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생일이 다가온다. 항상 고민되는 건 이번에는 무슨 선물을 할까 하는 거다. 엄마는 이제 필요한 것도 별로 없고 가지고 싶어 하는 것도 거의 없다.
엄마는 사는 게 재미있을까?
작년 봄 아버지가 간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다. 병원에서는 이미 손 쓸 길 없다 했고, 남은 것은 민간요법 뿐. 엄마와 동생과 나는 이리저리 수소문해서 좋다하는 것들을 모두 사 들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우리가 준비한 것들을 거의 드시지 못하시고 두 달이 채 못돼 돌아가셨다.
엄마는, 당시 꽤 강한 모습을 보이셨다. 거의 눈물을 보인 적도 없고, 힘들어 하지도 않으셨다. 아버지 없으면 못 사신다고 한 번 오열하기는 했으나, 막상 돌아가실 때가 되자 편안하게 가셔서 다행이라고 담담하게 받아들이셨다.
보름 후 이번에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관절염을 비롯한 각종 노환이 있기는 했으나 몇 년간 쭉 같은 상태셨고, 그렇게 갑자기 가실 줄은 아무도 몰랐다. 아마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그 때까지 부여잡고 있던 삶의 끈을 그냥, 놓아버리셨던 것 같다.
그렇게 힘든 일을 연달아 겪고 나서, 엄마가 집에 혼자 있다는 점이 마음에 걸리긴 했으나 동생이나 나나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아는 사람 아무도 없고 아는 곳도 없는 서울에 올라와 함께 살자고 말하는 것도 무리였으니까. 다행히 가까운 곳에 작은 아버지가 살고 계서서 의지할 수 있었다.
이후 한동안 동생과 나는 매주 번갈아 집에 내려갔다. 몇달 후 동생이 결혼하고, 엄마도 조금 안정되는 것 같고 해서, 그리고 주말마다 오는 거 힘드니까 자주 오지 말라고 말씀하셔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갔다. 엄마는 동네 아주머니들과 이상한 모임 같은 데도 나가고, 간혹 아르바이트라며 예식장 일도 나가셨다. 물론 동생이나 나나 힘든 일 하지 말라고 극구 말렸지만, 엄마가 심심하다고 하는 데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올 봄, 작은 아버지가 전화를 하셨다. 엄마가 쓰러져서 병원 응급실에 실려갔다고. 갑자기 피를 한 바가지나 쏟고, 겨우 작은 집에 전화를 하셨다 한다. 동생과 나는 깜짝 놀라 부리나케 병원으로 갔다. 병명은 호흡기 협착증. 원래 호흡기가 나빴는데, 작년부터 이래저래 신경쓰고 무리하고 몸이 쇠약해져 그렇게 된 거란다. 다행히 다른 데는 이상이 없어서 며칠 후 퇴원하셨다. 절대 피곤하면 안 되고, 공기 나쁜 곳에도 가지 말고, 편안하게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했다.
이후 이상한 모임이나 일이나 안 가시는 것은 물론이다. 요즘은 매일 작은 집에 가신다. 거기서 가게 봐 주시고, 같이 식사하고, 사촌 동생들과 놀아주신다. 그리고 일주일에 두 번 여성회관에서 하는 강의를 듣는다. 나와 올케는 일주일에 두세 번 전화를 한다. 동생은 한 번 정도 한단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꼴로 집에 간다.
엄마는 아직 환갑이 안 되셨다. 젊은 나이인데, 남편도 없고, 건강이 좋지 않아 어딜 마음껏 다니지도 못한다. 딱히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화초와 채소와 강아지 정도가 엄마가 재미를 느끼는 대상일 것이다. 그런데, 엄마는 사는 게 재미있을까.
아버지한테는 정말 아무것도 못해드렸다. 그 전까지 나는 나쁜 딸이었고, 집에 가는 것은 물론 전화도 자주 하지 않았다.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자, 다른 무엇보다 엄마한테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멀리 떨어져 살면서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다. 되도록 자주 전화하고 자주 집에 가는 것 외에 뭘 할 수 있을까.
좀 이르긴 하지만, 나는 엄마가 재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좋은 아저씨 만나서 서로 의지하며 노년을 보낼 수 있으면 한다. 아직 한 20년은 더 사실 수 있을텐데, 계속 지금 같으면 너무 외로울 것 같다. 자식들이 아무리 효도한다고 해도 그 외로움은 가시지 않을 것 같다.
내년 엄마 생일엔 남자 친구라도 만들어 드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