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도 유년기라는 것이 있다면, 아마 그 집에 버려져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 집 자체가 나의 유년기일지도. 사실은 잘 모르겠다. 스무 살 이전의 기억은 실수로 쏟아버린 사진들을 그러모아둔 것처럼 난잡하고무의미하다.  - P12

사람은 사실 바람의 방향대로 살아. - P31

누군가 나를싫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세상 한쪽이 어두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지."
"외로워지는군."
"그래." - P64

우리는 일부러 시간을 들여 웃었다. 각자 가진 비밀의 모서리를 맞춰 서랍에 집어넣는 것처럼 꼼꼼히,
단어마다 라벨을 붙여가며 웃었다. 시간이 제대로 된 속도로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 P110

그곳은 우리가 그곳에 가야 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우리를 받아주는 곳이었다.  - P114

"다음에서 다음으로 나아가면서 나는 이전의 세계를 꼭 닫고 나와야 했어. 들키고 싶지 않았거든. 반복하다 보니 남아 있는 친구는 하나도 없었어." - P123

이름앞에 아무것도 붙지 않는 것은 아마 조뿐인 듯했다. 졸업 앨범 속 조의 낯선 표정을 한참 바라보다가, 나는 이따금 그가 지어 보이는 빌려 온 듯 어색한 웃음의 출처를 문득 깨달았다. - P125

"나는 내 유년기로부터 너무 빨리 도망쳤어. 사람 모양 구멍을 남기고 탈출하는 것처럼."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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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이 생각을 하지 않으면 본래의 근원이 비고 고요하여 삿된 견해를 떠난다。이것이 곧 일대사인연이니라。안팎이 미혹하지 않으면 곧 양변을 떠난다。밖으로 미혹하면 모양에 집착하고 안으로 미혹하면 공(空)에 집착한다.
모양에서 모양을 떠나고 공에서 공을
떠나는 것이 곧 미혹하지 않는 것이다。그러므로 이 법을 깨달아 한생각에 마음이 열리면 세상에 나타나는 것이니라. - P231

마음에 무엇을 여는가?
부처님의 지견을 여는 것이다。부처님은 깨달음이니라。네 문으로 나뉘나니、깨달음의 지견을 여는 것과 깨달음의 지견을 보이는 것과 깨달음의 지견을 깨침과 깨달음의 지견에 들어가는 것이니라。열고[開〕보이고[示] 깨닫고[悟] 들어감[入]은 한 곳으로부터 들어가는 것이다.
곧 깨달음의 지견으로 자기의 본래 성품을 보는 것이 곧 세상에 나오는 것이니라. - P232

대사께서 말씀하셨다。「법달아、마음으로 행하면 〈법화경〉을 굴리고 마음으로 행하지 않으면 〈법화경〉에 굴리게 되나니、마음이 바르면 〈법화경〉을 굴리고 마음이 삿되면 〈법화경〉에 굴리게 되느니라。부처님의 지견을 열면〈법화경〉을 굴리고 중생의 지견을 열면 〈법화경〉에 굴리게 되느니라。」 - P234

혜능대사가 말씀하셨다。「너는 자신의 마음으로 보고 바깥 법의 모양에 집착하지 말라 원래
사승법이란 없느니라。사람의 마음이 스스로 네 가지로 나누어 법에 사승이 있을 뿐이다。보고 듣고 읽고 욈은 소승이요、법을 깨쳐 뜻을 앎은 중승이며、법을 의지하여 수행함은 대승이요 일만 가지 법을 다 통달하고 일만 가지 행을 갖추어 일체를 떠남이 없으되 오직 법의 모양을 떠나고 짓되、얻는 바가 없는 것이 최상승이니라。승(乘)은 행한다는 뜻이요 임으로 다투는 것에 있지 않다。너는 모름지기 스스로 닦고
나에게 묻지 말라. - P238

바깥 경계인 무정(無情)에 다섯 대법이 있으니、하늘과 땅이 상대요
해와 달이 상대이며 어둠과 밝음이 상대이며 음과 양이 상대이며 물과 불이 상대이니라. - P249

논란하는 말[語]과 직언하는 말(言)의 대법과 법과 형상의 대법에 열두 가지가 있다。유위와 무위·유색과 무색이 상대이며,유상과 무상이 상대이며、유루와 무루가 상대이며、현상[色]과 공이 상대이며, 움직임과 고요함이 상대이며、맑음과 흐림이 상대이며,범(凡)과 성(聖)이 상대이며, 승(僧)과 속(俗)이 상대이며、늙음과 젊음이 상대이며, 큼과 작음이 상대이며,
김[長]과 짧음(短)이 상대이며, 높음과 낮음이 상대이니라。자성이 일으켜 작용하는 대법에 열 아홉 가지가 있다。삿됨과 바름이 상대요 어리석음과 지혜가 상대이며 미련함과 슬기로움이 상대요、어지러움과 선정이 상대이며, 계율과 잘못됨이 상대이며 곧음과 굽음이 상대이며 실(實)과 허(虛)가 상대이며
번뇌와 보리가 상대이며, 사랑과 해침이 상대이며, 기쁨과 성냄이 상대이며, 버림과 아낌이 상대이며, 나아감과 물러남이 상대이며 남[生)과 없어짐[滅)이 상대이며、항상함과 덧없음이 상대이며、법신과 색신이 상대이며、화신과 보신이 상대이며、본체와 작용이 상대이며、성품과 모양이 상대이니라。 - P250

○즉리양변(即離兩邊 양변을 떠남) 양변을 떠남은 중도(中道)를 말한것이니、불교의 근본 원리이다。석존은 초전법륜(初轉法輪)에서 녹야원다섯 비구들에게「여래는 양변을 떠난 중도를 정등각(正等覺)하였다」고 유명한「중도선언」을 하였다。용수(龍樹)도 그의〈대지도론(大智度論)四十三〉에서 양변을 떠난 중도는 반야바라밀이라고 상세히 말하였으니, 육조가 항상 고창(高唱)한 반야는 곧 중도를 말한다. - P254

「어린 신회는 도리어 좋고 나쁜 것에 대하여 평등함을 얻어 헐뜯고칭찬함에 움직이지 않으나, 나머지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구나. - P258

자성의 본체는 남도 없고 없어짐도 없으며 감도 없고 옴도 없느니라。 - P259

모든 것에 진실이 없나니 진실을 보려고 하지 말라.
만약 진실을 본다 해도 그 보는 것은 다 진실이 아니다.
만약 능히 자기에게 진실이 있다면 거짓을 떠나는 것이 곧 마음의 진실이다.
자기의 마음이 거짓을 여의지 않아 진실이 없거니、어느 곳에 진실이 있겠는가?
유정은 곧 움직일 줄을 알고 무정은 움직이지 않나니 만약 움직이지 않는 행을 닦는다면 무정의 움직이지 않음과 같다.
만약 참으로 움직이지 않음을 본다면 움직임 위에 움직이지 않음이 있나니 움직이지 않음이 움직이지 않음이면 뜻도 없고 부처의 씨앗도 없도다.
능히 모양을 잘 분별하되 첫째 뜻은 움직이지 않는다.
만약 깨쳐서 이 견해를 지으면 이것이 곧 진여의 씀이니라.
모든 도를 배우는 이에게 말하노니 모름지기 힘써 뜻을 써서 대승의 문에서 도리어 생사의 지혜에 집착하지 말라. - P260

『너희들은 들으라。뒷 세상의 미혹한 사람이 중생을 알면 곧 능히 부처를 볼 것이다。만약 중생을 알지 못하면 만겁토록 부 처를 찾아도 보지 못하리라. - P276

만약 뒷 세상 사람들이 부처를 찾고자 할진대는 오직 자기 마음의 중생을 알라。 그러면 곧 능히 부처를 알게 되는 것이니、곧 중생이 있음을 인연하기 때문이며、중생을 떠나서는 부처의 마음이 없느니라。
미혹하면 부처가 중생이요 깨치면 중생이 부처이며 우치하면 부처가 중생이요 지혜로우면 중생이 부처이니라。 - P277

마음이 험악하면 부처가 중생이요 마음이 평등하면 중생이 부처이니 한평생 마음이 험악하면 부처가 중생 속에 있도다。만약 한생각 깨쳐 평등하면 곧 중생이 스스로 부처이니 내 마음에 스스로 부처가 있음이라 자기 부처가 참 부처이니 만약 자기에게 부처의 마음이 없다면어느 곳을 향하여 부처를 구하리오. - P278

진여의 깨끗한 성품이 참 부처요 삿된 견해의 삼독이 곧 참 마군(魔軍)이니라。삿된 생각 가진 사람은 마군이 집에 있고,
바른 생각 가진 사람은 부처가 곧 찾아오는도다.
성품 가운데서 삿된 생각인 삼독이 나나니,
곧 마왕이 와서 집에 살고 바른 생각이 삼독의 마음을 스스로 없애면 마군이 변하여 부처되나니, 참되어 거짓이 없도다.
화신과 보신과 정신(淨身)이여,
세 몸이 원래 한 몸이니 만약 자신(自身)에게서 스스로 보는 것을 찾는다면 곧 부처님의 깨달음을 성취하는 씨앗이니라。본래 화신으로부터 깨끗한 성품 나는지라,
- P280

깨끗한 성품은 항상 화신 속에 있고 성품이 화신으로 하여금 바른 길을 행하게 하면 장차 원만하여 참됨이 다함 없도다.
음욕의 성품은 본래 몸의 깨끗한 씨앗이니、음욕을 없애고는 깨끗한 성품의 몸이 없다.
다만 성품 가운데 있는 다섯 가지 욕심을 스스로 여의면 찰나에 성품을 보나니, 그것이 곧 참(眞)이로다。 - P282

내가 살아 있던 날과 한가지로 일시에 단정히 앉아서 움직임도 없고 고요함도 없으며、남도 없고 없어짐도 없으며, 감도 없고 옴도 없으며,
옳음도 없고 그름도 없으며、머무름도 없고 감도 없어서 탄연히 적정하면 이것이 큰 도이니라.
- P285

그러나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는 부처님의 말씀이다。교는 말이 있는 곳으로부터 말 없는 곳에 이르는 것이요. 선은 말 없는 곳으로부의 말 없는 곳에 이르는 것이다。말 없는 곳으로부터 말 없는 곳에 이르면 그것을 누구도 무엇이라고 이름할 수 없어 억지로 이름하여 마음이라고 한다。  - P294

내가 말하는 교외별전이란 배워서 알며 생각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름지기 마음 길이 다하여 끊긴 뒤에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이며, 스스로 알아 고개를 끄덕인 다음에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 P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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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의 어두운 집속에서 항상 지혜의 해가 떠오르게 하라.
삿됨은 번뇌를 인연하여 오고
바름〔正〕이 오면 번뇌가 없어지나니
삿됨과 바름을 다 버리면
깨끗하여 남음 없음에 이르는도다.
보리는 본래 깨끗하나
마음 일으키는 것이 곧 망상이라
깨끗한 성품이 망념 가운데 있나니
오직 바르기만 하면 세 가지 장애를 없애는도다. - P209

형상이 있는 것에는 스스로 도가 있거늘
도를 떠나 따로 도를 찾는지라
도를 찾아도 도를 보지 못하나니
필경은 도리어 스스로 고뇌하는도다.
만약 애써 도를 찾고자 할진대는
행동의 바름이 곧 도이니
스스로에게 만약 바른 마음이 없으면
어둠 속을 감이라 도를 보지 못하느니라.
만약 참으로 도를 닦는 사람이라면
세간의 어리석음을 보지 않나니
만약 세간의 잘못을 보면
자기의 잘못이라 도리어 허물이로다。
남의 잘못은 나의 죄과요
나의 잘못은 스스로 죄 있음이니
오직 스스로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번뇌를 쳐부수어 버리는도다。
만약 어리석은 사람을 교화하고자 할진대는
모름지기 방편이 있어야 하나니
저로 하여금 의심을 깨뜨리게 하지 말라.
이는 곧 보리가 나타남이로다. - P210

법은 원래 세간에 있어서
세간에서 세간을 벗어나나니
세간을 떠나지 말며
밖에서 출세간(出世間)의 법을 구하지 말라.
삿된 견해가 세간이요
바른 견해는 세간을 벗어남이니
삿됨과 바름을 다 쳐 물리치면
보리의 성품이 완연하리로다。
이는 다만 단박 깨지는 가르침이며
또한 대승이라 이름하나니
미혹하면 수많은 세월을 지나나
깨치면 잠깐 사이로다 -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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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념법이란 모든 법을 보되 그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으며, 모든 곳에 두루하되 그 모든 곳에 집착치 않고 항상 자기의 성품을 깨끗이 하여 여섯 도적들로 하여금 여섯 문으로 달려나가게 하나 육진 속을 떠나지도 않고 물들지도 않아서 오고감에 자유로운 것이다。이것이 곧 반야삼매이며 자재해탈이니 무념행이라고 이름하느니라。온갖 사물을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항상 생각이 끊어지도록 하지 말라°이는 곧 법에 묶임이니 곧 변견이라고 하느니라.
무념법을 깨친 이는 만법에 다 통달하고、무념법을 깨친 이는 모든부처의 경계를 보며, 무념의 법을 깨친 이는 부처의 지위에 이르는니라 - P180

부처는 자기의 성품이 지은 것이니,몸 밖에서 구하지 말라。자기의 성품이 미혹하면 부처가 곧 중생이요 자기의 성품이 깨달으면 중생이 곧 부처이니라. 자비는 곧 관음이요 회사는 세지라고 부르며, 능히 깨끗함은 석가요 평등하고 곧음은 미륵이니라。인아상은 수미요 삿된 마음은 큰 바다이며 번뇌는 파랑이요 독한 마음은 악한 용이며 진로는 고기와 자라요 허망함은 곧 귀신이며 삼독은 곧 지옥이요 어리석음은 곧 짐승이며 십선은 천당이니라.
인아상이 없으면 수미산이 저절로 거꾸러지고 삿된 마음을 없애면바닷물이 마르며, 번뇌가 없으면 파랑이 없어지고 독해(毒害)를 제거하면 고기와 용이 없어지느니라.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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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력 비판 고전의세계 리커버
임마누엘 칸트 지음, 김상현 옮김 / 책세상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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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라니. 얼마나 오래된 이름인가. 하지만 나는 자연 속에서 만족감을 느끼지, 나는 꽃들을 보며 아름답다고 느끼지 궁금해서 다시 꺼내본 이름이다. 대학원 시절 '예술철학' 시간에 학기 내내 배운 같아 노트를 다시 펼쳐 보다 결국 그때 사둔 책을 읽기로 했다. 아마 그때도 칸트의 판단력 비판 1부를 번역해놓은 대신 '쉽게 읽는 칸트 판단력 비판'(디터 타이헤르트 , 조성식 번역, 이학사) 수업 도중 필요한 부분을 봤던 같다.

 

칸트의 판단력 비판은 미의 분석론과 숭고의 분석론으로 나뉜다. 처음에는 용어가 까다로워(판단력, 비판, 합목적성, 취미 등의 용어 자체에 걸려) 읽기 버겁다고 느낄 있지만 읽다 보면 대단히 참신하고 재밌다. 바움가르텐 이후 미학론을 정립한 철학자로서 미학에도 이후 영향을 많이 끼쳤다고 한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상상력과 지성(조화의 비율)의 유희가 미적 감정이라는 생기를 느끼도록 하고, 상상력과 이성(무한) 사이의 유희가 숭고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무관심한 만족(성질)이며 보편타당하며(분량) 합목적성의 형식(관계)으로 미에 대한 판단은 필연적(양상)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것을 아름답다고 그때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려준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쾌적함(만족) 느끼는 이유는 상상력과 지성의 유희 때문에 생동감을 느끼는 거라는 설명이다.

 

숭고에 대한 고찰도 흥미로운데 우리가 거대한 자연 앞에서 느끼는 감정을 분석하자면, 우리가 직관해도 크기를 파악할 없거나 위력에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거대한 크기의 파도나 태풍 앞에서 처음에는 불쾌의 감정을 느끼지만 인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은 무한을 알고 있는 이성적 존재라는 사실을 깨치며 더한 생동감을 느낀다고 한다.

 

예술이 어떤 법칙을 따르는 것으로 완성될 없다는 면에서 미는 규정될 있는 법칙 속에 있지 않으나 어떤 이상이 있고 천재는 이를 구현할 있다고 하는 논의도 와닿는다. 심지어 창작자로서도.

 

15년만에 칸트를 다시 펼쳐 건데, 그동안 잊었던 '무관심한 만족'이라는 등이 떠오르며, 말에 느꼈던 감동 같은 것도 다시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내가 자연 속에서 느끼는 만족감이나 특이한 기분의 정체가 무언지도 있었다. 내가 어떤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에 대해 이렇게 답을 있는 책이 권이나 될까 생각해보니, 그래서 칸트는 인류 철학사에 남게 아닐까 싶었다. 누구를 참조하거나 하지 않고 사람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런 식으로 분석할 수 있다니…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상상력과 지성이 유희 중이며 안반데기에서는 작음을 느끼며 내가 작음을 있는 존재라실에서 느껴지, 고양되 감정에 빠져든다고 옆에 있지도 않으면서도 "그래, 맞아. 그렇지!"라고 알게 해준다. 파도를 보면 저 파도가 만들어지기 까지의 한 인간이 지각할 수 없는 시간과 자연의 조화를 같이 느끼며 숭고라는 감정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결국 숭고의 감정이 신이라는 존재를 상정하게 하는 아닐까 했는데 '쉽게 읽는 칸트 판단력 비판'에서 미와 숭고에 대한 분석 이후 부분에 절대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는 해설을 보니 그런 논리적 전개가 이루어지는 하다.

 

예술철학 교재로 썼던 '쉽게 읽는 칸트 판단력 비판' 이번 기회에 모두 읽었는데, 어차피 원서를 읽는 아니라 번역서를 읽는 거라면 그냥 '판단력 비판' 읽는 편을 추천한다.


감관을 매개로 주어진 대상이 상상력을 활동시켜서 [감관에 주어지는] 다양한 것들을 종합하도록 하고 또 상상력이 지성을 활동시켜서 이 다양한 것들을 개념적으로 통일하도록 하는 경우, 항상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다. - P69

취미란 대상을 상상력의 자유로운 합법칙성과 연관하여 판정하는 능력이다. - P70

마음의 능력들이 우리가 아름답다고 부르는 것들과 더불어 자유롭게 그리고 무규정적이면서도 합목적적으로 향유하는 것 - P75

규칙의 모든 강제로부터 벗어나야만 비로소 상상력의 구상에 있어서 취미가 최대한 완전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 P76

상상력을 아무런 의도 없이 그리고 합목적적으로 유희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항상 새롭게 느껴지며, 우리가 그것을 바라봄에 있어서 싫증 나는 일이 없다.
-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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