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들처럼 - 진화생물학으로 밝혀내는 늙지 않음의 과학
스티븐 어스태드 지음, 김성훈 옮김 / 윌북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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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곳곳의 사람들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평균적으로 오래 살고 있다. 가장 빠르게 늘어나는 장수 연령대는 100세 이상의 노인들인데, 그래도 100세까지 살기란 여전히 쉽잖은 일이다. 오늘날 가장 장수 국가인 일본에서도 천 명 중 한 명 미만이 그 정도로 오래 산다. 드물긴 하지만, 오늘날 생존하는 100세 이상 노인들의 수는 1997122세로 사망한 프랑스의 쟝 칼망 이후 거의 4배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가 사망하고 25년이 지난 지금, 이 모든 증가세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장수 기록은 물론 사라 크나우스의 119세 장수 기록 역시 깨지지 않고 있다. 인간의 기대 수명 증가율은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이후 눈에 띄게 감소하였는데, 일례로 미국인의 기대 수명은 2015년 이후 증가하지 않고 있다.

 

자연계의 수많은 생명체 가운데 우리 인간은 비교적 오래 사는 생물일까, 아닐까? 인간의 장수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인간만이 아니라 시야를 넓혀 원근법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동식물을 통해 우리는 몇 시간에서 수천 년까지, 또는 그 이상까지 엄청나게 다양한 장수 생명체를 발견할 수 있다. 영장류 가운데 인간은 가장 장수하는 편이지만 다른 많은 동물의 수명에 비하면 매우 미미할 뿐이다. 그래서 소설가가 되기를 꿈꾸고, 대학을 중퇴하고, 다양한 별난 직업을 가졌으며,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 대형 동물의 조련사인 저자는 이렇게 묻는다. 만약 장수라는 하나의 기준만 놓고 본다면, 동물의 성장 속도와 수명은 어찌 그리 제각각일 수 있을까? 이런 유기체들로부터 더 길고 건강한 인간의 삶을 추구하는 데 도움을 얻으려면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저자의 관심사가 처음부터 생명체의 노화에 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전 세계 다양한 동물들을 연구하면서 종 사이 또는 종 내부적으로 천차만별인 수명이 그의 관심을 끌었고, 그는 점차 동물의 수명 분야에서 가장 저명한 전문가 가운데 일인이 되었다. 드디어는 이 책을 통해 다양한 동물종들의 노화 과정과 노화에 저항하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 제목에 쓰인 므두셀라(Methuselah)는 구약 성경의 창세기 521절에서 27절에 등장하는 인물로 '창 던지는 자',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라는 뜻이다. 그는 969세에 죽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성경에 언급된 인물 중 가장 장수한 덕분에 서양 문화권에서는 장수의 상징이다. 남들보다 열 배 느린 생체시계를 지녔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생물학에서는 장수와 관련이 있다고 믿어지는 유전자를 므두셀라 유전자라 부르기도 한다. 영문판 제목 므두셀라의 동물원도 그런 맥락에서 지어진 듯하다.

 

장수 지수는 한 동물이 체구가 같은 동물원 동물의 장수 기록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얼마나 오래 사는지를 말하는 값이다. (79)

 


- 경이로운 동물의 장수

장수는 비교의 대상이 필요한 상대적 개념이다. 가장 직접적이고 잘 확립된 상관관계 중 하나는 수명과 신체 크기인데, 이 값은 같은 종의 개체끼리 서로 비교할 때 즐겨 인용된다. 체격이 더 큰 종일수록 더 오래 사는 경향이 있으며 대개는 진화를 통해 얻은 노화 방지 전략이 매개변수로 작용한다. 살아있는 수조처럼 갈라파고스섬을 돌아다니는 거북이 종은 150살까지 산다. 이들은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느린 대사 속도로 오래 사는데, 부러워할 만한 요인은 또 있다. DNA 손상과 암에 매우 잘 대처한다는 점이다. 책에 묘사된 대부분의 다른 죽음을 거부하는 속임수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아직도 이들의 작동 방식을 알지 못한다.

 

새와 박쥐처럼 하늘을 날아다니며 장수하는 척추동물들을 보자. 이들은 매우 작은 체구를 가지고도 수십 년을 살며, 어떤 새들은 사람보다 오래 살 수 있다. 이는 비행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지를 고려한다면 훨씬 더 놀라운 일이다. 새와 박쥐는 비행 중에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소비하는 동시에 엄청난 양의 활성산소를 생산한다. 비록 인간의 세포가 생산하는 부하량보다 적기는 해도, 이런 종류의 피로를 완화하는 데 매우 능숙해 보인다. 박쥐는 또한 바이러스에 대한 놀라운 저항력을 발달시켰다. 동굴 천정에 빽빽하게 들어찬 박쥐 집단은 때때로 인간에게 재앙 수준의 피해를 주는 바이러스의 온상이자 숙주이다. 우리는 바이러스와 싸우는 대신 박쥐들이 어떻게 바이러스와 공생할 수 있는지부터 알아보아야 한다. 장수하는 새와 박쥐는 죽기 직전까지도 번식과 먹이활동이 매우 활발하며, 첫 자손을 낳기까지의 번식기가 매우 늦게 찾아온다. 자손은 한 번에 한 마리씩 낳으며 출생 사이의 간격이 매우 길다. 느린 번식과 발달이 장수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우리는 역시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개미와 흰개미는 이 방식에 들어맞지 않는 것 같다. 일개미에게는 없는 장수 유전자를 지닌 여왕개미들은 일꾼개미보다 수십 배 더 오래 살면서 평생 동일한 DNA를 가진 알을 1분마다 낳는다.

 

대부분의 장수 종들을 하나로 연결해주는 또 다른 특징은 환경적 위험 요소가 없다는 점이다. 이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안전을 보장한다. 코끼리나 고래와 같은 큰 체구의 동물들은 성체가 되면 인간을 제외하면 천적이 없어 잘 죽지도 않는다. 안전한 환경이라면 쥐 크기의 벌거벗은 두더지처럼 땅속에서 40년 동안 살거나, 도롱뇽처럼 빛이 들지 않는 동굴의 물속에서 사는 법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의 장수 지수가 높은 것은 단순히 포식자로부터 자유롭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과학자들이 인위적으로 노출시킨 어떠한 발암물질에도 반응하지 않는 능력을 지녔다.

 

- 진화와의 연관성

아마도 장수에 관해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놀라운 점은, 신체 노화에 대한 방어기제를 갖추었으며 암을 정복한 일부 동물이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적어도 500년을 사는 이매패류 연체동물인 아크티카는 엄청난 양의 산화 스트레스를 처리할 수 있으며, 새와 박쥐는 단백질 잘못 접힘과 세포 외 기질 분해에 대항하는 데 인간을 능가한다. 수십억 년 동안 진화는 장수가 발달할 수 있는 수많은 틈새와 방법들을 발견했다. 모든 장수하는 종들에게 적용되는 공식은 없지만, 더 오래 살 수 있는 놀랍도록 다양한 길이 있다. 게다가, 장수는 진화적인 시간 척도에서 상대적으로 빠르게 발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생쥐보다 10배 이상 장수하는 벌거벗은 두더지는 뜻밖에 진화적으로 생쥐와 매우 가까운 관계다. 일부 종은 1년 조금 넘게 사는 반면 다른 종은 수 세기 동안 산다.

 

이 결론은 매우 낙관적이다. 인간과 자연의 독창성을 결합하는 방법만 찾을 수 있다면 노화에 대한 방어 또는 치료법은 충분히 얻어낼 것으로 보인다. 거북이처럼 신진대사를 늦추거나, 박쥐처럼 동면하는 동안 텔로미어를 늘이거나, 아크티카처럼 얼음처럼 차가운 물에서 살 수는 없지만, 우리가 거북이의 노화 방지 메커니즘을 규명할 수만 있다면 인간을 위한 치료법도 개발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연구원들의 무한한 헌신을 요구하는 매우 어려운 과제이다. 야생과 사육 상태에서 장수하는 종을 연구하고 실험 종의 레퍼토리를 확장하려면 집중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따라서 저자는 우리가 장수하는 동물들을 깊이 연구하고, 생물학 실험실을 가득 채우고 있는 단명하고 빠르게 노화되는 종에 대한 연구에 머무르지 않을 것이라는 확고한 약속을 하기 전까지는, 우리는 더 길고 건강한 인간의 삶을 달성하는 데 많은 진전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 책의 요점은 자연, 즉 진화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똑똑하다는 것이다. 진화를 통해 장수 동물들은 수억 년 동안 노화의 해로운 과정에 대한 저항력을 개선해 왔으며, 인간은 이들의 장수 매커니즘을 연구하여 건강을 개선하고 수명 연장의 꿈을 이루고 싶어 한다. 이 책은 사실 인간의 장수에 대해 낙관적으로 전망하면서도, 해답을 제공하기 보다는 더 많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우리는 인간보다 천천히 늙기 때문에 특별한 생물학적 관심을 받는 동물 종을 점점 더 많이 발견하고 있지만 이 종들에 관한 연구는 그리 신통히 않다. 우리가 노화에 저항하는 다수의 더 나은 방법들을 발견하고 싶다면 연구 범위를 확장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맺는말

인간이 더 오래 살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찾는 데에만 몰두하는 독자라면,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쓸만한 정보가 그리 많지 않다고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이미 존재하는 장수에 관한 지식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묻기보다는, 동물의 장수에 관한 연구가 왜 더 필요한가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긴 하지만, 이 책의 실제 내용은 흥미로우며, 다양한 생각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장수는 많은 사람에게 큰 관심거리이지만 동물계의 관점에서 접근하려는 시도는 아마 이 책이 처음이지 싶다. 과학적으로 절대 가볍다고 치부할 수 없는 주제이면서도 저자 특유의 익살스러운 표현으로 내용에 활기를 불어넣는 장수 동물들의 많은 사례들을 접하는 자체로도 매우 유익하다. 생물학에 대한 기본적인 관심과 이해를 갖춘 독자라면 더없이 즐거운 읽을거리가 되어 줄 것이다. 혹시 누가 알겠는가? 독서가 인간 장수의 한 요인으로 밝혀질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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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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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처럼 - 진화생물학으로 밝혀내는 늙지 않음의 과학
스티븐 어스태드 지음, 김성훈 옮김 / 윌북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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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관심사인 장수를 동물학적 접근법으로 풀어낸 흥미로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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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철학 필독서 50 - 플라톤부터 마이클 샌델까지 2500년 철학 명저 50권을 한 권에 필독서 시리즈 2
톰 버틀러 보던 지음, 이시은 옮김 / 센시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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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톰 버틀러는 철학은 세상을 새롭게 보는 힘이라 정의하며, 이를 실천하는 방법으로 크게 생각하고, 존재하고, 행위하고, 인식하는 네 가지로 제시한다. 지금 우리에게 철학 필독서가 필요한 이유와 함께 철학 연구의 목적은 사람들이 생각해온 바를 아는 것이 아니라 사물 그 자체의 진실을 아는 데에 두고 있다. 철학서 읽기는 잃을 것은 하나도 없고 얻을 것뿐임을 강조한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과연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세상에는 많은 배울 거리가 있지만, 우리가 관심 가는 모든 분야를 널리 두루 읽을 시간은 매우 제한적이다. 그러나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도록 한 가지 예외를 만들어 낸 책이 있다. 이 책의 저자 톰 버틀러가 그 어려운 일을 해낸 덕분에 보상은 우리가 받게 되었다. 그가 저술한 경제, 정치, 자기 계발 등 50권 시리즈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이 책은 독자들에게 해당 분야에 대한 훌륭한 개요를 제공한다. 독자들에게 더 많은 독서를 위한 안내서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각 저자의 주요 내용을 식별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보드리야르, 시몬 드 보부아르, 베르그송, 다비드 봄, 노암 촘스키, 푸코, 마이클 샌델, 슬라보 지젝 등 이 책에 언급된 사상가들의 이름은 모두 오랫동안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 이들의 생각을 내 삶을 통해 제대로 체화해본 적은 없다고 고백한다. 고등학생 때는 시험 대비용으로 무조건 암기해야 했던 내용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졸업 이후 수십 년의 사회생활을 통해 생긴 정신력의 군살 그리고 향상된 대인 기술과 함께 그들의 철학이 무엇인지 몸으로 배운 이후 다시 접하게 되니 살짝 설레기까지 한다.

 

철학자들과 그들의 작품에는 거의 문외한이나, 들어 본 풍월은 있어서 노암 촘스키, 대니얼 카너먼, 마이클 샌델에게로 먼저 눈길이 향한다. 우선, 영어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접해보았을 변형생성문법 이론으로 유명한 노암 촘스키는 엄밀히 말해 철학자가 아니면서도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빅 브러더 정책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존경받는 뛰어난 언어학자다. 철학적 원론을 논하기보다는 철학적 정책이 현실 세계에서 실현되도록 앞장서는 모습이 실천하는 지식인의 표상이 아닌가 싶다.

 

우리 사회에서 진짜 권력은 정치제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민간경제에 있습니다. 무엇을 생산하고, 얼마를 생산하고, 무엇을 소비하고, 투자를 어디에 하고, 누가 일자리를 가져가고, 누가 자원을 통제하는 등등의 중요한 결정을 민간경제가 하고 있는 겁니다. (134)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은 실제로 생각이 시스템 1과 시스템 2로 이원화되어 두 시스템이 개별적이면서도 서로 연계 및 상호작용한다고 설명하였으며, 심리학 연구가 우리의 사고 및 행동양식을 변화시키는 데 전혀 효과가 없다는 결론으로 강렬한 흥미를 일으키는 작품이다. 또한, 노력의 비교 격인 노오력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최근 명성을 얻은 마이클 샌델 교수의 공정하다는 착각은 우리 사회에 가져온 부정적 영향을 설득력 있게 펼쳐놓았다. 본래 능력주의라는 말은 1950년대 영국의 사회학자 마이클 영이 주창한 것으로, 능력이 있든 없든 능력주의가 오히려 사회적 불평등을 초래할 것을 예견하였으며 실제 지금 우리는 그 병폐 속에 살고 있다. 단순한 경제인으로 살 것인지 아니면 시민 사회의 일원이 될 것인지를 다시 묻고 있어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우리는 정면의 책상 위에 램프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믿게 되는가? 전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애인의 목소리에 짜증이 섞여 있음을 어떻게 감지하는가? 길에서 거칠게 달려드는 자동차를 어떻게 의식도 하기 전에 가까스로 피하는가? 이런 이유는 아무리 추적해도 알아낼 수가 없다. 인상과 직관과 많은 결정을 만들어 내는 정신작용은 머릿속에서 조용히, 자신도 모르게 진행된다. (252)

 

일반적으로 철학 서적은 오래된 고전 작품에 초점을 맞춘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이 책에 등장하는 작품들의 특징은 우선 최근 21세기 들어 세간에 유명해진 것이 꽤 많다는 점이다. 이로써 철학이 명백히 과거의 유산이라는 인상을 지우는 데 일조하고 있다. 또 다른 측면은 샘 해리스나 니콜라스 탈레브처럼 실제로 철학자가 아닌 사람들이 몇 명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철학자로 분류되어 그 집단에 포함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떠나 이런 점은 작가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성향으로 느껴진다. 저자의 글솜씨 자체도 훌륭하고 전반적인 내용이 아주 잘 요약되어 있어 이해하기 어려운 작가는 단 한 명도 없다. 작품 당 읽을 분량은 너무 짧지도, 길지도 않으며 꼭 필요한 내용 위주로 언급하여 좋은 균형감을 보인다.

 

서문에서 저자도 인정하듯 유일하게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바로 철학자들이 알파벳 순서로 나열된 구성이다. 연대순으로 나열되는 일반적인 조합보다는 주제별 목록을 선호하는 편이라, 작가가 나름 고전적 범주를 피하고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려 한 것으로 이해된다. 본문에서는 각각의 고전 작품에 유명한 인용구 한두 개가 인용되고, 이어 한 문장으로 된 저자 소개와 본문 끝의 더 알아보기 보너스 및 유사한 맥락에서 읽을 만한 다른 책들의 목록이 뒤따른다. 작품의 요약본은 저자의 간략한 전기를 포함하여 평균 일곱 장 분량으로 읽기에 매우 적절하다. 독자들이 단 몇 분의 여유만 할애하더라도 필독서 한 권을 알 수 있도록 이상적으로 구성되었다.

 

세상을 읽어내는 통찰력을 얻기에는 철학책이 제격이라 하나, 사실 단 한 권의 철학책이라도 제대로 읽어 자기 수준으로 내용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철학 분야에 관심이 있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독자들에게는 이 책이 안성맞춤이겠다. 모르긴 해도 책장에 보관해두고 다양한 세상일을 겪을 때마다 틈틈이 꺼내 읽는 방법이 매우 마땅할 것 같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대단히 괜찮은 철학 입문서이다. 책의 전체 길이와 일부 철학자들의 깊이로 보아 지금까지 가장 쉬운 철학 안내서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가벼운 중급' 읽을거리라 하겠다. 철학자와 그의 대표 작품에 대해 최소한 들어본 척은 보장해줄 것이다. 독자에게는 아주 사소한 경험이 될지는 몰라도, 특정한 주요 작품에 중점을 두고 매우 광범위하고 즐거운 철학으로의 여정을 원한다면 훌륭한 선택이 될 것이다.

 

#철학 #세계철학필독서50 #센시오 #서평단 #책추천 #북클럽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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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철학 필독서 50 - 플라톤부터 마이클 샌델까지 2500년 철학 명저 50권을 한 권에 필독서 시리즈 2
톰 버틀러 보던 지음, 이시은 옮김 / 센시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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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한 주요 작품에 중점을 두고 매우 광범위하고 즐거운 철학으로의 여정을 원한다면 훌륭한 선택이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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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 가성비의 시대가 불러온 콘텐츠 트렌드의 거대한 변화
이나다 도요시 지음, 황미숙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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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지하철로 출근하다 보면 심심찮게 다른 사람들이 쓰고 있는 스마트폰을 곁눈질하게 된다. 젊은 층일수록 웹툰이나 드라마를 보는 경우가 많은 듯한데, 특이한 것은 누구 할 것 없이 손가락으로 화면을 넘기는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그러나 의외로 이 책의 저자가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발견한 빨리 감는콘텐츠 시청 습관은 크게 눈이 뜨이지 않는다. 실제 20대 초반의 자녀들에게 n배속으로 영화나 드라마를 시청하느냐 물었더니 도리어 왜 그래야 하냐 되물으며 자신들은 강의 동영상 이외에는 정주행을 선호한다고 답한다.

 

일단은 약간의 낭패감부터 맛본다. 젊은 층이라고 해서 모두가 유행에 민감하지는 않을 수 있음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적어도 일본인 저자의 시각으로 볼 때 일본에서는 매우 일반화된 현상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은 왜 일어난 것일까? 저자는 매우 다양한 답변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영상 플랫폼에서 기술적으로 빨리 감기 기능이 제공되기에 가능해 졌고,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는 콘텐츠를 일일이 감상할 여유가 없으며, 정액제로 구독하기 때문에 가능해진 관행이며, 마음에 드는 강렬한 장면만을 모아 보는 게 피곤한 감정 읽기보다 훨씬 편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심지어는 집중력 없이 대충 보았다 하더라도 한 번 더 보면 그만이고, 영상을 보고 싶다가 아닌 알고 싶다는 자극을 충족하면 또 그만이다. 이들 소비층은 특정 감독이나 작가의 팬이라기보다는 작품의 내용에만 치중하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누구의 작품인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작품을 올바로 이해하는 정석적인 접근법 보다는 잘못 해석하는 것조차도 관객의 자유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개인에게 필요한 거의 모든 기기가 스마트폰 하나로 다 해결되어 그 편리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실제 인터넷에만 연결되면 불가능한 일이 손에 꼽힌다. 음식 주문이나 식당 예약부터 항공기 이용과 여권 발급에 이르기까지 거의 무소불위다. 모든 것이 편리하니 굳이 불편을 감수해야 할 필요성마저 무뎌진다. 깊고 좁은 전문성에서 넓고 얕은 대중성으로 시대의 척도가 이동하고 있다. 이 같은 현대적 소비 성향은 리퀴드 소비로 지칭되며 세 가지 특징을 지닌다. 첫째, 소비되는 기간이 짧고 다음 소비로 금방 이동하며 둘째, 액세스 베이스로 대여나 공유처럼 물건을 소유하지 않으며 셋째, 같은 정도의 기능을 얻는다면 물질을 덜 소비한다.

 

각각의 특징에 대하여 아마도 저자는 일본인들의 속성을 잘 발견해 낸 듯한데, 과연 한국의 소비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을지는 자신할 수 없다. 세계적인 사조라고 해서 반드시 우리 경우와 일치한다는 법은 없을 테지만, 어쨌든 빨리 감기라는 추세의 핵심은 매우 잘 짚어내고 있다. 예컨대 콘텐츠를 구독하거나 소비하는 추세는 분명히 인정할 만하지만, 타인과의 대화에 끼기 위하여 시간을 아껴 시험공부 하듯 콘텐츠를 소비한다는 데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영상물 시청을 빨리 감고 건너뛰는 습관이 현대사회에 나타난 이유로 영상 작품의 과다 공급, 바쁜 현대인의 시간 가성비 지향성, 모든 것을 대사로 설명해주는 영상 작품의 증가를 들고 있다. 또한, 원인의 배경으로는 영상 공급 미디어의 다양화 및 증가, SNS로 공감을 강요당하고 개성이 없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위기의식, 그리고 얕은 감상이 많아지면서 알기 쉬운 것이 추구되는 흐름을 들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의 배경에는 일찍이 2000년대 인터넷이 등장하면서부터 서서히 기술적 토양이 준비되어 온 셈이다.

 

저자가 콘텐츠를 시청하는 습관을 주제로 최근 인류의 생활 양상에 변화를 가져온 원인을 날카롭게 파헤친 데 대해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한편, 이는 단지 일본만의 현상이 아닐 것이라 여겨진다. 우리나라에서도 누군가는 해 주었으면 싶은 연구 주제이기도 하다. 비록 대동소이한 결과가 예측되기는 하지만 그 차이는 매우 흥미로울 것 같다. 일본과 달리 지나치게 남을 의식하지도 않고 개인의 취향을 쉽게 무시하지도 않는 한국인 특유의 정서가 변수로 작용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전망해 본다. 이 책을 통해 시간 가성비를 정의로 받아들이는 Z세대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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