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제목에 '신혼여행'이라고 넣으려니 좀 낯간지럽기도 합니다만, 이왕 깨가 쏟아지는 신혼이라고 만방에 알린 거, 끝까지 밀고 나가렵니다. 히힛.

결혼식에 와 주신 분들 모두 감사드려요.
옷 갖춰 입고 식 진행 설명 듣느라 바빠서 찾아주신 분들 제대로 뵙지도 못했습니다.
안경도 렌즈도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거의 알아보지 못하기도 했습니다만,
따우님과 바람구두님은 사진으로 익숙해서인지 곁눈질로 봐도 척 알겠더군요.
아마 두 분은 다음에 맨 얼굴의 절 보면 놀라실지도. 
첫 만남인데 화장한, 나름대로의 이쁜 얼굴을 보여드렸으니 다음에 뵐 일이 걱정입니다요. -_-;

아무튼,
같이 산지 7개월이나 되었지만 둘이 따로 여행을 간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신혼여행이 맞는 셈이지요.
좌충우돌 자유배낭여행이라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만,
시간 날 때마다 생각나는대로 조금씩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온천이야기입니다. 



여기는 하코네의 '미카와야 료칸'입니다.
인터넷을 뒤지다가 발견한 곳인데, 테라스에 노천 온천이 딸린 방이 나름대로 저렴한 가격입니다.
입구가 저렇게 생겼구요, 오른쪽으로는 5층짜리 건물이, 왼쪽으로는 숲과 별채가 늘어서 있습니다.

저희가 묵은 방은 오른쪽 건물의 맨 아래층입니다.
그곳의 방 3개에만 노천 온천이 딸려 있어요.

 

본관에서 이런 복도로 연결이 되어 있는데, 이 복도가 120년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어찌나 맨질맨질한지, 슬리퍼 신고 걸어다니면 미끄러져요.

방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건 당연히 테라스지요.
뻥 뚫린 창 아래 온천탕과 의자 두 개와 등과 샤워기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별로 넓은 공간은 아니지만 꽤나 만족스럽습니다.







방과 테라스 사이 공간에 저렇게 세면대가 있구요, 세면대 안쪽이 화장실입니다.
테라스 바로 앞쪽으로는 다시 의자 두 개와 테이블과 냉장고가 놓여 있습니다.
여기에 나란히 앉아서 책을 읽었어요.

 




창으로 내다보면 이런 정원이 보입니다.
저 바깥쪽은 찻길이라 차 지나다니는 소리가 내내 들립니다.
여기 정원은 다 막혀 있어서 사람이 들어오지는 못해요.
그러니까 마음 푹 놓고 온천을 즐길 수 있겠죠.




온천에 들었던 날은 비가 왔는데 다음날 아침은 얼마나 맑은지 이렇게 깨끗한 하늘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식사는 가이세키 요리라고 하는데, 예쁘게 꾸민 조그마한 요리들이 계속 나옵니다.
배가 불러 더 못먹겠다 싶을 정도에요.
음식마다 사진을 찍긴 했는데, 지금은 편집하기 귀찮으니까 안 올릴랍니다.
게다가, 전날 사야님 부부와 만나 식사한 식당의 음식이 이쪽보다 더 훌륭했기 때문에 실은 그다지 감동도 아니었어요.
벌써 일본 정통 요리를 먹었기에 좀 거만해졌다고나 할까요. ㅎㅎ

요건 다음날 아침 식사입니다.
한꺼번에 차려주니까 사진찍기는 편하네요.



저녁 먹고 나서 이부자리를 펼쳐주시네요.
사진찍어도 되냐고 물었더니, 친절한 미치상, 깜짝 놀라서 "저를요?" 하고 묻습니다.




위쪽이 미치상인데, 한국 사람들이 제법 찾아오는지 '고맙습니다.' 정도의 한국말은 합니다.




아침에 여관 주위를 산책하다가 찍은 사진입니다. 저 길로 쭉 올라가면 별채가 있어요.
그쪽은 테라스가 아니라 마당에 노천탕이 있답니다.

애인은 이 노천 온천이 아주 마음에 들었답니다.
일년에 한 번 정도는 이런 곳을 찾아 쉬고 싶다고 했지만, 전 가차없이 안된다고 대답해줬습니다.
너무 비싸다구요.


두서없는 온천이야기, 여기서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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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06-10-30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좋은 것들을 볼땐 늘 미성년자를 따돌리는지 모르겠어요. 고조선의 건국이념은 홍익인간인데 말입니다. 여하튼 추천! ^^

조선인 2006-10-30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탄하며 사진을 보다가 보너스를 보곤 침까지 꿀꺽 삼켰습니다. 으흐흐흐

urblue 2006-10-30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눈 올 때 노천 온천, 그건 저도 해 보고 싶네요. 다음번엔 훗카이도로! 과연,이긴 합니다만. 흑흑.

말미잘님, 푸하하. 홍익인간,이라굽쇼! 아우, 한참 웃었어요.

urblue 2006-10-30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인님, 오마나! 부끄럽습니다. ( ..)

paviana 2006-10-30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너무너무 멋지세요.
결혼 축하드린다는 인사도 경황이 없어서 못 드렸네요.(__)
마지막 사진 참 멋지네요. 햇빛을 저렇게 잡아내시다니...
계속 생각날때마다 올려주세요.
참 사야님은 잘 계신거지요? ㅜ.ㅜ


플레져 2006-10-30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읍. 잘 봤다~~~~ 라고 외치고 싶어요 ㅎㅎ
하늘 사진 넘 멋져요! 멋지고 푸른 여행이었다는 게 확~ 티가 나요, 깨소금 세례 계속 부탁해요 ^^


날개 2006-10-30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저 베란다 온천 공간 너무 좋은데요? 저런데 가고파요...^^
근데, 마지막 사진은..... 보..본인? +.+

엔리꼬 2006-10-30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특이하게 일본으로 가셨군요.. 헤헤 저도 신혼여행을 5년전에 하코네로 갔던 기억이 납니다... 흐뭇하게 보고 있다가.. 마지막 사진에서 므흣... 켁켁

울보 2006-10-31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혼여행 다녀오셨군요,
즐겁게 보내셧네요,
저도 여행을 가고 싶어요,,,,
그런데 마지막 사진은 어찌 찍으셨을까,,

바람돌이 2006-10-31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 축하인사도 못했네요. 결혼 축하드려요. 내내 행복하세요. 두분!!! *^^*
보너스 사진 어머 부끄 부끄.... *^^*
근데 저런 온천 정말 저의 로망이랍니다. ㅠ.ㅠ

2006-10-31 08: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urblue 2006-10-31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비님, 고맙습니다. 햇빛을 잡으려고 애써서 잡은게 아니구요, 그냥 저렇게 비치더라구요. 전 그저 셔터만 눌렀을 뿐입니다. ^^
사야님은, 편안해 보이셨습니다.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서도 저희를 데리고 동네 한 바퀴 도시느라 힘드셨을거에요. 맛난 음식에 샴페인과 포도주까지 대접해주셔서 엄청 즐거웠지요. 사야님과의 만남도 따로 페이퍼 쓸 예정입니다.

플레져님, 헤헤. 플레져님 댁 만큼만 깨소금 뿌릴게요.
푸른 하늘은 사실 저기서 본 걸로 끝이었답니다. 내내 비가 오고 흐렸어요. 그치만 나름대로의 맛은 있더군요.

날개님, 한 번 다녀오셔요. 마지막 사진은 저랑 애인 맞지요. ('' );;

서림님, 와~ 하코네 다녀오셨군요. 저흰 하코네에서 1박만 했는데, 너무 짧더라구요. 탈것 기행과 야외조각숲 본 걸로 끝이었어요. 하코네미술관이랑 다른 미술관이랑 보고 싶은 곳이 많았는데. (므흣,이란 말을 이런 때 쓰는 거군요. ^^;;)

울보님, 네, 잘 다녀왔습니다. ^^ 마지막 사진이야 삼각대 놓고 타이머로 찍었지요. 삼각대를 가져가서도 별로 쓰지 않았는데, 하코네에서만 유용하게 사용했네요. 히힛.

바람돌이님, 고맙습니다. 아이, 그러시면 제가 부끄럽잖아요. 바람돌이님도 다녀오셔요. 아이들은 빼고 두 분이서만 오붓하게. ^^

**님, 일 년에 한 번은 여행을 하면 좋겠다 생각하지만 잘 될지는 모르겠어요. ^^ 도쿄에서 좀 익숙해질만하니까 돌아오는 날이더라구요. 곧 얘기 들려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비로그인 2006-10-31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사진에서 코피 퐈~~~~ ^^

비연 2006-10-31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넘 좋아보이세요^^

nada 2006-10-31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야님도 만나시고, 여기 인연이 보통 인연이 아니군요. 역시 느낌대로 단정한 분이세요, 얼블루님~ 다소곳한 새색시다워요.^^

urblue 2006-10-31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셔고양이님, 코..코피...-_-;; 드래곤볼의 거북이 할아버지가 생각나는군요.

비연님, 헷, 고맙습니다. ^^

꽃양배추님, 에엣~ 저, 단정한 느낌인가요? 흠.
사야님 뵈서 정말 좋았습니다. 서재 인연이 보통은 아닌가봅니다. ^^

로드무비 2006-10-31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야님과의 페이퍼 기대할게요.
날씨 최고 좋을 때 결혼하시고 여행 다녀오시고.......
마지막 컷은 어마나~~발그레.

Mephistopheles 2006-10-31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일 작은 사진에 제일 시선이 많이 가는 이유는...
제가 속물이라서 그럴지도 모릅니다..ㅋㅋㅋ
암튼 결혼 축하드립니다..^^

진/우맘 2006-10-31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사진의 사이즈를 늘려야 관람가인지 관람불가인지를 가늠합지요! ^^

urblue 2006-10-31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아니 뭘 발그레~십니까. 호호. 근데, 날씨 최고 좋을 때는 아니었다구요. 님의 무심함에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흑흑.

메피님, 뭐 속물이라기보다 인지상정이랄까... (앗, 제 입으로 이런 소리 하면 안 되는 걸까요? --; )

진/우맘님, 사이즈를 늘리면 정말 관람불가입지요! ^^

sooninara 2006-10-31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일본드라마나 만화 볼때마다 이런 온천 가보고 싶었어요.
결혼 축하 드리고요. 신혼 여행 사진도 즐겁게 보고 갑니다.
마지막 사진 정도야..신혼여행의 필수죠?ㅋㅋ

2006-10-31 1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클리오 2006-10-31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나도 신혼여행시절이 있었나싶어요. 가이드에게 끌려다녔다는 느낌이다보니 별로 피곤하지 않은 일정이었음에도, 피곤한 결혼식 끝에 아.. 제발 낮잠좀 자고 싶다..하는 생각만 계속 했다는...--; 음, 글고 미성년자 관람불가 사진, 좋아요... ^^

로드무비 2006-10-31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참, 이번주가 아니라 지난주에 하셨담서요?=3=3=3
(눈물이 앞을 가린다니 거짓부렁.)

merced 2006-10-31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라. 마지막 사진 없어졌네.... 좋았겠다 온천~ 가고싶다 온천~

urblue 2006-10-31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니님, 고맙습니다. 저희뿐만 아니라 다들 신혼여행에선 저런 사진 찍어오는거죠? ^^

**님, 그럴 수도 있죠,가 아니라 자주 그러지요 뭐. 저도 바쁠 땐 자주 그럽니다. ^^

클리오님, 저흰 결혼식 끝나고 나서 점심 잘 챙겨 먹고, 저녁에 잠도 푹 자고나서 여행길에 올랐어요. 많이 걸어 다녀서 피곤하니까 밤에 일찍 자게 되고, 여행지에서 아주 모범생같은 나날이었습니다. -_-;;

로드무비님, 힛, 눈치채셨어요?

merced, 이봐, 무슨 소리야, 드레스덴이랑 프라하에 더 가고 싶다고, 나는!

내이름은김삼순 2006-11-01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결혼 너무 축하드려요, 그리고 신혼여행 멋지네요!!
저는 아직 스물 셋의 처자라,, 마냥 부럽네요^^;;

urblue 2006-11-01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순님, 고맙습니다. 신혼여행도 좋지만 스물 셋의 나이도 좋은걸요. ^^
 

http://blog.naver.com/hiid98/70006971723 colle*t님 블로그에서 퍼왔습니다;;;

 

시선 집중! 지난달 1탄에 이어 이색문화탐방 2탄에서는 발칙한 상상력과 재미가 돋보이는 복합문화카페 6곳을
준비했다.

365일 날마다 다양한 퍼포먼스가 선보이고, 흥미로운 전시가 줄을 잇는다.
모래방이 있는 동양풍 라운지 카페에서 맨발로 춤을 추고, 풀장의 따뜻한 물에 족욕을 하며 피로를 푼다.
인디 밴드들의 공연과 전시는 인디 카페에서 해결한다.
지금부터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마음을 열고 '알아서' 즐기는 것뿐이다.

홍대 인근의 숨은 명소 '복합문화카페 2탄'이다.






무지개가 떠있는 간판을 지나 지하로 내려갔다.
은은한 조명 아래 맥주잔 부딪치는 소리, 유쾌한 웃음과 록음악의 기타 선율이 귀를 울린다.

이곳이 최근 홍대 놀이꾼들의 아지트로 급부상 중인 '안녕 바다'다.
기자가 안녕 바다를 처음 찾은 것도 무지개가 그려진 예쁜 간판에 막연한 호기심이 생겨서다.





안녕 바다라니, 이름 역시 범상치 않다. '바다'는 김승재 사장(31)이 카페 이름을 구상할 때 머리 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였다고 한다.
원래 이름은 '안녕 내 맘속의 바다'였는데 카페 이름치고는 너무 길어 큰 마음 먹고 줄인 거란다.

이곳은 복합카페 중에서도 드물게 '인디 카페'를 표방하면서 상업성에 밀려 실종돼버린 홍대 앞 인디 문화를
한 곳에서 즐길 수 있는 대안공간으로 사랑 받고 있다.





홍대 인근 라이브클럽에서 포크록 뮤지션으로 활약했던 김사장이 손가는대로 국내외 인디 음악을 틀어댄다.
주말에는 인디 밴드의 공연을 무료로 연다. 인디 작가들의 미술 전시도 마련한다.

인디 정신에 맞게 인테리어 역시 김사장이 독립적인 마인드로 완성시켰다.
미리 말해두는데 카페 내부 인테리어는 일정한 형식이 없다. 좋게 말하면 자유분방, 까놓고 말하면 중구난방이다.



벽돌과 노랑, 남색 벽이 어우러진 벽에는 델리스파이스 등의
공연 포스터, 주인장의 어릴 적 사진, 미술 엽서와 각종 플라워들이 어지럽게 붙어 있다.
자세히 보니 연습장에 대충 끄적거린 그림도 있다.
비뚤비뚤 붙어 있는 눈, 코, 입이 피카소 저리 가라다.

책상 위에 먼지 쌓인 장기판은 먼저 집는 사람이 임자다.
분위기가 제 각각인 투박한 나무 탁자와 의자는 주인장이
솜씨를 발휘해 만들었다.

카페 안은 세련이나 럭셔리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참으로
묘한 건 보면 볼수록, 오면 올수록 이런 공간이 편하고 익숙하게 다가온다는 거다.
들을 때마다 새로운 음악과 3,000원으로 저렴한 맥주 값도
손님을 모은다. 그래서인지 주말 저녁에는 빈 자리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끝으로 안녕 바다에 왔을 때 반드시 둘러봐야 할 곳이 있다. 화장실이다.



* 화장실 입구를 열면 나타나는 계단. 계단을 다 오르면 화장실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화장실 입구로 추정되는 철문을 열면 가파른 계단이 버티고 있다.
보라색과 푸른색이 번갈아 칠해진 계단을 올라가자 꼭대기에 세면대와 변기가 나타났다. 다소 황당한 구조다.
한술 더 떠 주변은 낙서천국이다. 오픈 당시 주인장이 낙서를 적극 권장했다고 하니, 볼일 보랴 낙서 보랴 심심할
틈이 없다.


남자 변기는 상큼한 물방울 무늬 커튼으로 가려져 있디. 바로 옆에 붙은 여자 화장실은 다행히도 별도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계단 위에 개마고원처럼 자리한 생소한 모습의 화장실이지만, 손님들은 알아서 예의를 갖춘다.
간혹 화장실 색깔이 예쁘다며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다.

안녕 바다가 인디 문화 집합소로 자리잡으면서
대학생, 홍대 문화를 사랑하는 직장인은 물론,
젊은 예술가들과 문화 종사자들이 단골이 됐다.


* 김승재 사장


김사장은 국내 인디 문화를 안녕 바다를 통해 신나게 이어가고 있다. 얼터너티브 컨설턴트인 셈이다.

다른 카페에서는 귀찮다고 거절하는 각종 동호회 모임이나 음악 감상을 위한 장소로 카페를 대여해주기도 한다.
'서울 뉴미디어 페스티벌',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 등 각종 문화예술행사에서는 독창적인 행사 공간으로 활용됐다.

붕어빵식 카페에 신물이 났다면 인디 문화가 살아 숨쉬는 홍대 앞 복합문화카페 '안녕 바다'에 놀러가자.










복합문화공간 레이디 피쉬 팝홀(LadyFish PopHall)은 365일 새롭게 태어난다.
공연, 문학, 영화, 파티가 한 솥에 비벼진 '아방가르드(avant-garde) 퍼포먼스 카페'로 날마다 다양한 놀거리로
넘쳐난다.



먼저 레이디 피쉬의 변화무쌍한 프로그램을 소개하자면,
월요일 : 일반인 누구나 참여해 무대에서 자신의 끼를 발산하는 'Free Music Stage',
화요일 : 인디 뮤지션들이 즉흥연주를 펼치는 후위의 밤잠(Jam),
목요일 : 시낭송과 함께 하는 문학의 밤,
금요일 : 인디 밴드들의 합동 공연이 있는 인디 쥬이쌍스,
토요일 : 인디 밴드가 단독 콘서트를 여는 인트로스펙티브 등으로 꾸며져 있다.

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일렉트로닉 파티와 아마추어 단편영화제 등이 열린다.
조만간 공연 외에 유머 넘치는 콩트 프로그램도 넣을 계획이라니 레이디 피쉬의 욕심은 끝이 없다.


* 무대 뒤에는 자개가, 자투리 벽에는 꽃을 모태로 한 기하학적인 무늬가 화려하게 피어 있다.



* 벽을 자개로 꾸민 좌식공간이 무척 고풍스러우면서
  안락해 보인다 .




금상첨화로 맥주 값이 3,000원으로 매우 저렴하고, 첫인상도 쿨하다.
분홍과 회색으로 소용돌이치는 꽃무늬 벽은 취할 만큼 몽환적이다. 인테리어는 바와 라이브클럽, 카페를 혼합했는데 라이브를 하는 무대는 자개로 우아하게 수놓아져 있다.
술을 즐기는 바와 테이블은 느낌이 편한 목재다. 좌식 카페처럼 신발을 벗고 양탄자나 작은 평상에 앉는 공간도 있다. 벽에는 신화에나 나올 법한 붉은 꽃이 만개해 있다.




지금껏 몇 명이나 무대에 올라봤냐는 질문에 잠시 생각에 젖는 한받 매니저.
잠시 후 "레이디 피쉬가 문을 연 게 2004년 12월이니 400여명 정도요?"라고 말한다. 대단한 숫자다.
최근 돈 되는 문화만 기형적으로 발전한 홍대 거리에 레이디 피쉬는 홍대꾼들의 문화적인 갈증을 채워주고 있었다.



레이디 피쉬의 사장 원지연씨는 동명 인디 밴드 레이디 피쉬를 이끄는 여성 뮤지션이다. 홍대 문화를 사랑하는 그녀의 고집이 복합문화공간 레이디 피쉬를 만들어냈다.
지난해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에서는 인디 밴드들의 라이브 공연장으로 인기를 모았다.

사장과 마찬가지로 매니저 한받씨 역시 홍대 바닥에서 이름이 알려진 인디 뮤지션이다. 2003년부터 원맨밴드 '아마추어 증폭기'로 활동하며 크고 작은 음악 페스티벌에 참가했다.
무대에서는 가발과 치마를 입고 공연하는 엽기행각으로 악명이 높다.
넘치는 창작열로 이미 2장의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다.

* 한받 매니저


레이디 피쉬의 5월 역시 흥미진진한 시간들이 즐비하다.
매니저가 직접 꾸몄다는 황당 발랄한 홈페이지에 가면 사진과 함께 자세한 내용을 볼 수 있다.

카페에 혼자 가면 심심할 거라는 편견은 버리자. 매일 다양한 공연이 있는데다 한받 매니저가 유쾌한 말벗이 돼준다.








* 지베 전경. 족욕을 즐기는 풀장은 이곳의 트레이드 마크다.



* 침대인가, 소파인가? 보기만해도 편안해지는 다양한 분위기의 침대석.
동창회나 동아리 모임 등 단체 손님에게 인기다.



복합문화카페가 저마다 특별한 의미와 즐거움이 있겠지만, 지베는 홍대 놀이꾼들에게 더욱 그러하다.
2005년 8월 문을 연 지베는 홍대 터줏대감 고씨 3형제가 주인이다. 그 중 둘째인 고흥관씨(43)는 자타공인 홍대 클럽 문화의 산증인이자 공헌자다.



* 카페 입구에는 크리스털볼이 화려하게 돌아간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국내에 클럽 문화가 싹트기 시작한 90년대 초중반 홍대 언더그라운드신을 이끈 양대 산맥이 있었으니, 골수 클러버라면 이름만 들어도 무릎을 치는 '발전소'와 '명월관'이다.
발전소와 명월관은 당시 '좌전소, 우월관'으로 불리며 날고 긴다는 예술쟁이와 젊은이들을 끌어 모았다.



고흥관씨는 홍대 클럽 1세대로 명월관과 발전소를 만든 장본인이다.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클러버들의 기억 속에는 지울 수
없는 전설로 남아있다.

복합문화카페 지베는 매혹적인 분위기와 내용면에서 발전소의 업그레이드판을 보는 듯 하다.


원래 지베의 이름은 '불난 집'이었다.
3형제가 홍대에서

10년간 쌓아온 노하우와 상상력을 바탕으로, 불이 났던 2층 가정집에 공간별 맞춤 개조를 시도했다고 한다.



지베에는 가만히 앉아 있기에는 놓치기 아까운 놀거리와 쉴거리가 많다.
우선 입구에는 무도회장의 둥근 크리스털 볼이 휘황찬란하게 반짝인다.
매 순간 바뀌는 불빛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맛이 흥미롭다. 투명한 유리 막은 건물 전체를 감싸고 있어 마치 거대한 온실을 방불케 한다. 여름에는 바람이
통하게 정원의 유리를 거둬낸다고 한다.

1층은 풀장과 편한 소파석으로 꾸며져 있다. 넉넉한 공간에는 전시품이 놓이고 전문 클럽 DJ가 그루브한 일렉트로닉 음악을 튼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따뜻한 풀장에 발을 담그고 와인을 마셔보자.
하루의 피로가 말끔히 사라진다. 족욕을 끝내면 친절한 직원이 수건을 갖다 준다. 풀장 위로 살포시 솟은 구름 다리도 건너보자.

화장실도 압권이다. 생뚱 맞게 샤워실이 있다. 바빠서 씻지 못하고 나온 사람을 위한 배려란다. 족욕을 한 뒤 발을 헹궈도 된다. 화장실 옆 수건 보관함에는 항상 깨끗한 수건이 비치돼있다. 파우더룸에는 헤어드라이어와 로션이 있다.






나무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보자. 원색 휘장으로 멋을 부린 침대석에서 친구와 뒹굴거리며 수다를 떨기에
안성맞춤이다.
앞서 1탄에서 소개한 침대카페의 원조 '360알파'를 처음 만든 사람도 원래는 고흥관씨다.
고씨는 침대카페의 인기를 지베에서 재현시키고 있었다. 단체 손님도 걱정 없는 침대석은 매일 예약이 밀려있다.





맏형인 고흥제씨에게 지베의 콘셉트를 물었다. "파티와 전시, 홍대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문화 행사가 함께 하는
'집처럼 편한 공간'이 주제"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름도 지베(Zibe)로 지었단다. 그런데 간혹 깡기자처럼 자이브라고 잘못 발음하는 손님도 있다.

지베는 전시는 물론, 각종 문화행사의 장소 대여도 무료로 제공한다. 지난해에는 종합 책문화 축제인 '와우북 페스티벌'의 행사장으로 각광받았다.

고흥제씨는 이곳을 "문화적 교류와 풍족함이 있는 복합문화카페에서 한발 나아가 건강과 환경을 생각하는 '로하스(LOHAS::Lifestyles Of Health And Sustainability) 공간'으로 만들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얼마 전 3형제는 재오픈을 위해 터만 남은 명월관을 인수했다. 10년 전 그러했듯, 홍대스러운 마인드로 중무장한 3형제가
꾸려갈 공간이 홍대 놀이 문화의 새로운 산실이 되기를
은근히 기대해본다.








 





진한 향 냄새에 정신이 혼미하다. 어스름한 촛불 사이로 웅장한 기둥과 작은 연못이 보이고, 카펫이 깔린 모래방에 드러누워 물담배를 피우는 사치도 부려 본다.
일상의 속박을 벗고 맨발로 춤을 추는 곳, 복합문화카페 '나비도 꽃이었다. 꽃을 떠나기 전에는(이하 나비)'.

동양적인 사상과 춤이 복합된 '나비'는 인도 타지마할을 축소한 듯한 인테리어로 입 소문을 타며 매스컴에 자주 소개됐다. 요즘은 시도 때도 없이 붐비는 게 단점 아닌 단점. 나비는 세간에 알려진 인도풍 라운지 카페라기 보다는 '동양풍 라운지 카페'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전체적인 느낌은 타지마할이나 인도의 석굴사원을 닮았지만,
자세히 보면 우리 것과 남의 것을 교묘히 섞어놨다. 카페에 들어갈 때에는 신발을 벗어야 한다. 반상 위에는 한국의 촛대가 불을 밝힌다.
자투리 공간에는 국적을 알 수 없는 동양의 악기들이 놓여 있다.
백자로 만든 찻잔에 차를 마시고, 천장에는 에스닉한 중동풍 전등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1,5톤짜리 트럭으로 고운 모래를 퍼왔다는 모래방에는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튀어나온 듯한 천막과 카펫이 고풍스럽다.
그 옆에는 그물침대인 해먹이 흔들린다. 과일향이 나는 터키 물담배는 길다란 파이프가 인상적이다.



* 모래방 전경. 카펫 아래 모래가 깔려 있어 푹신한 게 색다르다.
발가락 사이에 모래가 끼는 것만 빼면 말이다.




카페와 어울리게 주인장 역시 느낌이 기묘하다. 그는 홍대 클럽에서 10년간 테크노 음악을 전문으로 튼 DJ로 본명보다 '비눌'이라는 예명으로 잘 알려져 있다. 평생 모은 재산을 털어 차린 게 이곳 나비라고 한다.

"요즘 편하고 넓은 휴식 공간에 세련된 음악이 흐르는 라운지 카페가 유행인데, 사장님은 라운지가 뭐라고 생각하나요?" 깡기자가 사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라운지? 그 딴 게 별건가요? 농약 치지 않은 풀 많이 먹고, 자기 입에 들어갈 거 자연에서 키워 자급자족하던
우리 선조들의 삶이 웰빙이듯, 라운지도 알고 보면 조상들이 예부터 즐겼던 문화에요." 이건 또 웬 궤변인가?

"시원하게 탁 트인 산세를 배경으로 오두막이나 정자 위에 앉아 풍월 읊고, 폭포 소리 들으며 느긋하게 술 마시고…
그런 게 곧 라운지 문화요, 라운지 카페 아니겠어요?" 처음엔 수상했는데 듣고 보니 제법 설득력이 있다.





나비의 주술적인 분위기를 완성하는데 음악은 큰 역할을 한다.
전문 클럽 DJ 4명이 나른한 인도의 전통음악, 민속적인 제3세계 월드 뮤직, 그루브한 라운지, 일렉트로닉과 하우스
음악을 튼다.

시끄러운 음악에 맞춰 북을 치는 잘생긴 사나이가 있어 말을 걸었다.
나비에 이틀에 한번 꼴로 들른다는 외국어대학교 3학년생 우시오 마사카씨였다. 얼마 전 구입했다는 악기를 다소 두서없이 치고 있었는데, 주변인들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역시나 나비의 분위기는 무척 자유롭다.

흥에 겨우면 자리에서 일어나 연못 주위를 돌며 춤을 추는 재미도 놓치지 말자.
단, 맨발을 헛디디면 물에 빠지는 낭패를 볼 수 있으니 주의. 파티는 한 달에 한 두 번 주말 밤에 열린다.
누구나 어울려 북치고 장구치며 춤추고 노는 시간이다. 파티 입장료는 없다.









이번에 깡기자가 탐험한 곳은 아틀리에 같은 분위기의 복합문화카페 '로베르네 집(chez robert)'이다.
입구에 쓰여진 '아티스트 바'라는 간판이 색다르다. 무료 전시를 주로 하는 복합문화카페인데 홍대 앞 젊은 미술인
사이에서 꽤 알려진 곳이다.

아티스트 바라는 이름처럼 조소과를 졸업한 두 명의 동갑내기 친구 오윤주(30), 허소정씨(30)가 주인장이다.
명성(?)에 비해 공간은 대단히 아담하다. 카페 이름은 프랑스 파리의 예술가들이 집단으로 모여 작업실 겸 무료
전시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 '로베르네 집'에서 그대로 따왔다고 한다.



프랑스의 로베르네 집은 유럽 불법 점거 아틀리에의 대표격이다. 1999년 가난한 미술가들이 비어있는 정부 건물을 무단
점거해 작업실로 쓰면서 로베르네의 역사가 시작됐다.

이후 도심 한복판의 버려진 공간은 가난한 예술가들에 의해
예술이 숨쉬는 문화적인 공간으로 재탄생 했다.





"유쾌한 파리 무법자들의 아틀리에를 서울 홍대에 옮겨 놓고 싶었다"는 게 오윤주씨의 설명.
2003년 7월 문을 연 8평 남짓한 공간은 작업실 겸 예술가들의 전시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또 매년 빠지지 않고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 등의 행사장으로 쓰이고 있다.

서너 명의 손님만으로 꽉 차 보이는 카페에서는 놀랍게도 전시 외에 매달 소규모 공연이 열리고 있다. 전시는 한달 단위로 주제가 바뀐다. 회화 작품을 비롯해 사진, 영상, 설치 미술 등 성격에는 제한이 없다. 단지 만든 이의 혼이 깃들어 있으면 오케이. 공연의 경우 가야금이나 통기타 공연 등 어쿠스틱한 감성의 미니 콘서트로 잔잔한 감동을 준다.

허소정씨에게 지금까지의 전시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전시를 묻자 대뜸 "음…저희들의 개인전이요."라고 말하며
깔깔거리고 웃는다.



깡기자가 찾았을 때 마침 '불나방스타쏘세지크럽'이라는 미술전시가 한창이었다.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을 풍자한 제목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불나방~'은 조문기 작가의 <아날로그 드로잉전>으로 성(性)을 주제로 그린 만화적 기법의
작품들은 완성도 보다 자유로운 사고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다른 복합문화카페와 마찬가지로 로베르네
역시 주인의 손맛이 구석구석 배어 있다.
간판 한쪽에는 보라색 바탕에 빨간색 구두가, 반대편에는 여자 얼굴이 그려져 있는데 사장의 공동 작품이란다.

구두가 그려진 간판 때문에 간혹 구둣방으로 오인하는 손님도 있다.



카페 안은 흰색 타일로 덮여 있어 목욕탕을 방불케 한다. 인수 전 건축 설계 사무소로 쓰였다는데 이전 주인의 사고도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테이블도 흰색 타일을 붙여 제작했다.

"알고 보면 혼자 와도 부담 없는 아늑한 곳인데, 처음 온 사람 중에는 문을 열었을 때 보이는 흰색 타일에 놀라 그대로 나가버리는 경우도 있어요." 오윤주씨가 말한다.
이런 반응과 대조적으로 깨트리지만 않으면 오히려 하얀 타일이 청소하기에 편하고 전시했을 때 작품이 살아 보이지 않느냐는 게 단골들의 주장.






흰색에 반해 음료를 주문하는 바와 의자, 입구로 통하는 좁다란 계단은 빨간색으로 통일해 포인트를 줬다.
이 모든 인테리어는 주인장의 자유로운 손끝에서 탄생됐다. 바 뒤의 선반에는 양주와 칵테일 원료, 이국적인 분위기의 외국 담배갑, 러시아 인형 등이 진열돼 있는데 생전 청소를 하지 않아 보이는 게 수더분한 사장의 취향이리라.

로베르네 집은 항상 사람들로 활기차다.
작고 소박한 공간이지만 삶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문화공간으로 사랑 받고 있다는 증거다.








투명한 물을 닮은 블루톤의 라운지 카페에는 감각적인 하우스 음악이 흐른다.
전시와 파티가 있는 복합라운지카페 리퀴드. 넘치는 감성으로 2004년 6월 오픈 이후 젊은이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리퀴드는 다른 복합문화카페에 비해 초행길에 찾아 가기가 무척 힘들다. 3.5층에 위치한 애매한 조건 탓에 바로
코앞에 두고 헤매기 쉽다. 건물 외부에만 카페 이름이 써진 파란색 간판이 달려 있을 뿐, 건물 내부에는 대체 몇 층
어디에 붙어 있는지 작은 이정표 조차 없다.


* 너무 앙증맞아 그다지 실용성이 없어 보이는 의자. 하지만 모양은 예쁘다. 오른쪽 사진은 바 전경



그렇게 어렵게 발견한 카페 문을 열고 들어 서면, 예상치 못한 세상이 펼쳐진다.
깊고 푸른 바다가 연상되는 초록색 공간이 눈 앞에 몰려 온다.
공중에 가지런히 매달린 동그란 장신구는 바람이 불 때마다 하늘하늘 춤을 추고, 흥미로운 모양의 가구는 유쾌하다. 신발을 벗고 마루에 올라가 양반 다리를 하고 앉는 좌식 공간에는 원색의 꽃들이 피어있다.
구석에 박힌 DJ박스의 턴테이블에서는 기분 좋은 라운지 음악이 끊임없이 흘러 나온다.




리퀴드의 사장 양성민씨(32)는 홍대 테크노 클럽에서 10년간 음악을 틀었던 뮤지션이다.
도회적인 카페이면서 사람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것도 홍대 언더그라운드의 물을 오랫동안 먹은 이유에서다.

사장은 바에서 칵테일을 만들면서 직접 음악을 튼다. 운이 좋으면 사장이 리믹스한 음반을 들을 수도 있다.
한 달에 한번씩 술과 음악이 있는 게릴라 파티를 열기도 한다. 리퀴드는 홍대 미대 출신들이 모여 만든 칠(chill)전시회 등을 연례 행사로 기획한다.
하지만 꼭 미술을 공부하지 않은 일반인이라도 전시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사장은 귀뜸한다.





리퀴드의 인테리어는 사장의 기분에 따라 조금씩 변한다.
기회가 될 때마다 이키아(IKEA) 등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한 외국 대형가구할인매장에서 가구를 주문하기도 하고,
내부 배치나 장식을 바꾸기도 한다.

"물은 웬만해서는 적이 없죠. 어떤 물질과도 잘 융화가 되니까요. 그렇게 편하고 자연친화적인 공간을 만들고 싶어
이름을 리퀴드라고 지었어요." 사장의 말처럼 리퀴드는 누구나 찾아와 부담 없이 쉬어갈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임에는 틀림없다.







홍대를 중심으로 활동한 예술가 출신 사장이 대부분인 복합문화카페는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새로운 문화는
아니다.

이미 80년대 후반 미미하나마 전시, 공연, 춤, 퍼포먼스가 혼합된 복합문화공간이 존재했다.
홍대 미대 안상수 교수가 운영하던 전자카페 '일렉트릭', 설치미술가 최정화씨가 만든 '올로올로', 작가 이불의 동생이 주인인 신촌 '플라스틱 서전' 등이다.




이후 90년대에는 작업실 형태의 바(bar)로 댄스 클럽의 원형이 된 발전소, 2000년대부터는 열반화, 몽환 등이 클럽과 공연, 영화, 파티 문화를 주도하는 대안공안으로 각광받았다.




복합문화카페는 이렇듯 훌륭한 홍대 문화의 양분을 이어받았다.
수많은 아이콘들이 모여 있는 홍대에서 복합문화카페가 진정 놀이꾼들에게 일상의 권태로움을 날려버리고 젊음의 의미를 일깨워주는 각성제로 자리잡기를 기대해본다. 더 나아가 가난한 아티스트에게는 용기와 희망을 주는 동반자이길 바란다.

 

실험적인 놀이공간이자 휴식 공간으로 문화를 즐기고 삶을 즐기는 곳, 상업적인 의도로 문화의 질이 하향 조정되는 게 아닌, 창조자의 개성에 따라 상향 조정되는 곳. 한국의 음식 비빔밥처럼 신나는 어울림과 잡탕의 미학이 존재하는 홍대 복합문화카페는 젊음의 해방구다.

<2006년 5월 굿타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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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6-10-30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힛. 보고 할라고 했죠. 근데 아직 여유가 없어요. 쫌만 기둘려봐요.
 

저희끼리는 귀찮아서 다 생략해버린 결과지만,

'안정되고 침착한 결혼식'이라고 불러주시니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주위에서는, 부모님, 친척들, 친구들 모두, 조금씩 아쉬워합니다.

한번뿐인 결혼식, 운운이죠.

하지만 애인과 저는 다 만족스러우니까 상관없어요.

말씀하신 대로, 신혼여행 가서 사진 많이 찍어오겠습니다. 기대해주세요. ^^

 

책 고맙습니다. 신혼여행지에서 읽을 거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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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6-10-19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식 하셨나 봐요^^ 축하합니다

urblue 2006-10-19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일요일입니다. 고맙습니다. ^^

2006-10-19 16: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urblue 2006-10-19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받으셨군요. 맞습니다. 꼭 신부대기실에 오셔서 저한테 말 걸어주셔야 합니다. 네? ^^

클리오 2006-10-19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맛. 못가겠지만,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훌륭한 두 분이 만나셨으니 꼭 좋은 가정 이루실거예요..

2006-10-19 18: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0-19 1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urblue 2006-10-20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리오님, 고맙습니다. ^^

**님, 결혼 사진 안 찍으신 건가요? 아님 사진만 안 드린건가요? ^^
저 책과 '남쪽으로 튀어'를 가지고 갈 겁니다. 애인과 제가 둘 다 보지 않았고 보고 싶어 하는 책이니까 활용도가 높다는 애인의 주장이에요. 다 보면 바꿔 보면 된다고. 그치만 아무리 그래도 신혼여행인데, 각자 책 두 권씩을 읽고 오는게 가능한지 모르겠어요. ㅋㅋ
저도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 ^^

**님, 뭘 보내주시려구요? ^^



하늘바람 2006-10-20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님

이쁜하루 2006-10-20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신혼여행 재밌고 즐겁게 잘 다녀오세요~~

urblue 2006-10-20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 이쁜하루님, 고맙습니다. 잘 다녀와서 인사드릴게요. ^^

2006-10-23 0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연 2006-10-20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urblue 2006-10-21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를 어째요님, 어쩌긴요, 지금 축하해주셨으니까 됐죠. ^^

잠옷 바람님, 우와~ 미인이시잖아요. @.@ 눈이 마음에 들어요.
그렇지만 길에서 알아보기는 좀... -_- 아, 역시 아쉬워~

비연님, 고맙습니다. ^^

perky 2006-10-22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 축하드려요. 예쁘고 알콩달콩 행복하게 잘 사시길 바래요. ^^

2006-10-28 07: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urblue 2006-10-28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헉... 저 신혼여행 다녀왔어요, 어제. 결혼식은 지난 주 일요일이었구요. -_-;;;
아무튼, 고맙습니다.

2006-10-31 1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출처 : 가을산 > 대통령의 한미 FTA 공부의 이론적 편식

제 목 대통령의 한미 FTA 공부의 이론적 편식
저 자 이근
출 처 미래전략연구원
발간일 2006/08/14
출간형태 보고서
종 류
 
목 차
1. 한미 FTA를 비판하는 이론은 종속이론밖에 없나?
  [전략무역정책 이론(Theory of Strategic Trade Policy)]
  [경제지리학(Economic Geography)과 신성장 이론(New Growth Theory)]
  [국가주도형 경제개발 모델]
  [이들 이론이 한미 FTA에 비판적인 이유]
2. 종속이론이 틀린 것이 한미 FTA 추진을 정당화해 주나?
3.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비주류이론이 반드시 틀린 이론인가?
4. 제3의 모델: 일본 모델 + 싱가폴 모델이 무엇인가?
5. 결론
요 약
노대통령의 언급을 통해서 나타난 현 정부의 한미 FTA 정당화 논리는 상당한 이론적 편식과 잘못된 논리 및 이해에 근거하고 있다. 사실을 정확하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공부의 편식을 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사회현상은 서로 다른 부문과 영역의 것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복잡한 상호연결관계를 파악하는 학제적 훈련이 안 되어 있으면 막연하게 전문가 집단에 의존하게 된다. 그것이 한미 FTA를 추진하는 참여정부가 걸려든 덫이라고 보인다.
본문내용
참여 정부의 한미 FTA 추진은 정말 이론적으로 면밀한 검토와 탄탄한 기반에서 실행되고 있는 것인가? 참여정부의 최근 국제정치경제 상황에 대한 사실적 이해가 정확한 것인가? 며칠 전 노무현 대통령이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문제를 논하는 자리에서 한미 FTA 비판 세력을 역으로 비판하며 대통령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한미 FTA (일반론으로서의 FTA가 아닌)에 대한 철학과 이론적 이해, 사실관계에 대한 해석 등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밝혔다. 이는 위의 질문에 대한 답을 보다 이론적, 분석적으로 할 수 있는 몇 가지의 자료, 혹은 단서들을 제공한 것이다. 이 글은 이러한 자료와 단서를 이용하여 서두에 제기한 질문에 답하면서 대통령의 한미 FTA에 대한 인식의 오류를 정리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하에서는 한미 FTA에 대한 대통령의 이론적, 논리적 오류, 그리고 공부의 편식에 대하여 몇 가지 지적하고자 한다.


1. 한미 FTA를 비판하는 이론은 종속이론밖에 없나?

대통령은 진보세력도 변해야 한다며 한미 FTA 반대세력은 시대착오적인 (대통령 스스로도 공부해 보았던) 종속이론을 가지고 한미 FTA를 반대하는 것으로 언급하였다. 이 언급은 잘못하면 한미 FTA를 비판하는 이론이 종속이론밖에 없다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고, 또 한미 FTA 반대세력은 모두 종속이론밖에 모르는 진보세력으로 오해될 수 있다. 그러나 한미 FTA를 반대, 혹은 비판하는 이론은 소위 진보적인 종속이론 이외에도 보수적인 경제이론이 무수히 많이 있다. 필자의 한미 FTA비판도 종속이론이 아닌 이러한 이론에 근거하고 있다.

[전략무역정책 이론(Theory of Strategic Trade Policy)]

우선, 이미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 시절 대외무역정책의 근간이 되었던 "전략무역정책이론"이 있다. 당시 공공연하게 "관리무역(managed trade)"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클린턴 정부의 대외무역정책은 NEC(National Economic Council)의 의장이었던 로라 타이슨(Laura Tyson)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교수가 중심이 되어 전개한 전략무역정책이 그 이론적 배경이 되고 있다. 요즈음 뉴욕 타임즈의 칼럼니스트로도 유명한 천재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Paul Krugman)이 한 때 열렬히 주장하고 다니다 우여곡절 끝에 등을 돌린 이론이 바로 전략무역정책 이론이다. 이 이론은 당시 잘 나가던 일본의 경제적 성공(economic performance)을 설명하기 위하여 개발된 것인데 산업 경쟁력을 키우기 위하여 자유무역이 아닌 보호무역의 유용성과 국가의 전략적 개입을 정당화하는 측면이 있다. 한미 FTA와 관련된 내용은 다른 이론과 함께 뒤에 간략히 소개하기로 한다.

[경제지리학(Economic Geography)과 신성장 이론(New Growth Theory)]

한미 FTA를 반대 혹은 비판하는 근거를 찾을 수 있는 두 번째 이론은 소위 말하는 경제지리학(economic geography)이다. 이는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y)이라는 논리로 자유무역의 기초인 비교우위론(comparative advantage)의 신성함을 깨는 이론으로서 잘 알려져 있다. 앞에서 언급한 폴 크루그먼이 자기가 여태껏 공부한 경제학이 나중에 알고 보니 "경제지리학"이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던 바로 그 학문이다. 경제지리학과 더불어 순수한 자유시장경제 이론을 비판하는 또 다른 경제이론이 소위 신성장이론(New Growth Theory, or Endogenous Growth Theory)이다. 이는 참여정부가 좋아하는 혁신(innovation)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론으로서 내생적 혁신이 성장을 이끌어 내는 것을 설명한다.

[국가주도형 경제개발 모델]

한미 FTA 비판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는 또 다른 이론은 대통령이 비판한 일본식 모델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이른바 70년대와 80년대를 풍미한 국가주도형 경제개발이론으로서 후발 국가(late developmental state)들은 자유시장 경제(Laissez Faire Economy)보다는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는 국가주도형 경제개발로 선발 국가를 따라잡는다는 내용이다. 이와 관련한 이론으로 잘 알려져 있는 학자가 독일의 Gerschenkron, 일본의 경제성장을 설명한 Chalmers Johnson(일본 통산성 MITI를 가지고 일본의 경제성장을 설명한 것으로 유명한 학자) 등이다.

한편 정치경제학에서는 이미 통설과 같이 알려져 있지만 주류 경제학에서는 경제사를 많이 다루지 않기 때문에 간과되는 내용이 있다. 그것은 국제정치경제사를 보면 후발 국가는 대부분 일정 기간의 보호무역을 통하여 자국의 주요한 산업의 경쟁력을 키운 다음 시장을 개방하는 패턴을 보였다는 것이다.(이는 전략무역정책, 신성장이론 등과 상당부분 부합한다). 영국에 대하여 후발주자였던 프랑스, 독일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FTA를 하려고 하는 미국도 보호무역을 통하여 19세기 말 패권국가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국제경제사에서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이는 개방을 통하여 경쟁력이 생겨나는 것인지, 경쟁력이 생겨난 후에 개방을 하는 것인지에 대한 순서(sequence)의 문제를 제기한다.

[이들 이론이 한미 FTA에 비판적인 이유]

전략무역정책이론을 위시하여 순수 자유시장경제 이론을 비판하는 경제이론 등이 한미 FTA를 비판하는 근거로 작동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한 국가의 주요 산업, 특히 서비스 산업을 포함한 미래의 성장동력은 소위 말하는 규모의 경제(scale economy)를 가진 산업들이다(하이테크 산업뿐만이 아니라 금융, 서비스 산업도 이에 해당된다). 이러한 규모의 경제를 가진 산업들이 경쟁력을 갖게 되는 패턴은 다음과 같다. 일단 자국 산업에 대한 보호된 큰 시장을 확보하고, 여기서 시행착오를 거치지만 남들보다 먼저 다량생산의 학습효과(learning by doing)를 거쳐 다른 국가보다 먼저 경쟁력을 갖게 되고, 그런 다음 세계 시장에서 이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다. 여기서 상당히 많은 경우 국가의 이런 저런 형태의 지원이 들어간다. 산업정책이나 보조금의 형태로 지원을 했거나, 자국시장을 보호하는 보호무역으로 지원을 했거나, 닫혀 있는 다른 국가의 시장을 열어 초기에 큰 시장을 확보하는 지원을 하거나, 아니면 다양한 국내의 민-관-학 혁신체제를 만드는데 일조를 하거나 하는 것이 그러한 예이다. (시장 조건이 자연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논리에서 보았을 때 한국은 미국보다는 우선 자국시장의 보호와 한국보다 경쟁력이 없는 제 3국의 시장에서 learning by doing의 효과로 경쟁력을 제고하고, 그 이후 세계시장에서 선진국과 경쟁하여야 하는데, 한미 FTA는 오히려 순서가 거꾸로 가는 전략이다. 역으로 미국의 전략에 이용당하는 순서이다.

미국이 캐나다, 멕시코와 NAFTA를 체결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가 미국의 미래성장 동력인 하이테크 산업(규모의 경제를 가지고 있음)으로 하여금 전략무역을 하도록 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이미 나와 있다. 즉 초기 보호된 혹은 유리한 일정규모의 시장 (미국 + 캐나다 + 멕시코)을 확보하도록 하여 경쟁력을 제고하고, 그를 통해 세계시장에서의 경쟁을 유리하게 하기 위해서 다양한 국내정치적인 로비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그것이다. 이러한 규모의 경제를 가진 산업들은 비교우위의 이론과 달리 소위 산업내 무역(intra-industry trade)을 하게 된다. 즉 미국이 프랑스에 자동차를 팔고 프랑스가 미국에 포도주를 파는 것이 아니라 미국과 프랑스 모두 서로의 시장에서 자동차를 파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경제지리학의 이론에 의하면 경쟁력이 꼭 자유무역을 통한 경쟁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우연적인 요인에 의해서 발생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우연적으로 발생한 경쟁력이 경로의존적(path-dependency)으로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재생하게 된다. 실리콘 밸리의 경쟁력은 비교우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우연적인 요인에 의해서 나온 것이며, 한번 생겨난 경쟁력 때문에 이곳으로 반도체 및 하이테크 산업이 모이고, 따라서 이들 산업의 경로 의존성이 생겨난다. 이는 자유시장(Laissez Faire Economy)의 원칙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경로의존성이라는 개념과 연관되어 함께 중요하게 등장하는 개념이 표준(standard)이라는 개념이다. 경제에 있어서 표준의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예가 IBM PC와 Apple 컴퓨터 간의 경쟁과 비디오 미디어 시장에서 VHS와 Beta Max간의 경쟁, 그리고 타자기의 자판 등이다. IBM PC 보다 기술적으로 훨씬 우월한 Apple 컴퓨터(맥킨토시 컴퓨터)가 빌 게이츠의 MS 운영체계를 깔은 IBM PC의 표준에 밀리는 바람에 경쟁에서 밀려나는 사건이 그 하나이고, 마찬가지로 기술적으로 우월한 Sony의 Beta Max라는 비디오 포맷이 VHS의 표준에 밀리는 바람에 비디오 미디어 시장에서 자취를 감춘 것이 다른 예이다. 타자기 자판의 경우에는 현재의 영어 타자기의 자판 보다 훨씬 효율적인 타자기 자판이 있었으나 타자 속도가 너무 빨라지면 타자기가 엉켜서 (자판을 두드리면 톡 튀어 나오는 손가락 같은 부분이 엉킴) 좀 효율을 떨어뜨린 순서의 자판이 현재의 영어 자판이다. 그러나 이미 이러한 자판이 하나의 표준이 되어 버려서 엉킴의 염려가 없는 컴퓨터의 시대가 되어도 자판의 순서를 바꾸지 못하는 경로의존성이 생겼다.

이러한 표준과 경로 의존성의 의미는 한번 표준 경쟁에서 지면 소위 표준의 네트워크 효과(network externality)가 생겨서 새로운 시장 진입자가 들어가서 공정하게 경쟁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토이 스토리 등의 만화영화로 재기한 과거 Apple의 스티븐 잡스가 최근 ipod라는 mp3 플레이어로 부활하였으나 본래의 컴퓨터 시장에서는 아직 크게 시장점유율을 높이지 못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리고 신자유주의와 함께 퍼지는 소위 global standard라는 것도 문자 그대로 표준(standard)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므로 이러한 global standard를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을 하여야 한다. 또한 이러한 global standard는 이른바 IMF-Wall Street-Treasury Complex라는 워싱턴에서 만들어진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로 불렸던 점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즉 신자유주의 그로벌 스탠더드가 사실은 미국적 스탠더드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사실 유럽, 일본 등 세계를 비교정치경제학(comparative political economy)의 시각에서 보면 소위 신자유주의 스탠더드가 일반화된 글로벌 스탠더드가 아님을 곧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적 글로벌 스탠더드를 일반화된 스탠더드로 인식하여 잘못 성급히 받아들이면 경로의존성 때문에 세계경제의 흐름이 또 다시 변화하게 될 때 빨리 적응하지 못하는 경직성을 갖게 된다. 한미 FTA는 산업 및 제도의 미국 표준을 한국에 이식하여 이의 경로 의존성을 만들게 된다. 당연히 여기서는 표준을 장악한 미국이 유리한 게임을 할 수 밖에 없다.

위의 이론들을 한국의 입장에서 응용하고, 전략을 세운다면, 한국이 추진할 FTA 상대의 순서는 당연히 미국이 상당히 후순위로 밀려야 한다. 전략무역이론, 경제지리, 신성장이론 등이 FTA에 주는 시사점은 자국의 미래성장동력을 일정기간 비교적 보호된 자국시장 혹은 지역시장(regional market)에서 Learning By Doing을 통하여 성장시켜 경쟁력을 확보하면서 지역시장에서 자국 산업의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이와 동시에 자국의 표준을 깔아 경로의존성을 만드는 전략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자동차 산업은 표준부분을 제외하고는 이러한 패턴을 따른 전형적이 예라고 생각된다. 에너지 절약형, 디자인 중심형, 브랜드 공략형 일본 자동차 산업은 표준까지 깔아나가는 패턴을 보이고 있다. (한국 삼성의 와이브로는 세계시장에 표준을 깔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기대가 크다)

이러한 면에서 현재 미국은 자국의 경쟁력 있는 산업을 FTA를 통하여 진출시키고,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전략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특히 금융, 서비스 산업은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산업으로서 미국식 제도의 표준을 까는 효과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국가 소송제도도 이러한 무서운 표준이라고 할 수 있다) 잘못하면 여기서 한국 금융 서비스 산업이 위에서 예로 든 Apple 컴퓨터나 Sony의 Beta Max의 운명을 겪거나, 미국 산업에 흡수되게 될지도 모른다. 즉 한국이 키우고자 하는 미래의 성장동력이 가장 먼저 미국의 먹이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한미 FTA에서 농업도 문제이지만 더욱 큰 문제가 바로 한국 금융, 서비스 산업의 운명이다.

과거 냉전과 GATT 체제에서는 개도국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산업정책을 통하여 자국 산업경쟁력을 키우고, 그 이후에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하였지만 WTO체제에서는 이러한 보호와 산업정책의 여지가 상당히 줄어들었고, 이제 산업의 중심이 제조업에서 금융, 서비스, 지식산업으로 넘어가면서 특히 지적재산권, 투자, 서비스 등에 있어서 매우 강력한 시장개방 조치가 취해져 왔다. 그런데 이러한 WTO 협상이 Doha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은 다자적 시장개방보다는 양자적 시장 개방인 FTA를 통하여 자국의 경쟁력 있는 산업을 세계시장에 진출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과거 클린턴 행정부 시절 반도체 산업에 있어서 미국과 일본간의 무역분쟁을 보면 일본이 일본 시장에서 미국 반도체 산업의 시장 점유율을 몇 년도 몇 월까지 얼마로 올려놓지 않으면 무역 보복을 하겠다는 수치목표까지 정해주곤 하였다. 이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강요하는 작금의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위의 이론들이 제시하는 또 다른 시사점은 한국이 FTA를 추진할 때 전략적인 시장 개방의 속도와 순서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제조업은 일찍 열고, 한국의 차세대 성장동력은 한국보다 우위에 있는 미국보다는 열세에 있는 중국이라는 큰 시장, 혹은 제3세계의 시장을 선점하여 경쟁력을 높이고, 중국을 위시한 아시아에 표준을 깔아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전략이 그것이다. 그러한 이유에서 필자는 스크린 쿼터를 이 시점에서 축소하는 것에 대해서도 반대이다. 무턱대고 미국과 경쟁하면 경쟁력이 생길 것이라는 주장은 많은 경제이론 중 하나의 주장일 뿐이고, 그렇지 않다는 위험성이 경제사를 통하여 무수히 증명되고 있다. 따라서 노무현 대통령이 "제3세계와 FTA를 해봤자 관세가 낮아지는 것 이외에는 이득이 없습니다"라고 말한 부분은 곧 FTA와 관련한 다양한 이론적 검토와 공부를 안 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발언이다.

생각보다 내용이 길어 졌지만 이상의 요지는 한미 FTA를 비판하는 근거를 제공하는 이론은 종속이론이 아닌 경제학 이론과 경제사에서 풍부하게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참고로 한미 FTA에 반대할 이론적 근거로 조절이론(regulation theory)도 있으나 종속이론과 같이 Marxism에 뿌리가 있어서 생략한다. 그러나 잘 알려져 있듯이 Fordism, Keynesianism, Taylorism으로 전후 자본주의의 황금기를 설명하는 것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또한 선도산업의 부침 싸이클 개념을 도입한 슘페터, Mensch 등의 싸이클 이론도 한미 FTA에 반대하는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고 있으나 논의가 복잡해지는 관계로 생략한다). 그런데 한국의 진보성향의 지식인과 운동가들이 종속이론에 나오는 용어들을 주로 사용하는 바람에 FTA 논의가 정치화되는 왜곡이 생겨나 버렸다. 이러한 면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말 중 진보가 변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즉 현시점에서 진보도 상대방과 공통의 언어를 사용하여 상대방을 비판할 수 있는 방향으로 변해야 한다.


2. 종속이론이 틀린 것이 한미 FTA 추진을 정당화해 주나?

필자가 미국에서 정치경제를 공부할 때 미국의 정치경제학은 종속이론이 틀리다는 것을 이론적, 경험적으로 검증하는 커리큘럼이 대다수였다. 그래서 필자도 동아시아의 신흥개도국(소위 NICs 혹은 NIEs로 표현된다.)을 사례로 종속이론을 비판하는 공부를 상당히 많이 한 편이다. 그런데 이 때 배운 종속이론이 틀린 이유는 참여정부가 이해하고 있는, (특히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으로 유추할 수 있는) 또 참여정부가 한미 FTA를 정당화하는 논리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왜냐하면 종속이론이 실패한 이유가 바로 국가, 혹은 정부의 경제에서의 역할에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서 경제개발을 추동하였기 때문에, 그리고 유능하고, 청렴한 관료, 정부의 정보획득 능력, 재벌의 독특한 지배구조 및 노동시장, 국가주도형 금융시스템, 이에 결합된 교육 및 저축 열, 중산층을 위주로 한 비교적 공평한 부의 배분 등이 동아시아 신흥개도국, 특히 한국이 종속이론의 예언에서 벗어나도록 한 주요한 이유로 거론된다.

자유시장(Laissez-Faire Economy)을 강조하는 경제학자들은 당시 이들 국가의 경제발전이 국가의 역할보다는 자유시장경제를 채택하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다가 1997년 아시아에서 금융위기가 터지자 갑자기 입장을 바꾸어 이들의 경제발전은 국가의 개입과 소위 정실자본주의(crony capitalism)로 가능했지만 그것이 금융위기를 초래한 주범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국가주도형 경제발전 이론을 금융위기 이전 시기에 한정하여 인정하는 듯한 입장 선회인데, 이에 대한 지적은 그리 많이 찾아볼 수 없다.)

여하튼, 한국이 종속이론이 예언한 것과 같이 되지 않은 것은 국가가 개입하였고, 정실자본주의라고까지 불릴 만큼 독특한 정부-자본-노동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이미 신자유주의자들도 이 점을 인정하고 있다. 이제 이러한 독특한 한국 경제의 시스템은 금융위기와 신자유주의 세계화, 그리고 글로벌 스탠더드 및 WTO체제로 인하여 작동하기 매우 어려워 졌다. 정부의 역할은 최소화되는 것이며, 더욱이 한미 FTA가 체결될 경우 한국 정부의 역할은 소위 말하는 사회안전망(social safety net)을 구축하는 것 이상으로 커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참여정부의 논리가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이 "국가의 역할"부문이다. 종속이론이 틀린 이유가 바로 "국가의 역할"때문이라면 종속이론을 비판하면 오히려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반대로 종속이론이 틀렸기 때문에 "국가의 역할"을 거의 죽여버리는 "신자유주의"로 가자는 앞뒤가 안 맞는 논리가 나온다. 이는 종속이론이 틀린 것하고 한미 FTA추진하고 특별한 상관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관관계가 있는 것 같이 말하는 매우 잘못된 논리적 오류이다. 종속이론이 틀렸다는 것을 강조하려면 "국가의 역할"을 더욱 강조하여야 한다. 그런데 참여정부의 한미 FTA는 "국가의 역할"을 최소화시키는 좌파 신자유주의가 아니던가.

또한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로 국가의 역할이 문제가 있다는 경제담론이 글로벌 스탠더드로 퍼지고 있으나 앞에서 소개한 "전략무역정책이론", "경제지리학", "신성장이론" 등과 신자유주의 간의 싸움은 결판이 난 싸움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은 비교적 양심적인 미국의 주류 경제학자인 조셉 스티글리츠(전 세계은행 부총재, 노벨경제학상 수상)와 제프리 삭스에 의해서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된 바 있다. 지금 참여정부가 종속이론을 문제 삼는 것은 한미 FTA 반대 주장에 대한 정치적인 공세일 뿐, 진지한 이론적, 경험적 근거에 기반한 반격이라고 할 수 없다. 즉 참여정부는 한국 및 아시아의 신흥개도국에 종속이론이 틀렸다는 것을 가지고 한미 FTA를 절대로 정당화할 수 없다.


3.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비주류이론이 반드시 틀린 이론인가?

참여정부의 경제관료들은 대부분 신자유주의의 이론을 받아들이고 따르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는 사실 자연스러운 일이다. 엘리트 관료들은 미국에서 이러한 경제학을 공부하고 돌아오고, 또 세계 경제학계를 이러한 담론들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고시의 경제학 시험문제도 비슷하리라 생각된다.) 멕시코의 경제관료들과 한국의 경제관료들의 경제관은 아마도 비슷할 것이다. 예전에 이를 비판하는 용어로 "Chicago Boys" (Chicago 대학에서 경제학 교육을 받은 제3세계의 경제관료)라는 말도 있었다.

전문적인 경제지식에 문외한인 참여정부의 정치 전문가들은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다른 이론들은 다 학계에서 인정을 못 받는 비주류 이론들 아닌가? 왜 우리가 그러한 이론을 검토하고 따라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다면 참여정부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를 믿고 따르라"는 것이다. 한미동맹, 전시작전통제권, 북핵문제에 대한 주류의 이론과 사고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에 다 나와 있다. 꼭 주류 이론만을 따라야 한다면 참여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은 소위 말하는 조, 중, 동과 같아야 한다. 그러나 참여정부가 외교 안보 부문에서 추진하는 것은 비주류의 이론과 사고에 근거한 정책들이다. 이들 이론과 사고는 매우 위험하고, 현실에서 증명되지 않은 것으로 공격받고, 또 주류 학계의 잡지와 회의에서 잘 다루어지지 않는다. 즉 주류 외교안보 담론에서 참여정부가 추진하는 이론과 사고는 왕따가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여정부는 자신들의 외교안보 정책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럴만한 이론적, 경험적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한미 FTA에 반대하는 위에서 소개한 이론들도 그러하다. 오히려 많은 부분에서 한미 FTA를 지지하는 이론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다.

대학교 다닐 때 "과학철학" 과목 혹은 "사회과학 방법론" 과목을 하나만 들었어도 주류 담론, 혹은 패러다임이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한 토마스 쿤(Thomas Kuhn)의 사회학적 이론을 알고 있을 것이다. 패러다임은 다수가 장악하는 것이지 다수가 진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참여정부는 외교안보 문제와 경제문제를 접근하는 태도와 수준이 전혀 다르다. 외교안보문제는 그래도 다양한 사고와 검증을 해본 수준이고, 경제문제는 공부의 편식을 한 수준이다. 대통령이 말하는 "좌파 신자유주의"는 공부부족을 실토하는 것이지 뭔가 대단한 역발상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래서 참여정부는 일관성이 없고, 아마추어 같다는 말을 듣게 되는 것이다. (참고로 참여정부가 주장하는 외교안보와 정책을 뒷받침하는 국제정치의 설득력 있는 비주류의 이론과 담론도 무수히 많다.)

요약하자면, 참여정부는 외교안보 사안보다 훨씬 복잡하고, 전문적인 분야에서는 주류 담론을 장악한 전문가들에 의지하게 되고 그들이 제시하는 처방을 따라가고 있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전문화되면서 이러한 전문가들의 역할이 커진다는 것을 이론화한 것이 바로 전문가들의 인식공동체 이론(epistemic community, 필자는 이를 인식 공유체로 부른다. 왜냐하면 이들 전문가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공동체적인 삶을 살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이다. 지금 참여정부는 이들 경제분야의 인식공유체에 딱 걸려들었다. 왜냐하면 너무나도 전문적인 분야라서 다양하게 공부하고, 검토하고, 생각할 능력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사실 이는 참여정부만의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준비된 전문가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 정권에서는 복잡하고, 전문적인 분야에서는 항상 이런 일이 생겨날 가능성이 크다.)

참여정부는 한미 FTA 추진을 정당화하는 이들 인식공유체(통상교섭본부, 경제부처의 경제관료 등으로 구성된 비공식적인 네트워크)의 주장을 종교적으로 믿고 따라가지 말고 좀 더 엄밀하고 정교하게 검증하고 따져보아야 한다. 장하성 교수의 주장처럼 경제정책은 신념에 의해서 추진하는 것이 가장 반 시장적인 것이다. 또 나라의 경제를 도박과 같이 한번 이쪽에 걸어보겠다는 식으로 결정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위험한 짓이다. 끝까지 연구하고 검토해 보고, 최종적인 결단을 내려야지, 감이 이쪽이니까 이쪽에 베팅하겠다는 식으로 도박을 하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발상이다.


4. 제3의 모델: 일본 모델 + 싱가폴 모델이 무엇인가?

대통령은 제3의 모델로서 일본모델 + 싱가폴 모델을 언급하였다. 그런데 한미 FTA를 통해서 어떻게 이러한 모델을 달성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구체적으로 일본 모델 + 싱가폴 모델의 내용이 무엇인지 그림을 그려서 국민들에게 보여준 적이 한번도 없었을 뿐더러 (준비부족을 의미함) 한미 FTA를 통하여 이것이 가능할 것인지도 의심스럽다 (필자가 기억하기로는 싱가폴 모델에 대한 대통령의 이해도 상당히 의문시 된다. 장하준 교수가 지적하였듯이 싱가폴은 겉으로 드러난 것 이상으로 제조업의 비중이 큰 것으로 알고 있다. 또 정부의 힘이 매우 강한 일당 지배의 권위주의 국가이다.).

싱가폴 모델(혹은 일본 모델 + 싱가폴 모델)의 문제점을 따지게 되면 내용이 또 길어지기 때문에 여기서는 한미 FTA가 어떻게 일본 모델 + 싱가폴 모델을 가져올 수 있는지 무척 궁금하다는 질문을 하는 정도로 넘어가고자 한다. 다만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도시국가인 싱가폴 모델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고 가능한 것인지는 쉽게 이해가 안 간다. 그리고 일본식 모델 + 싱가폴 모델은 전혀 신자유주의적인 모델이 아니다. 싱가폴의 국가부문의 개입에 대해서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 같고 또한 일본의 기존 제도의 견고함에 대해서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대통령의 이해와 달리 모든 국가들이 미국과 FTA를 하려고 난리를 피우는 것이 아니다. 미국은 이미 전체 미국 대륙을 하나의 거대한 자유시장으로 묶으려는 FTAA라는 것을 추진해 왔는데, 얼마 전 브라질을 위시한 중남미 국가들의 반대로 중단되었다. 특히 브라질은 이에 대한 대안으로 브라질 고유의 경제구조를 미래의 성장산업과 연결시키는 새로운 모델을 시험하고 있다. 즉 브라질 농업과 에너지, 환경산업을 연결하는 Agro-Energy프로젝트가 그 한 예이다. 브라질에서 풍부한 사탕수수를 가지고 에탄올 에너지를 가공하고, 이를 통하여 새로운 표준의 농업 및 에너지 산업을 브라질이 주도하겠다는 야심 찬 구상이다. 이는 브라질 농업의 구조전환과 미래 성장동력을 만드는 일석이조의 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브라질은 인도, 중국, 일본 등과 동부문에서 협력을 심화하는 경제외교에도 열심이다. 아직 성공할지 실패할지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이러한 브라질의 프로젝트는 앞에서 소개한 소위 비주류 경제학 이론에 상당부분 부합하는 매우 전략적인 행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미래의 성장동력을 키워내는 제3의 모델과 같은 느낌마저 든다. 물론 이러한 단편적인 예를 가지고 제3의 길이 있다고 주장하기는 어렵지만 무언가 창조적인 생각을 해 내야 한다는 점에서 브라질의 프로젝트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상당히 크다.


5. 결론

노대통령의 언급을 통해서 나타난 현 정부의 한미 FTA 정당화 논리는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상당한 이론적 편식과 잘못된 논리 및 이해에 근거하고 있다. 사실관계를 정확히 아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같은 사실을 다르게 해석하는 것이 더욱 큰 문제이다. 사회과학에서는 사실관계를 정확히 안다는 것은 사실을 어떠한 이론적 틀에서 해석하는 것이 정확하게 보는 것이냐의 문제로 연결된다. 사실을 정확하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공부의 편식을 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사회현상은 서로 다른 부문과 영역의 것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복잡한 상호연결관계를 파악하는 학제적 훈련이 안 되어 있으면 막연하게 전문가 집단에 의존하게 된다. 그것이 한미 FTA를 추진하는 참여정부가 걸려든 덫이라고 보인다. 이러한 의미에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주장하는 "통합적 사고"를 하는 지식인을 길러내는 것이 한국의 미래에 매우 중요하다. 통합적이고, 종합적인 사고에서 국가전략이 나와야지, 아무런 전략 없이 그저 개방만 하면 된다는 기계론적 이론의 적용은 국가의 불행으로 연결될지 모른다. 한미 FTA를 이대로 무작정 추진하지 말고 참여정부 내부에서 좀 더 따져 보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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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과 마르가리타 1
미하일 불가코프 지음, 박형규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읽은 것은 이번이 세 번째이다. 절판되었던 책이 재발간된다는 소식에 좋아라하며 사람들에게 권했는데, 막상 전에 두 번이나 읽은 책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 것이다. 악마가 등장하는 꽤나 유쾌하고 재미있는 작품이었다는 인상과 떠들썩했던 악마와 그의 수하들이 고독하고 음울한 태도로 말을 타고 하늘을 날아가는 마지막 장면만 떠올랐다. 이래서야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말하는 것도 부끄럽다. 생각난 김에 다시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악마를 만나기로 했다. 책을 펼쳐서 읽기 시작하자 벌써 인물들이, 그들의 대화가, 얽히고설킨 사건들이 하나하나 돌아오기 시작한다.

 

소설은, 예수는 결코 존재한 적이 없는 가상의 인물임을 역설하는 편집장과 시인의 대화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 앞에 나타난 이상한 외국인의 문제 제기. “만일 신이 없다면, 누가 인간의 삶을 지배하며 지상의 모든 질서를 유지하는가.” 편집장은 인간 스스로가 지배한다고 대답하지만, 외국인은 내일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상할 수도 없고 언제 죽을지 알지도 못하는 인간이 어떻게 계획을 세우고 자신의 문제를 지배할 수 있을까 되묻는다.

볼란드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 외국인은, 짐작하다시피, 악마다. 악마의 존재는 반대로 신의 존재 또한 긍정한다. 그러나 불가코프가 딱히 기독교나 예수를 옹호하고자 했던 것은 아닌 듯 하다. 예수아 하노츠리(예수)를 처형한 본디오 빌라도의 고통에 대해서도 상당 부분 언급되지만, 이 역시 종교적인 배경이라기보다는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으로 인한 괴로움으로 보인다. 전 사회와 사상을 통제하려고 덤벼드는 소비에트의 무모함을 비판하고, 그런 사회에서 양심에 따라 소신있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의 고뇌를 표현하기 위해 신과 악마라는 초월적 존재를 끌어들였다고 봐야 할 것이다.

 

볼란드의 시끌벅적한 수하들은 모스크바의 곳곳에서 요란한 사건을 일으킨다. 편집장의 아파트는 악마의 소굴로 변하고, 검은 마술사 볼란드의 쇼가 열린 극장에서는 12시가 되면 사라져버릴 신데렐라의 드레스에 부끄러운 줄 모르고 덤벼드는 부인들과 곧 종이 조각으로 바뀔 돈을 한 장이라도 더 줍겠다고 드잡이하는 상류층 인사들의 어리석은 모습이 쇼보다 더욱 화려하게 펼쳐진다. 볼란드의 부하들은 방문하는 곳마다 사람들의 혼을 쏙 빼놓아 줄줄이 정신병원으로 보내버린다. 이 괴상하고 우스꽝스러운 일행은 얼굴을 찌푸리고 이 소동이 마뜩하지 않다는 듯,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데, 이런 모습은 우리의 탈춤을 연상시키는 구석이 있다. 멀쩡한 얼굴을 어그러진 탈 뒤에 감추고 양반을 맘껏 희롱하는 광대놀음이랄까. 때문에 경직된 사회와 오만한 인물들에 대한 조롱이 한층 두드러진다. 

 

불가코프는 스스로를 풍자가로 불렀다고 한다. 그가 풍자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물론 소련 사회이다. 1920년 대 한창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벌이며 신랄한 풍자로 인기를 얻던 불가코프는 20년대 말에 이르면 결국 더 이상 출판을 할 수 없는 처지가 된다. 사회주의 사상과 혁명의 당위성을 주장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소비에트 사회에 대한 비판만 쏟아내는 그의 작품을 열성 공산주의자들이 좋아했을 리 만무다. 때문에 이 책에 등장하는 ‘거장’에게 투영된 불가코프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거장은 예수와 본디오 빌라도의 만남에 관한 소설을 썼으나, 이런 작품이 소비에트 문학계에 받아들여질 리 없다. 비평가들의 혹평에 이어 그의 거처를 빼앗으려는 음모에 휘말린 거장은 스스로 원고를 불태우고 정신병원에 들어간다. 이에 비해 글 한 줄 쓰지 않으면서 ‘문학협회’의 회원증을 얻은 사이비 문학가들은 얼마나 대단한 위세를 떨치는지. 볼란드의 부하들이 소동을 일으키고 불을 내는 한 장소로 문학협회를 선택한 것도 당연해보인다. 볼란드는 ‘원고는 절대로 불타지 않는다.’고 말하고, 그의 말대로 거장의 원고가 돌아온다. 자신의 원고도 언젠가는 세상의 빛을 보리라는 희망을 피력한 것일까. 유작이 된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불가코프의 사후 20여 년이 지나서야 공개되었고, 20세기 러시아 문학의 가장 뛰어한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이 작품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누가 뭐래도 마르가리타이다. 뛰어난 과학자의 아내로 멋진 아파트에서 호사스럽게 살던 마르가리타는 어느 날 길에서 만난 거장과 사랑에 빠진다. 거장이 사라지고 난 뒤 우울한 나날을 보내다 거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악마의 무도회의 여주인 자리를 수락한다. 연인을 잃은 안타까움에 눈물 흘리는 가련한 여인에서 악마의 무도회의 당당한 여주인으로 변신한 마르가리타는 변화를 그대로 즐기고, 그 힘을 이용하여 거장을 공격한 평론가의 아파트를 부숴버리는 호쾌한 모습을 보여준다. 악마에게 자신을 내주었다고 해서 후회하거나 고통스러워 하지 않는, 자신의 선택을 믿는 마르가리타가 사랑스럽다.

 

이 작품은 러시아에서 TV 드라마로 만들어져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작품을 읽다 보면 장(章)으로 끊어 시리즈 드라마를 만들기에 충분해 보인다. 여러 편의 희곡을 쓰고 무대에 올려 성공을 거두었던 불가코프의 특징이 살아 있다. 거기에 풍자와 조롱으로 웃음을 선사하고 있으니 이만한 대본이 또 있을까. 사회를 통제하려는 권력이나 권위를 내세우는 인물들이 어찌 1930년대 소련에만 존재할 것인가. 오늘날 러시아나 우리나라에서 불가코프의 작품이 통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기꺼이 두 번 세 번 손에 잡을 수 있는 책, 내용을 되새기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새로운 재미와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책이야말로 좋은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책은 사람마다 다를 테지만,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내게는 틀림없이 좋은 책이다. 아마 몇 년 후에도, 문득 떠오를 때면 또 꺼내 들고 읽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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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10-17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을까 말까하는 책입니다 ㅡㅡ;;

blowup 2006-10-17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짜임이 촘촘하고, 상징이 풍부하고, 행간이 많은 책들은, 여러 번 읽어도 새롭지요.
얼블루 님의 이 리뷰, 몹시 땡기면서도 한번 보고 저걸 다 읽어낼 수 있을까, 염려스럽습니다.

2006-10-17 15: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urblue 2006-10-17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여전히 고민하고 계신 거여요? ^^ 이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너무 반가워서 재미있는 책이라고 마구 떠들었지만, 다시 읽어보니 모든 사람에게 재미있을 만한 책은 아닌 것 같더라구요. 일단 님께서 좋아하시는 추리 소설적인 요소같은 건 안 보이니까요.

나무님, 님이 말씀하시는 건, 어떨 땐, 곧이 안 들려요. 설마 님이 상징을, 행간을 못 읽으실까요? 에이, 말도 안 된다구요.

2006-10-20 17: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urblue 2006-10-20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 좋아하신다니, 제가 더 반갑습니다. ^^

2006-11-01 1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1-01 14:3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