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대학생활의 중심은 동아리였다.
입학해서 처음 한 학기를 같은 과의 사람들과만 어울리다 2학기로 접어들면서 동아리를 가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동아리방의 창에 붙어있는 이름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눈에 딱 들어온 게 <문화 연구회>라는 이름이었다. 도대체 뭘 하자는 건지 불분명한게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곳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과 동기 한 명과 같이 찾아갔다가 둘 다 바로 가입해버렸다.
그곳은 이름 그대로 일정한 주제가 없는 동아리였다. 장난삼아 음주 문화 연구회라느니 흡연 문화 연구회라느니 하는 말들을 하는 선배들의 관심은 이거저거 굉장히 잡다해서, 이 사람들이 어떻게 한 공간 안에 있나 싶을 정도였다.
동아리를 처음 만든 선배들은 83, 84학번이었는데, 그들은 당시에 어디서나 맑시즘만 공부하는 분위기가 싫어서 다른 걸 공부해보자고 이 동아리를 만들었다 한다. 그러고서도 그들 역시 맑시즘으로 시작했다고 하니, 뭐 어쩔 수 없는 시대였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동아리의 주된 활동은 공부였다. 매 학기 주제를 정해서 책을 읽고 매주 세미나를 하는 것이다. 내가 한참 활동할 당시의 주제는 서양철학사, 기호학, 서양미술사 등이었나 보다. (어쩐 일인지 기호학 말고는 기억도 안난다.)
그러나, 진정한 활동은 음주였을거다 아마. 거의 매일 술판이 벌어졌고 새벽까지 가는 일도 허다했다. 대개 좀 특이한 사람들이었고, 과 사람들과는 잘 어울리지 못했던 것 같고, 그러니 그런 인간들끼리 모일 수 밖에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나랑 같이 그 동아리에 가입한 과 친구도 엄청 특이한 인간이었다. 나로서는, 같이 어울릴 수는 있지만 이해하기는 불가능한 인간들.
그 곳, 동아리방에서 나는 대학 시절의 대부분을 보냈다. 책을 읽고, 과제나 시험 공부를 하고, 사람들과 어울려 히히덕거리고, 술을 마시고, 연애를 하고, 진창 방황하면서. 동아리 사람들도, 동아리 방도 꽤나 좋아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어쩌다 학교에 가면 반드시 동아리 방에 들렀고, 지금껏 만나는 사람들도 과 친구들이 아니라 동아리 사람들이다.
오늘, 후배가 그러는데 동아리방이 없어졌다 한다. 전에 더 이상 신입 회원이 없어서 동아리방을 내줘야 한다는 말을 들은 것도 같다. 하기사 요즘 같은 때, 주제도 목적 의식도 뚜렷하지 않은 <문화 연구회>라는 이상한 동아리가 생존한다는 게 불가능한 일이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막상 확인하고 나니 좀 서운한 것도 같다. 내 이십대의 초반과 함께한 공한, 학교에서 마음편히 쉴 공간이 없어졌다. 학교에 갈 일이 없어진 듯한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