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5
조세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11월
평점 :
절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프롤로그 형식을 취한 「뫼비우스의 띠」에서 그 상징성을 확보하며 시작된다. 안과 겉을 구별할 수 없는 곡면인 뫼비우스의 띠는 선조대부터 가난과 함께하는 비참한 삶이 계속되어온 난쟁이 일가와 부유층의 삶의 대비 구조가 선명히 드러난 작품을 통해 작자가 바라는 사랑이 있는 사회를 제시한다. 그러나 뫼비우스의 띠, 혹은 안이 곧 밖이고 밖이 곧 안인 클라인씨의 병은 과학적으로 있지 않다는 논리 역시 제시함으로써 사랑이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없어 자살을 택한 난쟁이 김불이씨의 모습도 보여준다. 그의 아들인 영수 역시 살인죄로 사형을 당한다는 세습되는 가난과 불행의 모습 뒤에는 사랑의 마음이 있다. 영수가 이상주의자로 불릴 수밖에 없는 모순성이 작품 전체를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작품은 문체에서 다시 한 번 그 특이성을 보인다. 처음 작품을 대하게 되면 그 이질감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만큼 건조하며 진술은 과거를 넘나든다. 이 역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사이를 오고 가는 작품의 전체적 구조와 상관관계를 갖는다. 난쟁이가 진정 원했던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회, 그리하여 사랑이 없는 사람은 아무런 혜택도 받을 수 없는 사회에 반하는 현실, 진정한 가치가 상실된 사회 모습이 문체의 차갑고 건조함을 낫게 된 것이다.

난쟁이는 결국 달나라에 세워질 천문대에서 일할 사람이 되기를 소망하는데 이처럼 난쟁이의 의식은 점차 현실을 떠날 수밖에 없는 벽에 부딪히는 것이다. 벽에 부딪힌 난쟁이가 선택한 자살은 작가의 절망적 인식을 담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따라서 작가의 문체는 짧고 건조해진다. 그러나 이 건조함은 결코 독자를 건조하게 하지 않는다. 작가의 의식 구조를 따라가게 되는 독자는 모순을 다시 한 번 깨우치게 되고 그 모순을 통해 난쟁이의 바램이 독자에게로 전이되는 경험을 한다.

난쟁이가 바랬던 '그 세상 사람들은 사랑으로 일하고, 사랑으로 자식을 키운다. 비도 사랑으로 내리게 하고, 사랑으로 평형을 이루고, 사랑으로 바람을 불러 작은 미나리아재비꽃줄기에까지 머물게 하'는 불가능의 세계를 꿈꿀 수 있게 하는 것이다.『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여기에서 그 의의를 갖게 된다. 잊어버리고 말았던 것, 잃어버린 것의 가치를 다시 되새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 작품의 독자층을 굳이 소설 속 인물 중 분류하자면 「궤도 회전」의 '경애'쯤이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경애'와 같은 부유층보다는 중산층의 삶을 살거나 그보다 못한 삶을 살며 그 고통을 숨기는데 자신의 에너지를 소비하지만 작품에 나타난 '경애'의 사고방식의 일면에는 분명 많은 자신들의 모습이 숨어있지 않을까 싶다. 작가는 단지 피해 받는 사람들의 모습만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해서 작품이 자신의 모습을 비춰줄 수 있는 거울의 역할을 해주는 장치를 한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비극적 인식이 그 바탕이라 할 수 있다. 난쟁이 일가가 살던 '낙원구 행복동'이라는 지명의 아이러니는 이를 뒷받침해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난쟁이가 바라던 낙원에는 사회 전체의 의식 속에 영생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또한 낙원, 난쟁이가 진정 살고자 했던 곳에서 난쟁이가 자살함으로 해서 이 사회에서의 행복과 죽음의 상관 관계는 설명된다. 이러한 절망적 현실 인식은 '낙원구 행복동'이라는 지명을 단순한 아이러니의 차원을 넘어서게 하며 그 복합적 의미를 이해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절망적 현실 인식은 단순한 절망으로 끝맺지 않는다. 인식은 행동의 체계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빼앗겨버린 한 차원을 생각하게 하고 그 차원으로 들어서기 위한 발판의 기회를 얻는 것이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극적인 대립을 작품 전체적으로 내세워 그 대립의 이완작용을 이용한 감동을 맛보게 하며 현실을 되돌아보는 성찰 의지가 중심으로 서있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꽃집에서 민음사 세계시인선 17
프레베르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1975년 4월
평점 :
품절


처음에는 프레베르가 화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그의 시선은 회화적인 면이 있었다. 한 장면을 통해 느껴지는 독특한 감정의 포착 때문이었다. 알고보니 그는 시나리오를 꽤 많이 쓴 작가였고 영화와 같은 카메라 포착의 효과를 詩 속에서 살릴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는 한 풍경 속에서 생의 슬픔, 기쁨을 발견하고 그것을 카메라의 클로즈업 효과나 대사 없는 정적인 행동 따라가기 등의 기법으로 그려낸다.

또 프레베르의 시는 대단히 반항적이다. 그 반항은 거창한 이념의 반항이 아니다. 그는 현실적으로 쉽게 시를 쓴다. 그래서 그의 시는 프랑스에서 대중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프랑스 문학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난해한 정서와는 달리 프레베르의 시는 서민적인 맛이 있다. 또 그의 반항 정신은 종교의 횡포, 권력의 횡포, 전쟁의 횡포에 대해 쉽게 대응한다. 그 쉬운 맛이 프레베르 시의 중심이다. 또 그의 자유는 이러한 그의 시 형식(?)과 잘 어우러진다. 격식을 거부하는 자유의 시 정신은 프레베르의 거의 모든 시에 나타난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의 소재에 새가 자주 나오는 것도 이러한 그의 자유 정신과의 관계 때문일 것이다. 새와 자유는 어찌보면 식상하다 할 수도 있는 이미지이지만 그 이미지를 살려내는 그의 반복이나 내용 안에 존재하는 기지를 통해 새로워진다.

왜 꼭 시는 어려워야 하는가, 하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무거운 비유를 통해 그 뜻을 헤아리고 헤아려야만 하는 시가 좋다는 통념(누가 말해줬는지도 알 수 없는)이 얼마나 그릇됐는가를 프레베르는 내게 말한다. 물론 시가 쉽게 읽히고 쉽게 이해된다고 해서 그 시가 쉽게 씌어졌다는 말은 아니다. 차라리 더 쉽게 그러나 더 깊게 읽히기 위해서 더 많은 노력이 요구될 것이다. 시가 인간을 말한다 했을 때, 각자의 삶은 모두 다르고 그 삶에 통용되는 진실의 무게 또한 다르다. 그러한 개별성을 아우르는 통찰력이 바로 시인의 눈일 것이다. 또한 자신이 바라보는 삶을 어떻게 이야기하는가의 능력을 시인은 갖추어야 한다. 그렇다면 프레베르는 자신만의 이야기법을 가지고 있다. 그 이야기법은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형태이며 또한 그가 말하는 삶의 진실 또한 결코 일차적이지 않다. 프레베르는 내게 나만의 이야기법을 가질 것을 확신을 가지고 충고해준 시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뱀장어 스튜 - 2002년 제26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권지예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날씨가 참으로 명쾌하군요. 요즘은 책을 읽으며 생활을 보내려 노력 중입니다. 그리 잘 된다고는 할 수 없지만요.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집은 몇 권 읽은 것 같습니다. 읽어 버릇하니 이번엔 어떤 작품인가 궁금해지는 마음도 매년 생기구요. 그래서 이번에도 읽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작품집에 실린 작품 중 개인적으로 저는 '첫사랑'이나 '이인소극'을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김연수씨 작품은 이번으로 세 번째로 단편을 읽는데 나름의 스타일에 끌리게 됩니다. 정말 아름다운 것들도 파괴되고 마는, 그 추악한 잔해를 용서하는 것을 생각해보게 한다고 할까요? '이인소극'에서 치매를 가장한 엄마와 돈을 얻어내려 애쓰는 조연연극배우 딸의 모습은, 충격적인 일면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 연극을 하고 속아주는 사람도 자신뿐이라는 몸서리치는 진실이 이야기 속에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무라카미 류 지음, 한성례 옮김 / 동방미디어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1976년 일본의 권위있는 문학상이라 할 수 있는 아쿠타가와상과 군조 신인상을 휩쓴 무라카미 류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가 일본 문학계에 안겨준 충격은 작품을 대충 훑어보기만 해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문학적 고뇌의 소산이라기보다는 마약, 섹스, 폭력(은 좀 약하게 다루어졌다고 생각하지만)으로 얼룩진 포르노그라피에 가깝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나라에서 역시 군부독재 시절 판금 서적으로 낙인 찍혀 90년대 초반에서야 번역되어 한국 독자들이 이 책을 볼 수 있었다는 것 또한 작품의 경향을 짐작하게 한다. 나는 이 작품이 무라카미 류가 어떤 문학적 소양을 가지고 쓴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본인 역시 그렇게 밝히고 있다) 단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나름대로의 이미지로 전개시켜 나갔을 뿐이며 그것이 성공을 거둔 것이다.(여기에는 이 작가가 미술을 전공했다는 사실 또한 분명 한 몫 했으리라는 것이 나의 견해이다)

이 작품의 비평을 먼저 접하고 책을 보았을 때 역시 그러한 비평이 결코 틀린 이야기는 아님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 문학의 무국적성에 대해서 이미 들은 바 있지만, 이 작품 역시 그러한 일본 문학의 보편적 경향이 눈에 띄었으며, 단지 문학뿐만이 아닌 근대화와 함께 일본인의 생활양식 자체가 차라리 미국의 그것이라 하는 편이 더 알맞을 것 같았다. 또한 그러한 문화적 무국적성이 이끌고 있는 일본인의 상실감을 다루고 있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음악(도어즈, 믹 재거, 밀 월드론, 루이스 본파, 롤링 스톤즈), 모든 음료(콜라, 진, 브랜디), 심지어 영화나 자동차조차 모두 서양식이다. 또한 작품의 무대 또한 미군기지이다. 따라서 흑인이나 혼혈들이 자주 등장한다.

단지 주인공의 이름만으로 일본 소설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무국적성에 대한 의식이 이 소설을 쓰게 했으며 또한 주인공 류의 '나는 누구인가, 도대체 여기는 어디인가'라는 자의식적 물음 또한 모두 이와 관계가 있다. 류는 의식적으로 문화적 비판을 가하고 있지만 계속해서 자신을 '인형'이나 '검은 새에게 쫓기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단지 문화에 대한 인식이 아니라 해도 존재론적 해석 가능성 또한 열려 있다. 주인공 류의 여린 감성은 '투구벌레'나 '나방' 같은 곤충도 그냥 보아넘기지 못하고 자꾸만 돌아갈 곳을 묻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 책의 젊은이들은 그토록 섹스와 마약에 탐닉하는가, 하는 질문은 결코 이 작품과 떼어낼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작품 속에서 보자면 '아아! 생각해 보면 사실 나는 언제나 아픈 거야. 아프지 않을 때는 고통을 단지 잊어 버리고 있을 뿐이야. 아프다는 것을 잊고 있는 거지. 내 뱃속에 종기가 생긴 탓이 아니야. 사람은 누구라도 언제나 아픈 거야. 그래서 심하게 아프기 시작하면 어쩐지 안심이 되는 거지.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온 느낌이 들어서, 아프고 괴롭지만 안심하는 거야.' 즉 극단을 통한 견딤을 류는 자신도 모르게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 속에서 죽음은 마치 심심풀이 땅콩처럼 마약을 한 등장인물들이 요구하는 것이다. 이 또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 같다.

또한 작품 전반적으로 꽤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것이 류의 마지막 의식을 지배하는 검은 새이다. 이 검은 새는 작품 중반부에 '그린 아이즈'를 통해서 한 번 나오고 작품 후반부를 거의 뒤흔들고 있다. 류는 마약에 취해 환각 속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릴리에게 '내 도시를 파괴한 새야.', '새는 죽이지 않으면 안 돼. 새를 죽이지 않으면 나는 내 자신을 이해 못 하게 되는 거야. 새가 방해하고 있어. 내가 보고 싶은 것을 숨기고 있는 거야.'라고 말한다. 이것은 거대하다, 라는 이미지를 통해 사회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인식, 혹은 자신이 물든 미국 문화 혹은 마약, 혼음 등에 대한 이미지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황홀한 숲 문학과지성 시인선 261
조인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인선 시인의 시는 가시적인 눈으로 들여다보려 할 때 대단히 어렵다. 그의 은유는 시 한 편에서 파악하기가 어렵다. 왜 이와 같은 은유가 가능한가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짐작은 그이 시를 편편 더 읽어 나아갈 수록 그 진위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는 자신의 눈으로 바라본 자신과 세상의 변주곡을 꿈과 같이 그린다. 꿈에서는 현실적으로 논리적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점차 뒤로 갈수록 시인은 그 풍경에 자신의 시적 논리를 더해가고 자신의 시의 숲을 황홀하게 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