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에 가장 빛나던 순간 - 39명의 작가 쓴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야기
안도현.유강희 외 지음 / 모악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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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서문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말로 시작한다. "삶은 한 사람이 살았던 그 자체가 아니라, 현재 그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며, 그 삶을 얘기하기 위해 어떻게 기억하느냐 하는 것이다." (p.4)

 

 

기억이란 사람이나 동물이 경험한 것을 특정 형태로 저장하였다가 나중에 재생 또는 재구성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저장과 재생은 기억이라는 현상을 만들어내는 두 가지 요소다. 과거 경험에 대한 기억은 마치 동식물이 퇴적, 암석화 과정을 거쳐 화석이 되듯이 사건의 잔상과 흔적, 진실의 파편 속에서 원형만이 남아 개인의 의식 속에 퇴적되고 암석화된다. 이것이 경험이 저장되는 과정이다. 또한 기억의 결과물은 저장된 경험의 원형들이 어떤 상황 하에서 어떠한 형태로 재생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동일한 체험이 재생, 재구성된 시점에 따라 행복한 기억이 되기도 뼈아픈 추억이 되기도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마르케스가 삶을 구성하는 것은 삶 그 자체가 아닌 기억에 있다고 한 이유는 우리는 경험이 아닌 기억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기 때문이다. 행복은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라는 오스카 레반트의 말도 동일한 견지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개인은 자신이 지나온 삶을 고찰하는 역사가이자 고고학자라고 할 수 있다.

 

여기 찬란하게 빛나던 삶, 그 기억 속으로 답사를 떠난 역사가들이 있다. 전북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39명의 작가들은 각자의 삶에서 가장 빛났던 순간들을 모아 한권의 책으로 만들었다. 그들의 삶 속에서 반짝이며 빛난 순간들은 그들 각자가 살아온 삶만큼이나 다양하다. 순수했던 유년, 열병을 앓던 청년기 등 지난 시절에 대한 회상이 있는가 하면 그 시절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거나 잊고 지낸 따뜻한 인연에 대한 고마움도 있다. 또한 떠올리기만 해도 자신만의 추억이 재생되는 특정 장소와 사물에 대한 그리움도 있다.

 

 

기억은 세상에서 가장 강한 마법이다. 기억은 우리를 한정된 시공간을 초월할 수 있게 한다. 기억은 한 그릇의 자장면을 시공간을 넘어 영원히 존재하는 천리향, 만리향으로 만든다.

 

"자장면은 단순히 맛있는 한 그릇의 음식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상함과 배려였고, 인정이고 따뜻함이었다. 어른이 내게 사 주신 자장면 한 그릇은 내 마음에 인정으로 새겨져 향기처럼 머물러 있다. 단순한 향기가 아니라 천리향 만리향처럼 오랜 세월이 흘러도 그 향이 좀체 그치질 않는다. 사람이 남기고 간 향기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오래오래 남아 맴돈다." (p.130)

 

또한 기억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안에서 고동치는 두 번째 심장이기도 하다.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는 인생의 최대치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최대치를 매일 산다는 것, 몇 시간을, 몇 분을, 몇 초를 그런 시간들을 의식적으로 맞이하는 순간에 우리는 심장이 특별하게 잘 뛰어서 특별하게 다른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 이 장소에서 지금 나와 나 속의 너, 거기 그곳을 다 지나오면 그때는 미처 못 본것들도 보게 되는 순간이 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기억의 주머니에 담아갈 것을 만지고 겪으며 최대치의 순간을 살아야 한다. 나중에 꺼내 먹을 수 있게, 그러면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야 말 할 수 있는 시간들이 반드시 딸려 나온다." (p.138)

 

우리는 행복했던 시절의 추억들을 기억하며 현재를 살아간다. 이는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행복한 기억들을 화석화하여 영원과 불멸의 세계에 편입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있기 때문이며 이는 현실을 살아가는 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기억은 불완전한 것이고 객관화된 진실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살아가다보면 우리는 사실 (事實) 보다 사연 (事緣)이 중요해지는 순간들을 만나게 된다. 라쇼몽 (羅生門)의 대사처럼 진실이란 어차피 그 사람이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것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저장된 원형이 기억으로 재생되기 위해서는 계기가 필요하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작가들의 삶 속 반짝이는 순간들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 스스로가 자신의 삶에서 빛났던 순간들을 떠올려보는 하나의 계기를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나도 삶에서 빛났던 순간들을 떠올려보았다. 가장 먼저 미소를 짓게 한 아주 최근의 기억이 떠올랐다. 재작년 오랜 시간 기다리던 딸이 태어났다. 새 생명 탄생의 경이로움과 부모가 된다는 막중한 책임감 속에서 우리 부부는 새로운 식구를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였고, 온 가족과 친척, 지인들도 딸의 출생을 축하해주었다. 딸의 탄생을 기점으로 나는 누군가의 자식으로 태어나 누군가의 부모로 성장해간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 아이가 눈을 뜨고 나와 처음으로 눈을 마주친 순간, 처음으로 지은 미소, 첫 걸음마, 처음으로 말을 한 순간, 이는 내가 자식으로서 부모님과 공유한 것이기도 하고 동시에 내가 부모로서 앞으로 내 딸과 공유해갈 기억들이기도 하다. 앞으로 나와 내 가족은 삶의 어떤 순간순간들을 공유하며 추억을 만들어나갈까? 퇴근 후 집에 돌아왔을 때 나를 보며 방긋 웃어주는 딸의 미소, 안아서 이마를 포갯을 때 전해오는 따스한 감촉, 말없이 내 손가락을 감아쥐던 앙증 맞은 작은 손, 이는 분명 내 삶 속에서 찬란히 빛나는 순간들이다.

 

 

이제 이 서평을 읽고 있는 당신이 답할 차례다. 당신의 삶에서 유난히 반짝이며 빛났던 순간들은 언제인가? 이는 당신을 위한 질문이다.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며 미소를 지을 사람은 내가 아닌 당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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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킹 소사이어티 - 록음악으로 듣는, ‘나’를 위한 사회학이야기
장현정 지음 / 호밀밭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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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밴드 출신의 사회학자라는 재미난 이력을 가진 저자는 <록킹 소사이어티>에서 존레논, 핑크 플로이드, 라디오헤드부터 신중현, 들국화, 김민기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관통한 음악들을 통해 현대사회를 바라보는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사회학은 과학적 합리성, 시민혁명으로 이룩한 국민국가, 산업혁명을 통해 자리를 잡은 자본주의라는 세 가지 거대한 사회적 변화로 탄생한 새로운 사회에 대한 이해를 위해 탄생한 학문이다. 이는 중세, 근대, 현대를 거치며 발전해온 인간 진화의 역사이기도 하다. 사회적 진화는 불합리와 차별, 낙후된 현실에서 출발하여 이를 개선하기 위한 무수한 실패와 시행착오를 거치며 이루어진다. 이러한 과정에서 벌어지는 시대적 통념을 무너뜨리기 위한 용기 있는 도전은 자유, 저항, 도전을 노래하는 락음악과 닮아 있다.

책을 읽어 가면 갈수록 현대 한국사회의 모순과 아픔을 상징하는 세월호가 떠올랐다. 세월호 사건을 바라보는 대표적인 프레임은 신자유주의이다. 세월호는 우연히 발생한 해양사고가 아니라 사회시스템의 구조적 모순이 집약된 예견된 사고라는 것이다. 이윤 극대화를 위한 증축과 개축, 과적과 평형대 부족이 그렇고, 선원들 대부분이 비정규직이었다는 점이 그렇다. 또한, 절대 타협할 수 없는 안전을 담보하고 관리해야 할 국가기관이 구조적 유착으로 탈규제에 이르게 된 정황이 그렇다. 세월호는 국가와 사회의 부재 속에 약육강식의 원초적 본능과 무질서만큼 존재하는 정글에서 잉태되었다. 이는 원자화된 개인의 처절한 몸부림만 남아있는 2000년대 대한민국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핑크 플로이드는 빛나는 달의 앞면이 아닌 어두운 뒷면 (The Dark side of the Moon)에 주목하였다. 이는 인간 이성에 기반한 합리성이 종종 비인간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 그리고 사회 구조적 차원의 문제를 개인 차원의 문제로 축소, 왜곡시키는 근대성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밥딜런의 통찰처럼 과학과 삶의 논리는 다르다. "삶은 과학처럼 논리정연하고 각이 잡힌 네모의 형태가 아니라, 오히려 여기저기 부딪치면서도 끊임없이 구르는 돌멩이 (rolling stone)처럼 둥근 형태에 가깝다." (p.59) 저자의 주장처럼 과학으로 대표되는 실증주의는 현대인의 나약함에 대한 반증일 수 있다. 이는 비록 선명하지 않더라도 전체로서 사회를 조망하려는 시도를 포기하고 눈앞에서 통제 가능한 미시적 개별 요소만 신경 쓰겠다는 허무주의적 선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학이란 좁은 틀을 넘어 인간의 삶 자체로 보면, 칼 폴라니의 말처럼 진정한 진리는 만유인력 법칙이 아니라, 오히려 중력에도 불구하고 새는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는 것이 될 수 있다.

락키드 출신답게 이 책에 대한 서평도 음악으로 마무리를 해야겠다. 책에서 차세대 영국록의 선두주자로 저자가 소개한 밴드 콜드플레이 (Cold Play)의 노래 'Yellow'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 별들을 . 위해 얼마나 반짝이는지.

  너의 모든 행동은 전부 노란 빛이었어."

"Look at the stars. Look how they shine for you.

And everything you do. Yeah, they were all yellow."

 

콜드플레이는 데뷔 19년 만에 처음으로 올해 내한공연을 하였고, 그 날은 세월호 참사 3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공연에서 'Yellow'를 열창하던 밴드의 리더 크리스 마틴은 갑자기 노래를 멈추고 관객들에게 오늘이 세월호 3주기임을 상기시키며 희생자들에게 사랑과 위로를 보내는 의미에서 10초간 묵념을 할 것을 제안했다. 그들이 관객과 함께 만들어낸 정적과 어둠을 밝힌 노란 불빛의 향연은 상처 받은 이들에게 전하는 우리의 진심이었다.

“사회적 불평등과 차별은 개인의 우울 및 권태와 함께 현대사회를 움직이는 두 바퀴였다. 따라서 오늘날은 함께 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혁명인 시대다. (p.183)

2016 10월 광화문을 밝힌 촛불은 17 4월까지 이어졌고, 촛불은 전국 150여개 시군으로, 전세계 31개국 71개 도시로 퍼져나갔다. 누군가는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고 했지만, 1,700만여개의 빛은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파면을 이끌어내며 찬란하게 빛났다. 독일의 공익정치 재단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은 박근혜 퇴진을 위한 촛불집회에 참여한 우리 국민을 2017 '에버트 인권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특정 국가의 국민이 수상자로 선정된 것은 상이 제정된 이래 최초의 사례였다. 재단은 민주적 참여권의 행사와 평화적 집회의 자유는 생동하는 민주주의의 필수적 요소이기 때문에 집회에 참여한 모든 분들을 대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쉽사리 변하지 않는 사회에 절망하지 않고 신뢰하고 연대하며 협력과 공생의 질서를 만들어나가는 것, 그것이 비록 사소하고 미약한 성공에 불과하다고 할지라도 '사람' ''이 빛나는 사회로 나아가는 동력은 그러한 곳에서 나온다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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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네 정원 - 함께 가꾸는 사계절 텃밭 정원 이야기
이보림 지음, 레지나 그림 / 한겨레아이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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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네 정원>은 세 마리 강아지와 함께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며 살아가는 노부부의 동화 같은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호두네 정원>에 담긴 이야기는 실제 인물과 배경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텃밭과 정원을 정성스럽게 보살피며 살아가는 노부부와 그들의 사랑스러운 세 마리 강아지들이 살고 있는 삼부골은 도심에서 떨어져 있는 작은 마을이지만 지금은 노부부의 정성을 바탕으로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명소가 되었다.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귀엽고 사랑스러운 세 마리 강아지의 이름은 호두, 마루, 오토이다. 탐험을 좋아하는 용감한 호두는 강아지들의 맏언니이다. 정원 뜀박질과 축구가 취미이자 특기인 호두는 마음먹은 것은 꼭 해야만 하는 개구쟁이이다. 영리하지만 겁이 많은 마루가 강아지 삼남매 중 둘째다. 늠름하고 멋진 모습과 안 어울리는 겁쟁이 마루는 어디를 가든지 호두 뒤만 졸졸 쫓아다닌다. 가장 덩치가 큰 오토가 세 마리 강아지 중 막내다. 오토는 느긋한 평화주의자로 눈을 가늘게 뜨고 풀숲을 느릿느릿 산책하는 것을 즐긴다. 골든 리트리버 종에 속하는 오토는 느긋한 성격으로 막내답게 애교쟁이로 통한다. 세 마리 강아지를 돌봐주시는 할아버지는 정원을 연구하고 공부하기 좋아하신다. 큰 키에 차분한 성격의 할아버지는 항상 계획성 있게 행동하지만 일벌이기를 좋아하는 할머니와 가끔 다투시곤 한다. 할머니는 요리를 좋아하고 정원을 바라보면서 늘 새로운 것을 구상하신다. 퉁퉁한 외모의 할머니는 급한 성격으로 할아버지와 종종 투닥거리지만 따뜻한 마음씨를 가지고 계신다.



<호두네 정원>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 동안 노부부가 정성스럽게 가꾸고 있는 텃밭과 정원이 어떻게 아름답게 변하는지, 그리고 그 변화의 과정과 더불어 부부와 사랑스러운 세 마리 강아지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두 명의 작가가 각각 글과 그림을 통해 세심하게 묘사하고 있다. 처음 이 책을 선택했던 이유는 아이와 함께 읽기에 적합한 책인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100쪽에 조금 못 미치는 적당한 분량 속에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글과 그림을 통해 구현해 낸 동화라는 점에서 아이와 부모가 함께 읽기에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책을 읽고 난 후 이러한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아이와 함께 읽고 내용을 공유하고 추억을 쌓아가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이 책의 또 다른 장점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아이와 함께 읽는 걸 고려하지 않더라도 성인이 읽기에 참 좋은 책이라는 점이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 책은 사계절 동안 일어나는 자연의 경이로운 변화에 주목한 책으로 각각의 계절마다 <할아버지 살림 수첩>이라는 코너로 식물 키우는 노하우를 소개하고 있고, <할머니의 요리수첩>이라는 코너를 통해 계절에 나는 채소들을 이용한 요리법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별도의 코너로 감자, 오이, 당근 등 우리에게 익숙한 작물들의 파종, 모종, 수확 시기에 관한 일년 농사 계획을 제시하고, 봄나물의 종류와 간단한 요리법, 정원수와 허브의 종류에 대한 정보 등을 제공하고 있다.





<할아버지 살림 수첩>을 살펴보면, [나만의 텃밭 상자 만들기]는 꼭 정원이 아닌 집 안에서도 작은 텃밭을 가꿀 수 있는 팁을 제공하고 있다. 스티로폼 상자, 아크릴 물감, 양파 망, 배양토, 거름 등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상자 바닥에 구멍을 뚫고 양파 망을 깔고 흙과 거름을 섞어서 상자에 담아 채소가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제시하고 있고, [싹 튀우기와 옮겨 심기]에서는 접시, 키친 타올, 씨앗, 화분, 배양토 등을 이용하여 적절한 온도와 수분 조절을 통해 효과적으로 싹을 튀울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장마철 정원 관리 대작전]에서는 6월에서 7월까지 비가 많이 내리는 장마철에 정원의 식물들을 관리하는 법, 배수로를 만들고, 가지를 솎아주고, 비료를 보충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고, [나무들을 위한 월동 준비]에서는 그해 갓 심은 어린나무나 과실수, 꽃이 피는 나무들을 볏짚과 낙엽을 이용해 온도를 관리해 주는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크리스마스 리스 만들기]에는 나무를 보양하거나 비료를 뿌려 주는 것만이 겨울 맞이가 아니고 떨어지고 말린 식물도 꾸미고 장식해서 쓸모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도 겨울과 식물에 대한 예의라는 할머니의 지론과 울며 겨자 먹기처럼 억지로 할머니의 주장에 따라 리스를 만드는 할아버지의 귀여운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할머니의 요리수첩> 코너를 살펴보면, 바질 농사가 풍년이어서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다가 바질 페스토를 생각해내고, 이에 대한 구체적인 레시피를 공개하는 [고소하고 향기로운 바질 페스토 만들기],[입맛을 돋우는 냉파스타 만들기], 때아닌 도토리묵 풍년을 맞아 공개하는 [찰랑찰랑 쫀득한 도토리묵 만들기], 가을에 수확해 쟁여 놓았지만 겨우내 먹기에 다소 많은 사과들을 활용하기 위해 제시하고 있는 [새콤달콤한 사과잼 만들기] 등 제철 과일과 채소들을 건강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다양한 레시피들을 제공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코너 속 코너의 형식으로 일년 텃밭 농사 계획을 제시하고 있는 [제때 심어야 맛있죠]와 냉이, 참나물, 달래, , 두릅, 취나물 등 봄나물의 효능과 간략한 조리법을 공개하고 있는 [나물을 먹으면 기운이 나요], 블루베리와 벚나무, 향기로운 꽃이 피는 금목서 등 여러가지 정원수를 소개하고 있는 [어떤 나무를 심을까?], 라벤더, 로즈마리, 민트, 바질 등 허브의 종류와 쓰임새에 대한 정보를 주는 [허브는 쓸모가 많아요], 계수나무, 느티나무, 떡갈나무, 호랑가시나무 등 잎의 생김새와 특징을 통해 나뭇잎만 보고도 어떤 나무인지 알 수 있는 팁을 제공하고 있는 [이파리만 봐도 알 수 있어요] 등 식물과 정원에 대한 정보부터 요리방법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텃밭과 정원을 함께 가꾸며 서로를 아끼며 살아가는 노부부의 삶을 지켜보면서 사랑과 인생 그리고 가족의 의미를 반추해볼 수 있었다. 특히나 기억에 남았던 것은 노부부의 대화들이었다.



이제 수선화랑 크로커스는 한창 때가 지났어요.”

오후 휴식 시간, 뜨거운 차를 홀짝거리던 할아버지가 서운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내년에는 더 좋은 꽃을 피우겠죠. 항상 그래 왔잖아요.”

할머니도 같은 마음이지만 애써 서운함을 달래 봅니다.

해마다 피고 지는 식물들을 보면 해가 다르게 커 가는 내 자식 같아요.”

자식 많아서 좋으시겠소.”

할머니는 빙그레 웃습니다. (P. 23)



올해도 다 갔군요.”

올해도 다 갔어요.”

일년 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당신.”

일년 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당신도.”

부부는 서로에게 꾸벅 인사를 합니다.

내년은 또 어떤 꽃을 피울까 기대가 돼요.”

내년은 올해와 같지만 또 다르겠지요.”

도란도란, 부부의 이야기는 밤이 새도록 이어집니다. (P. 92)



아이와 함께 책을 다 읽고 난 후 문득 궁금해졌다. 호두가 터트린 할머니의 인형 속에서 우연히 발견하게 된 그 작은 씨앗들은 어떤 식물이 되었을까? 독서를 마치고도 아이와 함께 대화를 나눠볼 수 있는 주제가 생긴 것 같아 즐거웠다. 그 작은 씨앗들이 싹을 틔우고, 아름다운 식물로 성장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노부부는 같지만 또 다른 미래를 향해서 기대에 찬 눈빛을 주고받지 않았을까? 아이와 함께 여러 번 반복해서 읽을 때마다 또 다른 대화주제를 매번 발견할 정도로 곱씹어 읽을수록 그 진가가 드러나는 책이었다. 삶의 의미가 담겨있는 노부부의 대화에 대해서는 아직 그 의미를 다 깨닫지 못한 것 같지만 아이가 성장하면서 또 다른 추억과 대화 주제가 생길 것 같아 괜히 가슴이 설레고 기대가 된다.



지은이의 말을 보면서 강아지 3남매 중 막내인 오토가 2년전 갑작스럽게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오토의 빈자리를 느끼지만 여전히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는 호두와 마루가 반겨주는 호두네 정원을 더 늦기 전에 꼭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올 여름이 다 지나가기 전에 꼭 호두네 정원에 들려 더위로 지친 할아버지의 입맛을 되살린 할머니의 특급 레시피가 담긴 냉차 한잔을 즐겨야겠다. 애플민트와 레몬밤, 로즈메리가 얼음과 함께 어우러진... 유난히 강아지를 좋아하는 아이와 함께 행복의 비결이 있을 것 같은 삼부골 호두네 정원에 꼭 들려봐야겠다. 책에서 읽었던 추억을 아이와 새롭게 공유할 그 날이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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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페미니스트
서한영교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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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일, 그 공포, 혼란, 좌절의 연속에 대한 인생 현장 보고서"


이는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홍보문구였다. 소설의 내용은 82년생 여성 중 가장 흔한 이름을 가진 주인공 '김지영씨'가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30대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직간접적으로 경험했을 법한 사건들을 겪는 이야기이다. 소설의 주인공이 '김지영'이 아닌 '김지영씨'인 이유는 '김지영씨'가 현재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에코세대 여성을 대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종 통계자료와 기사들을 근거로 객관적으로 재현해낸 지극히 평범한 그녀의 평균적인 삶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보편적 체험이자 삶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그럼으로써 그 보편적인 일상이 얼마나 차별적이고 불합리한지 깨닫게 해준다. 이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많은 지지와 공감을 얻은 이유는 우리 주위에 보편적인 평범한 삶을 살아가며 아픔과 상처를 겪고 있는 수많은 ‘김지영’들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김지영씨'의 삶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30대 여성들의 이야기이지만 다른 누군가는 이해하지 못할 삶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어느 누구에게는 결코 경험하지 못한 또 공감하지 못하는 삶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 역사학자 거다 러너는 “남성은 새로 시작할 필요가 없다. ‘아버지’의 어깨 위에서 인류의 지적 전통을 자연스레 전수 받으며 세계를 조망하기 때문이다.”고 했다. 세계는 아버지의 이름에 의해 호명되고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남성은 세계를 잘 익히기만 하면 된다. 이에 반해 여성은 끊임 없이 자신을 단속해야 하며 아버지의 어깨 위로 올라가 세상을 조망하지 못한다. (P. 22)


우리 주변의 수많은 김지영들은 일상의 부조리 앞에서 눈을 감고 입을 닫고 살아왔다. 기득권 가해자들이 작은 것 하나를 잃을까 전전긍긍할 때 피해자인 여성들은 삶의 전부를 잃을 각오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세상은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피로와 보복, 무력감 속에서 괴로워해야했기 때문이다. <두번째 페미니스트>의 저자 서한영교는 남성 중심의 역사와 신화로부터 추방당한 자들의 곁에서 ‘두번째 사람’으로서 폭풍 속에서 폭풍이 멈추기 전까지 모든 걸 걸수 밖에 없는 ‘첫 번째 사람들’을 기억하고 기록하고자 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저자는 아버지의 어깨 위에서 세계를 조망하면서 직간접적으로 또, 무의식적으로 혜택을 받아온 남성으로서의 한계를 인식하고, 동시에 사회적 약자들에게 권리와 기회의 평등을 제공할 수 있도록 미약한 힘을 보태고 있다. 이것이 <두번째 페미니스트>란 책 제목의 의미이다.


“진정한 탐험은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 곳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여행하는 것이다” (P. 59)


소설 <82년생 김지영> "한국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일, 그 공포, 혼란, 좌절의 연속에 대한 인생 현장 보고서"라고 한다면, <두번째 페미니스트>는 “생활도, 일도, 꿈도, 심지어 자신의 정체성 마저 혼란을 겪는 첫번째 사람을 곁에서 지켜본 두번째 사람의 인생 성찰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육아휴직을 신청하면서 겪게 된 불합리한 사회의 이면을 경험하고, 친구에게 육아의 기쁨에 대해 털어 놓는 자리에서도 '맘충'이라 비난을 받게 되면서 저자는 평범한 남자들은 결코 알지 못할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하나하나 깨달아가고 있었다.


“내가 무슨 페미니즘 공부 한다고... 자기 성찰 모드로 진입하여 잡초 솎듯 내 안에서 자란 못난 남자 하나를 뽑아낸다. 얼마쯤 뽑아내야 할까. 아마 죽기 전까지 계속되어야 하는 길고 긴 여정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P. 222)


저자는 조심스럽게 그리고 겸손하게 ‘두번째 페미니스트’를 자처하고 있지만, 나는 ‘두번째’라는 포지션도, ‘페미니스트’라는 사상도 감히 주장하고 자처할 수 없는 평범한 남자에 불과하다. 다만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육아를 하면서 나도 저자가 겪은 상황과 피력하는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부분이 많았다는 걸 고백하고자 한다.


"당신 정말 육아휴직 갈꺼니?"


세상에 태어난 딸에 대한 축하인사 다음으로 회사의 경영지원부문 임원이 내게 건넨 말이다. 일과 가정의 균형을 위해 회사는 남성육아휴직을 의무화하기로 하였지만 아직 안정적으로 정착이 되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의 인사와 복지정책을 총괄하는 경영지원부문 임원의 농담인 듯 진담인 듯 건넨 말 한마디는 내게 항거할 수 없는 압박이었고 보이지 않는 권력이었다.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지만 그 안의 소소한 규칙, 약속, 습관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는 걸 일상에서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또한 이는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평범한 남자들은 모르는 게 당연하다는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아내로, 엄마로 살아가는 것의 고충을 느끼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세상이 변하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가시화되고 권력화된 악 때문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악의 없는 무심함, 선의로 포장된 무례가 누적된 결과가 아닐까?


“아버지라는 이름은 꽃과 같아서 매일같이 물을 주고 돌봐야한다. 물을 주지도 않고 돌보지도 않았는데 아버지라는 이름의 꽃이 살아 있다면 그것은 조화에 불과하다. (P. 206)


페미니즘으로 가는 길은 하나일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살아온 배경과 삶이 다르므로 각자의 삶에 말을 걸고 삶의 사소한 부분부터 변화에 대한 의지를 불어 넣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삶의 작은 순간들이 누적되어 한 사람의 일생을 구성하듯 세상의 변화도 생각보다 작은 부분에서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고민 끝에 회사에 남성 육아휴직을 신청하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이는 물론 태어난 아이를 위해 앞으로 일정부분 여성이 아닌 엄마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될 아내 그리고 세상에 태어나 또 다른 여성으로서 살아갈 내 딸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내린 결정이 조직 구성원들의 부정적 인식을 전환시켜 육아휴직제도가 안정화되고 나아가 조직문화가 개선되는데 미약하나마 기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시인 브레히트는 자신의 서재 대들보에 “진리는 구체적이다.” 라고 크게 써놓았다고 한다. 구체적이지 않은 진리는 인간을 모호한 주관적 확신으로 이끈다. 때문에 진리는 언제나 구체적이어야 한다. 생동하는 저 세계를 구체적으로 겪어나가야 한다. 나 역시 “가부장 체제를 박살내야 합니다.”라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살아갈 뿐이다. 구체적이지 않고서는 관통할 수 없기 때문이다. (P. 227)


쉽사리 변하지 않는 세상에 절망하지 않고 신뢰하고 연대하며 협력과 공생의 질서를 만들어나가는 것, 그것이 비록 사소하고 미약한 성공에 불과하다고 할지라도 아내와 엄마가 아닌 여성으로서의 삶이 빛나는 사회로 나아가는 동력은 그러한 곳에서 나온다고 나는 믿는다. 차별과 질책에 굴하지 않고 지금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첫번째 사람들의 희생과 헌신이, 그리고 그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작지만 끊이지 않는 두번째 목소리들이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 될 것을 믿어 의침치 않는다.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엄마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여성들의 삶에 행복이 깃들길 그리고 그들의 곁에서 같이 행복을 만들어가는 두번째 사람들의 진정성 있는 마음을 진심으로 존경하며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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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인생에 답이 없어요 - 크리에이터 선바의 거침없는 현생 만담
선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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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성장하면서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 중 하나는 꿈과 장래희망에 관한 것일 것이다. 아이들에게 꿈이 무엇인지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 묻는 건 상당히 흔하고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가 성장해가면서 이 질문이 담고 있는 의미는 '너는 도화지와 같아서 어떤 그림으로든 완성될 수 있단다. 너의 무한한 가능성을 맘껏 펼쳐보렴'에서 "이제는 무슨 일을 하며 살 것인지 정해야 하지 않겠니?"로 바뀌어 간다.


“너 그렇게 게임만 하다 뭐가 될래?

“음... 구독자 50만 유투버요?


<제 인생에 답이 없어요>의 저자인 선바는 60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투버 (2019 8월 기준)이자 트위치 스트리머이다. 어린시절 하루 종일 컴퓨터만 하는 사람이 되고 있던 아이는 마침내 소원을 이뤘고, 소원을 이룬 소감으로 우리에게 인생에 대한 심오한 철학 대신 “소원을 빌때는 신중해지자”는 유머가 담긴 조크를 건낸다. 단 한번 주어지는 삶이지만 우리는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며 남들이 정해놓은 진로와 목표를 향해 걷는다. 마치 제도권 내의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만이 인생의 유일한 성공이라는듯이 말이다. 하지만 저자 선바는 인생이 적성에 안 맞아도, 사는게 답이 없어도 우리는 즐거워질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에세이로 분류되긴 하지만 전문적 에세이라기 보다는 다양한 주제에 대한 저자 선바의 생각이 담긴 짧은 글들을 정리한 것에 가깝다. 예를 들어 ‘인생’에 대해서는 “인생은 한권의 전공서적, 암만 봐도 모르겠어요.”로, ‘내가 직접 체험해본 다음 진심으로 해보고 싶은 말’에 대해서는 “돈? 명예? 그거 다 부질 없더라구요. 인생은 그런걸로 채워지는 게 아닙니다.”로 저자의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식이다. 때문에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는 인기와 영향력을 이용하기 위해 유투버가 펴낸 가벼운 책이 아닐까 하는 오해를 하기도 했다. 책의 표지와 마케팅 문구로 사용된 ‘희망으로 2행시’는 이러한 생각을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희희

: 망했다. 훌훌 털고 다른 걸 해보자.


책의 표지에서 본 ‘희망으로 2행시’는 저자의 유투버라는 직업과 20대의 나이라는 프레임으로 인해 저자의 삶에 대한 긍정적인 자세 보다는 복잡한 걸 싫어하고 재미를 추구하면서 쉽게 흥미를 잃어버리는 90년대생들의 부정적인 모습이 더 부각되는 것 같았다. 이러한 편견에서 비롯된 오해는 책을 읽고 저자의 긍정적인 에너지와 삶에 대한 진지한 자세를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었다. 또한 일견 가볍게 보일 수 있는 ‘희망으로 2행시’에 담긴 저자 선바의 희망에 대한 철학에도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희망이란 밝은 미래로 나아가는, 나 자신이 향상되고 성장한다는 의미로 인식될 때가 많다. 하지만 이런 의미 보다는 내가 뭔가에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믿는 의미의 희망이 나에게는 더 밝고 따뜻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p. 44)





“인생을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책의 제목에서부터 밝히고 있듯이 저자도 인생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더 나아가 저자는 보편적인 인생에 대한 답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생에 대한 해답 또한 가지고 있지 않다고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다. 그러면서 답이 없는 인생이라도 괜찮다고 말한다. 인생에 있어 저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정해진 답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선택의 기준과 원칙 등 삶의 방향을 명확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 선바는 삶의 방향을 설정해 놓으면 가는 길에 넘어지고 굴러떨어져도 적어도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곳으로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는 걸 인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답이 없어도 질문이 있다면 인생이라는 험난한 항해에서 방향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말 그렇지 않은가? 어쩌면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삶에서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나가는 과정 그 자체를 인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최근 청소년들의 장래희망으로 유투버 등의 크리에이터가 높은 순위로 언급되는 설문조사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1인 크리에이터인 저자가 자신처럼 되고 싶어하는 청소년들에게 남기는 조언은 무엇일까?


1인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이들에게 성공이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포함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반응, 조회수와 유행 보단 자신이 즐겁게 할 수 있는 컨텐츠를 만들어 보는것을 추천한다. (p. 138)


이러한 조언은 삶의 원칙과 방향을 중요시하는 저자의 삶에 대한 자세와 “쓸모 있는 일만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쓸모 없는 일도 없다. (p. 103)는 인생에 대한 철학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더 설득력을 얻는다. 저자는 책에서 음악을 사랑하는 팬으로서 공연도 좋지만, 공연이 시작되기 전의 그 웅성웅성한 분위기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있다. 확실한 기쁨을 앞두고 있는 불완전한 시간이 자아내는 공연장 특유의 분위기가 오히려 공연 보다 더 좋을 수 있다는 것은 나도 몇 차례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잠시 후 있을 공연의 셋리스트를 상상하면서, 언제 다시 있을지 모를 이 공연, 바로 이 순간에 함께하고 있다는 걸 체감하는 건 분명 인생의 즐거움 중 하나였다. 이번에 <제 인생에 답이 없어요>를 읽으며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책에서 인생에 답은 없어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고, 남들의 조언을 따르지 않고도 삶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밝고 따뜻한 긍정의 에너지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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