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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령작가입니다
김연수 지음 / 창비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러 가지 생각이 동시에 떠오른다. 나는 지금 약간 혼돈스러운 상태일지도 모른다는 것(자기 자신의 상태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전에 읽었던 ‘나의 미카엘’의 문장들을 보고 이 책을 언제 읽었느냐는 것, 그때도 똑같은 느낌들이었냐는 것. 아무 것도 알 수가 없다.
김연수의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를 보고 『나의 미카엘』을 떠올렸다. 그래서 이전에 그 책을 읽고 써놓은 글을 봤다. 『나의 미카엘』이 내게 준 단 하나의 문장은 ‘나는 단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정확히 이 문장은 아니지만 이런 의미였다고 기억한다. 하지만 단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해도 자꾸만 손 사이로 새어나가는 걸. 그 문장을 읽었던 시절에도 나는 그것을 알았을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든, 『나의 미카엘』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진실은 아주 내밀한 두 사람 사이에도 존재하지 않고, 서로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 어쩌다가 살다 보면 누군가는 만나고 아주 가깝기도 하지만, 그래도 둘은 영 둘이라서, 공허가 찾아온다는 것.
-돌아가신 아버지는 가끔 이런 말씀을 하셨다. 보통사람이 철저한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거짓은 늘 저절로 드러나버린다고 말이다. 그건 마치 너무 짧은 담요 같은 것이다. 발을 덮으려고 하면 머리가 드러나고 머리를 덮으면 발이 빠져 나오고. 사람은 그 구실 자체가 불유쾌한 진실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무언가 숨기기 위해서 복잡한 구실을 만들어낸다. 반면에 완전한 진실은 철저하게 파괴적이고 아무런 결과도 가져다주지 못한다. 보통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조용히 서서 지켜보는 것뿐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뿐이다. 조용히 서서 지켜보는 것.
-나의 미카엘에 나온 문장은 이렇다.
진실 같은 건, 정말 어디 있는지 모를 것 이라고, 우리가 믿고 표면화시킨 것들은 어쩌면 이다지도 허황된 것이냐고, 나는 김연수의 소설을 읽으며, 그 말들이 너무 슬펐지만, 어쩔 수 없이, 슬프다는 것 자체가 내 스스로가 그 말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는 김연수를 다른 작가들을 대하는 것과는 좀 다른 눈으로 본다. 이전에 김연수의 『스무살』이란 창작집을 몹시 좋게 봤기 때문이다. 『스무살』은 내 생애 몇 안 되게 자발적으로 두 번 본 책이었다. 비평을 한 번 써보고 싶을 만큼 좋았는데, 왜 좋았는지는 이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어쩌면 그때도 몰랐는지도 모르겠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30년을 같이 산 부부가 헤어지는 데 무슨 이유가 있을 것 같냐고, 이유라면 모든 것이 이유라고.
허망하다는 느낌은 왜 드는 것일까, 우리가 믿는 건 진실이 아니에요, 하면 왜 허망해지는 걸까, 어쩌면 우주에 단면이라는 게 있어서 어느 장난꾸러기가 우주를 정말 아무 뜻 없이 그저 심심해서 절단하면, ‘메롱’이라고 써있을지 어찌 안담. 그리고 이 모든 생명은 끝이 날지도 모르는데, 그건 허망한 걸까.
종일 인용을 해댄다.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농담을 모르면 도덕적이지 못하다고, 말도 안 되는 진실을 믿고서 행동하면, 도덕을 뛰어넘고 말지만, 사실 그건 생의 농담을 모르는 행위일 뿐이라고, 해석해본다.
나는 김연수의 약간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기던 이전 창작집보다는 이 작품집이 훨씬 좋다.
지난 일들을 이해해보겠다는 마음으로 기억들을 샅샅이 살펴본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알아낼 수 있는 진실은 거의 없다.
개인의 것이든 집단의 것이든, 모든 역사란 일어날 만하니까 일어난 일들의 연속체를 뜻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시 말해 일단 어떤 일이 일어나면 저마다 반드시 일어날 만한 일이었다는 증명서가 자동적으로 첨부된다. 아무리 봐도 그 증명서를 찾을 수 없는, 그러니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자신의 진실과 일어난 일의 진실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부자도 아닌데 부자의 세계를 어찌 안담. 행복하지도 않은데 행복한 세상을 어떻게 그린담. 가진 꿈이 없는데 꿈을 어떻게 판담……. 거짓말은, 들통나게 마련인데.’
그 어떤 빠르기가 지시돼 있건 그게 빠르다거나 늦다거나 하는 게 느껴질 수 없을 때, 최고의 연주라고 생각해. 그건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야.
“나는 그 사람보다 더 많이 노력했어. 그게 실수라는 걸 납득하기 위해서. 내 유리잔 따위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어. 그런데도 잘 되지 않더라. 그랬던 것 뿐이야. 그 사람이 어떤 노력을 하는지 따져볼 겨를이 없었을 뿐이야.”
삶을 돌이킬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는 모두 불리한 입장에 놓인 역사가와 같다. 하찮은 사실들은 어쩔 수 없이 엄숙하고도 중요한 양상을 띠게 된다. 어쩔 수 없이.
-원문이 사라졌으므로 우리가 상상하는 모든 문장은 원문이 될 수 있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 사이를 원래 그대로 틈으로 남겨두고 살아가는 일뿐이었다.
-‘이렇게 한낮 속에 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느낌 숨어 있어라’라는게 무슨 뜻이냐면, 백주의 작열하는 햇살 속에 나선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한 편린의 진실도 건질 수 없다는 것이외다.
-한 개인의 진실이란, 깊은 밤, 잠자리에 누워 아무도 몰래 끼적이는 비망록에나 겨우 씌어질 뿐입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 비망록이 씌어지는 곳은 그 사람의 마음속이니 사랑하고 서로 살을 비비며 살아가는 부부라고 하더라도 옆에 누운 사람의 비망록을 들여다보지는 못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