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분 페이퍼에 인사 잘 하는 것에 관한 글이 올라왔다. 인사 얘기 하니 갑자기 생각나는 게 있는데, 댓글로 달자하니, 처음 간 서재에, 것두 밝고 즐거운 내용에 어두운 흔적을 남기기 뭐하여 그냥 돌아섰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내가 산 곳은 온 동네 사람들이 서로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가깝게 지내는 곳이다. 엄마들은 동네 한 구석에 의자를 내 놓고 모여 앉아 왁자하게 웃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몰려다니며 딱지치기, 구슬치기, 고무줄, 시장놀이 등에 열중하고, 런닝셔츠 바람의 아버지들은 동네 구멍가게 앞의 평상에서 소주 한잔 걸치는, 작은 동네.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 당연히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를 해야 한다. 하루에 몇 번씩도 마주치지만 어쨌거나 하루 중 처음 보았을 때는 '안녕하세요?' '식사 하셨어요?'로 시작하는 것이다.
어릴 적의 나는 그다지 인사성 밝은 아이는 아니었다. 새침하고 여우같은, 한편 영악한 아이였고, 동네 어른들을 만나도, 매일 보는 사람들인데 뭐, 하며 고개만 까딱하는 정도였다.
우리 집에서 버스를 타러 나가는 길에, 그래봤자 예닐곱집 건너지만, 야채 가게가 하나 있었다. 안쪽에 살림집이 있었고, 그 집 오빠와 친했던 까닭에 자주 드나들던 곳이다. 오빠의 어머니는 걸걸한 성격에 몸집도 크고 목소리도 큰 분이었다. 물론 우리 엄마와도 친하셨다.
중학교 1학년의 어느 날, 등교길에 야채 가게 앞에서 부산스레 움직이시던 아주머니를 보았다. 잠깐 눈이 마주쳤는데, 아마 손님이 있었던지 아주머니는 곧 내게서 눈을 거두셨고, 난 인사를 하지 않은 채로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등 뒤로 '잘 다녀와라' 하는 소리가 날아왔다. 그 때 고개를 돌리고 '네'라는 대답이라도 했으면 좋았으련만, 난 총총히 발걸음을 옮기는데만 열중했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할 때 쯤에야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인사를 했어야 하는 건데, 이렇게 못된 애라니. 집에 돌아갈 때는 '다녀왔습니다.'라고 꼭 인사해야지,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 인사는, 영영 못하게 되었다.
하교길에 보니 가게는 문이 닫혀 있었다. 집에 돌아오니 엄마는 안 계셨고, 아버지가 그 아주머니가 낮에 돌아가셨다는 말씀을 하셨다. 동네에 결혼하는 언니가 있어서 그 집 잔치 준비 하느라 온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였는데, 음식 만들면서 웃고 떠드는 와중에 갑자기 아주머니가 쓰러지셨다는 것이다. 급히 응급실로 실려갔지만, 의사들이 손 쓸 겨를도 없이 그냥 그렇게 세상을 뜨셨다 한다.
아는 사람의 죽음이라는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지만, 슬픔이나 놀라움보다는, 그 날 아침 아주머니께 인사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가 컸다. 왜 그랬을까, 왜 아주머니 얼굴 보면서 웃지않은 걸까, 왜 이렇게 못된 아이인 걸까...
그렇다고 이후에 내가 갑자기 인사를 잘 하게 된 것은 아니다. 그건 훨씬 뒤의 일이다. 좀 더 나이를 먹게 되자 제법 사근사근하고 밝게 인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는 거,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세상에 어려운 일 널리고 널렸다. 삶이 팍팍하다면, 그나마 오고가는 밝은 인사는, 설사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할지라도 잠깐의 위로는 될 수 있다. 다들, 서로 위로하며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