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현대문학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영원히 돌아가는 회전열차

 

내가 한 번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이 하나 있어.

그건 바로 너야.

네가 거리에서 돌아다녀도, 네가 술을 마시고 거리를 걸어다녀도, 나는 널 죽이지 않을 거야.

겁낼 거 없어. 그 도시는 위험하지 않아. 그 도시의 유일한 위험은 바로 나야.

나는 거리를 계속해서 걷고 또 걸으면서 사람을 죽이지.

그러나 너, 너만은 겁낼 거 없어.

내가 너인 것은 네 걸음걸이를 좋아하기 때문이야. 너는 비틀거리며 걸어. 그게 아름답다는 거야. 사람들은 네가 다리를 전다고 말할지도 모르지. 그리고 네가 꼽추라고도 하지. 사실 넌 그렇지 않은데 말이야. 이따금 너는 허리를 펴고 똑바로 걷기도 하지. 그러나 난 말이야, 밤늦은 시간에 지쳐서 허리가 구부정한 채 비틀거리며 걷는 너를 사랑해.

나는 너야, 넌 떨고 있어. 추워서인지 두려워서인지. 아무튼 날씨는 더워.

한 번도, 거의 한 번도, 어쩌면 한 번도, 우리 도시에서는 날씨가 그렇게까지 더웠던 적이 없었어.

그런데 넌 뭘 두려워하는 거지?

내가 두려운 거야?

난 너의 적이 아니야, 널 사랑한다구.

다른 아무도 널 해칠 수 없을 거야.

두려워하지 마. 내가 있잖아. 내가 널 보호해줄게. 하지만 나도 괴로워.

굵은 빗방울 같은 눈물이 내 얼굴 위로 흘러내리고 있어. 밤은 나를 감싸주지. 달빛은 나를 밝혀주고 구름은 날 감춰주고. 바람은 나를 찧어놓는군. 나는 너에게 일종의 애정 같은 것을 느껴. 내게는 왜 하필이면 그 대상이 너냐구? 글쎄 나도 모르지.

나는 너를 어디라도 아주 멀리까지라도 오랫동안 쫓아가고 싶어.

나는 네가 좀 더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나는 네가 다른 모든 것에 싫증내기를 바래.

나는 네가 내게 와서 안아달라고 애원하기를 바라지.

나는 네가 나를 원하길 바래. 네가 나를 갖고 싶어 하고, 나를 사랑하고, 내게 전화해주기를 바래.

그러면, 나는 널 두 팔 벌려 맞아줄 것이고, 내 품에 꼭 끌어안을 거야. 너는 나의 아이, 나의 연인, 나의 사랑이니까.

나는 널 데려갈 거야.

넌 태어나기를 두려워했고 이제는 죽기를 두려워하고 있어.

넌 뭐든지 두려워해.

두려워할 필요 없어.

돌아가는 회전열차가 있을 뿐이야. 그것은 '영원'이라고도 하는 거야.

회전열차를 돌아가게 하는 것은 바로 나야.

넌 나를 두려워해서는 안 돼.

회전열차도 두려워하지 마.

너를 두렵게 하고 너를 해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인생이라는 것, 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

 

감미롭고 날카로운 영상과 이야기.

인간의 마음의 반전, 공간의 반전, 운명의 반전.

그러나 놀라움으로 문장이 채색되지는 않는다. 그저 담담한 어조, 그래서 더 날카로운.

그래, 뭐, 그런 거지라는 식으로 끝맺지만 실은 오~ 하는 감탄사가 나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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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지배자
크리스토프 바타이유 지음, 김정란 옮김 / 문학동네 / 199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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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가 앞에서 이야기했던 그 시간,

죽은 계절, 크리스마스가 오면,

늑대들은 바람으로 연명하며

사람들은 자기 집에 죽치고 들어앉아

추운 계절을 준비하며, 불을 쬐고 있다.

문득, 나의 가슴을 갈가리 찢어놓는

너무나 열렬한 사랑의 감옥을

그만 부숴버리고 싶은 마음이 불쑥 생겼다.

-프랑수아 비용

 

책 서면에 이 문장들이 써있다. 이 문장들은 의미 이전에 아름답다. 겨울이 오자 문득 생각난 어떤 감정, 그러나 그 감정은 공간 속에서 생성된 것, 공간과 시간이 만들어낸 것, 갑작스레, 우주가 숨을 내뱉듯, 떠오른 마음. 의미 이전에 아름다운 문장.

그리고 이 문장들은 이 책과 잘 어울린다. 안개 속 같은, 겨울의 서늘함이 느껴지는 소설. 그걸 예고하는 문장.

 

-종이가 만들어진다. 마치 자기 전생을 드러내기 위해서인 것처럼.

 

-사람들은 위대함의 기호에만 매달린다. 기껏해야 위대함의 아주 작은 메아리만을 받아들일 뿐이면서도. 그들은, 넓은 길이 아니라, 정원의 작은 빈터에서 시간의 힘을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는 세련되게 꾸밀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모든 것을 이해하게 해주고, 또 용서받게 해주는 그런 제스처를 취할 줄 몰랐다.

겉으로 보면, 그는 서투른 사람이었다. 그의 뻣뻣한 태도는 능란한 사람들에 대한 경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의 퉁명스러운 말투는 우아해지려는 노력이었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수줍고 서투른 사람들이 그렇듯이, 성공하지 못했다.

거인은 별로 말이 없었다. 공작과 함께 있을 때면 똑같은 말을 몇 번씩 반복하는가 하면, 어떤 말은 우물우물 삼켜버리기도 했다. 속임수를 쓸 줄 모르는 마술사처럼.

 

-그는 원인도 끝도 없는, 시간 그 자체 같은 사람이었다.

 

-그 얘기는 모두가 어떻게 좀 설명해보려고 앴는 저 다뉴브 강 위로 부는 바람 같았다.

 

-그들은 그의 침묵을 시샘했다.

 

-여기에는 금속으로 만든 짧은 바지가 놓여 있는가 하면, 저기에는 대리석 가면이 놓여 있었다. 마치 말을 할 줄 아는데 일부러 입을 다물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온갖 물건들.

 

-건물들의 식물적인 퇴락 때문에 그 매력은 한결 더 그윽하게 느껴졌다.

 

-영원을 생각하는 자는 자기 자신의 종말에 대해서만 생각한다는 것.

 

-두고보렴. 어느날인가 사람들이 널 잊어버릴 테니까. 넌 자유로워질 거야.

 

띄엄띄엄 읽었던 책. 김정란의 평론집 <<연두색 글쓰기>>에 써있는 멋진 평론(알고 보니 역자 후기였다)을 통해 알게 되고 어떤 책인가 궁금해 빌렸었다. 김정란의 평론, 새로운 귀족들이 오고 있다는 말이 기억난다.

세련됨, 이야기의 능수능란함이 아닌, 한 마디씩 조곤조곤 숨을 참고 내뱉는 말들 같은, 문장.

아주 긴 시간을 다루나 그리 길지 않은 책. 에두를 이야기는 에두르고 이야기 대신 그 일이 벌어지는 공간, 아니 공간이 담고 있는 분위기을 털실 풀어내듯 풀어내느 책이다. 춥고, 서늘한, 지하실 같은, 그러나 퇴폐가 침범하지는 않은 그 공간 속, 프랑스의 궁전. 거기 시간의 달인 '거인'의 이야기, 거인 이전의 두 달인과 거인, 거인의 아내와 자식에 관한, 이야기. 또 한 명의 주인공 성의 지배자의 이야기.

남겨지는 것은 그러나 이야기가 아니라, 어떤 서늘함과 허망함, 처절하게 찌르는 게 아니라, 오래 고요한 그 느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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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비령 - 1997년 제42회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이순원 외 지음 / 현대문학 / 199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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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소개를 받아 읽은 작품이다.

생각해보면 이순원 소설은 처음이다.

은비령이란 말이 예뻐서 오히려 기피했다고나 할까

비밀이 숨겨진 고개라는 뜻의 은비령, 이름만큼 아름다운 소설이다.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일, 사랑한다는 감정에 대해서, 그렇지만 또 어쩔 수 없음에 대해서

그외에 좋았던 작품은 김병언의 <금색 크레용>과 전경린의 <고통>

아~

하지만 사실 요새 나는 잘 모르겠다

사는 게 매일 고개를 넘는 일이지만,

요새 나는 책을 읽어도 잘 모르겠다, 왠지 구조를 보게 되고 느끼기 힘들어지는 이 고개에 있다.

매너리즘

여기를 어서 벗어나면 좋겠다.

 

 

 

그날밤, 은비령엔 아직 녹다 남은 눈이 날리고 나는 2천 5백만년 전의 생애에도 그랬고 이 생애에도 다시 비껴 지나가는 별을 내 가슴에 묻었다. 서로의 가슴에 별이 되어 묻고 묻히는 동안 은비령의 칼바람처럼 거친 숨결 속에서도 우리는 이 생애가 길지 않듯 이제 우리가 앞으로 기다려야 할 다음 생애까지의 시간도 길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꿈 속에 작은 새 한 마리가 북쪽으로 부리를 벼리러 스비스조드로 날아갈 때,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갈아입은 여자가 잠든 내 입술에 입을 맞추고 나가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별은 그렇게 어느 봄날 바람꽃처럼 내 곁으로 왔다가 이 세상에 없는 또 한 축을 따라 우주 속으로 고요히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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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
이상운 지음 / 하늘연못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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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김정란의 소설 평론집 『연두색 글쓰기』에서 이 작품의 평론을 보고(알고 보니 『탱고』 뒤에 삽입된 작품 해설이었다)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우주, 거대한 시간의 연속성과 순간, 카오스적 내면, 우연. 내가 이런 쪽에 어느 정도 나를 내주고 있기 때문이었을 게다. 아니, 이전에 그런 것들에 관심을 가졌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영원을 생각하는 사람은 개인의 종말 이외엔 관심이 없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면 삶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영원이라고 시간을 넓게 확장시켜 보는 태도는 일종의 자기애적 편집증에 가깝다는 것. 영원이라고 말하지만, 실은 두려움 속에서 현실을 외면하는 한 방식일 가능성이 크다.

이상운의 『탱고』는 연애소설이라고 보는 게 가장 맞을 것 같다. 하긴, 연애소설이 아닌 소설이 정말 어디 있을까 싶지만, 사랑보다 더 커다란 사건이 이 우주에 있을 수 있을까 싶지만, 어쨌든 이 연애소설은 그러나, 사랑을, 자기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을, 똑바로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려 하지 않는다. 우주라는 거대 공간 속에서 자신을 점보다 못한 존재로 만들어버림으로써 사랑의 위대성을 감당하기를 주저한다. 이 소설 안에서, 혜리라는 존재는 미궁의 존재, 환상의 존재에 머물다 마지막에서야 편지 형식을 통해 그 껍질을 한 꺼풀 벗는다. 하지만, 그 껍질을 벗는 건 두 사람이 만남을 통해, 은밀하면서도 직설적인, 예감을 품은 대화와 사건을 통해서여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혜리는 캐릭터가 없는, 그저 어둠 속에 몸을 감춘 여인, 이상의 그 누구도 되지 못한다. 그녀가 그 어둠 속에 몸을 감추는 방식이 바로 그녀의 캐릭터일진대, 그 방식이 약간의 상징과 해석하지 않으려드는 사건 속에 놓임으로 해서 이러한 벽이 생긴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의 많은 문장들이 내게는 그닥 의미 있는 울림으로 읽히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춤을 춘다던가, 가끔 함께 춤을 추지만 다시 각자의 춤을 춘다는 뜻의 문장들이, 너무 자주 반복되며, 소설을 답답한 구석으로 몰고가는 기분이었다. 소설은 코너에 몰려있음에 대한 자기 고백이 아니라 코너에 몰렸을 때 그에 대해 대응하는 인간의 방식을 보여주어야 한다. 가만히 있어도 끝없이 투쟁하는 인간을.

김정란의 평론은 이 작품이 역사와 맞물린다고 해석하고 있지만 그리고 그녀의 평론을 읽으면 수긍을 할 수 있지만, 혼자서 작품을 읽고 그 정도로까지 해석을 해내는 건 지독한 애정이 없다면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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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이방인
이창래 지음, 정영목 옮김 / 나무와숲 / 200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운명을 유혹하지 말고, 완전히 무시해 버려라.

이것이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 우리는 종종 아니 어쩌면 인지하지 못하는 그 모든 순간에도 끊임없이 운명에게 머리채를 잡힌 채 질질 끌려가며 살기 십상이라는 것.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치러야할 숱한 자기 고백과 직시, 상심, 주문 같은 통증에 대한 책.

그리고 존재를 꿰뚫는 문장. 무수하게 꾸불꾸불한 그 존재의 막다른 곳까지 타고 들어가는, 거기에 대해 쓴다.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거기.

균열에 대한 직설, 명확하게 꼭 알맞은 수만큼의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느낌.


정체성을 찾기 위한 치열한 전투 과정을 그린 한 편의 연애소설. 그것을 위해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야하며 거기서 고통 받고, 그 고통을 받아들이고 흡수하고 낭만과 싸워야 하는가.





 


-그녀는 한 단어씩 나아갔다. 모든 글자에는 경계가 있었다. 나는 그녀의 크고 풍만한 입을 지켜보았다. 그녀의 입은 어두운 집을 돌아다니며 불을 켤 수 있는 지점들을 점점이 또는 줄줄이 완벽하게 짚어내는 사람처럼 자신의 문장들 속을 휩쓸고 다녔다.

어떤 엄격함을 갖춘 관능.



-손가락이 굵은 땅의 사람들, 인간 잡초들, 단단하고, 서럽고, 늘 지진 같은 감정 폭발로 그들 삶의 칙칙한 껍질을 부수고 나올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



-그녀는 아마 평생 어떤 곳에서 다른 곳으로 움직여 다니는 것처럼, 당당하게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렇게 보니, 갑자기 그녀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자신의 삶 앞에 제대로 서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이미 그녀가 죽을 때 아버지가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아버지가 그 나름의 말로 할 수 없는 그늘진 방식으로 고통을 겪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이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어쩌면 침묵이라는 그릇된 명예에 너무 자주 의존하고, 이익을 얻기 위하여 그것을 남용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를 릴리아에게 잘 보여주었다. 때로는 잔인하게 나의 얼굴을 비길 데 없는 가면으로, 가장 둔한 도구로 사용하면서. 재니스의 존 김, 절묘하게 입을 다물었던 존 김은 단층에 시달리는 땅덩이와 같아 흔들거리면서 격렬하게 폭발할 것 같지만 그러다가 스스로 꺼져 버린다. 자기 자신의 갈라진 틈 저 아래로 부드럽고 균일하게 폭포처럼 내려앉았다가 다시 빽빽하게 살이 차 올라온다.


-죽어 가는 사람은 약간 위에서 자신이 죽은 현장을 내려다보며, 그가 어떤 사람이든 나이가 몇이든 그 마지막 광경으로부터 지혜를 얻는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있는 사람들, 땅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좁은 것이고 부서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길고 넓은 군도에 흩어져 있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서로를 부를 수 없고,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서로를 볼 수도 없다.


-내가 밋이라는 것, 이어 그녀가 밋이라는 것, 포개쌓은 우리 둘의 몸이 이제는 성장한 그 아이들 모두의 무게를 견디며 버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입술과 눈이 부풀어오르도록 서로를 거의 죽을 때까지 압박하면서, 눈물이 떨어지기를, 그 위대하고 자유로운 분노가, 그 크고 무겁고 살찐 우울이 떨어져 내리기를 우리 자신에게 빌었다. 분노와 우울이 순식간에 충분하게 겹쳐 쌓이면, 가끔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를 악물고 격렬하게 사랑을 나누었으며, 그럴 때면 우리는 먼저 씨팔하고 욕부터 해야만 진실의 맨 첫 부분이라도 말할 수 있었다. 침대에서는, 우리 사이의 공간에서는, 그것이 모든 육체- 살아 있건, 죽었건 아니면 삶과 죽음 사이에 걸려 있건-가 나아가는 슬픈 길이었다. 결합의 가장 진실한 순간을 영원히 상실한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아침이면 말짱한 희망이 찾아왔다. 이어 늘 찾아오는 명령들. 릴리아를 찾아라. 자, 이제 생각해라. 영원히 생각을 해라. 그런 뒤에 그 애의 죽음에서 불가사의한 것들, 진귀한 것들을 분리해 내라. 그래야 그것들이 네가 제대로 보도록 도와줄 것이다. 감상을 털어 버려라. 운명과 사랑에 빠지는 짓거리를 그만두어라. 가능하다면, 죽은 자의 마지막 거처에서 살아라.


-피에 대한 믿음, 아들이나 딸에게 네 인생은 결코 외롭지 않을 것이라고 다독거려 주는, 깰 수 없는 연계.


-만일 내가 평생 가족의 배고픔을 느껴왔다 하더라도, 이제 그것이 나의 일용할 양식이 될 것 같았다.


-밋은 나를 사랑한다는 말을 네 번 했다. 릴리아는 세 번 했다.

나는 이 말들을 그녀가 똑같은 말을 하던 다른 순간의 기억들 몇 가지와 비교했다. 우리가 함께 살기로 결정한 날 밤, alt이 태어난 날 아침, 내가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웠다고 생각하여 바에서 술에 취했던 날.

나는 그 말에 편안함을 느꼈던 적이 없다. 늘 곤혹스러울 뿐이었다. 그 말을 하는 모든 방식에. 그 말은 축제를 기념하는 의미로도 할 수 있다. 확인을 해주기 위해서도. 감사의 뜻으로도. 요점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도, 연인에게 죄책감을 주기 위해서도, 자신을 방어하기 우해서도. 한참을 숙고한 끝에 그 말을 할 수도 있고, 무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말을 할 수 있다. 진심으로 말할 때도 있고, 가끔은 진심이 아닐 때 말할 수도 있다.

어쨌든 간에 늘 해야 할 때만 그 말을 한다.


-“말이야, 나는 모든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였어. 다 내 인생으로 돌아오라는 이야기였지. 내 인생으로 돌아오라고. 마치 내가 마음만 먹으면 그럴 수 있는 것처럼.”


-평소처럼 나는 그녀의 속도를 따라잡으려고 노력했다. 같은 페이지로 넘어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미안해, 헨리, 나도 재미없는 짓은 하고 싶지 않지만, 당신이 내 밤 한가운데로 들어와서 우리 역사를 고쳐 쓰는 것을 그냥 놔두지는 않을 생각이야.”


-“나에 대해, 당신에 대해, 실제로 어느 날인가는 당신 머리 속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내가 하나도 모른다는 걸 깨달았어. 때로는 당신이 여기에,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 그러니까 말이야, 참여하고 있는 것,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어.”


-“당신은 정말 그럴 수는 없어, 그런 식으로 켰다 껐다 할 수는 없어. 영원히 그럴 수는 없어.”


-릴리아는 나를 만나기에 앞서 일련의 남자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그녀에게 늘 미안함과 혼란과 강도질당한 것 같은 느낌을 남겼다.


-이런 말을 해도 좋다면, 나는 늘 초대를 받은 곳, 아니면 초대 없이 가도 환영을 받을 수 있는 곳만 찾아다녔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는 혀와 심장과 마음이 담긴 모든 범주의 침묵을 기념한다. 나는 현장의 언어학자다. 당신 역시 그 곤혹스럽고 전문적인 위력을 알지 모르겠다. 그 위력은 당신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단단한 표현을 찾아내는 것이다. 지금 그 얼굴을 보라. 당신이 보는 것은 언젠가는 모두 희미해질 것이다. 싸늘한 냉기만 남기고.


-“진실하게 말을 해도 악마나 배반자가 되지 않는 방법이 틀림없이 있다는 것을 자네도 알아야 하네.”

“아주 작은 소리로 말해야겠죠.”

나는 그에게 나의 삶의 일관된 답을 제시했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만.”


-좋은 첩자는 모든 절박한 순간의 은밀한 기록자에 불과하다.


-나는 굶주린 개처럼 모든 개인적 정서의 내장들을 쫓아다녀야 한다. 나는 작전 대상이 좋아하는 마음과 싫어하는 마음을 드러내야 하고 자극해야 한다. 마음의 매너리즘. 그의 삶의 상습적 경련.


-말하는 사람은 딱 어느 만큼만 어둠 속에 얼굴을 감출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우리는 그가 나오기를, 빛 속으로 들어서기를, 자신을 드러내기를 바란다. 우리 시대는 이런 식이다.


-인간의 사건과 시간을 망라하는 우리의 불가결한 허구들 속에 자리잡고 있는 더 큰 진실을 알기 때문에, 그냥 한 인물 안에 손전등을 들이대지 못하고, 강과 같은 인물을 덧없는 언어로 그려내지 못하는 것일까?


-나를 그렇게 가까이 두는 사람을 어떻게 추적할까? 내가 알 필요가 있는 것 이상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 대해 어떻게 쓸까? 어디서 시작하며, 어디서 끝을 낼 수 있을까?


-“당신은 한 번에 조금씩만 살려고 해. 당신 인생의 아주 작은 부분만 살려고 해.”

“안 그러려고 노력하는 중이야.”


-지금 내가 모든 것을 목록의 형태로 기억하고 있는 것은 이런 생각들이 둥둥 떠다니는 기억의 줄을 타고 내게 오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시내로부터 나를 끌어내 이곳으로, 우리의 유령들의 장소로 돌아오게 하는 길고 서정적인 행렬.


-그러나 나는 두려움을 견딜 수 있다. 숙련된 사람이라면 스스로를 단단하게 굳히려 하지 않는다. 실제로 정반대의 일을 한다. 그냥 자신을 놓아버린다. 완전하게.


-사람이 시베리아처럼 고요해질 수 있다는 것을.


-늘 뿌리째 뽑아 버리려 하면서도 늘 이용하게 되는 유서 깊은 형제간의 약한 마음.


-하나의 목소리로 이루어진 삶. 그래야만 아이의 반은 노란색인 넓적한 얼굴로는 얻을 수 없는 귄위와 자신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이것은 동화주의적 감성이며, 나 자신과 이 땅의 추하고 또 반은 맹목적인 로맨스의 일부이기도 하다.


“자아에 대한 아주 분명하고 강렬한 느낌이 없으면 다른 사람이 자기 맨머리를 두드리게 할 수 없어. 모든 것이 거기에서 시작되지. 모든 것이. 무슨 일이 있어도 허리를 낮추어라. 최대한 자신을 보호하라. 그리고 그 자리에 서게 된 이유에 집중하라.”


-거리와 고개를 숙이는 절로 이루어진 우리의 말쑥한 언어로. 그 언어라면 진짜 비밀들을 천천히 불러낼 수도 있도, 천천히 드러낼 수도 있다.


-당신 요구의 살이 있는 형체를 보고 싶다. 당신이 잃은, 또는 누군가가 훔쳐간, 또는 사기쳐간 피를 알고 싶다. 당신이 세상으로부터 간절히 돌려받고 싶어 하는 그 피를 알고 싶다.


-나는 아이가 너무 선선하게 헌신하고 존중하는 태도, 싸늘한 피, 그리고 한때 쓸모없다고 생각하여 절대 입 밖에 내지 않고 절대 살아보려고 하지도 않았던 타오르는 언어 같은 것들을 물려받았을까봐 걱정했던 것이다.


-그가 나에게 무슨 일을 하느냐, 또는 내가 그에게 무슨 일을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지 않은 다른 친구를 갖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따라서 어떤 침로를 따라 항해할 때에도, 그 침로가 변덕을 부릴 가능성이 많다고 예상을 하고 있어야 한다.


-계시들은 나무들 속에 어둡게 감추어진 먼 강굽이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 야만인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적은 한 번도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요구와 관심을 가지고 천사도 만들고 악마도 만든다. 길을 가면서 우리 자신으로부터 즉흥적으로 만들어낸다.


-나에게 가장 고귀한 것은 침묵이라는 고상한 재능이라는 것. 나의 고요와 평정의 가면.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나라는 이민자의 추한 진실은 내가 나 자신을, 그리고 착취 가능한 다른 사람들을 착취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나 나와 같은 종류의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차원이 있다. 우리는 억양과 관용어를 모조리 배울 것이다. 우리는 당신들이 유지하는 모든 허세와 관례를 고상한 것이든 황폐한 것이든, 모조리 벗겨낼 것이다. 당신들은 우리의 눈과 귀로부터 어떤 것도 안전하게 지킬 수 없다. 이것은 당신들 자신의 역사다. 우리는 가장 위험하고 충실한 당신 형제들이다. 우리 가슴에서 나오는 노래는 사나운 동시에 서글프다. 오직 당신들만이 나에게 이런 서정적인 양식들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양식들을 통해 당신에게 대꾸한다. 이것이 내가 감히 키워올 수 있었던 유일한 재능이다. 이것이 내가 받은 미국식 교육의 전부다.


-안아 주려고 반쯤 들어 올리면, 아이들은 내가 영원히 잊지 못할 바로 그 크기, 나에게는 너무나 경이로운 그리고 끔찍한 바로 그 무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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