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서울 국제 도서전에 다녀왔다. 원래 계획은 도서전에서 한두시간 놀고 브레송 전시회를 보러 가는 것이었으나, 집에서 늦게 나가기도 한데다 도서전에서 한참을 놀다보니 브레송전을 보러 갈 여유가 되지 않았다.
서울 국제 도서전의 특징은 단연 아동도서가 메인이라는 점이다. 일반 출판사로 눈에 띄는 것은 범우사, 민음사 정도. 대개는 아동 출판사이거나, 종합 출판사라고 해도 아동 도서 쪽에 비중을 더 두고 있다. 아동 도서를 팔지 않으면 출판사들은 밥먹고 살기 힘든 모양이다.
시공사, 한길사 등은 부스를 크고 화려하게 만들어놨다. 역시 돈 있는 것들은 다르군, 하며 괜히 볼멘 소리.
특별전으로 <우리 작가 친필 원고전>이 있다. 윤동주, 김소월, 황순원, 기형도 등 작고한 작가들부터 박완서, 박경리, 조세희, 김주영, 최인훈, 신영복, 이윤기, 김훈 등에 이르기까지 여러 작가들의 친필 원고가 전시되어 있다. 신영복 선생의 글씨가 가장 멋지다. <신영복의 엽서> 표지에 쓰인 글씨체가 실제 신영복 선생의 필체다. 조세희 선생의 흘려 쓴 글씨는 로드무비님의 글씨와 비슷하다. 조정래, 박완서, 박경리 등 주로 장편을 쓰는 작가들의 글씨가 알아보기 쉽고 깨끗하다. 무슨 이유가 있을까.
<북디자인 공모전>에 전시되어 있는 표지들은 별로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오히려 저런 디자인이면 책이 팔릴까 싶은 엉성한 것들. 전시장 뒷편에 북아트 코너도 그냥 휙휙 지나쳤다. 책은 읽기 편한게 최고지, 그걸로 뭔가 작품을 만드는 건 재미없다.
한쪽에 동화책 원화도 몇 점 전시되어 있는데, <이상한 화요일>의 데이비드 위즈너,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모리스 샌닥과 그 외 이름을 기억할 수 없는 몇몇 작가들이다. 아마 원화를 파는 모양인지 어떤 그림들 밑에는 <Sold out>이 붙어 있다.
이리저리 기웃거리다가 책을 한권 얻었다. '애기 있으세요?'라고 묻더니, '아뇨'하고 웃는데도 괜찮다며 동화책 한 권과 포스터가 담긴 가방을 내미는 것이다. <나라를 구한 난쟁이 재상의 재치>라는 한자동화인데, 알라딘에는 등록이 되어 있지 않다.
동화책을 여러권 보았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까만 소녀 니나의 비밀>. 책을 보고 있는데 출판사 직원이 친절하게 설명을 해 준다. 백인인 작가가 흑인 여자와 재혼을 해서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가 자기는 왜 오빠들이랑 피부색이 다르냐고 자꾸 묻더란다. 동화에서 주인공 니나는 아주아주 까맣다. 흰 토끼는 그런 니나가 부러워 계속 묻는다. 니나야 니나야 넌 어쩜 그렇게 까맣고 예쁘니? 대답은? 까만 토끼와 결혼해서 아기를 낳으면 된다는 것. 귀엽다.
돌로 만든 바지가 마음에 들지 않아 부들부들 새로운 것을 찾는 우가의 이야기를 다룬 <석기 시대 천재 소년 우가>도 재미있다. 모계 사회라 엄마가 새로운 시도를 억누르고 남들처럼 살라고 윽박지르는 역할을 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전시장에서 본 책들. 제목을 적어놓지 않아 기억 안나는 것 다수긴 하지만.
3시간 넘도록 걷고 또 걸었더니 완전 녹초. 지하철에서 자고 집에 와서 또 자고.
오늘은 집에서 뒹굴뒹굴 책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