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로드무비님의 레시피를 따라 소고기무국을 끓여 먹고 남은 콩나물을 처리하기가 어정쩡하여 콩나물김치국을 만들었다. 역시 남은 무를 이용해 무나물을 만들어 오늘 저녁 해결. 요즘은 로드무비님의 허름한 밥상 때문에 밥을 먹는 듯 하다.
내가 음식 만들기를 싫어하는 이유는, 요리에 도무지 재주가 없음을 아는 까닭이다. 음감이 떨어지는 사람은 노래를 잘 하기 어렵고, 따라서 노래부르는 것도 좋아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난, 아무리 생각해도 미감은 없는 모양이다.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면, 나는 맛있다는 것만 안다. 그런데 내 친구들은 식당에서 나온 음식을 보면서, 이건 이렇게 만들면 되겠네, 라고 말한다. 우와~ 도대체 어떤 음식에 어떤 재료가 들어가는지 어떻게 아는거야? 특히, 대학다닐 때 직접 김치며 무말랭이 같은 밑반찬을 만들어 먹었다는 올케 같은 사람을 보면 신기해 보인다.
음식을 만들면서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은 어떤 양념이 들어가야 하는지 감을 잡을 수 없다는 거다. 간장으로 간을 하는지 소금으로 간을 하는지, 고추장을 넣어야 하는지 고추가루를 넣어야 하는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그러니 내가 음식을 만들려면 레시피가 반드시 필요하다. 뭐 레시피를 따라 만들면 그럭저럭 맛은 낼 수가 있다. (누구나 다 그렇겠지? -_-;)
어떤 일이든 몇 번 하면 몸에 익고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유독 요리만큼은 웬만해선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한 번 만들어본 건 다음에 다시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어찌 된게 다음번에도 마찬가지로 레시피가 없으면 할 수가 없다. 수십번은 해 봐야 겨우겨우 기억을 한다. (그냥 저절로 알면 얼마나 좋아. 이걸 '기억'해야만 할 수 있다니!)
뭐 사람마다 잘 하는 게 틀리니까, 라면서 위안을 삼긴 하지만, 생각해보면 내가 잘 하는 건 또 뭔가. 대학 때, 남자 친구가 내게, 넌 왜 음식도 제대로 못 만드냐, 라고 타박을 한 적이 있다. '배우지 않았으니까 당연히 못하지.' '집에서 어머니한테 그런 것도 안 배우고 뭐했냐?' 그 말에 발끈한 나. '그러는 넌 고등학교 때 뭐했는데?' '나야 공부했지.' '야, 너만 공부해서 대학왔니?' 나쁜 자식.
엄마는 내게 집안일을 아무것도 시키지 않으셨다. 딸내미가 공부 좀 하는 걸 자랑으로 아셨으니까. 집안일 돕기보다는 공부 더 하고 책 더 보기를 원하셨던 것 같다. 게다가 다른 것에 소질도 적성도 없었던 나는 그저 공부밖에 할 줄 모르는 아이였다.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라고나 할까.
그러면서도 어릴 땐 내가 꽤 잘난 줄 알았다. 대학에서 직장에서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내가 바보라는 걸 알겠더라. 아무것도 잘 하는게 없는 바보. 노래를 잘 하냐, 그림을 잘 그리냐, 요리도 못해, 그렇다고 손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야. 뭐 이렇게 심심하냐구.
그래서 든 생각인데, 아이를 키우면 어릴 때부터 이것저것 가르쳐야겠다. 특히 집안일이며 요리를. 그래야 나중에 살면서 불편하지 않지. 또 내가 밥하기 싫을 때 애한테 밥하라고 할 수도 있잖아.
아아, 음식만들기 어렵다는 얘기를 하려다 어디까지 흘러버린거냐.
아무튼, 내일 저녁은 오뎅국이다. 무가 아직도 많이 남았으니 당분간은 계속 무가 들어가는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
로드무비님, 무로 해 먹을 수 있는게 또 뭐가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