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미어스 1부 - 상 - 사마르칸트의 마법 목걸이 바티미어스 3
조나단 스트라우드 지음, 최인자 옮김 / 황금부엉이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해리포터』 시리즈도 그렇고, 심지어 『어스시의 마법사』도 부분적으론 성장소설 내지는 교양소설의 아동물 버전입니다. 아무래도 『반지의 제왕』과는 궤를 달리한다 하겠고,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나온다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나니아 연대기』와도 사뭇 다르죠. 이런 시리즈물은 십대 초, 중반 꼬마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모험물로, 판타지 장르의 확고한 하위 장르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비교적 목표 시장이 분명한 문학상품이랄까요.


 메인 트렌드가 일단 형성되고 나면 항상 틈새시장을 겨냥하는 아이디어 상품이 뒤를 따르는 모양입니다. 이를테면 『꿈꾸는 책들의 도시』에는 인간이라고는 나오지 않습니다. 지구상 어느 곳도 아닌 아예 다른 세계, 다른 생물의 종족들이 주인공이지요. 하지만 이 경우에도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라 용이라는 점만 빼면, 어린 소년입니다.


 아이가 주인공인 판타지가 슬슬 지겨워지던 참에 『바티미어스』를 읽게 되었습니다. 미리 말해두지만 『바티미어스』가 엄청나게 재미있다거나 독특하다는 건 아닙니다. 그리고 이 책 역시 어린 꼬마의 모험담 포맷을 따라가고 있지요. 게다가 이야기가 정교하다고 말하기도 사실 어려워요. 좀 슬렁슬렁 넘어가는 구석도 있고, 다음 편을 위한 복선일 수도 있겠지만, 흐지부지 끝나는 대목도 있어요.


 하지만 적어도 몇 가지 아이디어는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야말로 아동 모험물에 지친 독자를 위한 아이디어 상품의 미덕이랄까요. 우선 메인 주인공이 꼬마가 아닙니다. 심지어 인간도 아니지요. 이 소설의 주인공은 바티미어스라는 오천 살이 넘은 요괴입니다. 이 바티미어스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어갑니다. 하긴 이 수다스러운 중년 아저씨 같은 요괴도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할 때면 소년의 모습을 하긴 하지요.


 다음으로 흥미로웠던 건 바티미어스의 짝으로 나오는 나타니엘이란 꼬마 마법사입니다. 재능도 있고 정의감도 있으나 착하지만은 않은, 그리고 종종 어리석기도 한 소년이라는 설정은 그다지 새로울 게 없는 캐릭터입니다. 1권의 에피소드인 「사마르칸트의 마법 목걸이」가 끝날 즈음이면 나타니엘은 복수의 성취와 함께 제국을 구하게 되니 오히려 진부할 정도죠. 하지만 이 소년이 오히려 악당들을 닮아간다는 점은 꽤 독특합니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경우라면 해리가 악의 힘에 슬쩍 끌리는 대목이 있다 해도 그건 좀 뻔한 눈속임 같은 구석이 있어서, 누가 봐도 악의 편으로 넘어가지 않을거란 게 분명해 보입니다. 이를테면 ‘정치적으로 올바른 인종주의 정치학’이랄까요. 아무튼 해리는 좀 불안해보이긴 해도 ‘좋은 편’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의 본질이 ‘나쁜 편’과 닮아 있는 면이 있다 하더라도 결국 ‘좋은 편’의 가치를 따르지요. 한데 나타니엘의 경우는 좀 더 세속적인 논리를 따르고 있습니다. 나타니엘에게는 ‘좋은 편’과 ‘나쁜 편’의 구분은 상대적이고 모호합니다. 오히려 개인이 취하는 태도랄까, 입장이 더 중요한 문제죠.


 어찌보면 『바티미어스』는 드라마 시리즈물 방영에 앞서 상황 소개와 도입부 에피소드를 보여주는 두 시간짜리 텔레비전 영화 같은 책입니다. 복선이 될 법 싶은 디테일은 너무 많은데 비해, 이야기는 그 중 일부만을 보여주고 있어요. 다른 한편으론, 딱 그만큼의 재미에는 충실합니다. 좀 덜 진부하고 어느 정도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즐길 수 있는, 요괴와 소년이 나오는, 판타지 소설(그러고 보니 이런 짝패가 나오는 일본 만화는 좀 있는 것 같습니다)의 프롤로그라 할 수 있을 겁니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우맘 2006-09-07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 말씀 대로라면....한껏 바람을 잡았다는 말인데.... 바람 잡은 이후의 속편은? ^^;;;

urblue 2006-09-07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부가 최근에 나오긴 했는데, 글쎄, 어떨까요? ^^;

사이 2006-09-07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부를 보시면 1부에서의 몇몇 복선들이 이어지고, 심화되지요. 다음주에 출간될 3부에서는 드디어 모든 비밀과 관계들이 드러납니다! 아무래도 전체 3부작의 첫 1부라서 해결되지 못한 실마리들이 좀 미진한 느낌을 주나요? 나타니엘의 변모도 놀랍고, 바티미어스의 새로운 면모도 보이고요. 개인적으로 1부보다 2부가, 2부보다 3부가 더 흥미로워졌습니다. 뒤편들도 보시고, 멋진 리뷰 부탁드려요. ^^;;;

로드무비 2006-09-07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실하고 좋은 리뷰는 이런 것이라 생각합니다.
전 판타지를 거의 안 읽어서인지 모든 것이 독특해 보이는군요.

urblue 2006-09-07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랍님, 그렇군요, 2,3부를 봐야 제대로 알 수 있겠군요. 흠. 좋은 소식 고맙습니다.

로드무비님, 뭘, 성실하고 좋은 리뷰,까지... ( ..)
SF(를 보다 선호하지만)/판타지 같은 장르 문학도 꽤나 좋아합니다. 재미있는 것들이 많아요. 기회되면 도전해보시길. ^^

2006-09-07 16: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9-20 1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9-20 1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9-20 1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출처 : 바람구두 > "우리는 왜 그렇게 혁명을 갈구했나"

"우리는 왜 그렇게 혁명을 갈구했나"
'대화' <1> 전순옥 vs 조주은, '여성, 노동, 그리고 삶'
등록일자 : 2004년 05 월 15 일 (토) 09 : 11   
 

  월 2회 정도 연재될 '대화'는 대다수 대담과 달리 논쟁이 지향점은 아니다. 책이나 글을 매개로 비슷한 지향과 입장을 가진 두 사람의 대담 형식으로 진행될 '대화'는 애정과 신뢰에 기반을 둔 공통의 지향점을 찾아가는 게 목적이다. '사회적 소통의 장'이라는 언론 본연의 기능에도 좀더 충실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첫 번째 '대화'로 전태일 열사의 동생이자 노동학자 전순옥씨와 노동자 가족을 연구하는 여성학자 조주은씨의 대담을 싣는다. 편집자.
  
  전순옥 이야기
  
  동대문 창신동 '참여성노동복지터' 소장인 전순옥(50)씨에게는 전태일 열사의 동생이란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다. 1970년 전태일 열사의 분신은 전순옥씨 인생에도 큰 전환점이었다. 당시 16살이었던 그녀는 어머니 이소선씨와 함께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전씨는 22세까지 봉제의류 공장에서 일했고 그 후 노동조합 활동, 지역운동을 했다. 그녀는 35세의 늦은 나이에 영국 유학길에 올라 지난 2001년 런던 워릭대에서 70년대 여성노동운동을 다룬 <그들은 기계가 아니다(They are not machines)>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논문은 그해 워릭대 최우수 논문으로 선정된 바 있다.
  

 
전순옥 참여성노동복지터 소장 ⓒ프레시안

  최근 출간된 <끝나지 않은 시다의 노래>(한겨레신문사 펴냄)는 이 논문을 한국어로 옮긴 것이다. 이 책은 동일방직노조·청계피복노조 등 70년대 여성 노동운동가 1백여명의 생생한 육성을 통해 1970년대 여성 노동운동, 또 그녀들의 삶에 대한 재해석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전씨는 유학을 떠나기 전 바로 그 자리로 돌아왔다. 영국 대학과 성공회대 교수직을 마다하고 전태일기념사업회 사무실이 있는 동대문에서 가난한 여성 노동자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신 사회에 알려주는 역할이 바로 내가 할일"이라고 생각하며 "저소득층 여성노동자에 대한 제대로 된 통계를 만드는 것"이 그녀의 목표다.
  
  전씨는 또 지난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의뢰를 받아 고 조영래 변호사의 〈전태일 평전〉(A Single Spark)을 영어로 옮긴 데 이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의문사진상위원회 등의 한국 민주화운동사 영문 번역 작업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이 작업에는 뒤늦게 그녀의 인생의 반려자가 된 남편 크리스 조엘(61)도 함께하고 있다.
  
  조주은 이야기
  
 
여성학자 조주은 ⓒ프레시안

  이화여대 여성학과 박사과정인 조주은(38)씨는 국내에서 드물게 '노동자 가족'을 연구하는 학자다. 노동, 노동운동에 대한 연구는 많지만 노동자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구체적인 삶에 대한 연구는 전무하다는 점에서 조씨가 석사학위 논문으로 쓴 울산 현대자동차 가족에 대한 <현대가족 이야기>(이가서 펴냄)는 올 상반기에 출간된 노동 관련서 중 도드라졌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의 재생산을 담당하는 곳인 가정은 노동 정책과는 거리가 먼 듯하지만 상호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런 노동자 가족에 대한 연구가 전무한 우리나라의 학문 풍토에서 조씨는 일찌감치 어려운 길을 선택한 셈이다. 이런 선택에는 남다른 개인사도 한몫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늦깎이 운동권이 돼 만난 노동운동가인 남편을 따라 울산에 내려가 '전업 주부'로 살았던 경험은 연구자로서 그녀를 '관찰자'에만 머무르게 하지 않았다. 그녀는 앞으로도 '노동'과 '가족'을 화두로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전순옥ㆍ조주은 이야기
  
  두 사람에게 공통된 이슈는 '여성'과 '노동'이다. 지난 6일 오후 동대문 '참여성복지센터'에서 첫 대면하자마자 둘은 서로의 연구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보이며 대담은 시작됐다. 대담을 마치면서 전씨는 조씨에게 공동 연구를 제안하기도 했다.
  
  70년대 여성노동운동이 남성 연구자에 의해 경제주의적ㆍ고립적 운동으로 폄하돼 왔다는 점에 동의하면서 두 사람은 연구 대상을 '대상화'하는 지금까지 구태의연한 연구 방법으로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제대로 설명될 수 없다는 점에 공감을 표시했다.
  
  또 "공부한 사람들끼리만 아는 책을 쓰는" 기존의 현학적 풍토에 대한 저항 의식도 비슷했다. 조씨는 "한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는 책"을 쓰고자 했고, 전씨는 "책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직접 자기 얘기를 읽고 자신들의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지금 여기에서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고 긍지와 자부심을 갖는 것"이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는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현재의 남성,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에 대한 비판 의식도 똑같았다. 조씨는 "대기업 남성 노동운동가들이 자본가와 함께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놀이문화를 공유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이들에게 희망은 없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전씨도 "영국의 노조가 무기력하게 무너진 것은 노조의 조직 이기주의 때문이었다"며 "현재 우리나라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도 바로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은지 반성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사회의 '낮은 곳'을 들여다보고 있는 두 사람은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질문해야 할 때라고 지적한다. "우리가 왜 노동운동을 하고, 정치를 민주화하려고 하고, 경제 성장을 이룩하려고 하는가?", 좀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두 사람의 대담은 사회자가 별 끼어들 필요, 아니 끼어들 틈 없이 세 시간 넘게 계속됐다.
  
ⓒ프레시안

  대담은 지난 6일 저녁 '참여성복지터'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다음은 대담 전문이다.
  
  "여성노동운동에 대한 무관심, 폄하로 이어져"
  
  프레시안 : 전순옥 선생의 책 <끝나지 않은 시다의 노래>와 조주은 선생의 책 <현대 가족 이야기>는 상반기에 출간된 주목할 만한 노동 관련 책이다. 서로의 책을 읽은 소감이 있을 듯하다.
  
  조주은 : 먼저 시작하겠다. 그간 '노동운동'의 역사는 있는데 '여성노동운동'의 역사는 없었다. 2000년에 개인적인 이유로 여성노동운동의 역사와 관련된 책을 도서관에서 검색해보니 정말 한 권도 찾을 수 없더라. 일제 강점기 때 부문운동의 하나로 여성노동운동이 좀 언급돼 있고, 최초로 고공농성을 했던 강주룡 열사의 얘기 등이 부분적으로 인용될 뿐이었다.
  
  이런 무관심은 자연히 여성노동운동에 대한 폄하로 이어진다. 남성이 쓴 많은 노동운동사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 1990년 전노협(전국노동조합협의회), 1995년 민주노총으로 이어지는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를 말하면서, 이런 노동운동이 1970년대 노동운동의 중심이었던 여성노동운동의 경제주의와 고립적인 한계를 극복하면서 가능했다고 쓰고 있다. '그건 아닌데', 하면서 한국 여성노동운동의 역사를 새롭게 재조명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런 의미에서 전순옥 선생님이 쓴 이 책은 굉장히 큰 의의가 있다고 본다.
  
  전순옥 : 나는 일단 <현대가족 이야기>라는 제목이 참 좋더라. 현대에 살고 있는 가족이 파괴되고 있잖아. 난 제목만 보고도 많이 사서 볼 것 같던데. (웃음) 책은 많이 팔렸나?
  
  조주은 : (웃음) 거의 안 팔렸다.
  
  전순옥 : 사실 노동조합에 대한 연구는 너무나 많은데 실제로 노동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들의 구체적 삶에 대한 얘기는 전혀 없었다. 이 책은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돋보기를 들이댔다는 점에서 중요한 연구라고 본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나는 이 책에서 사용한 방법론이 참 마음에 들었다. 복잡한 이론을 사용하기보다는 책에서 서술되는 주인공들의 목소리를 가능하면 그대로 반영하려는 노력, 그렇게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구체적인 삶을 들여다본 것도 참 좋았다.
  
  조주은 : 글을 쓸 때 '한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순옥 : 그런 부분이 나랑 맞았다. 내 책의 주인공들도 내가 인터뷰를 할 때, 전에도 인터뷰를 많이 했지만 도대체 내 말들이 어떻게 쓰이는지 몰라서 인터뷰하는 게 싫다는 얘기를 하더라.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하면 주인공들의 언어로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래서 그들이 직접 자기 얘기들을 읽을 수 있을까, 이런 것을 고민하면서 글을 썼다. 나는 학자라기보다는 노동자 출신이니까 그런 면에서는 좀더 유리했고.
  
  내 책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직접 자기 이야기를 읽고, 자신들의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지금 여기에서 새로운 삶을 만들어 갈 수도 있고 긍지와 자부심을 가질 수도 있다. 공부한 사람들끼리만 아는 책을 쓰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서구 페미니즘이 제3세계 여성을 대상화한 것은 오류"
  
 
ⓒ프레시안

  프레시안 : 책을 읽으면서 상대방의 연구에 이견이나, 아쉬운 점은 없었나?
  
  전순옥 : 영국에서 공부하면서 서구의 여성학자들이 아시아 개발도상국 여성노동자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알게 됐다. 그들은 아시아 여성노동자들이 경제성장 과정에서 겪은 희생을 보면서, 여성노동자들을 '희생자로 개념화((victimization)'하곤 한다. 대부분이 이런 접근인데 나는 이렇게 제3세계 여성들을 대상화시키는 것에 대해 비판적이다.
  
  제3세계 여성들은 무조건 순종적이면서 희생을 묵묵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기들을 없애기보다는 오히려 현실의 모순을 떨쳐 일어나려는 움직임이 활발했고, 우리나라의 70년대 여성노동운동은 그 단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현대 가족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그런 접근이 좀 묻어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남편이 현대자동차 노동자이긴 하지만 그도 노동자 출신은 아니지 않느냐, 조주은 씨도 마찬가지고. 그러다보니 조주은 씨도 노동자 가족들 속에 파묻히기보다는 한 발 떨어져서 '관찰자의 시선'으로 본 게 아니냐는 느낌을 받았다.
  
  조주은 : 물론 그런 측면에 있다는 걸 부인하진 않겠다.
  
  사실 울산에서 이 책은 일종의 '금서'다. 나는 남성 노동자들이 이 책을 읽기를 원했다. 그들이 이 책을 읽고 성찰할 부분이 있다면 성찰하고, 너무 일상이나 관성에 젖었던 자기들의 모습을 이 책을 통해 스스로 객관화시켜 자기비판의 계기로 삼기를 바랐는데...... 남성 노동자들은 아예 안 읽더라. 남편 동료들한테 책에 대해서 물어보면 말을 안 한다. 왜 자기들 사는 모습을 공개적으로 까발려서 우리를 죽일 놈을 만드느냐, 자본가를 욕하고 기업을 욕해야지 왜 우리를 비판하느냐, 이런 식이다.
  
  실제로 인터뷰에 응한 여성들도 책을 보면서 기분이 별로 안 좋다고 애기했다. 한 여성은 나한테 "그래 언니 말이 맞아. 내 남편이 생산직 노동자가 맞긴 한데 그 책을 보니까 갑자기 내 처지가 서글퍼지더라"고 불편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연봉 4~5천만 원씩 받지만 그래봤자 결국 너희는 노동자다, 이렇게 규정하는 게 불편해 보였다.
  
  전순옥 : 실제로 노동자이면서 노동자라는 것을 까놓고 얘기하는 건 안 좋아한다는 얘긴데, 그게 일반 노동자의 의식이 아닌가 싶다. 노동운동을 하면서 또 학생들에게 가르치면서 임노동자와 그들의 자녀들이 정작 스스로 노동자 또는 노동자의 자녀라는 의식을 거부하는 것을 보고 갑갑했던 적이 있다. 사실 그렇게 임노동자들이 노동자 의식을 갖지 못한 것은 예외적인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조주은 : 이견이라기보다는 질문이 될 텐데, 선생님 책을 보면 1970년대 여성노동운동과 관련된 국내 여성학 연구에 대해서도 비판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어떤 점이 문제라고 생각하는가.
  
  전순옥 : 사실 1970년대 우리나라에 여성운동은 없었다. 1980년대 들어오면서 여성평우회, 여성민우회가 생기는 것을 시작으로 여성운동 단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여성학자들은 1970년대 '여성들이 여성의식이 없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예를 들어 노동조합에서 단체교섭을 할 때 여성만의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다거나, 여성 노동자로서 받아야 할 교육은 없었다는 둥. 이런 비판은 당시의 상황을 충분히 감안하지 않은 조금은 무책임한 것이다. 자기들은 그 때 뭘 했나?
  
  프레시안 : 그 당시 여성노동운동을 살펴보면 여성노동자들의 '생활 공동체' 같은 게 존재했다. 그런 모습을 '자생적 페미니즘'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전순옥 선생님도 '한국적 페미니즘'이라는 이유로 그런 것을 강조하고 있다.
  
  "박정희 정권의 탄압에 여성노동운동은 어떻게 10년을 버텼나"
  
 
ⓒ프레시안

  전순옥 : 그렇다. 이런 것을 한번 생각해보자. 1970년대 여성노동운동이 어떻게 박정희 정권의 억압적이고 무자비한 탄압 속에서 10년을 견딜 수 있었을까? 나는 그 힘이 바로 지적한 그런 데서도 나왔다고 생각한다. 많은 연구들은 당시 교회에서 여성노동운동을 지원해준 것을 중요하게 보는데 그것보다는 바로 이런 부분이 더 중요하다.
  
  그들은 정말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너무 대접을 못 받고 살아왔다. 집에서는 말순이, 섭섭이, 끝단이, 큰년이, 막내로 불리다 공장에 오니까 시다 1번, 미싱사 3번으로 불렸다. 그런데 노동조합에서는 그들의 이름을 불러줬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위원장, 교육선전부장 등 직함으로 불리고. '아, 나한테 이름이 있었구나', 이렇게 노동조합 활동을 통해 자아, 존재를 찾은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공장에서 사장들하고 단체교섭을 하면서 사용자가 "미스 리"라고 부르면 "내 이름은 이총각이고, 지부장이다"라고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게 됐고 또 그런 대접을 받으면서 '아 노동조합이야말로 나의 자아를 지켜주는 곳이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노동조합을 지키는 데 헌신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된다.
  
  프레시안 : 그런 점과 연관해서, 1970년대 여성노동운동은 노동조합의 민주적 운영 방식에 있어서도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전순옥 : 맞다. 남성 노동운동가들이 노동조합을 운영하는 방식과 여성 노동운동가들이 노동조합을 운영하는 방식은 전혀 다르게 나타났다. 심리학적으로 남성은 개인적으로 지도자로 우뚝 서려고 하는 성향(individual-oriented)이 있고 여성은 같이 하려는 성향(group-oriented)이 있다고 설명된다. 노동조합 운영에서도 이런 면이 발견된다.
  
  남성들은 자기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이끌어가려다 보니 굉장히 비민주적으로 조직을 운영하게 된다. 그러나 1970년대 여성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운영할 때 모든 것을 조합원들과 같이 의논했다. 여성 노동운동가들은 조합원들 이름 하나하나를 다 기억하려고 했고. YH노조의 최순영 씨 같은 사람은 조합원 3천 명의 이름을 다 기억하려고 노력했던 사람이다.
  
  예를 들어 남성 노동운동가들이 단체교섭을 할 때는 '빠다 조건'이라는 게 있다. 노조 지도자가 사용자한테 이번에 임금을 10%에서 1%를 더 올려주면 내가 노동자 생산력을 향상시키고, 노조가 시끄럽지 않도록 하겠다고 물밑 협상을 하는 것이다. 그러고는 조합원들한테 는 '당신들이 나를 위원장으로 뽑아준다면 다른 사람보다 임금을 1% 더 올리겠다'고 말하고.
  
  근데 여성 노동운동가들의 모습에서는 이런 것을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단체교섭을 할 때 임금 인상률을 지도부에서 결정하는 게 아니라 조합원들과 함께 결정했다. 1970년대에는 소그룹이 많았는데, 그런 소그룹에서 '이번에 우리가 임금을 얼마를 올려야 하는지' 자기들끼리 논의를 한다. 조합원들이 임금 인상률을 15%로 결정되면 집행부가 논의를 해서 조합원들의 의견을 최대한 수용한 결정을 내리고, 공고한다. 이런 과정을 거친 간부들은 교섭에 들어가서 반드시 15%를 올려야 한다. 조합원들의 의견이기 때문에 다른 '빠다 조건'으로 바꾸지도 못한다. 조합원들은 그들대로 내가 주장한 15% 인상을 간부들이 사용자와 교섭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자연스럽게 지도부에 신뢰와 절대적 지지를 보낸다. 여기서 지도부는 또 싸울 용기와 힘을 얻는다.
  
  "혼자 결정하다 보니 남성 노동운동가들은 회유가 잘 돼"
  
  조주은 : 동감한다. 남성 노조 지도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제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제가 다 책임지겠습니다", "믿어주십시오", 이런 얘기들이다.
  
  전순옥 : 맞다. 그런 남성 노조 지도자들은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고, 혼자 달려가다 보니 유혹에도 쉽게 무너진다. 남성 노동운동가들은 회유가 잘 된다. 어용이 되기 쉽다. 박정희가 1960~70년대 노조를 완전히 어용화시켜 조정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남자들 몇 명만 잡고 있으면 노조를 좌지우지할 수 있었던 그런 분위기 탓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여성들이 중심이 된 노조는 그럴 수 없고, 비타협적이어서 오히려 박정희한테 큰 타격이었다. 그래서 더욱 박정희는 민주노조를 없애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YH노조가 신민당사에서 농성을 할 때 겨우 여성 2백여 명이 농성을 하고 있는데 중앙정보부 김재규가 관여를 하지 않았느냐. 그만큼 그들의 행동을 큰 타격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한두 사람을 회유하는 것으로 안 되니까 뿌리째 뽑아서 노조를 없애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 상황을 바로 1970년대 여성 노동운동가들이 만들어냈다.
  
  조주은 : 당시에 여성노동자들의 파업을 남성노동자들이 앞장서 방해했었다. 구사대의 대부분이 남성노동자였고 여성노동자가 출근 투쟁할 때 위협을 가하고, 머리채를 잡으며 폭력을 가했던 게 다 남성노동자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부분은 선생의 연구에서 별로 드러나지 않는다.
  
  전순옥 : 섬유나 방직 산업에서도 총 4천 명이 일하는 공장에 남자는 한 5백 명 정도에 불과했다. 1천3백 명 있는 공장에서 남자는 1백 명 정도가 있었고, 나도 당시 여성노동자들을 인터뷰하면서 '당시 남성노동자들에게 얼마나 많이 당했느냐, 같은 노동자들에게 당하는 게 더 분하지 않았느냐'고 질문을 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의 대답이 놀라웠다. 그들은 "아니다. 다시 생각해봐도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남성노동자들도 결국 사용자에게 고용된 희생자일 뿐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오히려 그런 남성노동자들을 노조 지도부에 넣으려고 노력했다. 이 사람들이야말로 계급의식이 훨씬 강했다. 남성과 여성의 대립 구도로 끌어가지 않았다. 만약에 그 남성들과 싸우기 시작하면 그게 바로 자본가들이 바랐던 '노-노(勞-勞) 갈등'이라고 여겼다. 개인적으로 이견이 있더라도, 그들의 입장을 최대한 그대로 반영하는 게 기록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내 책에서 남성과 여성간의 '적대적 관계'가 빠진 것은 그 때문이다.
  
  "대기업, 정규직, 남성 중심 노동운동 썩었다"
  
  프레시안 : 현재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으로 대표되는 대기업, 정규직, 남성 중심의 노동운동에 대한 비판이 많이 있다. 두 분의 연구는 현재 이런 노동운동 경향에 대한 아픈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노동운동이 자기비판을 하면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
  
  조주은 : 극단적인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대기업, 정규직, 남성 중심의 현재 노동운동은 '썩었다'고 생각한다. 파업을 하면서도 '삐삐 아줌마'를 불러서 같이 놀고... 울산에서 직접 보고 들은 차마 얘기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다. 가장 진보적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집행부를 장악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노사가 상견례를 핑계로 룸살롱을 같이 가는 경우도 많다. 사용자가 미리 대기시켜 놓은 아가씨들 끼고 양주 마시면서 놀고. 사용자가 용돈을 쓰라고 주머니에 돈을 찔러주면서 미끼를 던지면 일부 노동운동가들은 그걸 거부하지 않고 받기도 한다. 적어도 남성 노동운동가들도 자본가와 함께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놀이문화를 공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전망을 가지고, 진보가 나올 수 있을까 굉장히 자괴감이 든다.
  
  오히려 나는 노동운동의 희망이 지금 현재 가장 변두리에 있는 노동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 또 그 중에서도 가장 주변부에 있는 노동자들의 활동 속에서 나오리라고 기대한다. 그들의 활동에서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전순옥 : 자본가와 싸울 수 있는 조건은 자본주의화 되지 않는 것이다. 단체교섭을 통해 임금을 많이 올리는 것은 결코 자본과 싸우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임금을 조금씩 올려 받으면서 노동자들은 '자본의 그물' 속으로 점점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가 의식된 노동자라면 그런 것들을 오히려 거부해야 한다.
  
  우리가 아무리 임금을 올려 받아도 자본가처럼 잘 살 수는 없다. 결국 우리가 노동자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은 마치 임금인상이 노동운동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됐다. 그것이야말로 자본가들이 원하는 것이다. 대기업 노동자들 중에서는 연봉 4~5천만 원, 심지어 6천만 원을 받는 곳도 있다. 강연을 하러 가면 아예 노조에서 그런다. 강연 듣는 사람들은 노동자가 아니라고.
  
  그렇게 임금이 올라가면 자연히 노동조합의 힘은 없어진다. 어느 정도 임금이 되면 노동자 동료들과 함께하기보다는 가족들과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각종 소비문화를 즐기고 싶어진다. 비정규직 문제를 가지고 노조가 집회를 해도 '그것은 나하고는 상관 없는 일이다', 이런 식이다. 정말로 자본가들이 바라는 그런 노동운동이 지금 한국 노동운동의 모습이다.
  
ⓒ프레시안

  "영국 노동운동 조직이기주의로 망해. 현 대기업 노조 권력 다툼에 몰입"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영국 노동운동이 망했다고 본다. 그들은 노동조합이 조직이기주의에 빠져 비정규직이나 여성노동자들 등 주변에 있는 노동자들의 권익을 추구하는 데 등한시했고 결국 대중으로부터 소외됐다.
  
  그것을 절묘하게 이용했던 게 바로 대처다. 1980년대 대처가 추구했던 신자유주의 정책의 핵심은 노동조합의 힘을 약화시키는 데 있었다. 노조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서는 조합원 수를 줄여야 했고, 국영기업의 민영화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인 배경에도 이런 사정이 있었다. 국영기업을 사기업으로 만들면서 구조조정을 통해 한 사업장에서 반 수 이상의 노동자들이 해고됐다. 영국의 노조가 너무나 무기력하게 이런 공세를 당한 데는 노조의 조직이기주의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도 바로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은지 반성해봐야 한다.
  
  영국에 처음 간 1990년 초에 노동자 대회를 갔는데, 2백 명이 참석했더라. 당시 우리나라는 노동운동이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을 때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운동은 성공할 때가 있고 기울 때가 있다. 우리나라의 노동운동도 이런 것을 똑바로 배워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조주은 : 현재 대기업 노동조합들은 서로 조직의 권력을 잡는 데 몰두해 있다. 민주노총 현대자동차 노조 자유게시판을 한번 봐라.
  
  내가 남편하고 5년 정도를 떨어져 있었다. 남들이 남편이 '바람'을 필지도 모른다면서 걱정하곤 할 때마다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혹시 다른 여자하고 그런 일이 있다면 바로 자유게시판에 뜬다. 눈에 띄는 신인 노동운동가가 부인하고도 떨어져 있는데, 저 뒤를 캐면 속한 조직에 흠집을 낼 수 있겠구나 하면서 감시를 하는 거다. 남편이 속한 조직의 상대편 조직 사람들이 내 남편을 지켜주고 있는데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웃음)
  
  현대자동차 노조의 경우에는 이번에 울산 북구에서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이 나왔기 때문에 권력을 둘러싼 경쟁이 더욱더 치열해질 것이다. 다음 현대자동차 노조 위원장을 하는 것은, 이후에 누가 울산 북구 국회의원을 하느냐의 문제와도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차마 말로 못하는 사정들이 너무나 많다.
  
  전순옥 : 사실 우리 노동운동 속에 보기에도 민망한 추악한 계파 싸움이 있다. 다들 다른 이데올로기를 표명하지만 사실 자기 조직을 지키기 위한 이데올로기이지 노동자를 해방시키기 위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는 것은 본인들이 더 잘 안다. 서로 자기 정파를 살리기 위해서 내분을 하고, 그 때문에 지도자들을 믿고 따랐던 노동자들이 희생을 당하고.
  
  이렇게 지도부가 계파 싸움에 몰두해 있는 동안 조합원들과 지도부의 괴리감이 커진다. 지도부가 뭘 하고 다니는지 조합원들이 모른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 없던 '지도부 불신임'이 많이 일어난다. 이런 속에서 노동운동의 노하우가 축적이 안 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지도부는 능력 없는 허수아비가 될 것이고, 그러다 보면 더 계파 싸움에 의존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
  
  프레시안 : 조주은 선생의 남편도 현대자동차 노조 활동가였다. 남편은 이 책에 대해 어떻게 평가했나?
  
  조주은 : 남성노동자들을 너무 비하하는 표현들이 있어서 걸린다고 얘기했다. 예를 들면 "남성노동자들은 여성노동자들을 성적인 시선으로 대한다", 이런 단정적인 표현을 "그러기 쉽다" 이렇게 고치는 식으로. (웃음)
  
  전순옥 : 물어보고 싶은 게 하나 있다. 여성은 18명을 인터뷰했는데, 현대자동차 남성노동자들의 수는 적다. 일부러 아내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가족 얘기를 쓴다고 해도, 부부 양쪽 얘기를 같이 들으면 내용이 더 풍부해졌을 텐데, 왜 그랬나? 남성노동자들을 인터뷰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나, 아니면 의도적이었나?
  
  조주은 : 약간 의도적이었다. 이 연구를 하기 전에 울산 노동자 가족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부부를 같이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부인은 말을 한 마디도 못했다. 그런 거 보면서 같이 안 되겠구나 싶었다.
  
  사실 가장 좋은 것은 똑같은 사안을 놓고 부부를 동시해 인터뷰해서 그들의 목소리를 담는 것일 텐데, 울산에서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그럴 때 남자들은 대개 "나는 이렇게 얘기했는데 너는 뭐라고 했느냐. 너한테 이런 질문 할 테니 이렇게 답해라", 이런 식으로 아내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 든다. 그래서 처음부터 아내의 목소리에 주목하기로 했다.
  
  프레시안 : 혹시 서로의 책을 읽으면서 세대차나 또는 시각차는 없었나?
  
  조주은 : 나 같은 경우는 오히려 가까워졌다. 솔직히 말하면 전태일 열사의 여동생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전순옥 선생의 책은 남성적 시각이 주가 됐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책을 읽어보니 책 전체에 여성주의적 관점을 견지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을 보면서 오히려 반갑게 느껴졌다.
  
  "노동자 중에도 가장 힘없는 노동자에 마음 가. 그게 바로 여성노동자"
  
  전순옥 : 이 책을 쓸 때도 그랬고 지금도 주변 사람들은 내가 여성주의자인지 안다. 또 여기 창신동에 와서 '참여성노동복지터'를 하고 있어서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누가 '페미니스트가 아니냐' 물어보면 '아니다'라고 말한다. (웃음) 페미니즘을 거부하기 때문은 아닌데 어쨌든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닌 것 같다.
  
  나는 아무래도 노동자 출신이라서 그런지 노동계급의 성향이 짙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노동계급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사회에서 가장 힘이 없는 사람들, 같은 노동자 중에서도 가장 힘이 없는 노동자 쪽에 내 마음이 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항상 그곳에는 여성이 있었다.
  
  프레시안 : 괜한 것을 물은 것 같다. 그럼 상대방에 대한 조언이나 바람이 있을 법하다.
  
  전순옥 : 나는 오늘 조주은 선생이랑 같이 얘기를 해보니까 앞으로 같이 해볼 수 있는 일들이 너무 많을 것 같아서 기대가 된다. 얘기를 하면 할수록 그런 생각이 더 뚜렷해졌다.
  
  앞으로 빈민 여성에 관심을 가지는 학자들끼리 네트워크를 한번 해보고 싶다. 서로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방점은 다르겠지만, 부분적으로는 같이 연구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일을 거라고 기대된다.
  
  조주은 : 나도 그 네트워크에 꼭 끼워 달라. (웃음) 나는 전 선생이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말한 게 페미니즘에 대한 거부감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얼마 전에 <한겨레21>에 내 책에 대한 서평이 실렸는데 거기에 '여성학자 조주은'이라고 쓰인 것을 보고 나도 깜짝 놀랐다. 그 때 기분이 참 묘했다. 내 자신부터 여성학자라고 규정되는 게 당혹스러웠다.
  
  나는 전순옥 선생이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한다. 선생이 하는 일이 가장 앞서가는 여성주의적 실천과 연구라고 생각한다.
  
  "노동자 목소리 대신 알려주는 게 내 할일"
  
 
  전순옥. <끝나지 않은 시다의 노래> (한겨레신문사 펴냄) ⓒ프레시안

  프레시안 : 현재 하고 있는 일과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전순옥 : 내가 연대하고 싶은 사람들, 이 노동자들에 대한 기록이 너무 없었다. 창신동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몇 시간을 일했고, 얼마를 받고 있는지에 대한 통계가 하나도 없다. 기존의 통계들은 너무나 공평하지 못하고 자의적이다. 소외된 사람들은 통계마저도 거부한다.
  
  우리나라가 세계 11위의 경제 규모를 가지고 있고, 노동운동도 많이 발전했지만 여전히 이 사람들은 그런 것과 무관하게 살고 있다. 그들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그들의 통계, 아니 우리들의 통계를 만드는 것이 바로 내 꿈이다.
  
  영국에서 학위를 마쳤을 때, 그 학교에 자리가 났었다. 사실 고민하면서 영주권 신청까지 했다. 그러나 이런 결심을 굳히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 와서 마침 성공회대학에 연구교수 자리가 생겨서 가게 됐는데 거기도 딱 1년 만에 사표를 냈다.
  
  내가 원래 이 지역에서 여성노동자 공동체, 탁아소를 했다. 이제 외국까지 가서 박사를 마치고 다시 돌아오니까 주변에서 '박사까지 하고 이걸 하느냐'고 혀를 차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바로 박사까지 했기 때문에 꼭 여기로 돌아와야 했다고 생각한다.
  
  전태일 오빠는 70년대 노동자들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노력했다. 그런데 그가 보잘 것 없는 노동자였기 때문에 아무도 귀를 안 기울였다. 만약 전태일이 대학생이었어도 그랬을까?
  
  여기서 1960~70년대부터 노동을 하고 있던 여성노동자들이 16시간씩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어도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돌아오니까 인터뷰도 하고, 한마디 하면 신문에도 실리고 그러더라. 그게 바로 외국 유학 다녀온 박사라는 타이틀 때문이라면,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신 사회에 알려주는 역할이 바로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조주은 : 나는 아직 학위 과정 중에 있으니까 큰 포부를 말하기는 좀 어렵다. 다만 노동자 가족 문제에 계속 천착해 들어갈 생각이다. 솔직히 노동자 가족을 연구하는 사람이 나 밖에 없는 것 같다. <현대가족 이야기>는 노동자 안에서도 가장 상층 가족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젠 가장 밑바닥에 있는 노동자 가족에 대해서 연구해보고 싶다. 또 민족주의적인 태도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더 홀대 받고 있는 이주 노동자의 가족에 대해서도 연구를 해보고 싶다.
  
  "권력 가진 이들의 정체된 의식이 사회의 정체 낳아"
  
 
  조주은. <현대가족 이야기> (이가서 펴냄) ⓒ프레시안

  프레시안 : 마지막 질문을 던져보자. 각자 영역에서 두 분은 우리 사회의 변화에 대한 어떤 전망을 가지고 있나.
  
  전순옥 : 요즘엔 현대 사회와 가족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곤 한다. 가족이 어떤 가치를 함께 나눌 수 있을까, 이런 생각 말이다. 서구와 달리 우리는 끈끈한 가족애, 가족에 대한 사랑이 있었고 나는 그것이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어갈 수 있는 힘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자부심을 가졌는데 그 동안 많이 변했더라.
  
  사회가 발전하면서 경제 성장이라는 한 가지 목표만 열중하다 보니까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이제 우리 사회도 거시적인 것보다는 좀더 미시적인 접근을 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가치관을 어디에 둘 것인지를 같이 고민했으면 좋겠다.
  
  우리가 왜 노동운동을 하고, 정치를 민주화하려고 하고, 경제 성장을 이룩하려고 했나. 왜 우리가 그렇게 혁명을 목소리 높였나. 바로 내 삶을, 또 이웃들의 삶을 좀더 행복하게 만드는 게 아니었나?
  
  그게 개인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사회 모든 구성원들이 가치관을 어디다 놓느냐에 따라 '새로운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노동자들부터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할 때다. 우리가 무엇을 향해 달려갈 것인지를 점검한 다음에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다.
  
  조주은 : 질문에 답하기가 막막했는데 전순옥 선생 말씀을 듣고 보니 감이 온다. (웃음) 우리 사회는 현재 엄청난 변화와 정체가 섞여 있는 것 같다.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인기를 얻는 것을 보면서 여자가 법무부 장관을 하고, 그가 이혼했다는 게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변했다고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변하지 않는 뭔가가 있다.
  
  난 두 아이 엄마인데 큰 애가 '가정환경 조사서'를 갖고 왔다. 너무 놀랐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 그 양식 그대로더라. 여성, 소수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그런 모습이 여전히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 좀더 힘 있는 사람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정체된 의식이 바로 사회의 정체를 낳는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합리적인 의사소통이 안 되고 힘을 가진 사람 위주로 돌아가는 것도 그 때문이라는 생각이고.
  
  변화의 가능성과 과거의 정체가 혼돈돼 있는 이럴 때일수록 조금이라도 더 힘을 가진 사람들부터 우선 변할 필요가 있다. 당장 우리 사회 남성들부터 조금씩 변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물론 그것을 이끌어내기 위한 여성들의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프레시안 : 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하다.
  
  (<한겨레> 홍세화 기획위원과 <한국일보> 고종석 논설위원이 '사회적 연대'를 주제로 두 번째 '대화'를 나눌 예정입니다.)
  
 
 

강양구ㆍ전홍기혜/기자
ⓒ 2001-2006 PRESSian. All right reserved.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6-09-13 15: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명성에 비하면, 내게는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한 작품.
딱히 재미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뭐랄까, 너무 늦게 본 게 문제일까. 모님이 리뷰에 쓰신 것처럼 옛날 영화의 분위기가 그대로 나서 특별한 감상이 일지 않는다.

 

 

 

 여행기를 마뜩찮아 하는 내게도 비교적 좋은 여행기.
감상적이지도 호들갑스럽지도 않은 점이 마음에 든다.

 

 

 

 휴가가면서 들고 간 책. 역시, 슬렁슬렁 쉽게 읽을 수 있었다.
는 영화가 꽤 좋았고 (상당 부분 남자 주인공이 멋졌던 탓이지만), <레벌루션 NO.3>의 가벼움도 유쾌해서 좋았는데 이건 그냥 그렇다.
이문식과 이준기의 영화는, 예고 프로그램을 본 것으로 만족. 뭐 별게 더 있을 것 같지도 않으니까.

 

 

 <두개골의 서>가 재미있어서 바로 주문한, 로버트 실버버그의 대표작.
나이 많이 든 아저씨가 주인공이지만, 남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텔레파시 능력을 점점 잃어가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다는 점에서는 성장소설이다. <두개골의 서>와 마찬가지로 상당히 수다스러운 소설.

 

 

 

 갑자기 왜 이런 책을 읽었냐 하면, 마포 도서관에 꽂혀 있는 걸 애인이 빌렸기 때문.
알튀세르, 스피노자 어쩌구 하는 이름만 들어 본 사람들이 등장하는 맥락을 대강 파악할 수 있었다는 점이 수확이라면 수확. 대학 때 잠깐 읽은 정치경제학 관련 서적들이 얼마나 엉터리였던가 하는 것을 알게된 것도.
이 책은 윤소영 교수가 서울대에서 강의한 내용을 채록하여 책으로 묶은 것이라 하는데, 윤소영 교수의 강의를 직접 들은 사람에 의하면, 책에 씌인 그대로를 4~5시간 동안 쉬지않고 얘기한단다. 저주받은 기억력이라나. 이런 내용을 책으로 읽는 것도 아니고 강의로 한꺼번에 들으면, 뭘 들었는지 제대로 기억이 날까, 궁금하다.

 

 마포 도서관에서 빌린 책. 완전히 너덜너덜 찢어졌다. 그나마 없어진 페이지가 없는 게 다행. 절판이라니 헌책방이라도 뒤져서 구입할 생각.

 

 

 

 

 차기 총리 후보라는 아베도 야스쿠니 참배를 멈추지 않을 모양인데, 그나마 일본에서 이런 책이 나오는 게 다행인걸까.
저자는, 문제는 야스쿠니 신사가 아니라 전쟁과 평화에 관한 일본인의 의식이라고 말한다. 확실히 일본은 군사 대국(침략)으로 향하는 길을 멈출 생각이 없는 것이지.


 

 

 1부는 엄청 몰입해서 읽다가, 2,3부에서 좀 지루해졌는데, 마지막 부분에 이르니 2,3부가 꼭 필요한 내용이었다는 걸 알겠다. 잘 짜여진 소설.
자신의 죄를 깨달은 사람이 그걸 평생 동안 잊지 않고 속죄한다는게 가능할까.

 

 

 

 여자 꼬실 생각만 가득한 젊은 작가 무슈 장의 분투기.
키득키득 웃다가도 좀 짠하기도 한데, 어쩐지 무슈 장보다 내가 조금 더 나이를 먹었기 때문인 듯 느껴진다. 그래, 너도 좀 더 나이가 들면 달라질거다, 싶은 마음.
2,3권에서는 더 나이 든 무슈 장이 등장한다고 하니 봐 줘야겠지.

 

 

8월 말까지 64권. 올해 100권을 채우려면 매달 9권씩 읽어줘야 하는데, 아무래도 어려울 듯. 흐음.

오랫만에 숨어있는 책에 들렀다가 세 권 구입.

 

 

 

 

 

마포도서관에서 두 권 대여. 언제 다 읽나~ 흠.

 


댓글(8)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udan 2006-09-03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슈 장은 얼마전에 홍대 앞 퉁크 들렀다가 살까 말까 망설였던거에요. 남성판 섹스앤더씨티라고 하는 책홍보 문구가 어쩐지 마음에 안들어서요.(섹스앤더씨티는 재미있게 봤는데, 그 드라마가 유행시킨 것들은 도무지..우.) 누가 리뷰라도 써서 올려주면 참고해야지 했는데. 헤헤. 저도 봐야겠어요.

도서관에서 두 권을 빌렸으면 한 권 정도는 그냥 반납하는 게 정상이에요. -_-

urblue 2006-09-04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성판 섹스앤더시티라는 홍보 문구는 저도 마음에 안 들어요. 뭐 비슷하다고 우기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굳이 그렇게 홍보할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아직은 도서관에서 빌린 책 전부 읽고 반납했는데요. ㅋㅋ

로드무비 2006-09-04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빌리는 경우도 있겠네요.
아니지, 참. 주종이 달라서.

무슈 장은 아무 생각없이 그때그때 추파를 던진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여자 꼬실 생각만 가득하다'는 블루님 말에 웃음이 나옵니다.^^
(같은 프로를 보고도 선택한 음식이 달랐던 것처럼?)

urblue 2006-09-04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씩은 겹치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요? ^^
생각없이 추파를 던진다는 말도 맞긴한데, 여자만 보면 그러니 평상시 머리 속에 든 건 뭘까 싶어서요. ㅋㅋ

반딧불,, 2006-09-05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많이 읽으셨군요.
저는 구월시작이 좋아요. 벌써 두 권. 쉬운 소설들이지만 이게 웬일이랍니까.
도리안그레이의 초상밖에 겹치는 것이 없어요. 그나마도 다 잊었습니다ㅠ.ㅠ

urblue 2006-09-05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월은 오랜만에 많이 읽은 거구요. 흑흑. 8월 말에 시작한 책을 여태 붙들고 있어요. 오늘은 기필코 끝내야지, 맘먹고 있는데 집에 가서 청소할 생각하면..ㅠ.ㅜ
읽은 책 잊어버리는거야 당연하죠 뭐. 저 위에 책들도 벌써 가물가물합니다.

반딧불,, 2006-09-05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공포의 청소.
울집은 요새 거실하고 방하고 번갈아가면서 닦아요. 어찌나 컨디션도 안좋고
닦기가 싫은지..요렇고롬 게으르게 산답니다ㅠㅠ

urblue 2006-09-05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소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밖에 안 하는데, 매일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아웅. 도대체 30평 넘어가는 집에 살면 그 청소를 어쩔 것인지. 집 작은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니까요. 휴~
애들 있으니 더 힘드시죠? 그게 어디 게을러서겠어요. 환절기인데 건강 챙기세요. ^^
 

홍대 프리마켓에서 내 눈을 잡아끈 가방.

한 바퀴 휙 돌았으나 여전히 눈에 밟혀 그냥 올 수가 없었다.

혹해서 쳐다보는 나를 위해 애인이 선물.

용돈 타 쓰는 처지에 무리했다. ㅎㅎ

척 보기에도 한복이 모티프란 걸 알겠는데, 만든 이가 그렇다고 설명한다.

역시 오늘 구입한 곰돌이 북엔드 두마리가 찬조 출연.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물만두 2006-09-02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특하네요. 복주머니 스타일같기도 하구요^^

urblue 2006-09-02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제 가방이랍니다. 저거랑 똑같은 디자인으로 조그만 손가방도 팔던데, 그건 확실히 복주머니같아요. ^^

따우님, 확실히 모르겠지만 면 종류의 천이라서 빨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뭐, 제가 쫌 깔끔하게 쓰기도 합니다만. ㅋㅋ

반딧불,, 2006-09-05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733003

음..좋네요. 이걸 소화하는 님이라니...^^;;


urblue 2006-09-05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옷도 아니고 가방인데 소화가 안 될까요. ^^;
 
느린 희망 유재현 온더로드 6
유재현 지음 / 그린비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젠가 에세이류를 싫어하는 이유가 독자에게 주어지는 수동적인 역할에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소설의 경우 작가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글을 썼는가와 관계없이 한 작품은 자체로 생명력을 가지게 되고, 그로부터 어떤 의미를 추출해내느냐 하는 것은 온전히 독자에게 주어지는 몫이다. 주도권은 독자에게 있다. 반면 수필은 글쓴이의 개인적인 생각과 느낌을 독자에게 강요하는 글이며 독자는 그것을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둘 중 하나를 택할 수 밖에 없다.

 

기행문 역시 수필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므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나마 직접 가 본 곳에 관한 여행기라면 내가 본 것과 필자가 본 것이 어떻게 다른지 혹은 동일한 대상에 대한 감상이 같은지 다른지 확인하는 재미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곳을 보여주는 여행기에 대해서는 실상 뭐라 할 말이 없다. 한 나라든 한 도시든 결코 좁지 않은 여행지에서 필자가 선택한 대상과 그에 대한 감상을 일방적으로 전해 들어야 하는 나는 그것이 옳다고도 그르다고도, 혹은 안목이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말할 수 없다. 나는 미술관 말고 공원을 보고 싶다구요, 라고 투덜거려봐야 필자에게 전해질 리도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현지인이 아닌,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인 여행객의 눈에 비친 한 지역의 이미지를 나는 믿지 않는다. 그러니 박물관 기행이든 건축 기행이든 뭔가 테마가 있는 여행기 외엔 손을 대지 않는다. (책에 있어서는, 나는 꽤 까다로운 편식증과 편협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손에 든 건, 여행지가 다름아닌 쿠바이기 때문이고, 제목이 <느린 희망>이기 때문이다. 체 게바라, 카스트로, 혁명, 수준 높은 교육/의료 서비스, 아바나,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야구, 미사일 위기, 경제 봉쇄, 난민, 관타나모 기지. 쿠바에 관한 내 지식은 딱 요만큼에서 한 치도 더 나아가지 못한다. 언젠가 이 나라에 가 볼 날이 올지, 물론 알 수 없다. 앞으로 한 40년쯤 더 산다고 해도, 글쎄, 태평양 너머에 있는 이 섬나라가 과연 내 생에 어떤 인연을 갖고 있을까. 하지만, 아니, 그렇기에 쿠바는 야릇한 설렘을 주는 곳이다.(현지인들이 내 말을 듣는다면 헛소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만.) 더하여, <느린 희망>이라는 제목은 저자가 쿠바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자연스럽게 <슬로 푸드><희망의 밥상>이 연상된다.) 그러므로 쿠바라는 넓은 땅 안에서 그가 선택해 보여줄 것들에 대해 의심을 버릴 수 있다. 이렇게, 나는 쿠바 여행기를 만났다. (, 이래서 여행기를 읽는구나, 하는 갑작스런 깨달음이라니.)

 

어차피 기행문의 형식이란 건 없다. 여행자가 보고 싶은 걸 보고 말하고 싶은 걸 말하면 그만이다. 보통 초보 여행자들은, 관광안내책자에 소개된, 남들 다 보는 것을 보고 나서 남들 다 하는 얘기를 똑같이 하곤 한다. 그래서야 굳이 책을 만들 의미도, 읽을 재미도 없다. 유재현은 그다지 시시콜콜하지 않다. 인터넷에서 혹은 관광책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내용들은 아예 빼버린 듯 하다. 그가 직접 찍었다는 사진 속에는 쿠바의 자연 경관, 건축물, 혁명의 추억 등이 담겨있지만, 무엇보다 많이 보이는 것은 사람들이다. 백인, 흑인, 인디오, 뮬라토, 메스티소 등등 온갖 인종들이 온갖 표정과 포즈로 존재한다. 그는 그들로부터 사는 이야기를 듣고, 보통의 여행객들이 간과하기 쉬운 현지인들의 삶을 보았다. 물론 이 정도로 그가 쿠바를 속속들이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터이다. 그러나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도 낙천적으로 살아가는 쿠바인들 사이에서 느리지만 결코 사라지지는 않은 희망을 찾을 수 있을 만큼은 보았다고 해도 좋지 않을까. 여행자가 품기 쉬운 감상이나 호들갑스러운 과장 없이 소박하고 담담하게 그러한 희망을 피력한 것도 장점이랄 수 있겠다. 쿠바의 첫 여행기를 잘 만나서 다행이다. 이런 여행기라면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ephistopheles 2006-09-01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델 카스트로의 생이 얼마 안남았다고 하더군요...
이제 쿠바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 생을 마감하는군요....^^

비로그인 2006-09-01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에세이와 여행기를 대리체험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떠나기는 귀찮거나 사정이 여의치 않고(그놈의 사정이란 게 언제나 그렇지요), 대신 이유식을 먹듯 천천히.
그래서인지 내 마음과 딱 맞는 에세이스트를 찾기란, 내 마음과 딱 맞는 여행 동반자를 찾는 것만큼이나 힘들어요. 나는 흰 테이블보와 빳빳한 광목 천을 원하는데 레이스가 화려한 베르사유의 침실을 원하는 동반자를 만난다면 책 한 권의 여행이 내도록 괴로우니까요. 그런 의미에서는 이 책을 만난 것, 저도 참 다행이라 생각했더랬습니다.

blowup 2006-09-01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가 떠먹여 주는 느낌. 근데 무슨 맛인지 잘 모르겠는 데서 오는 불편함. 그런 것이었나봐요. 제가 여행기를 재미없어 하는 이유가. 이국적인 장소에 혼자 도취해서는 끊임없이 스스로의 매혹을 동어반복하는 여행기가 제일 피곤해요.

urblue 2006-09-01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그러게요. 그런데 일흔 넘은 동생에게 권력이양이라니, 역시 독재국가인가 했더랍니다.

주드님, 저는 그 대리체험의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하는 듯 합니다. 내가 가보거나 말거나. 실상 제가 직접 간다고 해도 남들이 전해주는만큼 잘 볼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지만 (워낙에 여행을 안 다닙니다, 제가. --;), 그럼에도 여행기는 영 땡기지를 않아요. 그래도 이 책은 괜찮았습니다만, 과연 이런 여행기를 또 만날까 싶네요. ^^

나무님, 저만 그런게 아니군요. ㅎㅎ 여행지와 현지인들을 신기하게(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바라보는게 저는 영 불편합니다. 어딜 가든 그곳에 사는 것처럼 다소 심드렁하게 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