곳에서 하나님을 들을 수 있습니다. 조금만 더 여유 있게 주변을 둘러보세요. 우리가 듣는 음악, 서로의 대화, 바람 소리와 찬란한 태양 말이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 이웃을 들을 수 있습니다. 드디어 '너'에게 마음을 열 수 있습니다. 때로 우리는 들으면서도 훈수를 더하고 싶은 충동에 빠집니다. 아니면 내가 더 큰 고통 가운데 있다며 한 수 더 뜨는 방식으로 듣기도 합니다. 교묘하게 말을 돌리기도 하고요.


하지만 마음 다한 경청은 '너'로부터 시작합니다. 나의 기준이 아니라 너의 기준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매우 더디지만 상대의 진심을 듣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의 의도를 파악해 보세요. 지금 그가 처한 상황에서 어떤 부분이 제일 시급한지, 힘겨운지를 들어야 합니다.


아무래도 말하기를 즐겨 합니다. 말해야만 하는 시간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많습니다. 그 말에 영향력이 있으려면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들어야 합니다. '너'가 사라진 말들은 허황됩니다. '너'의 상황과 마음이 없는 언어는 공허합니다. 조금 더 들어야겠습니다. 진심을 다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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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위일체 공동체
레오나르도 보프 지음, 김영선.김옥주 옮김 / 크리스천헤럴드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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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정과 교회에서조차 진정한 연합을 보기 힘듭니다. 세상은 더더욱 그러합니다. 오히려 차별과 폭력이 난무합니다. 그럴듯한 말은 많지만, 그것을 구현한 공동체를 만나기는 힘듭니다. 각자가 존중되면서도 진정한 하나 됨 안에서 평안과 기쁨을 누리는 공동체 말입니다.


역사 속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특정한 사람들에게 권력이 집중되었습니다. 모두에게 평등하게 힘이 분산되지 않았습니다. 공동체와 사회를 향한 가치를 우선하기보다 권력과 자본을 쫓아가는 형국이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야 하는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윤리를 실천하기 위해 분투하는 공동체여야만 합니다. 이기적인 욕구를 만족시키고, 세상의 가치로 지배되는 공간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 나라 공동체의 주인은 철저하게 성삼위일체 하나님이어야만 합니다.


브라질의 해방신학자인 레오나르도 보프(Leonardo Boff)는 이 책 『성삼위일체 공동체』를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삼위일체 하나님을 경험하고 누리는 것이야말로 교회가 교회될 수 있는 비결임을 강조합니다. 그는 자신의 책 『삼위일체와 사회』를 이 책에서 조금 더 쉬운 언어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삼위일체에 대한 급진적 이해가 있어야 함을 역설합니다. 이를 통해 교회는 교회에 만연한 성직주의와 권위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는 권력은 교회에 있어 치명적인 문제를 낳습니다. 삼위일체 공동체는 지금의 교회 구조에 대해 건강하고도 적실한 대안을 제시합니다.


더불어 삼위일체 공동체는 그 교회 안의 하나 됨 안에 머물지 않습니다. 보다 참여적이고 대중적이며 가족적인 사회로의 발전에 이바지합니다. 이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맞물려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열린 공동체, 차이를 이해하고 인정하면서도 연합적인 모델이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저자는 성삼위일체 하나님이 홀로 존재하는 분이 아닌 연합이심을 강조합니다. '셋'이 먼저이며, 세 위격들 간의 친밀한 관계로 인해 삼위의 통일성을 표현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존재하고 살아있는 근간에 서로를 향한 움직임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본성을 닮아가야 합니다. 이는 분투와 대립이 아니라 화합과 연합입니다. 신적인 삼위의 상호 침투인 페리코레시스(Perichoresis)는 복된 삼위일체 하나님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매우 유용한 도구입니다. 이는 끊임없는 충만과 관계성을 의미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구약과 신약을 통해 지속적으로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저자는 이러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다양한 계시를 성부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조화로움과 관계성 가운데 제시합니다. 명확한 용어로 표현되지는 않지만 많은 본문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연합과 생명의 신비가 역사 안에서 가장 가시적으로 표현된 것이 '교회'입니다. 우리는 진정한 교회로서 열정적인 믿음과 좌절이 없는 소망, 헌신된 사랑이라는 복음의 메시지를 계속 따라가야 합니다. 교회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몸으로 보여줘야 하는 책무를 지닙니다.


더하여 삼위일체의 본질인 연합은 모든 종류의 배제와 차별을 비판합니다.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선포합니다. 참된 사랑과 섬김, 배려와 환대를 통해 이 사회에 만연한 죄악과 우상을 폭로합니다. 우리는 복된 삼위일체 하나님을 더 많이 알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연합과 사랑을 드러내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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