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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지도 못하면서 - Like You Know It All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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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말 정말 중독성 좀 짱이다. 어제 밥먹으면서 한 다섯번은 한 것 같다. (더했나?) 생뚱맞게가 아니라, 상황에 들어맞게. 아. 그러니까, 실은 만남과 대화라는 건,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연속이 아닌가 싶다. 

홍상수는 본인도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계속 물었고, 또 계속 답했다.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뭐냐고. 누군가의 입을 통해서는 자유라고 말하고, 또 누군가의 입을 통해서는 충실성이라고 말했지만 결국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든 충실하게든 어떻게든 해나가는 삶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하는 건데, 영 마뜩치 않다. 나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만의 언어로 계속 답하려 애써보았지만 역시 쉽지 않다. 이 물음에, 진부하지도 않고, 상투적이지 않은, 하지만 삶의 진정성이 묻어난 대답을 나는 언제쯤 할 수 있으려나. 세상에 진부하지 않은 진리라는 게 과연 있기는 한 것일까. 도무지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지금까지 나는 어떻게 살아왔던가. 뭐 이런 생각이 계속 들었다. 

이젠 '직업 설정'에서부터 아예 남자주인공을 대놓고 자신의 페르소나로 삼았고, (그의 말을 빌자면 자신도 잘 모르는데 남의 이야기를 어찌 하냐며) 엄지원, 정유미같은 캐릭터가 영화의 홍상수스러움을 힘껏 돕는다. 특히 엄지원 캐릭터는, 하하하하, 어찌나 재밌던지, 초반에는 대사처리가 너무 생뚱해 너무 뜬다고 생각했는데, ㅋㅋㅋㅋ 그 자체가 그냥 그 캐릭터였구나. 여러 가지 상투적인 대사들은 너무 진부해서 살면서 몇번쯤은 꼭 따라하고 싶었다. ㅎ

영화에는 작가 김연수가 꽤 비중 있는 카메오로 출연하는데 (실제로는 박찬욱 정도의 감독이었을까?) 연기하는 표정을 보다 보면 자꾸만 마음이 안쓰러워진다. 그래도 본인에게 즐거운 경험이었다면 다행인 거겠지만, 그래도 진정한 팬심은 저는 앞으로 작가님을 책으로만 만나고 싶어요, 라고 이야기하는 게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든다. 하하. 그래도, 큰웃음 주셨습니다. ^-^ (다행히 팬심의 변화는 없지만 ㅋ) 

아. 다음 영화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만큼이나 활용성 높은 대사인 '니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쯤은 어떨까. 음. 그러고보니 이건 영화 가족의 탄생에서 이미 너무 많이 써먹었나?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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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5-18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재미있게 봤어요.
엄지원, 정유미 실망시키지 않고 사랑스러운 배우에요.

웽스북스 2009-05-19 01:06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정말 사랑스럽죠- 흐. 그리고 고현정은 정말 예쁘고..

치니 2009-05-18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 저 역시 누구랑 대화하면 자꾸 이 대사를 떠올리게 되더라구요.
근데 잘 아는 것만 가지고 이야기하려면, 사실 할 이야기가 별루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 서글프기도 하구. ㅋ
리뷰를 바로 써볼까 하다가 조금 미루고 있어요, 좀 삭이고 나면 볼 때랑은 다른 감흥이 있으까 싶어서. ^-^

웽스북스 2009-05-19 01:06   좋아요 0 | URL
흐흐흣 치니님 쓰신 리뷰도 잘 봤다지요- 그나저나 저 말 정말 쓸 일 많아요

마냐 2009-05-18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정리를 여기에 빌붙어 해야할까봐여 ㅎㅎ

웽스북스 2009-05-19 01:07   좋아요 0 | URL
엄훠, 이런 엉성한 정리에. 자자 마냐님도 써주세요. 흐흐.
 
레볼루셔너리 로드 - Revolutionary Road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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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욕망을 미분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본질적인 삶의 욕망이나 바람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소소한 욕망의 충족에서 오는 만족들의 합산으로 내가 본질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 진정한 기쁨, 혹은 만족들을 대체시키면서. 하지만 수치적 합산은 결코 본질이 될 수 없음을 나는 알고 있다. 그리하여 늘 돌아보면 내가 걸어온 자리들은 공허하기 그지 없었고, 이제는 직장생활도 한 4년쯤 하다 보니 그런 말을 하는 것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고 실은 무엇보다 나에게 지겹고 진부한 것이 되어버렸다. 직장인들에게 삶이 공허하다는 말처럼 진부한 말이 또 어디 있을까. (점심 뭐 먹을까?) 그리하여, 의미 있는 삶을 살겠다고 또 발버둥을 치고 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나는 스스로의 삶에 진정한 변화를 가져오기보다는, 의미라는 악세사리를 덧댐으로써 스스로의 삶을 합리화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레볼루셔너리로드는 생활이 삶을 압도해버린지 언 7년차인 한 가정이,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가정의 아내가 추구하던 삶의 변화와 그 변화의 추구가 가져다줄 생활의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의 대립각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영화다.
 
돈은 내가 벌테니 당신은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요.
 
얼마나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아내인가. 그런데, 정작 들여다 보면 사실 그는 정말 하고 싶은 게 뭔지를 명확하게 찾아내는 것부터가 막막한 것이다. 그저 나는 이런 의미 없는 생을 사는 게 지겨워, 라고 푸념하며, 같은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과는, 같은 동네에 사는 사람들과는 나는 좀 다른 인간이라고 자위하며 사는 쪽이 훨씬 더 쉬울런지도 모른다. 정신이상이 있다는 이웃집 부인의 아들을 만나달라는 부탁에 환하게 웃으며, '정말 만나고 싶군요' 라는 넓은 도량을 가끔 보여주는 삶이 더 간편하고 간지나는 삶일런지도 모른다. 게다가 슬쩍 아무렇게나 해버린 일이 기대 이상으로 인정받아 탄탄대로를 보장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걷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모두가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그들을 이해했던 것은 옆집의 정신병에 걸린 수학박사 뿐이었으니. 이쯤 되면 뭐가 정상이고, 뭐가 비정상인지 헷갈리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사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들이 머무르고 있던 그 곳의 이름이 레볼루셔너리로드였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그들이 꼭 파리라는 곳으로 떠나 지리적인 삶의 변화를 추구하지 않아도, 그 길에서, 그 곳에서 시작할 수도 있었음을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것은 아니었을까. 환경적 변화가 삶에 환기를 가져다 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실은 내가 선 곳에서 변할 수 없는 삶은 환경이 바뀐다 해도 여전히 변하기 어려운 삶이었을런지도 모른다. 어쩌면 바뀌어야 한다는 강박증과, 우리의 삶은 뭔가 다르다는 자의식에 가득해서 살아가게 되었을지도. 그럼에도, 그들이 한 번 걸어보지도 못한 채 묻혀져 버릴 수 밖에 없었던 그 레볼루셔너리로드에 대한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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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7 09: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08 2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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