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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의 양지 (흑백) - 초특가판
조지 스티븐스 감독, 몽고메리 클리프트 외 출연 / ING디브이디 / 2005년 6월
평점 :
너무나 아름다운 엘리자베스 테일러, 전성기의 모습은 거의 못 봤고 가끔 해외 토픽에 실린 뚱뚱한 할머니만 봤던 터라 흑백으로 본 20대 초반의 모습은 정말 감동 그 자체였다.
흑백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잉그리드 버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천사 같은 순수한 아름다움과는 다른, 굉장히 섹시하고 세련된 美 를 선사한다.
달걀형으로 갸름한 얼굴선, 얼굴이 얼마나 작은지 정말 요즘 유행하는 말로 CD로 가려질 것 같다.
허리도 한 손에 감길 만큼 쏙 들어가고 다리도 겨우 무릎 정도 밖에 안 드러냈지만 충분히 날씬했다.
몽고메리 크리프트도 이 영화에서 처음 봤는데 선이 굵은 듯 하면서도 요즘 말로 꽃미남 분위기도 풍기는, 좀 여려 보이는 미남 배우였다.
흑백이라 더 멋지고 아련하게 보이는 걸까?
2시간 정도 되는 영화인데 전혀 지루하지 않고 사건 전개가 빨라서 좋았다.
그러나 영화의 결론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었다.
이 감독은 남자 주인공 조지가 살의를 품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죄를 짓고 사형을 기꺼이 받아들인다고 설정했는데 나는 절대로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
변호사의 말대로 살인을 상상하는 것과 실제로 저지른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그가 살해 의도를 품고 애인을 강가로 데려가 보트를 태웠으나 소심한 조지는 결국 포기하고 돌아가자고 말한다.
그러나 흥분한 애인 아리스가 조지에게 다가오면서 보트가 뒤집어졌다.
검사는 그가 아리스를 일부러 구하지 않았다고 논박하지만, 일단 자기가 살고 봐야 할 거 아닌가?
둘 다 물에 빠졌는데 혼자 살아 남았다고 살인자로 몰리는 건 공정하지 않다.
변호사의 반박이 정말 일품인데, 단지 살인을 상상했다는 이유만으로 살인자가 될 수 없고, 무엇보다 그 누구도 두 사람의 익수 사고를 보지 못했으며, 검사와 배심원들은 단지 그 장면을 상상하고 있을 뿐이다.
결정적인 증거는 단 한 건도 없는데 정황과 심정에 호소해 전도 유망한 청년을 사형으로 몰고 있다.
이거야 말로 또다른 의미의 대중에 의한 살인이 아닌가?
정말 안타까운 것은 조지가 단지 돈 때문에 안젤라를 선택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청춘의 덫>에서 이종원은 돈 때문에 심은하를 버리고 유호정을 택한다.
차라리 돈 때문에 버림받는 거라면 덜 비참하다.
그런데 조지는 아리스가 부자고 안젤라가 여공이라 할지라도, 역시 아리스 대신 안젤라를 선택했을 것이다.
안젤라는 너무나 우아하고 사랑스럽고 매력적이다.
그는 안젤라를 처음 본 순간 그녀에게 반했지만, 감히 쳐다 볼 생각조차 못했다.
그런데 그 여신같은 안젤라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돈과 명예, 부유함, 학식 이런 모든 것을 다 팽개치고 겨우 열 세 살 때 학교 교육을 마친 이 가엾는 공장 직원에게 말이다.
안젤라가 얼마나 순수하고 착한 아가씨인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심지어 그녀의 가족들마저 조지를 받아들여 둘은 결혼 약속까지 한다.
나중에 조지가 사형수로 몰려 수감되었을 때 조차, 가족들은 유명인사인 안젤라를 사건에 개입시키지 않으려고 애를 쓰지만 직접 감옥까지 찾아가 여전히 당신을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이런 천사같은 아가씨가 어딨을까!
아리스는 모든 면에서 안젤라와 비교된다.
요즘 눈으로 보자면 이 여자를 이해하기 힘들다.
단지 아기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사랑도 없는 남자를 붙잡을 수 있을까?
이 영화가 1950년대 영화라서 남자의 책임을 묻는 게 가능한 건가?
나도 여자지만, 아이 때문에 애정 없는 결혼생활을 한다는 건 받아들이기 힘들다.
더군다나 두 사람은 아직 결혼 전이고 법적인 책임감이나 구속력도 없다.
조지가 좀 더 대범하고 용감한 사람이었다면 아리스에게 또 안젤라에게 모든 것을 솔직하게 털어 놨어야 한다고 본다.
역시 솔직한 게 최선이다.
되어 가는 방향과 현실을 개인의 힘으로 바꾼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니까.
신분 상승의 욕구도 영화 속에서 대놓고 얘기하지는 않지만 미묘하게 잘 드러난다.
다만 <청춘의 덫>에 나오는 이종원처럼 노골적으로 보여주지 않아 훨씬 더 공감이 가고 세련됐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공장에서 수영복 포장하고 기껏해야 영화 보는 게 여가 생활의 전부인 하층민 생활보다는, 여름이면 별장으로 놀러 가고 승마 타고 뱃놀이 하는 상류층 생활을 동경할 것이다.
누구나 말이다.
도덕적인 기준에서 크게 벗어나 무리하게 일을 추진한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이렇게 상류층 아가씨가 알아서 찾아오고 무엇보다 그 자신 역시 돈을 떠나 그녀를 너무나 사랑하니 대체 뭐가 문제가 되겠는가?
이거야 말로 완벽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이 절정의 순간에 결국은 어처구니 없이 파멸하고 만 가엾은 조지 이스트맨.
정말 완벽한 의미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흑백 영화는 아련한 추억을 불러 일으키고 훨씬 더 몽환적인 이상의 세계를 그려낸다는 점에서 매혹적이다.
세월의 흐름을 이겨내고 60여년이 지난 후에도 후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영화의 저력에 다시 한 번 놀라는 바다.
아마도 이 아름다운 여배우는, 영화 속에서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