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 걸작선
브램 스토커 외 지음, 정진영 편역 / 책세상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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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큰이모 댁은 고지대의 골목을 몇 번이나 꺾어들어가야 하는 곳에 있었다. 외가는 명절 때마다 큰이모 댁에 모여서 흥성거리는 잔치를 벌였으므로 그곳에 갈 일이 종종 있었는데 나는 그 가로등조차 몇 개 없는 골목길을 혼자 가다가 길을 잃는 게 아닐까 늘 무서웠다. 실제로 길을 잃은 경험이 있었는지는 잊었지만 밤에 그 길을 혼자 걷는 일을 상상하는 것만로도 늘 두려움이 솟구쳤다.

그런 두려움이 깊이 각인되어서인지 나는 종종 그 골목길에 서있다. 꿈속에서. 너무 많은 꿈을 꿔서 이제는 그 골목길의 실제 모습이 어떤지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매번 꿈에서 그 골목길은 조금씩 형태가 바뀌는데 어쨌든 비좁고 약간은 음산하며 낡은 돌로 된 하수구가 있고 곧 모퉁이가 나오도록 되어 있다. 겹겹이 모퉁이가 있는 미로 같은 골목인 셈이다. 며칠 전 꿈에서는 그 골목길을 혼자 가야만 하는 상황이었는데, 길 여기저기 개들이 무리지어 있어서 차마 발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오십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나타나 앞서 가기 시작했다. 나는 마침 잘됐다 싶어 그 남자를 따라 걸었다. 어쨌든 그 길을 지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털이 듬성듬성 빠진 사이사이로 상처가 드러난 개 한 마리가 앞서 걷던 그 남자의 다리를 물었다. 몹시 천천히 일이 벌어졌는데, 남자는 그 개를 떼내기는 커녕 물린 채로 가만히 그 상황을 음미하듯 서있는 것이다. 그 남자를 초연히 지나쳐가지 않고 비명을 지르거나 조금만 관심을 보여도 곧 그 개떼가 모두 내게 달려들 것을 알았다. 나는 아주 천천히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는 듯한 그런 몸짓을 지으려 안간힘을 쓰며 그 남자를 지나쳐서 몇 발 자국 더 갔다. 그런 채로 꿈에서 깨어났다. 기분이 몹시 안 좋게 깨어난 뒤로 몇 번이나 그 꿈에 대해 생각했기 때문에 아직도 생생하다.

『뱀파이어 걸작선』. 제목만 봐서는 그렇고 그런 피를 빠는 죽은 시체 이야기겠거니 했는데 읽다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뱀파이어에게 영혼을 빼앗긴다는 것은 미로에 빠진 것처럼 비슷한 곳을 맴돌다 그만 길을 잃는 일이 아닐까 싶었고, 그 뱀파이어와의 만남이 우연이건 운명이건 결국 그 안에 빠져들면 자꾸만 그 굴레를 맴돌 수밖에 없도록 되는 어떤 미묘한 힘의 지배를 받는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특히 「카르밀라」, 「뱀파이어」, 「피는 내 생명」, 「죽은 연인」의 주인공들은 어떤 거부할 수 없는 지배를 받는 듯 수레바퀴를 굴리느라 허덕이며 차츰 죽음 쪽으로 향해가는 것 같았다. 매번 계속되는 악몽이 그렇듯. 그런데 실제로 어떤 이상한 일에 이끌리기 시작하면 마치 모든 게 정해진 운명처럼 점점 이성이나 판단력이 흐려지며 그 중심부로 흘러들어가게 되는데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보면 자신이 그때 대단히 우둔한 판단을 하며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지속했음에 깜짝 놀라게 된다.

친구들에게 이 책에 실린 「탑실」 이야기를 해주니 우리나라 전설의 고향과 몹시 비슷하다고 했다. 문득 생각해보니 그런 것도 같다. 결국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혹은 일어날 수 있는 공포는 비슷한 건가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소설 중 제일 재밌었던 이야기는 「시튼의 이모」와 「비이」였다. 「시튼의 이모」는 어딘가 몹시 이상야릇한 분위기가 소설 전체에서 풍겨나오며 결국 실제 사건의 전모는 베일에 가려지는데 오히려 그게 더 매력적이었다. 「비이」는 민담의 효과를 활용해 느긋하고 걱정해야 할 상황이 분명함에도 금방 그 사실을 잊고마는 민중들의 모습이 나오는가 하면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희생자가 되고 마는 철학 수도생의 심리-보지 말아야 돼 하면서도 보고 마는 것, 자신이 겪은 일을 말해보려 해도 잘 말을 할 수 없는 점, 도움을 청할 수 없게 되는 이상한 심리 같은 것-가 사실적이었다.

이모네 댁 골목길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이제 그 골목길은 완전히 공사가 다시 돼서 그 골목의 전모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없게 되었다. 몇 번이고 다른 듯 비슷한 장소를 꿈속에서 헤매는 수밖에. 대신 아스팔트 직선 대로로 길이 났는데 오랜만에 이모댁에 갔을 때 그 거리가 내 생각과 달리 너무 짧아서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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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 룩셈부르크 평전
막스 갈로 지음, 임헌 옮김 / 푸른숲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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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 있다가 혁명의 불길이 샘솟는 폴란드 바르샤바로 달려간 로자는 괴물일까 인간일까.심장의 힘찬 박동을 느끼며 행동의 가장 선두로 나가 서는 이 인간, 자신의 감정을 느낀 그대로 표현하고 주저없이 행동하는 이 인간, “혁명은 장엄하다. 나머지 모든 것은 시시할 뿐이다!”고 말하는 이 인간은 인간일까 괴물일까. 숭고함에 마음을 빼앗겨버린 걸까. 정치라는 바알신, 역사라는 거대한 수레바퀴의 재물이었던 걸까.
“나 자신과 내 심장을 현기증나게 만들기 위해, 나는 곧 소용돌이 속으로 온몸을 던질 것이다. 그것만이 나에게는 유일하게 합당한 것이다.”


그러나 
로자는 묘비에 ‘츠비-츠비’라는 두 음절을 새겨주기를 바란다. “그건 검은 박새들의 울음소리예요. 내가 그 소리를 그럴듯하게 흉내내면 새들은 금방 날아오르곤 하지요.”
라고 말하기도 했단다. 너무 많은 것들을 한 몸으로 끌어안았던 인간.
“내게 남아있는 얼마 안 되는 생의 날들과 아직도 배워야 할 수많은 것들을 생각할 때면, 나는 두렵다.”
“요컨대, 만사를 크게 보고 웃으면서 받아들여야 한다. ……고통, 이별 그리고 향수. 삶이란 그런 게 아니던가. 그리고 늘상 있어온 문제들이 아니던가. 삶을 전체적으로 볼줄 알아야 한다. 동시에 그 무엇도 빠뜨림 없이, 삶이 제시하는 모든 것 속에서 의미와 아름다움을 발견할 줄 알아야 한다.”

아니면 그녀의 수많은 콤플렉스가 그녀를 그렇게 이끈 걸까. 여자에 유대인, 절름발이라는 콤플렉스. 그러나 그녀는 삶을 이 모든 흔적을 떼어놓은 채 살아간다. 이 모든 것들은 그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낭만주의의 뿌리』에서 이사야 벌린이 독일에서 낭만주의가 태동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말한 것과 같이 콤플렉스가 그녀를 이상주의자로 만든 걸까.
“나는 본래 이상주의자이며, 이상주의자로 남기를 원한다.”

대체 인간이란 무엇이며 역사란 무엇일까. 나는 아직도 인간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책에 나오는 교과서 같은 이야기-인간성, 희생, 연대-는 단순히 교과서일 뿐이며 어떤 선을 지키기 위한 안간힘 같은 것인지도. 어느 때가 되면 이 선을 끊고 나와 먹고 먹히는 사회로 편입되어야 하는지도. 그곳에서 인간성이란 달콤하고 따뜻한 단어는 합리화를 위해 필요한 전설 같은 건지도.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데도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어떤 중요한 행동을 이루려는 조급함과 주의력 부족으로 방어할 힘도 없는 가엾은 사람을 뭉개버리는 인간들은 누구든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이런 말들은 그저 그들에게만 허용되는 말일지도. 거인들. 너무 많은 눈물이 세상에 흘러넘치는데, 이 작은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게만 될 뿐인 전설. 우매한 대중이 그 역사의 현장에서 나치즘 쪽으로 기울어졌던 데 대해, 이 대중의 우매함에 대해 무엇이라고 할까.

그러나 로자가 이상주의자일 뿐이지 않았다는 것은 그녀가 정치 투쟁의 현장에 뛰어들고 자신이 택한 사회주의 노선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쓴 여러 편의 논문들을 통해 알 수 있다. 이것도 그저 안간힘이었던 걸까. 그녀는 인간과 역사에 대해 알고 있었으므로. 인간의 잔인함과 이기심에 대해, 또한 우리가 옳다고 믿는 것이 자연의 법칙 속에서는 한갓 아무것도 아님을. -물론 후기의 글이다
“압제, 폭력, 불의, 가난, 그리고 절망이……어떤 면에서는 인간의 영혼을 형성한다.”
“나는 모든 것이 결산되지 않으리란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절망으로 두 주먹을 움켜쥡니다……. 현재의 모든 죄악들은 결산되지 않은 역사의 계산서 더미 속에서 잊혀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과정만이 있을 뿐인가
"어떤 경우에라도, 우리는 유쾌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삶 전부를 운명의 큰 저울 위에 유쾌하게 던질 줄 알아야 한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든 끝이 어떻게 되든, 우리는 옳다고 생각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삶은 그 자체로서 기쁨의 원천이며, 너무도 아름답습니다. 따라서 과연 모든 것이 잘 해결될까 라고 묻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이러한 태도에 대해서 우리는 기억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까.

그러나 이 책을 읽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혁명 혹은 역사와 몸을 같이 하다보면 역사가 흘러가는 방향 쪽으로 먼저 몸이 가있기도 할까 라는. 역사의 수레바퀴가 굴러가는 길 그 앞자리에 이미 몸이 가있기도 할까. 그러니까 이성이나 지성이 아니라 몸이 그 방향으로 말을 유도하고 사고를 유도하여. 로자 룩셈부르크를 보면 그래 보인다, 완전히 역사 속에서 흠뻑 젖어서 먼저 물살의 흐름을 가늠하는 어부처럼.
“우리는 역사에 대해서 인내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다고 흔히 운명론자에게서 볼 수 있는, 지나친 자기 본위의 무기력한 인내를 말하는 건 아닙니다. 온힘을 다해 부딪치는, 결코 쓰러지지 않고 화강암이라도 물어뜯을 것 같은 인내 말입니다. 역사라는 이 용감한 두더지는, 빛에 도달할 때까지 밤낮으로 파헤치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는, 그런 인내심 말입니다.”
그리하여 그녀는 이런 방식으로 가능성의 끝까지 가려 한다. 항상 행동하고, 또한 행동을 꿈꾸며.


책을 다 읽었지만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인류애, 연대, 평화라는 것은 말뿐인 공허함이며 실은 인간은 이기적이고 오직 자신 혹은 좀더 나아가 자신의 집단만을 생각할 뿐인가? 아니면 저 말들이 지켜주는 보이지 않는 장벽 같은 게 있을까, 그나마 불안하게라도, 아슬아슬하게라도. 결코 절망하지 않는 법, 끊임없이 낙관하는 법, 아니 차라리 자신의 믿음을 견고하게 유지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걸까.

거대한 시대에 대해 말하는 로자, 그녀의 말대로 그 시대는 거대했고 거대한 선 대신 거대한 악이 출현했다. 지금 우리나라의 시절은 수상하고 그리하여 곧 무엇이 출현할까.


마지막으로 로자와 레오의 관계는 흥미롭다. 스위스에서 만나 사랑에 빠졌던 1889년부터 무수한 다른 연인들을 거쳐가며 죽음에 이르는 1919년까지 서로에게 없어선 안 될 존재로 남는다. 폴란드 사회 민주당에서 스파르타쿠스단까지, 소수파 당의 선두로서 그들은 정치적 입장을 같이 한다. 또한 인간적으로, 마치 또 다른 자기를 대하는 듯한 두 사람. 그래서 그들은 끊임없이 편지를 주고 받는다. 너무 오랜 시간을 함께 하다보니 대화의 내용이 아니라 대화의 결을 이해할 수 있는 사이이므로 서로가 떼놓을 수는 없게 되어 버린 듯. 그들은 같은 도시에 살면서도, 만나는 대신 글로 의사소통을 하곤 했다. 그래서 1910년에는 90통의 편지를, 1911년에는 60통의 편지를 주고받는다. 그들은 편지에서 서로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마치 수신자가 추상적 존재인 듯, 로자는 페이지마다 호칭은 단 한마디도 없이 글을 썼다. 레오와 관련된 개인적인 문제를 말할 때에도, 빙 돌려서 말하거나 아예 인칭을 생략해버렸다.

-“매번 나를 고문하는 것, 그건 이런 생각이에요. ‘그건 어떤 삶이었는가? 저 사람이 살다 갔다는 것, 그게 무슨 도움이 되었는가? 나에겐 이 질문보다 더 끔찍한 건 없어요. 일단 그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아요.”

-“역사의 교훈…… 그것은 스스로 불쌍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누구든지 조용히 앉아서 숙고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부유한지를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곳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진정 놀랍다는 것을 느껴요. 내가 ‘놀랍다’고 말하는 것은 수많은 문제들을, 사상을 날카롭게 만드는 위대한 문제들을 무더기로 제기하는 시대라는 뜻입니다. 독일 작가 그라베의 극작품 제목을 인용하자면, ‘비판과 아이러니와 깊은 의미’의 문제를 던지는 시대라는 말입니다. (중략) 우리 시대는 수많은 거대한 것들, 예컨대 거대한 범죄들(공허한 정부), 거대한 실패(공허한 ‘두마’), 거대한 어리석음(공허한 플레하노프 상회)을 낳는 시대입니다.”

-“선량하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원칙입니다. 그저 단순하게 선량하다는 것이야말로 모든 것을 다 아우릅니다. 이것은 어떤 지성보다도, 옳다고 주장하는 우쭐함보다도 더 우월한 것입니다.” 그리고 덧붙인다. “진정한 부유함은 내면적인 자유입니다. 언제나 자연스런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정열을 통해서 스스로에게 충실하게 드러나도록 해야 합니다.”

인간의 겉을 둘러싸고 있는 유리를 깨뜨릴 만큼 강렬한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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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8 2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kangda 2008-08-18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합~ 그렇군요...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만화 전두환 1 - 화려한 휴가
백무현 글.그림 / 시대의창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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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앉아 금세 두 권을 다봤다. 어릴 때는(1990년대 즈음) 최규하(확실치 않다)가 청문회에 나오는 게 왜 중요한지 정말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때 사람들은 진실을 밝혀내고 싶었던 거다. 너무 간단한 이야기이지만 권선징악이 이 세계에 통용되기를 바랬던 거다. 그러나 전두환은 결국 김대중 정권 대통령 특사로 풀려나고 만다. 대체 왜? 여기에는 또 어떤 보이지 않는 이유가 있었을까?

대한민국사는 말 그대로 가려진 역사이다. 개인의 야욕이 대한민국사를 철저히 가림막했고 여전히 가리워진 채로 드러나기를 두려워하는 세력들이 있다. 그래서 중,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는 결코 현대사를 가르치지 않는다. 태정태세문단세밖에 없다. 물론 모든 역사는 다 만들어진 역사이지만 그래도 이건 한 개인의 야욕을 위해 이렇게까지 많은 인물들이 죽어가야 한다니. 인간은 지성이 있는 집단이 아닐지도 모른다. 지성이 있기 위해 노력하는 집단일 뿐이지.

하지만 이제는 알아야 하는 게 아닐까? 사실 나도 잘 모르지만 이제부터 공부 좀 해봐야겠다.

이 만화책이 뚜렷하게 역사적 사실 하나하나를 조목조목 짚어주지는 않는다. 아이들이 보기 쉽게 간략하고 커다란 스케치가 있을 뿐이다. 그래도 자식 있으면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다. 애들은 만화책이라면 뭐든지 다 좋아하는데 이렇게 공부도 되는 만화책이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 그런 면에서 이 만화책 쓰신 분은 정말 전두환과 맞짱을 뜬 건지도. 새롭게 태어날 교육을 위한 전략이니. 결국 역사에서나마 그 놈이 진정 나쁜 놈임을 가르치기 위한 기초 수단을 만들어낸 것이니.

12.12가 뭔지 5.18이 뭔지, 사실 나도 잘 몰랐다. 아, 그냥 그런 게 있나보다 정도였다. 전두환과 노태우의 관계는 어떤지, 김영삼, 김대중은 누군지도 잘 몰랐다.

근데 사실 자신이 없기도 하다. 그런 x가 아직 살아서 29만원밖에 없다고 전국민을 능멸하고 그런 x를 전직 대통령이어서인지 아니면 대통령으로서 돈 버는 방법을 알아보려해서인지 어째서인지 알 수 없지만 찾아가는 현직 대통령 자리에 앉아있는 그가 있는데 지금은 또 얼마나 올바른가? 먼후일 어떤 책이 나와서 지금의 역사에 대해 심판할 것인가? 우리는 지금 무얼하는가?  이 시대의 전기 고문 피해자 김근태는 뉴또라이의 기수와 승부해 선거를 치뤘지만 국회의원으로 당선도 못 되는데 이게 분명 선거의 결과였는데 대체 이런 결과를 만들어내는 인간의 집단이 지성을 가진 집단일까? 인간은 뭘까?

어쨌든 당장은 좀 더 공부하자는 결론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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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
황정은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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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의 소설 속 인물은 모두들 종이인형 같다. 얇고 팔랑대는 종이인형들의 세계. 그래서 그 중 어떤 종이인형이 모자나 오뚜기로 변하거나 뒤편에 문이 달려있다거나 해도 ‘아, 그렇구나’ 하게 되지, ‘에이, 설마, 어떻게…’ 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황정은의 서술 방식, 황정은의 문장은 이런 반응을 유도한다. 짧고 간결하며 군더더기가 없는 문장.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그런 것은 그런 것이다, 뿐이다. 하지만 단순하다거나 건조하다고 할 수는 없다. 차라리 애들이 생각나는 대로 지어서 부르는 즉흥곡 같다. 그래서 어느 면에서는 시적이고 어느 면에서는 동화적이다. 이런 느낌이 드는 데에는 의성어와 의태어의 영향도 크다. 짓빠, 짓빠라거나 풉풉풉풉, 퐁퐁 같은 의성어들은 황정은의 소설에서 대단히 효과적이다. 이 의성어가 빠지면 허전할 만큼.

황정은의 서사는 변신 이야기처럼 가지각색의 변신이 등장하지만, 더 재밌는 것은 변신 그 자체-무엇으로, 어떻게-가 아니라 변신을 받아들이는 주변의 반응이다. 변신을 받아들이는 주변 인물들은 그 변신에 대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거나 절대 일어나설 안될 일이라거나 하는 게 아니라 뭐 그럴 수도 있는 거잖아 한다. 따라서 소설을 따라가는 독자도 뭐 그럴 수도 있는 건가, 하며 소설을 계속 읽게 된다.

하지만 왜 황정은 소설 속 인물들은 변신할까. 이런 구차한 질문을 굳이 해야하는 걸까 하지만, 사실 소설의 서사가 말해주는 것이 이 변신의 이유이다. 오뚜기로 변신한 기조씨가 물속에서 수영하는 꿈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을 살펴보면.




아무리 물장구를 크게 쳐서 파문을 만들어도, 그것은 내가 열심히 팔과 다리를 저을 때뿐이잖아. 뭔가, 물살을 엄청 저었다는 느낌은 있는데, 언제까지고 마침내 해냈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팔과 다리를 멈춰버리면 곧장 가라앉기 시작해서, 일단 가라앉은 뒤로는 파문도 없이 그저 엄청난 양의 물만 있을 뿐이라면.

꿈이잖아. 

꿈이래도, 있잖아, 사람들이 헤엄쳐, 난 힘이 빠져, 잠방잠방하다가, 가라앉아. 머리 위로 수면이 점점 멀어지고, 내가 가라앉은 자리에서 파문을 만들며 헤엄치는 내 다음 사람의 배가 보여. 그런데 그 사람도 결국 가라앉아.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 거야.

(중략)

마지막 사람이 가라앉고 나면, 역시 물만 남을까.

남겠지.

흑. 흑. 흑.

왜 울어.

생각하니까 너무 막막해서.




그러니까 세계에 대한 막막함 같은 것, 주체의 상실이라도 부를 수도 있는 이 막막함이 인물들의 변신을 이끈다. 더 이상 변혁의 의지가 없는 세계, 지금 이 세계는 옳은가 혹은 그른가에 대해, 인간적인 것은 무엇이며 그것은 과연 긍정적인가에 대해 대답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막막함은 인물들이 인간이 아닌 다른 것이고 싶게 하고 다른 것이 되게 한다.

인간적이라는 말은 표제작이기도 한 ‘일곱시 삽십이분 코끼리열차’에서 나온다. 파씨는 동물원에 가는 일이 인간적이기에 동물원에 가자고 한다. 동물을 우리 안에 가두고 관람하는 인간적인 세계의 인간적인 평화. 누군가를 극악무도하게 괴롭히고 거기에는 분명 인과가 있고 그래서 인간적인 세계. 그러나 똑같이 보복하지 않는 것도 인간적인 세계.

다시 앞으로 이야기를 돌리자면, 그래서 황정은의 인물은 종이인형 같다. 우리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곤 하는 ‘인간적’이라는 것, 맹렬한 욕구에 대한 반발 같은 것.-이 책속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변신은 표면적으로 맹렬히 원해서 이루어진 변신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사태로 처리된다, 마법사님이 불쌍하고 평범한 주인공의 마지막 희미한 바램을 들어준 것처럼- 인간이 모여 인간이 이룩한 이 너무나도 인간적인 세계의 기형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무언가로 변신할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소설을 읽다 문득 하일지의 『경마장의 오리나무』가 떠올랐다. 그 작품 초반에 주인공이 남산 동물원에서 원숭이를 구경하는 장면이나 인물이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왠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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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속인 200가지 비밀과 거짓말
데이비드 사우스웰 지음, 안소연 옮김 / 이마고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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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책을 읽었는가. 몇 차례나 졸려하며 스파이더 카드놀이, 파일 정리 같은 다른 짓을 병행하면서도 끝까지 어떻게든 끝까지 읽었는가 하면, 처음에는 자료 수집 차원이었고 그 다음에는 오기였다고 볼 수 있다. 아니면 그래도 끝까지 읽고 나면 뭔가 좀 더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이거나.

사실 이 책이 가르쳐주는 비밀이 세계와 너무나도 관련이 깊은 것 같다가도 또한 너무나도 아무 관련 없는 것 같기도 하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내가 그것이 비밀임을 알았다고 해서 내가 프리메이슨에 대해, 핵무기 운반의 위험에 대해 자그마한 정보를 얻었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여전히 프리메이슨은 프리메이슨인 채로 남아있을 것이며, 핵무기 운반은 이루어질 것이며, 군사 비밀 작전은 지금도 끊임없이 이루어지며, 언젠가 쓰나미가 닥쳐온다해도 어쩔 수 없다. 또한 프로이트가 코카인을 복용하고 홍보했다고 해서 그의 전집에 드러난 업적을 포기할 수도 없으며 다른 이들에 대해서도 거의 마찬가지이다. 그러다보면 남는 것은 회의와 냉소이며 인간은 미친 동물이고 언젠가 이 미친 동물도 끝이 있다는 것이 오히려 희망적으로 느껴지는 정도? 작가는 끝까지 진실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대체 ‘진실’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이 남자의 손가락과 뇌는 어떻게 생긴 걸까? 그래, 어쩌면 몇 명의 목숨을 구해내거나 몇몇 정의를 구현할 수 있긴 하겠지만, 결국 소중한 건 작은 생명 안된다면 인간의 생명만이라도 라고 말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공허한 울림인 진실보다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숫자를 읊는 여성의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들려오는 라디오나 너무 많은 비밀을 알아버린 스파이들을 가둔 감옥, 우리의 통화는 원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언제라도 감청당할 수 있으며 마약을 먹이는 실험을 하는 쌍유리가 달린 마약 실험 매춘업소도 있다. 쌍유리 건너편에서 손님들을 관찰하는 CIA 정보요원 있는 세계.

브론토사우루스라는 있어본 적 없는 초식공룡이 100년 동안 어린 아이들의 꿈속에 나타나기도 했으며 이 공룡의 실제 이름은 아파토사우루스(속임수 공룡)이며, DNA 이중나선구조를 밝혀낸 프랜시스 크릭은 LSD(마약)를 자주 복용했으며, 후천성 면역 내성을 발견해 1960년 노벨의학상을 수상한 오스트레일리아의 가장 위대한 과학자 프랭크 맥팔레인 버넷 경은 생물학무기를 개발하여 지나치게 인구가 많은 동남아시아 국가를 공격하자고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에 촉구하는 보고서를 냈으며, 1970년 레서스원숭이 머리를 절단하여 살아있지만 머리가 없는 다른 레서스원숭이에게 성공적으로 이식한 화이트 박사는 뇌가 둘인 개를 만들기도 했으며, 고아와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용된 난민들을 상대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는 에이즈 약물 실험이 행해지며, 과학자 뉴턴은 생애의 마지막 50년 동안 연금술 연구실에서 ‘현자의 돌’을 만들려고 노력하였는가 하면 이 세계가 2060년에 멸망한다고 예언하기도 했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뉴턴의 연금술 문서를 구입한 뒤 이렇게 말했다. “뉴턴은 이성의 시대의 첫 번째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마지막 마법사였다.”

미국은 1930년대 전쟁계획 레드라 불리는 캐나다 침공 계획을 세웠으며 전쟁 중 공군들은 암페타민을 복용한 뒤 전투기를 조종하고(“약물을 통한 폭격 향상”) 미국은 1997년 개정되기 이전까지 ‘국방부는 생화학 약품을 실험할 때 인간을 대상으로 할 수 있다’는 미국 공법에 따라 민간인 거주지역에 곤충을 이용하거나 가스를 살포해 실험을 했으며 쿠바를 공격하기 위해 도시 무작위 테러, 민간 항공기 납치 폭발, 미국 해상 운송선 공격 등 사건을 벌인 뒤 쿠바의 짓으로 덮어씌우려 했다. 전쟁을 위한 거짓, 무엇을 위한 전쟁?

분유를 팔아먹으려고 거짓 광고를 일삼아 유아들은 모유를 먹지 못하게 되고 환타는 독일 나치 치하에서 탄생했으며 IBM은 나치를 위해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이용하는 유대인 관리 솔루션을 제공했으며 소니는 1998년까지 초감각 지각을 연구하는 부서를 두었으며 이를 상용화하려는 야심도 가지고 있었다. 코카콜라는 한때(1900년대 이전) 코카인을 함유한 코카콜라를 만들어 팔았으며 담배회사는 니코틴 함량을 높이는 유전자변형식물로 담배를 만들며 제약회사가 어려운 국가에 보내는 약품 기부는 판매 유효기간이 지난 약품이나 필요 없는 약품(금연 기구, 제모 크림, 입술 보호제, 체중 감량제와 같은)이며 이를 통해 조세 감면 혜택을 받는다. 쿠바에서 럼주 회사를 세운 바카디의 전 회장 호세 페핀 보슈는 쿠바 정부가 회사의 경영권을 몰수하자 쿠바의 대통령을 암살 계획에 자본을 대고 정유회사를 폭파하려 했으며 쿠바 펜싱 팀이 탄 항공기를 폭파한 혐의로 선고를 받았다.

미국 CNN은 기자들에게 민간인 사망을 보도할 때 몇 가지 보도 지침을 넣도록 강고했으며 폭스 뉴스의 앵커 브리트 흄은 “전쟁이라는 지옥 속에서 사람들은 죽기 마련이다. 몇몇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는 사실이 그렇게 큰 뉴스인가?”라고 말하는가 하면 많은 신문사들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민간인 사상자 사진과 기사를 싣지 않도록 지시했다. 영국의 유력 일간지 《데일리 메일》은 1939년까지 나치 정권을 강력 지지했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 후 미군은 원자병 가능성 자체를 부인하고 조롱했으며, 적군 병사들이 서로 성적 충동을 느끼도록 하는 ‘게이 폭탄’이나 햇볕에 노출되면 살이 불타게 되는 무기도 미국 생화학무기 연구소에서 개발 중이다.

뒤쪽에서 총을 맞았다고 주장하는 해군병리학자의 공식적인 증언과 달리 이송 당시 의사들은 JFK가 앞쪽에서 총을 맞았다고 증언했지만 그의 뇌는 사라져 버렸으며 그의 형 로버트 케네디는 대통령 후보 지명을 위한 캘리포니아 예비선거에서 승리하고 호텔을 나서던 중 총에 맞아 사망했다. 현장에서 잡힌 범인은 150센티미터 이상 떨어져있었으나 부검 결과 의사는 총이 3센티미터 이상 9센티미터 이하 거리에서 발사되었다고 하였지만 그 당시 총을 들고 있던 개인 경호원 유진 세자르의 총은 사라져 버렸다. 

달 표면의 일시적 월면 현상(TLP)-분화구 바닥에 보이는 붉은 광선, 보라색 빛과 하얀색 광선-에 대해 과학은 함구하며, 일반 과학계는 지구나 태양계가 아닌 곳에서 와 72초 동안 기록된 무선전송신호인 ‘와우! 신호’가 외계 생명체의 신호라는 주장에 대해 사이비 과학이라고 공격하며, 1960년 2월 어떤 국가에서 보낸 지 알 수 없는 ‘흑기사 위성’이 지구 주위를 맴돌았으며 이에 대해 추측을 계속한 사람은 필립 K. 딕과 같은 SF 작가 밖에 없었으며, 다윈 이론에 따르면 진화한 생물체가 더욱 복잡한 유전자 구조를 포함해야 하지만 인간의 염색체는 23쌍인데 비해 달팽이의 염색체는 56쌍이지만 과학계는 이를 설명하려 들지 않으며 다윈설에 문제를 제기할 경우 은밀한 창조론자라는 혹평(?)을 감수해야 하며, 오르곤이라는 생명에너지 형태를 주장한 빌헬름 라이히의 책은 나치 정국의 독일과 미국에서 모두 불태워졌으며, 시각장애자가 얼굴에 묘사된 감정을 추측할 때 정보는 뇌의 시각피질이 아닌 다른 부분에서 표시된다는 등의 오감과 관련 없는 정보를 뇌가 받아들이는 비밀 프로세스가 있다는 실험 발표는 무시당한다.

영국의 요크셔 북부 황무지의 멘위드 힐은 하얀 골프공 같은 이상한 구조물이 27개 이상이 설치되어 있는 미국 땅이며 지역첩보기지의 본부이고, 바티칸 도서관에는 세계 어느 도서관보다 많은 사탄, 오컬트, 외설, 이단 관련 서적을 보유하고 있으며, 런던 웨스트엔드의 심장부인 피커딜리 서커스의 지하에는 런던 프리메이슨 법원이 있으며 이곳에서 프리메이슨 법을 어긴 형제들을 재판하며, 미국 버지니아 주 베리빌 근처의 마운트 웨더는 작은 사무실 건물 몇 외에는 지상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으나 산의 화강암 깊숙이 세워진 2미터 40센티미터의 문 뒤에는 자체 발전소, 라디오와 텔레비전 스튜디오, 병원, 영화관, 개인용 급수 탱크, 화장장, 수천 명이 잘 수 있는 공간을 모두 갖춘 비밀 도시가 있으며 거기 미국인 10만 명 이상의 자료가 왜 있는지, 마운트 웨더에 보내질 생존자 6500명 누구인지는 비밀로 부쳐져 있다.

앨빙 박사는 일리노이 주 스테츠빌 교도소의 죄수 441명을 대상으로 말라리아에 감염된 혈액을 주사해 실험했으며, 정신과의사 이완 캐머런은 캐나다에서 MK-ULTRA 실험을 했으며 이 실험은 한 사람의 기억을 모두 지우고 새로운 사람을 만들어 이중간첩으로 이용하거나, 미리 프로그램을 만들어 한 사람을 자신도 모르는 상태에서 암살범으로 이용하는 마인드 컨트롤법이다.

마피아, 사이엔톨로지, 해골단(부시),  프리메이슨, 통일교 등 이상야릇한 단체들의 오컬트 의식

정기적으로 어린 처녀들과 벌거벗고 잔 마하트마 간디(그에게도 나름의 이유는 있었지만), 후세에 바이러스로 태어나 인류를 절감하기를 꿈꾼 필립 공, 처칠의 드루이드교, 반유대주의자 포드, 마리화나를 예찬한 칼 세이건, 코카인 홍보대사였던 프로이트, 섹스 파티를 벌였던 마틴 루터 킹.

6200만 년마다 한 번씩 대량 멸종이 일어나는 주기가 있다는 이론, 마약보다 더 위험한 게 분명한 알콜과 니코틴.

그러니까, 사실 세계는 거의 대부분 엠바고인 채로, 그러니까 실은 평화는 말뿐인 공허한 울림인 채로.

그러니까, 우리는 핵이라든가 정치라든가 권력이라든가 욕망이라든가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달아나야 하는데 결국 달아날 곳은 없음이 분명하며, 그러니까 우리는 원시시대로 돌아가야 하는지도. 하지만 그럴 수 없으므로 계속 먹고 살아가는 일에 골몰해야 하는지도. 우리가 골몰할 수 있는 유일한 일.

-번역이 좋지 않아서인지 고유명사가 많아서인지 읽는 데 자꾸만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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