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나 상실의 경험을 겪거나 현실에서 결핍을 느끼며 살아간다. 민진 작가의 <아이가 남긴 작은 수첩>은 소중한 아이를 잃은 부부의 이야기다. 소설 속에서 부부는 아이와 함께 했던 추억과 공유했던 물건들을 기억하며, 평소에는 무심히 지나쳤던 사소한 물건과 평범한 사물과 풍경이 기적이고 사건이었음을 깨닫는다. 따지고 보면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하루가 모여 한해가 되고그런 한해, 한해가 쌓여서 만들어지는 인생은 누구에게나 값지고 귀한 것일 것이다. 그런 하루 하루가 존재하였기에 쓸모와 필요만으로 이루어진 '기능적 생활'을 벗어나 여유를 풍경으로 두는 ''이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실' '결핍'의 경험은 그들의 삶의 온도를 변화시킨다이러한 온도 변화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공간 감각을 둔화시킨다눈앞에서 아름답게 펄럭이는 '현재'가 좋았던 과거 같기도 다가올 미래 같기도 하지만 어찌 됐든 현재의 내 것 같지는 않은 기분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그들은 한여름에도 계절에 걸맞는 싱그러움을 느끼지 못하고 겨울의 냉혹함만을 느끼며 살아간다. 세상에 남겨진 이들은 긍정적 태도 보다는 현실을 바라보는 냉혹한 시선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남겨진 이들은 결코 없던 일이 될 수 없고잊을 수도 없는 일들을 품에 안은채 고통속에서 삶을 견뎌내야 하기 때문이다.



삶을 살아가면서 상실과 결핍을 대면하게 될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들은 저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인간이란 각자 최선을 다함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잘잘못 때문이 아닌 서로의 고유한 존재 방식과 중력 때문에 헤어짐을 겪게 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그리고 극복을 위해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이해'이다이해는 자신이 처하게 된 상황에 대한 이해가 될 수도 있고이미 사건을 겪었거나 체험중인 타인에 대한 이해가 될 수도 있다. '이해'란 자리에 누울 때 벗는 모자처럼 피곤하면 제일 먼저 집어던지게 되는 품이 드는 일이다그렇기 때문에 이해는 몰이해의 꽃매의 형태로잘 포장된 예쁜 합리성의 형태로 변질되어 나타나기도 한다또한 예의를 생략하거나 걱정을 가장한 흥미의 형태로 다기오기도 한다. ‘이해란 타인과의 온도를 맞춰가는 과정이며 이는 상대적 성숙의 시간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상실과 결핍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줄수 있는 것은 타인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하는 사람의 '온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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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르타 작가의 <캔 따는 소리>는 할로윈을 목전에 앞두고 있는 지금 읽기에 딱 적합한 단편이다. 켈트 족들은 한 해를 마무리할때가 되면 음식을 마련해 죽음의 신에게 제의를 올림으로써 죽은 이들의 혼을 달래고 악령을 쫓았다고 한다. 이때 악령들이 해를 끼칠까 두려워하여 자신을 같은 악령으로 착각하도록 기괴한 모습으로 꾸미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것이 핼러윈 분장 문화의 기원이 되었다.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할로윈은 미국에서 스코틀랜드 ·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치르는 소규모 지역 축제였지만 아일랜드인들이 대규모로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할로윈이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지금은 미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인들이 즐기는 축제가 되었다.



따지고 보면 할로윈은 켈트인들이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의 평온을 빌고 가난한 이들에게 음식을 베풀었던 것처럼 나보다 이웃과 주위를 돌아보는 좋은 의미를 담은 행사다. 현재에도 이들은 가까운 이웃을 찾아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전 세계의 아이들을 위해 식품과 의료품을 지원하면서 뜻깊은 날을 보내는 이들도 많다. 이는 지역사회의 활성화에도 긍정적 영향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할로윈의 순기능이라 생각한다. 또한 할로윈에는 평소에 부정적 이미지로 인식되는 죽음과 불운, 유령, 박쥐들 마저 즐거움의 상징이 되고, 남녀노소 모두가 일상에서 벗어나 즐거운 마음으로 축제를 즐길 수 있다.



하지만 할로윈은 크리스마스와 마찬가지로 그 기원와 본래의 의미를 상실한 채 너무 상업적으로 변질됐다는 비판도 상존한다. 행사의 본래의 의미가 퇴색하고 단순히 무섭고 기괴한 복장을 하고서 먹고, 마시고, 즐기는 행사로만 소비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오메르타 작가는 할로윈의 이러한 측면을 언급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성상품화와 성차별적인 인식들,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는 성범죄들을 <캔 따는 소리>에서 풍자하고 있다. 오메르타 작가는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과 사고들을 바탕으로 소설의 주요 모티브로 활용하고 있는데, 그러한 부분들이<캔 따는 소리>에도 ,여실히 드러나 있다. 작가가 '이 글은 허구이며, 연상되는 이름은 우연입니다.' 라고 밝히곤 있지만 소설에서 등장하는 아이돌의 행태와 할로윈 한정음료의 효과 등에서 연상되는 사건과 인물이 대표적이다. 할로윈과 관련하여 여러가지 생각해볼 것이 많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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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고흔 작가의 <공기의 기억>은 에드가와 란포의 <지붕 속 산책자>와 전체적인 소설의 구도가 비슷한 점이 있다. <지붕 속 산책자>는 에도가와 란포의 몽상가적인 면을 엿볼 수 있는 초기 대표작이다. <지붕 속 산책자>는 지루하고 무의미하게만 느껴지는 현실의 삶 속에서 회의하고 방황하는 염세적 인물이 우연히 발견하게 된 하숙집 지붕으로 통하는 통로를 발견하게 되면서 밤의 세계와 범죄의 유혹에 눈을 뜨게 된다는 이야기다



란포는 현실은 꿈밤의 꿈이야말로 진실이라는 말을 좌우명처럼 자주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에도가와 란포가 일본 추리소설의 대부가 되고 그의 소설들이 추리소설의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나의 관심은 오직 진실을 아는 것이라는 아케치 고고로의 말처럼 이상과 현실 속에서 진실을 찾아 방황하는 범시대적인 고뇌를 다뤘기 때문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반듯이 누운 상태에서 부스스 눈을 떴다. 불빛... 벽 모서리에서 네 가닥의 형광등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몸을 일으켜 벽을 살펴보았다. 신기하게도 그 불빛의 모양은 보안을 위한 레이저빔과도 같았다. 그 때 나는 추측할 수 있었다. 원래 이 벽은 사람이 드나들었던 여닫이문이었지만 공간을 나누기 위해 벽지로 가려져 있다는 것을. 따라서 불빛이 투과되어 나오는 틈은 경첩과 문손잡이를 떼어낸 흔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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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스케
모토 히데야스 지음, 한경식 옮김 / 안나푸르나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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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레코드 컬렉터라니...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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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응 작가의 <고양이의 비밀>은 제목처럼 고양이가 남긴 암호를 추리하는 코지 미스터리물이다. <고양이의 비밀>에는 애묘인이라면 공감 가능한 에피소드들이 담겨 있다고양이는 반려동물로서 인간과 한가족으로 살아가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얇은 막 같은 것이 한 겹 끼어 있는 거리감이 느껴질 때가 있다기분 내키면 응석을 부리긴 해도 마치 ‘나는 고양이당신들은 인간’ 이라는 선이 그어져 있는 듯한 느낌이다인간과 고양이는 함께 지내며 서로가 느끼는 것생각하는 것을 구석구석까지 생생히 볼 수 있지만 인간과 마찬가지로 고양이에게도 고양이만의 삶이 있고응분의 생각이 있고기쁨이 있고괴로움이 있을 것이다그러한 한계를 자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간과 동물의 경계와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 마음을 교류하는 어느 기묘한 체험의 순간을 맞이하곤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장수 고양이의 비밀>에서 이러한 순간들을 언급하고 있다이는 <고양이의 비밀>에 등장하는 에피소드와도 유사하다어느날 하루키가 고양이와 베개를 나란히 하고 자고 있었는데 (수사학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배게를 나란히 놓고 누워서뮤즈는 사람처럼 베개를 베고 자는 버릇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게 그런 말을 해봤자…”하는 작은 여자 목소리가 귓전에 또렷이 들렸다고 한다영문을 알 수 없어 뮤즈의 어깨를 흔들어 깨웠더니장수 고양이 뮤즈 ‘꿍얼꿍얼뭐야귀찮게’ 하면서토라진 아내 같은 태도로 일어나 이불에서 나와 고개를 저으면서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한다마치 고양이가 자신의 중요한 비밀을 무심코 사람한테 들켰고그것을 대충 얼버무리려고하는 듯이… 자면서 인간의 언어로 잠꼬대를 하는 고양이라니

 

뮤즈는 같이 살기에 매우 이상적인 고양이였다예쁘고영리하고튼튼하고숱한 수수께끼를 품고 있었다우리와 고양이 사이에는 늘 가벼운 긴장감이 흘렀고그건 그것대로 또 상당히 안정적이었다그런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고양이는 흔치 않다.” (장수고양이의 비밀, p. 145)

 

하루키는 뮤즈를 몇백 마리에 한 마리 있을 귀중한 고양이로또 그런 고양이를 만난 것은 인생 최고의 행운 중 하나로 생각하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다하루키는 <장수 고양이의 비밀>을 세상을 떠난 장수 고양이에게 건네는 소박한 마지막 인사임을 책의 후기를 통해 밝히고 있는데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으며 지금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뮤즈가 하루키를 생각하는 마음도 동일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루키의 에세이 <장수 고양이의 비밀>이 인간이 고양이를 생각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면 윤지응 작가의 <고양이의 비밀>은 고양이가 인간에게 전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인생에 있어 결과로서의 형태는 분명 중요하다하지만우리가 살아가는데 정말로 보탬이 되는 것은 좀더 다른 것 아닐까인간들끼리도 함께 지내면서도 서로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데 종과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 고양이와 마음을 공유하는 어떤 순간을 체험한다는 것… 그 순간 순간들을 공유했던 인간에게 다음 생을 기약하며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것… <고양이의 비밀>의 매력은 읽고 나면 우리가 살아가는데 정말로 보탬이 되는 무엇인가를 어렴풋이 알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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