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자에게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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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닷가에 살게 되었다. 책을 다 읽었는데 바다가 보고 싶으면, 5분을 걸어나가면 바다를 볼 수 있는 동네다. 낮에는 관광객들이 펼쳐놓은 텐트가 가득하더니, 오후 8시 넘어 나가니 일요일이라 그런지 바닷가도 주말이면 주차장이 되곤 하는 자전거도로도 한산했다. 주말이 지난 것이다. 이렇게 주말에 사람이 즐비했다가 일요일이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도 이젠 익숙해졌다. 1년 전, 회사를 사직해, 바닷가로 이사와 거의 10개월이 되어 가기 때문이다. 바닷가에 이사를 오고 싶어서 사직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 동력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계속 바다라고는 없는, 자연이라는 것마저 거의 없는 그 도시에 남을까, 여기로 올까, 그런 저울질이 있었던 것 같다. 부부가 이혼하는데 모든 게 이유라고 하듯, 사직의 이유도 그런 것도 같다. 


요새 들여다보다 만 책이 7권 정도 되는데, 유일하게 펼쳐서 다 읽은 책이다. 1챕터 정도를 읽고 덮은 뒤, 갑자기 김금희 작가의 글이 읽고 싶어 다시 펼쳐들고 다 읽었다. 쨍한 문장 말고 따뜻함 같은 것을 읽고 싶었던 것 같다. 

따뜻하다. 문장에도 온도 같은 게 있다면, 대부분 김금희 작가의 글은 따뜻하다. 그게 좋아서 계속 읽는 것 같다. ‘복자에게’, 판사라는 직업의 세계와 제주를 다룬 소설, 여성의 문제, 약자의 문제를 다룬 소설이라 하면 의례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선을 넘어선, 김금희 특유의 따뜻함이 있다. 

생각해보면, 바닷가에 살아야지 생각한 게 내가 10살 무렵 3달 정도 살았던 완도에 대한 기억 때문도 있는 것을 보면, (그때가 내 유년기 인생 중 가장 괜찮았다고 나는 기억하고 있다. 그 원인이 시골 사람들 특유의 정겨움이었는지, 바다였는지는 잊었지만.) 그래서 이 소설이 더 흡입력있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유년을 제주 고고리(가상의 지명이다)에서 보낸 화자가 판사가 되어 제주로 돌아오게 되고 유년의 친구들을 만나고, 그 시절의 어떤 것들을 온전히 회복해내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좀 더 너그럽게, 중학생이 되며 떠날 때처럼 무참하게 떠난 것도 같지만 지나보면 좀 더 너그럽게 세상과 마주하게 된 게 아닐까 하는 이야기다. 

제목 속에 등장하는 복자는 '나'의 유년시절 친구이고 그 시절 상처 입은 채 제주에 와 있는 나에게 어떤 따뜻함을 베풀어준 친구이기도 하지만, 소설에 대한 작가의 글을 읽으며 어렵게 승리를 일구어낸 그들에게, 라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이 사직서를 내고 읽기 좋은 이유는, 물론 실제로 주인공이 사직서를 낸 것도 맞지만, 사직서를 내는 일이 실패가 아니라며 나온 대사 ‘그런 건 인생을 더 깊이 용인한다는 자세 아닐까’라는 그 말 때문도 있지만, 사직과 같은 절연이 꼭 '퉤퉤 이제 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얘기했듯 부부의 이혼처럼 a부터 Z까지 이유였으나, 무엇이라 말할 수는 없는. 

 소설 속에서 사건은 두 개가 있다고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어린 시절 나와 함께 살던 고모의 일과 지금 나의 일이다. 두 사람 모두 가해자라 할 수 없으나 피해 입은 이들을 사랑하며 그 곁에서 치명적이지 않지만 스스로는 치명적이라고 느끼는 가운데 무력하게 그들을 지켜보고 걱정해야 하는데, 그 스스로에게는 무력해보이는 걱정이나 우려도 실은 노력이구나, 소설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는 외로우면 바다를 나갈 수 있는데, 그건 꽤나 결정적으로 괜찮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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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공을 갖고 논다. 공은 자꾸 엉뚱한 방향으로달아나고 아이들은 그것을 따라잡느라 숨이 가쁘다. 여기서공의 역할은 아이들의 예상과 다르게 움직이는 것이다. 공은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규칙한 움직임으로 아이들을 갖고논다. 무수한 실패와 탄식의 경험을 통해 아이들은 공의경로를 파악하고 제어하는 법을 배운다. 그러므로 그들의공놀이는 공처럼 굴러가는 세상을 살아내는 연습이다.
그것은 아이들에게 세상일은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 세상은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제멋대로 굴러가고 그것이 방향을바꿀 때에는 아무런 예고도 없다는 것을 가르친다. 불규칙함 속에서 규칙을 발견하고 공보다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게임에서 영원히 이길 수 없다는 것, 세상에서 낭패를 덜 보려면 공처럼 되어야 한다는 것.

공은 자기 밖의 세상에 관심이 없다. 우리가 구기 경기에 열광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 우리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고 완벽하게 중립적이기 때문이다. 그 자체로 완결되어 있고 부족함이 없는 이 형태는 자기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전혀 개의치 않는다. 굴리면 굴리는 대로 구르고 어디든 머무는 곳에 머문다. 자신이 어디에 있어야 할지 위치를 선택하지 않으며 선택하려는 의지 자체가 없다. 지형과 중력이, 그리고 그 밖의 여러 우연이 정해주는 대로 구르거나 멈출 뿐이다. 요즘 나는 때때로 공처럼 되고 싶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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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집
김희경 지음,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그림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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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고 지친 날 보면 

마음의 위로를 얻는 책

그래서 아이가 있는 친구들에게 들이밀었으나

대부분 어렵다고 하지만

언젠가는 그 아이가 커가다 알게 될 거야

이 책의 가치를...



일어나자마자 나가서 보고 왔다.

(집에 있던 것도 애가 있는 다른 친구에게 줬으므로 집에는 없다ㅠ)


"걱정마 이 세상에는 다른 마음들이 아주 많거든. 그 마음이 언제라도 너를 도와줄 거야"

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

2014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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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필립 K. 딕 걸작선 12
필립 K.딕 지음, 박중서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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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K. 딕은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에서 인간의 공감 능력이 인간성의 기본인가를 전기 동물, 같은 종은 아니나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동물이라는 생명에 대한 애착, 자신이 앤드로이드인지 모르고 학습 혹은 프로그램된 반응으로 공감의 제스처를 취하나 실제 감정 이입은 어려운 앤드로이드를 통해 묻는다. 지능이 떨어지는 이지도어란 감정이입 능력이 꽤 뛰어난 도태자로 분류된 인물이 있어 소설은 다층적으로 주제 혹은 질문(소설의 본령이라는)에 다가간다. (또 이 소설 배경인 시대에는 미세먼지 지수를 확인하는 요즘과 비슷하게 세상을 방사능재가 뒤덮고 있다. 환경에 대한 예견까지 하고 있는 셈이다.)

버스에서 책을 읽다 희수랑 예전에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어쩌면 감정이입을 할 줄 모르는 사이코패스야말로 진화의 결과물일지도 모른다는...그러니까 이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면 감정이입 같은 것 말고 오직 나를 위해서만 살아야는가...이때부터 종교, 철학(도덕의 범위, 정의에 대한 정의 등과 관련된)과 인간성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다.

소설은 이제 읽고 영화는 좋아했는데 2년 전 비슷한 주제(우리의 감정은 정말 우리 것일까, 삶의 의지란 얼마나 잔혹한가)로 단편을 쓴 적이 있어 더 생각이 많다. 딕에 대한 질투와 함께, 인간의 사고방식의 공통분모에 감탄하며, 그래서 어떻게 살 것인가 어디까지가 선이고 어디부터가 멍청함과 현실감각의 부족인가 질문하며 읽고 있다

 

2014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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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서로 매여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렇고, 또 그 반대로 자기가 굉장히 증오하던 사람이 없어졌을때도 허전하고 그러죠. 인간이란 게 그렇게 복잡한 거고,
그러니까 인간에게만 문학이 있는 거 아니에요? 다른 동물에게는 이중성, 삼중성이 없으니까.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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