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세계문학총서 6
밀란 쿤데라 지음, 김규진 옮김 /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지식출판원(HUINE) / 199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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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때와는 또 다르게 이 책을 봤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베스트극장에서 심혜진(외로움에 치를 떠는 여인으로 나옴)이 보던 책이라는 인상이 내겐 가장 강했던 그때, 지금도 그 인상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이 책은 그보다는 훨씬 정치적이다. 밀란 쿤데라는 사회라는 틀과 떼어내서 생각할 수 없는 작가이다. 물론 그는 그것을 거부한다고 하지만, 그의 환경(체코라는 독특한 역사를 가진 나라에서 추방당한 지식인)은 결코 그의 글을 가만 놔두지 못 한다.

쿤데라가 스스로 자신은 아마 이런 종류의 글밖에 쓸 수 없으리라 말했던 것처럼, 그는 자신이 겪어온 사회주의의 씁쓸한 실패 앞에서의 자신의 강한 인상과 그의 지식을 동원해 글을 쓴다. 따라서 책은 니체의 철학(영원반복)이라던가 파르메니데스(가벼움과 무거움)의 철학을 동원해 이야기의 중심을 잡는다. 그 이외에도 스탈린 아들의 죽음(권력과 똥의 우스운 은유들)등과 같은 그의 지식은 이 책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매력.

또한 프란츠, 테레사, 사비나 등의 시선에서 각각의 장마다 중심이 다르게 진술됨에 따라 각각의 인물들에 대한 이해와 함께 인간과 인간 사이의 오해의 우스꽝스럽고 서글픈 비화를 체험하게 된다.

모든 반대되는 개념들, 강함과 약함 사이,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 등 우리는 그 어떤 것을 긍정하고 부정할 수 있을까 그 사이를 오가는 작가의 끊임없는 질문 앞에 무장해제 당하며 책장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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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과 망각의 책 문학사상 세계문학 13
밀란 쿤데라 지음 / 문학사상사 / 199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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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은 타인과의 소통을 원활하게 해준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우리 옛 속담이 얼마나 맞는가를 확인하게 되는 경우는 허다하다. 그러나 타인과의 소통이라는 것은 어느정도는 거짓이다. 어차피 자신조차도 자신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내릴 수 없는 것이 인간일테지만, 인간들의 만남에는 타인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통해 우리는 서로 절충하고 상호보완한다. 맞는 부분까지 이야기하고 교감하고 다른 부분들은 자신의 것으로 하거나 갈등을 겪거나 한다.

갈등 뒤에 화해가 있다는 것은 그러나 오해일 수 있다. 교과서에서 배워온대로 아니 그보다 더 훨씬 단순하게 보면 아픔 뒤에는 성숙이 있고 갈등 뒤에는 화해가 있다고 믿고 싶지만, 결코 인생은 그리 순순하지 않다. 우리는 가끔 그 갈등 뒤에 남게 되는 앙금들을 제 속에 고스란히 간직한 채 타인과의 경계를 긋고 그렇게 자신의 존재를 보존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소통에 전제되는 웃음은 망각이 없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말이다. 만일 한 인간이 어떤 타인과 갈등을 겪고 혹은 한 개인이 전체와, 사상과 갈등을 겪었을 때 그 데미지를 자신의 내부에 고스란히 기억한다면 그의 인생은 그대로 끝이난다. 그것이 죽음이라는 물질적 개체 변환이 아닐지라도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생에서 찾을 것이라고는 그에게는 없다. 이제 그는 그 데미지에서 헤어나올 수 없으며 모든 사물과 모든 인간에게 똑같은 환영을 보게 된다. 혹은 아무것도 보지 않게 된다.

따라서 망각은 거의 웃음이 전제조건이다. 어차피 인간은 상처 받지 않고 살 수 없는 동물이다. 왜냐하면 우리 사이에는 그 흔하디 흔할 말로 알 수 없는 경계가 있으며 그 경계는 오직 자신의 눈에만 가끔 보이는 것이다. 따라서 타인과 타인의 접촉 속에서 경계는 언제나 존재하지만 확인할 수 없고 단지 잠정적으로 가늠할 뿐이다. 그 가늠이 낳는 숱한 오해들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굴러가고 있다.

만일 내가 이제부터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무것도 보지 않으려 한다면 나는 살 수가 없다. 그냥 죽는 게 가장 편한 방법이다. 그런 삶의 방식을 택한다면 말이다. 우리가 유쾌한 듯 웃는 웃음 속에 들어있는 그 숱한 비화의 의미들은 매우 슬프지만 그것 또한 어느정도는 망각해주어야만 한다는 것이 바로 존재의 한계라니, 참으로 인생은 서글프다는 것을 그러면서 우습다는 것을 알려주는 책이다. 이 책이 변주곡 형식을 취했다는 것 역시 이토록 단순치 않은 생을 어찌 주욱 하나로 풀어내려 갈 수 있겠는가 하면 이해가 된다. 자꾸만 우리는 하나를 잊고 다른 곳으로 나가며 그 발전은 다시 다른 모습으로 이어진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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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름들 - 세계현대작가선 11
주제 사라마구 지음, 송필환 옮김 / 문학세계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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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두 개의 이름이 있다 나의 중학교 친구들은 나를 지금의 친구들과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그들에게는 지금까지도 그게 나의 이름이고 자연스러운 나이다 그러나 중3 이름을 바꾸고 만난 사람들에게 이전의 나의 이름을 얘기해주면 그들은 어울리지 않는다, 어색하다고 말할 뿐이다

게다가 나의 주민등록번호와 나의 진짜 생일 사이에는 2달 정도의 간격이 존재한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에 1년이란 숫자상의 시간이 바뀐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내가 81년 생인가 82년 생인가 곤혹스러워질 때가 있다 이렇게 보면 아무래도 문서상의 내 존재란 너무나도 불확실하다 진짜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내가 거기 있다는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니 그런 생각이 다시 들었다 한 등기소 직원이 전혀 알 수 없는 타인 여자를 찾아나서는 과정 처음에는 영화 아멜리에처럼 즐겁던 과정이 점차로 집요해지며 주제씨는 평소의 자신의 평범한 생활양상을 벗어나게 된다 등기소라는 그 모든 사람들의 이름이 보관된 곳, 그러나 그들의 존재의 어떠한 양태도 그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엄청난 이물감을 이 소설은 맛보게 해준다

또한 죽음이라는 것 역시 하나의 테마로 제시되는데, 자신이 쫓던 여자의 죽음을 접하고 공동묘지를 방문하고 그곳에서 자살한 자들의 공동묘지 번호판을 바꿔놓는 양치기를 통해 (이것은 환상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또한 주제씨의 작업에 관심을 기울이는 소장을 통해 삶과 죽음, 그리고 그것에 평생 동안 따라붙는 한 개인의 이름들 사이의, 깊은 관계를 가진 듯 하면서도 사실 그들 사이의 진실에는 엄청난 거리감이 존재한다는 오묘한 맛을 잠시 생각해보게 된다 아무런 친척도 가족도 없는 주제씨처럼 많은 이들이 자신이 외로운줄도 모르고 외롭게 타인을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진다 자신의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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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적 킬러의 고백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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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참 멋있는 책이다. 제목이 멋있다는 건 여러모로 보나 도움이 된다. 내가 이 책을 읽는 것을 본 사람들도 우와 제목 좋네 하면서 한 번씩 관심을 기울인다. 하지만 책이 제목만 좋아서는 안 된다. 루이스 세폴베다라는 작가의 책은 처음이다. 연애소설 읽는 노인이란 꽤 많이 들어본 작품이 이 작가의 책인 줄도 몰랐다. 역시 그 책도 제목이 좋다.
영화 타락천사를 보면 킬러의 얘기가 나온다. 여명이 킬러로 등장하는데 꽤 감상적인 녀석이다. 그리고 킬러들의 수다라는 영화도 기억이 난다. 그 영화의 킬러들은 꽤 귀여워서 한 번쯤 만나서 얘기를 나누면 참 즐겁겠다 싶었다. 그런데 이 책의 킬러는 만나도 재미는 없을 것 같다. 누아르 영화 같은 두 편의 중편 정도로 생각된다. 빨리 읽히고 영화같다. 모두의 의견에 동의한다. 하지만 제목이 내용보다 더 멋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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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 I
아트 슈피겔만 지음, 권희종 외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199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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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런 말을 듣곤 한다. 아우슈비츠 이후의 인간은 어쩌고... 아우슈비츠가 유태인들을 잔인하게 학살한 곳이라는 매우 기본적인 지식이 있는 나로서는 그것이 얼마나 커다란 여파를 미쳤는지 알 수 없었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를 기억하고 있지만, 그 영화는 부성애에 대한 영화이기 때문에 지금 기억나는 건 단지 마지막 장면이다. 그리고 그때 느꼈던 감동.

'쥐'는 아우슈비츠가 주요 테마다. 아니 아우슈비츠와 인간이라는 표현이 더 맞다. 인간의 잔인성, 말로는 많이 듣게 된다. 인간에게는 폭력적 본성이 있다. 그것은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다. 뭐, 이런 식의 말들... 그러나 '쥐'는 그 폭력 앞에 대처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주인공 아티의 아버지는 인간에게 가해지는 이유없는 폭력(그의 인종은 타당한 논리적 이유가 아니다)의 희생자이며 거기서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와 자신 사이의 한없는 거리감이 이 만화이다. 과연 인간은 얼마나 속수무책의 상황 앞에서 얼마나 한계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몸부림치는가, 그리고 그 몸부림은 한계상황 이후 그것의 극복 이후에도 자신의 몸에 각인되어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특히 가스실이라던가, 그 안에서의 몇몇 상세한 묘사들은 아티의 아버지를 이해하게 만들기도 했으며, 결국 아티까지도 그 아래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은 인간의 무서움을 보여주기도 했다. 우리는 인간이 선하다고만 속고 살 수는 없다는 것. 사실 그렇게 순진하게 살기엔 인간은 훨씬 더 복잡하고 두려운 동물일지도 모른다는 것. 그와 같은 역사를 마지막까지 덮어보려 포로들을 죽이는 독일군들의 모습 또한 대단히 인상깊었다.

만화라는 것은 확실히 이 작품에서 장점으로 작용한다. 매우 어둡고 암울한 이야기일 가능성이 있는데 그 가능성을 매체가 어느정도 해소해주기 때문이다. 처음에 책을 펼쳐보면 우와 너무 글씨가 빽빽하네 싶지만 매우 쉬운 대화체이므로 읽는데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다. 아쉬움이 남는다면 거친 그림체에 적응하지 못해 그림을 제대로 음미하지 못했다는 것. 아트 슈피겔만이란 작가의 특성을 조금 먼저 알고 읽었더라면 훨씬 더 만화의 특성을 살려 이 책을 볼 수 있었을 것 같다. 당신은 그림도 꼭 눈여겨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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