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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무늬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2년 10월
품절


나는 그것이 욕먹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관념이 현실과 어긋난다고 판단되었을 때 즉 자신의 언어가 현실에 대한 설명력을 잃었다고 판단되었을 때, 용기는 현실에 맞추어 언어를 수리하는 데 있는 것이지 언어의 변증법으로 현실을 바꿔치기하는 데 있는 것은 아니다. -81쪽

닫힌 마음은 흔히 청결이나 순수를 향한 열망의 형태를 띤다. 어느 사회에서든 사람들은 대체로 청결이나 순수에 높은 값어치를 매긴다. 그러나 그럴 때 우리가 놓치는 것은 그런 청결이나 순수가 억압의 징표이기 십상이라는 사실이다. 담배꽁초 하나 없이 깨끗한 거리는 공중도덕의 성숙을 드러내는 것 이상으로 그 사회의 억압성을 드러낸다. 그 거리의 청결함은 훼손된 자유의 대가이기 쉽다-232쪽

보기 민망한 것은 이 법에 손질을 하면 세상이 망하기라도 할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일부 보수 언론이다. 사상과 표헌의 자유는 언론인들에게 공기와도 같은 것이다. 그 자유를 옥죄는 법을 존치하자고 주장하는 언론은 그러니까 자신의 존재 근거를 허물고 있는 셈이다. 이런 이율배반이 보수 언론의 미욱함에서 나온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그 보수 언론이 언론 그 이상의 무엇이라는 것을 드러낼 따름이다.-227쪽

모든 유토피아니즘이 실패로 돌아간 사실은 인간의 반성 능력이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전환될 만큼 크지는 않다는 것, 인간의 비루함의 원인은 그 적지 않은 부분이 인간 내부에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233쪽

가장 저명한 공산주의자들이 진실로 사람을 사랑했다 하더라도 그때의 사람은 그들의 관념 속에 있는 집단으로서의 인류였지, 그들의 주변에서 숨쉬고 일하고 고통받는 개인으로서의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중략) 그들의 냉혹한 정치적 리얼리즘은 그들의 덜떨어진 심리적 아이디얼리즘에서 나온 것 같기도 하다. 개인으로서의 사람 또는 노동자를 사랑하지 못하고 집단으로서의 인류 또는 노동자 계급을 사랑하려고 안간힘을 쓴 것이 그들의 잘못이었고 그것이 공산주의의 범죄의 근원이었다. 그러니 집단에 대한 사랑은 가짜 사랑이라고 할 만하다. -2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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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 인류학자 - 뇌신경과의사가 만난 일곱 명의 기묘한 환자들
올리버 색스 지음, 이은선 옮김 / 바다출판사 / 2005년 10월
구판절판


I씨는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사고를 당하고 몇 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더라면 색맹을 '치료하려고' 모든 수단을 동원했겠지만 이제는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는 세상이 질서정연하고 완전하기 때문에 그런 제안 자체가 어리석고 불쾌하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80쪽

우리는 가끔 의식과 도덕과 양심의 무게, 본분과 책임과 의무의 무게가 감당하기 힘들게 느껴질 때면 억제의 틀을 부수고 이성의 세게에서 탈출하고 싶어진다. 전두엽을 벗어나 휴일을 누리고, 감각과 충동으로 이루어진 디오니소스의 축제를 즐기고 싶어진다. 이것이 전두엽 과잉에 시달리며 억눌려 있는 문명인의 본능이다. 인간은 누구나 전두엽을 잊고 잠시 휴일을 즐겨야 한다. -112쪽

전두엽절제술과 절리술이라는 엄청난 사건은 1950년대에 자취를 감추었지만 이는 의학계의 반발로 보류된 것이 아니라 신경안정제라는 신종 도구가 개발된 덕분이었다. 신경안정제는 정신외과처럼 부작용이 없는 강력한 치료법이라고 선전되었다. 하지만 신경학적으로나 윤리적인 관점에서 볼 때 정신외과와 신경안정제가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 불편한 주제다. 신경안정제도 다량으로 복용하면 정신외과처럼 평안함을 유도하고 정신병 환자의 망상을 잠재울 수 있다. 하지만 신경안정제의 고요함은 죽음의 고요함과 비슷하다. 게다가 역설적으로 자연적인 해결의 가능성을 원천봉쇄하고 환자를 약물로 인한 질병 속에 평생 가두어 놓는다. -112쪽

그는 능숙한 손길로 동상을 꼼꼼히 더듬으며 전과 다르게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시각장애인이던 시절에 그가 얼마나 능숙하게 독립적으로 살았는지, 두 손으로 얼마나 쉽고 자연스럽게 세상을 경험했는지, 우리가 지금 얼마나 그를 몰아세우고 있는지를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 우리는 그에게 손쉬운 방법을 버리고 어렵고 낯선 방식으로 세상을 인식하라고 요구하는 셈이었다. -202쪽

시각장애인도 나름대로 온전한 세계를 구축하고 시각장애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완벽하다. 시각장애인을 무능하다거나 사회부적격자라고 여기고 시각장애를 문제로 생각해 그것을 고치려 드는 사람들은 그들이 아니라 우리라는 것이다. -210쪽

프랑코는 자나 깨나 폰티토 생각뿐이었고 환영 속에서도 폰티토를 보았고 정말 살기 좋은 곳으로 묘사했지만 정작 돌아가겠다는 결심은 하지 않았다. 이런 아이러니가 어디 있을까? 하지만 원래 향수의 중심에는 역설이 도사리고 있다. 향수는 이루지 못할 상상이고 실현되지 않을 때에만 존재할 수 있다. -247쪽

프로스트는 인간을 순간의 퇴적으로 간주했고, 순간의 기억은 이후 벌어진 일을 더 이상 통보받지 않으며 잼항아리처럼 완전 밀봉 상태로 머릿속 창고에 보관된다고 했다. -251쪽

나는 자폐증 화가 제시 파크를 찾아갔을 때 딸에게 엄청난 애정을 표현하는 부모님을 보고 가슴 뭉클한 적이 있었다.
"딸을 얼마나 아끼시는지 피부로 느껴지던데 따님도 부모님을 잘 따르나요?"
내가 물었을 때 그녀의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 아이의 능력이 닿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해 우리를 사랑하고 있을 겁니다."-302쪽

아스퍼거는 캐너보다 훨씬 분명하게 이런 가능성을 예견했다. 따라서 '고도의 능력'을 갖춘 자폐증 환자들은 아스퍼거증후군 환자라고 불린다.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을 밝히자면 다음과 같다.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들은 과거의 경험과 느낌, 심리상태를 이야기할 수 있지만 전형적인 자폐증 환자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 전형적인 자폐증 환자의 머릿속에는 우리가 들여다 볼 수 있는 창문이 없다. 하지만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들은 자의식이 있고 부분적이나마 자아성찰과 보고가 가능하다. -3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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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식한아가씨의반성록
    from 지극히 개인적인 2007-09-24 23:24 
    이 책을 읽게 된 사연은 다소 독특하다. 지난 봄, 지인들과 '인생의 책'을 나눌 일이 있었는데, (엄밀히는 경매) 이 책은 내가 좋아하는, 심리학을 공부하고 싶어 하는 민정언니가 가져온 책이었고, 나는 필사적으로 심지어는 원가보다 비싼 가격에 이 책을 데려왔다. 와인을 한 잔 마셨던 탓이라 변명하지는 않겠다. 하하! 그냥 그날의 분위기가 그랬다. 후회같은 건 하지 않아요, 책값이 얼마였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ㅋ 이 책은 뇌신경학자인
 
 
 
코드 훔치기 - 한 저널리스트의 21세기 산책
고종석 지음 / 마음산책 / 2000년 10월
품절


자유화의 물결 또는 재자본주의화의 물결은 옛 체제에 지쳐 있던 사람들에게 풍요와 행복을 약속했다. 그러나 그 약속이 지켜지지는 않았다. 흔히 '신자유주의'라는 경멸적 어휘로 불리는 미국 중심의 이 새로운 세계 체제는 많은 사람들을 주변부로 내몰고 있다. 개혁은 너무 느리거나 방향을 잘못 잡은 듯 싶고, 그래서 경기는 침체되고 실업자는 늘어나지만 옛 체제가 그런대로 쳐 놓았던 사회적 안전망은 거의 파괴된 상태다. <사회주의의 미래 中>-18쪽

개인주의는 고립주의가 아니다. 그래서 개인주의자는 은자가 아니다. 공심의 결여나 비사교성은 개인주의와 무관하다. 개인주의자는 개인주의라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다른 개인과 연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중략)
존재하는 것은 개인주의라기보다는 개인주의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개인주의적 개인은 개인주의에 대한 각자의 개념을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중략)
막스 슈티르너는 이기주의라는 말을 긍정적 맥락에서 사용한다. 그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이기주의자다. 이타주의자란 타인의 쾌락을 통해 자신의 쾌락을 추구하는 이기주의자일 뿐이다. <개인들의 시대 中>-30~32쪽

실천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태도는 순수 또는 순결에 대한 열망을 포기하는 것일 것이다. 순수한 민족(피), 순결한 이념, 순수한 교리 따위에 대한 집착은 흔히 광신자들을 낳고 광신자들은 언제 어디서고 이단과 불순분자와 인민의 적과 민족의 원수를 발견해서 그들에게 성전을 선포하기 때문이다. 불순함에 대한 옹호가 필요한 것은 그래서다. 불순함을 옹호하는 정신은 너그러움을 옹호하고 실천하는 정신이다. 그것은 나와는 다른 사람과 더불어서 살겠다는 정신이고 우리 속에도 수많은 그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정신이다. 그것은 새로운 세기의 시대 정신이다. <우리와 그들 中>-40쪽

자크 아탈리는 지난해에 낸 저서 21세기 사전에서 지식인을 이렇게 정의했다. "세상의 광기를 자유롭게 관찰하는 사람, 확신시키기보다는 이해하려고 애쓰는 사람, 지배하기보다는 매혹하려고 애쓰는 사람, 순응주의에서 벗어난 사람, 세상이 잠든 밤에도 깨어 있는 사람, 눈먼 확신의 속죄양" (중략)
사르트르는 지식인에 대한 모든 비난은 "지식인이란 자기와 상관도 없는 일에 참견하는 사람"이라는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고 말한 뒤 바로 그것이야말로 지식인의 정확한 정의라고 되받았다. 지식인은 자기와 관계없는 일에 참견하는 사람이다. 그 말을 바꾸면 지식인은 세상의 모든 일이 자신과 관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중략)
사르트르는 더 나아가 자신의 지적 영역에서 쌓은 명성을 남용(사르트르에게 이 남용이라는 말은 당연히 긍정적 의미로 사용된다)하여 기존의 사회와 정치권력을 비판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사르트르에 말하면 이 남용이야말로 지식인의 본질적인 부분이고, 어떤 체제, 어던 시대에도 지식인이 처할 수 밖에 없는 불편함을 설명해주는 개념이다. <지식인의 죽음, 지식인을 위한 변호 中>-59~61쪽

위대한 반대자로 불렸떤 미국 연방 대법원 판사 올리버 웬델 홈즈가 지적했듯 사상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은 우리가 동의하는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증오하는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모색 中>-72쪽

그러나 스포츠가 지금처럼 실력 위주의 위계 기준과 숙련에 기초한 성공만을 찬미할 때 오직 기록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을 통해서 그릇된 사회 진보관을 제시할 때, 인간의 신체를 능률성과 생산성이라는 기술주의적 준거틀에 맞추어 바라보게 만들 때 소외된 사람들을 현실에서 도피시키는 보상 매커니즘으로 작용할 때, 상업주의를 숭배하며 국가와의 상징적 연결을 통해서 억압적 국가의 정당성을 재생산해낼 때, 그때 스포츠는 장-마리 브롬의 책 제목대로 '측정된 시간의 감옥'이 되고 말 것이다. <호모 스포르티부스 中>-125쪽

소설 장르의 개척자 가운데 한 사람인 프랑수아 라블레는 지금부터 5백년 전에 과학이 윤리에 의해 제어되어야 할 필요성을 '양심(자각,의식)이 없는 과학(앎)은 정신의 폐허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로 요약했다. <테크놀로지의 미래 中>-201쪽

민주주의의 세계적 확신은 '이데올로기의 종언'이라고도 불리고 더 멋지게는 '역사의 종언'이라고는 말로도 포장된다. 이런 종말의 선언은 복음인가? 드보레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그에 따르면 경제가 정치를 대체해버린 이 새로은 보편적 민주주의의 질서보다 더 맹목적이고 위험한 유토피아는 없다. 왜냐하면 냉전의 종식은 우리를 '역사 이후' 시대의 평화로운 해안가로 인도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공화정을 위하여 中>-208쪽

전세계적으로 볼 때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유산은 그것이 교육이든 자연자원과 환경이든 우리가 앞세대에게서 물려받은 유산보다 양으로나 질로나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현재의 세대 또는 기성 세대가 미래의 세대 또는 새 세대에게 책임감을 지니고 있다면 그들은 지금의 성장에서 생기는 몫의 큰 부분을 떼어내 비축해 놓아야 한다. 다시 말해 현재의 세대들은 특히 선진국의 시민들은,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사회보장혜택을 줄여야 한다. 그것이 새로운 세대 계약이 돼야 한다. 이것은 정부가 지금 세대의 이기주의에 맞서서 미래 세대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자신의 세대보다 미래 세대에 더 마음을 쓰는 것은 진화의 법칙이 가리키는 자연적 명령이기도 하다. <늙음과 젊음 中>-2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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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얼굴 - 총을 들지 않을 자유와 양심의 명령
김두식 지음 / 교양인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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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대부분의 영화와 드라마를 관통하는 핵심 줄기는 바로 신학자 월터 윙크가 말하는 '구원하는 폭력'의 신화입니다. '평화를 되찾아주는 것은 언제나 정당한 폭력뿐이다'라는 거짓된 신화가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는 것이지요.-73쪽

'구원하는 폭력'의 신화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사랑을 통한 구원' 이야기가 숨을 쉴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사랑을 통한 구원'을 약자들의 자기정당화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하거나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기적으로 평가절상함으로써 가능성을 우리 상상 속에서 몰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75쪽

'평화를 위한 전쟁'은 '착한 살인자',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독재자'만큼이나 모순된 표현입니다. 존재할 수 없는 일이 존재하고 있다고 믿는 우리의 믿음이 오히려 경이로울 정도지요.-141쪽

상대방을 악에서 구하기 위해 상대방을 죽일 수 있다는 논리가 가능할까요? 그것도 그냥 죽이는 것이 아니라 자비로운 엄중함으로 죽일 수 있다는 것은 끔찍한 이론이 아닐 수 없습니다. -144쪽

누구 하나 그들의 아픔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지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들이 '이단'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누가 이단이냐 아니냐 여부는 궁극적으로 기독교 내부의 문제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기독교의 '이단' 정의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사회 전체의 이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주류에 속한 특정 집단이 소수파를 '이단'으로 정의하는 순간 사회 전체가 그 소수파를 이단으로 받아들이는 특이한 시스템이 구축된 것입니다. 반공, 애국, 기독교, 독재정권 등이 일체를 이룬 주류 사회가 소수자를 억압하는 데 철저하게 결합해 있었음도 알 수 있습니다. -278쪽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그 근거로 남북 대치 상황이 주로 거론됩니다. (중략) 그러나 남북 대체 상황을 생각함에 있어서 먼저 왜 우리가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바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지키려는 민주주의는 허울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마음대로 생각을 펼칠 수 있는 자유, 믿고 싶은 종교를 마음대로 믿을 수 있는 자유, 양심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자유 등과 분리된 민주주의란 있을 수 없습니다.
남북 대치상황을 이야기하면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을 모두 감옥에 넣자고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를 지키기 위해 그 자치 자체를 포기하자고 주장하는 모순된 논리입니다. -3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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