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눈 - 영상프라자 고객감사 가격할인
프레드 진네만 감독, 게리 쿠퍼 외 출연 / 플레이스테이션 월드 코리아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게리 쿠퍼는 명성만 들었지 실제 영화에서 본 건 처음이다.
다른 출연진에 비해 키가 껑충하게 크고 체격에 좋긴 한데, 흑백 영화라 그런지 그렇게 썩 잘 생겼다는 느낌은 안 든다.
꽃미남 스타일이라기 보다는, 거칠고 야생적인 서부 사나이 이미지가 풍긴다.
그러면서도 왠지 모를 순수함 혹은 어리숙함이 있다.
아카데미상 남우 주연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한다.
1952년 작품이니, 지금으로부터 무려 56년 전의 영화다.
해방이 막 됐을 때, 그 먼 옛날의 영화...
아빠가 아니었으면 제목만 듣었을 뿐, 직접 보기를 어려웠을 것이다.
이래서 또 인식의 지평이 넓어진다.

그레이스 켈리 역시 이 영화에서 처음 봤다.
막연하게 모나코의 왕비가 된 헐리우드 여배우로만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보니까 무척 고상하고 아름답다.
처음에는 누군지 모르고, 굉장히 날씬하고 가냘프게, 곱게 생겼다고만 생각했는데 그 유명한 그레이스 켈리였다.
꼭꼭 동여맨 원피스 사이로 몸매가 훤히 들어나는데 요즘 같은 섹시미나 관능미보다는 청순함이 돋보이는 외모다.
아마 요즘 세상이었으면 가슴 확대 수술 정도는 했을 것이다.
마지막에 그레이스 켈리가 게리 쿠퍼를 구하기 위해 악당의 얼굴을 짖이기는 장면은 매우 빨리 진행되면서 순간적이라 퍽 놀랐다.
보통 인질로 잡힌 여성 때문에 그 동안 잘 싸운 용사가 어이없이 잡히고 마는데, 놀랍게도 이 연약한 아가씨는, 악당의 얼굴을 가격하고 남편으로 하여금 총을 쏘게 만든다.
시원한 결말이었다.

보안관으로써 마을을 지킨 용감한 케인은, 결혼식 날 자기가 잡은 살인범 프랭크 밀러가 풀려나 다시 마을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들 싸움을 피하기 위해 케인을 마을에서 떠나 보내려고 한다.
그러나 밀러가 마을에 난동을 피우고 자신을 끝까지 쫓아올 것을 아는 케인은, 악당을 피하지 않고 신혼여행을 포기하면서 지원자를 모집해 악당과 싸우려고 한다.
그러나 누구도 나서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케인만 마을에서 떠나면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분위기로 봤을 때 밀러는, 케인이 없다고 해도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 나쁜 놈이다.
그렇다면 마을 사람들의 어처구니 없는 배신은, 매우 이기적이고도 어리석은 행동이 아닐 수 없다.
가엾은 케인,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친구들에게 같이 싸울 것을 부탁하지만 모두 숨기에 바쁘고 그나마 지원했던 한 명도 자기 혼자라는 걸 안 뒤 집으로 돌아가 버린다.
결국 그의 아내만이 남편을 지키려 돌아온다.
퀘이커 교도인 아내는, 처음에는 굳이 싸움을 피하지 않는 남편이 싫어 기차를 타고 떠나려고 한다.
그러나 총소리를 듣는 순간 그녀는 기차에서 뛰어내려 다시 마을로 돌아가 남편을 위해 싸운다.
가냘프지만 용감한 여성이다.

밀러 일당이 쓰러지자 그제서야 마을 사람들은 안심을 하고 우르르 달려 나오지만, 케인은 이 비겁한 무리들 앞에 보안관 뱃지를 던져 버린 후 아내와 마차를 타고 떠난다.
정말 시원했다.
어리석고 이기적인 사람들!

흑백 영화지만 사건 전개가 빠르고 무리한 구성이 없어 재밌게 봤다.
또 19세기 미국의 시대상을 볼 수 있었던 점도 큰 소득이다.
총기 소유도 전통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느끼게 한 영화이기도 하다.
스스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들어 마을을 세우고 돈을 모아 보안관을 고용했던 전통은, 아무리 총기 사고나 난무해도 쉽게 제한하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확실히 독립적인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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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에서의 죽음 - [할인행사]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 더크 보가드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제목이 고풍스러워 관심이 생긴 영화였다.
더구나 토마스 만이 원작자라고 하니, 왠지 작품의 수준도 높을 것 같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2시간이 넘는 다소 지루한 점도 없지는 않지만, 전체적으로 괜찮은 영화였다.
일단 음악이 주제와 잘 어우러져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매력이 있고, 타지오로 나오는 스웨덴 꽃미남 비요른 안데르센은 가히 "조각같은" 이라는 수식어에 딱 어울리며, 소년을 사랑하는 작곡가 더크 보거드의 연기도 훌륭했다.
어처구니 없게도 미소년을 사랑하는 노거장의 고통스러운 심리 상태를 너무나 섬세하게 묘사한 배우의 연기력에 감탄하는 바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해변가에서 친구와 뒹구는 타지오를 바라보면서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은, 꼭 내가 죽는 것처럼 숨이 탁탁 막혀왔다.
타지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염색하고 화장까지 한 얼굴 위로 삐질삐질 흘러나오는 땀줄기, 뭔가 말하고 싶은데, 혹은 행동으로 보여 주고 싶은데 도덕적 장벽이 그를 막고 또 육체의 한계가, 의자에서 꼼짝도 못하게 만든다.

타지오, 이 사람을 보기 전에는 감히 꽃미남을 논하지 말라.
정말 너무나 예쁘고 너무나 아름답게 생겨서, 동성애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한 번쯤은 넋을 놓고 쳐다 볼 것 같은 외모다.
원빈이나 장동건 같은 꽃미남들 보다 한 수 위다.
곧게 뻗은 다리와, 금발의 머리카락, 그리고 오똑 솟은 코, 새하얀 피부, 알고 보니 스웨덴 소년이었다.
역시 북구인들은 키가 크고 피부가 백옥같이 희다.
더구나 금발은 어찌나 탐스러운지...
인터넷에서 최근 사진을 찾았는데 실망스럽게도 좀 기괴한 인상으로 변해 있었다.
그러고 보면 장동건처럼 나이들어서 더 중후하고 우아한 외모를 갖기는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저렇게 아름다운 소년이 왜 그런 식으로 나이를 먹는 건지 안타까울 뿐이다.

어머니로 나온 여배우도 굉장히 아름답다.
특히 그 모자가 정말 예술이다.
당시 베네치아 사람들은 모자 쓰는 게 예의에 맞다고 생각했는지, 아이고 어른이고 죄다 모자를 썼는데, 이 귀족 부인의 모자들은 정말 예술적이다.
베일로 얼굴을 가볍게 가리고 있는데다, 양산까지 썼으니 아무리 쨍쨍 내리쬐는 햇볕에도 문제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다들 피부가 새하얀 건지...
우리도 모자에 베일 문화가 있어야 깨끗한 피부를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동성애에 대한 내 생각은,  단지 개인의 기호 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특별한 관심 자체가 없다.
영화 속의 구스타브는, 타지오를 단지 바라만 보는데서 기쁨을 느낀다.
물론 가까워질 수 있었다면 그를 안고 키스하고 애무했을 것이다.
롤리타와는 또 다른 의미의 소아성애증 같다.
롤리타는 그래도 이성애였지만, 그래서 험버트는 권력적인 위치였지만, 즉 어느 정도는 사회에서 통용될 수 있었지만, (다소 특이한 성적 취향?) 영화 속의 구스타브는 오히려 약자처럼 보인다.
미소년을 사랑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분위기, 그동안 쌓아 온 명성과 지위가 한순간에 무너지고 소년 역시 늙고 추한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는 자괴감.
어린 소녀에 대하여 늙은 남자는 권력을 가질 수 있지만,  반대로 소년에 대한 같은 동성의 어른은 그 늙음 때문에 추하고 왜소하게 느껴진다.
여자와 남자의 관계는 사회적으로 이미 권력 관계가 형성된 반면 같은 남자끼리는 그런 관습적 관계가 훨씬 덜 통용되는 것 같다.
정말 동성애가 일반화 된다면, 즉 누구나 자신의 성적 기호를 제약없이 드러낼 수 있다면, 남녀 관계의 권력적 속성도 함께 변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중간에 삽입된 예술의 절대성 논란은, 사실 영화만 가지고는 깊이 공감하기 힘들었다.
이 부분은 책을 읽어 봐야 할 것 같다.
영화에서는 타지오와 구스타브의 동성애적 시선에 초점을 맞춘 것 같다.
구스타브가 콜레라에 걸려 죽었다고 해설에 나오는데, 베니스에 올 때부터 이미 심장 발작을 가진 게 아닌가 싶다.
어쨌든 콜레라를 피해 베니스를 떠나라는 말을 타지오에게 하기 위해 베니스를 떠나지 못하던 구스타브가, 오히려 자신이 콜레라에 걸려 죽는다는 결말은 매우 비극적이고 아이러니 하다.
특히 그의 부모에게 어서 떠나라는 말을 하기 위해, 최대한 단정하고 허술하지 않게 보이려고 이발을 하고 화장까지 하는 장면은, 역설적으로 너무나 우스꽝스럽게 묘사되어 왠지 모르게 울컥 했다.
늙음을 가려 보려고 꾸미면 꾸밀수록 더욱 촌스럽고 어색해지는 비극성!
결국 구스타브는 하얗게 분칠한 얼굴 위로 검게 물들인 염색약이 지워지는, 코믹 배우 같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해변가에서 죽고 만다.
왜 그는 타지오에게 접근하지 못했을까?
아마도 사회적 금기 때문에 자신의 무의식 속에서 절대로 다가가서는 안 된다는, 엄청난 도덕적 제약이 내제되어 있지 않았을까 싶다.
성격상의 문제도 있었을 것 같다.
행동하기 보다는 고민하는 햄릿 쪽이라고 해야 하나?
요즘 분위기는 드러내놓고 동성애를 즐기는 쪽이니, "타임 투 리브" 의 로맹이나 샤샤의 당당함이, 구스타브에 비하면 오히려 뻔뻔하게 느껴질 정도다.

책으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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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투 리브 (1disc) - 할인행사
프랑소와 오종 감독, 잔느 모로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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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찍은 프랑스 영화는 오랜만에 본 것 같다.
역시 최근 영화라 그런지 풍경이나 촬영 기법 등이 상당히 세련됐다.
프랑스 영화는 70,80 년대 오래된 영화만 봐서 항상 칙칙하고 어두운 분위기였던 것 같은데 이번 영화는 일단 풍경이 너무 아름답다.
녹음이 우거진 한여름 풍경을, 사진작가인 주인공이 디카로 열심히 찍는다.
남자 주인공으로 나온 멜빌 푸포는 검은 고수머리가 무척 잘 어울리는 남자다.
나중에 머리를 죄다 밀어 버리는데, 꽃미남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 기분이다.
동성애자 애인으로 나온 크리스티앙이라는 배우도 정말 게이인 것처럼 예쁘게 생겼다.
게이 역시 같은 남자지만 남성적인 역할과 여성적인 역할이 나누어져 있다고 들었는데 확실히 실감이 난다.

동성애를 이처럼 리얼하게 그린 영화는 처음 봤다.
실제 섹스 장면을 본 건 처음이었다.
나는 원래 남녀간의 섹스도 노골적으로 표현한 영화는 불편해 하는 사람인지라, 동성애자의 섹스 장면은 상당히 껄끄러웠다.
왜 같은 성끼리 끌리는 것일까?
동성애자에 대한 특별한 편견은 없다.
성적 기호일 따름이니까.
남자와 남자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도 그저 여자와 남자처럼, 그냥 여러 사랑의 방식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사회에서 허용해 주면 그 때부터는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자리잡는다.

내가 석 달 안에 죽는다면?
나는 물론 아무리 가능성이 적어도 모든 치료를 다 수용할 것이다.
그런데 주인공 로맹은, 치료를 거부하는 것은 물론,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는다.
가족간의 소외를 그린 것 같기도 하고 소통의 부재, 혹은 현대 사회의 소외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한데, 어쨌든 혼자 고통을 삼키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할머니에게만은, 같이 죽음을 기다리는 처지라 동병상련을 느껴 말기암임을 고백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죽음의 공포, 그것도 혼자서 이겨내야 하는 공포...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여인의 제안을 받아들여 정자를 제공하는 장면은, 과연 현실성이 있는 건지 살짝 의문스러웠다.
무정자증인 남편은 아내가 다른 남자의 정자를 받아들여 임신하는 것을 허락한다.
심지어 그 남자와의 섹스에 동참하여 세 사람이 함께 즐긴다.
너무 기묘해서 보기 불편했다.
정말 이런 걸 받아들일 남자가 있을까?
성적으로 자유로운 프랑스에서나 가능한 일일까?
약간 혼란스러운 대목이었다.

내가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는다면 나는 제일 먼저 읽고 싶은 책 목록을 작성해서 도서관에서 살 것 같다.
그런데 영화에서 간과하는 것은,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고통도 심해진다는 사실이다.
보통 영화나 드라마에서 죽을 날을 받아 놓은 주인공이 평소에 못해봤던 걸 실컷 하는 걸로 나오는데, 실제로 가까이에서 환자들을 지켜 보면 너무나 고통스럽게 서서히 죽어간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니 어쩌면 책을 읽을 만큼의 에너지도 없을지 모른다.
심리적인 저항감도 무시하기 힘들 것 같다.
로맹 역시 우울증 때문에 너무나 괴로워 한다.
왜 나만?
하필이면 내가?
조금씩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갑자기 오싹해져 온다.
더군다나 독신으로 혼자 늙을 경우, 죽음을 혼자 견뎌내야 하는데, 아,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왜 사람들이 힘들어도 가정을 이뤄 함께 모여 사는지 알 것 같다.
감정적으로 기댈 사람을 찾는 것이다.

로맹 역시 혼자 해변가를 찾아가 해수욕을 하고 햇빛을 쬐지만, 그가 아프다는 사실을 차치하고서라도, 너무나 외롭고 쓸쓸해 보였다.
가족끼리 혹은 연인끼리, 친구끼리 함께 경험을 나누는 것은 풍요로워 보인다.
물론 사람끼리의 갈등 관계도 무시하긴 힘들지만 하여튼 혼자는 감정의 증폭을 감당하기가 너무 힘에 겹다.
인상적으로 본 프랑스 영화였고 무엇보다 풍경이 아름다워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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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lph 2010-01-26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암환자가 죽음을 정면으로 받아드리는 모습을 충격저일 만큼 사실적으로 그렸습니다. 물론 로맹처럼 맞이하는 사람은 극소수이겠지만, 그렇다고해서 어색하지도, 비 현실적이지도 않습니다. 사실성과 절제미, 생각의 깊이가 허리우드 영화와는 완전히 차원을 달리하는, 프랑소와오종의작품중에서도 아떤 의미에서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북경의 55일 - [초특가판]
스카이시네마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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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다닐 때 주말의 명화 시간에 엄마 아빠랑 같이 봤던 영화다.
너무너무 재밌고 긴장감 넘치게 봤던 기억이 생생한데 DVD로 다시 보게 됐다.
역시 나이가 좀 들어서 그런지, 생각만큼 스펙타클 하지는 않았다.
특시 얼마 전 사망한 찰스 해스턴은 너무 와일드 하게 생겨서, 그닥 호감이 안 간다.
오히려 같이 출연한 여배우 에바 가드너의 우아함이 한껏 빛났다.
영국 공사 역할을 맡은 데이빗 니븐도 성격파 배우로써 상당히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서태후나 기타 중국 장관들은 영어를 써서 그런지 실제 중국인처럼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일제 시대 영화를 만들면서 한국어 쓰는 일본인으로 분장하는 것도 저렇게 어색하게 보이지 않을까 싶다.
남작 부인과 중국 장군 사이의 로맨스는 과거형으로 잠깐 언급하고 끝나서 아쉽다.
뭔가 발전시켜 볼만한 스토리가 있었을텐데 말이다.
허망하게도 과일과 마취약을 구하러 간 남작 부인이 총에 맞아 죽었는데 찰스 해스턴의 반응이 너무 태평해, 좀 깨는 기분이었다.
그녀의 정성스런 간호를 받은 병사가 분노한 것처럼, 실상 두 사람은 아무 사이도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부하의 혼혈아 딸인 테레사와 소령의 따뜻한 관계가 더 돋보인다.
자신을 미국으로 데려다 달라는 테레사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하지 못하고 떠나는 행렬에서 돌아와 그녀를 말에 태우고 돌아가는 모습은 영화의 압권이었다.
어차피 혼혈아는 중국에서도 소외를 받을 것이니, 차라리 미국으로 가는 게 더 많은 기회를 줄 것이라 생각된다.

일본이 열강 속에 끼여 의화단과 같이 싸웠다는 점은, 새삼 일본의 당시 국력이 어땠는지를 상기시켜 준다.
대체 일본의 근대화는 어떻게 이루어진 걸까?
그렇게도 짧은 시간 동안에 그렇게도 엄청나게 말이다.
제일 감동스런 부분은, 북경을 사수하며 고군분투 하던 연합군에게, 각 나라의 지원군이 도착했을 때의 모습이다.
아무리 국가나 민족을 초월하는 세계 시민주의가 발달한다 해도 여전히 한 인간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가장 큰 테두리는 국가임을 새삼 느꼈다.
나도 모르는 애국심이 불끈 솟는 기분이었다.
다른 나라는 죄다 지원군을 보냈는데 우리나라만 국력이 약해서 군사를 못 보낸다면 얼마나 비통하고 안타까울 것인가!
어쩌면 식민 치하 조선인들이 느꼈을 비분강개와 자괴감도 이런 비슷한 느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각 대사관의 국기를 게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의화단 운동은, 청나라 입장에서 보면 외세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보호하자는 운동이니, 옛날처럼 맘 편하게 연합군을 응원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서태후를 비롯한 궁중 실력자들에게는 분노가 치밀었다.
특히 그 긴 손톱 보호대를 보면 짜증이 확 치밀었다.
대외적으로 무력하기 짝이 없으면서도 대내적으로는 자국민을 억압하고 온갖 권위를 갖는 무능력하지만 잔인한 독재자들!
대체 <연인 서태후> 라는 어처구니 없는 책은 왜 나온 걸까?
구한말의 고종 역시 그렇지만, 외세가 잘못해서 나라를 뺏긴 게 아니라, 위정자가 정치를 잘못했기 때문에 나라를 뺏긴 거란 사실을 명확히 했으면 좋겠다.
서태후는 너무나 뻔뻔한 할망구로 나와, 보면서 자꾸 화가 났다.

의외로 영화는 싱거웠다.
긴박한 대립 장면도 별로 없고 극적인 순간도 거의 없고 그냥 밋밋하게 그려진다.
그 점이 오히려 요즘 영화와 다르게 담백하고 소박한 맛이 있다.
오버하지 않아서 편한 점이 있다.
어린 시절 추억을 생각하며 재밌게 본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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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착역 - [할인행사]
비또리오 드 시카 감독, 제니퍼 존스 출연 / 스카이시네마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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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제목이 종착역인지 모르겠다.
영어 제목이 "terminal station" 인 걸 보면 대충 맞게 해석한 것 같기는 한데, 그닥 내용과 어울리지는 않는다.
캐서린 햅번이 나온 "여정" 이라는 영화가 있는데 내용이나 주제가 거의 비슷하다.
물론 <종착역> 이 흑백이라 훨씬 고풍스럽고 무엇보다 여주인공인 제니퍼 존스가 훨씬 더 고혹적이고 아름답다.
캐서린 헵번은 좀 거칠고 씩씩한 이미지라면, 제니퍼 존스는 너무나 우아하고 잉그리드 버그만처럼 50년대의 고전적인 미인으로 생겼다.
그녀가 입고 있는 정강이까지 내려오는 긴 투피스나, 짧은 파마 머리 위에 얹혀 있는 조그마한 모자, 그리고 팔에 걸친 작은 핸드백 등이 흑백 필름과 함께 그녀를 완벽한 고전 미인으로 만들어준다.
<터미널>에서 캐서린 제타 존스를 보고 정말 완벽한 미녀라고 생각했는데, 제니퍼 존스 역시 최근 본 여주인공들 중에서 탁월한 미녀에 속한다.
반면 상대역인 몽고메리 클리프는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눈망울이 매우 깊어 입체적으로 잘 생기긴 했는데, 키가 너무 작다.
제니퍼 존스와 거의 비슷한 크기라 얼굴만 볼 때가 훨씬 멋진 것 같다.

로마로 여행 온 마리아는, (Mery를 이탈리아어로 부르면 마리아가 되는 모양이다) 이탈리아 대학 교수인 지오바니와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이미 남편과 딸이 있는 유부녀!
장난처럼 시작한 커피 한 잔이 어느새 사랑으로 발전하고 죄책감을 느낀 마리아는 몰래 미국으로 떠나려고 한다.
비행기를 타기 위해 로마역으로 나온 마리아, 그러나 지오바니는 눈치를 채고 달려오고 두 사람은 첫 기차를 보내고 실랑이를 하면서 다음 기차를 기다린다.
늦게 찾아 온 사랑을 따라 나서야 할까, 괴롭더라도 가정을 지켜야 할까?
미숙아로 태어난 딸 캐시가 마음에 걸려 하자 지오바니는 이렇게 말한다.
"누가 캐시를 따로 떼어 놓고 생각했단 말이오? 난 언제나 당신과 캐시와 내가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꿈을 꾸었다오"
한국에서도 여자의 딸까지 받아들이려는 총각이 있을까?
너무 사랑하니까 그 여자의 딸도 예뻐 보이는 심정, 이해가 된다.
이탈리아 남자들은 꽤나 마초로 알려졌는데 여기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아내를 때릴 수도 있다고 공공연 하게 말하고, 실제로 마리아가 같이 가기를 거부하자 그녀의 뺨을 때리고 돌아선다.
또 이탈리아에서는 남자의 권위가 훨씬 강하다면서 당신네 미국 여자들은 너무 드세다고 촌평한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일반적인 얘기일 뿐이고, 두 사람의 사랑은 너무 단단하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에서 메릴 스트립이 클린튼 이스트우드를 따라가지 않은 것은 도덕적 이유에서라기 보다는, 어차피 새 생활을 하더라도 같은 일상의 반복일 뿐이라는 회의적인 태도에서였다는 평론을 읽은 적이 있다.
<여정>에서도 캐서린 헵번은 여행지에서 만난 이탈리아 남자를 사랑하지만 결국 미국으로 혼자 떠나고 만다.
새로운 삶에 대한 불안감, 혹은 하룻밤의 꿈으로 생각한 건 아닐까?
<종착역>에서는 일회적인 사랑 보다는, 도덕적 의무감에 초점을 맞춘다.
지오바니를 너무너무 사랑하는 마리아, 그러나 미국에 남아 있는 남편과 딸을 배반할 수 없는 그녀는 결국 사랑하는 남자를 버리고 가정으로 돌아간다.

어떤 게 옳은 태도인지 모르겠다.
선택은 언제나 선택하지 않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기회비용을 치루기 마련이니까.
결혼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반드시 평생 같이 살아야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하여튼 50년대 영화로서는 최상의 결말이 아니었나 싶다.
또 인간이 결코 감정에만 충실한 동물은 아님을 보여준다.

이상한 점은, 빈 열차에서 두 사람이 키스를 하다가 들켜 경찰서로 연행된 장면이다.
대체 왜 이게 불법인지 모르겠다.
극적인 사건으로 끼워 넣은 것 같은데 왜 불법인 걸까?
서장은 유부녀인 마리아의 처지를 고려해 더이상 취조하지 않고 사건을 덮어주는 아량을 베푼다.
이탈리아 경찰이 너무 무섭게 나와 왠지 후진국 분위기를 풍긴다.
마리아가 얼마나 고상하고 착한 사람인지 알려주는 에피소드도 있다.
1등석 휴게실이 다 차자, 3등석 휴게실로 가서 쉬는데 임신을 한 부인이 쓰러지려고 한다.
인상이 나빠서 소매치기범인가 했는데 마리아는 그녀와 아이들을 데리고 의무실로 가서 도와주고 돈까지 주려고 한다.
밍크 코트를 걸치고 있는 것이나, 1등석을 이용하는 것 등을 봐도 그녀가 무척 부유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부인의 남편은 의무실로 데려다 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면서 돈을 받지 않는다.
마리아는 대신 아이들에게 초콜렛을 사 준다.
영국 광산에 일하러 갔다가 폐광 되는 바람에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온 이 가엾은 부부는, 아내가 임신 중인데도 모텔비를 아끼려고 세 명의 아이들과 함께 역 휴게실에서 노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빈부간의 격차나 빈민들의 처참한 삶을 보여주는 장면인데 자연스럽게 삽입됐다.

<카사블랑카> 와도 비슷한 분위기의 영화다.
제니퍼 존스는 잉그리드 버그만 만큼 고혹적으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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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scw 2021-08-28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마 시대로부터 모든 길은 로마에서 끝나기 때문에 로마 역 이름이 termini(영어로 terminal)입니다. 그래서 그냥 역 이름을 제목으로 했는데 번역을 종착역이라고 직역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