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달의 뒤통수> 번역과 관련해, 뒤통수 정도로는 안된다는 여러분들의 의견에 힘입어 역자와 출판사에 항의 메일을 보냈습니다. 역자의 메일은 계정이 어쩌고 저쩌고 하며 반송되더군요. -_-;

출판사의 편집자가 아래와 같은 답변을 보내주셨습니다.

 

안녕하세요.

편집자 ***입니다.

메일 잘 보았습니다.
우선 편집자의 입장에서 너무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사정을 설명한 몇 줄은 생략합니다.)

차후 이 책의 판매와 재 번역에 대해서는 출판부장님과 상의하겠습니다.
저자분께도 메일을 보여드렸습니다.

그리고 사신 책값은 당연히 돌려드려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메일로 계좌번호를 보내주시면 송금해 드리겠습니다.

향후 편집자로서 도서출판에 신중을 기하여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올바른 지적과 질책 고맙습니다.
앞으로 좋은 책을 만드는데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편집자 올림

 

출판사보다는 역자의 답변이 더 듣고 싶긴 하지만, 과연 답장을 받을 수 있을까 싶습니다. -_-
편집자에게는 앞으로 더 노력해주기를 바란다는 메일을 다시 보냈습니다.
책값도 받겠다고 했구요.
뭐 책값 돌려받을 생각을 했던 건 아니지만, 불량품 만들어 판 업체에서 교환이든 환불이든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기에 받겠다 했습니다.

아무튼, 그냥 입씻고 모른척 하지 않아 다행이라면 다행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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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12-08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수긍하기는 힘든데....
항의 메일을 보내신 블루님이나 답장을 보낸 편집자나..모두 대단대단..^^

물만두 2006-12-08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자도 가끔 항의를 하곤 하는데 이분은 아마 모른척하시나봅니다.

마법천자문 2006-12-08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한 양반은 지금쯤 뒤통수가 근질근질하겠군요. 생략된 몇 줄의 내용이 상당히 궁금하군요.
 



<판의 미로>를 판타지라고 할 수 있을까. 판타지의 기본 전제는 ‘다른 세계’가 실재한다는 믿음이다. <해리포터>의 호그와트와 <나니아 연대기>의 나니아는, 적어도 작품 속에서는 엄연히 존재한다. 그런데 <판의 미로>에서는 이 점이 불분명하다. 요정들이 사는 지하 왕국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일까, 단지 오필리아의 환상인 것일까.

 

이 영화가 다른 판타지 영화들과 구분되는 또 다른 점은 역사성에 있다. 1944년, 내전이 끝나고 프랑코가 정권을 잡았으나 곳곳에서 게릴라들의 반정부 저항이 계속되고 있던 스페인, 그것도 게릴라와 정부군이 대치한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삼았으니, 애초에 아동용 판타지를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필리아가 처한 상황을 보면 이모 부부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해리 포터의 고통 따위는 감히 고통이라고 언급할 수도 없다. 차라리 커트 보네거트의 <제 5도살장>을 떠올릴 수 있다.

 

왜 재혼을 했느냐고 묻는 오필리아에게 엄마는 혼자 살기가 힘들었다고, 너도 크면 이해할 거라고 대답한다. 세상은 냉정하고 잔혹한 곳이니까. 엄마의 말 그대로 오필리아가 살고 있는 세상은 무섭다. 게릴라 토벌대 대장인 새아버지는 냉혹하고 무자비한 군인이다. 포로에게 잔인한 고문을 가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산 속에 숨어 있는 게릴라들은 식량도 의약품도 부족하여, 마취도 하지 못한 채 상처 입은 다리를 톱으로 잘라내야 한다. 이런 일들이 모두 오필리아의 시야에 잡히는 것은 아니지만, 새아버지의 싸늘한 눈빛과 게릴라를 돕는 사람들의 비밀스럽고 조심스러운 몸짓에서 일찌감치 세상에 대한 공포를 느낄 법 하다.

 

이런 상황에서 오필리아가 지하 왕국의 공주였다고, 보름달이 뜨기 전에 세 가지 임무를 마치고 지하 왕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요정 판은, 오필리아의 공포가 만들어낸, 세상에서 도망치기 위한 출구였을지도 모른다. 오필리아가 갇혀 있던 방에서 탈출한 것을 제외하면 지하 왕국이나 요정의 존재, 마법 등이 실재한다고 입증할 수 있는 증거는 하나도 없다.

 

영화는 상당히 도식적으로 진행된다. 한 쪽에는 끔찍한 전쟁 상황이, 다른 한 쪽에는 동화 같은 판타지의 세계가 펼쳐지지만, 양쪽 모두 딱 정해진 틀을 따라 움직인다. 오필리어에게 주어진 임무조차 용기, 인내, 희생이므로, 어떤 식으로 결말을 향해 나아갈지를 짐작할 수 있다. 오필리어가 임수 수행 중 실수를 하는 것도 배우의 표정과 동작만 리얼할 뿐 설득력 있는 이유는 없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이 내게는 엄청나게 충격적이다. 어째서? 이미 충분히 예상한 결말인데. 그랬다. 알고 있었는데도, 심장이 아프고 눈물이 차오르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참을 수도 막을 수도 없었다. 이게 이 영화가 가진 힘일까. 지독히도 끔찍스런 현실의 장면들(피튀기거나 잔인한 묘사를 싫어하는 나로서는 몇 번이나 눈을 질끈 감아야만 했다.)과 햇빛이 들지 않는 평화롭고 고요한 지하 왕국으로 돌아가기 위한 오필리아의 모험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보여주며 끝을 향해 마구 몰아가는 용기. 그리하여 그 불행한 혹은 행복한 결말을 관객으로 하여금 직접 목격하고 판단하게 하는 냉정함.

 

영화를 보는 것 자체가 힘겨웠지만, 올해 본 영화들 중 최고라고 꼽는데 주저하지 않겠다. 이 작품을 ‘아름답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아름답다’라는 말 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한 번 더 보고 싶고, DVD를 구입하여 소장할 생각이지만, 다시 볼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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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12-04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독이 감독인지라...그 분위기만큼은 대단할 꺼라고 생각되는군요..^^

BRINY 2006-12-04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단순한 애들 영화가 아닌가봐요. 보러가기!

merced 2006-12-04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볼까 했는데, 아닌게아니라 어제 보고 온 사람이, 잔인하다고 해서, 또 단숨에 말까 하고 있는데, 헷갈려요.

urblue 2006-12-04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전 <헬보이>를 대강 본 거 밖에 없는데, 이거 보고 나니 이 감독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집니다. 현실 부분은 켄 로치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세고, 판타지 부분은 모든 판타지가 비교되고 마는 <반지의 제왕>과는 확연히 다른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네요.

BRINY님, 이 영화에 대한 악평이 많던데, 애들용 판타지인 줄 알았던 사람들에게는 아마 끔찍했을지도 모릅니다. 절대 애들 영화 아니에요. 15세 이상이던데, 사실 그것도 좀 약한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urblue 2006-12-04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erced, 엄청 잔인하더라. 눈뜨고 보기 힘들다. 근데, 영화 자체는 꽤나 훌륭하단 말이지. 그니까, 다시 보고 싶은데, 다시 못 보겠다고. -_-

Mephistopheles 2006-12-04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로노스, 미믹, 헬보이, 그리고 블레이드 2까지..영화의 색채가 좀 진했다고나
할까요. 약간의 고딕스러운 분위기가 지배적인 영화들이였던 기억이 납니다.^^

아영엄마 2006-12-04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제목에 혹해서 보고 싶은 마음은 드는데....잔인한 장면들은 안 보고 판타지 쪽만 보고 싶지만 그래서는 이 영화를 봤다고 할 수는 없는 거겠죠? ^^:

sudan 2006-12-05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앗. 얼블루님. 켄로치와 반지의 제왕이 함께 거론되는 영화는 대체 어떤거죠!! 전 유난히 끔찍한거 잘 못 보는데, 이러시면 곤란해요. ㅠㅠ

urblue 2006-12-05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아, 블레이드 2도 있었군요. 고딕스러운 분위기라... 그런 것도 같네요. ^^

아영엄마님, 잔인한 장면들을 안 보면 영화가 엄청 짧을텐데요. ^^;;

수단님, 음. 켄 로치와 반지의 제왕을 함께 거론하는 건 저 뿐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 )a 우리처럼 식민지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경우, 하다못해 애들 위인전에도 손톱 뽑는 고문 이야기가 등장하잖아요. 근데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보면서는, 서양 애들은 이런 정도로도 충격받나, 싶은거죠. 그에 비해 <판의 미로>는 사실감이 넘칩니다. 실제로 오필리아의 새아버지같은 군인들이 있었을 것 같아요.
아우, 그 장면들 생각만해도 얼굴이 찌푸려지고 울컥해요. ㅜ.ㅜ

BRINY 2006-12-05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근데 이거 하는 극장이 별로 없네요. 여긴 서울이 아니라 더더욱.

urblue 2006-12-05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광고를 많이 하길래 극장을 좀 잡은 줄 알았더니 아닌가 보네요. 보시면 좋을텐데.
 



아차,하는 사이에 은행잎은 전부 떨어졌다.
어제 퇴근할 때만 해도 좀 남아있었던 듯 싶은데.

움튼 걸 본 게 4월이었던가.
1년이 이렇게 가는구나.

 

11월 22일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05127

 8월 2일   http://www.aladin.co.kr/blog/mypaper/927108

5월 3일  http://www.aladin.co.kr/blog/mypaper/869979

4월 14일  http://www.aladin.co.kr/blog/mypaper/857825

4월 6일  http://www.aladin.co.kr/blog/mypaper/855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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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6-11-30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아블루님과 함께 은행나무와 함께, 그렇게 1년이 거의 다 지나갔네요. 한 해 동안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sandcat 2006-11-30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월 14일의 은행나무가 가장 예뻤어요. 11월의 마지막 날에 생각하는 4월의 은행나무란 조금 참담한 구석이 있군요. 지금 "Heaven Please" 듣고 있는데 잎 다 떨어진 나무와 어울려요. 흑흑.

blowup 2006-11-30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드라마틱해요. 특히 4월 6일과 14일 사이. 은행나무의 봄은 생각보다 더디 오네요. 이파리 없이 앙상한 나날들이 꽤 긴가 봐요.

chika 2006-11-30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동네 은행나무는 아직 가을입니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보니까 바람에 반 정도 떨어졌지만 그래도 무성하데요;;;;

Mephistopheles 2006-11-30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 은행나무~ 내년에 다시 보자~~ ^^

바람돌이 2006-11-30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곳은 은행잎이 다 졌군요. 여긴 지금 한창 샛노랗게 물들어 길거리마다 노란 은행잎이 수북이랍니다. 앞으로 한 일주일은 더 갈듯 한데.... 청소하는 분은 힘들겠지만 저는 너무 예뻐요. ^^
 
 전출처 : merced > Praha 프라하와 무하미술관

Alphonse Mucha (1860-1939)

체코 화가, 장식화가. 모라비아 출생.  프라하의 미술학교 입시에 실패한 뒤 빈으로 나가 무대미술 공방(工房)에서 일하였고, 그 뒤 뮌헨에서 수업하다가 1888년 파리로 가서 아카데미쥘리앵에서 공부하였다. 1894년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의 포스터를 그린 것이 크게 히트하여 명성을 떨쳤다. 사라와 계약한 6년 동안에 그린 포스터, 꽃과 여자의 화려한 무하 양식은 아르누보의 대명사가 되었다. 1904년 이후 몇 차례 미국으로 가서 그림도 그리고 교편도 잡았다. 1910년에는 조국으로 되돌아가, 18년간이라는 긴 세월을 보내면서 그린 대작 <슬라브서사시>를 완성하였다. 국장(國章)·우표·지폐도 디자인하였다.  --야후 백과사전--

사라 베르나르 공연 포스터. 무하는 Gismonda 석판화로 처음 유명해졌다.
나는 MEDEE 가 마음에 든다.

         

Gismonda, 1894, Poster (74.2 x 216 cm)      Medee, 1898, Lithograph (76 x 206 cm)


Dance, 1898, Decorative panel (38 x 60 cm)


Princess Hyacint, 1911

Moet & Chandon Cremant Imperial, 1899, Poster (23 x 60.8 cm)

무하 미술관 말고도 프라하의 여기저기에서 무하의 석판화를 전시하고 있다.
직접 본건 아니지만, <네개의 별> 연작 (1902) 이 좋다.
[저녁별, 달, 아침별, 북극별]

       

         

무하의 그림이 더 보고 싶다면 아래 사이트 추천!
http://www.artrenewal.org/asp/database/art.asp?aid=598&page=6



성 비투스 대성당의 스테인드 글래스 한 면도 무하의 작품이다.


프라하 성> 성 비투스 대성당



프라하 성> 황금소로.  저기 파란집은 옛날엔 카프카의 작업실.

길쭘한 바츨라프 광장

구시가 광장의 얀후스 동상

구시가 광장과 만나는 지점의 첼레트나 거리. 광장 맞은편으로 보이는 건 구시청사 건물.

구시청사 종탑에서 내려다 봄

틴 성모 교회

멀리 언덕 위엔 프라하 성

까렐 다리의 해저물녁.
양 옆으로 성인들의 동상이 줄줄이 있는 다리. 프라하의 상징.

낮에도 저녁에도 복작복작하던데.... 이른 아침엔 이런 풍경을 볼 수도 있겠구나...  프라하 환상.


www.pragia.cz/en/tours.html



국립 마리오네트 극장의 클래시컬 돈죠반니를 보고 싶었는데,
살짝 꼬여서 프라하 오페라 마리오네트 극장의 코믹하게 만든 돈죠반니를 보게 되었다. 어... 이게 아닌데....

프라하에서 데려온 친구. 요즘 열심히 춤 연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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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1-30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까말까갈까말까갈까말까갈까말까(이미 한 번 다녀왔지만 그래도) 갈까말까갈까말까갈까말까갈까말까..후훗

urblue 2006-11-30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 언제나 갈 수 있으려는지... 부러워요. 흑흑.
 



안녕! 헤어짐이 아닌 만남의 인사이고 싶습니다.
나는
재일 교포의 메카로 불리우는 도시, 오사카에서 태어나 오빠 셋의 귀여운 막내 여동생으로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15살에 고향인 제주도를 떠나 일본으로 오셨고 해방을 맞은 후 정세에 따라 북한을 조국으로 선택하셨습니다. 그 무렵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첫눈에 반해 열렬히 프로포즈하여 결혼에 성공하셨다고 하는데, 평소 엄격한 성격의 아버지도 이 얘기가 나올 때면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하시곤 합니다. 부모님은 결혼 후 함께 열정적으로 정치 활동을 하셨고, 오빠들이 청소년이 되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조국인 북한으로 보낼 결심을 하셨습니다.
오빠들이 떠나던 날. 6살이었던 나는
귀국의 의미도 모른 채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머니는 오빠들을 태운 배가 사라진 후에도 한참 동안 자리에 서서 먼 바다를 바라보셨습니다. 나는 당시 어머니의 마음을 죽을 때까지 헤아릴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후 평양의 실정을 들은 어머니는 오빠들에게 물자를 보내기 시작하셨습니다. 어린 조카가 난방이 안된 학교에서 동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로는 이런 짓은 어미 밖에 못해준다고 웃으시면서 겨울마다 큰 상자에 일회용 손난로를 가득 담아 보내주고 계십니다.

 

- 다음 영화 소개 중에서

 

 

 

고등학교 때부터 양영희 감독은 수차례 평양을 방문했다고 한다. 열혈 조총련 활동가인 아버지와 어머니, 귀국자로서 평양에 살고 있는 오빠 셋을 두었으니, 당연한 방문일 터이다.

 

감독의 홈비디오에 담긴 원산항과 평양은 퇴락한 도시의 이미지를 풍긴다. 원산항에는 고층빌딩도 여럿 보이지만, 처음 방문할 때부터 지금까지 전혀 변화가 없다 하고, 오빠들이 살고 있는 평양의 아파트 단지에는 여기저기 깨져나간 도로가 방치되어 있다. 금이 간 아파트 벽 아래 보자기 두 장 깔아놓고 고추를 말리는 풍경은, 사람 사는 정겨움보다 스산함을 먼저 느끼게 한다.

철따라 아들 손주들을 위해 바리바리 짐을 싸는 어머니, 당신 돈으로 북한에서 진갑 잔치를 열고도 조국의 은혜, 김정일 장군의 배려 덕이라고, 충성을 다하지 못했다고 후회하는 아버지.

정체된 북한의 현실과 그럼에도 죽을 때까지 김일성 수령, 김정일 장군에게 충성을 바치겠다는 아버지의 신념 사이에서 착잡할 수 밖에 없을 딸의 심경이 카메라를 통해 전해진다.

 

그러나 우울한 영화는 아니다. 장난스레, 고집스레 어려운 질문과 카메라를 들이미는 딸에게 일흔을 넘긴 아버지는 너털웃음과 진지한 대답과 바보라는 투정을 버무려 애정으로 돌려준다. 한동안은 아버지와 대화를 할 수가 없었다는데, 국적에 관한 문제는 절대 언급할 수 없는 금기였다는데, 노활동가는 이제 딸의 자유로운 삶을 인정한다. 직업다운 직업 한 번 가져본 적 없는 남편과 평양의 아들 손주들을 바라지하면서도 역시 활동가로 살아온, 하하하하 웃기 좋아하는 쾌활한 어머니의 모습도 보기 좋다. 북한의 손주들은 할머니 할아버지를 좋아하고, 여느 곳의 아이들처럼 재롱이 많고, 큰 손자는 피아노를 정말 잘 친다. 오히려 유쾌할 정도다.

 

현재 아버지는 투병 중이다. 다시 평양을 방문할 수 있을까. 큰 손자의 멋진 피아노 연주를, 이 노부부는 다시 듣게 될까. 그럴 수 있기를, 그저 조그맣게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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