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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기록‘이라는 확고한 예술을 말해주는 사진가 중의 한 명이 최민식 사진가이다. 최민식 사진가의 사진 속에는 그야말로 기. 록. 이 있을 뿐이다.


그 기록 속에는 시대의 처절함이 가득하다. 가난이라는 이념이 한국을 관통하고 있는 모습을 거침없고, 거짓 없이 담아낸 사진가로 유명하다.


최민식 선생의 사진 속에는 요즘의 많은 사진작가들의 사진처럼 어떤 이벤트나 이물질이 가미되지 않고 오로지 필름의 사진으로만 기록한 사진이 가득하다.


최민식 선생은 부산 출신으로 살아생전 자갈치 시장에 가면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는 선생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또 해운대의 한 갤러리(무료관람)에 최민식 선생의 사진전이 열리면 고운 할머니들에게 사진에 대해서 설명까지 직접 해주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최민식 사진가에 대해서 설명이 나오는 영상이 아주 많지만, 부산 피난민들의 밥상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에서 최불암이 고 최민식 선생에게 부산의 이야기를 듣고 최민식 사진에 대해서도 듣는다. 그리고 둘이 앉아서 부산의 곰장어를 먹으며 소담스러운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볼 수 있다. 12:55 https://youtu.be/4d9__KHgNvA


최민식 선생은 가난을 너무 적나라하게 담는다 하여 공안정국에 끌려가기도 했고 사진도 몰수되기도 했다. 그때의 일화를 말하면 사진집 ‘인간’의 1집을 발간한 후 울릉도에 침투한 무장공비가 인간이라는 사진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에 중앙정보부는 최민식 선생과 출판한 동아일보를 다그쳐 간첩 내통으로 걸려들어갈 뻔하기도 했다. 이후에는 아주 많이 간첩신고를 받기도 했다. 그런 과정 속에서도 살아남아서 사람들에게 역사 속 우리의 모습을 기록된 사진으로 보여준 사람이다.


*경향과의 만남-80 평생 ‘가난한 이웃’ 렌즈에 담기 최민식 사진작가 – 편에서 인터뷰를 발췌했다.


-사진을 찍다 보면 사람들에게 욕도 듣고 쫓겨나기도 하시는데요, 그럴 때마다 기가 죽거나 작업에 회의가 들진 않으셨나요?


-욕해도 상관없어요. 다큐 하는 사람들은 목숨 걸고 해야 하는 거예요. 셔터를 눌러야 사진이 나오죠. 대담하고 용감해야 해요. 사진은 요령이 있어야 합니다.


최민식 선생은 앙리 카르티에 브레숑처럼 사진을 잘라내거나 하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특히 포토샵은 혐오했다. 사진은 진실만을 담아야 한다는 주의였다.


가난이 더 이상 가난으로 주목을 받는 시대가 도래하고 가난을 무기로 내세우면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져버리면서 최민식 선생은 주류 대접은 받지 못했다. 5, 60년대 생계가 아닌 오로지 생존에 허덕이는 역사를 소명을 가지고 담아낸 기록의 발자취만큼은 오래도록 관리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

최민식 선생의 사진을 보면 자연스레 신경림 시인의 '이 한 장의 흑백사진'이 떠오른다.



빛바랜 사진 속에서 그들은 걸어 나온다

어떤 사람은 팔 하나가 없고 어떤 사람은 귀가 없다

얼굴이 도깨비처럼 새파란 처녀들도 있고

깡통을 든 아이들도 있다

모두들 눈에 익은 얼굴이다

아득한 그리움과 깊은 슬픔에 빠지면서 나도 모르는 새

그들 속에 뒤섞인다

어울려 거리를 누비고 함께 노래를 부른다

그러다가 나는 두려워진다

이들을 따라 내가 저 흑백사진 속에 들어가

영원히 갇혀버리면 어쩌나

깨닫고 보니 나는 어느새 흑백사진 속에 갇혀 있다

비로소 나는 안도한다

신경림의 시 속에서 최민식 선생의 사진을 투영하고 최민식 선생의 사진에서 신경림의 시를 관통한다. 그리고 나도 시인의 마음이 되어 시를 쓴다.


사진 속의 그들은 처절하게 삶에 매달린다

옷 다운 옷도 없고 신발 다운 신발도 없다

마지못해 태어난 얼굴을 하고 그들은 전투적으로 삶에 달라붙는다

걷다가 힘들어 누운 곳이 잠자리가 되고,

먹고 죽지 않을 것은 음식이 된다

전쟁 통에 내 준 팔과 다리 때문에 한 팔과 다리 한쪽으로 신문을 파는 사진에서,

볼을 쥐어짜는 날 선 겨울에 장작불을 쬐는 사진에서,

허기에 허덕이다 아이도 엄마도 길거리에 잠든 사진에서,

두 눈을 잃은 청년이 나무로 엉성하게 만든 기타를 치며 용두산공원 입구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진에서

이념과 사상 그리고 역사를 몸에 음각으로 새긴다

살이 찐 모습이 없는 그들은 사진 밖으로 나오고 싶어 한다

그 모습이 가슴의 연약한 부분을 건드려 나는 그만 그들에게 손을 내밀고 만다

그때 최민식 선생이 고개를 흔든다

나는 선생이 죽기 전 만났던 적이 있다

그 선한 눈으로 강렬한 사진을 카메라에 담을 때 그는 알고 있었다

사진 속 그들에게 손을 내밀면 안 된다

사진 속의 그들은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

최민식 선생의 고랑처럼 파인 주름이 움직였다

나는 알 수 있었다

선생의 사진 속 촌스러운 아이들의 얼굴에서 웃음을 봤다

그것이 희망이라는 것을


외국에 유명한 사진작가들이 있다면 우리에겐 자갈치 아저씨, 최민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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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어서 일어나요

길에서 자면 큰일 나


자우림의 노래 [이런 데서 주무시면 얼어 죽어요]가 어울리는 사진이다. 이 사진도 아이폰 4로 찍었다. 그리고 이곳은 전부 아파트 단지로 바뀌었다.


저 때도 아마 이맘때쯤인데 일교차가 크기 때문에 자칫 큰일이 날 수도 있다. 신발도 없고 발바닥도 새까맣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노숙자일까. 노숙자라고 하기에는 옷은 또 괜찮다. 하지만 가까이 가면 한 달 가까이 씻지 않으면 나는 냄새가 난다. 어제 술을 마시고 나와서 이렇게 잠이 들었을까.


자우림은 노래를 부른다. 아저씨 일어나 기운 내요, 아저씨 어서 일어나요, 길에서 자면 큰일 나!


하지만 아저씨는 너무나 새근새근 잠들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행복한 모습처럼 보인다.


자우림은,

저 까만 발로 꿈꾸고 있는 걸까.

뭐 할 말이 있을까 어디 얘기를 들어볼까.

라고 노래를 부른다.


패닉하고 자우림 초기 노래에 미친 듯이 빠졌던 때가 있었다. 겉멋 잔뜩 든 때였다. 노래들이 막 세기말 같았다. [이틀 전에 죽은 그녀와의 채팅은]에서 놀라진 말아 줘, 고백할게 있어, 이틀 전에 난 이미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러니 놀라지 말고 자정에 나와 얘기를 하자고 한다.


꼭 저 밑바닥에서 손이 쑤욱 올라와서 나를 데리고 가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때는 경쟁이라도 하듯 델리스파이스, 피아 같은 밴드들이 우리의 폐를 푹 찌르며 밀고 들어왔다.


내일도 없고 그저 오늘을 미친 듯이 살자, 같은 주의였다. 어린이들 같았다. 내일을 위해 에너지 따위 남겨두지 않고 오늘 전부 소비를 해버렸다. 자우림과 패닉의 노래를 들을 뿐인데 몸이 연기가 되어 엑토플라즘처럼 사라지는 그런 기분이었다.


자우림은 노래를 부른다.

이런 데서 주무시면 얼어 죽는다고,

아저씨 어서 빨리 일어나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자우림(Jaurim) - 이런데서 주무시면 얼어죽어요 https://youtu.be/C5LOUJr0PM0?si=YbAf1NzefEPhJlr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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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5-11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정말 자우림 초기 때군요. 풋풋했네요. 근데 저는 못 들어본 노래내요. 지금은 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1년동안 활동 안 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벌써 몇년됐죠?

교관 2024-05-12 11:19   좋아요 0 | URL
저는 처음 들어보는 얘기네요 ㅋㅋ 지금도 활동 잘 하고 있잖아요 ㅋ 자우림 노래 부르니까 라이브 안 되는 아이돌들이 입을 헤 벌리고 보는 모습도 유튭에 있고요 ㅋ

stella.K 2024-05-12 16:20   좋아요 0 | URL
아니 그 얘기를 모르셨다닛! 진짜 그랬어요. 1년간 쉰다고.
근데 지금 활동하고 있군요. 티비에 안 나오면 저 같은 사태가 일어난답니다. ㅋㅋ

교관 2024-05-13 11:24   좋아요 0 | URL
몰라서 죄송해요 ㅋㅋ 티브이에는 엔믹스 노래 듣는 재미가 있어요. 또 오해워니 노래 너무 잘해 ㅠ 아이돌 같지 않게 말이죠 ㅋㅋ
 

                             술을 마시라고 꼬신다 ㅋㅋ 깨끗하다면서


도대체 술이 문제일까,

아니다 어쩌면 이 사회가 문제일지 모른다.


술을 마시는 사람이 문제일까. 후배 녀석이 만취에 사고를 당해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가보니 엉망진창이었다. 영화에서나 볼법한 몰골이었다. 온몸에 붕대를 감고 얼굴은 전부 어딘가에 갈렸는지 형편없었다. 하지만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녀석은 굴지의 제조업 회사에 다니고 있어서 회사 내에서도 정문에서 술이 덜 깨면 돌려보낼 정도로 음주에 엄격하다. 하지만 엄격해서인지 회사원들은 회식으로 회포를 풀고 2차 3차를 가서도 술을 마신다.


우리나라는 술에 관대하다. 온갖 잘 나가는 연예인들이 밤 10시만 넘으면 소주잔에 소주를 채워 한 잔 맛있게 비우고 캬 한다. 유튜브에서는 본격적인 술방이 이루어진다. 본격적이라는 말은 잘 나가는 연예인들이 술 마시는 채널을 만들어서 술을 마신다.


우리나라는 술 광고를 밤 10시 이후에 내보내지만 영국과 프랑스는 밤 10시 이후 술 광고가 아예 없다. 만약 술 광고가 있어도 모델이 술을 마시는 장면은 광고에 넣지 않는다.


우리나라 주류 회사에서도 광고에는 스포츠스타나 여자 연예인들은 쓰지 않는다고 자체적으로 규정을 정해 놨다. 하지만 그걸 지키는 주류회사는 없다.


현재 한국의 물가는 거짓말 좀 보태서 살인적이다. 가장 저렴하게 구입해서 먹을 수 있었던 방울토마토와 김마저 서민들은 벌벌 떨며 사 먹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부자들은 예외로 두고, 저소득층 중에서도 혼자 살거나 어른들만 있는 집에서는 서로 덜 먹거나 다른 걸 먹거나, 과일과 야채를 매일 먹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저소득층이라도 아이들이 있으면 아이들은 굶길 수 없다. 80년대는 저소득층이라도 과일과 채소는 원 없이 사 먹을 수 있었다. 채소마저 비싸서 마음껏 사 먹지 못하는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일까. 독립영화 ‘교토에서 온 편지’에서도 외국 노동자가 한국 물가는 너무 비싸다고 했다.


술을 마시는데 관대하면 술을 권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광고에 아이유, 김지원, 파친코의 김민하, 공유 등 잘생기고 예쁜 연예인들처럼 술을 마시면 깨끗하고 청초하다는 느낌을 준다. 과음을 하는 연령층은 점점 더 어려지고 있다. 불황일수록 소주는 날개 달린 듯 팔려나간다. 과일과 채소는 비싸서 사 먹지 못하지만 소주는 사 마시게 된다.

                                        대세만 하는 소주 광고


스타들이 술을 마시고 약간 흐트러지면 대중은 자지러진다.

그 정도로 좋아해 버린다.


이영지가 하는 유튜브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에서 스타들과 술을 마시면서 방송을 하는데 영지의 리드미컬 한 리드와 술이 있어서 아주 재미가 있다. 술을 마시면 모두가 다 저렇게 기분 좋고 깔끔하고 깨끗하게 마실 거라 착각을 한다. 그 착각을 하는 대부분의 연령층이 어리다. 차쥐없의 게스트 스타들도 대부분 아이돌이거나 나이가 어리다. 그러니 보는 연령층 또한 20대가 많다. 그들은 술을 마시면 스타들처럼 깨끗하게 마실 거라고 생각하지만 술 권하는 한국, 술 마시는 것에 관대한 사회에서 술을 마시다 보면 절제와 자제가 되지 않는다.


술에 관대한 사회가 무서운 이유는 4인 가족 시대에서 1인 가족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혼자 살게 되면 음식을 해 먹는 건 언감생심이며 손을 뻗을 수 있는 곳에 쉽게 둘 수 있는 것이 술이다. 술은 적당히 마시면 기분도 좋고 피도 쭉쭉 돌게 하지만 그 적당히가 어느 정도인지 그 어디에도 나와있지 않다.


시애틀 밸뷰 같은 곳의 술집에서는 10시가 되면 테이블 위에 술병을 다 없앤다. 그리고 술도 팔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새벽에도 뼈다귀해장국에 소주를 마음껏 마실 수 있다.


담배는 악착같이 경고를 한다. 영화를 볼 때, 드라마를 볼 때 흡연 장면은 모자이크가 된다. 도대체 그게 무슨 짓일까. 기안이 티브이 방송도 하지 않는 쿠팡 플레이 SNL에서 흡연을 한 건 온 언론에서 큰일이 난 것처럼 기사를 냈다.


영상 속에서 담배를 피운다고 해서 타인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가나. 흡연은 간접 피해를 줄지 모르겠지만 가장 피해를 많이 입는 건 당사자일 것이다. 담배는 악으로 규정짓고 있는데 술에는 관대하다.


만취 운전자는 묻지 마 살인자와 다름없다. 만취 운전자에게 사고를 당해 하루아침에 죽음으로 간 사람들 대부분이 하루 벌어 열심히 가족을 먹여 살리는 가장들이었다. 술에 취해 욱 해서 자신이 가장 사랑해야 할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폭행을 가한다. 술에서 깨어나면 잘못했다고 빈다. 하지만 만취하면 다시 폭행을 일삼는다.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법은 그들을 단호히 대하지 않는다. 도대체 술에 대해 왜 이토록 관대하고 권하는 한국인지 모르겠다.


2018년에 광고에서 캬 하는 음주 장면이 사라진다는 뉴스가 있었다. 그러나 사라지기는커녕, 지금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는다. 외국에서는 자기 술은 자기가 주문해서 자기가 알아서 마시지만 우리는 아직까지 한 테이블에 앉아서 술을 마시는 순간 모두가 한 사람처럼 술을 마신다. 다 같이 들어서 건배를 하고 다 같이 완샷을 한다.


"꿀꺽, 캬~" 술 광고에서 음주 장면 사라진다 (2018.11.14/뉴스투데이/MBC)

https://youtu.be/uFHujaudKsQ?si=4vBrPb4eVDIp8XVE


아무리 생각해도 티브이 드라마나 영화에서 흡연 장면은 모자이크를 하면서 술을 마시는 장면은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는 듯하게 보여주는 게 이해가 안 된다. 열심히 일하고 집에 들어온 주인공이 라면에 소주 한 잔에 모든 것이 싹 내려가는 듯한 표정과 멘트를 한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드라마 속에서 술은 많이 마시면 강한 사람으로 표현되고 담배를 많이 피우면 루저로 표현이 된다. 우리는 이상한 세계의 중간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세종시처럼 소주시 같은 새로운 도시를 하나 만들어서 그 도시 내에서는 술이 존재하지 않는다. 술집도 없고, 마트에서도 술은 판매하지 않고, 도시 내 술 반입도 안 된다. 술이 싫은 사람, 술을 못 마시는 사람, 술을 마시기 싫은 사람들이 소주시의 시민이 된다. 술이 없기 때문에 다른 도시에 비해 음주로 인한 사고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타 도시의 시민이 소주시에 사는 친척집에 왔다가 술이 마시고 싶은데 도시에 술이 없어서 친구들에게 텀블러 10개에 소주를 가득 부어서 가지고 오라고 해서 소주시에서 몰래 술을 마신다. 그러나 금방 시청 음주계 직원들에게 걸리고 만다. 그리고 그중에서 한 명이 달아나서 만취에 운전을 하다가 죽어버리는 일이 발생한다. 사람들은 잘 죽었다는 쪽과 반대쪽으로 나뉘었고 두 집단은 시위를 하면서 점점 과열되기 시작한다. 급기야 정부는 소주시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은 사형에 처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사람들은 양분화가 되어 내란이 일어나는 이야기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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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간인데 매일 하늘이 다르고 바람이 다르다. 올해 사월과 오월에는 비가 많이 내렸다. 어떤 사람은 봄비가 내리는 게 좋다고 하는데 나는 봄비든, 여름비든, 가을비, 겨울비, 비가 내리는 날은 별로다. 예전에는 무신경하게 창을 사이에 두고 앉아서 창밖에 비가 내리는 모습을 멍하게 바라보곤 했는데 요즘은 그것도 별로다.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리는데 여름이 되어서 일이 주 정도 비가 내리지 않으면 또 가뭄이라고 뉴스에서 난리를 떨 것 같다. 항상 최악의 가뭄, 같은 말들이 있었다. 최악의 가뭄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생각하는 게, 여기 강물이 말라빠진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 최악의 가뭄이라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최악, 역대급 같은 말을 너무 남발하는 게 아닐까 싶다. 역대급이라는 말이 뉴스에서 자주 들으니까 이 말이 참 듣기 싫다.


이번 코첼라에서 르세라핌이 역대급 무대였다고 했는데 그건 정말 역대급이었다. 역대급이라는 말은 그럴 때 사용해야 한다. 처참함의 정도가 역대급이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참 이상해서 엔믹스와 베몬의 완벽한 무대는 잘 봐지지 않는다. 특히 베몬의 라이브는 소름 돋을 정도로 좋다. 그러나 노래가 어렵고 고퀄이라 따라 부를 수 없는 지경에 무대까지 완벽하니 감탄하다가 지나가는데, 요즘 말 많고 탈 많은 하이브의 신예 아일릿의 마그네틱의 라이브는 마치 유치원 아이들이 무대를 하는 것 같아서 도대체 이게 케이팝의 현실이야? 하면서 계속 보다 보니 그 노래를 흥얼거리게 된다.


노래가 아주 쉽고 리듬이 단순해서 귀에 쏙쏙 들어온다. 그러다 보면 아일릿 얘네들이 라이브만 잘한다면, 같은 마음이 들어 버린다. 처첨한 무대를 계속 보니 슈퍼 이끌림~이 입에 맴맴도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난다. 이 모든 게 정말 하이브의 계략일까 덜덜덜.

비가 많이 오는 가운데 사이사이에 맑은 날이 있었다. 어떤 날의 저녁은 구름이 층위를 나타나며 어둡기 전에 푸른 하늘이 펼쳐지더니 어느 날 저녁은 동쪽 하늘인데 노을과 비슷한 색감을 드러냈다. 참 신비한 컬러였다. 일 년 중에 한 번은 이런 색감의 하늘을 본다. 자주 볼 수는 없다. 하루나 이틀 정도 볼 수 있다. 365일 중에 한두 번 볼 수 있는 이런 하늘의 색감을 바라보고 사진을 한 컷 찍는다. 저녁 7시가 넘은 시간이기 때문에 찰나로 어두워지고 러브 크래프트의 소설에서나 나올법한 묘한 색감은 사라지고 만다.

노을은 노을대로 타오를 수 없을 정도로 타오른다. 휴지를 집어던지면 확 타버릴 것 같다. 노을을 담은 멋진 사진을 보러 가지 말고 직접 이렇게 자주 노을을 보자. 아름다운 것을 찾으러 다니기보다 곁에 있는 아름다움을 봐야 한다. 노을은 저녁에 나오면 볼 수 있다.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이 아름다운 노을은 볼 수 없다. 많은 소설과 영화에서 소중한 것들은 늘 가까이 있으니 가까이 있을 때 어쩌고 하는 말을 한다. 동의한다. 그러나 인간은 늘 가까이 있는 것들은 놓치게 된다. 나 역시 인간이라 가까이 있던 소중한 무엇인가를 그동안 많이 놓치며 살았다.

너무 아름다와서 그저 바라만 봐야 하는 봄, 손을 뻗으면 잡힐 것 같은데 이만큼 가면 저만큼 도망가는 봄, 그렇게 봄은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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