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간도 Ⅲ 종극무간 [dts]
유위강 외 감독, 유덕화 외 출연 / 덕슨미디어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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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다시 본 무간도 3
사실 이 영화는 여명 때문에 인상적이었다.
1편에서 유덕화에게 반했다면 3편의 주인공은 여명 같다.
비록 영화 홍보에는 별로 안 나왔지만.
부드럽고 착하게 생긴 여명이 꽤나 냉철하고 어찌 보면 좀 야비하기까지 한 경찰 간부 역을 맡아 열연한다.
마지막에 유건명의 총에 맞아 죽는다는 설정은, 모든 주인공들이 다 죽었으니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처음 볼 때는 여명의 스타일리쉬한 모습에 반해 스틸 사진들을 컴퓨터 배경 화면에 깔아 놓기도 했었다.
다시 보니 처음처럼 멋지게 보이지 않고 인터뷰에서 여명이 직접 말한대로 상당히 나쁜 경찰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진영인처럼 순수하고 성실한 경찰이 아니라 음모술수에도 능하고 능숙하게 범죄자들을 다룰 줄 아는, 닳고 닳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역시 실력 하나는 최고로 젊은 나이에 보안부 반장이라는 중요한 직책을 맡아 내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엘리트에 대한 동경 의식 때문인지 이런 양반장의 능력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멋지게 보였다.
그러나 결말은 너무 처참하다.
모든 게 밝혀진 마당에 부하들이 지켜 보는 앞에서 첩자의 총에 맞아 죽다니.
첫 장면에서 역시 첩자에게 협박을 당할 때 전혀 겁먹지 않고 오히려 그를 눈빛으로 몰아 세워 자살하게 만들더니만, 역시 유건명과의 대결에서도 피하지 않고 정면승부를 하려다 그만 자극받은 유건명의 총에 맞아 죽고 만다.
너무 대범한 게 문제라고 할까?
부하가 진영인에게 이런 말을 한다.
형이 좋은 이유는 실력도 뛰어나지만, 싸울 때 두려움이 없어서라고 했다.
어제 본<불멸의 이순신>에서도 이순신 역시 아무리 두렵고 끔찍한 상황에서라도 피하지 않고 대범하게 정면 승부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데, 역시 리더나 영웅이란 담대한 용기를 지닌 족속들 같다.

마지막 장면에서 유건명이 양반장과 한침이 밀담을 나눈 테이프를 분명히 듣는 걸 봤는데 왜 이게 갑자기 유건명의 과거 한침과의 밀담 테이프로 바뀐 건지 좀 아리송하다.
처음 볼 때는 유건명이 정신분열증이 생겨 자신이 유건명이라는 첩자를 잡고 있다고 착각한 걸로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그런 허술한 설정은 아닌 것 같고, 심등에 의해 모종의 조취를 양반장이 취한 것 같은데 어떻게 된 속인지 모르겠다.
진영인이 죽기 전 양반장과 심등 셋은 서로가 같은 편임을 알게 됐고, 진영인이 죽게 되자 양반장은 그를 쏜 유건명에게 주목하고 덫을 쳐 놓은 것이다.
쫓고 쫓기는, 속고 속이는 두뇌 싸움 같다.
기회를 달라고 외치는 유건명의 마지막 몸부림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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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간도 2 - 혼돈의 시대 [dts]
유위강 감독, 유덕화 외 출연 / 덕슨미디어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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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에 딸린 서플이 보고 싶어서 빌리게 됐다.
무간도는 근래 본 영화 중 가장 인상깊었던 영화다.
캐릭터들이 갖는 갈등 구조와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상황이 너무나 안타까워 굉장히 몰입하면서 봤던 영화다.
실망스럽게도 서플은 너무 약하다.
어떤 서플은 아예 영화를 통째로 다시 상영하면서 해설이 들어가는 것도 있던데, 무간도는 CD를 두 개나 만들면서도 내용적인 면은 너무 약하다.
특히 메이킹 필름의 내용을 편집해 다시 인터뷰에 갖다 붙인 행위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기왕이면 감독이 각 인물들의 캐릭터나 행동이 갖는 의미를 자세히 설명해 줬으면 좋았으련만.
많은 아쉬움이 남는 서플이다.

2편은 다운받아서 보느라 번역이 취약해서 정식으로 다시 DVD로 보게 됐다.
두 번 본 거라 그런지 아니면 번역이 나아서 그런지 제대로 이해를 했다.
그 때는 이상했던 장면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것 같다.
황국장이 왜 경찰을 그만두려고 했는지, 한침이 왜 예영효와 담판을 벌이게 됐는지, 진영인은 어떤 심경의 변화를 보였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서사적으로 탄탄한 구조라 전개가 억지스럽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헐리우드에서 리메이크 해서도 성공했던 것 같다.
<디파티드>도 봤지만 마틴 스콜세지라는 감독의 성향 때문인지 <무간도>보다 훨씬 더 암울하고 어둡다.
눈빛이 너무나도 선하고 매력적인 양조위와 퇴폐적이기까지 한 불안증의 극치를 보여 준 디카프리오와는 도저히 비교가 안 된다.
원작이 훨씬 더 따뜻하고 낭만적이다.

2편에서 새롭게 발견한 것은 유건명의 성격이다.
사실 나는 유덕화의 팬이기 때문에 무간도 시리즈에서도 유건명을 중심으로 봤다.
그래서 유건명 역시 착한 사람이지만 현실이 그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는 식으로 이해했다.
그런데 2편을 보니 그는 상당히 잔인하고 냉철한 인물이며 조직폭력단의 세계에서 자란 사람다움을 느낀다.
진영인이었다면 아마도 사랑하는 여자가 아무리 모욕을 준다 해도 죽음으로 내몰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유가령의 나이가 너무 들어 보여 새파란 유건명이 사모하기에는 뭔가 부자연스럽게 보이기도 하지만, 여배우 자체로는 충분히 매혹적이다.
착하기 그지 없는 우리 귀여운 양조위의 아내가 된 점이 질투난다.
하여튼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다고 반대파에게 밀고하여 태연하게 공항에서 죽음을 지켜보는 유건명에게 섬뜩한 살의를 느꼈다.
아마도 마지막 순간에라도 그녀가 유건명의 전화를 받았다면 어쩌면 그는 목숨을 걸고 그녀를 지켰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매리는 마지막까지도 남편 한침에게 성실했다.
안타깝게 전화를 거는 유건명을 길 건너로 바라보면서도 냉정하게 전화기를 집어 넣어 버렸고 결국 그녀는 달려오는 차에 치여 죽고 만다.

아무리 의절한 아버지라 해도 그 아버지를 죽인 황국장을 용서하고 여전히 스파이 노릇을 성실하게 해내는 진영인의 모습에서 밝은 세계에서 살고자 하는 처절한 몸부림이 느껴져 연민의 감정이 생겼다.
그에게도 가족에 대한 애착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 예곤이나 아들 예영효는 가족을 끔찍하게 아끼는 전형적인 마피아의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이 영화에서 특히 오진우의 연기에 주목했는데, 인텔리처럼 굴면서도 실상은 잔인하고 냉정하기 그지없는, 그러나 가족에게는 한없이 약한 마피아 보스의 모습을 너무나 잘 소화해냈다.
비록 다른 유명 출연자들에게 가려 인터뷰 하나 못 땄지만 말이다.
황국장에게 아버지의 죽음을 조롱당한 후 분노를 참으면서 술을 따르고 묵념하는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사립탐정까지 고용해 4년에 걸쳐 기어이 아버지를 죽인 범인을 찾아내고야 마는 그 집념도 무시무시하다.
그러면서도 이복동생인 진영인에게는 한없이 따뜻하다.
어쩌면 진영인이 스파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할지라도 그를 죽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형을 배신할 수 밖에 없는 진영인의 괴로움은 비록 영화 전반에 자세히 나오지는 않았으나 상황적으로 충분히 이해된다.
어두움과 악의 세계에서 벗어나 선의 세계에서 당당하게 살고자 하는 의지가 아마도 진영인을 끝까지 충실한 경찰로 남게 했을 것 같다.
바다가 보이는 사무실을 달라는 그 소박한 청이 어찌나 안쓰러운지...

유덕화나 양조위의 훌륭한 연기에 비해 진관희나 여문락의 연기는 상대적으로 부족해 보여 아쉬움이 남지만 젊은 시절의 스타일리쉬한 모습을 보여 줬다는 점에서 의의를 둔다.
오진우나 황추생, 증지위의 연기가 훌륭하게 뒷받침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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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스프레스(영상1차할인) (Express)
영상프라자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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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못하니 익스프레스라는 뜻이 뭘 의미하는지 전혀 모른 채 영화를 봤다.
아마도 안 쉬고 계속 달리는 특급 열차를 뜻하는 것 같다.
비교적 재밌게 봤다.
적어도 지루해서 졸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영화 시간도 90분 정도로 비교적 짧은 편이다.
서양 영화의 장점은 다양한 연령층의 배우들이 활동한다는 넓은 스펙트럼에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나라가 넓어서 그런가?
진 핵크만은 이름이 낯익어 유명한 배우 같기는 한데, 영화 속에서는 적어도 50대는 되보이는 중년이지만 멋지게 배역을 소화해 낸다.

첫 장면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여주인공 캐롤은 변호사와 소개팅을 하게 된다.
맞선 자리에게 둘은 호감을 느끼고 얘기를 잘 풀어나가려는데 웨이터가 전화해 달라는 메세지를 전한다.
핸드폰이 보편화 되기 전 80년대라 그런 것 같다.
하여튼 변호사는 중요한 전화라며 양해를 구하고 잠깐 호텔방에 올라가려고 하는데 여자 보고 같이 올라가지 않겠냐고 묻는다.
남자에게 호감을 느낀 캐롤은 따라 올라간다.
그리고 전화를 받는 사이 욕실에 들어가 화장을 손보는데...
방문객이 찾아온다.
전화를 달라고 했던 사람, 바로 변호사의 고객인 마피아 두목과 부하였다.
알고 봤더니 남자는 고객의 돈을 몰래 챙기다가 들킨 것이다.
남자는 울면서 갚겠다고 맹세하고 마피아는 용서해 준다.
안도하는 남자는 마피아를 배웅한다.
막 문을 열려던 마피가가 갑자기 뒤를 돌더니 "미안하네" 라고 말한다.
순간 옆에 있던 부하가 변호사에게 총을 갈긴다.
욕실을 나오려다 모든 광경을 목격하고 만 캐롤, 숨이 멎은 듯 굳어 있다.

정말 스릴있는 살해 장면이었다.
긴장감 최고였고 영화의 뒷부분은 첫 장면의 긴박감에 미치지 못한다.
우연히 살해 현장을 목격한 캐롤은 쫓기는 입장이 된다.
그녀의 증언을 받아 마피아 두독 리오를 기소하려는 검사가 바로 진 핵크만이다.
검사는 그녀가 숨어 있는 캐나다로 날아가는데 그만 미행을 당하는 바람에 둘은 기차 안에서 쫓기는 신세가 된다.
킬러 둘이 두 사람을 쫓는다.
기차 객실 사이에서의 숨막히는 도주.
사실 아주 실감나게 그려지진 않는다.
특히 두 사람이 기차 지붕으로 올라가 싸우는 장면은 좀 어설펐다.
역시 특수 효과 보다는 스토리나 심리 묘사가 훨씬 긴장감을 주는 것 같다.

갖은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은 악당들을 물리치고 캐롤은 무사히 증언을 하게 돼 검사는 리오를 살인죄로 기소하면서 영화는 끝난다.
진 핵크만의 연기가 일품이었다.
악당들이 검사를 돈으로 유혹하는 장면이 있다.
미국 검사들도 변호사에 비해 박봉인 것 같다.
물론 권력이 있겠지만.
하여튼 검사는 악당들의 유혹에 웃음으로 대처하면서 난 돈은 못 벌지만 너같은 놈들 감옥에 보내는 재미를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마치 강철중의 순화된 캐릭터 같다.
그 장면이 아주 리얼하고 속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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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 박스 (Music Box)
미디어체인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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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영화 중반에는 무슨 내용인지 감을 잘 못 잡았다.
대체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누굴까?
마지막까지도 나는 아버지의 진실을 믿었다.
당연히 딸이 오해하는 걸로 생각했다.
그러나 충격적으로 아버지는 나치 학살범의 일원이었다.
공산주의를 증오해 미국으로 망명한 것처럼 위장했으나 사실은 친위대원이었던 것을 감추기 위해 범죄 사실을 숨기고 이민온 것이다.
설마 평생을 성실한 노동자로 살아온 아버지가 딸에게 철저하게 거짓말을 하다니!
딸의 분노와 충격과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
손자에게 홀로코스트는 조작된 것이라고 말하는 아버지를 보면, 과거의 범죄에 대하여 죄책감이 전혀 없고 여전히 그는 과거 친위대 시절과 변한 것이 없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유대인과 집시를 증오하고 인종학살을 정당화 시키는 친위대원!
어쩌면 자신의 과거가 드러나는 게 두려워 다른 변호사가 아닌 딸에게 변호를 강요했는지 모르겠다.
딸은 무조건 자신의 결백을 믿을 테니까.
결국 법정에서 그에게 학살당할 뻔 했다고 주장한 증인들은 다 옳았다.
딸은 그들의 기억력에 의문을 표하며 동명이인임을 주장해 결국 재판에서 이겼지만 영화는 비극적인 결말을 보여준다.
아버지의 고향인 헝가리까지 가서 알게 된 아버지의 비밀, 나치대원이었음을 숨기기 위해 그 사실을 아는 동료를 협박해서 죽이고 그의 여동생으로부터 얻은 수십년 된 전당포 표를 얻게 된 딸은 충격적인 증거물과 교환한다.
뮤직 박스 속에는 아버지의 학살 장면이 찍힌 사진들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아버지에게 쫓기던 친구가 증거물로 전당포에 맡긴 후 헝가리에 있는 여동생에게 안전하게 맡겼던 것 같다.
결국 딸은 아버지가 저지른 학살 사진을 검사에게 보낸다.
다음날 신문에 특종 기사로 보도되고 딸은 아버지를 떠난다.
얼마나 비극적인 결말인가!
그러나 양심을 택한 딸의 선택에 박수를 보낸다.
검사가 딸에게 한 말이 있다.
당신 아버지에게 원한 감정이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진실을 밝혀져야 하고 범죄는 응징받아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라고.
당시에는 아버지의 결백을 믿었기 때문에 무고한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전형적인 잔인한 검사 캐릭터라고 생각했는데, 결말을 알고 나니 그 검사의 대사야 말로 영화의 주제를 압축시키는 말 같다.

혈육의 정과 진실 사이에서, 차마 받아들이기 힘든 선택을 한 딸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결국 사람의 본성은 변하지 않음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방 정리하면서 대충 본 영화라 제대로 감상을 못한 게 아쉽지만 굉장히 독특하고 인간의 근원적인 심성을 잘 파헤친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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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의 선택 - [초특가판]
씨네코리아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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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은 엄청나게 좋던데, 사실 나는 썩 재밌게 보지는 못했다.
두시간 반에 달하는 긴 분량도 그렇고, 한번에 쭉 보지 못하고 나눠 봤기 때문에 몰입하지 못했던 탓도 있다.
굉장히 기묘하고 독특한 느낌의 영화인데, 어떤 블로거의 평처럼, 나치 학살을 노골적으로 고발하는 <쉰들러 리스트>와는 매우 다른 느낌의 홀로코스트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메릴 스트립은 이 영화로 미국 내 다섯 영화제의 여우 주연상을 휩쓸었다고 한다.
1982년도 수상작이니 꽤 오래 전 영화다.
줄거리 자체로 보면 특별할 게 없는데 오히려 아카데미에서 이런 마이너 느낌의 영화에 여우주연상을 수여했다는 게 더 신기하다.
메릴 스트립은 원체 연기 잘하는 배우로 유명해서 솔직히 특별히 감동적이지는 않았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기억이 워낙 강렬해서 그런지 몰라도, 그 이후의 메릴 스트립은 모두 그 연기의 변형으로만 보인다.
갑자기 생각난 건데, <콜드 마운틴>의 니콜 키드먼도 메릴 스트립 못지 않은 강렬한 연기를 선보였다.
둘 다 창백한 금발 미녀라는 점에서 비슷하지 않나 싶다.

서구인들에게 있어 홀로코스트는 일종의 죄의식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흑인 노예제에 대해서는 이렇듯 철저한 반성과 죄의식이 없는 걸 보면, 아무리 차별받는 유대인이라 할지라도 결국은 백인, 유럽인이라는 동질성 때문에 일종의 동료의식으로써 더 깊은 죄책감과 책임감을 느끼는 게 아닐까 싶다.
또 유대인이 차별받는 소수 민족이라고 하지만, 오늘날 그들이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부강해졌고 메이저 그룹에 편입됐기 때문에 여전히 하류층인 집시 민족과는 다르게 더 큰 책임감을 느끼는 게 아닐까?
나치에 대한 서구인들의 증오심은, 비슷한 시기에 함께 행동했던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비난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 같다.
독일에서 나치즘은 뿌리를 내릴 수 없고 영원히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동아시아에서 일본 제국주의는 누구도 발흥을 직접적으로 막기 어려운 문제라는 묘한 차이점이 느껴진다.
하여튼 나치와 일본 군국주의는 기묘하게 다르다.

스팅고라는 시골 문학 청년의 예술적 성장기라는 생각도 든다.
홀로코스트의 비극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면서도 영화는 줄곧 스팅고의 관점으로 진행되므로 크게 보면 이 순수한 시골뜨기 남부 청년의 성장기 같다.
배우도 비슷한 느낌의 얼빵한, 그러나 뭔가를 이뤄 보려고 애쓰는 느낌의 작달막한 남자를 골라 무척 잘 어울린다.
배우가 주는 느낌과 영화 속의 캐릭터가 대체적으로 다들 일치한다.
수용소에서 아들을 살리기 위해 딸을 가스실로 보냈다는 자책감을 안고 사는 소피가 자살을 기도하자 갑자기 나타난 흑기사 네이던이 그녀를 구해준다.
전체적으로 보면 소피는 딸을 선택적으로 죽였다는 죄책감에서 못 벗어나고 결국 미치광이 네이던의 자살 파트너로 생을 끝내고 마는 것 같다.
딸을 죽이고 대신 살린 아들 얀이 살아 있었다면 그것에 희망을 걸고서라도 죄책감을 이겨 낼텐데, 불행히도 얀 마저 죽고 만다.
어찌 보면 그녀는 인생을 반은 포기하고 있지 않았나 싶다.
절망적인 삶이,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네이든과 묘하게 어울려 마치 죽음 직전의 화려한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 같다.
그 시기에 스팅고를 만난 것이다.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스팅고의 초고를 읽은 네이든이 브룩쿨린 다리에 올라가 스팅고를 위하여, 를 외치며 잔을 들 때였다.
이 장면은 <타이타닉>에서 디카프리오가 배 위에 올라서서 <I'm king of the world> 를 외치는 것과도 흡사했다.
네이든은, 이 브룩쿨린의 다리가 휘트먼과 디킨스 등이 거쳐간 바로 그 다리라고 말하면서 이제 그대를 위해 건배를 들겠다고 한다.
아마도 스팅고는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처음으로 인정해 준 이 장면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만약 소피가 스팅고와 시골로 내려가 가정을 이루었다면?
어떤 상처든 시간이 지나면 줄어들기 마련이니 그녀는 과거의 고통을 잊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지 모른다.
네이든에게 돌아가 결국 동반자살로 끝맺은 선택은 정말 최악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소박하고 순수한 스팅고는 소피와의 행복한 삶을 잃은 대신, 문학가로서의 성장을 경험했다.
어쩌면 소피는 그가 감당하기 힘든 여자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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