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내가 버린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내 앞에 모니터를 들이대고 이런저런 이미지와 글을 보여주면서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하는 말이란게 - 자, 이걸 보면서 날 떠올려, 날 잊지 말라구 - 하는 유치찬란한 대사였던 것이다.

잠에서 깨어, 그래도 왠지 아득한 느낌으로 잠시 허공을 쳐다보다,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 남자 조만간 결혼한다고 했는데, 이게 대체 뭔 꿈이람, 쳇.

아무래도 파리의 연인 때문인가보다. '사랑하니까 보내는 거야' 하던 박신양의 대사가 나도 모르게 머리 속을 떠돌고 있었던 모양이지.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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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rsta 2004-08-18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아하던 사람과 헤어지고 나서 후딱. 다른 사람과 결혼해 버리는 사람을 많이 봤습니다.
흠.. 사람들이 다 행복하면 좋겠어요.

urblue 2004-08-18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헤어질 땐 그만한 이유가 있는거니까 그럴 수도 있겠죠...
네, 저도 모두들 행복하면 좋겠어요. ^^

tarsta 2004-08-18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그만큼 허.해서 그럴 것 같아요. 어차피 그사람과 안될바에야...!!! 하면서 말입니다.
저도 그심정 이해해요. (먼산.. 물끄러미.)

어디에도 2004-08-18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리의 연인, 에서 박신양이 그 대사 칠 때 저도 생각했었죠.
정말로 사랑하면, 보낼 수 있는 것일까? 나 같은 인간은 수양을 더 하고 도 닦은 후에나
가능한 일은 아닐까?
흠,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님.
저는 제가 버린 사람을 주워 담으면 한 푸대가 넘을 정도로 많을지도 몰라요.
근데... 푸대 속의 인물들 아무도, 제가 버린 줄을 아마 까맣게 모를것이여요.흣흣.
님이 그런 꿈을 꾸신건 그 사람이 아직 조그맣게 남아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이렇게 글을 쓰실수 있는 건, 모두 다 잊었기 때문일까요?

urblue 2004-08-18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버렸으니 뭐 미련도 아쉬움도 없어요. 다만 지나치게 오랜 시간을 함께 했기에 어쩔 수 없이 남아 있는 기억이 있기는 하죠. 그치만 이젠 생각도 안나는걸요. 갑자기 꿈에 나타나서 오히려 놀래버렸다니까요.
사랑하면 보낼 수 있을까, 그건 잘 모르겠네요.
 

왕년에 누구나가 쿨(cool)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시기가 있다.

고등 학교가 끝날 즈음, 나는 마음에서 생각하는 것의 반밖에는 입 밖에 내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이유는 잊어버렸지만 그 생각을 몇 년인가에 걸쳐 나는 실천했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내가 자기가 생각한 것의 반밖에 말할 수 없는 인간이 되어 버린 것을 알아차렸다.

그것이 쿨함하고 어떤 관계가 있는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일년 내내 서리를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오래된 냉장고를 쿨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나도 그렇다.

- 하루끼,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스무 무렵 바람은 가볍게 살기였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오래 고민하지 않고, 보이는 대로 단순하게 받아들이고, 느끼는 대로 표현하기.

 

그로부터 십여 . 지금의 나는 예전에 내가 바라던, 만큼의 모습을 하고 있다.

 

곱씹을 모르고, 다른 방향에서 생각할 모르고, 돌려 말할 모르고, 그래서 융통성 없고 즉물적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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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 2004-08-17 0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을 바람직하게 사는 방법을 가장 멋지게 뚫고 계시는 유아블루님,
님은................이슬맺힌 시원한 맥주병처럼 멋진 분입니다..

어디에도 2004-08-17 0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등 학교가 끝날 즈음, 나는 마음에서 생각하는 것의 반밖에는 입 밖에 내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생각하니 저도 비슷한 결심을 했었어요. 그런데 역시, 하루키의 '그'가 '생각한 것의 반밖에 말할 수 없는 인간'이 되어버린 것에 반해 저는, 그저 말 없고 어중띠고 소신없고 버벅거리는 인간이 되었군요. 예전에 바라던 딱, 그 만큼의 모습,이라니. 님은 대단한 분. 저에게 즉물적으로 융통성 없이 말해 주세요. 돌려서 말하지도 말고 곱씹지도 말고 대놓고 말해주세요.
어디에도, 이 느끼한 것아! 하구요. -_-

(오오, 멍든 사과님을 이 곳에서 뵙다니 내가 왜이리 반가울까요. 블루님은 좋겠어요~)



하얀마녀 2004-08-17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으로 보건대 뒤끝이 없고,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비꼬아서 말하지 않고, 가치관이 뚜렷한 분이군요. ^^

urblue 2004-08-17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과님, 과분한 말씀과 '이슬맺힌 시원한 맥주병'이라는 멋진 표현에 저 넘어갑니다. 고맙사와요. ㅜ.ㅜ

어디에도님, '예전에 바라던 딱, 그 만큼의 모습' 이거 결코 좋은 의미 아니라구욧! 대단하다니. 그리고 님한테는 걍 강짜놓잖아요? 더 이상 뭘 바래...

마녀님, 님 때문에 웃다 허리 삐끗할...뻔 했습니다. 그렇게 멋지게 해석해 주시다니요. ^^ 황송할 따름입니다.

어디에도 2004-08-17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허허~ 더 이상 뭘 바래... 이거 너무 웃깁니다.
웬지 앙칼진 에미나이, 같은 느낌이 문득 드는 것이. 으허허~
사과님과 마녀님이 합동작전으로 멋진 글을 남겨주셨는데
혼자 중간에 껴서 이상한 소리만 중얼중얼.
아~ 전 그냥 바라던 모습으로 된 것, 그 자체를 부러워한 것 뿐인 것을. 아~ 매정하여라~
(서재를 넘나들며 계속되는 오바질)

urblue 2004-08-17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라, 님이, 돌려서 말하지도 말고 곱씹지도 말고 대놓고 말해주세요, 라고 하셨던 거 아닌가요? (모른척~~)
 

요즘은 뉴스를 거의 보지 않는다. 봐 봐야 건강에 해롭기만 할 뿐이다. 그런데 울 보스가 나한테 이 기사를 보라고 알려줬다. 아, 짜증나.

 

한나라당에서는 평일 오전 9시 최고위원 또는 주요 당직자들이 참석하는 간부회의가 열린다. 자신들을 주시하는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화려한 말의 연찬이 펼쳐지는데, 여기에서 나오는 말의 80% 이상이 정부 여당을 향한 비판과 독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은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자중하고 있어서 비중이 줄어들었지만, 여야간 공방중에 나온 자극적인 발언들을 모아 큼지막한 제목으로 보도하는 게 정치부 기자의 중요한 하루일과인 적도 있었다.

국가정책의 주도권을 쥔 쪽은 여당이다보니 야당이 딱히 할 수 있는 게 '정부여당 비판'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언론이 정치인들의 자극적인 말과 튀는 논리를 좇는 속성이 있기에 이에 영합한 정치인들이 마지노선을 넘나드는 발언을 할 때도 있다.

12일 오전 상임운영회의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전날 행한 군 과거사 정리 발언이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국민들이 최근 과거문제에 관심이 있고, 군에서도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으니 군이 스스로 과거문제를 스스로 밝히고 정리하라는 게 노 대통령의 얘기였다.

노 대통령 발언은 '군이 과거 의문사 조사에 적극성을 보여달라'는 주문으로 해석되지만, 한나라당은 이 정도의 발언조차 감내하고 넘어갈 수 없는 분위기다. 일본육사를 나온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녀 박근혜 의원이 당 대표를 맡으면서 과거사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은 더욱 두드러졌다.

"군대에서도 과거사 캐기가 나오는데, 간단하게 한 말씀 드리겠다. 해방직후 일본군, 만주군, 광복군 세 가지 계열로서 우리 군이 창설됐는데 광복군계는 숫자가 적어서 별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지 못하고 쇠퇴해버린다. 그래서 실제적인 능력과 전문성, 식견을 가진 일군과 만군계가 해방 후 자리잡게 되고 우리 군의 근간이 형성됐다.

1950년대 참모총장이 8명이었는데, 일본군계 출신이 정일권씨 등 3명이나 된다. 우리 군의 과거사를 캐겠다는 얘기는 군의 뿌리 자체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것인데, 국가 정체성을 완전히 뒤엎겠다는 것이다. 어제 군의 과거사를 캐겠다는 얘기들이 도대체 무슨 얘기인지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부터 부정하겠다는 것인지 의아스럽다."

이날 회의에서 기획위원장을 맡고 있는 심재철 의원이 했던 말이다.

'군의 과거사 정리'를 군의 뿌리를 흔드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한 심 의원은 스스로의 뿌리부터 심각하게 되짚어 봐야 할 것 같다.

심 의원이 누구인가? 80년 '서울의 봄'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으로 서울역 시위를 주도했다가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돼 징역 5년형을 선고받은 사람이다. MBC 기자 시절 노동조합 설립에 적극 참여했고, 92년에는 파업을 주도했다가 구속까지 당한 사람이다.

'역사 바로세우기' 흐름타고 정계 들어온 사람이 '군 과거사 정리'는 반대?

심 의원은 96년 한 차례 낙선의 아픔을 본 뒤 2000년 지역구에서 당선됐고, 지난 총선에서는 탄핵 역풍이라는 악재에도 불구하고 재선 고지에 올라섰다. 그런 그가 정치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96년 1월.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구속으로 상징되는 이른바 '역사 바로 세우기'를 하며 정치권 세대교체의 물꼬를 튼 것이 그에게 정치권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95년 5.18 특별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5∼6공의 최고 권력자들에 대한 단죄를 꺼려했던 검찰의 논리는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전직 국가원수들에 대한 처벌은 정치보복이고, 국가정체성에 대한 도전이라는 게 당시 수구세력들의 논리였다.

궁색한 논리는 박계동 의원의 노태우 비자금 폭로 이후 비난 여론이 폭발하자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성공한 쿠데타가 영원한 권력을 약속하지 못하고, 일단 허물어진 권력은 역사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95년 초겨울 두 전직 대통령의 구속을 지켜본 사람들에게 준 교훈이었다.

심 의원이 '군의 과거사 정리'를 비판한 논거로 돌아가보자. 국군 창설과정에서 일본군 출신들이 광복군을 제치고 어찌어찌 대세를 장악해버렸는데, 이러한 현실을 건드리면 우리 군의 뿌리가 흔들린다는 것이다. 심 의원은 이 문제를 국가정체성 문제로 연결시켜 이념 논쟁을 촉발시키려고 했다.

자신들의 비행을 갖은 논리로 미화하고 합리화하려던 군사쿠데타 세력들은 95년에는 진실과 거짓이 백일하에 드러나자 변변한 저항도 못해보고 심판의 오랏줄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9년전 '역사 바로세우기'를 주도한 YS의 신한국당(한나라당 전신)에서 정치를 시작한 심 의원이 지금의 '역사 바로세우기'는 왜 안된다고 토를 다는지 납득할 수가 없다.

이날 회의에서 심 의원의 말을 이어받은 김용균 제1사무부총장의 얘기는 더욱 이해할 수가 없다.

"일본군과 만주군은 전혀 다른 것이다. 만주군은 만주제국이 따로 있었고, 물론 일본이 만주국을 조종했느냐는 별개의 문제로 하고... 만주군과 일본군은 전혀 별개이고, 만주군과 관동군은 전혀 관계없다. 박정희 대통령은 만주군 소속으로 성적이 우수해서 일본육사를 졸업했다. 중국의 장개석 장군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사관학교를 나와서 성적이 우수해서 일본사관학교를 나왔지만, 일본군인이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도 만주군 소속이었지, 일본군이나 관동군 소속이 아니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김 부총장 얘기는 일본과 만주국의 관계를 따지지 않으려는 것에서부터 논리의 허점을 드러낸다. 일본이 중국 동북지방에 세운 괴뢰국가가 만주국이었고, 중국이 실체를 인정하지 않았던 이 국가의 실세가 다름 아닌 관동군(일본이 중국과 소련을 침략할 목적으로 1906∼45년 중국 동북지방에 배치했던 일본군 주력부대) 사령관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육사 나온 장개석이 일본군 아니었으니 박정희도...?

1932년 9월 한국독립군의 이청천 총사령관이 지린성 자위군과 합세해 지린성과 헤이룽장성 사이의 요충지 쌍성보로 진격할 때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만주군 3천명과 소수의 일본군이었다. 한·중 연합군은 초기에는 대승을 거두었지만, 항공기까지 동원한 일·만 연합군의 역습으로 결국 퇴각하고 말았다.

일본의 괴뢰군대로 독립군 소탕에 동원된 만주군을 놓고 부득불 "그래도 일본군은 아니지 않는가?"라고 말하는 것은 일본에 기생해 동족들의 고혈을 짠 친일파 조선인들을 놓고 "그래도 일본인은 아니지 않는가"라고 두둔하는 것과 하등 다를 게 없다.

만주군관학교를 나와 일본육사에 입학한 박정희와 일본유학 시절 일본군에 근무한 장개석을 평면적으로 비교하는 것도 문제다. 장개석이 1906년 바오딩 군관학교를 거쳐 일본육사에 들어가 일본군 특유의 군율을 몸에 익힌 것이 1909∼11년이었다.

그러나 그 뿐이다. 똑같이 일본육사를 거쳤지만, 박정희와 장개석의 인생행로는 전혀 달랐다. 장개석은 1907∼1911년 일본유학 시절에 만난 공화파 유학생들의 영향을 받아 반청운동에 뛰어들었다.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귀국한 장개석은 청군과의 전투에 참여했다. 장개석의 일본육사 경력이 일본이 아닌 모국의 미래를 위해 활용된 것은 그의 이념성향과 상관없이 평가돼야 할 부분이다.

반면 박정희는 어땠는가? 일본육사를 졸업한 뒤 만주군 장교로 활약하며 일본제국주의의 이익에 복무한 그의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한국교원대 신주백 교수는 2002년 논문(만주국군 속의 조선인 군인들)에서 만주군관학교 출신 조선인들의 의식에 대해 분석했다. 그는 논문에서 "당시 군관학교 재학생 대다수는 중국인이었고 한국인은 소수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중국인들이 항일비밀결사를 꾸려 기회가 날 때마다 장개석이나 모택동의 군대로 달아난 반면, 광복군·조선의용군 등을 향해 탈출한 조선인 학생·장교는 없었다고 한다.

이처럼 '입신양명'을 노린 친일파들이 민족을 배반했는지 여부를 가리는 것이 친일반민족진상규명법의 핵심이고, 이들의 행태가 떳떳한 검증작업을 받는 것이 만시지탄이라는 느낌까지 드는 요즘이다.

59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과거사 청산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거스르는 한나라당 당직자들의 무리한 논리 전개가 기자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한다.

2004/08/12 오후 8:23
ⓒ 2004 OhmyNew

 

이 XX들아, 차라리 대한민국이 여전히 일본 식민지라고 우겨라.

점심 먹은 거 소화 하나도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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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마녀 2004-08-13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이 콱콱 막힙니다. 딴나라당 간부회의장에 크레모아나 한방 날렸으면 속이 시원하련만.

mira95 2004-08-13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뉴스 거의 안 봅니다.. 속 터져서...

2004-08-14 02: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08-14 04: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08-14 0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08-14 17: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엄마 생일이 다가온다. 항상 고민되는 건 이번에는 무슨 선물을 할까 하는 거다. 엄마는 이제 필요한 것도 별로 없고 가지고 싶어 하는 것도 거의 없다.

엄마는 사는 게 재미있을까?

작년 봄 아버지가 간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다. 병원에서는 이미 손 쓸 길 없다 했고, 남은 것은 민간요법 뿐. 엄마와 동생과 나는 이리저리 수소문해서 좋다하는 것들을 모두 사 들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우리가 준비한 것들을 거의 드시지 못하시고 두 달이 채 못돼 돌아가셨다.

엄마는, 당시 꽤 강한 모습을 보이셨다. 거의 눈물을 보인 적도 없고, 힘들어 하지도 않으셨다. 아버지 없으면 못 사신다고 한 번 오열하기는 했으나, 막상 돌아가실 때가 되자 편안하게 가셔서 다행이라고 담담하게 받아들이셨다.

보름 후 이번에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관절염을 비롯한 각종 노환이 있기는 했으나 몇 년간 쭉 같은 상태셨고, 그렇게 갑자기 가실 줄은 아무도 몰랐다. 아마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그 때까지 부여잡고 있던 삶의 끈을 그냥, 놓아버리셨던 것 같다.

그렇게 힘든 일을 연달아 겪고 나서, 엄마가 집에 혼자 있다는 점이 마음에 걸리긴 했으나 동생이나 나나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아는 사람 아무도 없고 아는 곳도 없는 서울에 올라와 함께 살자고 말하는 것도 무리였으니까. 다행히 가까운 곳에 작은 아버지가 살고 계서서 의지할 수 있었다.

이후 한동안 동생과 나는 매주 번갈아 집에 내려갔다. 몇달 후 동생이 결혼하고, 엄마도 조금 안정되는 것 같고 해서, 그리고 주말마다 오는 거 힘드니까 자주 오지 말라고 말씀하셔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갔다. 엄마는 동네 아주머니들과 이상한 모임 같은 데도 나가고, 간혹 아르바이트라며 예식장 일도 나가셨다. 물론 동생이나 나나 힘든 일 하지 말라고 극구 말렸지만, 엄마가 심심하다고 하는 데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올 봄, 작은 아버지가 전화를 하셨다. 엄마가 쓰러져서 병원 응급실에 실려갔다고. 갑자기 피를 한 바가지나 쏟고, 겨우 작은 집에 전화를 하셨다 한다. 동생과 나는 깜짝 놀라 부리나케 병원으로 갔다. 병명은 호흡기 협착증. 원래 호흡기가 나빴는데, 작년부터 이래저래 신경쓰고 무리하고 몸이 쇠약해져 그렇게 된 거란다. 다행히 다른 데는 이상이 없어서 며칠 후 퇴원하셨다. 절대 피곤하면 안 되고, 공기 나쁜 곳에도 가지 말고, 편안하게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했다.

이후 이상한 모임이나 일이나 안 가시는 것은 물론이다. 요즘은 매일 작은 집에 가신다. 거기서 가게 봐 주시고, 같이 식사하고, 사촌 동생들과 놀아주신다. 그리고 일주일에 두 번 여성회관에서 하는 강의를 듣는다. 나와 올케는 일주일에 두세 번 전화를 한다. 동생은 한 번 정도 한단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꼴로 집에 간다.

엄마는 아직 환갑이 안 되셨다. 젊은 나이인데, 남편도 없고, 건강이 좋지 않아 어딜 마음껏 다니지도 못한다. 딱히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화초와 채소와 강아지 정도가 엄마가 재미를 느끼는 대상일 것이다. 그런데, 엄마는 사는 게 재미있을까.

아버지한테는 정말 아무것도 못해드렸다. 그 전까지 나는 나쁜 딸이었고, 집에 가는 것은 물론 전화도 자주 하지 않았다.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자, 다른 무엇보다 엄마한테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멀리 떨어져 살면서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다. 되도록 자주 전화하고 자주 집에 가는 것 외에 뭘 할 수 있을까.

좀 이르긴 하지만, 나는 엄마가 재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좋은 아저씨 만나서 서로 의지하며 노년을 보낼 수 있으면 한다. 아직 한 20년은 더 사실 수 있을텐데, 계속 지금 같으면 너무 외로울 것 같다. 자식들이 아무리 효도한다고 해도 그 외로움은 가시지 않을 것 같다.

내년 엄마 생일엔 남자 친구라도 만들어 드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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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a95 2004-08-12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님께서 빨리 건강해지셔야 할 텐데요... 저도 집에 자주 안가고 전화도 안하다가 아버지 돌아가시고 엄청 많이 후회했습니다.. 자주 전화하시고, 어머님 자주 뵈러 가고 그러세요...

2004-08-12 0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만두 2004-08-12 0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생각이십니다. 어머님도 행복하셔야지요. 님 힘 쓰세요...

urblue 2004-08-12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ira님,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왜 자식들은 항상 지난 뒤에 후회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죠.
물만두님, 사실 방법은 잘 모르겠답니다. 그치만 힘 써 봐야죠. ^^ 고맙습니다.

로드무비 2004-08-12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아블루님은 어때요?
사는 게 재밌습니까?^^

2004-08-12 1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연엉가 2004-08-12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뒤 늦게 철이 들었습니다.

panda78 2004-08-12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요, 재혼 안하시더라도 같이 즐거운 시간 보내실 분 계시면 좋을 텐데요...
유아블루님, 힘 내셔서 꼭 성공하세요! (사실 실패하시더라도 그 마음씀에 어머님은 한동안 행복해 하실 것 같지만요. ^^)

urblue 2004-08-12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좀 뜨끔한 질문입니다. 갑자기 이런저런 생각들이 마구 솟아나와 정신이 없을 지경이네요. 저는 지금 혼자 살고, 앞으로 쭉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쓸 만큼 돈 벌고, 좋아하는 취미 있고, 만나는 사람들 있고, 혼자 지내는 것도 좋아하고, 네, 사는 것도 그럭저럭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스스로의 삶을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문제는 생각해 본 적 없는 것 같습니다. 그냥 당신의 삶이 의미없지는 않을까, 심심하지는 않을까 앉아서 걱정만 하고 있죠. 이번에 집에 가면 엄마한테 한번 물어봐야겠습니다. 실제로 어떻게 느끼는지, 저랑은 뭐가 다른지 혹은 같은지 궁금해지네요.

책울타리님, 안타까운 첫 인사로군요. 하여간 반갑습니다.

판다님, 그러게요. 그렇지만 당분간은 얘기 못합니다. 얼마전 아버지 제사 때 엄마 보고는 알았죠.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요. 그치만 작은 아버지께 부탁이라도 해야 겠어요. 좋은 아저씨 찾아달라고. ^^ (혹 작은 아버지가 싫어하실라나...)

로드무비 2004-08-12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갈피 잘 받았습니다.
아, 정말 너무너무 예쁘네요.
감사드리고요,
흥, 그런데 메모 한자 적어주면 어디가 덧난답니까?
(책갈피 다시 한번 보고) 흠, 탁월한 선택이었어요.^^

urblue 2004-08-12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메모 한자 적으면, 못 쓰는 글씨 들키게 되고, 그럼 이미지 나빠져서 안되어요~~ ^^; 부디 용서를...

로드무비 2004-08-12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로 나빠질 이미지도 없는데...^^;;;

로드무비 2004-08-13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1149

자나깨나 캡쳐 연습...


urblue 2004-08-13 0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비님, 오늘의 첫 방문자시군요. 그런데 왜 여기서 캡쳐 연습을... 저는 앞으로도 캡쳐 이벤트는 안 할라고 하는데... 하여간 열심히 연습하세요. ^^
 

 

지금 막 받았습니다.

사진보다 약간 작은 듯한 느낌이지만, 그래도 제 마음에는 듭니다.

제 것도 고냥이 한 마리인데 제목이 <둥근 창틀과 샴고양이>라네요.

고냥이 두 마리는 <낙화를 바라보는 두 마리 고양이>구요.

비닐 포장되어 있는데 뒷편에 가격표가 딱! 붙어서는 떨어지지 않습니다. ㅠ.ㅠ

게다가 편지 봉투도 없어서 그냥 회사 봉투로~~

받으시는 분들 이해해 주세요.

이제 우체국 갑니다.

2~3일만 기다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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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4-08-10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고맙습니다. ^^

▶◀소굼 2004-08-10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받으면 사진~:)

mira95 2004-08-11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감사합니다^^ㅋㅋㅋ

로드무비 2004-08-11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둥근 창들과 샴고양이라, 캬, 제목 좋습니다.^^

panda78 2004-08-11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낙화를 바라보는 두 마리 고양이.... 그대로 한 편의 시군요, 시! ^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