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서 보낸 한 철 민음사 세계시인선 3
랭보 지음, 김현 옮김 / 민음사 / 197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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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보는 음울하게 세상을 조롱하고 내면의 들끓는 바람을 노래하고 자신의 시선으로 사물을 관통한다. 아침부터 랭보 시집을 읽어서인지, 하루가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꼭 유쾌한 것만이 인생은 아니란 것쯤은 이제 알 때니까... 시집 중 가장 내 마음을 끈 대목'나의 삶은 단지 부드러운 광기였다'부드러운 광기... 취한 듯 살아가는 시선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 선의 속에 도사리는 악의, 악의 속에 도사리는 현명함, 어리석음...몇 편은 이해할 수 없었고 몇 편은 공감하며 읽었다 오래전부터 붙잡고 있었는데 이제서야 책장을 덮었다.다음에 다시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오! 그이가 죄의 바람을 쐬며 걷고 싶어하는 그 날들!'이 찾아오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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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바다 깊은 곳으로 1
마루야마 겐지 지음, 박은주 옮김 / 책세상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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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야마 겐지의 소설이 시적이라는 말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다 해도 이 소설 '언젠가 바다 깊은 곳으로'에는 시적인 부분이 자주 엿보인다. 시종일관 주인공 세이지는 가벼움을 유지하지만, 그의 삶 속에는 바다와 같은 충만함이 깃들여있다는 기분. 소설을 읽는 내내 '충만하다'는 단어가 떠올랐다. 매우 어긋난 가정의 차남인 세이지가 믿는 유일한 가족은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가 세이지에게 남긴 몇몇 교훈들이 소설 속의 세이지를 압도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도중에 어떤 일이 있든 인간은 모두 제각기 바라는대로 되며 자리를 잡을 곳에 자리잡는 법이다.''운명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남모래 바라고 있는 방향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두루미, 기요시, 쓰루가 가버린 바다 속, 언젠가 그 바다 깊은 곳으로를 꿈꾸는 세이지의 모습은 험난한 인생을 헤쳐나갈 준비를 이제 막 마친 선장의 모습과도 비슷하다. 소설 후반부의 환상성은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이 시종일관 유지해오던 시적인 문체 덕분에 힘을 얻는다. 여러가지 장치를 통해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은 희망을 암시한다. 무엇을 바랄 것인가, 한 번쯤 무언가를 바래도 좋은 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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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여는 집
방현석 지음 / 창비 / 199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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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현석 선생님의 소설은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에 대한 내용이다.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삶을 실현하기 위해 공장의 자본가들과 대립하고 그 대립의 과정에서 벌어지는 어려운 상황들을 다루고 있다. 투쟁의 과정에서 대립된 두 계급의 문제만이 아닌, 함께 투쟁하지만 처음의 생각과는 다르게 그 과정에서 지치게 되면서 발생하는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처음 소설을 펼쳐들었을 때, 내게 '투쟁'이란 단어에서 풍겨오는 낯설음, 이질감 같은 것들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어제 처음으로 서울시청 앞에서 효순이와 미선이의 한을 풀어주고 SOFA를 개선하자는 내용의 집회에 갔었다. 텔레비전에서 보도되던 짤막한 내용의 기사가 아닌 직접 현장에서 많은 사람들(어떤 특정 집단이 아닌 나이와 직업이 다양한)과 함께 노래 부르고 투쟁을 외치고 함께 뛰었다. 너무 사람이 많아서 뒤를 돌아봐도 인파가 끝이 없었다. 대학에 오고 3년만에 친구들에게 말로만 듣던 집회에 참석한 것이다. 그리고 내가 살아왔던 방식이 얼마나 이기적인가에 대해서 회의를 느꼈다. 내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 나는 너무나 무관심했던 것은 아닌가, 이기주의를 개인주의라는 말 아래 그럴싸하게 포장하려 했던 것은 아닌가, 자문해보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방현석 선생님의 소설은 이와 같은 집단의 문제에 대해(물론 그 내용은 다르지만) 고민하고 있다.

이번 미선이와 효순이의 사건이 있기 전에는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자신의 눈 앞에 닥친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타인의 문제, 내가 속해있지만 익숙해져버려 더 이상 의식되지 않는 집단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 물론 나역시도 그랬다. 그래서 내게 방현석 선생님의 소설과 광화문 집회는 같은 맥락에서 나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질문하는 것으로 다가온 것이다. 광화문 쪽으로 친구의 손을 잡고 뛰며 내가 타인을 위해 내 다리에 힘을 주어본 적이 있는가, 크게 나의 목소리를 내본 적이 있는가 질문했고 방현석 선생님의 소설을 보며 쉽게 지나간 과거로 한 시대를 치부한다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가를 느꼈다. 아직도 이 곳에는 가난하고 못 배워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힘겨운 사람들이 많지만 그들은 더 이상 소설의 주인공이 되지 못한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곳에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생존투쟁이 되어버린 이들, 꼭 문학이나 예술이 그러한 틀안에 갇혀서 고민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의식은 깨어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세계에 부합하지 않는 여러 삶의 모습들에 대해 현실적으로 치열하게 부딪혀야 하는 것은 아닐까. 방현석 선생님의 소설이 단지 대립되는 계급 관계를 그린 것이 아니라, 그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문제를 그렸다는 것은 여기서 주목할만한 점이다. 또한 그 문제가 극복되는 양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극복을 위해 자신의 의지를 다지는 인간의 모습을 그렸다는 것이 더욱 매력적이었다. 그것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고 생각해야 할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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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창비시선 46
김용택 지음 / 창비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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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에 섬진강에 김용택 시인을 만나러 갔었다. 온통 푸르른 물과 산속에 자리잡은 마암분교에서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시인의 모습이 인상적으로 남아 다시 한 번 여유가 된다면 찾아보고 싶은, 그런 곳이었다. 그때 시인의 이야기보다는 그 풍경에 넋을 놓았던 기억, 아~ 자연이란 이런거구나 싶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나 김용택 시인의 시는 이런 감상에 사로잡힌 도시민인 나에게 채찍질을 한다. 그는 쉽게 우리가 말하는 농촌, 자연이 그곳이 자신의 터전인 이들에게 얼마나 의미있는가를 밝혀내고 있다. 하루종일 밭일을 하며 지게를 지며 고단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농촌을 지켜내는 농촌민들의 삶이 김용택의 시에서 생생하게 살아난다. 그것은 우리가 말하는 것처럼 아름답다는 한 마디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농현상으로 인해 사람이 없는 곳, 일은 많고 고된 삶을 김용택 시인은 자신의 눈으로 묘사한다. 또한 그곳 사람들이 자신들의 땅에 얼마나 애착을 가지고 있는가를 눈물겹게 그려낸다. 어떤 생생한 은유보다도 김용택의 시에는 농민의 단순한 삶을 단순한 언어로 그려냄으로 해서, 그 진실함을 추구하는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 새벽을 사는 모습, 부지런하고 정직한 모습, 배운 것은 없지만 그 없음이 부끄러움이 아닌데도 고단해지는 모습, 흙에 맡긴 생의 모습을 누가 이토록 생생하게 그려낼 것인가. 그의 시 역시 그의 맑은 땅에 터전을 두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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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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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소설이라는 것이 스토리만으로 승부한다고 해도 허삼관 매혈기는 전혀 뒤질 것이 없는 작품이다. 허삼관이라는 사내의 피를 파는 이야기라고 제목에 나와 있듯이, 이 책은 허삼관이라는 한 중국인이 피를 팔아 삶의 어려움을 해결해나가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왜 허삼관은 다른 많은 일자리가 있음에도 피를 팔아야만 했는가, 라는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피는 책에서도 나와있듯이 목숨과도 같은 것이며 조상과도 같은 것인데 말이다. 허삼관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 피를 팔아 돈을 마련한다. 장가를 가게 될 때, 아들들이 아프거나 멀리 떠날 때 말이다. 사실 허삼관 매혈기는 그리 밝고 경쾌하지 않으며 중국의 역사에 대해서도 나름의 해석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을 읽는 동안 어떤 독자건 한 번은 웃게 될 것이다. 삶이 몹시도 고단해서 지치고 쓰러질 것 같은 순간을 위화는 결코 그것만으로 끝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이 삶을 버틸 수 있는가를 위화는 서사구조에서 밝혀내고 있는 것이다. 허삼관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양심적인 평민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세상은 또 살만한 것이라고... 나는 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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