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내일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박슬라 옮김 / 오픈하우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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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잭 리처 시리즈의 재미는 촘촘한 리얼함이다. 

보통 범죄소설에서 경찰이나 탐정에게는 사건이 찾아온다. 

경찰은 사고 접수후 피해자로 오고, 탐정에게는 살아있는 사람이 의뢰인으로 사건을 들고 온다. 

떠돌이 잭은 이 지점, 사건과 만나는 것이 늘 우연이다. 

정말 우연히 FBI수사관이 납치되는 현장에 있다가 함께 납치되거나 

기차타고 가다가 역 이름에 호기심이 생겨 내렸다가 살인공장을 소탕하고.... 뭐 이런식이다. 

이런 식의 우연이 그럴듯하게 느껴지도록, 빤한 거짓말에 속을 준비가 되어 있는 독자들이라 해도, 빤한 거짓말이 아닌듯이 

진짜로 실제 상황처럼 느껴지도록 만들어내는 솜씨가 리는 끝내준다. 

이번에도 그래. 


새벽 2시에 뉴욕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한가한 전철 안에서 승객중 한명이 테러리스트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더라는 설정이다. 

그러니까, 사실 보통 사람들에게 이게 말이 되냐고. 

그런대 리 차일드의 설정을 읽어보면, 정말 테러리스트들의 긴장을 읽어 메뉴얼처럼 알아내는 훈련이 있는것 같고 

정말 잭은 그런 훈련을 받은 실력있는 군인 출신인 듯이 느껴진다. 

그래서 테러리스트를 알아보는 메뉴얼이 도대체 뭘까, 하며 흥미롭게 읽게 된다. 

그 다음은 줄줄이 자연스럽다. 

그녀에게 잭이 다가가고, 잭이 또 어마어마한 사건을 만나는 과정이 어떤 우연도 없이 모두 납득할 만한 인과가 설명된다. 

거짓말 같은 상황을 사실처럼 느끼게 만드는 시시콜콜 리얼한 서술의 힘

잭 리처의 재미다. 



2. 

그것은 전에도 본 적이 있는 뉴스 보도 사진이었다. 1983년, 로널드 럼스펠드라는 미국 정치가가 바그다드에서 이라크의 독재자인 사담 후세인과 악수를 나누는 사진. 도널드 럼스펠드는 두 번이나 미국 국방장관을 역임했지만 이 사진을 찍었을 당시에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특사를 맡고 있었다. 그는 바그다드에 가서 사담의 엉덩이에 키스하고 그의 어깨를 두드리고 미국과의 영원한 우호관계를 상징하는 의미로 금제 박차 한쌍을 선물했다. 그로부터 8년뒤 우리는 사담의 엉덩이를 걷어찼고, 15년 뒤에는 그 자식을 죽여 버렸다.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한다는 미국에 의해 악의축으로 낙인찍힌 사담 후세인이 사실은 미국이 키운 사람이라는 걸 

사담이 미국의 이해관계에 맞춰 석유를 퍼주기만 했으면 지금도 엉덩이에 키스하고 어깨를 두드리고 있었겠지. 

미국 사회에 대한 이런식의 냉소적이고 그러나 경쾌한 비평도 한번씩 시원하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석연치 않네. 

탈레반과 알카에다를 잔인한 적으로 상정하는 소설은 의도가 의심스럽다. 

잔인하기로 따지만 미국이 가난한 국가에서 거둔 피가 압도적일걸 

그래도 그렇다 치고, 잔인한 테러리스트라고 치고 


스토리의 인과도 이번에는 떨어진다. 리 스럽지 않아. 

라일라는 아프가니스탄 최고 실력 수준의 살인병기인데 

겨우 사진 한장 없애자고, 그 사진이 뭔지는 모르지만, 이런방식의 무모한 작전을, 이렇게 바보같이.....

잔인한 테러리스트가 어설퍼지는 순간, 시시콜콜의 리얼함이 무너진다. 

미국 문화권 분들의 나르시즘이다. 

세상이 자기들 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한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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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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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 사람들의 심미안은 나와 다를 뿐 아니라, 뭔가 석연치 않다. 

게이샤와의 사랑이라. 

특히 패전후 1960년대까지 시기의 작가들은 유난히 여성을 혐오한다. 

사랑을 해도 강박적이고 폭력적으로 

물론 야스나리의 문장은 거칠거나 혐오스럽지 않다. 

잘 다듬어진 비단결처럼 부드럽고 세련되게 흐른다. 

부드러운 비단 폭 안에 작은 바늘 하나 숨겨진 듯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억울하지만 순종하고 복종하면서 사는 여자가 아름다운 것처럼 

여성은 슬퍼야 아름다운 것처럼 

남자니까 염치없이 이렇게 쓴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들더라. 

문장이 매끄럽고 섬세한 것은 사실이다만 


한량 시마무라와 이세상이 아닌듯한 눈덮인 국경 마을 게이샤의 사랑이 기묘하다. 

애써 억누르다가 매달리고, 달아 오르고, 삐지고, 부르고, 기다리는 것은 모두 섹시하고 착한 고마코의 몫이고 

시마무라는 구경하듯이 못이기는 척 밀땅을 한다. 참 거슬려. 

1968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확실히 노벨문학상은 제국주의 남성의 것이라는 생각을 또 했네.



2. 

그럼에도 이 소설이 재미 없지는 않다.  

"요 앞 마을 중학교에선 눈 온 아침에 기숙사 2층 창문에서 알몸으로 눈에 뛰어든대요. 몸이 눈 속에 푹 파묻혀 보이지 않게 되죠. 그래서 수영하듯 눈 속을 헤엄치며 돌아다닌대요. 보세요. 저기도 제설차가 있어요."

여성에 대한 비틀어진 시각을 세련되게 포장한 것이 내내 불편하면서도 

이런 문장은 재밌어서, 페이지가 쉬 넘어간다.  

나두 해보고 싶어. 

전봇대 전등이 눈 속에 파묻힐 정도로 눈이 많이 온 아침에 기숙사 2층에서 알몸으로 눈 속을 헤엄치는 것 

눈, 아침, 알몸, 그리고 헤엄이라니. 절묘한 이미지의 조화. 


곰처럼 단단하고 두꺼운 털가죽이라면 인간의 관능은 틀림없이 아주 다르게 변했을 것이다. 인간은 얇고 매끄러운 피부를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노을진 산을 바라보노라니, 감상적이 되어 시마무라는 사람의 살결이 그리워졋다. 

이런 문장은 정말 사람의 살결을 그리워지게 한다. 


"이 다음에 눈보라가 밤새 휘몰아칠 때 한번 와보세요. 올 수 없을 테죠? 꿩이며 토끼가 인가로 도망쳐 들어와요."

꿩이며 토끼가 문을 두드리며 창고로 들어오는 눈보라 휘몰아치는 밤, 이라니 

두렵고 설레이는, 저 밤을 경험하고 싶어. 


시마무라는 쇠주전자에 귀를 가까이 대고 방울 소리를 들었다. 방울이 울려대는 언저리 저 멀리, 방울 소리만큼 종종걸음치며 다가오는 고마코의 자그마한 발을 시마무라는 언뜻 보았다. 시마무라는 깜짝 놀라, 마침내 이곳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마음 먹었다. 

하얀 눈이 쌓이는 국경마을, 산골짜기, 밤기차, 온천, 산불, 게이샤 

일본적인 이미지라기 보다는 남자들의 로망을 잘 그렸다. 현실과 비현실의 꿈같은 경계. 

야스나리의 주제는 슬픔이구나, 그러나 더 읽어보고 싶은 마음은 없다. 

뭐랄까 그냥, 이 정도면 숙제는 했다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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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정경호 옮김 / 오픈하우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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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번째 잭리처

순서대로 보지 않고 손에 잡히는 대로 보다보니 얼마전 시리즈 첫장품 추적자를 읽고 이번에는 최근의 리처를 읽었다. 

첫번째 리처보다 19번째 리처의 문장이 훨씬 안정되고 편안하다. 

그사이 리처는 훨씬 구체적인 가족과 고향의 스토리를 가진 인물이 되어 있다. 

여전히 구사일생의 긴박한 상황에 싸움의 순서에 대한 생각이 길고, 그의 몸은 그 자체로 무기임을 입증하지만 

내 취향에는 이렇게 느린 문장의 하드보일드도 좋더라. 


셜록 홈리스라니, 빵 터졌다.


예일은 한마디로 CIA의 유치원이다. 영국의 케임브리지가 M16의 요람인 것처럼, 미국의 국제 첩보망을 와해시키고 싶은 테러리스트라면 일단 예일의 졸업생 명단을 입수해야 한다. 걱적인 순서대로 한명씩 제거해 나가면 그의 목적은 금세 달성될 것이다. 아니면 동창회 자리를 폭파하거나. 

이런 문장은 재밌다. 미국 사회를 잘 보여주는 시니컬함. 


가는 곳마다 쿨하게 여자들가 순간을 즐기는 잭 

질척거리지 않고, 끈적거리지 않는 그의 쿨함이 좋은대 

이번에는 이십대의 상큼한 케이시 나이스와 사십대의 원숙한 스캐런젤로 

두미녀가 번갈아가며 잭 옆에 향기를  남긴다. 

잭은 예전보다 피곤해 보이고 


영국과 러시아, 프랑스의 첩보기관 직원들을 한사람씩 등장시켜 다같이 모닝커피를 먹으며 비교하는 장면도 재있다. 

다들 자기나라의 유능한 첩보원이고 매력도 있는대 

말투, 헤어스타일, 옷차림 으로 그가 어느나라인지 이미 알아본다. 

그러고보면 영국스러운, 러시아스러운, 프랑스스러운 이미지가 우리에게는 이미 있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스러운은 어떤 이미지 일까. 문득 궁금. 

 

CIA특수요원으로 경력을 쌓고 싶어서, 복수심에 불타는 세계최고의 저격수를 잡으러 영국으로 간 예일출신의 20대 여성이

첫번째 살인 후 자기가 사람을 죽였다고,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고 운다. 

얼척없네. 

CIA를 뭐라고 생각한 거고, 저격수를 잡으러 영국에 간것이 소풍인줄 알았나. 

리 차일드 스럽지 않은 쌩뚱맞음이고, 부적절한 캐릭터다. 

대체로 쿨하고 씩씩한 여성들이 주로 잭의 상대역인대 예일 출시의 멍청이라는 건 좀. 

CIA를 정의로 생각하는 멍청이라는 것도 거슬리는대 

심지어 자기 직업이 뭔지도 모르는 얼간이를 똑똑하고 유능하다고 하니, 부적절하다. 


전체적으로 리처의 실력은 여전하고 문장은 깊어졌는대.... 이상하게 리처가 피곤해 보여. 

활력있는 다음편을 기대한다. 리처는 그랬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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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음식의 언어 - 국어학자가 차려낸 밥상 인문학 음식의 언어
한성우 지음 / 어크로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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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을 연구하고 가르치면서 늘 가져왔던 생각중 하나가 '말의 주인은 그 말을 쓰는 사람들의 것' 이라는 명제이다. 그러나 말에 대한 연구의 결과는 정작 말의 주인은 이해하기 어렵고, 말에 대한 교육은 말의 젊은 주인들조차도 따분해 한다. 이러한 연구와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기는 하지만 말의 주인이 소외되는 상황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말의 참된 주인과 함께 호흡하고, 일상에서 늘 접하는 말에서 시작해 그 뜻을 되새겨 그 속에서 재미와 의미를 찾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 심란한 일들이 많아 추리소설도 SF도 눈에 들어오지 않더니

한성우의 밥과 말에 대한 글이 조단조단 서두름없이 차분하여 마음의 정돈에 도움을 받았다.

먹고 사는 것을 빼고 인간의 삶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장 기본적인 삶에 대한 성찰이 쉬운말로 편안하였다.

 

짜장면을 짜장면이라 부르지 못하는 문법이라니. 새삼 웃음이 나온다.

그러게. 문법에 맞지 않다해도 우리는 늘 짜장면이라 불렀고, 왜냐하면 짜장면이니까.

자장면으로 애써 발음하는 뉴스 앵커들이 웃기다 생각했었지.

현실과 떼어놓고 학문의 영역으로 가두려 한다고 가둬지는 말과 글이 아니다.

 

쉽게 당연하게 사용하는 밥과 죽과 국과 면에 대하여, 그리고 밥과 죽과 국과 면을 먹는 사람들에 대하여

최근 유행하는 먹방 프로그램보다 순하지만 다채로운 우리 음식 이야기

소화잘되는 죽처럼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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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아이 2
에리크 발뢰 지음, 고호관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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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다는 드문 증상을 앓앗다. 바로 거짓말을 못했다. 마그나가 예전에 내게 말해준 바에 따르면 젊은 시절 몇번 시도해 봤지만, 몇마디만 하면 입술에서 핏기가 사라지고, 동공은 평소의 두배로 커지며, 고운 목소리가 거짓말 속으로 흩어져서 말이 멈춰버렸다. 조만간 게르다는 과호흡 증상을 보이고, 몸을 기울이다가, 누군가 끼어들지 않는다면 그 자리에서 혼절할 터였다. 마그나는 아름다우면서도 당황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게르다는 조연이다.

비중있는 조연도 아니고 지나가는 듯한 게르다 캐릭터를 이렇게 만들어주는 에리크가 좋다.

거짓말을 못해서, 몸으로 증상이 나타나는 영혼.

게르다의 이런 고지식함과 답답함을 아름다우면서도 당황스러운 현상이라고 평가해주는 에리크가 좋아.  

이런 증상의 사람이 정말 있을까? 있을거라고 믿기로 한다. 정말 있을 것 같아.

 

에리크가 고발하는 콩슬룬의 문제는 고위급, 잘나가는 관료나 부자들의 외도로 생긴 아이를 세탁해서 입양보낸 것이다.

한편 어떤 이유로든 버려지고 입양된 아이들이 어떤 소외와 결핍을 경험하는지 예민하고 유려한 문체로 에리크는 쓴다.

특히 마리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더욱 현실과 환상이 공존하는 시공간에 사는 아름다운 여성이고

수사네도 아스거도 애정을 담아 캐릭터를 구축한다.

왠지 발뢰는 품성도 좋을 것 같아. 착한 사람인가봐.

원작의 유려한 문체와 호기심에 비하면 번역이 서툴러 걸리는 대목이 많다.

 

과거에 대한 그 여인의 말을 믿을 수 있다면, 현재 이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장관이 경력 초기에 아주 어린 여자애를 다른 곳도 아닌 감옥에서 임신시킨 뒤 연줄을 최대한 동원하여 그 사건을 묻어버렸던 것이다.

그렇게 사라진 욘 비에스트란은 누굴까?

일곱명의 아이 중 누가 욘 일까?

책을 읽는 내내 이 긴장과 호기심의 흐름이 스토리와 잘 만난다. 

사투른 번역과 너무길 스토리는 단점. 좋은 이야기를 지루하게 만든다.  

 

 

2.

1961년 덴마크 고아원 콩슬룬에서는 아기들에게 최대한 빨리 적합한 부모를 찾아준다.

이 고아원 콩슬룬 어디에도 학대나 폭행은 없다.

대한민국은 6.25 전쟁 후부터 지금까지 아이들을 수출하고 있고, 잊을만하면 한번씩 어린이집의 폭행이 보도된다.

부모들이 일하러간 사이 낮동안 맞기는 아이들에게 폭행을 하는대

부모가 없어 버려진 고아원의 아기들에게는 어떤 상황일지, 두려운 상상을 하게 된다.

덴마크 고아원의 문제와는 다른 차원의 더 심각한 문제가 우리에게는 있다는 생각을, 책을 읽는 내내 떨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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