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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텔링 차이나 - 삼황오제 시대에서 한(漢)제국까지
박계호 지음 / 파람북 / 2022년 12월
평점 :
오늘날 우리가 ‘중국인’이라 부르는 이들의 정체성이 생겨나기 시작한 정확한 시기가 언제인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고대부터 존재했던 정치 질서와 문화는 후에 이루어진 중국이라는 국가와 국민의 정체성 형성에 주요 요소와 기반으로서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한족은 전통적으로 자신들 밖의 다른 나라나 민족은 자신들과 구별 지어 오랑캐로 여기고 멸시하는 성향이 강했고, 중원을 중심으로 이들을 각각 동이, 남만, 북적, 서융이라 칭하였다. 실제로 한족(漢族)의 후예를 일컫는 ‘중국인’이라는 용어는 공식적으로 20세기에 들어 생겼다 할 수 있으며 이는 국제 정치적 상황과 연관되어 있다.
중국의 세계관은 철학, 종교, 사상, 예술을 바탕으로 오래된 역사와 깊은 문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중국 사람들의 인식, 생활, 의식, 그리고 사회적 관계의 많은 부분을 설명한다. 특히, 철학적 체계를 중심으로 한 중화사상은 운(運)과 더불어 여러 변인에 의한 인문적,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요소들을 포함한다. 중국인 특유의 자문화 중심주의 사상이자 실질적인 종교이다. 골자는 중화 문명(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며, 그 문화적 역량이 어떠한 다른 문명보다도 우수하다고 믿으며, 다른 문명을 오랑캐로 낮잡아보는 사상이다. 국가 명칭부터가 '중심 국가'라는 의미의 '中國'이다. 이들은 이성(理性)과 현상(現象)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세계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기본적인 관점이다. 이성은 세계의 근본적인 원리와 법칙을, 현상은 그것을 드러내는 즉각적인 외형을 의미한다. 이성과 현상이 조화로운 균형을 이루는 음양오행에 근거한 공식적인 세계관이 있으며 천지, 인간, 신비가 함께 존재하는 특징이 있다. 천지는 천주(天主)의 존재로 통칭하며, 천주와 인간이 공존하는 것을 신비라 말한다.
『사람들이 역사에서 오랫동안 간과해온 것 중 하나는 현대 세계를 지탱하고 있는 기초적인 발명과 발견의 절반 이상이 중국에서 기원했다는 사실이다. 지금 서양은 중국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
중국사에 정통하기로 저명한 저자가 이 책에서 다루는 중국사의 범위는 삼황오제 시대(기원전 2000)에서 한(漢) 제국(기원후 270) 시대에 이른다. 시대적 배경의 이해를 위해 먼저 고대 중국사의 큰 흐름부터 짚어보자. 세계 4대 문명 가운데 하나인 황하 유역은 큰 하천과 농사짓기 적합한 기후로 농경이 발달하여 잉여 농산물을 생산하였고 청동기의 사용과 더불어 사회 계급이 생겨났다. 계급을 정당화하기 위한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필요하였으며 이로써 ‘신화시대’가 전개된다. 고대 중국 전설에 의하면 ‘반고’라는 신이 천지를 창조한 이래 고대 중국을 다스린 전설 속 제왕인 ‘삼황오제’ 신화시대가 시작된다. 삼황은 천황(복희씨), 지황(신농씨), 인황(여와씨 또는 황제)이며 오제는 소호, 전욱, 제곡, 제요, 제순이다. 제요와 제순을 일컫는 ‘요순시대’는 덕치로 태평성대를 이루어 세상을 다스리는 모범으로 지금까지 인식되고 있다.
요순시대가 끝나고 순임금의 뒤를 이은 ‘우왕(하우씨)’이 하나라를 세우는데 문자 기록이 없는 전설 속의 왕조이다. 황하 하류 지역의 ‘상’ 지역에 살던 부족의 지도자인 탕왕이 세운 왕조가 상(은)나라이다. 상나라의 수도였던 ‘은허’ 지역에서 유적이 발굴되며 중국 최초의 역사시대가 시작된다. 은나라로도 불리었으나 중국에서는 통일하여 ‘상나라’로 칭한다. 은허에서 발굴된 유적은 상당히 귀중한 것으로 거북 껍데기에 점을 쳤던 기록인 갑골문자가 있다.
상나라를 멸망시키고 등장한 주나라는 당시 계약관계로 맺어지는 서양의 봉건제와 달리 혈연관계 중심의 봉건제 국가였다. 중앙은 왕이 직접 다스린 한편 지방은 왕과 혈연관계에 있는 제후가 다스렸다.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고 강력한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진 시기가 아니었으므로 봉건제도를 통해 국가의 형태를 유지하게 된다. 주나라의 수도가 호경이었던 시기를 서주시대로, 유목민의 침입으로 낙읍으로 수도를 이전한 시기를 동주시대라 칭한다.
『무엇보다 때에 맞추기 위해서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때는 준비된 사람에게만 온다’라는 옛말처럼 자신에게 찾아온 때를 살리기 위해서는 거기에 합당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주나라의 천도 이후 춘추전국시대가 펼쳐지며 진, 제, 오, 초, 월 다섯 국가를 <춘추 5패>라 한다. 이들은 각자 독립한 제후로 서로 경쟁하면서도 기존 주 왕실의 권위를 인정하였다. 이들 가운데 진나라가 한, 위, 조 세 개의 나라로 나뉘면서 <전국 7웅>으로 불린다.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였으나 사회 경제적으로는 큰 발전이 있었으며, 공자와 맹자(유가), 노자와 장자(도가), 묵자(묵가), 한비자(법가), 손자(병가) 등 당시 등장한 제자백가는 중국 학문의 사상의 기본 골격이 되었을 뿐 아니라 한국 일본 등 인근 국가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중국 최초의 통일 국가였던 진나라는 법가 사상을 바탕으로 한 상앙의 개혁으로 국력이 융성하였다. ‘황제’ 칭호를 사용했던 시황제는 강력한 중앙집권을 시행하고 전국을 군과 현으로 나누어 관리를 파견하는 ‘군현제’로 지방을 다스린다. 법가 이외의 사상을 탄압하기 위한 ‘분서갱유’로 다양한 사상과 학자들의 탄압을 받았다. 문자, 화폐, 도량형을 통일하고 도로망을 정비한 공로도 있으나 만리장성과 진시황릉 등 대규모 토목공사를 통해 권력을 과시하고 가혹하게 통치하여 민심이 떠나면서 진은 서서히 쇠퇴한다. 결국 진승과 오광 등의 반란으로 통일 이후 겨우 15년 만에 멸망한다.
다음은 이 책이 마지막으로 서술하는 역사적 배경이자 중국의 문화적 기반을 마련한 한나라로 이어진다. 초나라의 항우를 무찌른 한 고조 유방이 중국을 다시 통일한다. 군현제를 통한 중앙집권과 유가 사상을 바탕으로 통치한 한무제 때 전한시대의 전성기를 맞았으나 그의 사망 이후 외척과 환관의 정치개입으로 왕권이 쇠락하고 왕망에게 왕위를 찬탈당하면서 전한시대는 막을 내린다. 전한의 멸망 이후 ‘신’나라가 건국되기도 하였으나 호족과 농민의 반란으로 곧 멸망한다. 유수(광무제)가 한을 재건하면서 후한시대로 이어졌으나 이 역시 외척과 환관의 횡포로 왕권이 약해진다. 대토지를 소유한 호족 세력이 득세하면서 농민의 삶은 극도로 궁핍해졌고 이어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면서 각 지방에서 독립한 호족들이 위(조조), 촉(유비), 오(손권) 삼국으로 분열된다. 이때가 바로 <삼국지>의 배경이 되는 삼국시대이다. 이 책에서는 다루지 않지만 이후 위진남북조-수-당-송-원-명-청을 거쳐 오늘날의 중국에 이른다.
『사람은 다양한 형태의 인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한가지 모양의 그릇에 모두 담을 수 없다. 그래서 공자는 하늘의 뜻을 헤아려야 하는 군자의 마음은 모든 것에 두루 미쳐야 하므로 고정된 형태를 고수해야 하는 그릇처럼 살지 말라고 주의를 환기한 것이다.』
역사를 배움으로써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얻는다.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는 내재적 가치를 깨닫고, 과거의 사실이 주는 교훈을 통해 오늘날의 문제에 대한 답을 얻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고, 한 사회나 국가가 타 집단과 구별되는 동질감과 정체성을 확립하며 이를 통해 자기 뿌리를 알 수 있게 되고,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의 발생 원인을 이해할 수 있고, 수천수만 년의 역사를 통해 무슨 짓을 하면 멸망하고 어떤 것이 옳은 일인지 습득하여 풍부한 교양을 갖추게 되고, 역사의식과 역사적 사고력을 기를 수 있다.
결국, 오늘날의 중국인들을 이해하는 좋은 방법의 하나는 그들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것이다. 동병상련, 오월동주, 절치부심, 와신상담, 토사구팽 등 우리가 흔히 인용하는 사자성어는 중국 역사에 녹아있는 실화인 동시에 우리 일상에 유용한 교훈을 전수하고 있다. 춘추전국시대에 영토와 세력 확보를 위해 앞장섰던 수많은 군웅의 각축전을 통해 시대의 애환과 가치관 등 그들이 살던 모습을 오늘에 투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의 대외 인식이 그리 좋지 않다고 하여 저들에 대한 호의적인 시선을 거두기보다는 우리가 먼저 이해해보려는 대인군자의 풍모를 실천해 보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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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