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3
스즈키 루리카 지음, 이소담 옮김 / 놀(다산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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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은 초등학교 6학년생 소녀 다나카 하나미의 이야기를 다룬 연작 단편소설집이다. 사실 처음에는 이 책을 선택하는 것이 좀 망설여졌었다. 모녀간의 따스한 감정이 묻어나는 제목과 세상의 모든 엄마와 딸을 위한 감동 소설이라는 홍보문구만 봤을 때는 딸아이를 가진 아빠로서 자연스레 관심이 갔었다. 하지만 일본 문학의 미래를 책임질 작가’, ‘가능성이 끝이 없는 작가’, ‘최연소 천재 작가등 화려한 수식어로 대변되는 작가가 14세의 중학생이고, 소설도 초등학생인 화자 중심으로 전개된다는 정보를 접했을 때 약간의 의구심이 들었다. 내가 과연 작가의 시선과 호흡을 따라서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온전히 공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마음을 바꿔 책을 선택한 건 추천사 덕분이었다. ‘성숙한 중학생이 아닌 작가의 눈을 지닌 한 명의 표현자’, ‘작가라는 일에 나이는 상관없다. 얼마나 매력적인 이야기를 쓰는지가 전부다.’ 등 기성 작가들의 추천사를 보며 작가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던 것이다.






사실 성인 작가가 아이의 시선을 통해 인생에 대한 체험적 진리를 표현한 책은 기존에도 존재했다. 하지만, “새로운 세대의 생생한 필치라는 문예지 다빈치의 표현처럼 어린 작가의 세상을 바라보는 맑고 투명한 시선으로 보면서, 또 힘든 일상 속에서 긍정적인 자세로 원망보다는 위로와 희망을 건네는 것을 보면서, 처음에 가졌던 의구심은 어느새 사라지고, 잔잔한 감동이 밀려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가장 인상 깊게 다가온 것은 5편의 단편 중 마지막 단편 <안녕, 다나카>를 제외하고 모든 소설의 화자로 등장하는 하나미의 캐릭터였다.



엄마는 꽃도 있고 열매도 있는 명()과 실()을 겸비한 인생을 살라는 바람을 담아 내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그래서 하나미다. 그런데 이건 남이 묻거나 학교에서 이름의 뜻을 조사해 오라는 숙제를 냈을 때를 위한 공식적인 에피소드이고, 사실은 죽은 후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겠는가라는 말에서 따왔다고 한다. (P. 71)



하나미라는 이름에는 그늘이 드리워진 엄마의 과거와 딸은 자신보다 나은 삶을 살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 동시에 담겨 있다. 엄마는 죽은 후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겠는가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는 하나미에게 어쨌든 살아 있으라는 소리야라고 대답한다 (P. 72)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의미의 이 말 속에서 최악의 상황에서도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꿋꿋이 살아나가고자 하는 엄마의 삶에 대한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엄마의 삶에 대한 자세가 가장 잘 표현된 대목은 다음과 같다.



슬플 때는 배가 고프면 더 슬퍼져. 괴로워지지. 그럴 때는 밥을 먹어. 혹시 죽어버리고 싶을 만큼 슬픈 일이 생기면 일단 밥을 먹으렴. 한 끼를 먹었으면 그 한 끼만큼 살아. 또 배가 고파지면 또 한 끼를 먹고 그 한 끼 만큼 사는 거야. 그렇게 어떻게든 견디면서 삶을 이어가는 거야. (P. 266)



부모나 형제자매도 친척과 남편도 없이 가난하고 고단한 삶을 외롭게 버티며 살아온 엄마는 어떻게 이런 삶의 태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일까? 이러한 엄마의 삶의 태도는 딸 하나미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아무리 절망적이고 최악의 상황이라도 그 사람 나름의 희망이 있으니까 살아가는 것 아닐까? 비록 바늘 끝처럼 보잘것없는 희망이라도, 희미한 빛이라도, 환상이라도, 그게 있으면 어떻게든 매달려서 살 수 있어. (P. 131)



하나미는 자신 보다 확연히 나은 처지의 친구를 보며 너무나 먼, 완전히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 질투의 대상도 아니라며 의연한 모습을 보이고,P.194) 아이스크림 막대기의 당첨이라는 문구 그 이상의 행운은 찾아오지 않는 자신의 처지를 자조하면서도 뭐 없는 것 보단 낫지.‘ 라며 툭툭 털고 일어나는 긍정적 삶의 자세를 가졌다. (P. 140)



모녀가 직면한 현실은 결코 달콤하지 않고, 한 끼에 담긴 에너지로 그 다음의 한 끼까지 견뎌야할 정도로 절박하다. 이러한 절박한 현실에 굴하지 않고 희망을 말하며 서로를 향해 손을 뻗는 모녀의 모습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특히 어린 하나미가 주위상황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어린 시절에서 흐뭇함이나 향수를 찾아볼 수 없는 엄마의 삶을 안쓰러워하는 모습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P. 82) 빨리 돈을 버는 어른이 되어 엄마를 놀이공원에 데리고 가고, 그때가 오면 오늘을 떠올리고 웃을 것이라고 다짐을 하는 소녀는 대체 어떤 마음이었을까



어쩜, 꽃도 있네.” 엄마가 말해서 고개를 들자, 그곳에는 복숭아꽃과 열매가 있었다. 꽃도 열매도 있다. 엄마.” 나는 빛을 잡으려는 듯이 가지로 손을 뻗었다. (P. 167)



그리스어 '없는(ou-)''장소(toppos)'라는 두 말을 결합하여 만든 용어인 유토피아 (Utopia)’ 처럼 대부분의 이상향들은 현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곳이거나 천국처럼 죽어서나 도달할 수 있는 곳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하나미가 꿈꾸는 이상향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친근한 모습이다. 그곳은 각종 금은보화가 넘실거리는 엘도라도도 축복 받은 이들만 살 수 있는 엘리시움도 아니다. 하나미가 꿈꾸는 이상향은 꽃잎이 아름답게 흩날리는 복숭아나무 아래서 엄마와 함께 행복하게 웃을 수 있는 소탈하고 평범한 곳이다. 지극히 현실적임에도 이상향이라고 부를수 밖에 없는 상황이 무겁고 슬프게 다가온다.






용서하거나 용서하지 않거나 그런 게 어디 있어. 엄마는 앞으로도 내 엄마인걸.P. 279



복숭아꽃의 꽃말은 희망용서이다. 하나미가 꽃도 열매도, 명분뿐만 아니라 실리도 함께 있는 그 곳에 엄마와 함께 꼭 도달했으면 한다. 그곳에서 손을 뻗어 희망의 빛을 꼭 움켜쥐었으면 좋겠다.



책을 덮고 잠시 표지를 바라보았다. 미소 띤 얼굴로 딸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엄마와 이러한 엄마를 향해 손을 내미는 딸 하나미가 있었다. 표지를 벗겨 뒤집으니 새로운 표지가 나왔다. 복숭아 열매와 꽃 사이에서 하나미와 엄마가 각각 케이크와 홍차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소설에서 겐토가 하나미에게 선물한 케이크와 엄마가 게키야스당에서 저렴하게 구입한 홍차이리라. 그들만의 이상향 속에서 행복하게 웃고 있는 모녀를 보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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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 런던에서 아테네까지, 셰익스피어의 450년 자취를 찾아 클래식 클라우드 1
황광수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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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클라우드 (Classic Cloud) 시리즈는 내 인생의 거장을 만나는 특별한 여행이라는 컨셉을 가지고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100인이 문학, 미술, 철학, 음악 등 다양한 분야를 대표하는 거장들의 삶의 흔적을 찾아 떠난 여행을 정리한 기행집이다. 거장들이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았는지를 면밀하게 되돌아보는 것이기 때문에 시리즈의 기획에서 개발까지 5년이 넘게 걸렸다고 한다. 거장의 삶과 작품에 대해 전문적 식견을 쌓은 평론가, 작가, 학자들의 안내를 받으며 한 거장의 삶을 깊이 파고드는 '책으로 하는 여행'이라는 컨셉은 거장의 작품에 매료된 사람들은 물론 문학기행 등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들과 반대로 여러 가지 사유로 인해 현재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없는 독자들에게까지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내가 클래식 클라우드를 처음 접하게 된 건 2018년 서울국제도서전 아르테 (arte) 부스에 전시된 시리즈를 보면서였다. 197월 현재는 문학 4(1 세익스피어, 4 페소아, 5 헤밍웨이, 10 가와바타 야스나리), 철학 2(2 니체, 9 아리스토텔레스), 미술 2(3 클림트, 8 뭉크), 음악 2(5 푸치니, 7 모차르트) 등 시리즈 중 10권이 출간 완료되었지만, 그 당시 전시된 도서는 시리즈 중 1, 2, 3권인 셰익스피어, 니체, 클림트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 나의 선택은 클래식 클라우드의 첫 시작을 알리는 1권 셰익스피어였다. 셰익스피어는 인생의 거장을 논하는 시리즈의 상징적인 1권을 차지하는 데 부족함이 없어 보였고, 또한 향후 시리즈의 성공을 가늠해보는데 있어서도 적합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한 시대가 아니라, 모든 시대를 위해 존재했다. 이것이 셰익스피어를 세계 최고의 작가로 올려놓은 최초의 찬사이다. 그 시대의 모든 작품 목록 가운데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은 6분의 1에 지나지 않지만,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거의 다 살아남았다. 그럴 만큼 그는 당대에 이미 최고의 작가로 대접받았다. 그의 생애에서 가장 놀라운 사실은 상업적 압박이 오히려 그의 재능을 해방시켰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에도 인도와도 바꿀 수 없는 영국의 대문호였지만, “To be or Not to be ? That is the question.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등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햄릿의 대사 등 문학으로서, 또 영화와 연극으로서 현시대에도 영문학의 가장 위대한 작가이자 세계 최고의 극작가로 그는 여전히 건재한다. 하지만 여전히 눈부신 그의 작품에 비해 그가 살았던 시대에서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의외로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은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엄청난 유명세에 어울리지 않게 그가 과연 실존 인물이었는지 논란이 계속되는 것은 작품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독자들은 작가에 대한 정보를 갈급하지만, 그에 대한 사료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이라 생각한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된다. 1'영국, 소란스러운 나라의 영광스러운 이야기'에서는 셰익스피어의 생가가 있는 영국 스트랫퍼드를 중심으로 그의 생애가 소개된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그의 삶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400여 년 동안 수많은 셰익스피어 전기가 나왔고, 지금도 나오고 있지만, 전문가들이 “5%의 사실과 95%의 억측으로 이루어졌다라고 말할 정도다. 그의 삶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건 빈약한 몇 가지 사실에 불과하다. 영국의 작은 마을 스트랫퍼드에서 태어나 앤 해서웨이와 가정을 꾸렸고, 이후 가족을 떠나 런던으로 가서 배우 겸 작가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 그리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특히 그의 청년 시절인 1585년부터 1592년 사이 7~8년간은 전혀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완전한 공백기로 불린다. 저자는 셰익스피어와 관련된 여러 설을 모두 부정하며 사실 기반으로 그의 삶을 소개하고 있다. 1부에 거론된 작품으로는 <리어왕>, <헨리 6>, <멕베스> 등이 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 저자의 작품에 대한 분석이었다. 리어왕이 나이가 들어 왕위에서 물러날 결심을 하면서 세 공주의 효심을 테스트한다는 <리어왕> 스토리의 이면에는 당시 브리튼에 존재했던 은퇴 노인들의 문제가 있었다는 분석이 대표적이다.

  


당시의 브리튼에서는 은퇴한 노인을 법적으로 보호하지 않았다. 그래서 노인들은 굴욕에 직면하고 많은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리어가 딸들의 사랑을 시험한 데에는 그런 노년에 대한 불안도 한 가닥 스며 있었을 것이다. 그는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노년에 대비했지만 피하고 싶었던 일들은 어김없이 닥쳐온다.”

  


2'파리에서 빈까지, 영원과 사랑을 향한 발걸음'에는 프랑스에서부터 오스트리아에 이르기까지 셰익스피어의 대표작인 <햄릿> 등 셰익스피어의 삶의 행적이 이어지는 각각의 장소에서 탄생한 그의 작품과 함께 여행지에 대한 저자의 감상이 잘 나타나 있다. 저자는 프랑스로 가는 길에서 <헨리 5>, 파리에서는 <끝이 좋으면 다 좋다>의 주인공 헬렌을 떠올린다. 몽파르나스 묘지에서는 햄릿에 대해 생각하고, 덴마크로 이어지는 여행길에서 햄릿의 뒤를 쫓아 그의 왕궁이 있던 덴마크 크론보르 성으로 향한다. 독일 바이마르에 있는 괴테 하우스에서는 괴테가 쓴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를 언급하며, 괴테는 셰익스피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소개하고 있다.

  


3'지중해, 끝없는 이야기의 바다'에선 이탈리아, 그리스 등 유럽 각국이 배경이 된 작품들이 등장한다. 여행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베니스에서 <베니스의 상인>의 샤일록과 질투에 눈이 멀어 사랑하는 아내를 죽인 <오셀로>, 베로나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의 불꽃 같은 사랑을, 파도바에서는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떠올릴 수 있다. 저자는 로마에서 <줄리어스 시저><페리클레스>를 추억하고, 그리스로 이동해서 <트로일러스와 크레시다>, <실수 연발>, <한여름밤의 꿈>, <아테네의 티몬>을 소개한다.

  


클래식 클라우드의 <셰익스피어>를 읽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처음으로 보낸 여름휴가가 생각났다. 첫 여름휴가로 내가 구상했던 건 학부 시절 감명 깊게 읽었던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벌교와 순천 일대를 여행하는 남도 문학기행이었다. 지금은 태백산맥문학관을 필두로 소설의 주요 무대에 해당하는 장소들이 문학기행길로 잘 정비가 되어 있지만, 당시만 해도 소설의 독자들이 알음알음으로 찾아야 할 정도로 소설의 배경이 된 주요 장소들이 체계적으로 정비되어 있지 않았다. 당시 홀로 문학기행을 하며 물론 얻은 것도 많았지만, 문학기행을 효율적인 동선과 깊이 있는 분석으로 이끌어줄 누군가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셰익스피어를 통해서 클래식 클라우드와 인연을 맺었지만, 이후 후속작에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온 이유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거장의 삶과 작품에 대해서 전문적인 큐레이션 서비스를 받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아직 시리즈의 초기단계이기 때문에 물론 앞으로 출간이 기대되는 작품들이 더 많이 있다. 정여울 작가가 소개하는 <헤르만 헤세>와 이다혜 작가가 소개하는 <코난 도일>은 개인적으로 출간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책이다.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거장의 삶과 그들의 작품들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면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를 찾아 보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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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19-07-10 10: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셰익스피어가 실존인물이 아니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자료가 부족한게 참 미스터리에요.ㅠ 가끔 슬프기도 합니다.이다혜 작가의 코넌 도일은 저도 애타게 기다리고 있어요.^^

잭와일드 2019-07-10 11:01   좋아요 1 | URL
네 자신의 삶 마저 이야기가 되어버렸다고 할까요? 어떻게 보면 정말 슬픈 일이죠 ㅜㅜ 이다혜 작가의 코난 도일은 정말 기대되지 않나요? ㅎㅎ

골든보이 2019-07-10 15: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거장의 삶과 작품에 대해서 전문적인 큐레이션 서비스를 받는 느낌’이라는 대목이 공감이 가네요.

잭와일드 2019-07-10 18:58   좋아요 0 | URL
기획이 참 좋은 시리즈인것 같습니다^^
 
[세트] 죽음 1~2 세트 - 전2권 - 베르나르 베르베르 장편소설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함지은 북디자이너 / 열린책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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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죽음>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름은 가브리엘 웰즈로 추리소설 작가다. 그가 소설 상에서 직면한 상황은 조금 특별하다. 어느 날 아침 그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 동안 고민해오던 신작 소설의 첫 문장에 대한 영감이 문득 떠올랐던 것이다. 극중 작가인 가브리엘 소설의 첫 문장이자 동시에 이번 베르베르 소설의 첫 문장이기도 한 그 문장은 바로 이것이다.


'누가 나를 죽였지?'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브리엘은 자신은 죽었고, 누가 자신을 죽였는지 조차 모르는 상황에 처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렇게 그가 선택한 첫 문장은 그 자신이 풀어내야 하는 질문으로 바뀌게 된다. 가브리엘은 추리소설 작가로서 수많은 트릭을 설계해왔지만, 이제 희생자인 동시에 수사의 주체로서 과거 자신의 삶을 토대로 범인을 추리하여 자신이 던진 질문에 답해야 한다. 가브리엘은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영매(靈媒) ‘뤼시 필리피니의 도움을 받아 자신을 죽인 사람을 찾고자 한다. 용의선상에 오른 것은 4명이다. 그에게 재결합을 요구했지만 매몰차게 거절당해 앙심을 품었을지 모를 옛 연인 사브리나’, 자라면서 서로를 밀어내게 된 쌍둥이 형 토마 웰즈’, 그의 죽음으로 이득을 얻을 편집자 알렉상드르’, 그의 작품을 쓰레기로 치부하며 증오심을 드러냈던 비평가 장 무아지가 그들이다.


소설은 누가 날 죽였지?’라는 첫 문장이 제시하는 길을 따라서 범인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범죄의 희생양이 되어 저승에 있는 영혼이 이승에 있는 영매의 도움을 받아 직접 자신을 죽인 범인을 찾는다는 독특한 설정과 용의자들에 대한 검증을 통해 점차 진실에 다가가는 추리소설의 형식은 소설에의 몰입도를 높이는 요소들이다. 하지만 작가 베르베르의 상상력으로 빚어낸 세계 속에서 추리에 집중하던 독자들은 이 소설이 전형적인 추리소설과는 그 궤를 달리한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된다. 퀴블러 로스의 이론대로 처음에는 자신의 죽음을 부정하고 분노를 표출했던 가브리엘이 타협과 수용의 과정에 다다른 것처럼 범인이 누구인지와 살인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에 집중했던 독자들은 소설이 진행되면서 점차 작가 베르베르가 던지는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으로 눈을 돌리게 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원제는 <Depuis l'au-dela>로 프랑스어로 저승으로부터라는 의미이고, 영문판 제목 ‘From Beyond’저 너머로부터로 해석된다. 그에 반해 한국어판은 다소 직설적으로 죽음을 제목으로 선택하였다. 베르베르가 사후세계와 영혼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타나토노트>, <나무>, <> 등 그의 전작들을 지켜봐 온 팬들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사후세계나 영혼은 그동안 소설이나 영화로 많이 다뤄졌던 만큼 신선한 소재는 아니지만, 베르베르는 남들이 터부시되는 주제를 피하지 않고 응시하면서 빛나는 상상력으로 미지의 세계를 탐구해왔었기 때문에 나는 그의 이번 소설에 대해서도 큰 기대를 하고 있었다. 중학교 중간고사 기간에 <개미>를 처음 접한 이래로 나는 베르베르가 쌓아올린 세계를 즐겁게 탐험하는 베르베르 키즈였기 때문이다.


"죽음 뒤에 또 다른 삶이 이어지는지, 죽은 뒤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확실한 것은 우리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이며 그것을 이용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베르베르의 신작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참석했던 강연에서 나는 그의 죽음에 대한 철학을 들을 수 있었다. ‘신은 존재할까? 영혼이란 무엇이고, 사후세계는 존재하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들은 누구나 쉽게 떠올리지만 그 누구도 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 없는, 아직 인류가 탐구하지 못한 미지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번 생에서 우리가 지각하는 삶은 한번뿐이라는 사실이다. 누구에게나 단 한번 주어지고, 결코 되돌릴 수 없는 것이기에 삶은 소중한 것이다. 삶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간다는 것은 생의 마지막 단계인 죽음에 대해 성찰하면서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삶의 마지막이 죽음이라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우리는 현재의 삶에 더 충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죽음을 잘 준비할 수 있는 방법은 우리가 살아있는 순간순간을 온전하게 살아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은 <죽음>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이를 통해 베르베르는 우리에게 삶의 소중함을 말하고 있다


삶이 내포하고 있는 진리를 깨닫게 되면서 '누가 나를 죽였지?'로 시작했던 가브리엘의 질문은 나는 어떤 삶을 살아왔지? (157)’마지막 순간에 얻은 깨달음을 가지고 죽은 자들이 더 살 수 있다면... (158)’을 거쳐 나는 왜 태어났지? (2313)’로 진화한다. 가브리엘의 첫 질문 '누가 나를 죽였지?'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나는 어떠한 형태로 죽음을 맞이했고, 왜 그러한 마지막을 맞이했던 것이지?’일 것이다.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그가 돌아본 것은 자신의 삶이었다. 결국 어떻게 죽었는지 혹은 죽어야 하는지의 문제는 어떻게 살아 왔는지 혹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와 관련하여 베르베르는 연명치료로 대표되는 현대의학으로 변질되는 삶의 의미에 대해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멈추는 순간을 스스로 결정하지도 못하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1212)

나는 살아 있고 당신들은 죽었다.” - 필립 K. , 유빅-


삶을 하나의 여정으로 본다면 죽음은 스토리를 매듭 짓는 마지막 종착지라고 할 수 있다. 나만이 할 수 있는 나레이션으로 내가 마침표를 찍는 것인데, 현대의학은 나레이션의 주체를 의사와 가족으로 바꾸어 놓았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맞이하는 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인지, 본인의 선택은 고려되지도 않은 채 무의미하고 고통스러운 연명의료를 통해 삶을 물리적으로 연장시키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베르베르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우리는 과연 진정한 자유를 누리며 우리 삶의 주체로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 죽음을 통해 을 제시하고자 하는 베르베르가 우리에게 전하는 또 하나의 메시지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후 가브리엘은 가장 근원적이면서 신비로운 질문 나는 왜 태어났지?’에 대한 탐구를 시작한다. 이는 떠돌이 영혼이 된 가브리엘이 새롭게 쓰려는 소설의 첫 문장이자, 이 작품의 마지막 문장이다. 또 베르베르의 차기작 <판도라의 상자>가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본 소설을 통해 삶의 종착지인 죽음에 대해 논했던 베르베르가 출생에 대해서는 어떤 통찰력을 보여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죽음>은 베르베르의 자전적 소설이라고도 볼 수 있다. 베르베르처럼 프랑스의 장르문학 작가로 묘사되고 있는 가브리엘은 베르베르가 자신을 소설 속에 투영시킨 존재로 보이기 때문이다. 가브리엘의 소설 제목 <죽은 자들>이 베르베르의 소설 <>의 제목을 불어의 문자적 유사성에 기반한 패러디라는 것만 봐도 베르베르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가브리엘은 대중에게는 호평을 받는 반면에 주류 문학계에서는 저평가되고 있는 베르베르의 상황을 대변하는 듯하다. ‘장 무아지로 대표되는 프랑스의 문단은 순문학의 우월성을 강조하면서 상대적으로 장르문학의 존재가치를 폄하한다. 가브리엘의 독자가 많은 건 대중이 좋은 문학에 대한 안목이 없기 때문이며, 장르문학은 상상의 소산일 뿐 진짜 문학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맞서 문체 중심의 문학과 상상력 중심의 문학은 양립 불가능한 것이 아닌 상호보완적인 것이라는 가브리엘의 주장은 폐쇄적인 문단을 향한 베르베르의 외침이다. 베르베르는 문학이라는 이름 아래 시도되는 모든 노력들은 존중받아야하고 오히려 문학을 획일화하려는 어떠한 관점이나 시도도 허용 되서는 안 된다는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이러한 베르베르의 문학을 대하는 진지한 자세는 자신의 죽음을 자각한 가브리엘 웰즈가 이제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한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이후 환생과 영혼으로 남는 두 가지 선택지 중에서 영혼으로 남아 글쓰기를 계속 하는 선택을 내리는 대목에 잘 나타나 있다.


글쓰기가 나를 구원한다. 이 순간이야말로 내가 진정한 나로써 존재하는 유일한 순간이다. 오직 이 공간에서 만큼은 사건을 뒤따라가는 게 아니라, 내가 그것들을 창조해낸다.” (2185)


베르베르는 자기반성도 빼놓지 않는다. 아이디어는 훌륭하지만 엄격함, 섬세한 심리 묘사가 부족하다'는 코난 도일의 지적 (296~97)'건조한 문체, 직설적인 본론과 반전 없는 결말'을 언급한 메트라톤의 지적 (2282)은 베르베르가 냉철한 자기평가를 통해 드러낸 자신의 치부인 동시에 문학적 발전을 위한 그의 의지표명이다. 좋은 문학이란 무엇일까삶에 대한 아포리즘을 기반으로 시간의 선택을 받아 세기를 뛰어넘는 고전이 된 책상상력을 통해 동시대인에게 공감과 위로를 주는 책소설의 마지막 대목에서 가브리엘은 영혼이 되어 깨달은 여섯 가지에 대해 회상한다. 그것은 인간의 삶은 짧으며 선택은 결국 우리 스스로 내리는 것이라는 것,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스스로를 사랑하라는 것, 만물의 변화를 인위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는 것 등이었다. 변화하고 움직이는 만물 중에는 좋은 문학에 대한 기준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좋은 문학이란 어떤 것인지 이 자리에서 단언할 순 없지만 적어도 문단의 획일화된 기준 보다는 문학이라는 이름 아래 끊임없는 시도를 하고 있는 가브리엘 혹은 베르베르이 그 진실에 가까운 위치에 있을 거라 확신한다.


사람은 어릴 때 받은 사랑만큼 사랑할 수 있는 거라고 말했어요. 우리가 어릴 때 부모한테 받은 뽀뽀가 마치 포커 칩과 같아서, 어른이 되어 사랑이라는 포커 게임을 할 때 그걸 쓸 수 있다고 했어요. 어릴 때 받은 포커 칩이 많을수록 게임에서 이길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194)


가브리엘이 마지막으로 깨달은 것은 모든 삶은 유일무이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완벽한 것이며, 남들과 비교하지 말고 지금 가진 것을 소중히 여기며 오직 이 삶을 최대한 누리기 위해 노력하라는 것이었다. 인간의 삶은 평범한 사건들이 빚어낸 기적이고 역사다.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삶의 순간순간들이 누적되어 이루어진 인생은 누구에게나 값지고 귀한 것이 된다. 그러한 순간순간들이 모여 시간과 역사를 이루고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개별적 세계가 빚어지기 때문이다. 베르베르의 소설을 읽고 가족과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주말 저녁 행복한 삶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힘겨운 삶 속에서 내가 사랑 받는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 묵묵히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 가족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것...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이것 이상의 응원이 있을까? 각자가 가진 삶의 조각들이 가족의 사랑 안에서 하나의 조각(One Piece)으로 완성되는 것... 이것이 우리가 꿈꾸는 행복 아닐까아직 한창 어리광 피울 나이의 딸에게 보내는 내 진심과 사랑이 아이의 앞으로의 삶에 큰 자산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딸과 함께 베르베르의 소설들을 읽고 토론하게 될 가까운 미래를 상상한다. 벌써부터 그 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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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의 세계사 - 등대는 바다를 건너서, 시간을 건너서 온다
주강현 지음 / 서해문집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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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는 언제부터 어두운 바다를 비추며 인류와 함께해온 것일까? 이는 아마 항해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 할 것이다. 등대는 낮과 밤, 지형지물 등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바다와 육지에서의 활동반경을 넓히기 위한 인류의 노력과 고민의 산물이다. 등대는 등대의 세계사라는 이 책의 제목처럼 또, ‘해양문명의 아이콘이라는 헌사처럼 문명의 시작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오고 있다.

 

기원전 280년 파로스섬에 세워진 등대는 고대의 랜드마크였다. 오늘날의 40층 건물 높이에 해당하는 120미터가 넘는 거대 건축물 파로스 등대는 현재까지도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회자되며 등대의 상징이 되었다. 등대를 의미하는 라이트하우스 (lighthouse)는 후대의 영어식 표현일 뿐 지금도 이베리아반도나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에서는 등대를 파로스로 지칭하고 있다. 도시국가와 항구의 형성, 대항해시대의 전개와 함께 등대는 진화해왔다. 영국의 에디스톤 등대는 시멘트 공법을 적용하며 근대의 시작을 알렸고, 프랑스의 프레넬은 당대 광학기술의 집약체인 프레넬 렌즈를 발명하여 등대의 광달거리를 획기적으로 증가시킴으로서 항해 역사의 신기원을 이루어내었다.

 

근대 이후의 제국주의 시대는 등대의 시대이기도 했다. 국민국가와 제국주의의 확산은 인류 최대 규모의 이민과 식민을 낳았고, 등대 역시 이러한 역사적 흐름과 맞물려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서구 편향적인 시각으로서 해양 문명과 등대를 바라보지는 않는다. 오히려 서구 중심의 해양사에 가려져 소외되어 있던 동양의 항로표지 기술을 해양환경을 개척하기 위한 동아시아 문화권 특유의 고민의 산물로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중국의 불탑과 일본의 석등, 한국의 제주도 도대불 등은 전통적 등대의 귀중한 예다.

 

등대의 존재 목적과 형태는 지난 2,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변하지 않았다. 세월이 변하고 인류문화가 변하여도 인류가 항해를 포기하지 않는 한 배가 들어오는 뱃길의 노선은 변함없이 존재하고, 등대는 칠흑 같은 바다를 항해하는 선박을 위해 밤새 빛을 비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으로 대표되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등대의 효용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산업혁명의 상징인 증기선의 등장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 범선과 뛰어난 신체능력과 순간적인 판단력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나이가 들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는 스파이처럼 현대의 첨단 항로기술 앞에서 등대는 바닷가의 낭만과 추억으로서 우리의 기억 속에서 점차 멀어져가게 되는 것일까?

 

<등대의 세계사>의 저자 주강현은 등대는 인류가 낳은 가장 위대한 발명품으로서 자랑스러운 우리의 과거이자 우리의 현재를 있게 한 또 하나의 영웅이라고, 인류 역사의 산 증인이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최신형 네비게이션이 탑재된 자동차를 타고 있다고 해서 도로와 신호 시스템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듯이 전통적인 항로표지로서 등대는 아직도 묵묵히 인류의 앞길을 비추고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등대는 광파와 형상표지 방식뿐만 아니라 음파와 전파를 이용한 표지로 진화하여 여전히 인류의 생명을 구하는 빛으로 밝게 빛나고 있다. 우리가 등대를 기억해야하는 이유는 인류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육지의 한계를 넘어 해양으로 활동영역을 넓히는 그 모든 과정에서 등대는 숨은 조력자로서 기능했기 때문이며, 이러한 등대의 역할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인간문명을 밝혀온 또 앞으로도 밝혀갈 등대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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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경제사 - 돈과 욕망이 넘치는 자본주의의 역사
최우성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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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아동문학의 기틀을 닦았다고 평가 받는 안데르센은 사실 다방면에 걸쳐 활동한 문학가였다. 『 미운오리새끼 』,『 인어공주 』, 『 성냥팔이소녀 』 등 빛나는 그의 동화들은 그의 수많은 작품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시와 소설, 기행문을 남겼고 작가이기 이전 연기자를 꿈꿨던 자신의 청년시절을 대변하듯 극작가로서도 재능을 드러냈다. 안데르센이 자신이 아동문학가로만 인식되는 것에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 일화는 유명하다. 말년에 자신이 아이들과 함께 있는 동상을 세우려는 사람들에게 안데르센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내가 쓴 이야기들은 어린이를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어른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어린이들은 단지 내 이야기의 표면만을 이해할 수 있으며, 성숙한 어른이 되어서야 온전히 내 작품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오늘날 그의 모국 덴마크에 있는 안데르센의 동상들은 모두 오롯이 그 혼자만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동화를 단순하게 정의한다면 동심을 바탕으로 어린이를 위하여 지은 산문문학의 한 종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광범위하게 본다면 동화가 지향하고자 하는 바는 어린이들만을 위한 이야기를 넘어 인간 보편의 진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여 인생의 의미를 전달하는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안데르센이 아동문학가라는 평가에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 이유도 동화의 의미를 좁게 보는 당대 사람들의 인식 때문이 아니었을까?

저자가 『 동화경제사 』라는 이름의 이 책을 저술하게 된 것은 부모가 되고 나서 어린 아들과 동화 함께 읽기를 한 것이 그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의 첫 번째 동화 읽기가 꿈과 희망으로 가득 찬 행복한 세계로 인도해주었다면, 어른이 되어 텍스트 뒤에 숨겨진 컨텍스트를 찾아낸 두 번째 동화 읽기는 동화야말로 시대와 사회의 중요한 기록이자 증거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음을 저자는 고백하고 있다. 동화경제사란 책의 이름이 대변하듯 저자가 두 번째 동화읽기를 통해 주목한 것은 이야기가 탄생하게 된 시대적 배경이다. ‘돈과 욕망이 넘치는 자본주의의 역사라는 책의 부제처럼 저자는 동화 탄생의 역사적 기원이 된 자본주의의 민낯을 밝히고 있다.

저자는 성냥팔이 소녀 이야기에서 가난, 장시간 노동 등 산업혁명 속 어두운 시대상을,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달콤한 초콜릿 속에 숨겨진 착취와 불공정 거래관행을, 피노키오를 만든 제페토에게서는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질서 앞에 저물어가는 수공업과 새롭게 자리잡은 산업화시대의 노동질서를 읽어내었다. 동화 탄생의 역사적 배경을 탐구하는 과정은 어린 시절 동심의 세계를 침범 당하는 것 같아 약간의 거부감이 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쥘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가 가능했던 이유를 역사적 사실을 통해 분석하고, 꿀벌 마야의 모험에 표현된 개인의 합리적 행동과 공익의 놀라운 조화를 아담 스미스 보다 60년 앞서 자유시장과 보이지 않는 손의 위력을 보여주었다고 해석해낸 것, 빨간머리 앤이 타는 자전거에서 자유주의와 페미니즘을 읽어내는 등 동화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초창기 모습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작가의 비밀스런 장치들을 색다른 시각을 통해 발견해내는 재미가 쏠쏠하다.

또한 경제사라는 제목에 걸맞게 작가가 사회변화와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과정에서 상반된 형태로 표현된 작품의 메시지를 분석한 내용도 흥미로웠다.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가 현실 속 구원보다 상징적이고 종교적 구원으로 결말을 맺은 이유와 오스카 와일드가 행복한 왕자를 통해 개인의 선행이나 인간애 보다는 사회구조적 해법을 찾으려고 시도한 이유를 저자는 시대정신에서 찾고 있다.

와일드 시대 (1880년대)의 해법은 안데르센 시대 (1840년대)의 그것과 달라야 했다. 빈부 격차와 불평등은 더 이상 개인 혹은 단체의 선이나 시혜로 다룰 문제가 아니라, 엄연히 국가의 책무라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행복한 왕자는 동화라는 외피를 입었으나 1880년대를 풍미한 사회주의 유토피아의 색채가 짙게 배어있는 문학작품이다 (p. 240)

결국 저자가 동화탄생의 역사적 배경에 주목한 이유는 동화의 재해석에 있다. 숲 속을 노닐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하나 둘씩 눈떠가는 사랑스런 아기 노루 밤비의 이야기의 기저에는 반유대인 정서와 전체주의 비판이 깔려 있었고, 덩치 큰 말벌들의 침략에 단결하여 맞선 꿀벌들의 이야기에서는 자연과 삶을 예찬하는 낭만주의적 코드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질서를 강조하는 전체주의적 코드와 1차 세계대전에서 병사들의 사기와 전의를 북돋우는 정훈도서의 이미지도 찾아볼 수 있었다.

어른을 위한 동화와 표면적 의미를 넘어선 동화의 재해석을 언급한 것은 비단 안데르센만이 아니다.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는 친구 레옹 베르트를 위한 헌사로 시작된다. 이 유명한 헌사를 통해 작가는 이 책을 어른에게 바치는 것에 대해 어린이들에게 용서를 구하며, 그 나름의 헌정의 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것은 그가 작가에게 있어 최고의 친구라는 것, 이해심이 깊어 아이들을 위한 책도 이해한다는 것, 또한 현재 그가 위로가 필요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만약 이런 모든 이유들로도 부족함이 있다면, 한때는 어린 아이였을 자신의 친구에게 이 책을 헌정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있다. 모든 어른들은 처음에는 어린이였기 때문에 작은 소년이었을 때의 자신의 친구 레옹 베르트에게 자신의 책 『 어린 왕자 』를 헌정한 것이다.

피노키오의 모험은 19세기 자유주의 시대, 20세기 산업사회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기나긴 세월을 거치는 동안 빈민층 자녀의 자유분방한 모험담에서 산업화 시대 새로운 노동의 기준으로, , 디즈니에 의해 재생산된 중산층 신화로 재해석되었다. 4차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이 본격화되는 미래 세상에서 피노키오는 또 어떤 새로운 모험을 하게 될까? 시대를 거슬러 우리 곁에 있는 동화처럼 동심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모든 어른 아이들을 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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