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케팅에 대해 공부하다보면 흔치 않게 접하는 말이 컬덕트(culduct)란 용어입니다. 문화(Culture)와 생산품(Product)을 합친 신조어인데, 문화융합상품이란 말로 옮겨질 수 있는 말이죠. 제 입장에서 보자면 세상에 문화 아닌 것이 없으므로 세상의 모든 상품(재화와 서비스)은 컬덕트입니다. 예를 들어 장례문화, 음주문화, 주차문화 등등 따지고 보면 우리 일상 중에서 문화 아닌 것이 없으니 제 말이 틀린 말이 아니란 것쯤은 금방 눈치챌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분야를 좀 좁혀서 "드림 소사이어티"를 펴낸 롤프 얀센의 주장에서 살펴보면 컬덕트란 상품 안에 소비(수용)자의 꿈이 담긴 제품을 의미합니다.
나이키하면 우리는 머릿속에 저절로 "just do it"을 연상하게 됩니다. 무엇을 "just do it"하라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나이키는 신발과 스포츠 의류를(혹은 ~만) 판매하는 회사가 아니라 전세계에 "도전하라"는 모토(motto)를 판매하는 회사입니다. 다시 말해 나이키는 우리들에게 신발과 스포츠 의류를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꿈(dream)"을 판매하는 것이죠. 우리는 '신발 한 켤레 보다 값싸지만 오래가고, 질긴 타이어'가 있다는 걸 압니다. 요사이 판매되는 거의 대부분의 운동화는 품질이 일정한 수준 이상이기 때문에 나이키 보다 질기고 오래 신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비싼 값을 주고 나이키를 구입합니다. 경제학의 중요한 원칙 중 하나는 "이기적인 소비"입니다. 나 자신을 위해 가장 적은 비용을 지불하고, 가장 높은 만족을 주는 제품을 소비하는 것을 의미하죠.
만약 우리가 비이성적인 소비자가 아니라면 나이키를 구입하는 일은 비이성적인 소비행태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비이성적인 것이 아니라 나이키를 구입하면서 그 안에 담긴 꿈을 함께 구입하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것이 삼성이나 다른 재벌들이 이야기하는 브랜드 가치입니다. 구찌나, 불가리, 샤넬 같은 이른바 명품이 정말 그만한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브랜드 가치라는 허명을 구입하는 비용이 들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순전히 비싸기 때문에 이 물건을 구입하는 것이죠. 그와 같은 점들을 통찰해낸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은 그러므로 정말 불후의 명작입니다. 그러나 이와는 본질적으로 같지만 약간 다른 측면에서 브랜드는 때로 독특한 문화를 지닌 이들 사이의 식별 코드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와 애플 컴퓨터, 지포 라이터를 소유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경우엔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이 제품을 옹호하고, 심지어는 숭배합니다. 그리고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 일종의 식별코드를 만들어냅니다. 할리우드 영화를 보노라면 시 외곽의 허름한 주점에서 머리에는 두건을 쓰고, 체인이 달린 가죽 조끼나 점퍼, 가죽 바지를 입고 부츠를 신은 건장한 사내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맥주를 마시고, 당구를 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이 모여 왁자하게 떠들며 놀고 있는데, 불쑥 외부인이 등장합니다.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의 등장(터미네이터)이 그런가 하면, 스타스키와 허치의 한 장면이 또 그렇습니다. 그들은 이 문화권에서는 배타적인 존재들입니다. 심지어는 평소 함께 어울리던 이들이라도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문화적 습속에 어울리는 복장을 하지 않았을 때는 모르는 척하기도 합니다.
애플컴퓨터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먹다 버린 사과 로고가 박힌 물건들, 악세사리들을 함께 갖추고 싶어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이런 소비자들의 브랜드 충성도를 한껏 이용해 돈을 번 사람이기도 합니다. 마치 소꼽놀이를 위해, 혹은 인형에 옷을 입히듯 우리는 애플 전용 스피커, 아이팟을 위한 온갖 악세사리들을 사들입니다. 누군가가 그에 대해 조금이라도 배타적으로 이야기할라치면 체인달린 가죽 조끼의 할리족 만큼이나 애플족들도 공격적으로 변모합니다. 나는 소중하므로 나의 개인적인 취향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은 분명 맞는 말입니다.
자, 제가 왜 이렇게 먼 길을 돌아서 오느냐 하면...
알라딘 서점이 제공하는 알라딘 서재 블로그 기능을 이용하는 유저로서, 또 제가 이 곳에 올리는 리뷰가 나 자신의 취미 생활인 동시에 커뮤니티를 통해 즐거움을 얻는다는 순기능 이외에 그 댓가로 알라딘 서점의 매출이나 콘텐츠를 제공하는 기능도 하고 있음을 알만큼은 아직 이성적인 소비행태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저는 나름대로 수용과정을 반성하는 소비자입니다. 그리고 최근 알라딘 서점 측에서 이런저런 새로운 시도들, 치열한 경쟁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란 점을 나름 이해하는, 어느 정도는 알라딘이라는 브랜드에 대해 충성을 다하고 있는 소비자입니다.
이솝우화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농장 주인이 새로 양을 샀습니다. 농장 주인은 새로 들어온 양을 위해 신선한 풀을 제공해주죠. 새로 들어온 양은 즐거웠습니다. 그러다 옆에 있는 오래된 양에게 물어봅니다. 농장주가 원래 이렇게 친절한가? 그러자 오래된 양이 답하죠. 우리도 한 때는 그랬다고... 그러자 새로 들어온 양이 도망가 버립니다.
물론 우리가 오래된 양도 아니고 도망갈 리는 없겠지만, 또 새로 들어온 양들(TTB라는 새로운 포스트들의 출현)이 도망갈 이유도 없을 것이고, 이 새로운 시도가 앞으로 알라딘의 저변을 넓히는 일이 될 중요한 시도란 점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기존의 양들에게 먹이주는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알라딘이란 농장주에 대한 겁니다.
매주 월요일마다 발표되던 이주의 마이리뷰나 리스트가 어느날부터인가 수요일로 옮겨지더니 10월 중순에 이르도록 9월 3째주 마이리뷰에서 멈춰있습니다. 대략 한 달 정도 발표가 없었던 셈이죠. 솔직히 마이리뷰 상금 5만원 있어도 책 사보고, 없어도 책 사봅니다. 사실 동대문 도매상에서 책을 구입할 수도 있고, 인터넷으로도 주문 가능합니다. 할인율도 알라딘보다 훨씬 높지만 구태여 제가 알라딘에서 책을 구입하는 이유는 할인율보다는 그간 안면을 가져온 알라딘 서재인들의 커뮤니티성과 그와 같은 브랜드를 구축한 알라딘 서점에 대한 나름의 애정 표현이었습니다. 얼추 계산해보니 올 한해만 알라딘에서 거의 200권 정도의 책을 구입했습니다.
제가 부탁하는 것은 충성을 바란다면...
거둬가는 세금만큼, 분배에도 신경쓰라는 겁니다.
책이라는 가장 대표적인 문화융합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 만큼 까다로운 소비자들도 드물 것이라 생각합니다.
소비자와 한 사소한 약속을 지켜주는 신뢰와 더불어
나름대로 저의 고급할지, 속물적일지 모를 문화적 취향이 유지되는 알라딘 서점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