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푸치니 : 라보엠
프란츠 벨저-뫼스트 외 / EMI 뮤직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하이 클래식> 모임에 가서 라 보엠을 처음 접했다.
이상하게 푸치니의 오페라는 선뜻 와 닿지가 않았고 라 보엠 역시 흥미가 별로 안 당기는 작품이었다.
그렇지만 해설을 들으면서 관람을 하니 새로운 매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솔직히 아직 수준이 안 되서 성악가의 기량이나 오페라단의 연주 솜씨 같은 건 감별을 못 하겠다.
다만 귀에 꽂히는 아리아, 멜로디, 마음을 끄는 극적 전개 이런 것들을 위주로 본다.
적어도 의무감으로 보지 않고 지루하지 않게 관람할 수 있는지 그게 내 관전 포인트다.
어떤 사람은 클래식을 어설픈 교양주의 때문에 억지로 관람한다고, 심지어 사대주의까지 운운하지만 인터넷과 온갖 자극적인 영상물들이 난립하는 이 시대에 정말 우리에게 기쁨을 주고 행복을 주지 않는다면 대체 뭣 때문에 사라져 가는 이 위대한 예술을 관람하겠는가?

내가 본 작품은 <하이 클래식>에서 소개해 준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공연물이었다.
남녀 주인공들이 꽤나 잘생기고 예뻐서 극이 매력에 빠져들이 쉬웠다.
파바로티가 이 라 보엠 전문이라고 하니 나중에 파바로티 작품도 볼 생각이다.
제목이 예뻐서 전혀 짐작을 못했는데 알고 보니 정말 불쌍한 내용이다.
돈 없고 가난한 예술가들이 만나서 잠깐 함께 살다가 결국은 돈 때문에 헤어지고 여자는 폐병으로 죽는다는 슬픈 얘기.
그렇지만 1막에서 네 명의 젊은이들이 가난에도 불구하고 신나게 웃고 떠드는 모습이 패기가 느껴져 보기 좋았다.
푸치니 오페라에 새로운 관심이 생겼고 다음에는 토스카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도서관에 DVD가 많이 비치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도 과천도서관은 DVD를 대여해 줘서 다행이지만 영상물을 책처럼 자유롭게 고를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
워낙 비싸기 때문에 선뜻 이것저것 살 수도 없고 솔직히 영상물 두 번 볼 거면 그 돈으로 직접 공연을 보겠다는 생각이기 때문에 쉽게 사지지가 않는다.
사실 아직 음악에 대한 식견이 없기 때문에 좋아하는 음반을 고르지도 못한다.
도서관에 음악 영상물을 좀 더 다양하게 갖춰지길 바라고, 대여점이 활성화 되서 쉽게 빌려 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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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광선 (프리미어 신년 할인)
프리미어 엔터테인먼트 / 2005년 1월
평점 :
품절


독특하다고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는 영화다.
여름날 풍경을 잡아낸 연출 기법은 퍽 신선하고 인상적이었으나 줄거리가 너무 빈약하다.
마치 <여자, 정혜>를 보는 기분??
주인공 델핀으로 나온 여배우 마리 리비에르는 날씬하고 매력적이다.
프랑스 휴가가 무려 4주나 되나니, 다시 한 번 놀라는 바다.
한국의 아가씨였다면 델핀처럼 이런 우울한 휴가 기분을 내보려고 해도 휴가가 워낙 짧아 곧 마음 정리하고 직장에 복귀해야 할 것이다.

델핀은 휴가 직전에 남자 친구로부터 함께 떠날 수 없음을 통고받는다.
우리로 치자면 마치 크리스마스 이브를 혼자 보내야 하는 상황?
그래도 크리스마스는 겨우 하루에 불과하지, 프랑스의 여름 휴가는 무려 4주나 된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남들 다 바캉스를 떠난 파리에 혼자 남아 있어야 하는 끔찍함!
델핀은 열심히 친구를 찾으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마음의 외로움과 소외감은 커질 뿐이다.
델핀의 사교 스타일을 보면 의미없는 농담을 지껄이기 보다는 뭔가 진지한 대화를 원하고 일회적인 만남 보다는 서로 통하는 이상형을 추구하기 때문에 바캉스 한 철 보내는 애인을 쉽게 만들 수가 없다.
반면 그녀의 친구들은 이른바 헌팅도 잘 하고 처음 본 남자들과도 서스럼 없이 대화를 나눈다.
델핀은 좀 피곤한 스타일이었던 것이다.
델핀을 보면서 마치 나를 보는 듯한 느낌이 많이 들었다.
나도 처음 본 사람에게 낯을 가리는 편이고, 시시껄렁한 농담들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주 친한 친구들이 아니면 굳이 모임에 나가지 않는 편이다.
당연히 바캉스 한 철 애인 같은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녀와 대비되는 스웨덴 아가씨가 나오는데 세상에, 수영복은 입고 수영하냐고 놀라면서 묻는다.
아니 그럼 벗고 하라고?
그녀는 가슴을 환히 드러내고 다닌다.
오히려 가슴을 동여맨 델핀에게 그렇게 태우면 자국 남지 않냐면서 의아해 한다.
 이 아가씨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해변가에서 만난 남자들과 금방 사귄다.
델핀은 사교에 소극적이고 깊이 있는 만남을 원하는 아가씨라 어쩔 수 없이 혼자 있는 시간이 클 수 밖에 없는데 또 혼자 있는 것을 지루해 한다.
필연적으로 그녀의 여름 휴가는 우울해질 수 밖에 없다.

내가 델핀이라면 나는 오히려 그런 시간들을 편안하게 귀중하게 받아들였을 것 같다.
파리는 예술의 도시가 아닌가?
혼자 할 수 있는 게 널려 있는 도시인데 대체 왜 외로워 한단 말인가?
물론 때로 소외감이 들고 친구가 그리운 때가 있다.
특히 남들 다 떠나는 휴가철이라면 더더욱!
그러나 어쩔 수 없이 혼자 있어야 하는 때도 살다 보면 분명히 있다.
자신을 더욱 소외감으로 내모는 델핀이 안쓰러웠다.
녹색광선이 주는 의미를 깨닫고 드디어 새로운 사랑이 시작하는 걸로 영화는 끝난다.
<남과 여> 의 느낌과도 좀 비슷하다.
프랑스 영화는 확실히 할리우드와는 다른 영화의 공식이 존재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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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향 - [초특가판]
쥴리앙 듀비비에르 감독, 장 가방 출연 / 스카이시네마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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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세로만 알고 있던 장 가방이란 사람을 처음 봤다.
고전 영화의 매력은 이처럼 유명인사와 인물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기대했던 것 만큼 잘 생긴 배우는 아니었다.
그냥 평범한 중년 아저씨?
흑백 영화라 분위기가 어둡고 솔직히 제목이 왜 망향인지도 모르겠다.
잃어버린 고향, 고향을 그린다, 뭐 이런 의미일텐데 주인공이 파리로 돌아가고 싶어하긴 하지만 딱히 그게 주제는 아닌 것 같다.
왠지 영화 전체의 주제를 제목이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기분이 든다.

프랑스의 식민지 알제리의 해변가 풍경이 비록 흑백영화지만 아름답게 펼쳐진다.
지중해 연안 도시들에서 흔히 보이는 흰색 테라스가 있는 독특한 건물들이 끝도 없이 연이어 있다.
사창가라고 하는데 도무지 그런 축축한 냄새는 나질 않는다.
창녀들로 나오는 알제리 여인들도 토속적이고 순박한 시골 아주머니들 같다.
<일요일은 참으세요> 에 나오는 바로 그 신나는 창녀들 분위기!
영화라서 미화된 것일까? 아니면 그녀들의 삶도 나름의 애틋한 뭔가가 있는 걸까?
하여튼 포주와 인신매매, 인생막장 이런 구질구질한 느낌은 전혀 보이질 않는다.

페페는 프랑스에서 은행 강도를 저지른 후 알제리의 카스바라는 사창가로 숨어 들어간다.
미로처럼 연결된 도시와 주민들의 협조로 경찰은 감히 체포를 엄두도 못 내고 그가 시내로 나올 때만 기다린다.
현지 경찰인 슐리만은 적당히 이들과 친한 척 하면서 기회를 노린다.
페페는 바람둥이인데 집시 여인 이네스와 살고 있다.
그러다 어느날 보석으로 치장한 아름다운 여인 가비를 만난다.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 두 사람, 그러나 페페는 사창가를 빠져 나갈 수 없는 상황.
경찰 슐리만은 가비에게 그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 말을 믿고 가비는 부자 남자와 알제리를 떠나기 위해 배에 오른다.
그녀를 쫓아가려고 결국 사창가를 빠져 나온 페페, 경찰을 따돌렸으나 질투심에 불탄 이네스가 그만 그의 행선지를 경찰에게 알리고 만다.
결국 가비가 탄 배 안에서 체포된 페페는 수갑을 찬 채 그녀를 태운 배가 떠나가는 것을 멀리서 바라보면서 울부짖다가 손목을 그어 자살하고 만다.
비극으로 끝난 셈이다.

나는 페페가 가비와 알제리를 탈출하다가 경찰 총에 맞아 죽을 줄 알았는데 이건 그것보다 훨씬 비극적인 결말이다.
가비는 페페가 그저 싸우다 총맞아 죽은 줄로만 알고 알제리를 떠나고 페페는 사랑의 도주 한 번 못해 보고 결국 여자 때문에 덫에 걸려 경찰에게 체포된 후 허망하게 자살하고 만다.
언제나 페페가 떠날까 봐 두려워 하던 이네스는 그를 사랑하지만 다른 여자에게 가는 것을 차마 허락할 수가 없었다.
질투심에 불타 그가 있는 곳을 밀고하지만 나중에는 경찰을 붙잡고 제발 그가 떠나도록 내버려 두라고 울부짖는다.
이미 때는 늦었으나 사랑하는 남자를 보내지도 못하고 붙잡지도 못하는 가엾은 여자의 슬픈 현실이 잘 드러난다.

제일 인상적인 장면은 파리를 그리워 하던 페페가 우아한 가비를 만나 당신에게서는 지하철 냄새가 난다고 말했던 부분이다.
이렇게 아름답고 우아한 당신을 보면서 왜 하필 지하철 냄새가 떠오르는 걸까?
페페에게 있어 가비는 떠나온 고향, 세련된 도시, 아름다운 파리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가지 못하는 고향, 낭만과 꿈과 예술이 있는 도시, 구질구질한 사창가와는 다른 희망이 있는 바로 그 곳!
페페는 가비를 보면서 이성적으로도 끌렸으나 두고온 고향을, 아름답던 젊은 시절의 꿈을 발견했던 것이다.
반면 함께 살던 이네스는 구질구질 하고 쫓기는 도망자의 삶을 상징한다.
지겹고 더럽고 제발 벗어나고 싶은 현실!
그는 꼭 이네스가 싫어서라기 보다는 이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떠났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페페는 동료의 비난대로 사람 하나 제대로 죽이지 못하는 낭만주의자였는지도 모른다.
비록 경찰은 몇 죽였지만.

알제리의 풍경이 아름답게 그려지고 토속적인 풍경도 가끔 나와 색달랐다.
가비로 나온 프랑스 여인도 무척 아름다웠다.
1936년 영화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세련된 연출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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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영원으로 : 수퍼비트 (dts) - 할인행사
소니픽쳐스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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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TV에서 한 걸 본 기억이 있는데 막연하게 군대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상사가 덮어 준다는 내용으로 기억했다.
그런데 막상 다시 보니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살인 사건도 분명히 일어나고, 워든 중사가 탈영한 프로이를 상부에 보고하지 않는 것도 사실인데, 그게 핵심 줄거리가 아니다.
아마도 어렸을 때 볼 때는 흑백 영화라서 제대로 집중하기 힘들었던 것 같다.
이 영화는 책으로 다시 보고 싶다.
마침 열린책들에서 예쁜 표지로 출간되서 영화를 보기 전부터 읽고 싶던 책 중 하나였다.
영화는 좀 미묘한 분위기인데 줄거리 보다는 매지오나 프로이, 워든 등의 등장인물 캐릭터에 초점을 맞춘 느낌이 든다.
책 해설을 보니 당시 미 육군의 군대 폭력 실상을 고발하는 책이라고 한다.
그만큼 리얼하고 하층 계급의 언어도 가공하지 않고 그대로 글로 옮겨 상당히 논란의 대상이 됐다고 한다.
번역이라는 어쩔 수 없는 한계 때문일까?
대사만 가지고는 도저히 당시 군인들의 상황을 짐작할 수 없다.
다만 이탈리아인이라고 모욕을 주는 뚱보 상사에게 분노할 뿐.
옛날 명배우들을 만나는 즐거움은 있었다.
프랭크 시나트라가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 조연상을 받았다고 하는데 얼굴을 모르니 누굴까 영화 보는 내내 궁금했다.
프로이 역의 몽고메리 클리프트는 얼굴을 아니까 아닐 것이고, 워든 중사는 조연이 아니라 거의 주인공이니 아닐 것 같고, 설마 매지오?
그런데 바로 그 매지오가 프랭크 시나트라였다.
너무 못생기고 왜소해서 처음에는 좀 실망스러웠다.
워든 중사는 버트 랭커스터라고 들어 본 배우인데 꽃미남 스타일의 자그마한 몽고메리 클리프트 보다는 체격도 건장하고 더 남성답게 나온다.
이 사람은 왜 장교가 되는 걸 싫어할까?
영화만 가지고는 솔직히 이해가 잘 안 된다.
누구보다 리더쉽이 뛰어난 사람인데 말이다.
홈즈 중대장이 프로이를 괴롭힌 게 상부에 발각되어 진주만 기습 직전에 불명예 제대하는 장면은 정말 통쾌했다.
이런 점도 한국의 현실에 비춰 볼 때 앞서가는 인권의 한 장면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어찌 됐든 병사를 괴롭힌다 할지라도 최소한 구타는 없었다.
1940년대의 군대가 말이다.

프로이의 나팔 소리는 정말 구슬프고 멋있었다.
특히 매지오가 죽은 후 혼자 연병장에서 나팔을 불 때 가슴이 찡했다.
밑바닥을 전전하는 자신을 받아주고 나팔을 가르쳐 준 군대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프로이!
일본군의 진주만 기습 후 탈영병에 살인범이라는 위험한 신분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한 사람의 힘이라도 보태기 위해 군대로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은, 죽음을 예고하는 마지막 장면이라는 암시를 충분히 줄 만큼 비장하고 비극적이었다.
불안정한 신분의 사병과는 결혼할 수 없다는 애인 엘마가 당신이 하자는대로 하겠다고 울면서 말렸기 때문에 더욱 그것이 마지막임을 알 수 있었다.
어처구니 없이 일본군도 아닌 아군의 총에 첩자로 오인받아 죽고 만 프로이.
정말 끔찍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영창에서 죽고 만 매지오처럼 전쟁과는 별 상관없는 군대 내 부조리의 결정타가 아닐 수 없다.
그러고 보면 인생은 예측할 수 없는 작은 사건 하나가 전체의 삶을 결정하는 방향타가 되곤 한다.
만약 외출하던 날 매지오가 조금만 더 일찍 준비해서 프로이와 함께 나가 버렸다면, 헌병의 눈에 띄어 보초를 서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괜히 도망가서 술집에 있다가 붙잡히지도 않았을 것이고, 또 그랬다면 영창에 갈 일도 없으니 뚱보 중사의 구타를 당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매지오가 죽을 일도 없고, 프로이가 그의 복수를 하기 위해 중사를 죽일 일도 없고, 그랬다면 그토록 사랑하는 군대를 탈영할 일도 없고, 적어도 아군에게 오인받아 죽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최소한 일본군 총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적의 총에 맞아 죽는 것과, 같은 편 군인의 총에 오인 사살되는 건 명예와 삶의 의미 면에서 하늘과 땅 차이가 아닌가?

워든 중사의 연애는 아슬아슬한 면이 많다.
누구보다도 남자답고 군인답게 나오는 그가 왜 상관의 아내를 탐냈을까?
불행한 결혼 생활 때문에 피폐해져 가는 그녀가 안타까웠을까?
이 매력적인 여배우의 이름은 말로만 듣던 데보라 카이다.
짧은 금발이 매혹적이고 몸매도 자그마 하지만 꽤나 글래머다.
두 사람의 해변가 파도 위 키스씬이 유명하다고 하는데 솔직히 흑백이라 그런지 에로틱 하지도 않았고 난 좀 지루했다.
그녀는 매우 바람끼가 다분한 여자로 나온다.
실제로는 정숙한데 바람둥이로 주변에 알려져 그녀를 사모하는 워든에게 주변 사람들이 충고한다.
워든은 정말로 이 여자를 사랑한 것 같은데 장교가 되지 않겠다는 이유로 헤어진다.
대체 왜?
이 부분은 책으로 확인해 봐야겠다.
그러고 보면 영화가 책을 뛰어넘기는 참 힘든 것 같다.
영상으로 이미지를 만들어 내다 보면 인간의 심리 상태를 압축할 수 밖에 없고 어쩔 수 없이 사건 위주로 간다.
그 안에 생략된 함축적 의미들을 제대로 알아채기란 참 어렵다.
그런 면에서 영화 역시 하나의 예술 장르란 생각이 든다.
무려 세 권으로 출간됐던데 꽤 분량이 되는 책인가 보다.
하여튼 원작이 있는 책은 두 가지를 비교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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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의 양지 (흑백) - 초특가판
조지 스티븐스 감독, 몽고메리 클리프트 외 출연 / ING디브이디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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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아름다운 엘리자베스 테일러, 전성기의 모습은 거의 못 봤고 가끔 해외 토픽에 실린 뚱뚱한 할머니만 봤던 터라 흑백으로 본 20대 초반의 모습은 정말 감동 그 자체였다.
흑백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잉그리드 버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천사 같은 순수한 아름다움과는 다른, 굉장히 섹시하고 세련된 美 를 선사한다.
달걀형으로 갸름한 얼굴선, 얼굴이 얼마나 작은지 정말 요즘 유행하는 말로 CD로 가려질 것 같다.
허리도 한 손에 감길 만큼 쏙 들어가고 다리도 겨우 무릎 정도 밖에 안 드러냈지만 충분히 날씬했다.
몽고메리 크리프트도 이 영화에서 처음 봤는데 선이 굵은 듯 하면서도 요즘 말로 꽃미남 분위기도 풍기는, 좀 여려 보이는 미남 배우였다.
흑백이라 더 멋지고 아련하게 보이는 걸까?
2시간 정도 되는 영화인데 전혀 지루하지 않고 사건 전개가 빨라서 좋았다.
그러나 영화의 결론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었다.
이 감독은 남자 주인공 조지가 살의를 품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죄를 짓고 사형을 기꺼이 받아들인다고 설정했는데 나는 절대로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
변호사의 말대로 살인을 상상하는 것과 실제로 저지른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그가 살해 의도를 품고 애인을 강가로 데려가 보트를 태웠으나 소심한 조지는 결국 포기하고 돌아가자고 말한다.
그러나 흥분한 애인 아리스가 조지에게 다가오면서 보트가 뒤집어졌다.
검사는 그가 아리스를 일부러 구하지 않았다고 논박하지만, 일단 자기가 살고 봐야 할 거 아닌가?
둘 다 물에 빠졌는데 혼자 살아 남았다고 살인자로 몰리는 건 공정하지 않다.
변호사의 반박이 정말 일품인데, 단지 살인을 상상했다는 이유만으로 살인자가 될 수 없고, 무엇보다 그 누구도 두 사람의 익수 사고를 보지 못했으며, 검사와 배심원들은 단지 그 장면을 상상하고 있을 뿐이다.
결정적인 증거는 단 한 건도 없는데 정황과 심정에 호소해 전도 유망한 청년을 사형으로 몰고 있다.
이거야 말로 또다른 의미의 대중에 의한 살인이 아닌가?

정말 안타까운 것은 조지가 단지 돈 때문에 안젤라를 선택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청춘의 덫>에서 이종원은 돈 때문에 심은하를 버리고 유호정을 택한다.
차라리 돈 때문에 버림받는 거라면 덜 비참하다.
그런데 조지는 아리스가 부자고 안젤라가 여공이라 할지라도, 역시 아리스 대신 안젤라를 선택했을 것이다.
안젤라는 너무나 우아하고 사랑스럽고 매력적이다.
그는 안젤라를 처음 본 순간 그녀에게 반했지만, 감히 쳐다 볼 생각조차 못했다.
그런데 그 여신같은 안젤라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돈과 명예, 부유함, 학식 이런 모든 것을 다 팽개치고 겨우 열 세 살 때 학교 교육을 마친 이 가엾는 공장 직원에게 말이다.
안젤라가 얼마나 순수하고 착한 아가씨인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심지어 그녀의 가족들마저 조지를 받아들여 둘은 결혼 약속까지 한다.
나중에 조지가 사형수로 몰려 수감되었을 때 조차, 가족들은 유명인사인 안젤라를 사건에 개입시키지 않으려고 애를 쓰지만 직접 감옥까지 찾아가 여전히 당신을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이런 천사같은 아가씨가 어딨을까!

아리스는 모든 면에서 안젤라와 비교된다.
요즘 눈으로 보자면 이 여자를 이해하기 힘들다.
단지 아기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사랑도 없는 남자를 붙잡을 수 있을까?
이 영화가 1950년대 영화라서 남자의 책임을 묻는 게 가능한 건가?
나도 여자지만, 아이 때문에 애정 없는 결혼생활을 한다는 건 받아들이기 힘들다.
더군다나 두 사람은 아직 결혼 전이고 법적인 책임감이나 구속력도 없다.
조지가 좀 더 대범하고 용감한 사람이었다면 아리스에게 또 안젤라에게 모든 것을 솔직하게 털어 놨어야 한다고 본다.
역시 솔직한 게 최선이다.
되어 가는 방향과 현실을 개인의 힘으로 바꾼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니까.

신분 상승의 욕구도 영화 속에서 대놓고 얘기하지는 않지만 미묘하게 잘 드러난다.
다만 <청춘의 덫>에 나오는 이종원처럼 노골적으로 보여주지 않아 훨씬 더 공감이 가고 세련됐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공장에서 수영복 포장하고 기껏해야 영화 보는 게 여가 생활의 전부인 하층민 생활보다는, 여름이면 별장으로 놀러 가고 승마 타고 뱃놀이 하는 상류층 생활을 동경할 것이다.
누구나 말이다.
도덕적인 기준에서 크게 벗어나 무리하게 일을 추진한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이렇게 상류층 아가씨가 알아서 찾아오고 무엇보다 그 자신 역시 돈을 떠나 그녀를 너무나 사랑하니 대체 뭐가 문제가 되겠는가?
이거야 말로 완벽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이 절정의 순간에 결국은 어처구니 없이 파멸하고 만 가엾은 조지 이스트맨.
정말 완벽한 의미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흑백 영화는 아련한 추억을 불러 일으키고 훨씬 더 몽환적인 이상의 세계를 그려낸다는 점에서 매혹적이다.
세월의 흐름을 이겨내고 60여년이 지난 후에도 후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영화의 저력에 다시 한 번 놀라는 바다.
아마도 이 아름다운 여배우는, 영화 속에서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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