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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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것이 있다. 그것은 모두 자신의 내부에 은폐되어 있고 자기 자신이 알 수도 있으며 모를 수도 있지만, 인간에게는 자신만의 룰이 있으며 그 룰을 정확히 설명해낼 수는 없어도 인간은 그 룰을 따르며 살아간다. 주인공 조나단은 룰이 확실한 사람이다. 그러나 타인에게도 타인 기준의 각자의 룰이 있다는 것은 알지 못한다. 누구나 각자 나름대로 창피하고 부끄러워하는 게 다르고 이루고자 하는 게 다르다는 사실을 조나단은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조나단은 혼자가 편하다. 물론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 혼자 있다는 것은 자신만의 룰에 충실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타인과 함께 있을 때는 그 룰을 어겨야 할 수도 있으며 충돌의 가능성이 내재한다. 조나단은 그것을 참아내지 못하는 인물이다.

사실 모두가 다른 방식으로 조나단과 같이 자신의 룰을 지키며 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룰이 침해받았을 때 안절부절 못하고 어긋나고 있는 자신에 대해 또한 자신을 그렇게 만드는 요소에 대해 화를 참아낼 수 없을 것이다. 꼭 자폐적이지는 않더라도 말이다. 말하자면 거지에게는 거지만의 룰이 있는 것이다.

각자에게 각자의 룰이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것은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인생의 방침들이 깨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눈치를 채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이 수없는 많은 이들이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니, 이 얼마나 진귀한 일인가. 가끔 그들의 방식에 귀를 열고 눈을 뜨고 싶지 않은가. 내게 비둘기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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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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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이 책을 한 번 읽었던 것 같다. <깊이에의 강요>는 확실히 읽었고 다른 단편은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느낌은 아무래도 이 책을 이전에 읽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모르고 다시 읽었다. 마치 쥐스킨트의 마지막 글, <문학적 건망증>처럼. 내 자신이 재밌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이전에 <향수>를 읽고 받았던 감동을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나도 많이 무뎌졌내 싶다. <장인 뮈사르의 유언>처럼 점차로 자신의 삶에 황폐해지고 또한 그 황폐함을 깨닫는 순간조차 그 사실을 결코 되돌릴 수 없으며 가속화가 되가는 상태라고 할까. 쥐스킨트의 글에는 공감의 여지가 많다. 누구나 한번쯤 고민할 수 있는 문제를 쉽게 풀어내고 있다. 그러나 지루하지 않다. 다른 이야기의 형식을 빌려 우선 재미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자가 많은 것 같다. 어렵지 않지만 가볍지 않다는 것 때문에.

<깊이에의 강요>를 읽고 예전에 받았던 충격을 한 번 생각해본다. 물론 그래봤자 그때만큼 뚜렷한 감각은 살아나지 않는다. 그저 현재 나 자신도 강요받고 그 강요에 얽매이고 있다는 사실과 어울러, 이 책을 처음 읽었던 그때는 결코 그러지 말아야지 했던 다짐이 생각이 난다. 참 여러모로 재밌고 아이러니한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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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무늬 민음의 시 88
이상희 지음 / 민음사 / 199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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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이 몹시 얇고 시들도 모두 짧은 편이라 정말정말 빨리 읽었다. 단상들,이란 생각이 든다. 이 시집 안에 시들은 단상들이구나 하는. 그런데 아파하는 사람의 단상이란 어디에도 자신의 그 아픔을 놓지 못하고 모든 것을 바라보게 되나 보다. 해설의 김혜순 시인의 말이 이 시집에 너무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너는 언제까지 가늘게 앓기만 할꺼니?' 가늘게 앓는 소리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악몽을 꾸고 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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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 논리야 이야기로 익히는 논리학습 1
위기철 글, 김우선 그림 / 사계절 / 199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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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초등학교 때 읽었다는 책을 나는 이제 읽는다. 내가 초등학교 때 뭘 읽었지,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다. 원래는 논리학입문 이런 책을 읽으려고 했다. 논리적이지 못한 언술은 타인을 짜증스럽게 한다는 경험을 하고, 나 역시 그다지 논리적인 인간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책이라도 한 권 읽어 1%나마 논리적이고 싶어서? 논리학입문이라던가 하는 그런 제목의 책을 몇 권 살펴봤지만 아무래도 너무 답답해 보여서 도저히 읽을 자신이 생기지 않았다.

조금 가볍게 시작해보자, 하고 고른 책이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어린이들'이란 표현, 중학교에 가면 배우게 될 것이다, 등의 저자의 말을 보고 핀트가 조금 어긋났나 싶었지만 그래도 한 번 마음먹었으니, 하며 계속 읽었다. 평소 동화나 교훈적인 이야기에 그다지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닌데 스무 편이 넘는 이야기들이 재미있다는 점은 신기하기도 했다.

초등학생 때 이 책을 읽었어도 재밌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렇게 꽤 빨리 책장을 모두 넘기고, 또 거기 있는 문제들도 풀어보고, 도움말도 차근차근 읽고.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별로 논리적이지 못한 나 같은 애가 읽어도 들어본 개념들이 많았지만, 이야기랑 대비시켜 가며 그 개념들을 오랫만에 개념 자체로 떠올려보니 꽤나 색다른 재미가 있었다.

아직 내가 더 논리적이어지진 않았을 거다. 그냥 차근차근 가야지 마음 먹고 봤을 때, 꽤나 유쾌한 시작이었다. 어떻게 보면 너무 단순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논리학 책 몇 권 읽는다고 갑작스레 인간이 논리적으로 변한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별로 논리적이지 못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책을 손에 잡긴 어려워도 그 책과 만나고 나면 즐거우니, 그저 경험으로 생각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안 읽어본 분이 있다면 읽어보시면, 고개를 끄덕이는 자신이 웃겨 혼자 키득거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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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세상 니체전집 13
프리드리히 니체 / 책세상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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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처음으로 읽은 철학서이다. 철학이라는 것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인해 아무래도 철학서를 기피하는 경향이 나도 모르게 내게 있었던 것 같다. 운이 좋았던 걸까? 이 책은 철학서, 하면 생각나는 딱딱함이 없었다. 해설에도 나와있지만 스토리가 있기 때문일까. 비교적 쉽게 쑥쑥 읽히는 글이었다. 어려운 내용도 없고 대부분 다 이해가 간다.

요새는 누구도 normal하길 원하지 않는다. 나라는 주체의 확립이 요새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라면, 니체의 이 책은 꽤나 괜찮은 책이다. 차라투스트라의 견고함이 때로는 받아들이기 힘들기도 하지만, 우리가 이제껏 믿어왔던 진리에 대한 차라투스트라의 생각은 충분한 공감의 여지를 제공한다. 착하게 살라는 옛이야기에 느끼는 실증을 극복해주고 있다.

그러나 해설에서 보면 이 책은 니체 철학의 입문서라기보다는 니체 철학의 종합서에 가깝다고 한다. 내가 니체의 책 중 이 책을 가장 먼저 읽은 것은 좋지 못한 선택이었을까, 의심스럽기도 했지만 읽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을 것 같다. 내가 방학 중 이 책을 읽기로 결심한 것은 '시란 무엇인가'라는 애매한 질문에 시달리던 무렵, 누군가가 너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읽어보았냐고 해서 이다. 그는 그 책을 읽고 나면 다시 이야기를 하자고 했고 오기가 생긴 나는 방학이 되자마자 이 책을 읽게 된 것이다.

왜 그가 그렇게 물었던가 가끔씩 생각해보게 되는데 아마도 시인이 쓰고자 하는 것은 모두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 아닐까. 니체의 인간에 대한 이야기,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존재이다라는 말을 되새겨 보는 것이다. 또한 내가 이제껏 해왔던 많은 도피들의 비겁함을 한층 반성하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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