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가, 드디어 첫 월급을 받았다고, 약속했던 근사한 저녁을 사겠다고 전화했다. 스물 여덟에 처음 받은 월급은, 설령 그것이 통장에 찍힌 숫자에 불과하더라도, 그에게는 무척 큰 기쁨인 모양이다. 학교를 졸업하고도 4년간을 그는 공부만 했다. 친구들도 후배들도 모두 직장을 얻어 돈을 벌고 있는데, 자신은 여전히 집에서 용돈 타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그에게는 상당한 중압감이었을테고, 실상 4년간 아무것도 한게 없다고 한다. 공부를 하지 않을 때조차 맘 편히 있지를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제, 그동안 하지 못했던 여러가지 일들을 실컷 해보려고 마음먹고 있는 듯 하다.
그가 취직을 하고 처음 만났을 때, 난 그에게, 나도 지금까지 제대로 한 게 하나도 없어, 라고 말했다. 사실이다. 학교를 졸업하기도 전부터 직장을 얻어서 지금까지 7년하고도 6개월을, 거의 쉬지 않고 돈을 벌었다. 그러나, 스스로의 힘으로 생활을 영위해 왔다고 해서, 그가 못한 무언가를 많이 했는지, 알 수가 없다. 다만 그가 가졌던 불안함이나 불편함으로부터 자유로웠을 뿐일게다.
얼마전 친구와 저녁을 먹었다. 그 날, 그는 별로 기운이 없었다. 나이 들면서 점점 고민을 안하게 되니까 사람들 사는 모습이 다 비슷해지나 봐, 라고 한숨섞어 가며 말을 했다. 일단 돈을 벌기 시작하면, 어떻게든 그 상태를 유지해야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돈을 모아야하고, 결혼이라도 하게 되면 다시 생활이 문제가 되고, 애들 키우고, 집 사고, 그런 걱정들이 끊임없이 생겨나서, 젊은 날 가졌던 꿈도 고민도 모두 희미해진다는 것이다. 친구는, 가구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전혀 관계없는 대학을 졸업한 후, 다시 디자인학과에 입학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학교를 끝마치지 못했고, 지금은 그저 열심히 돈을 벌고 있다. 그래도 이탈리아의 유명한 디자인스쿨에 가고 싶다는 바람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날은, 자신의 꿈을 실천하기 위한 노력도, 삶의 방향에 대한 고민도 더 이상 하지 않는다고, 이제는 왜 그런 바람을 가졌는지조차 모르겠다고 얘기했다. 친구의 얘기는, 내 상황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나는 친구의 말에 맞장구를 칠 수가 없었다. 그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렇게 별로 유쾌하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그는 다시 일을 하러 갔다.
취직했다고 좋아하는 후배를 보면서, 그 날의 친구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후배는, 그 동안의 부담을 털어버려서 홀가분할테고, 새로 시작한 일에 대한 의욕도 충만할테다. 그러나 한해 두해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지금처럼 기쁘고 즐거울 수 있을까. 밥벌이의 지겨움을, 곧 느끼게 되지 않을까. (김훈이 어떤 의미로 밥벌이의 지겨움이란 말을 썼는지는 모르겠다, 읽어보지 않아서. 그러나 친구나 내가 느끼는 감정에 꼭 맞는 표현이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상당히 비관적이다. 그러나, 나 역시 별 고민없이 살고 있기에, 실제로 비관적이지는 않다. 우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