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니, 선영아 작가정신 소설향 18
김연수 지음 / 작가정신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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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김연수씨가 책 머리에 써놓았다.
나에게도 팬이 있다면 이 책은 팬을 위한 책이라고

나는 그의 팬이기에 이 책을 읽었다.
제목부터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게 만드는 책, 왠지 자본주의 사회로의 안전한 착지를 원하는 듯한 책, 허나 나는 김연수의 팬이므로

사실, 그는 이제 재간꾼이 되었다.
말을 능숙하게 다루며, 이전부터 심심찮게 보이던 낯선 우리 말을 사용하는데 익숙해있고 그것을 활용해 이야기를 꾸민다.
그의 재간이 무르익었음을 알려주는 책이랄까

사랑은 소품이 아니지만, 사랑 얘기는 소품이 되기 싶다.
사랑은 이 세상 대부분의 이가 하고 있는 것이지만, 이젠 반복되는 노래테잎처럼 사랑 이야기는 술안주가 되고, 지겨운 것이 되고....
그래도 또 듣고 들어 나이가 들면 늘어져버리는...

사랑의 환상은 어디 존재할까
마음 깊은 곳에 라는 쉬운 답에도 불구하고 왜 그리 많은 이야기 있을까

책 이야기를 해야겠다.
세 사람, 아주 뻔한 세사람, 조금 많이 다르고, 또 비슷한 세 사람이 각자 사랑(가슴 찡하고 아프거나 독특한 사랑이 아니라, 아주 익숙한 이야기인 것 같은 사랑)을 말한다. 누구에겐 사랑이 only 이지만, 누구에겐 feeling이어서 벌어지는 헤프닝... 꺾인 꽃 한 송이로 인해 벌어지는 헤프닝... 작가의 사랑 담론은 들어볼 만한다. 다 알고 있는 얘기라도 정의하는 말들은 왠지 귀담아 듣는 것은 나의 몹쓸 버릇일지도 모르지만....






-꽃에는 입술이 없지만 자신을 바라보라고 말한다. 사랑에는 혀가 없지만 네가 누구인지 먼저 알아내라고 종용한다. 사랑을 통해 우리는 저마다 위대한 개인으로 자란다. 거울에 비친 그 위대한 개인을 사랑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을 향해 단호한 어조로 "사랑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지구에서 얼마나 멀리까지 갈 수 있느냐는 미 우주항공국의 업무이지만, 우리가 얼마나 깊이 사랑할 수 있느냐는 스스로 대답할 문제다. 그건 우리가 얼마나 자신에 대해 깊이 알고 있느냐, 혹은 우리가 얼마나 자신을 깊이 사랑하느냐에 달린 문제다. 사랑은 우리의 평생 교육 기관이다. 주민등록번호를 통해 성인 인증을 거쳐야만 입학할 수 있는 성인들의 학교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낼 때까지 우리는 계속 낙재할 수밖에 없다. 죽는 순간까지도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내지 못할 테니, 결국 우리가 그 학교에서 졸업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러므로 다시 한 번, "사랑해"라고 말한다는 건 자신을 먼저 사랑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만 '진실로 연애다운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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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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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앞머리에 이렇게 써있다.
눈이 있으면, 보라. 볼 수 있으면, 관찰하라.

어떤 책을 보면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생긴다. 나를 내 것으로 해서 살아야겠다는 의지, 어떤 힘에 좌지우지 되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해야 겠다는 의지, 이번 책 역시 그렇다. 어떤 물리적 압력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것, 심리적 압박을 무위로 만든다는 것의 중요성.

어느날 갑작스레 찾아온 백색 실명의 전염병, 원인도 없고 치료법도 없이 도시 전체를 뒤덮는 백색 실명 속에 단 한 사람만이 눈이 보인다. 의사 남편을 따라 눈먼 사람들의 수용소에 들어가는 의사의 아내, 모두 눈이 멀 것이라는 두려움에 잠식당해 있으나, 그녀는 그녀가 할 일을 한다. 냉혹하고, 잔인하고, 준엄한 장님들의 왕국에서 유일하게 앞이 보이는 그녀는 눈먼 자들의 왕국의 추잡한 모습의 유일한 목격자가 되는 것이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즉 소유의 개념 자체가 사라진다는 말이다. 어떤 비싼 옷도, 아름다운 모습도 볼 수 없으므로 가치가 없다. 단지 소리만이 살아서 윙윙댈 뿐. 그 원시 상태에서 인간들은 먹을 것을 위해 집단적으로 돌아다니고, 싸우고, 죽고, 배변한다. 시체는 거리에 널브러져 있고, 악취는 온 도시를 점령한다.
수용소 안은 더 하다. 지배와 피지배의 엄청난 소용돌이는 거의 구역질이 날 뻔했다. 그러나 만일 내가 이 상황에 닥친다면 나 역시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 가장 끔찍했다. 결국 나 역시 이와 같은 모습으로 더럽게 돌아다니며 눈이 먼 것을 두려워하고 비관할 것이며, 욕심에 사로잡혀 먹을 것을 숨기고, 타인을 미워하고... 등등등... 허울 좋은 가면을 버린 모습. 마치 거울을 보고 있는 듯해 괴로운 책이었다.
환상같은 신화같은 책이다.
실명은 있으되 실명한 사람은 없는 상태,
과연 누가 얼마나 눈으로 제대로 보고 있을까.
질문...만 있고 답변은 없는 상태.

 

-우리는 눈이 머는 순간 이미 눈이 멀어 있었소. 두려움 때문에 눈이 먼 거지. 그리고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계속 눈이 멀어 있을 것이고. 지금 말하는 사람은 누굽니까. 의사가 물었다. 눈먼 사람이요, 여기에는 그런 사람밖에 없으니까.

-그녀는 또 그 생각이 전부터 이미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말만 빠져 있었을 뿐인데, 이제 그 말이 찾아온 것이다.

-답이란 필요하다고 해서 꼭 나타나는 것은 아니니까. 유일한 답은 답을 기다려보는 경우일 때가 많다.

-우리가 이루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기적은 계속 살아가는 거예요, 여자가 말을 이었다. 매일매일 연약한 삶을 보존해 가는 거예요, 삶은 눈이 멀어 어디로 갈지 모르는 연약하니까, 어쩌면 진짜 그런 건지도 몰라요, 어쩌면 삶은 진짜 어디로 갈지 모르는 건지도 몰라요. 삶은 우리에게 지능을 준 뒤에 자신을 우리 손에 맡겨버렸어요. 그런데 지금 이것이 우리가 그 삶으로 이루어놓은 것이에요.

-다른 사람들과 사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야,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운 거지.

-사람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미리 알 수 없는 거예요, 기다려봐야 해요, 시간을 줘봐야 해요,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시간이예요, 시간은 도박판에서 우리 맞은 편에 앉아있는 상대예요, 그런데 혼자 손에 모든 카드를 쥐고 있어요, 우리는 삶에서 이길 수 있는 카드들이 어떤 것인지 추측할 수밖에 없죠, 그게 우리 인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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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계는 살아 있다
민영기 지음 / 겸지사 /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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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렇겠지만 미지의 것에 대한 호기심은 당연한 것이다. 사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행성이 어디서부터 생겨났는가도 확신하지 못하는 존재이다. 더욱 넓게 이 우주의 끝이 어디인지 우리가 우주의 어디쯤에 살고 있는지를 모르는 채 살아가고 있다. 너무 광대해서 생각하는 것조차 무리인 질문이다.

<태양계는 살아있다>는 천문학적 숫자들이 조금은 가깝게 느껴질 수 있도록 도와줬다. 지구와 태양의 거리에 비해 명왕성의 거리는 얼마만큼인가 하는 것이 비교를 통해, 또 행성의 특징을 알게 됨으로 해서 그리 먼 이야기는 아닌 듯 했다. 화성 표면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어림잡아 볼 수 있게 되니 화성이 그저 우주에 떠있는 별이 아니라 내 이웃처럼 생생하게 느껴진 것이다. 처음 몇 장을 읽으면서부터 나는 놀라움, 경이감에 사로잡혔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철학자들은 과학이 거의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도 우주에 관심을 가지고 하늘을 관찰하며 어떤 현상들의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가설을 세우고 입증하려 했다는 사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의 아덴에 학교를 세워 우주에 대한 학문을 가르쳤다는 것은 처음 안 사실로써, 고대부터 인간이란 존재는 상상하고 가정하며,‘존재’를 끊임없이 새롭게 하기 위해 애쓴다는 것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또한 케플러 법칙 등의 태양계를 밝혀내는 천문학자들이 도대체 어디서부터 호기심에 사로잡혀 이 거대한 우주의 신비를 한꺼풀 벗겨낼 수 있었는지, 생각만 해도 아찔해졌다.

우주,그중 가깝게 인간이 인지하고 있는 태양계는 경이롭고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던 것들이 얼마나 인간적인 고정관념에서 비롯되었는가를 알려준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지구라는 땅만이 전부가 아님을 그저 인간이 지구라는 환경에 길들여진 생물일 뿐임을 실감하도록 해주는 것이다. 지구가 한 바퀴 돌면 생기는 낮과 밤이 금성에는 아예 존재하지 않으며 온도나 기압이 낮아서 물이 흐를 수 없는 행성들, 지구와 같이 딱딱한 표면이 없는 목성, 자극이 뒤집힌 천왕성 등 각각의 행성은 지구에 살며 당연하다고 여겼던 자연현상이 지구라는 행성에만 벌어지는 일이며 다른 행성에 내가 만일 혼자 떨어진다면 살아남을 수도 없겠지만 간혹 살아남는다고 가정해도 너무도 아득한 일이었다. 그래서 과학적 진실이 간명하게 쓰여진이 책이 내게는 매우 詩的인 지점과 더불어 다가왔다.

또한 태양계뿐만이 아니라, 혜성이나 우주에 살고 있을지 모를 다른 생명에 대한 이야기는 신비롭게 전해오는 이야기처럼, 색다른 자극이었다. 이제껏 한 번도 혜성을 보지 못했기에 혜성은 다른 장소에 사는 대단한 사람들이나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햐쿠타케 혜성을 1996년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을 책을 읽다 알게 되면서 내가 왜 일찍 천문학에 관심을 두지 않았나 아쉬웠다. 그것은 일생에 단 한 번 뿐일지도 모를, 아주 특별한 우주의 선물일 텐데 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가 가장 관심이 갔던 부분은 우주 어딘가 있을 생명체에 대한 내용이었다. 고등생물체가 알아들을 수 있기를 기다리며 신호를 보내는 전파 시스템이 지구 어딘가에 존재하며 그 신호를 알아듣고 외계인이 반응하기를 기다리는 천문학적 노력들은 감탄을 자아냈다. 그것은 인간의 생애가 지니고 있는 한계를 넘어서는 행위로 내게 비쳤다. 물론 인간들이 노력을 하는 것은 우주에 생명체가 존재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라는 것 역시 처음 안 사실이었다. 그것은 생명에 대한 신비감, 인간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신뢰의 한 부분을 과학이 뒷받침해주고 있다는 든든한 기분이었다.

책을 한 마디로 떠올린다면 앎에의 열정이라는 두 어절이 아닐까 싶다. 인간이라는 존재 속에 내재된 앎에의 열정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그것이 이 광대무변의우주의 어둠을 밝히고 있다는 사실은 내게 열정이랄까 그리도 쑥스러운 단어를 떠올리도록 했다. 쉽게 포기하고 마는, 왜소한 인간인 내게 그 우주의 우주의 신비를 밝히려 기다리고 애쓴후의 결과들, 별들 사이처럼 머나먼 간격을 좁히는 이들의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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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희망에게
김혜정 지음 / 마음산책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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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투병기의 책들을 보게 되면 자주 눈물을 짓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눈물이 동정 이외의 무엇을 더 이끌어내기는 힘들 때가 많다. 그저 힘겹구나, 이 힘겨운 사람들이 참 슬프겠구나 정도의... 그러나 <슬픔이 희망에게>는 체류성 눈물이 없다. 이 책을 보는 동안 나는 한번도 울지 않았다. 오히려 웃었고 가끔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도 이렇게 보면 참 살만한 괜찮은 세상이구나 생각했을 뿐... 어떤 아픔이나 슬픔은 중독성이 강해서 거기에 머물러 눈물이나 흘리며 망연자실 앉아있기가 쉽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

그에 대항해 이 아픔의 상황을 뚫고 갈 길을 발견하고 인식의 힘을 확장시켜 어두운 터널에 빛을 밝혀야 한다는 것. '슬픔이 희망에게' 어찌보면 너무도 상투적인 제목이지만 배고픈 사람이라야 노력할 수 있다는 속담처럼 슬픔이 생기자 그것을 극복하려 희망을 발견하려 노력한다는 이 책은 결코 단순한 아픔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아이의 병에 대응해 나가기 위해 도서관에 다니며 뇌종양 서적을 읽는 씩씩한 엄마는 수술 이후 우울증에 걸린 아들 휘를 통해 우울증이 감상적인 경향이 아니라 병이라고 선언하며 일인 시위를 하는 것이다 우울증에 대해 심각하게 고찰하는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은 한국사회, 약값이 없으면 환자가 그대로 죽어야 하는 이 나람의 시스템에 투철한 반항의 기를 든 것이다 캐나다라는 이국에 대한 환상이 아니라 정교하게 이건 저렇고 저건 저래, 이것이 모순이고 이게 장점이야 라고 냉철하게 강타를 가하는 모습은 내게 성찰의 기회를 자주 제공했다 쓸만한 세상이 되기 위해 나도 좀 발걸음을 분주히 해야겠구나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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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소녀 카트린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이세욱 옮김, 장 자끄 상뻬 그림 / 열린책들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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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트릭 모디아노라는 내게는 생소한 작가보다는 장 자끄 상빼라는 익히 들어본 이름의 삽화가이야기...

이 사람이 그린 그림이 들어간 책은 도시의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있으면서도 (그림 또한 도시의 모습이 그대로 이다, 빌딩, 분주한 거리, 상점들 등) 그 일상이 물감으로 채색된 것처럼 잘 보인다고 할까 선명해진다고 할까 그러면서 가치가 생긴다. 그저 어린 시절의 추억담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그저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본 안경을 벗고 보는 세상이 어딘가 조금은 다른 곳으로 변한다는 그 설정조차 이 사람의 그림과 함께하는 순간 그 일상은 전혀 다른 모습의 훈훈함, 정겨움을 안게 되는 것이다. 그리웠던 것들처럼, 아니면 오늘 아침 보니 어제와 다르게 창밖 풍경이 아름답다 식의 분석 이전에 마음이 꿈틀거리며 나 역시 그림을 따라 그린다는 것...

여담으로... 안경을 벗고 보면 나는 가로등이 불빛나무처럼 보인다. 거기서 열매를 하나 툭 따서 먹고 싶어진다. 크리스마스 즈음에는 트리가 갖고 싶으면 높은 데 올라가서 안경을 벗고 도심을 바라본다. 그러면 시력이 나쁜 것도 괜찮은 일이군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온 세상이 트리가 되는 상투적이지만 그 순간만은 점으로 찍어두고 싶어지는 마법이 벌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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