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을 품은 야구공
고동현 외 지음 / 영진.com(영진닷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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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이론과 야구현장의 조화가 인상 깊은 책입니다. 머니볼 키즈인 저자들이 쓴 이 책을 계기로 수학을 품은 야구공 키즈들이 생겨났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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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 혼자도 결혼도 아닌, 조립식 가족의 탄생
김하나.황선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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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는 원자와 같다. 물론 혼자 충분히 즐겁게 살 수 있다. 그러다 어느 임계점을 넘어서면 다른 원자와 결합해 분자가 될 수도 있다. 원자가 둘 결합한 분자도 있을 테고, , 넷 또는 열둘이 결합한 분자도 생길 수 있다. 여자와 남자라는 원자 둘의 단단한 결합만이 가족의 기본이던 시대가 가고 있다. 앞으로 무수히 다양한 형태의 '분자 가족'이 태어날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 가족의 분자식은 W2C4쯤 되려나. 여자 둘 고양이 넷, 지금의 분자구조는 매우 안정적이다." 12

 

이들 가족의 분자식을 보면서 한동안 잊고 지냈던, 진정한 가족의 의미에 대해 영감을 준 한 편의 영화가 떠올랐다. 바로 가족의 탄생 Family ties, 2006이라는 영화다. 이 영화에도 다양한 형태의 분자 가족이 등장한다.

 

첫 번째 가족의 분자식은 W3. W3를 세부 분자식으로 표현하면 M2D1 두 명의 엄마, 1명의 딸이다. 두 명의 엄마와 한 명의 딸은 모두 혈연관계가 아니다. 두 엄마는 시누이와 올케 사이이며, 딸은 올케의 전남편의 전 부인의 딸이다. 이들 세 명의 유일한 연결고리인 남동생이자 남편, 아빠이기도 한 사람은 사라졌지만, 이들은 그들만의 안정적 분자 가족식을 완성해냈다.

 

두 번째 가족의 분자식은 W1M1. 얼핏 보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여자와 남자라는 원자 둘의 단단한 결합 즉, 부부처럼 보이지만 이들은 배다른 남매지간이다. 언제나 사랑에 올인하는 엄마를 딸은 이해하지 못한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그녀를 이해하기 시작한 딸은 엄마와 유부남과의 사이에 남겨진 동생을 누나로서 또, 실질적인 엄마로서 끌어안는다.

 

이들 두 분자 가족은 화해와 공존을 주장하면서도 가족 부양에 대한 책임은 회피하려는 가부장적 남성들의 태도로부터 생성되었다. 책임감 없는 남자들로 인해 만들어진 모계 가족은 사회적으로 고착화된 가족의 틀을 파기한다. 나아가 이들은 친족 관계에서 비롯된 전통적인 가족은 아니지만, 혈연으로 얽힌 관계보다 정서적 동질감이 빚어낸 마음의 끈이 더 끈끈할 수 있다는 것, 진정한 가족은 그러한 관계를 통해서 만들어진다는 걸 깨닫게 해주었다.

 

첫 번째 가족의 딸 W와 두 번째 가족의 아들 M은 각자가 속한 가족의 역사 속에서 형성된 인격체인 동시에 원자화된 개인이다. 이들이 만나 서로를 이해하고 갈등을 극복하면서 연인이 되고, 새로운 분자 가족 구성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하는 대목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영화에서는 이들 가족의 탄생을 축복하는 축포와 함께 음악이 깔린다. 곡목은 사랑은 멀리 있지 않아. Love is not far이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는 개별 원자들 즉, W2 (하나, 선우)C4 (하쿠, 티거, 고로, 영배)에 대한 개인적 역사의 기록이자 동시에 이들이 분자가 되어 가는 과정을 다룬 가족의 탄생사이다. 이들은 내게 가족이 성립되려면 자발적으로 상대방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 가부장 제도의 안전망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그 관계를 이어가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는 것, 또한 그것을 극복할 경우 행복이라는 화학반응을 경험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일이란 생기게 마련이고 우리는 그것을 나누어 가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거기서 오는 안정감이야말로 가족의 가장 큰 미덕이 아닐까. 가족의 형태가 어떠하든 간에 말이다. 우리는 서로 기대어, 또 종종 두 배로 기뻐하며 삶의 굴곡을 지날 것이다."149)

 

우리는 누군가의 아들 또는 딸로 세상에 태어난다. 또 가족의 보살핌 아래 성장하고 마침내 사랑하는 누군가를 만나 또 하나의 가정을 이룬다. 가정은 정형화할 수 없는 것이기에 형태와 구성은 제각각이지만 하나의 가정은 저마다의 사연과 추억으로 독자적인 세계를 이룬다. 가족은 더 이상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지는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구성원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는 내게 원자화된 개인이 새로운 형태의 분자 가족을 형성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었다.

 

굴곡진 삶을 견뎌내야 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묵묵히 지켜봐 주고 지지해 줄 가족의 따뜻한 관심과 조언 아닐까? 세월의 일렁임을 힘겹게 견뎌내야 할 때 내가 살아 있고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 묵묵히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 가족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것...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이것 이상의 응원이 있을까? 각자가 가진 삶의 조각들이 가족의 사랑 안에서 하나의 완전한 조각으로 완성되는 것... 이것이 우리가 꿈꾸는 행복 아닐까?

 

"누군가와 같이 살게 되면서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는, 타인이 강력한 주의 환기 요인이라는 사실이다. 과일 깎아 먹으며 나누는 몇 마디 얘기로도 어떤 울적함이나 불안은 나도 모르게 털어버릴 수 있고, 함께 살면 그 현상이 수시로 일어나 부정적 감정에 사로잡힐 겨를이 없어지기도 한다. 집 안 어디엔가 누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얻게 되는 마음의 평화 같은 것도 있다. 아니, 꼭 집 안에 있을 필요도 없다. 누군가 집으로 항상 돌아온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렇다." (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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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인을 기다리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4
J. M.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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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야만인들 없이 우리 어떻게 될 것인가? 그 사람들이 모종의 해결책이었는데." 

- 콘스탄티노스 페트루 카바피스 시전집 中



작가 존 맥스웰 쿳시는 카바피스의 시 <야만을 기다리며>에서 소설의 제목뿐만 아니라 주요 모티브까지 차용했다. 소설의 화자인 ''는 어느 이름 모를 제국의 변경 도시를 통치하는 치안판사다. 평화롭던 이곳에 어느 날 수도의 제3국에서 파견된 졸 대령이 시찰을 나오게 되고, 이들은 국경 너머의 야만인들에 대한 대중의 공포심리를 조장한다. 공포를 이용한 선동에 현혹된 대중들은 야만인의 존재를 두려워하고, 제국에 변고가 생길 때마다 그 배후에 야만인이 있다고 여긴다. 졸 대령은 시민들에게 야만인은 실재하는 적이라고 공표하고 그 증거로 그가 포획된 포로들을 내세우지만, 그들은 물고기를 잡거나 물물교환을 통해 근근이 살아가는 힘없는 부족에 불과할 뿐이다. 하지만 적대감과 공포에 휩싸인 시민들의 눈에 비친 그들은 방화, 약탈, 강간을 일삼는 자신들이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피에 굶주린 적이다.



"야만인들이에요. 그들이 저쪽 둑의 일부를 터서 들판을 물바다로 만들었답니다. 아무도 그들을 본 사람은 없었지만요." (163)



제국주의에는 태생적으로 폭력과 억압, 강제성이 내포되어 있다. 전쟁은 국가를 만들고 국가는 전쟁을 일으키는 반복 속에서 제국주의는 확산되었고, 국가의 경계가 바뀔 때마다 주변부의 인간들은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국가의 틀 안으로 끌려 들어가거나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제국은 내부 결속을 다지고 체제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국경 밖의 타자들을 억압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를 위해 동원되는 것이 공포다. 생존과 안전을 겁박 당하는 공포는 가장 강력한 원초적 감정이기 때문이다. 공포의 대상은 국경 밖에 존재하는 타자 (他者) , 야만인들이다. 제국은 진실의 은폐, 거짓 선동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미지의 공포의 대상을 확대 재생산해낸다.



"제국은 재앙에 대한 상상을 먹고 산다. 말도 안 되는 미친 상상이지만 전염성이 강하다." (220)



많은 시민들이 침묵하거나 제국의 방침에 동조한다. 하지만 그러한 행동이 제국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 야만인들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미래에 대해 걱정하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아요." (250)라는 어느 여인의 외침이 소시민의 목소리에 가깝다. 그렇다면 대중들의 침묵과 동조의 의미는 무엇일까? 대중들이 그러한 선택을 하는 이유는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다. 화해와 공존을 추구하는 시민들은 제국의 배신자로 모함 받기 때문이다. 야만인은 국경 밖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제국의 체제를 위협하는 이들은 국경 안에 있어도 '야만인'으로 규정되고, 이들을 야만인으로 규정한 이들은 자연스레 '문명인'으로 격상된다. 결국 제국에의 동조는 생존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삶의 방편이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상상 속 존재인 야만인들은 거대한 먼지와 자욱한 모래구름을 뚫고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제국주의의 상징인 졸 대령이 있다. 그는 색안경을 쓰고 자신만의 프레임으로 야만인들을 바라보고, 절대 타협할 수 없는 그만의 진실을 찾아 제국주의 체제를 공고히 하고자 한다. 치안판사인 ''도 도시의 통치자로서 제국의 유지에 기여하고 있기 때문에 제국으로 인해 파생되는 부조리에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는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며 마치 먼지 속에서 숨을 쉬는 것 같은 이물감을 느낀다. ''는 경험을 통해, 한 세대에 한 번씩은 꼭 야만인들에 대한 히스테리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19), 문명이 야만인들이 가진 미덕을 타락시키고 그들을 종속적인 존재로 만든다면 문명에 반대하며, 자신은 이러한 입장에서 행정 업무를 수행해왔다고 주장한다. (66) 또한, 그는 역사의 바깥에 살면서 (254), 다양하고 풍요로운 세계가 저 너머에 있다고 스스로에게 일깨워주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음을 밝힘으로써 (141), 제국과 거리를 두기도 한다.



"지금 이순간 군중으로부터 큰 걸음으로 멀어지는 나에게 무엇보다 중요해진 건, 막 일어나려고 하는 잔혹행위에 내가 오염되지 않아야 하며, 또한 가해자들의 무기력한 증오에 물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 제국의 변방 오지에도 마음속에서는 야만인이 아니었던 자가 적어도 한 사람은 있었다는 얘기를 할 수 있도록 하자." (172)



''는 고문 후유증으로 눈이 먼 젊은 야만인 여자에게 마음이 끌린다. 하지만 그가 그녀에게 끌리는 이유는 그녀로부터 얻을 수 있는 희열 때문이 아니라, 그가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끼는 제국주의의 모순과 부조리의 흔적 즉, 그녀의 몸에 난 상처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건 그녀일까, 아니면 그녀의 몸에 배어 있는 역사의 자취들일까?" (108)



''는 그녀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그녀에게 문명의 편안함을 제공한다. 또한, 험난하고 열악한 상황, 개인적인 위험을 무릅쓰고 그녀를 그녀의 부족에게 데려다 주기까지 한다. 그로 인해 ''는 야만인과 내통했다는 누명을 쓰고, 생각지도 못한 치욕까지 겪지만 그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문명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폭력과 상처를 위로하고 용서를 구하는 동시에 진실과 정의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그 나름의 행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편안한 시절에 제국이 스스로에게 얘기하는 거짓말이고, 대령은 거친 바람이 불며 세상이 험악해질 때 제국이 얘기하는 진실이다. 제국의 통치술의 양면이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223쪽)



치안판사는 졸 대령 뿐만 아니라 자신도 제국주의를 이루는 한 부분이며, 체제 유지에 기여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결국 졸 대령은 강압과 폭력을 통해서, 치안판사는 호의와 온정을 통해서 제국주의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제국주의에 공조하는 동시에 모순과 부조리도 인식하고 있는 치안판사는 제국과 문명인으로서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계를 내포한다. 하지만 우리는 치안판사에게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인간성 회복의 희망을 엿볼 수 있다.



"우리는 위대한 생명의 기적이야. 그러나 이 기적적인 몸조차도 어떤 타격을 받으면 회복이 불가능할 수 있다. 이 사람들을 봐라! 사람들이다!" (177)

"당신은 사람들을 그렇게 다룬 다음 어떻게 음식을 먹을 수가 있지? 그게 가능하오?"207쪽)



인간은 의도의 유무를 떠나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해를 끼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다. 서로의 고유한 존재 방식, 상실과 결핍의 기억들은 우리 각자를 섬으로 만들지만, 우리는 삶의 흔적, 아픔을 매개로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 이해하고 위로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서로간에 존재하는 적당한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과 온기로 서로를 알아보고 오직 사람에게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을 공유한다. '사람' 그리고 ''은 결코 이데올로기만으로 재단할 수 없는 것이다.



조지 오웰은 <동물 농장>에서 특정시대만의 산물이 아닌 인간의 본성과 욕망을 근원으로 반복되는 사회구조와 역사에 주목하였고, 이는 <동물농장>이 고전의 반열에 오른 이유이다. <동물농장>의 풍자 대상은 당시의 전체주의, 사회주의, 자본주의뿐만 아니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국민을 착취하는 모든 형태의 독재체제에 확대 적용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동물농장>은 반세기 이전의 과거에 일어난, 이미 확정되어버린 결말을 향해 질주하는 이야기가 아닌 현재진행형의 우리 삶을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야만인을 기다리며>의 작가 존 쿳시는 특정 시대와 공간을 의도적으로 배제함으로써제국주의로 인해 생겨나는 폭력과 억압, 부조리가 특정 시대와 장소에 국한된 게 아니라 과거부터 현재까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보편적인 일임을 암시한다



또한 소설은 치안 판사인 ''가 소설의 화자가 되어 현재시점으로 자기고백적인 내러티브를 전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작가는 이를 통해 시공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면서 지금 현재에도 벌어지고 있는 부조리 앞에서 당신은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이냐고 독자에게 묻는다. 과거는 객관적 진실의 영역이 아니고, 기록의 조작과 기억의 통제를 통해 왜곡이 가능하다. 대중의 기억을 조작하여 과거를 지우거나 왜곡한 사례를 우리는 역사 속에서 수없이 지켜봐 왔다. 작가가 과거가 아닌 현재 시점을 선택한 이유이다



작가의 지적처럼 부조리와 모순은 지금 이 순간에도 발생하고 있다. 정말 그렇지 않은가? 현재 한반도에는 적대적으로 공존하는 하나의 민족, 두 개의 한국이 공존한다. 남북한의 이념적 군사적 대결이 빚어낸 전쟁과 분단, 그 상처와 두려움은 아직까지도 민족의 의식 밑바닥 깊숙이 망령처럼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공포는 대한민국이 직면한 북한이라는 현실적 위험 보다 존재 여부도 확실하지 않는 내부에 존재하는 가상의 적이었다.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 내부에 이념적 배신자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단순한 반공을 넘어 레드 콤플렉스를 만들어냈다. 배신자와 잠재적 협력자로 몰려 자신 뿐 아니라 가족의 생존까지 위협 당할 수 있다는 공포는 양심의 자유와 기본적 권리마저 포기하게 만들었다. 남한이 반공주의 속에서 군사 쿠데타에 이은 군부독재를 겪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가 기다려야하는 '야만'은 상상 속에 존재하는 적이 아니라 머리맡에 내리쬐는 햇살의 온기, 맨발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호숫바닥의 감촉, 서로에게 건네는 따스한 미소 같은 것 아닐까? 진정한 삶의 의미는 문명화의 물결 속에서 사라져가는 원초적 자연에서, 또 관계와 소통으로 대표되는 인간 고유의 속성에서 찾을 수 있는 건 아닐까?



"우리는 타락한 존재다.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은 법을 지키는 것뿐이다. 정의에 대한 기억이 퇴색하지 않도록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문명인으로 남기 위해 타자를 야만인으로 규정해 온 건 아닐까? 타락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원칙 (Principle)을 지키며, 진실과 정의, 인간 고유의 본성을 회복하기 위해 타인을 향해 작지만 흔들림 없는 발걸음을 묵묵히 내딛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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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가 뭐라고 - ‘그깟 공놀이’일 수 없는, 1년 열두 달 즐기는 야구 이야기
김양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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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였을까? 처음으로 삼성라이온즈 어린이팬클럽에 가입했을때부터? 테니스공으로 반대항 야구를 하다가 어두워지면 헐크 이만수의 홈런을 기다리던 그 시절부터? 아니면, 차바퀴 밑에 깔리도록 글러브를 놓아두는게 글러브를 길들이는 최선의 방법이라 굳게 믿었던 그 시절부터? (이 방법은 책에서 저자가 글러브를 길들이는 아마추어적인 방법으로 언급하고 있다, 57쪽)

 

그 시작은 확실하지 않아도 돌이켜보면 야구는 항상 내 삶과 함께였다. 출범 당시 "어린이에겐 꿈을, 젊은이에겐 정열을, 온 국민에겐 건전한 여가선용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던 한국프로야구는 내 삶 속에서 ''이었고, '정열'이었으며, '여가'였다. 어린 시절 야구는 내게 우정의 상징이었고, 학창시절에는 안식처이자 탈출구였다. 사회에 나가면서는 때로는 기쁨이었고, 때로는 위안이었다. 마치 "Always B with you (야구는 늘 여러분과 함께 합니다.)"라는 현재 한국프로야구의 캐치프레이즈처럼 내 삶 속에는 언제나 야구가 있었다.

 

"야구를 향한 나의 열정은 스피드건에 찍히지 않는다."

(You can't measure heart with a radar gun.) 

 

메이저리그 통산 4,413이닝과 305승을 달성하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투수 톰 글래빈이 남긴 유명한 야구명언이다. 또한 이는 연애시절 같이 야구를 보곤 했던 와이프에게 프로포즈하면서 인용한 문구이기도 하다. 물론 톰 글래빈처럼 야구를 향한 열정에 대한 어필은 아니었고, 앞으로 함께 할 삶에서도 열정을 잊지 않고 살아가겠다는 다소 닭살성 멘트를 하기 위해 위대한 야구명언을 희생시켰던것 같다. 이렇게 삶속에 야구가 체화된 내가 본 도서 <야구가 뭐라고>를 만나게 된 건 단순한 우연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야구가 뭐라고>의 저자 김양희는 20년 경력의 베테랑 야구전문기자다. 저자는 20여 년간 야구를 취재하면서 쌓은 인맥과 내공을 바탕으로 야구라는 재미있는 스포츠를 널리 알리기 위해 야구안내서인 본 책 <야구가 뭐라고>를 저술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하면 야구의 시즌 준비기간인 1~3월부터 4~7월의 정규시즌, 8~10월의 포스트 시즌, 시즌종료후의 11~12월에 이르기까지 야구의 한 시즌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1년이라는 사이클 전체를 조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시즌뿐만 아니라 시즌 전후의 이야기까지 다루기 때문에 선수는 물론 감독, 심판, 트레이너, 매니저, 프론트 등 야구의 한 시즌이 존재하기 위해 기여하는 관련된 이해관계들의 다양한 이야기까지 담고 있는 것도 여타의 야구안내서와 차별화되는 점이다. 저자는 스프링캠프, 시범경기에서 벌어지는 이색훈련과 유명선수들의 이색 건강관리법을 소개하기도 하고, 왼손잡이 포수가 없는 이유와 슬라이더가 왜 위력적인 구종인지에 대해 과학적인 분석으로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또한 시즌 오프 후 스토브리그에서 벌어지는 외국인 선수 스카우트 비화와 FA 계약의 내막, 선수들의 비자금과 재테크 등까지 다루고 있다. 심지어 심판의 가방 속까지 들여다본다. 야구를 보면서 평소에 궁금하게 생각했던 프로야구 심판의 가방 속에는 진통제, 파스, 프로폴리스, 손톱깍이 등이 들어 있었다. 놀랐던건 심판실의 꽁꽁 얼린 캔커피의 용도이다. 얼린 캔커피의 용도는 무엇일까?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책을 보고 확인하시길...

 

 

 

 

책은 비단 한국프로야구만이 아닌 메이저리그의 선수, 백넘버, 팀명, 구장에 얽힌 비화 그리고 야구의 룰과 상식, 역사에 대해서도 다룬다. 특히 흥미로웠던 내용은 야구의 역사에 대한 부분이었다. 특히 삼진과 볼넷, 투수와 타자 사이의 거리 등 현대의 야구규칙이 확정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볼 수 있어 좋았다. 18.44m라는 투수판과 홈플레이트 사이의 거리는 처음부터 이 거리가 아니었다. 1881년 이전에는 13.71m였고, 1890년에는 15.24m 였으며, 지금 거리는 1893년에 정해졌다. 또한, 볼넷도 처음에는 볼이 9개가 되어야 타격 행위 없이 1루로 걸어 나갈 수 있었다가 1880 8, 1884 6개였고, 현재와 같이 볼넷이 된 건 1889년부터였다. 심지어 스트라이크 아웃도 1874년에는 스트라이크가 4개가 필요했다. 이른바 삼진이 아닌 사진아웃인 셈이다. 사진아웃이 삼진아웃이 된 건 1888년부터 라고 한다. 이 밖에도 지명타자 제도의 도입, 경기당 선수 교체수의 변화, 타자들의 헬멧 착용이 의무화된 시기 등 야구를 보면서도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을 알게 된 기쁨이 쏠쏠했다.

 

자칭타칭 야구덕후 출신으로 야구 베테랑 기자가 되어 덕업일치까지 이룬 저자는 "야구는 내게 스며들었고, 어느 순간 삶의 일부분이 됐다." (10) 고 고백한다. 누군가에겐 '그깟 공놀이'에 불과한 야구가 또 다른 누군가에겐 '그깟 공놀이'일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네 사는 모습이 야구와 비슷해서 아닐까? 우리가 야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It ain't over till It's over.)" 라는 전설적 포수 요기 베라의 명언처럼 땀은 결코 배반하지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기반으로 수많은 위기를 극복하고 얼마 되지 않은 기회를 살려야 하는 야구의 모습이 우리 인생의 축소판과 같아서 일지도 모른다. 야구팬뿐만 아니라 이제 막 야구에 흥미를 느끼고 알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야구는 9회말 투아웃 부터라는 야구 격언처럼 오늘 하루도 열심히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보너스로 책에 등장하는 한국 프로야구 마니아임을 인증 퀴즈를 소개한다. (114쪽)

문제 : 다음은 누구의 별명일까?

우리차 로맥아더 금강불괴 람보르미니 유희왕 눕동 딸기 동미니칸 백쇼 니느님 왕거지 희나리 무한준 박동원 마그넷정

10명 이상 맞혔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저자가 인정하는 프로야구 '마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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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와 밤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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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기욤 뮈소란 작가를 알게된 계기는 "구해줘 (2006)" 접하면서였다. "구해줘" 출간 즉시 주목 받기 시작하여 장장 200 동안 아마존 프랑스의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한 그의 대표작이다로맨스와 미스터리의 절묘한조합으로 스릴과 서스펜스감동까지 느낄  있었던 인상적인 소설이었다이것이 계기가 되어 나는 기욤 뮈소란 작가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지난 3년간 겨울에 출간된 "지금  순간 (2015)", "브루클린의 소녀(2016)", "파리의 아파트 (2017)"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느낌이었다.

 

 

  

 겨울도 마찬가지로 그의 신간소설 출간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내용뿐만 아니라 소설의 배경까지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지금 같은 환절기에 어울리는  소설 "아가씨와  (2018)" 만날  있어 정말 기뻤다.("아가씨와 밤" 1992년의 겨울과 2017년의 봄이 교차되면서 전개된다. 나는 책의 뒷표지에 인용되어 있는 "우리 모두가 기다리던 스릴러 소설의 결말을 미리 귀띔해주는  범죄행위나 다름없다." AFP 추천평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따라서 리뷰에서는 추후 소설을 접하게  독자들에게 범죄행위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스토리에 대한 스포일러를 최대한 배제하고소설을 읽고  후의 소회 위주로 서술하고자 한다.

 

 

 

사건은 1992 겨울프랑스 코트다쥐르의 생텍쥐페리고교에서 발생한다갑자기 몰아닥친 눈사태로 캠퍼스가 마비되던 모든 남학생들의 선망이 대상이었던 빙카 로크웰이 철학교사 알렉시와 함께 사라졌고연인사이였던 그들이 파리로 사랑의 도피를 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25년의 세월이 지난 2017 생텍쥐페리고교는 개교 50주년을 맞이하여 오래된 체육관을 허물고 첨단시설을 갖춘 현대식 다목적 건물의 착공식을 계획하고 행사에 졸업생과 교직원을 초대한다. 1992 졸업 동기인 토마막심파니는 각자 25 동안 숨겨온 진실이 드러날 위기에서 사건의 전모를 아는 누군가의 복수 메시지를 받고  교정에 모이게 된다겉으로는 무심한  지냈지만 그들은 진실을 감추기 위해 무려 25 동안 다모클레스의 검을 머리 위에 매달고 지내왔다.

 

"우리는 인생의 퍼즐 조각들을 가지고 있다하지만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퍼즐 조각을 맞춰 가든 항상 빈자리가 남아있게 마련이다마치 우리가 이름 붙일  없는 어떤 세계가 있듯이."제프리 유제니데스 – (360쪽)

 

'미국 최고의 젊은 소설가'라는 찬사와 함께 등장하여 퓰리처상까지 수상한 작가 제프리 유제니데스는 삶이란 퍼즐을 맞춰나가다 보면 누구나 부딪치게 되는우리가 알지 못하고 이해할수도 없는 미지의 세계로 인한 공백과 한계삶의 조각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소설을 읽으며 어쩌면 소설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제프리 유제니데스의  말이  소설 '아가씨와 밤'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핵심적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주인공 토마는 소설 속에서 "누구나  개의 삶을 가지고 있다공적인 사적인  그리고 비밀스러운 ."이라는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말을 인용한다. (157뿐만 아니라 등장인물들은 고통과 환희모순으로 점철된 인생의 복잡성과 이해하기 어렵고 상반되는 욕망으로 얽혀 있는 삶에 대해서 자주 언급한다

 

"넌 소설을 쓰는 작가라서 그런지  허구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세상은 네가 생각하듯 그리 말랑말랑하고 로맨틱한 곳이 아니야삶의 현장은 어디나 전쟁터이고기본적으로 폭력적일 수밖에 없어." (183)

 

"너도 이제 독해져라인생은 전쟁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책을 많이 읽었으니까 로제 마르탱  가르가 ‘실존은  자체가 전투이다산다는  결국 지속적인 승리의 축적이다.’라고  글을 읽어봤을 거야." (185)

 

"문명이란 불타는 혼돈 위를 살짝 덮고 있는 얇은 막에 불과해산다는  어차피 누구에게나 전쟁이라는  잊지마" (292)

 

'삶은 전쟁'이라는 소설  등장인물의 표현처럼 우리의 삶은 소중하지만 때로는 무의미하고 잔인한 것이기도 하다삶은 불확실성의 영역에 놓여 있는 것이고인간을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삶을 완전히 통제한다는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저마다가 내포한 진실을 감추기 위해 노력해온 사건의 당사자들인 토마막심파니 조차 25년의 세월이 지날 때까지도 사건의 전체 내막을 알지 못한다상반되는 욕망들은 각자의 비밀스러운 삶과 나아가 이해할  없는 미지의 세계를 만들어내지만때론 우리는 용기를 가지고 희생이라는 옵션을 선택하여 저마다가 가진 가치를 지키기도 한다혼돈 속에서 창조주의 섭리에 따라 살아갈 수밖에없는 불완전한 인간들의 진짜 삶의 의미는 여기서 찾을  있지 않을까당신은 지금 어느 곳에서 어떤 삶의 조각을 맞추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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