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던 용산 평화 발자국 2
김성희 외 지음 / 보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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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4 전일이다.(20130115) 라디오에서였나 참사 소식을 듣고 바로 서울역에서 집회가 있다고 해서 버스에서 내렸다. 날이 몹시 추웠지만 참을 수가 없어서. 학원에서 돌아오던 길이었다. 아는 사람도 없는 집회장에 혼자라도 서있고 싶었다. 사람들 편이 있다고 그냥 하나의 숫자를 더하는 것이라도 알려주고 싶었다.


그들에게 4년은 지금 내가 느끼는 것과는 아주 다를 것이다. 하루가 너무나 빠르거나 너무나 느리거나, 다른 속도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책은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수도 없이(무전유죄 유전무죄란 말조차 너무 흔해져 버려 아프지도 않아져 쓰고 싶지 않다) 그만 죄인이 되고 죄인으로 죽어가게 되었음을 말한다. 살려고 올라가는데 아무렴 죽이기야 하겠어 라고 했지만 죽어버린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평범했는가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 철거민이 되고 그들에게 자식이 있고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누군가의 어머니인 그들이 그저 삶을 계속해나가기 위해 망루에 올라갔음을.


용산은 지금 번화가가 되었다. 이들 다섯 명의 죽음과는 무관하다는 번뜩이는 고층 건물들. 건물들에 있는 제한된 사람들의 평화, 제한된 사람들을 위한 법이 맞느냐고 책을 보다보면 다시 묻게 된다.


그가 다시는 용산 같은 참사가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시장 취임 자리에서 말했던 것은 좋았다. 2년이 넘은 사건인데도 여전히 가슴 속에 새겼다는 . 그것이었다.


세상은 이상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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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거든 산으로 가라 - 산, 사람 그리고 인생을 만나는 행복한 산책山冊
김선미 지음, 이한구 사진 / 해냄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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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나온 책은 읽어 보고 싶다.


남극일기에 대한 글을 보다가는 왈칵, 버스에서 했다.


"인생에도 크레바스는 도처에 숨어 있다. 때로 크레바스에 빠지기도 하고 뼈가 부러진 덮인 설원 위를 기어서 가야만 수도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길을 누군가와 안자일렌을 했든 없이 혼자서 걸어서 갔든, 결국 살아남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크레바스에 빠져 있을 책을 읽었다. 언젠가 크레바스를 빠져나가겠지, 죽을 만큼은 아니니까.  그런 마음이었다.


책에 대한 글이다. 산에 다녀온 사람들이 , 외국과 한국의 등산인들을 소개하고 그들이 산에 갔는지 알려주는 . 마디로 정의되지 않는다. 당신은 그렇게 사느냐고 물으면 절대 마디로 말할 없는 것과 같이. 이후 몇몇 등산인을 만나고 그들은 한결같이 없다고 했다. 나한테 산이 뭐냐고 물으면 자신도 대답할 없다고. 대답할 없어서 가는 걸까. 대답을 찾고 싶어서.


때때로 고속도로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산이고 능선을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신들이 걷고 있는 길처럼 거대하고…



2013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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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스테인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
필립 로스 지음, 박범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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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좋다. 인간의 (오점).


내가 조금 어렸다면, 나는 소설을 보고 전적으로 네이선의 입장을 선호했을 것이다. 이런 말이 가능하다. 인간들 사이를 떠도는 악취 같은 소문과 진실 사이는 얼마나 머나먼가. 나가자면, 말의 무의미성. 어떤 71 먹은 학장까지 지내고 사퇴한 교수와 34 먹은 학교 청소부의 로맨스를 둘러싼 무궁무진한 소문들, 뒷간 같은 소문들(콜먼은 포니아를 자신의 분노의 노리개로 삼았다는)에도 불구하고 실은 교수인 콜먼은 흑인이란 자신의 신분을 감추었다가 인종차별 발언을 했단 이유로 학교에서 쫓겨나 포니아를 만나 서로를 애무하게 된다. 완전히 발가벗은 상태에서.


그러나 소설은 결국 네이선이란 소설가를 등장시켜 관찰자 입장을 취함으로써 정말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떻게 그들이 죽게 되었는가는 의문부호로 남겨둔다. 네이선의 추리대로 포니아의 남편 레스터가 살인을 저지른 것일 가능성이 크지만, 실은 아무도 모른다. 소설 속에서 이것이 네이선이란 소설가의 소설임을 밝히는 형식을 취하므로, 미궁은 미궁인 채로 남는다. 소설 자체가 강력한 추측을 제기한 셈으로.


소설에는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앞에서 말한 콜먼과 포니아, 그리고 포니아의 전남편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레스터 팔리, 아테나학교의 젊은 학과장이자 포니아의 반대편에 서있는 듯한 여자 델핀 (프랑스인으로 예일대를 나와 30 되기 학과장이 된다. 지독한 자기 환상 속에 산다. 이에 비해 포니아는 환상을 제거해나가는 힘을 쓴다. 그녀가 지닌 환상은 까마귀에 대한 정도이다.)


소설은 읽기 힘들었다. 3 동안 읽었는데, 사실 2권은 하루만에 읽었고(기획해서) 1권을 3주간 잡고 있었던 셈이다. 번역이 좋은  건지, 필립 로스의 문체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읽기 힘들었다.


영화를 먼저 봐서 내용을 알아서인지도 모른다. 영화에서는 니콜 키드만이 포니아 역을 맡는다. 델핀 루란 캐릭터는 사라진다.


소설은 레스터의 심리 같은 것을 훑을 훨씬 내밀하다. 인물 사이의 대조가 소설에서 중요한데 영화는 이를 그리지는 않는다. 대신 멜로드라마로 공백을 메운다.


소설을 보고, 숨기고 있는 사람의 진실에 가장 근접한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끝내 숨기고 있는 .



2011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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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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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은 재밌지만 끝부분은 약간 황당하다. 박민규 작가는 장편보다는 단편이 낫다. 장편은 내용이 약간 허술하다고 할까. 말로 채워진 느낌이다.

 

 

 

박민규 작가의 후기를 본다. 그는 부와 아름다움이라는 인간의 오랜 이데올로기에 대해 반문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것을 좋아하는가에 대해 질문하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질문에 대한 답은 그다지 신통치 않았다. 그는 주인공에게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굴레를 씌웠지만, 외에 남자 주인공이 여자를 사랑하게 되는 이유는, 빈약하다. 여자가 나이에 답지 않게 박식해서? 라는 것만으로는 어딘가 채워지지 않는 느낌이다. 여자의 편지는 차라리 20 초반의 여자가 편지라기 보다는 변론처럼 보였고 때로는 감성적인 논설문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어떤 주의 주장들로 가득 . 마디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나 그래야 한다는 어떤 논조가 뒤에 너무 짙게 깔려 있어, 그녀의 목소리가 아니라 박민규라는 사람의 주장처럼 느껴졌다. 아마 소설의 하이라이트가 아니었을까 싶다.


내용도 단순했다. 백화점에서 일하는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는 잘생긴 주인공은 요한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그녀와 만나던 도중 요한의 자살과 대학이라는 한국 사회의 관문 앞에서 그녀와 서먹해진다. 겨우 사랑을 이어가려는 찰나 그는 교통사고를 당한다. 여기까지다. 이후는 그와 그녀가 독일에서 다시 만나거나 그는 죽고 요한이 살아남아 그녀와 함께 하거나 이다. 어떤 결말을 선택해도 좋다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결말 모두 박민규의 후기를 메꾸지 못한다. 물론 그의 후기에 기울일 필요는 없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과연 소설은? 그의 후기를 모두 떠나 소설은 어떤 의미로 누군가에게 다가가는가?


차라리 소설 속에서 생긴 그녀보다는 요한이라는 인물의 말빨이 소설을 채운다. 세상에 대한 허무로 가득 그의 말은 희안하게도 소설을 가득 차게 한다. 세상은 비었어 라고 말하는데 말의 변주가 재미를 준다.


이는 박민규 작가의 예전 소설, <삼미슈퍼스타>에서도 반복되었던 구조다. 오래 전에 읽어 가물가물하지만, 거기서는 주인공이 만난 부자인 여자가 나왔다. 그녀는 요한의 다른 판본 같다. 거기서 그녀의 존재가 이질적이지만 소설의 없어선 요소였다면 이번에는 요한이다. 그들은 등장해야만 하는가? 어느 부잣집 아들은 등장해야 하는가? 생활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는, 자기만의 산수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인물은 등장해야 하는가, 박민규 소설의 난제는 여기 있는 아닐까. 그의 다른 장편 <핑퐁>에서도 이런 인물은 등장한다. 나의 친구였던, 함께 핑퐁핑퐁 하던 아이가 없을 , 부가 이미 전제돼 이상 생활의 틈바구니에 끼어 쳇바퀴 필요가 없는 인물들이 사라질 , 그의 장편은 빛을 잃는다. 이것은 박민규라는 작가가 그리는 세계관의 문제를 대변하는 것은 아닐까.(그의 단편에서는 이런 문제가 심하게 노출되지 않는다. 그러나 장편이 경우 이런 인물들이 없을 경우 소설이 지탱되지 않을 지경이다. 마치 드라마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들처럼 생활 따윈 신경 써도 아무 문제가 없는 인물들의 화려하고 조금은 기괴한 생활 방식이 그의 소설의 여백(생활로 찌든 인생들이 넉두리할 틈조차 없는 구멍) 메꾼다. 그래, 예술은 부에 기생한다고 하지. 그래서일까. 그러나 여기 머물러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특히 소설처럼 어떤 문제의식은 있으나 문제의식에 대한 빈약한 스스로의 찾기에 요한 같은 인물을 동원하는 것은 별로다.

 

 

하지만 소설은 재밌게 읽었다. 앞에서도 밝혔듯 일부분 요한 때문이었고, 일부분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 오랜만에 생각해봤기 때문이다. 일부분 오래 누군가 때문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서로를 상상하는 이라는 말이 소설을 겨우 지탱해나간다. 하지만 주인공의 상상력은 빈약했다.


2011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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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사과 창비시선 301
나희덕 지음 / 창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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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저렴한 세상에 이렇게 ( ) 꽃이 피었다니, 그런 기분이다. 나희덕 시집은 그렇다.

, 꽃병, 오아시스, 조개, 물방울, 벌레, 매화나무, 연못 등등 아름다운 , 그러니까 아름다워서 말하기 싫은 것들로 젖어있다. 근데 알고 보면 그게 장의 빤쭈 같은 . 그러니까 이렇게 저렴한 세상에 이렇게 이쁘고 조그마한 꽃이 피어있고, 알고 보면 각자 ‘여분의 삶’을 살고 간단다. 근데 그게 인생이 되면 피곤하다. 때때로 짜증나고 때때로 멋진 ‘그는 누구인가’ 싶어진다.

 

 

2010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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