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merced > Milano 밀라노와 브레라 미술관

3월 마지막주 목요일 오후 밀라노에 도착했다.
이틀  전부터 사진기가 고장나버렸기 때문에 여기 사진들은 모두 인터넷에서 모은 거다.
밀라노는 역에서부터 두오모, 비토리오 에마누엘레2세 갤러리까지, 어쩌면 그렇게 높고 큰지, 예전에는 거인들이 살았나 싶다.





밀라노 중앙역



밀라노의 중심 두오모 광장과 고딕 양식의 절정이라는 두오모. 
나는 이 성당이 싫다.  들어가자 마자 그 천장의 높이에 질렸고, 옥상에 올라가서 가까이서 보니 더더욱 돌을 깎아 만든 수백개의 뾰족뾰족한 탑과 조상들이 끔찍하다.  그 큰 건물의 구석구석 빈틈없이 화려하여 질식할 것 같다.  500년동안 이걸 만들었다니 더더욱 미친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묻고 싶다. "하나님, 이 곳이 편하십니까."
... 그래도 스테인드 글래스는 아름답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성당 위에 올라가서 보면...

성당 측면.  안쪽에서 보면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래스.





식당, 쇼핑할 곳이 많은 유리천장의 아케이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
보이는가,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 맥도널드. 그래도 때로는 반가운... 눈치 안보고 써도 되는 화장실. 



두오모쪽에서 들어와 갤러리를 나와서 마주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그의 제자들.
건너편으로는 라 스칼라 극장이 있다.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교회에 가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볼까 했는데, 예약을 해야 한다 해서 전화해보았더니, 앞으로 한달이 지나도록 꽉 차 있단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빈치에서 태어나 (그러니까 이름이 "빈치 출신의 레오나르도"이다) 피렌체에서 공부하고, 밀라노의 영주 루도비코 일 모로의 후원으로 17년동안 밀라노에서 살았다. (1499년 프랑스의 밀라노 점령으로 일모로가 몰락할 때까지) 이 기간동안 다빈치는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며 그동안 축적된 재능을 발휘하였다.
여기와서 들은 이야기 : 사실 일모로는 피렌체의 메디치家처럼 덕망있고 세련된 르네상스 예술의 후원자로 이름을 높이고 싶어했고, 그래서 다빈치를 "초빙"했다는...

Museo Poldi-Pezzoli
폴디페촐리家에서 대대로 수집한 15~19세기의 회화, 시계, 보석, 태피스트리를 폴디페촐리가 저택을 개조하여 전시하고 있다.  옛날 사람이 살던 집과 가구를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작가정보에 태어나고 죽은 연대 외에도 태어난 도시, 죽은 도시를 함께 쓰는 것이 흥미롭다.  여럿 보다보니, 지역마다 성향이 다름을 조금은 알겠다.  베니치아에서 태어나 밀라노에서 죽었다 하면 이 작가의 색감과 구도, 취향이 왜 이렇게 형성되는지  대략 알 듯도 하다.    

    Lorenzo Bartolini (Prato 1777 - Florence 1850), Trust in God

  Sandro Botticelli (Florence 1445 - 1510), The Dead Christ Mourned

 
Piero del Pollaiolo (Florence 1443 - Rome 1496), Portrait of a Woman


Francesco Hayez (Venice 1791 - Milan 1882), Self-Portrait in a group of Friends

Pinacoteca di Brera



이튿날 2시 반 비행기를 앞두고 아침 일찍 브레라 회화관에 갔다.
건물 앞과 중정에서 가방메고 수다떨고 있는 어린 학생들이 많아서 미술관에 사람이 많으려나 했더니
오래된 커다란 건물에 1층은 도서관이고 2층으로 올라가면 Pinacoteca di Brera이다. 


Giovanni Bellini, 피에타, c1465

성모가 예수의 주검을 무릎위에 두지 않은, 독특한 포즈의 피에타이다.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는 가느다란 금테 후광을 두르기는 했지만 핏기 없는 푸릇한 시체이다 (예수의 시신을 주검으로 그린 피에타를 전엔 못보았다).  고단하게 그러나 평온하게 세상을 떠난 얼굴.  더 이상 피흐르지 않지만 아직도 붉은 못자국이 선명한 아들의 시신을 옆에서 안은 어머니의 얼굴은 젊고 아름다운 성녀가 아니다.  밤새 가슴이 타들어갔을, 아직도 미어질, 자식의 처절한 죽음을 지켜본 성모는 눈자위가 까맣고 입술이 바짝 말랐다. 잡아주지 않으면 그대로 툭 쓰러질 주검을, 마찬가지로 곧 무너져내릴 것 같은 어머니가 안스럽게 끌어안고 있다.  처절하고 가슴 아픈 피에타, 눈물이 난다.   


Caravaggio, Supper at Emmaus, 1606

부활한 그리스도. 엠마오로 가는길에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처음엔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가 얘기를 나누고 나서야 예수님인줄 알았다고 한다.  (무슨 얘기냐, 바보들...)  아래 램브란트의 같은 제목의 그림을 보면, 그게 성스러운 순간임을 알겠다. 
그런데 이 까라밧지오의 그림을 보면서 나는 "엠마오네 집에서의 저녁식사인가?" 라고 생각했고, 식탁위의 저 부실한 음식과 주름이 자글자글한 인물들을 보라, 엠마오네는 되게 못사는구나, 했다.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사내, 후광도 없는데 예수님인 줄은 그나마 어떻게 알아보았는지. 퀭한 얼굴에 목에도 주름이 선명한 노파, 1606년의 그림이 어쩌면 이렇게 사실적으로 인물을 그리고 삶의 고단함을 드러내는가. 예수의 인상도, 그림 전체의 색감과 비현실적인 명암도 마음에 든다.


Rembrandt, Supper at Emmaus, 1648, 파리 루브르 뮤지엄.


Francesco Hayez, The Kiss, 1859

장면, 순간, 색감 -- 보는이를 확 사로잡는 그림.  저기 위에 친구들을 배경으로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스스로를 표현한 작가의 작품이다.  Hayez는 바로 여기 브레라 미술학교에서 가르치고 교장도 지냈으며, 이탈리아에서 신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의 이행을 대표하는 작가라 한다.


Giovanni Luteri, St. Sebastian, 1490-91

이 그림을 보고 한참을 키득거렸다. 이건 뭐냐... 섹시 세바스띠아노?
중세로부터 세바스찬 성자의 순교를 소재로 한 그림들이 무수하지만 (중세의 종교화를 가만 들여다보면,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인물의 표정이 웃긴 것도 많다.  기둥에 묶여 돌과 화살을 맞으며 순교하는 성 세바스찬이 :(  이런 단순한 입모양만 그리고 있기도 하고, 어떤 것들은 잔혹하게도 얼굴에 꽂힌 화살과 상처를 정밀하게 그려내기도 한다) 이런 포즈는 처음 본다. 거의 패러디 수준이다.

아무거나 하나 비교해 보자 :


Hans Holbein, Martyrdom of St Sebastian (1524). Pinakothek, Munich, Germany.

브레라 미술관에도 전체적으로 성서, 성자를 소재로 한 (특히 베네치아에서 여럿 본 산 마르코의 이야기, 유해 이전과 관련된) 커~~다란 그림들이 많다. 15~18세기의 롬바르디아파와 베네치아파 작품들이라 한다.


Marco d'Oggiono (1475-c1530), The Archangels Triumphing Over Lucifer

      Giovanni Bellini, Predica di San Marco in Alessandria d'Egitto


Andrea Mantegna (1431-1506), Cristo Morto
원근법과 시선이 독특하다.


Raffaello, 성모마리아의 결혼


스포르체스코 성 Castello Sforzesco

밀라노 시내의 웬만한 건물들도 베네치아나 볼로냐보다 높고 화려하다.  보고 있는 건물들 중에는 전후에 지어진 것들도 많다 한다.  어쨌거나, 화려한 장식에 살짝 질린 나는 이 상대적으로 투박하지만 견고하고 군더더기없고 짜임새와 균형감이 돋보이는 벽돌로 지은 성이 반갑다. (물론 스케일 면에서는 여전히 압도적이다) 유치원생들부터 고등학생까지 무리지어, 뮤지엄 견학을 온 듯, 성의 4면마다 있는 입구로 종알종알 들어온다.  사진은 성 안쪽. 1466년에 완성되었고 회화, 악기, 고고학유물 등을 전시하는 여러개의 미술관과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오래된 건물들, 역사적 유물을 의미있게 잘 살려 쓰고 누구나 드나들 수 있다는 게 마음에 든다.  이젠 정말로 공항 갈 시간이 되어 버려 이 성에 있는 전시를 하나도 못보고 온 것은 마음 상한다.

스포르체스코 성을 나서면 탁 트이고 한가로운 셈피오네 공원이 있다. 멀리 보이는 건 평화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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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merced > 베네치아 Venezia

베네치아는 120개 자잘한 섬들이 177개 운하와 400개의 다리로 연결된 도시이다.  5세기에 서고트족, 훈족, 롬바르디아족의 침입을 피해 이탈리아 북쪽 여러 도시의 주민들이 이주해 와 앞서 살고 있던 토착 어민과 함께 아드리아 해 점토층에 수백만개의 떡갈나무 말뚝을 박아 기층을 만들고 인공의 섬을 만들었다.

수면아래 숲을 이루고, 그 위에 도시를 만든다는 기상천외의 발상은 과연 어디에서 나왔을까. 베네치아가 피라미드나 만리장성처럼 오만한 제왕들의 권력 의지가 아닌, 몇천 유배된 사람들이 생사를 걸고 비상상한 상상력으로 일군 대역사(大役事)였다는 사실이 참으로 경외롭다. 

이탈리아, 지중해의 바람과 햇살 속을 거닐다 | 권삼윤 | 푸른숲 | 94쪽


이탈리아에 간다 하니, 물의 도시 베네치아가 제일 가고 싶었다. 사실 상상이 잘 안 되었다. 정말로 도시 대부분의 길이 물이고 배를 타고 다닌다고?  뱃길 옆으로 기단과 아래쪽은 물에 잠긴 건물들에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산다고? ... 정말이더라.





대운하를 오가는 수상버스에서 바라본 베네치아 거리



대운하에 면한 식당



Vaporetto 라 불리는 수상버스와 버스 정류장.  안내양 또는 안내군이 있어서 정차 (정박)할 때마다 폴에 밧줄을 걸고, "무슨 역입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문을 열어 사람들을 내보내고 들인다.

택시



베니스의 환상 곤돌라.  곤돌라를 타기 가장 좋은 때는 해저물녁 "곤돌라 세레나테" 칸초네를 즐기는 것이라고 한다.  이른 오전 곤돌라 사공이 곤돌라를 청소하고 있다.



손님을 기다리며 어슬렁거리는 곤돌라 운전사들.  흰바탕에 까만색 가로줄무늬가 유니폼인 듯.  곤돌라 사공은 "노래 실력"을 포함한 특별한 면허가 있어야 한다고.  혼자 벌쭘해서 안 탔는데, 바포레토로로는 대운하만 따라 갈 수 있지만 <탄식의 다리>를 포함해 곤돌라를 타고 천천히 작은 물길을 다니며 골목 풍경을 보는 것도 즐거울 것이다.



골목길 풍경.  작은 배 한 척이 간신히 지나갈 만한 좁은 골목들도 있는데, 창문 밖으로 빨래를 널어 두기도 한다.



대운하가 끝날 무렵 아카데미아 다리에서 찍음.  운하의 폭이 확 넓어졌다. 운하가 끝나면서는 확 트이며 아드리아해를 만난다. 저 돔은 산타마리아 델라 살루테 교회.



어딜 가도 느끼는 거지만 광장의 주인은 비둘기이다.  산마르코 광장 곳곳에는 1유로에 비둘기 먹이를 파는 노상들이 있고, 이렇게 사람이 친한 척 하면 어깨에도 내려앉곤 한다.  난 닭둘기가 싫어...  여기는 운하가 끝난 바포레토 정류장부터 산마르코 광장에 이르는 길에 있는, 두깔레 궁전 앞 산마르코 소광장.



산마르코 광장, 종루.

아침에 호텔에서 창문으로 모피코트를 입은 사람들이 더러 있길래, "뭐, 3월 말에 저렇게 추울까" 했는데, 덴장, 대운하를 지나는 동안 얼어죽는 줄 알았다. 역시 바닷바람은 춥다.  광장에 도착하자마자 뭐든 따뜻한 곳에서 뜨거운 마실 것으로 몸을 녹여야 했다.



여기는 카페 플로리안. 1720년에 만들어진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  루소, 괴테, 스탕달, 바이런, 쇼펜하우어, 바이런, 모네, 하이네, 릴케, 토마스 만....  많은 예술가들과 시민들이 단골로 드나든 카페란다.  겨울이면 홍수로 광장과 성당이 물에 잠기는데, 배를 타고 와서 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이탈리아의 어느 카페에서건 서빙을 하는 가르송들이 인상적이다.  플로리안에서 내가 찍은 사진은 젊은 가르송인데, 할아버지 가르송들도 많고 그분들이 참 멋있다. 손님들도 많고 쉼없이 차를 나르면서도 광장 앞쪽에서 모여 수다를 떤다. 그러면서 어느 테이블에서 무언가가 필요한 것 같으면 놓지지 않고 다가간다. 빠뜨리거나 늦지 않고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서두르지 않는, 카페 안팎을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물처럼, 바람처럼, 유려한.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의 얼굴에 평생 지은 미소가 배어있다.  젊은 가르송들이 아무리 친철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그 유려한 경륜이 존경스럽다.   



오후에 광장에 다시 오니 카페 플로리안의 야외에서는 공연이 한창이다.



종루에서 내려다본 산 마르코 광장.



광장에 면한 산 마르코 성당. 9세기 이집트에서 마르코 성인의 유해를 가져와 안치하기 위해 세웠다. 화재로 다시 세우고 여러번 복원 공사를 하기도 했다.  그러면 어쩔 것인가.  뮤지엄 다 돌아보고 오후 4시에 왔더니 여행서에 5시까지라고 되어 있던 것과는 달리 4시면 문을 닫는다고.  그래서 내부는 못보고 이렇게 광장 쪽에서 바깥을 본 게 다다.







성당 위에 있는 네 마리의 청동 말.  13세기 베네치아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에서 가져왔고 B.C. 4-2 대의 작품으로 어디서 만들어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중에 한때는 나폴레옹이 파리로 가져갔다가 되돌려 받았다.  약탈의 역사만 반복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산마르코 성당의 쿠폴라



리알토 다리. 원래는 목조였는데 16세기에 석조로 바뀌었다.  인근에 식당도 많고 쇼핑할 것도 많다. 옛날부터 베네치아 상거래의 중심지. 추워서 목도리라도 하나 사야지 하고 지상의 유리공예상점, 옷가게가 구비구비 늘어선 골목 골목을 따라 걸었다.

점심을 먹고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갔다.  조르조네, 조반니 벨리니, 티치아노, 틴토레토... 베네치아 화풍 거장들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르네상스 이후 16-18세기의 베네치아 화풍은 구도보다는 풍부한 색채와 명암의 아름다움, 감각적 관능미를 추구했다는데, 비교가 될 만한 그림들을 찬찬이 들여다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그보다는 미술관의 고색창연함과 전시된 그림들의 내 키의 2-6배를 넘는 길이와 폭의 스케일에 비해 감동의 폭이 그렇게 크지 않았던 듯 하다.  하지만 도시를 돌아다녀본 소감만으로도, 이곳에 살면 색채에 대한 감성과 관능미를 다른 곳보다 앞서 자연스럽게 체득했으리라는 데는 동감.  

티치아노의 미완성작 <피에타>.  그런데 어디가 미완성이라는 거지?



조르조네 <폭풍> c 1505



Gentile Bellini, The Recovery of the Relic of the True Cross at the Bridge of S. Lorenzo. 1496-1500
이렇게 옛날의 베네치아를 소재로 한 그림들을 보는 것이 재미있다. 500년이 지나도 똑같이 생긴 도시...   



아름다운 산타마리아 델라 살루테 교회










팔각형의 성당 벽면을 따라 걸린 그림마다 작은 성소이다. 바닥의 문양도 아름답다.



성당에 갈 때마다 그런 것 같다.  벽화나 다른 조각상들보다 이 촛불 앞의 예수나 마리아는 상대적으로 초라하고 때로는 조악하기조차 하다.  촛불 한 개값은 80센트~1유로.  서낭당에 천조각을 걸거나 정화수 떠놓고 산신령께 비는 기복신앙와 다를 게 뭐냐.   어딜 가나, 어느 신을 섬기건 사람살이에서 이루고 싶은 꿈과 얻고 싶은 것, 사랑하는 사람들의 건강과 무사를 비는 마음은 다르지 않은가보다.  그러니 나도, 촛불 한 개 켜고, "건강하고 즐거운 여행이 되게 해주세요" 잠시 기도.  이 할머니는 촛불 네 개를 켰다.  모르지, 나만 욕심 많고 다른 사람들은 교회에 들러 마음 가다듬는 뜻으로만 초를 드는지도...



산마르코 성당 옆의 두깔레 궁전. 좌절이다. 여기도 4시면 문을 닫는다. 건물 내부 장식과 그림, 옛날의 회의실... 보고 싶은 게 많았는데, 맘 상했다.



중루에서 내려다 본 두깔레 궁전. 산마르코 성당과 이웃하고 있다.

두깔레 궁전 뒤쪽 감옥 탄식의 다리 근처에 이르니 여행서에서 못 봤는데, 틴토레토 특별전을 하고 있다고 써붙인 Museo Diocesano 가 눈에 띄었다.  들어가서 물어보니 베네치아 주교성의 사적인 소장품들을 번갈아 전시한다고. 이곳만이 아니라 이탈리에서는 그림들이 넘쳐나서인지 그저 웹사이트들이 부실해서인지, 웬만해서는 뮤지엄 웹사이트에서 소장품에 대한 정보를 거의 찾을 수가 없다.  마음에 들었던 그림들 사진찍지는 못하고, 돌아와서 찾아볼까 했더니 낭패다.  

틴토레토, <산타 카탈리나의 생애> 연작 일부.

작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최후의 만찬>을 보았는데, 이런이런, 최후의 만찬이라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길쭉한 테이블에 죽 늘어선 그림만 알아서인지, 평범한 직사각형 식탁에 둥글게 모인 최후의 만찬을 보니 한 데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그 그림에서도 요한인지 막달라마리아인지는 여자 같던 걸.



곳곳에 있는 화려한 가면 상점.

나에게 베네치아의 인상은 초록색과 금색이다. 성당과 그림 액자, 가면의 금장 화려한 반짝임.
초록색 물빛 거리 베네치아, 오래 눈에 선하다. 못 본 곳도 많고 (무라노 섬의 유리공장도 못 보았고, 저녁 시간이 된다면 실내악이나 오페라 공연도 보고 싶다)  베네치아... 다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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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10 14: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urblue 2006-04-10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
 
 전출처 : balmas > 볼리바리안 혁명과 대안세계화운동

[사회운동]에서 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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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사회운동

 

볼리바리안 혁명과 대안세계화운동

류주형 | 조직교육부장
 


서론

지난 1월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개최된 다중심 세계사회포럼에서는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서 신자유주의적 금융-군사세계화에 대항하여 분출 중인 사회운동과 최근 잇따라 등장하고 있는 ‘좌파’ 정권의 관계가 뜨거운 쟁점이 되었다. 특히 이 논란의 중심에는 본 포럼을 직접 지원하며 미 제국주의에 맞서 역내 좌파정부와 사회운동이 단결할 것을 호소한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이 위치했다.
지난 해 11월 아르헨티나 마르 델 플라타에서 열린 미주정상회의에 즈음하여 라틴 아메리카의 사회운동들은 ‘미주지역자유무역협정(FTAA)’ 체결 논의를 효과적으로 중단시켰는데, 당시 차베스 대통령은 정상회의장 안팎에서 ‘미주대륙을 위한 볼리바리안 대안(ALBA)’을 주장한 바 있다. 포럼의 마지막 날 행사로 열린 세계사회운동총회에서 사회운동들은 최근 들어 각 국에서 좌파 정권이 줄을 이어 등장하고 있는 현상이 남미 대륙에서 폭발하고 있는 자유무역, 군사주의, 사유화 정책에 반대하고, 자연자원과 식량주권을 지켜내기 위한 사회운동의 흐름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결과적으로 세계사회운동총회가 ‘좌파 정권에 대한 정치적 자율성’과 ‘각국 정부가 신자유주의를 수용하지 않도록 압박’하는 것을 (재)천명하며 논쟁은 일단락되었지만, 당초 세계사회포럼 원리헌장의 ‘정당 및 무장조직 배제 원칙’ 논란이 전진적으로 해소된 것은 아니다.1)
오히려 이러한 쟁점 이동은, 세계사회포럼의 원리헌장이 과거 라틴 아메리카의 좌익적 정당과 대중운동이 인민주의로 변질된 역사적 조건을 고려한 결과라는 사실을 간과한다. 하지만 역으로 ‘운동의 운동’ 또는 ‘공간’으로서 규정된 세계사회포럼이 이를 어떤 방식으로 해결/실현해 나갈 것인가라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으며, 그 결과 세계사회포럼에 관한 복합적인 논란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는 세계사회포럼 자체의 전망을 둘러싼 논쟁을 넘어 이행에 대한 기존의 통념을 쇄신하기 위한 이론적·정치적 차원 전반의 기획을 요청하기 때문이다.2)

이에 오늘날 차베스-베네수엘라의 ‘볼리바리안 혁명’이 이행에 대한 기존의 통념을 쇄신하는 요소를 내포하고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향후 대안세계화 운동의 전망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이 글은 우선 라틴 아메리카와 베네수엘라의 정치적·경제적 조건에 대한 역사적 분석을 시도한다. 다음으로, 일종의 지역적·민족적 특수성으로서 제국주의의 지배와 인민주의적 전통의 형성이라는 맥락에서 사회운동의 출현과 대응, 변모를 살펴본다. 이 속에서 차베스 정권의 성격 및 ‘볼리바리안 혁명’의 특징을 분석하면서 대안세계화 운동의 진전을 위한 몇 가지 쟁점을 추출한다.
 
[나머지 부분은 아래 링크를 누르세요~]

http://www.movements.or.kr/bbs/view.php?board=journal&id=1506&page=2&cv_mod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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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水巖 > 파울 클레 展 - 눈으로 마음으로

 

파울 클레 展 : 눈으로 마음으로

전시일정 : 2006년 4월 7일(금) - 7월 2일(일)
전시장소 : 소마미술관(SOMA)


음악의 감각적 리듬과 무한한 환상의 세계를 표현한 
                                                     20세기 서양 미술의 거장

환상적이고, 재치 있으면서, 때로는 괴기스럽기도 한 이미지의 세계를 보여준 파울 클레(1879-1940)는 현대 미술가 중에서도 가장 지적이고 다양한 작품세계를 보여준 작가이다. 스위스 베른 근처에 있는 뮌헨부흐제의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바이올린 연주자였고, 화가였으며, 1920년대에는 독일의 조형미술학교인 바우하우스에서 교수직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는 폭넓은 독서를 하였고, 철학, 식물학, 생물학, 인류학 등 학문 전반에 대해 광범위한 관심과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 풍부한 이미지의 원천은 자연이었다. 그는 바다나 산, 들을 찾았고 조개껍질, 식물, 꽃, 나무 등을 관찰했다. 또 캔버스뿐 아니라 삼베, 천, 거즈, 나무판 등 다양한 소재를 사용했으며, 유화, 템페라, 수채, 과슈, 동판, 드로잉 등 다양한 기법들을 실험했다.

클레의 작품은 완전히 추상적이지도, 완전히 형상적이지도 않다. 그의 작품은 고도로 숙련된 드로잉 기법을 보여주는 한편, 색채의 상호 관계에 대한 섬세한 감수성을 드러낸다. 그의 작품들은 대개 소품들로, 기본적으로는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하지만, 단순한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 심원한 지성으로 파악한 자연과 인간, 그리고 세계에 대한 이미지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자신이 보고, 읽고, 들었던 것을 바탕으로 그때까지 아무도 해내지 못했던 원초적인 상징과 형태를 창조해냈다. 그의 미술은 시, 음악, 그리고 꿈에 가까우며, 한눈에 들어오는 미술이 아니라 보고 생각하게 하는 미술이다. 마치 하나하나가 작은 보석과도 같은 느낌을 주는, 무려 9,100여 점에 달하는 클레의 작품들은 몇 마디로 요약하기 어려우리만큼 다양하고 다면적인 미술세계를 이룬다.


파울 클레 : 눈으로 마음으로

주최 : 소마미술관, 동아일보사, (주)로렌스 제프리스
후원 : 국민체육진흥공단, 주한 스위스대사관
협찬 : (주)KT 협력 : 파울 클레 미술관


< 관람 시간>
* 일,화,수요일 10:00 - 18:00
* 목,금,토요일 10:00 - 21:00
* 매주 월요일은 미술관 정기 휴관일입니다(야외 조각공원은 개방)

< 관람료>
* 성 인(19-64세) : 개인 10,000원 / 단체 8,000원
* 청소년(13-18세) : 개인 8,000원 / 단체 6,000원
* 어린이(4-12세) : 개인 6,000원 / 단체 4,000원

* 무료 : 장애우, 소년소녀가장, 4세 미만, 65세 이상
* 20명 이상부터 단체 요금 적용 / 군인은 청소년 요금 적용

< 단체관람 예약 관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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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 클레_연기하고 있는 아이들_판지 위 종이에 펜, 붓과 연필_6.6×16.5cm_1913_1908



파울 클레_색채 띠에 연결된 추상적 색채의 원들_판지 위 종이에 수채_37×52×3.5cm_1914



파울 클레_그리고 아, 나를 더욱 쓰라리게 하는 것은 당신이 내가 가슴속으로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모른다는 겁니다_판지 위 종이에 펜과 수채_7×24cm_1916



파울 클레_병사_판지 위 면에 칼라 페이스트_46.8×34.9×4.1cm_1938



파울 클레(Paul Klee)는 음악가, 화가,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며 20세기 미술사에서 가장 지적이면서도 다양한 주제와 기법을 보여준 화가입니다. 그는 고도로 숙련된 선과 세련된 색채를 사용하여 자신만의 독자적인 미술세계를 이루어냈습니다. "파울 클레: 눈으로 마음으로"는 화가 자신이 ‘미술이란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보이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듯이 그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자연과 세계를 마술적이고 환상적인 상징과 형태, 그리고 섬세한 드로잉으로 재현하고 있음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특히 이 전시는 단독으로 클레 작품을 공개하는 국내 최초의 전시로서 무한한 작가의 상상력을 미술에 관심을 가진 모든 분들에게 전달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파울 클레_줄타기 곡예사_석판화_44×27.9cm_1923



파울 클레_동물들의 만남_나무판 위 판지에 칼라 페이스트와 유채_66.4×77.6×6.1cm_1938



파울 클레_눈_삼베에 파스텔_45×64.5cm_1938



파울 클레_무제(균형과 보트)_애벌칠 한 삼베에 칼라 페이스트와 유채_47.1×50.1×4cm_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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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도스토예프스키의 '표현예술'

오래전에 모출스키(1892-1950)의 <도스토예프스키1,2>(책세상, 2000)에서 발췌/정리한 부분을 옮겨온다. <악령>에 관한 해설인데, 도스토예프스키의 '표현예술'에 대한 저자의 해명을 포함하고있다. 모출스키의 평전은 한국어로 구해볼 수 있는 가장 권위있는 책이다. 양과 질에 있어서 가장 깊이있고, 해박한 도스토예프스키 전기라고 할 수 있다. 바흐친의 <도스토예프스키 시학>(정음사, 1989; 중앙대출판부, 2003)과 더불어 도스토예프스키 이해와 연구에 있어서 필독서라 할 수 있다. 아래 사진은 러시아문학자 콘스탄틴 모출스키.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의 구조와 기법의 모든 특수성은 예술적 표현성의 원칙으로 설명된다. (1)주인공의 개성을 중심으로 한 사건 집중, (2)구조의 극적인 요소, 그리고 (3)어조의 수수께끼가 바로 '표현 예술'의 세 가지 특징이다.

(1) 작가는 단지 인간과 그 세계, 그리고 그의 운명에 대해서만 알고 있다. 주인공의 개성이 작품 구성의 중심축이다(이 작가와 주인공의 자세한 관계는 바흐친의 저서를 참조할 수 있다. 바흐친은 이러한 특징을 '다성악적 소설'이란 개념으로 정식화한다). 이 축을 중심으로 등장인물들이 배분되고, 플롯이 구성된다. <죄와 벌>의 중심에는 라스콜리니코프가 서 있다. 그리고 <백치>의 중심에는 므이시킨 공작이 있다. 이런 집중화는 <악령>에서 그 극치에 이른다. 작가의 노트에서 우리는 이미 다음과 같은 메모를 발견했다. "스타브로긴이 전부다." 그리고 실제로 소설 전체가 스타브로긴의 운명 그 자체이며, 모든 것이 그에 관한 것이고, 모든 것이 그를 위한 것이다. 아래는 연극 <악령>의 한 장면.

(2) 도스토예프스키의 표현 예술의 두번째 특징은 바로 연극성이다. <악령>은 비극적이고 희비극적인 가면들의 무대이다. 도입부 후, 다시 말해 과거 사건들에 대한 짧은 설명과 주인공들의 성격 묘사 후에 발단이 뒤따른다. 스타브로기나는 스테판을 다샤와 결혼시킬 계획을 세운다. 발단은 두 개의 극적인 대화로 구성된다.도스토예프스키의 인간 세상은 복잡한 상호왕래와 도덕적인 전일체처럼 이루어진다. 모든 주요 인물들이 '중요한 날'인 일요일에 '우연히'; 바르바라의 응접실에서 만난다. 이러한 운명적 우연성은 도스토예프스키 세계의 법칙이다. 그는 극적인 기법인 이 관례를 심리적 필연성으로 변화시킨다. 그의 등장인물들은 사랑과 증오로 서로에게 끌리며, 우리는 그들의 접근을 주시하고 갈등의 불가피성을 예감한다. 작가는 폭발을 앞두고 속도를 지연시키며 우리를 괴롭히고(독자의 흥미를 높이기 위해 진행을 늦추는 수법), 우리의 기대를 점점 고조시키면서(점층법), 거짓 대단원으로 우리를 속이고(급변), 마침내 대파국으로 놀라게 한다. 이것이 그의 역동적인 구성방식이다.

(3) 도스토예프스키의 표현예술이 갖는 세번째 특징은 바로 재미다. 작가는 독자들을 자신이 의도한 세계로 끌어들이고, 그들의 공감과 참여를 요구한다. 독자의 활동은 사건의 신비스럽고 낯설며 특이하고 예기치 못한 성질에 의해 유지된다. 작가는 자신의 개인적인 평가와 수수께끼, 암시 등으로 인상을 예상하고 강화한다. 수수께끼들은 또다른 수수께끼들 위에 계속 쌓인다. 이러한 수수께끼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좋아하는 표현기법이다. 하나의 비밀을 파헤치면 또다른 비밀이 나타난다. 끊임없이 비밀을 파헤쳐도 여전히 '혼돈의 숲'을 빠져나오지 못한다. 우리는 복잡한 여러 가지 사건들의 그물 속에 빠져 어쩔 수 없이 탐구자 또는 탐정이 된다. 아래는 안제이 바이다 연출의 <악령>에 등장하는 스타브로긴.

도스토예프스키는 자신의 노트에서 소설의 독특한 어조에 대해 썼다. "이 작품의 어조는 네차예프(표트르 베르호벤스키)와 공작(스타브로긴)을 설명하지 않는 데에 있다. 그(네차예프)를 숨겨두고 강렬한 예술적 특징을 통해서 아주 조금씩 공개한다." 공작은 '불가사의하면서도 낭만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그리고 이것은 소설 속의 두 명의 '악마들'에게 특별하면서도 고통스러운 표현성을 부여한다. 무의 공허함은 그들의 환상적인 특징들 속에서 빛난다. 부정과 파괴의 영혼들은 끝까지 설명되거나 표현되지 못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뛰어난 창작술은 어둠의 점층과 빛의 대조, 그리고 이중 조명 속에 존재한다.(642-650쪽)

06. 0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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