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의사 강그리옹 - 해외현대소설선 1
조엘 에글로프 지음, 이재룡 옮김, 안규철 그림 / 현대문학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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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목부터 뭐, 뭐라고 강그리옹이 뭐야라고 물을 수밖에 없는 위트넘치는 소설!! 현대적 매력라면 뭔가 전복시키는 것, 새로움 속에서 의미를 찾는 것, 이제까지 있었던 것 통념화된 것을 비웃어주고 다를 수도 있음을 당당하게 제시하는 것 아무래도 '장의사 강그리옹'은 현대적인 책이다

가볍고 빠르지만 신선하게 읽을 수 있는 재치있는 문장은 장의사도 카페주인도 성당 목사도 흘레붙는 동네 개조차도 가만두지 않는다. 시종일관 그들은 상식에서 벗어나지만 그 일탈은 젊은 프랑스 작가의 간결한 언어 속에서 대단하고 의미있는 행동이 아닌, 어쩌면 그들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그것이 바로 '장의사 강그리옹'의 매력이기도 하다.

죽음이라는 알 수 없는, 어딘가 꽈 막힌 어둠의 이미지를 듬뿍 함유한 이 소재는 더 이상 질척한 구덩이에서 구출되지 못 하는 미로나 보이지 않는 안개가 아니다. 죽어있는 사람은 죽는 게 당연하므로, 더 이상 헤매고 싶지 않기에 사람 하나쯤 죽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은 풍자이며 재치가 되는 것이다.

자극과 폭력으로 무장한 영화나 예술에 대한 비판이며 삶의 반대편에 서있는 죽음에 대한 색다른 접근이며 무엇보다 보수적인 당신 속의 막을 깨려는 움직임인 것이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 3인칭 소설에 '나'가 되어도 장의사 강그리옹에서는 그리 어색하지 않다.

-누가 선을 그었을까
-왜 그 선에 갇혔을까
-금을 넘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야

책은 많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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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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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재밌었다는 말을 해야겠다. 유쾌한 것을 좋아하는 나의 습성 때문일까. 처음 단 편 두 개는 특히 재밌었다. 라디오 기능이 있는 선풍기를 수집하는 사람의 외로운 구매 어쩌고도, 있지도 않은 롤러코스터(플라잉 롤러코스터)에 대해 쓴 것도 모두 즐겁게 읽었다. 또한 나의 글 쓰기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어느 정도의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는가. 단순한 유쾌함이 아닌 나름의 철학이 있어서였겠지. 아마 레포트를 쓴다면 시대와 세대 어쩌고 과거의 유물과 90년대의 관계, 이데올로기의 지배 어쩌고 그런 소리를 했을 것 같다. 하지만 이건 레포트가 아니니까.

'시간이 지나면 어떤 둥물들은 멸종하고 어떤 동물들은 자신을 보호하던 거추장스러운 껍질을 버리고 다른 시간 속으로 유영해간다.'
-오징어와 암모나이트가 같은 류의 동물이라는 얘기에서 이 말이 나왔다. 과연 나는 멸종할까, 이 껍질을 버릴까. 유영한다는 말도 좋았다. 시간 속으로 유영할 수밖에 없는 것들. 도저히 그 궤도를 이탈할 수 없는 것들.

'모든 것들은 가까이 다가가서 귀를 기울이면 더욱더 잘 들리는 법이다. 내가 배워야 할 것은 좀더 귀를 기울이는 일이다. '
-단편 '스무 살'에 나온 말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뭘까. 많은 사람들이 어른이지도 않으면서 어른이 되야 한다는 부채감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아 보일 때가 있다. 그저 시간에 이끌려, 하지만 만일 그런 시간마저 없다면 아무도 어른이 되려 하지 않을지도 모르지. 힘겨운 어른이 되는 길목에서 김연수의 소설은 변화해가는 시대와 스스로를 되짚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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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268
황동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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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규의 이번 시집은 그가 오랜 동안 시를 써온 사람이라는 것, 또한 그가 젊음의 열정이나 환희를 넘어선 아픔이 지나고 난 자리, 꽃이 피고 진 자리에 남겨진 신성한 기억을 노래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해준다.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그의 연가풍의 시들('즐거운 편지', '조그만 사랑 노래' 등)이 사랑하는 순간의, 혹은 사랑을 잃어버린 순간의 자리를 서성이는 것이라면 이번 시집에 담긴 연가풍의 시들은 시간의 흔적이 담긴 노래이다. 극한을 지나온 뒤의 평정, 평정을 찾으려는 마음이 아니라 평정 속에서도 추억에 의해 흐트러질 수밖에 없는 마음의 물결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굳이 사랑을 다룬 시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여타의 시들에서 역시 그는 일상에 담긴 신성한 초월의 경지를 포착하고 그 탈속의 모습이 허무함이나 무상함이 아닌 시간의 궤적 속에 이루어진 성스러운 것임을 은근히 드러낸다. 이러한 종교적 신성함의 세계는 예수와 불타, 원효의 대사로 이루어진 여러 편의 시들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이 성인들의 대화는 읊조리듯 낮고 적막하게 울리는데, 전혀 다른 종교의 합일, 지향점에 담겨진 자연스러운 삶의 몸짓을 황동규는 시의 언어로 되살려내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탈속의 경지가 자칫 담아내기 쉬운, 논리 없는 긍정과 낙관주의적 희망, 자연물에 대한 무조건적인 의지 대신 황동규의 시는 일상생활(몽정, 젊은 날의 기억)을 자연스레 시로 풀어냄으로 해서 시인의 원숙미를 느끼게 해준다. 이와 같은 원숙미의 경지는 시의 내용뿐만이 아니라 그 형식이라 할 수 있는 시의 행과 행 사이의 간극, 연과 연 사이의 간극에서 역시 마찬가지로 찾을 수 있다. 하나의 시적인 가능성을 담고 있는 생각이 한 편의 시가 되기 위해 지켜야할 언어 사이의 긴장과 역동적인 힘을 황동규의 시는 포착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는 복잡하고 난해하며 따라서 현대를 살아가는 시의 흐름 역시 기계적인 복잡성에 어느 정도 그 의지처를 마련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시대의 흐름에 반하는 것조차 시대를 따라 표류하는 것이므로) 그러나 황동규의 시는 이러한 현대성에서 벗어나 시인만의 시적 흐름을 유지하며 이 시대에 시가 나아갈 길을 모색하고 있다. 굳이 현대성을 작위적으로 끌어들여 컴퓨터, 휴대폰 등의 기계적 사물의 인간적 의미를 밝히는 대신 황동규의 시는 그것들이 일상임을 인정하고, 그 일상 속에 내재하고 있는 시적인 풍경('詩的인 것은 禪的인 것이다'는 말이 떠오른다, 나 역시 이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한다)을 그려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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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캔디
백민석 지음 / 김영사 / 199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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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디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밝고 씩씩하게 살며 테리우스나 안소니 같은 왕자님을 만나게 되는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다고 외치는 어릴 적 만화주인공이다. 어떤 사람들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캔디의 주제곡을 부르며, 한 번 스윽 웃고는 말기도 할 것이다. 그런 식의 가벼움, 유년시절의 만화 같은... 캔디라는 이름 자체에 스며있는 꿈과 사랑이 숨쉬는...그러나 백민석의 소설 '내가 사랑한 캔디'는 그 '캔디'라는 이름을 통해 가벼움의 제스처를 도용할 뿐, 소설 속의 현실은 전혀 다른 것이다. 제도권 교육 속에서 희생당하고 사회의 울타리, 체제 속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는 한 남학생의 성장기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내가 사랑한 캔디'이다. 여기서 캔디는 그의 동성연애상대인 남학생이며, 따라서 소설은 밝고 씩씩하지만은 않다. 가벼움과 무거움의 공존은 어차피 모든 소설의 미덕이지만 '내가 사랑한 캔디'는 유독 그에 집착하고 있다.예를 들자면, 총잡이- 기형도 시인의 시에도 나온 비지스의 노래를 들었다던 탈주범 지강헌의 이야기를 소설 속에 삽입시킴으로 해서 그의 삶의 태도와 이 소설의 분위기는 일부 닮아있음을 상기시킨다.

투쟁 현장 속에서의 의미를 상실한 폭력과 그것을 멀리 지켜본 풍경이 '구름 기둥'같다는 낭만적 발언 사이의 간극을 '내가 사랑한 캔디'는 고집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 분위기는 90년대의 것, 소비의 사회에 당연시 되어버린, 쓸쓸한 풍경이면서 바로 주위의 풍경일지도 모른다. '내가 사랑한 캔디'는 그 주위를 배회할 수밖에 없는 자들의 성장기를 성적 코드와 더불어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일테지만) 그리고 있다. 우리, 불쌍한, 싸구려 다툼이 전부인 삶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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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잇
김영하 지음 / 현대문학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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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는 9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기억될 것이다. 그가 21세기를 어떤 작가로 살아갈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90년대를 김영하는 성공적으로 문학 속에 재생해냈다. 포스트 잇은 이러한 김영하를 잘 엿볼 수 있는 산문집이다. 그의 소설이 탄생하게 된 계기, 그의 일상이 틈틈히 재치있게 소개되어 있다.

어떤 소설인지 제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김영하의 단편 소설 중 대금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데, 그가 대학 다니던 시절 대금을 불었단 사실은 소설 읽는 재미를 왠지 더해준다. (왜일까 이유는)

속도전의 사회 속에서 김영하는 나름대로 그 속도에 발 맞추는 작가로 말해지지만, 그조차도 이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다고 말한다. 한때 그리도 유행했던 삐삐가 다시 퇴물이 되어버린 사회, 자살조장이 정말 가능해진 사회- 속도전의 그 틈새를 김영하는 칼 하나를 가슴에 품고 가늠해보는 중이다.

포스트잇은 그의 틈새(사회와 개인, 소설과 작가 등등)에 대한 산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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