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고향으로 출발하면서 가방에는 달랑 두 권의 책만 넣었다. 설날 아침 차례와 다음날 할아버지 제사 때문에 이래저래 일이 많겠거니 생각한 때문이다.
일요일 낮에 도착하여 작은집에서 맛있는 냉면으로 점심을 먹었는데, 엄마가 집에 가자 하신다. 좀 더 있으면서 놀아도 좋으련만 어째 저리 서두르시나 했더니, 실은 몸이 좋지 않으신 거였다. 기관지 확장증이란 병은 완치가 안된다 하였고, 좀 심각한 상태인 엄마는 조금만 무리하거나 피곤하면 바로 피를 쏟는다. 차례와 제사 준비 때문에 연일 시장으로 방앗간으로 다니신 탓에 피로가 쌓였는데, 사촌 동생들과 일요일에 늦게까지 시끄럽게 놀아 잠도 제대로 주무시지 못해, 월요일 아침에는 그예 각혈을 하고 일어나지를 못하게 되신 것이다.
작은 엄마가 다녀가시고, 차례와 제사를 모두 지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동생은 다음부터 명절 차례상을 주문하자고 했고, 음식에는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는 한결같은 말씀을 하시던 엄마도 긍정적으로 답하셨다. 음식을 할 줄 모르는 내가 옆에서 도움이 될 만한 건 없다.
어쨌거나 재료는 모두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였으므로 우리끼리 먹을 음식만 하자고 했다. 화요일에는 만두를 빚었다. 엄마는 밀가루반죽까지 모두 해서 냉장고에 넣어두셨다. 올케와 내가 만두피를 밀고 동생이 만두를 빚는데, 동생이 제법 솜씨가 좋은데다 속도도 엄청 빨라서 피를 밀기가 바쁘다. 엄마가 일러준 대로 올케가 만두를 찌고, 막 쪄낸 따끈한 만두를 먹으며 서로 일 못한다 타박해가며 제법 즐거웠다. 올케는 나이가 어린데도 일 솜씨는 야무지다. 쪄낸 만두에 기름을 발라 담아놓는거며 뒷정리를 하는거며 순식간에 후다닥 해치운다. 나랑 똑같이 일 못하는 올케가 들어왔다면 엄마가 맡겨놓고도 엄청 답답해했을텐데, 올케의 일하는 품새가 꽤나 만족스러우신 모양이다.
다음날은 전부치기. 이번에 준비해 놓은 재료는 고구마, 동태, 오징어, 새우완자다. 전부치기야 늘상 내가 했던 것이므로 쉽지. 새우완자에 들어갈 야채를 모두 칼로 다지라는 엄마에게, 블렌더 놔두고 왜 고생이냐고, 블렌더에 넣고 몽땅 갈아버렸다. 양파에서 물이 좀 생겼지만 짜면 되지 뭘. 엄마도 올케도 그래서야 맛이 제대로 안 난다고 타박이지만, 오히려 내가 엄마에게 한소리했다. 엄마, 그러니까 병나는거야, 쉽게 할 수 있는 건 좀 쉽게 하자. 엄마가 생태국을 끓이고, 올케가 미역무침을, 내가 고사리와 무나물을 해서 맛있는 저녁 식사.
설날 저녁 동생네가 돌아가고 나니 집이 조용해졌다. 엄마도 다시 각혈을 하진 않으시고 얼추 기운도 차리셔서 다음날 마음 편히 미술관에 다녀올 수 있었다. 애초엔 엄마랑 사촌 동생들이랑 같이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거기까긴 무리다. 게다가 동생들은 미술관에 흥미도 없다.
금요일까지 뒹굴거리며 쉬다가 오후 버스편으로 귀경.
명절의 분주함과 떠들썩함은 없었고, 잠시 걱정도 있었지만, 잘 먹고 잘 쉬고 가져간 책도 모두 읽고, 아무튼 괜찮은 휴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