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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를 수 없는 나라
크리스토프 바타이유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199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방안에는 항시 소리들이 떠다닌다.
컴퓨터, 공기청정기, 냉장고가 숨죽이며 낮게 웅웅거리고,
열어 놓은 창으로는 행인의 발자국 소리와 올림픽을 시청하는 이웃의 탄성이 새어 들어온다.
순간, 사위가 고요해진다.
소리들은 툭툭 방바닥으로 가라앉고, 텅 빈 공간을 채우는 것은 바타이유의 문장들이다.
페이지가 넘어가면서 뽑혀 나온 문장들이 방안에 거미줄을 친다.
간결한 문장들이 이어지면서 공간이 생기고, 공간을 통해 의미의 지평이 점차 확대된다.
이 커다란 집은, 그러나 허약하지 않다.
짧고 가는 선들이 슬쩍 닿아 있기만 한 듯 보여도, 거미줄은 필요한 만큼 튼튼하다.
이렇게도 소설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책장을 덮었을 때, 바타이유의 거미줄에 묶여 버린 듯 했다.
다다를 수 없는 나라, 멋진 제목이다.
安南>이라는 원제는 프랑스인들에게는 다소 환상적인 의미를 가질지 모르나
우리에게는 지나치게 친숙한 이름이다.
바뀐 제목은, 바타이유의 작품이 그러하듯, 아득하고 쓸쓸한 느낌을 준다.
고향 프랑스를 떠나 일년 여의 뱃길로 도착한 베트남에서, 고향을 상실하고, 동향인들로부터 잊혀지고,
하느님에 대한 신실한 사랑을 잃어가는 도미니크 수사와 카트린느 수녀의 여정은,
결코 다다를 수 없는 나라를 향한 부질없는 한걸음마냥 소연(蕭然)해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는 법을 배웠고, 친구가 되었다.
자신들이 가장 본질적인 것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으며,
단순하고 자유로운 삶의 기쁨을 맛보고 있었다.
마침내 도미니크와 카트린느는 상대의 존재 속으로 빠져들어갔고,
망각 속에서 무한히 존재하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몇 년 후, 두 사람 다 평화 속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들은 행복했다.
그들은 다다를 수 없는 나라에 대한 질곡에 빠져 있었던 것이 아니라, 종국에는 가 닿은 것이다.
인간이 평생 찾아 헤매는, 자기 자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