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현상의 직관이 무한성이라는 이념을 수반할 경우, 그렇게 현상하는 자연이 바로 숭고하다(고 불리는 것이다.) 그런데 자연 현상의 직관이 무한성이라는 이념을 수반하는 것은 대상의 크기를 평가함에 있어서 우리의 상상력의 최대의 노력을 해도 그 노력이 그 대상의 크기 평가에 적합하지 않을 때에만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지성의 수 개념은 전진(수열)을 통해 모든 척도를 주어진 어떠한 크기에도 적합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수학적 크기 평가에 있어서는 상상력은 어떠한 대상이라도 감당하여 그 대상의 크기 평가를 위한 충분한 척도를 제공할 수가 있다. 따라서 점진적인 포착을 하나의 전체 직관으로 파악하는 상상력의 능력을 뛰어넘어 포괄하려는 노력이 감지되는 것, 그리고 그와 동시에 지성의 작은 도움만으로도 크기 평가를 위해 유용한 근본 척도를 파악할 수 있고 또 그 척도를 크기 평가에 사용함에 있어서 무한히 진행할 수 있는 이 능력마저 부적합하다는 사실이 지각되는 것, 바로 이런 것은 크기에 대한 감성적 평가에서만 발생함이 틀림없다. 이제 자연의 고유하고도 불변하는 근본 척도는 자연의 절대적 전체이고, 이 전체는 현상으로서의 자연에 있어서는 포괄된 무한성이다. 그러나 이러한 근본 척도는 자기모순적 개념(끝없는 진행의 절대적 총체적이란 불가능하기 때문에)이므로, 상상력이 자신의 모든 능력을 발휘해도 포괄할 수 없는 자연물의 크기는 자연에 관한 개념을 (자연과 또 동시에 우리의 사유 능력을 근거 짓고 있는) 하나의 초감성적 기체로 유도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기체는 감관의 모든 척도를 넘어서는 큰 것이며, 따라서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대상을 평가할 때의 우리 마음 상태가 숭고한 것으로 판정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감성적 판단력은 미를 판정할 경우 자유롭게 유희하는 상상력을 지성과 연관시켜 지성의 개념들 일반과 (그 개념을 규정하지 않고) 합치시키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어떤 사물을 숭고하다고 판정할 경우에는 상상력을 이성과 연관시켜 그 이념들과 (어떠한 이념인가는 규정하지 않고) 주관적으로 일치시킨다. 즉 일정한 (실천적) 이념들이 감정에 미치는 영향으로 인해 야기될 마음의 상태에 적합하고 또 그런 이념과 조화로운 마음의 상태를 산출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로부터 명백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진정한 숭고성은 오직 판단자의 마음속에서만 찾아지는 것일 뿐, 자연물의 판정이 그러한 마음 상태를 유발한다고 해서 자연물에서 찾아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얼음이 겹겹이 쌓인 거칠고 무질서하게 일그러진 산악이나 어둠 속에서 미친 듯 파도치는 바다와 같은 것들을 누가 숭고하다고 부르겠는가? 그러나 마음이 그러한 것들을 고찰함에 있어서 그 형식은 고려하지 않고 (단지) 상상력과 일체의 규정된 목적 없이 상상력과 결합하여 상상력을 단지 확장할 뿐인 이성에 자기를 내맡겼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상상력의 능력이 여전히 이성의 이념들이 부적합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때 마음은 자신의 고유한 판정에 있어서 자신이 고양됨을 느끼게 된다.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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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식들아´이 법문 중의 좌선은 원래 마음에 집착하지 않고 또한깨끗함에도 집착하지 않느니라。또한 움직이지 않음도 말하지 않나니、만약 마음을 본다고 말한다면、마음은 원래 허망한 것이며 허망함이 허깨비와 같은 까닭에 볼 것이 없느니라. 만약 깨끗함을 본다고 말한다면 사람의 성품은 본래 깨끗함에도 허망한 생각으로 진여가 덮인 것이므로 허망한 생각을 여의면 성품은 본래대로 깨끗하느니라。자기의 성품이 본래 깨끗함은 보지 아니하고 마음을 일으켜 깨끗함을 보면 도리어 깨끗하다고 하는 망상(淨妄)이 생기느니라。 - P134

이제 너희들에게 말하나니、이 법문 가운데 어떤 것을 좌선이라 하는가?
이 법문 가운데는 일체 걸림이 없어서、밖으로 모든 경계 위에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앉음[坐]이며 안으로 본래 성품을 보아 어지럽지 않은 것이 선(禪)이니라。 - P136

어떤 것을 선정이라 하는가?
밖으로 모양을 떠남이 선이요 안으로 어지럽지 않음이 정이다。설사 밖으로 모양이 있어도 안으로 성품이 어지럽지 않으면 본래대로 스스로 깨끗하고 스스로 정(定)이니라. 그러나 다만 경계에 부딪침으로 말미암아 부딪쳐 곧 어지럽게 되나니、모양을 떠나 어지럽지 않은 것이
곧 정이니라。밖으로 모양을 떠나는 것이 곧 선이요 안으로 어지럽지 않은 것이 곧 정이니、밖으로 선(禪)하고 안으로 정(定)하므로 선정이라고 이름하느니라。 - P137

위 없는 불도(佛道)를 맹세코 이룬다 함은 항상마음을 낮추는 행동으로 일체를 공경하며 미혹한 집착을 멀리 여의고,
깨달아 반야가 생겨 미망함을 없애는 것이다。곧 스스로 깨쳐 불도를 이루어 맹세코 바라는 힘(誓願力]을 행하는 것이니라。」 - P151

선지식들아、각각 스스로 관찰하여 그릇되게 마음을 쓰지 말라. 경의 말씀 가운데「오직 스스로의 부처님께 귀의한다」하였고 다른 부처에게 귀의한다고 말하지 않았으니、자기의 성품에 귀의하지 아니하면 돌아갈 바가 없느니라。」 - P157

어떤 것을 마하라고 하는가?
마하란 큰 것이다。마음의 한량이 넓고 커서 허공과 같으나 빈 마음으로 앉아 있지 말라。곧 무기공에 떨어지느니라。허공은 능히 일월성신과 대지산하와 모든 초목과 악한 사람과 착한사람과 악한 법과 착한 법과 천당과 지옥을 그 안에 다 포함하고 있다.
세상 사람의 자성이 빈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 P159

자성이 만법을 포함하는 것이 곧 큰 것이며 만법 모두가 다 자성인 것이다。모든 사람과 사람 아닌 것과 악함과 착함과 악한 법과 착한 법을 보되、모두 다 버리지도 않고 그에 물들지도 아니하여 마치 허공과 같으므로 크다고 하나니、이것이 곧 큰 실행이니라。미혹한 사람은 입으로 외고 지혜 있는 이는 마음으로 행하느니라。또미혹한 사람은 마음을 비워 생각하지 않는 것을 크다고 하나、이도 또한 옳지 않으니라. 마음의 한량이 넓고 크다고 하여도、 행하지 않으면 곧 작은 것이다.
입으로만 공연히 말하면서 이 행을 닦지 아니하면 나의 제자가 아니니라.」 - P161

「어떤 것을 반야라고 하는가?
반야는 지혜이다。모든 때에 있어서 생각마다 어리석지 않고 항상 지혜를 행하는 것을 곧 반야행이라고 하느니라.
한생각이 어리석으면 곧 반야가 끊기고 한생각이 지혜로우면 곧 반야가 나거늘, 마음 속은 항상 어리석으면서「나는 닦는다」고 스스로 말하느니라。반야는 형상이 없나니、지혜의 성품이 바로 그것이니라。
어떤 것을 바라밀이라고 하는가?
이는 서쪽 나라의 범음으로서「저 언덕에 이른다」는 뜻이니라。뜻을 알면 생멸을 떠난다。 경계에 집착하면 생명이 일어나서 물에 파랑이 있음과 같나니, 이는 곧 이 언덕이요, 경계를 떠나면 생멸이 없어서 물이 끊이지 않고 항상 흐름과 같나니, 곧 저 언덕에 이른다고 이름하며, 그러므로 바라밀이라고 이름하느니라。 - P162

기억과 집착이 없어서 거짓되고 허망함을 일으키지 않나니 이것이 곧 진여의 성품이다。 지혜로써 보고 비추어 모든 법을 취하지도 아니하고 버리지도 않나니、곧 자성을 보아 부처님 도를 이루느니라。」 - P166

비유컨대、그 빗물이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님과 같다。원래 용왕이 강과 바다 가운데서 이 물을 몸으로 이끌어 모든 중생과 모든 초목과 모든 유정·무정을 다 윤택하게 하고, 그 모든 물의 여러 흐름이 다시 큰바다에 들어가고 바다는 모든 물을 받아들여 한 몸으로 합쳐지는 것과 같나니、중생의 본래 성품인 반야의 지혜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 P169

사람 가운데는 어리석은 이도 있고 지혜로운 이도 있기 때문에、어리석으면 작은 사람이 되고 지혜로우면 큰사람이 되느니라。미혹한 사람은 지혜있는 이에게 묻고 지혜있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을 위하여 법을 설하여 어리석은 이로 하여금 깨쳐서 알아 마음이 열리게 한다。미혹한 사람이 만약 깨쳐서 마음이 열리면 큰 지혜 가진 사람과 더불어 차별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알라, 깨치지 못하면 부처가 곧 중생이요 한생각 깨치면 중생이 곧 부처니라. 그러므로 알라, 모든 만법이 다 자기의 몸과 마음 가운데 있느니라. 그럼에도 어찌 자기의 마음을 좇아서 진여의 본성을 단박에 나타내지 못하는가?〈보살계경〉에 말씀하기를「나의 본래 근원인 자성이 청정하다」고 하였다。마음을 알아 자성을 보면 스스로 부처의 도를 성취하나니、당장 활연히 깨쳐서 본래의 마음을 도로 찾느니라.」 - P174

만약 자기의 마음이 삿되고 미혹하여 망념으로 전도되면 밖의 선지식이 가르쳐 준다 하여도 스스로 깨치지 못할 것이니, 마땅히 반야의 관조를 일으키라. 잠깐 사이에 망념이 다 없어질 것이니 이것이 곧 자기의 참 선지식이라, 한번 깨침에 곧 부처를 아느니라。 -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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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혹한 사람은 경계 위에 생각을 두고 생각 위에 곧 삿된 견해를 일으키므로 그것을 반연하여 모든 번뇌와 망령된 생각이로부터 생기느니라.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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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승법을 닦으면 결정코 성불하여 감도 없고 머물음도 없고 옴도 없나니、정·혜가 함께 하여 일체법에 물들지 아니하므로 삼세제불이여기서 삼독(三毒)을 바꾸어 계정혜(戒定慧)로 삼느니라。○정혜등등하면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으며 어떤 것에도 물들지 않나니. 이는 삼세제불의 자성삼매(自性三昧)이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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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념이란 모든 법을 보되 모든 법에 물들거나 매달리지 않으며、모든 곳에 두루하되 모든 곳에 끄달리지 않느니라。 - P61

모든 경계 위에서 마음이 물들지 않음이 무념이라 자기의 생각 위에 항상 모든 경계를 떠나 경계 위에 마음이 나지 않느니라. - P62

나의 이 법문은 정(定)과 혜(慧)로써 근본을 삼나니、먼저 혜와 정이 서로 다르다고 그릇 말하지 말라。정과 혜가 한 몸이어서 둘이 아니니, 곧 정은 혜의 몸[體]이요 혜는 정의 작용[用]이니라。곧 혜의 때에 정이 혜 속에 있고 정의 때에 혜가 정 속에 있나니、이 뜻은 곧 정과 혜가 함께 함이니라. - P65

정과 혜는 무엇과 같은가? 등불과 빛 같아서 등불이 있으면 곧 빛이 있고 등불이 없으면 곧 빛이 없느니라。등불은 빛의 몸이요 빛은 등불은의 작용이니 곧 두 몸이 있으나 두 갈래가 아니니、이 정과 혜도 또한 이와 같느니라.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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