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 찔끔찔끔 올리고 있습니다.. ㅠ_ㅠ 

오늘도 여전히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씨다. 오전 일정으로 잡아 둔 Antelope Canyon Tour 는 이번 여행에서 유일하게 투어 형태로 예약해 놓은 곳이다. 사실 원해서 그런건 아니고, 지형 특성상 날씨가 안 좋으면 갑자기 물이 범람하는 곳이라(97년 급작스런 폭우로 십여명이 사망했다) 반드시 가이드와 동행해서만 들어갈 수 있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패키지는 두 가지, 일반 투어와 사진 투어가 있다. 당연히 사진 투어로 예약. 출발 시간이 9시 30분이니, 9시 정도에 맞춰서 여행사 건물 앞에 도착했다.

예약 확인하고 나니, 9시 15분까지는 이 곳으로 돌아오라고 한다. 예~ 하고 돌아서는데 뭔가 좀 이상하다. 지금이 벌써 9시 10분인데 5분 후에 돌아오라고 당부를 하는건 또 뭐며, 사람은 또 왜 이리 없지? 찜찜한 기분을 안고 차로 돌아가다가 보니 뭔가 머리를 번쩍 하고 스치는게 있다. 다시 안으로 들어가서 물어보니,

"Can you tell me what time is it now?"
"It's eight... ten"

둥... 그랬다. Arizona 주는 섬머타임을 실시하지 않는 주였다. 즉, Utah 에서야 지금이 9시 10분이지만, 여기 Arizona 에서는 아직 8시 10분인 것이다. 뭐, 시간 난 김에 아침이나 든든하게 먹어야지.. 라고 생각하려던 찰나, 엄청난 깨달음이 뒷통수를 강타한다. 그러니까.. 지금 시각이 8시 10분이면 해 뜨는 시각은 7시 반이 아니라 6시 반이 된다. 즉, 어제 봐 두었던 Monument Valley 진입로에서 일출 시간에 촬영을 하고 이 곳으로 와도 9시 전에 여유있게 도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으.. 주마다 시간이 다르다는 사실만 염두에 뒀어도 기막힌 장면을 찍을 수 있었거늘... ㅠ_ㅠ


Day 1 에도 나왔던 지도. Arizona 를 보면 여름과 겨울 시간대가 다르다고 나와 있다;;

후회해 봤자 이미 늦었고, 일단 아침부터 챙겨 먹자. 식사를 마치고 시간 맞춰 다시 여행사 앞으로 돌아오니 역시나 사람들이 꽤 많다. 잠시 후 작은 트럭을 개조한 듯한 차에 나눠 타고 드디어 Antelope Canyon 으로 향한다. Page 바로 외곽에 위치하고 있어 실제 이동시간은 10분도 채 안 된다. 출발해서 5분쯤 가면 Navajo Tribe 지역으로 들어가게 되고(이 곳에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야 한다. 투어 비용에 포함), 그 곳부터는 강바닥처럼 보이는 모래밭을 달려 들어간다. 5분쯤 더 덜컹거리는 차 안에 앉아있으니 어느 사암 절벽 앞에서 차가 멈춘다. 절벽에는 세로로 길게 갈라진 틈(slot)이 나 있다. 저 틈이 바로 Upper Antelope Canyon 이다.

사진 투어와 일반 투어의 차이는 사실 시간 밖에 없다. 2시간 반이라는 시간이 주어지지만, 장소를 독점해 쓰는게 아니라서 집중해서 촬영할 수 있는 시간은 결코 길지 않다. 공간 자체가 굉장히 어두운 곳이라서 장노출(15~30초)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데, 그 동안 누가 플래시를 터트리거나 렌즈 앞에서 왔다갔다 하거나, 레이저 포인터를 쓰거나 하면 그 컷은 날리게 되기 때문이다. 가이드가 계속 플래시를 쓰지 말라고 사람들에게 주의를 주긴 하지만 잘 통제가 되지 않는다. 대부분은 아예 자기 카메라의 플래시를 어떻게 끄는지를 모르는 것 같다.


Upper Antelope Canyon 입구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부대끼는 곳에서는 늘상 작은 다툼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일반 투어로 온 관광객 중 나이가 꽤 지긋하고 몸이 비대한 할머니 한 분이 계셨는데, 움직이는게 힘이 드셨는지 선 채로 잠시 쉬고 계셨다. 그 때 관광 가이드인 젊은 여자가 할머니에게 옆으로 비키라고 몇 번 지시를 하자, 갑자기 이 할머니가 정색을 하고 묻는다. "Excuse me. Did you mean 'PLEASE'?" 그제서야 가이드도 화들짝 놀라면서 정중하게 다시 부탁을 한다. 존대와 하대는 존재하지 않는 언어이지만, 무례하고 공손함의 차이는 분명 존재한다는게 새삼 느껴진다.

아무튼, 사진 이야기로 돌아가면,

한여름에 오면 계곡 안으로 태양빛이 들어와 강한 spot light 을 만드는 경우도 있는데, 10월에는 태양의 고도가 이미 낮아져 그런 장면은 찍을 수가 없다고 한다. 대신 계곡 상단에서 반사되어 들어오는 빛이 만들어내는 미묘한 색의 변화가 주된 피사체가 된다. 물이 깎아내린 부드러운 곡면과 자연적으로 만들어지는 빛의 계조 변화가 어우러져 비현실적인 추상미를 만들어낸다. 수없이 사람들과 부딛히면서도 정신 없이 사진을 담다보니 어느새 2시간 반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촬영한 필름은 3통. 이 중에서 몇 장이나 걸질 수 있을지는 여행 끝나봐야 안다.(사실, 많이 못 건졌다 ㅠ_ㅠ)


불새가 날아오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번 촬영에서 얻은 몇 가지 팁들.

  1. 대개 하늘을 향해 촬영을 하게 되는데, 반드시 그늘 안에 머물면서 촬영을 할 것. 워낙 어두운 장소라 눈으로는 차이를 잘 못 느끼지만, 그 미묘한 차이도 장노출에서는 플레어를 만들어낸다.
  2. 바닥이 전부 모래이고, 사람들이 많이 오가기 때문에 먼지가 굉장히 많은 편이다. DSLR 이 경우 먼지에 민감할 수 있으니 가능하면 렌즈를 교환하지 않는 것이 좋다. 굳이 망원렌즈 들고갈 필요도 없으니, 대략 28mm에서 100mm 정도의 줌렌즈 하나면 충분할 듯.
  3. 감도 50 필름이긴 했지만, 평균 노출 시간이 10~30초 정도로 어두운 곳이다. 당연히 삼각대는 필수고, 노출계, 릴리즈도 지참할 것. 브라케팅은 상식!


Antelope Canyon 의 여러 모습들

촬영을 마치고 Page 로 돌아오니 어느새 오후 1시다. 간단히 점심을 챙겨먹고 보급(?)을 마친 후 부지런히 다시 길을 나선다. Glen Canyon Dam Overlook 에 잠시 들른 후 US-89 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향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Utah 로 들어선다. 근데 시간대가 또 바뀌는구나. 유타 시간으로는 벌써 3시가 가까워져 있다. 오늘 저녁은 캠핑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해떨어지기 전에 캠핑장에 도착하는게 좋다. 예약해 둔 곳은 Escalante State Park. 직선 거리는 얼마 안 되는데, 중간에 Grand Staircase-Escalante National Monument 가 자리하고 있어 빙 둘러서 가야 한다. 그나마 질러 갈 수 있는 길로 경로를 잡는다.


Glen Canyon Dam

Grand Staircase-Escalante National Monument 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도로는 몇 개가 있는데 모두 비포장 도로이다. 비가 자주 올 때는 진창으로 바뀌어 길이 막히기도 하기 때문에, Visitor Center 에 들러 그 날의 상황을 점검해보고 가는게 좋다. 오늘 도로 상황은 좋다고 한다. 중간에 Grosvenor Arch 와 Kodachrome State Park 을 들를 수 있는 Cottonwood Canyon Road 가 오늘 선택한 경로다. 거친 비포장 도로를 따라 메마른 땅을 가로지르는 즐거움은 각별하다. 대략 50마일 정도 길이를 달리면서 마주친 차량은 기껏해야 3~4대 정도. 중간에 Grosvenor Arch 는 잠시 들렀지만, Kodachrome State Park 에 왔을 때는 이미 해가 넘어가기 시작해 그냥 지나칠 수 밖에 없다.


Grand Staircase-Escalante N.M. 을 가로지르는 Cottonwood Canyon  Road 의 모습.


Grosvenor Arch


Limestone 으로 만들어진 Grosvenor Arch. 색이 부드럽다.

캠핑장인 Escalante State Park 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둑해진 무렵. 서둘러 텐트를 치고 저녁 준비를 한다. 야영할 때 즐겨 먹는 Dried Food(음식을 말린건데, 뜨거운 물을 붓고 7~8분 기다리면 꽤 괜찮은 식사가 나온다. 오늘 저녁으로 먹는건 Teriyaki Chicken.) 에 참치 한 캔과 고추장(^^;)이 있으니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맥주 한 캔이 금방 사라진다. 계절이 계절인지라 역시 저녁이 되니 쌀쌀하지만, 또 벌레가 없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특히나 독충들도 종종 돌아다니는 땅이다보니 야영을 하려면 이래저래 신경이 쓰이는 곳인데, 그러고 보면 이렇게 약간 추울 때 오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인 것 같다.


텐트를 친 모습. 사실 이건 다음날 아침에 찍은 사진이다;;

 
자기 전에 셀카 한 장 ^^; 조명은 난방 역할도 해 주는 gas lamp 다.

얼른 뒷정리를 마치고 텐트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피곤하기도 하거니와, 내일도 일찍 움직여야 하니 일찍 잠들어야 겠다. 침낭 속에 들어가 책이나 읽다가 스르르 골아떨어질 예정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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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05-23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타 여행기 끝날 때면 다음 여행 시작하는 것 아닐까 몰라요? ^^ㅎㅎㅎ
여행 와중에도 면도는 깔끔히 하셨네요. 부지런쟁이!
사진을 주욱 이어서 보니 무척 신비로워요.
고즈넉해 보이는 텐트의 풍경이 인상적이에요.
저 안에서 마주하는 혼자만의 시간이 몹시 부러워요.
여행기 잘 봤습니다.^^

turnleft 2009-05-24 04:46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글 쓰는게 왜 이리 느린지.. ㅠ_ㅠ

Kitty 2009-05-27 0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턴레프트님 서재에서 사진은 많이 봤어도 얼굴은 처음 뵙네요.
(새삼)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turnleft 2009-05-27 08:21   좋아요 0 | URL
아, 왠지 손해보는 느낌은 뭘까요... -0-
소심해서 얼굴 알려지면 어디 가서 나쁜 짓도 못 하고 사는데 말이죠;;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355699.html

온라인 서점이라는 특성 상 알라딘 역시 배송이라는 유통 과정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을 것이다. 사실 한국에 있지 않은 관계로 알라딘에서 주문한 책을 택배로 직접 받아본 경험도 없거니와, 솔직히 말해 그간 생각조차 해 본 적 없기 때문에 알라딘에서 어떤 택배회사와 계약해서 배송을 처리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알라딘이 과연 택배업체와 "공정"하게 거래를 하고 있는지, 그 택배회사는 배송노동자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는 더더욱 아무런 지식도 없다. 따라서 그건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다.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답답한 것 중 하나가 바로 택배다. 여기도 큰 온라인 쇼핑몰들은 일정 금액 이상을 사면 무료 배송을 제공하기도 한다. 문제는 무료 배송을 신청하면 대략 2주 정도가 지나야 물건을 받아볼 수 있다는 것. 좀 급하게 필요하면 유료 배송을 선택해 받는 수 밖에 없고(책 같은 경우 익일 배송 옵션 같은건 간혹 물건값에 육박하기도 한다 -_-), 그래서 여차하면 차 끌고 나가서 사 오는게 차라리 나은 경우도 많다. 왠만하면 무료 배송에 과장 좀 보태서 마우스 클릭하면 뒤에서 벨소리 울린다는 한국의 배송 시스템과 비교하자면 복장 터진다. 속도라는 측면만 본다면 말이다.

물론, 미국과 한국은 땅덩어리 크기 자체가 다르니 발생한 차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위에 링크해 놓은 기사를 보면 과연 그 뿐일까 라는 의심을 해보게 된다. 한국의 그 "빠른" 배송이 힘없는 배송노동자들의 일방적 희생에 기반해서 가능한 것이었다면, 미국의 "느린" 배송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 싶다. 일단 배송업체(UPS 나 FedEx 같은 대형 업체가 대부분이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정당한 댓가를 받을 수 있는 수익구조가 나올 것이고(예를 들어, UPS 는 미국 업체 중에서도 복지 혜택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배송을 하는 사람들도 모두 정직원.), 온라인 업체와 오프라인 업체 간의 균형을 맞춰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는 것 같다. 나쁜 점은? 내가 클릭한 후 물건을 받기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는 것.

근데, 처음부터 이런 배송구조에 익숙해져 있는 미국애들은 이게 불편하다는 느낌을 못 받는다고 한다. 온라인에서 물건 주문하면 응당 그 정도 걸리는 걸로 생각을 하는거다. 답답해 하는건 나처럼 한국에서 온 사람들. 그럼, 이걸 단점이라고 부르기도 좀 애매해진다. 애당초 편리함과 불편함이란건 상대적인 거니까. 거꾸로 생각해 보자. 물리적 거리가 있으니 미국처럼 1~2주일씩 걸리는건 좀 그렇다 쳐도, 2~3일 걸려서 물건을 배송받게 되면 그게 큰 일 날 일인가? 빨리 받으면 좋고 공짜로 배송해주면 좋은건 맞다. 하지만 우리의 편리함이 누군가의 희생에 기반하고 있다면, 오히려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불편함 아닐까.

따지고 보면, 그 편리함은 우리한테도 마냥 공짜인건 아니다. 격무에 지친 택배기사의 불친절과 그로 인한 감정 소모도 우리가 부지불식간 지불하고 있는 비용에 속한다. 시간과 단가를 맞추기 위해 과속으로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운송 차량들은 사고의 위험을 높여 누군가의 생명을 위협한다. 그로 인해 열악해지는 택배 노동자들의 노동환경과 저임금, 그 결과 그 가족이 겪게 되는 낮은 생활 수준 등은 고스란히 우리 사회의 엔트로피를 증가시켜 사회적 비용으로 계상된다. 이 모든 것이 속도 강박증에 시달리는 우리가 짊어져야 할 짐이다.

물론, 택배 받을 때 마음의 여유를 갖자는 이야기 같은걸 하고 싶은건 아니다. 주문 시에 "하루 정도 늦게 가져다 주셔도 되요" 라는 메모 남기는 걸로 뭔가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치는 않는다. 사실 지금 필요한건 배송 시스템에 대한 일종의 "공정거래" 합의 같은거라고 생각된다. 하루에 어느 정도의 물류가 처리되려면 얼마 정도의 man-hour 가 필요하니 이 정도 비용이 필요하다는 객관적 기준을 가지고 배송비에 대한 사회적 기준을 잡아가야 할 일이다. 그래야 권력관계의 약자인 배송 노동자들이 모든 손해를 떠안는 구조가 바뀔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진행되는 화물연대의 투쟁도 그런 맥락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고.

그럼 우리는 뭐하냐. 뭐,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화물연대의 투쟁을 지지하고 어쩌고 하는 일들이 있을테지만, 과연 그거면 충분한걸까 싶다. 크게 보면 우리 모두 택배 서비스의 이용자이고, 무료배송이니 당일배송이니 하는 떡고물에 열광(?)했던 사람들 아닌가. 그런 무임승차 아닌 무임승차가 쌓이고 쌓여 오늘날 택배 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으로 이어졌다면 과장이 될까? 만약 건강한 유통 구조가 정착되어 배송을 위해 시간과 돈을 더 들여야 한다면 기꺼이 감수할 수 있을까? 택배업체들이 과도한 경쟁을 내세우며 택배 노동자들에게 열악한 조건들을 강요할 때, "우린 그런 강요 한 적 없다"며 자신 있게 나설 수 있을까?

쉽지 않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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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불복종 하는 삶
    from 달리는 포장마차 2009-05-20 20:52 
    내가 아는 어떤 분은 아직도 동네 서점에서 책을 사죠. 이제 몇 안 남은 서울의 사회과학서점이지만 그래도 늘 필요한 책이 비치되어 있는 경우는 드물어서, 그래서 사고 싶은 책이 생기면 전화로 책을 주문하고 삼사일 뒤에 연락이 오면 가서 구입을 한답니다.  나도 여기 알라딘에서 책 구입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지만, 책만이 아니라 온라인 쇼핑을 거의 하지 않는 편에 속합니다. 그런데 나같은 경우는
 
 
Kitty 2009-05-20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저 이 페이퍼에 전적으로 동감해요. 예전에 인간시대(?)같은 프로그램에서 격무에 시달리는 택배 기사들을 다룬 적이 있는데 정말 너무들 고생하시더라구요. (물론 그렇다고 나쁜 서비스 받으면 열안받는건 아니지만;;)
뭔가 구조적인 조정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택배비를 내리는 것도 좋고, 무료 배송도 좋지만, 그 부담이 전적으로 기사들에게 가면 너무 불합리하죠.
미국 택배는...-_- 이젠 그냥 포기;;;;;;
저희 동네 UPS 아저씨는 사람이 있건없건 문앞에 던져놓고 가요 -_-

turnleft 2009-05-21 03:12   좋아요 0 | URL
뭐랄까, 사는게 점점 복잡해져요. 생각 없이 살다 보면 어느새 다른 사람, 그것도 가뜩이나 힘든 사람들 어깨 위에 짐 하나씩 더 얹으면서 살고 있다니까요..

BTW, 저는 미국에선 대부분의 택배를 회사로 배달시키기 때문에 택배 때문에 고생해본 적은 없네요 ^^;

다락방 2009-05-20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TurnLeft님.

turnleft 2009-05-21 03:1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다락방님 :)

하이드 2009-05-20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제 일본에서 보낸 물건이 어제 아침에 도착하더군요 -_-a
뭐, 다른 얘기지만, 미국 UPS 는 배송 할때마다 느끼지만, 정말 불친절의 대명사. 우체국마다 다르겠지만, 뉴욕과 필리에서 몇번 이용해봤는데, 몇번이지만, 정말 100% 불쾌했다죠.

당일배송의 경우에는 그래요. 택배아저씨와 친해지면, 유두리있게 넘어가는 경우 있고, 당일배송 주문하는 물품 열개중에 한두개 정도만 당일에 필요하긴 하지만, 인터넷 서점에서 '당일배송' 건 것에, 그 한 두개가 당일배송 안된다고 화내는 것이 소비자를 탓할 일은 아니겠죠.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구요. 꼭 필요한 당일배송과 당일배송 안되도 되는 것이 구별되지 않는 것은 여러모로 낭비지만, 당장은 소비자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네요.

당일배송, 반값할인, 쿠폰, 알사탕, 뭐 이런것들이 결국은 책값으로 소비자에게 돌아온다고 보기 때문에, 반갑지만은 않습니다. 특히 반값 할인의 경우에는 사고 싶은 책들이 올라와도 구매를 끊었지요. 불과 몇년전에 출간되었던 책들의 가격이 죄다 몇천원씩 오른 것은 종이값이 오르고, 환율이 올라서만은 아니지 싶습니다.

당일배송의 경우 요금을 따로 받는다면, 필요할 때 이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말대로, 제가 당일배송으로 주문하는 것들의 8-90%는 당일배송이 필요하지 않은 책들이니깐요.

turnleft 2009-05-21 03:15   좋아요 0 | URL
일단 당일배송이라고 못박아 버리면, 사람들이 그걸 기대하게 마련이죠. 정말로 당일 받는게 필요했던 사람이 약속과 달리 당일에 못 받으면 그건 정말 문제가 될테구요.

여러 의견들처럼, 서비스 차별화가 되면 괜찮을 것 같아요. 일반적인 택배 가격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것과 동시에 조금 더 비싼 옵션을 선택하면 당일에도 받을 수 있게 해주는 등 말이죠.

웽스북스 2009-05-20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어요 turnleft님.

소비자의 권리에 대해 우리나라만큼 생색내며 목소리 높이는 곳이 또 있을까 싶어요- 택배 하루만 늦어도 파르르 파르르거리는. 빠르게 갖다주는 건 편하지만 굳이 빠르게 오지 않아도 되는 것까지 지나치리만큼 에너지를 낭비하면서 빠르게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고요- 책한권을 이렇게까지 뻑적지근하게 포장해서 받아야되나 싶기도 하고...그러면서도 사실 저 역시 무료배송과 당일배송의 달콤함에 길들여있던 사람이기도 하고요..

정말 택배문제는 불안불안했던 문제인데 이렇게 수면위로 올라오게 되네요- 이렇게해서 유지가 될까 싶은 것들은 역시나 안에 무언가 곪고 있는 거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어요- 건강한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역시나 우리가 어느 정도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거겠지요- 그렇지만 오늘도 배송료를 안내기 위해 이것저것 골몰하는 저 자신은 참 모순적이긴 하네요- 흐.

turnleft 2009-05-21 03:16   좋아요 0 | URL
아.. 불안해 하셨다니, 웬디님 더듬이는 아직 건강하네요. 저는 꼭 이렇게 일이 터져야 비로서 생각이 그 쪽으로 간다니까요.. ㅡ.ㅜ

바이런 2009-05-20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하는 글입니다. 비슷한 예로 버스운전사분들에 대해 생각해볼 수도 있겠죠. 우리의 편리함이 누군가의 희생에 기반한다.. <- 많은 생각을 해보게하는 구절이네요.

turnleft 2009-05-21 03:19   좋아요 0 | URL
우리 사회가 서비스업을 대하는 태도들이 대개 그런 것 같아요. 큰 틀에서 이해하기보단, 당장 나와 맞닿는 태도나 행동들만 가지고 판단을 하지요. 이 모진 세상 함께 살아가는 또 다른 개인에 대한 연대의식 같은게 부족하달까요..

마법천자문 2009-05-20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일 배송' 이란 제목으로 제가 비슷한 글을 쓰려고 했는데 먼저 써버리셨네요. 미워미워미워!

turnleft 2009-05-21 03:19   좋아요 0 | URL
지금 쓰셔도 저보다는 훨씬 재밌고 위트있는 글이 나왔을 것 같은데요.. ^^;

마늘빵 2009-05-20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택배 기사의 죽음' 보도 이후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소비자가 어떻게든 빨리 물건을 받아보고자 택배 기사를 너무 혹사시키는 게 아닌가 하는. 2,500원으로 운송료는 오르지 않았지만, 택배 기사는 당일배송으로 더더욱 바빠졌죠. 게다가 택배 한 건당 돌아가는 몫은 10년 전보다 못하다니. 쇼핑몰 사이트에서 배송 기간을 선택할 수 있게 해주면 어떨까 싶습니다. 당일을 원하는 사람은 당일을, 그렇지 않은 사람은 보통 배송을.

turnleft 2009-05-21 03:24   좋아요 0 | URL
글을 쓰면서 일부러 해법보다는 문제의식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일단 문제의식을 공유할 수 있다면, 접근하는 방식에 따라 해법은 좀 달라질 수도 있다고 봐요. 예컨데 유통망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는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는 고민하기 힘든 부분이잖아요. 당일 배송과 일반 배송(2~3일 소요)을 어떻게 구분해서 배송망을 갖출 것인가는 현업에서 종사하시는 분들의 지식과 아이디어가 있어야겠지요.

아무튼, 소비자들이 "합리적인 해법이 있다면, 비용을 더 지불할 의사가 충분히 있다"라는 것만 보여줘도 큰 힘이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레와 2009-05-20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을 한번밖에 할 수 없어 아쉽네요.
공감가는 글입니다.


^^

turnleft 2009-05-21 03:2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마음으로 백만번 추천 받은걸로 할께요 ^^

BRINY 2009-05-20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갑니다. 당일배송, 총알배송보다는 지정한 날짜 배송이 더 고맙고 추가요금 지불할 의사도 있는데, 그런 서비스는 안되나 보네요...

turnleft 2009-05-21 03:30   좋아요 0 | URL
역시, 택배회사들이 그동안 고객 서비스를 개선할 노력은 안 하고 단가 후려칠 생각만 했다는게 여실히 드러나는군요. 의견을 조금만 모아보려 노력했어도 훨씬 좋아졌을텐데 말이죠.

새초롬너구리 2009-05-20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전 지정일에 오지 않으면 복장터지고 그랬는데 (정말 필요한건 가서 사는게 더 낫기엔, 서울은 많이 밀리고 주차하기도 주차비도 비싸거든요. 일일주차가 15,000원인데 거긴 얼만가요?), 택배에 대한 다큐멘터리 하나 보고 좀 미안해졌어요. 그다음엔 그냥 지정일보다 빨리오면 좋은거고 (게다가 아마존 배송은 지정배송업자를 통해서 오느라 가끔 중간에 누가 박스를 뜯어서 비싼책을 훔쳐가곤해서, 반즈앤노블로 바꿨지요. 사실 검색이나 일반 내용은 아마존가서 보면서...ㅡ.ㅡ) 그냥 릴랙스 하지요. 그랬더니, 생각치않았다 받는 즐거움이 쏠쏠합니다.

turnleft 2009-05-21 03:34   좋아요 0 | URL
시애틀은 다운타운 한가운데가 아니면 주차비는 대부분 공!짜! 랍니다 ^0^
암튼, 한 템포 느리게 가도 크게 문제될 것 없다는데는 대개 공감을 하네요.

2009-05-20 18: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21 0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푸른신기루 2009-05-20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공감하는 글입니다.
당일 배송, 총알 배송에 열광하는 그 편리함 이면의 희생을 너무 외면했던 것 같네요.

turnleft 2009-05-21 03:45   좋아요 0 | URL
사실, 몰랐잖아요.

큰 틀에서 보면, 이렇게 불평등한 권력관계가 유지될 수 있는 구조가 문제인 것 같아요. 그래서 노동조합 같은 것들이 필요한건데, 노조라고 하면 일단 때려잡고 보자는 식의 대응이 먹히는 나라가 지금의 대한민국이네요..
 



어제 저녁 서점에 마실 나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책. 지금까지 본 책 중 가장 예쁜 책이었다고 생각이 되네요. 책장 주변도 은색으로 칠해놔서(왜, 그, 성경책 책장 보면 금색으로 칠해 놓은 방식 있잖아요) 진짜 초컬릿 은박지 같더군요. 왠지 부욱~~ 찢어버리고 싶은.. ^^;

뭐, 그렇다고 샀단 얘긴 아니고.. 초컬릿 레서피 따위..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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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05-15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와. 진짜 초콜렛 같아요. 근데 크기도 엄청 크네요. 찬조출연한 손은 TurnLeft님의 것인가요?

turnleft 2009-05-16 03:44   좋아요 0 | URL
Chocolate lover's "handbook" 이라고 하기엔 좀 크더군요. 한 손으로 들고 사진 찍으려니 부담이 될 정도였으니;; 손은 제 손 맞아요~ ^^;

마노아 2009-05-16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책이 맛있어 보여요! 저도 턴님의 손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turnleft 2009-05-16 03:45   좋아요 0 | URL
제가 손은 좀 예쁘..쿨럭;;

Kitty 2009-05-16 06:21   좋아요 0 | URL
아 턴레프트님 이 댓글 보고 회사에서 푸하하 웃었네요 ㅋㅋㅋ
정말 손이 여자손차럼 곱고 예쁘시네요. 책도 너무 예쁘구요.

turnleft 2009-05-16 10:03   좋아요 0 | URL
왜 웃으셨을까요. 설마 귀..귀..귀여워서?(퍽!)

마노아 2009-05-16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거기 추워요? 옷이 두터워 보여요.

turnleft 2009-05-17 03:31   좋아요 0 | URL
예, 아직은 저녁 때는 좀 쌀쌀하네요. 그래도 외투 없이 저런 후드티 하나 입고 돌아다닐 수 있으니 많이 따뜻해졌죠 뭐 ^^

hnine 2009-05-17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먹는 것 관련 책들은 대개가 예뻐요. 눈길을 끌지요. 들춰보게 만들고요.

turnleft 2009-05-18 03:48   좋아요 0 | URL
네, 그렇더라구요. 먹음직한 음식들로 표지를 채워 놓으니 일단 집어들어 보게는 되지요. 덕분에 배가 고파져서.. ^^;

무스탕 2009-05-18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남자를 볼때 제일 먼저 손을 봐요.
제가 손이 안이뻐서 손 이쁜 남자가 좋거든요.
그런점에서 턴님은 합격이야요. ㅎㅎㅎ

turnleft 2009-05-19 01:01   좋아요 0 | URL
엇, 사진 보내드린걸로 이미 합격 아니었나요? ㅎㅎ
 

영화를 보러 갑니다 ^^; 

이번 달도 어김없이 영화 쿠폰 공유합니다. 

쿠폰번호 : A000000000331018 
비밀번호 : 92904134 

가져가시는 분은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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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3 2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5-04 0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시장미 2009-05-04 0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5월이군요. 저도 영화 쿠폰 새로 생겼겠네요 ㅋㅋ
근데 쿠폰은 어찌 쓰는건지 요번에는 좀 알아봐야겠어요 ^^
알려주셔서 감사! 크크

turnleft 2009-05-05 06:40   좋아요 0 | URL
현호가 왠만큼 클 때까지 영화관은 안녕~ 인 건가요? ㅠ_ㅠ
 

밤 늦게 도착한 Monticello 는 아주 조그만 마을이다. 둘러볼 것도 없이 길 가의 허름한 모텔(어김없이 인도인들이 운영하는)에 들어가 짐을 푸니 시계는 이미 새벽 1시를 가리키고 있다. 얼른 씻고 침대에 누웠지만, 좀 무리다 싶어 아침에는 좀 느즈막히 일어나기로 한다. 하지만 여유를 너무 부렸는지, 숙소에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짐을 정비한 후 출발하니 어느새 10시다. 부지런히 이동해 오늘 오전 일정인 Needles District 로 향한다. Needles 는 Canyonland National Park 의 남쪽 구역인데, 뾰족하게 솟은 바늘 모양의 지형이 많아 붙은 이름이다. 191번 국도에서도 안쪽으로 꽤 한참을 들어가야 한다.

Needles 로 향하는 길에는 Newspaper Rock 이라고 불리는 암각화가 있다. 상당히 다양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는데, 하나하나 흥미롭기는 해도 첫 날 San Rafael Swell 에서 보았던 Buckhorn Draw 같은 경건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림체도 많이 다른데다 너무 산만해서 그냥 낙서장 같다는 느낌만 들 뿐이다. 애써 들른 Needles District 도 어쩐지 조금 김이 빠진다. 어제 이미 Canyonland 의 절경들을 본 탓도 있겠고, 이 곳의 주요 포인트들은 상당한 정도의 하이킹을 요구하기 때문에 빠듯한 일정으로는 찾아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한 때 원주민들의 거주지였고, 후에는 카우보이들이 이용한 동굴(?)이 있는 Cave Spring Trail 을 돌아본 후(45분 정도 소요) 다시 차를 돌려 다음 목적지로 향한다.


Newspaper Rock


Needles District : Cave Spring Trail


Wooden Shoe Arch. 가운데 오른쪽 즈음에 구두 모양 아치가 있다.


Needles District 에서 나오는 길에 암벽 등반을 하는 곳이 있다.

191번 도로로 다시 나와 남쪽으로 달리다 163번 도로로 갈아타고 남서쪽으로 달리면 Mexican Hat 이라는 조그만 마을을 지나게 된다. 이 곳에는 이름 그대로 멕시코 사람들이 쓰는 챙 넓은 모자를 닮은 형상의 바위가 있다. 누군가 이 장소를 좋아했는지, 작은 묘비가 세워져 있는 것이 이채롭다. 암벽 등반 하는 사람들이 종종 와서 연습하는 장소라고도 한다. Mexican Hat 마을 근처에는 Gooseneck State Park 도 위치하고 있는데, 시간이 여의치 않아 따로 들러보진 못하고 지나친다. 마을을 지나고 나니 바로 Navajo Indian Reservation 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인다. 이 Navajo Indian Reservation 안에 오늘의 주 목적지 Monument Valley 가 위치하고 있다.


Mexican Hat


Utah 에서 Monument Valley 로 향하는 US 163 도로

Indian Reservation은 미 원주민 부족에 의해 관리되는 땅이다. 때때로 "인디언 보호구역"이라고 번역되기도 하는데, 지금은 그보다는 자치구나 특구 정도가 더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150여년 전에 백인 정착민들과의 충돌 방지를 명목으로 만들어진 구역이지만, 지금은 이 지역 안에서 원주민 부족이 제한적이나마 자체적인 주권을 영유하기 때문이다. 사실 Indian Reservation 의 성격을 명확히 규정하기는 간단한 일은 아니다. 과거의 맥락과 오늘의 현실, 선언된 언명과 실제의 삶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간극을 채우며 원주민 부족의 오늘을 들여다보는 작업은 충분히 유의미하다. 그들의 오늘은 서구 문명이 저지른 또 다른 야만의 살아 있는 증언이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미 원주민들은 유럽으로부터 백인 정착민들이 몰려들기 전까지는 미 대륙의 실질적인 주인이었다. 물론, 이들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땅을 자신들의 '소유'라는 개념으로 이해했을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열린 땅을 구획지어 누군가의 '소유'로 선언하는 것은 서구에서도 사유재산의 개념이 정립된 근대 이후에나 나타난 현상이니까. 기껏해야 이들에게 땅은 자신들을 둘러싼 공간일 뿐, 배타적 지배권을 가진 영토라는 개념은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시애틀 추장의 연설문을 보면 그들의 땅에 대한 관념을 엿볼 수 있다) 유럽에서 온 초기 이주민들이 원주민들과의 별다른 충돌 없이 정착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초기 정착이 안정화되고 유럽으로부터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면서 충돌이 생기기 시작했다. 정착촌들이 확장되면서 제한된 자원(식수, 나무, 사냥감 등)을 둘러싼 갈등이 발생했고, 금과 같은 광물을 노린 백인들이 원주민 주거지와 성지(聖地)들을 유린하면서 유혈 충돌이 속출한 것이다. 충돌이 빈번해지자, 미국 정부는 1830년 인디언 소개령(Indian Removal Act)을 통해 미시시피 강 동부 지역에서 원주민들이 "문명화"되지 않을 경우 다른 지역 이주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원주민 부족들은 당연히 반발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총칼로 반발하는 이들을 강제로 쫓아내기 시작했다. 일부 패배도 있었지만 백인 기병대는 각지에서 성공적으로 원주민들을 몰아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많은 수의 원주민들이 거주지를 잃고 떠도는 과정에서, 그리고 기병대의 무차별적 학살 속에 죽어갔다. 수많은 이들의 죽음 후에야 백인 정부는 비로서 "인도적 차원"에서 일부 지역을 원주민들이 배타적으로 소유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Indian Appropriations Act)을 통해 오늘날의 오클라호마 지역에 최초의 Indian Reservation 을 만들기에 이른다.


강제 이주 중이었던 Sioux 부족이 미 기병에 의해 집단 학살당한 Wounded Knee 에서의 매장 장면. 여성과 아이들을 포함하여 하루밤에 300여명이 학살당했다.(출처 : Wikipedia)

이렇게 시작된 Indian Reservation 은 오늘날 미국 전역에 약 310여개가 존재하고 있다. (Monument Valley 가 있는 Navajo Indian Reservation 은 그 중 가장 큰 Reservation 이다) 총칼에 의해 강제로 이루어지긴 했지만, 형식적으로 미국 정부는 원주민 부족들과의 협약을 통해 Indian Reservation 을 만들었다. 즉, 원주민 부족들은 미국 정부에 정복되어 복속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원주민 부족들은 스스로를 미국과 독립된 국가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각 부족을 지칭할 때 tribe 라는 표현도 쓰지만, 정치체로서의 부족 혹은 부족 연합체를 지칭할 때는 Nation 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또한 미 연방헌법은 연방정부의 권한을 규정하면서 외국 및 원주민 부족과의 협상을 담당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니, 이는 원주민 부족들은 미연방의 구성원이 아니며 연방정부와 정부 대 정부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실제 원주민 부족과 연관된 업무들은 다른 주권국들과는 달리 국무부가 아닌 내무부 산하의 인디언 사무국(Bureau of Indian Affairs)을 통해 처리되고 있다. 이는 미 연방정부가 원주민 부족들을 온전한 주권국으로는 인정하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모든 원주민 부족민들은 자동적으로 미국 시민으로 인정되어 시민으로서의 모든 권리를 갖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질적으로는 원주민 부족들은 미국 사회 내에 속해 있으면서 일부 배타적인 특권을 허가받은 혈통집단 정도의 위상을 지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Navajo Indian Reservation 안에 위치한 Monument Valley 는 따라서 National Park 이나 State Park 이 아닌 Tribal Park 에 해당한다. 애써 구입한 국립공원 연간 회원권도 여기서는 무용지물. $5의 입장료를 내고 Monument Valley 안으로 들어선다. 완만한 오르막을 따라 1 mile 정도 오르면 Visitor Center 가 나온다. 이 곳에서 바라보는 Monument Valley 의 풍경이 바로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던 사진 속의 그 장면이다. Navajo Nation 이 왜 이 곳을 신성한 장소라고 생각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재밌게도, 파노라마 카메라 X-Pan 의 화각이 이 풍경과 기막히게 맞아 떨어진다.


Monument Valley 전경

 해가 지려면 시간이 좀 남았으니 Monument Valley 안을 한 바퀴 돌아 나오는 17 mile 짜리 Valley Road 를 타고 안쪽으로 들어간다. 비포장 도로라서 빠른 속도로 달리기 힘들긴 하지만, 15mph(대략 25km/h) 제한 속도는 좀 심하다 싶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mesa 들의 장관들은 충분히 돌아볼 가치가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이 지역 안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의 주거 환경은 보는 이의 가슴을 무겁게 한다. 이들이 전통적인 삶을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컨테이너 하우스와 그 주변의 너저분한 쓰레기(부서진 TV 등)들은 미국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있는 극빈층의 삶의 모습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사실 Indian Reservation 은 미국 내에서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 사회 기간 시설과 교육, 복지, 위생이 가장 열악한 지역에 속한다. 혈연주의를 고수하면서 현대적 산업구조 대신 목축업과 임광업 같은 1차 산업, 그리고 관광업에만 의지해 경제를 꾸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다른 어딘가에 있는 조그만 나라였다면 그 정도의 생산력으로도 자신들만의 건강한 사회를 꾸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비문명의 정점에 서 있는 미국 사회에 둘러싸인 이 곳은 상대적으로 경제적으로 가장 낮은 지대를 형성하게 된다. 이 위상차로 인해 이 곳에는 오직 미국 사회가 쓰고 버린 잉여물들만이 흘러들고 있는 것이다.


Elephant Butt


Totem Pole


Monument Valley에 어둠이 내린다.

미 원주민들도 분명 이러한 Reservation 의 현실을 자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현실을 타개할만한 정치적 구심력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부족 지도자들은 미국 정부와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적당한 보상금을 받는데 안주하고 있을 뿐이다. 개인적 탈출을 감행한 이들도 미국 사회의 보이지 않는 차별의 벽에 부딛혀 대부분 고향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주어진 현실에 안주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을 찾지 못한 이들은 술과 도박으로 현실을 잊는다.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히 높은 알콜중독자 비율은 이들의 절망을 보여주는 간접지표다. 경제적, 정치적 자유를 거세당한채 유폐당한 세월이 이들의 정신마저 피폐케 한 결과다. 결국, 백인들이 빼앗은 것은 이들의 땅만이 아닌 셈이다.

물론 우리는 서구 문명을 비난할 수 있다. 오늘날 미 원주민들의 열악한 환경은 분명 서구 문명의 일방주의의 결과일 것이다. 미국인들이 정착 과정에서 원주민들을 다룬 방식은 오늘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다루는 방식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리고, 미 원주민들의 오늘에서 볼 수 있듯이, 팔레스타인에게 실질적인 경제적, 정치적 자유를 거세한 채 형식적인 자치권만을 허용하는 것은 사실상 정신적 말살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 또한 명확히 하여야 한다. 하지만, 오늘의 미 원주민 부족들이 어떻게 스스로의 삶을 개선해 나갈 수 있을까를 고민할 때 미국 혹은 서구문명을 비난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거꾸로, 원주민들에 대한 보상이 그저 보상금에 만족하고 사는 그들의 현재를 고착화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점은 역설적이기까지 하다. 불행히도, 이들의 미래는 짧은 내 고민으로는 가늠되지가 않는다.

Valley Road 곳곳에서는 정해진 도로를 벗어나면 무단침입으로 간주하겠다는 표지판과 집들은 주거 지역은 절대 사진 찍지 말라는 표지판을 볼 수가 있다. 외부를 향한 이 적대감은 상처 입은 고슴도치의 가시와도 같을 것이다. 독수리 깃털로 치장한 전사가 말 위에 올라 앉아 붉게 물들어가는 지평선을 바라보던 그 곳에는 이제 이들의 생계 수단인 관광객들만이 오가고 있을 뿐이니 말이다. Visitor Center 로 돌아오니 이미 황혼이 내린 Monument Valley 의 전경이 다시 나를 맞는다. 굴곡진 역사 속에 잊혀져 간 그들의 한이 피울음이 되어 대지를 붉게 물들이고 있는 듯 하다. 해는 이제 졌다. 하지만, 모든 것이 어둠만은 아니다. 지평선 위에 나타난 작은 별은 아직 바라볼 빛이 남아 있다고 말해주지 않는가.


해가 진 후 붉게 빛나는 Monument Valley


Mesa 위로 초저녁 별이 떠오른다

차를 돌려 나오면서 오늘밤 머무를 장소를 고민해 본다. 사실 아까 Monument Valley 로 들어오는 진입로를 해 뜨는 시각에 다시 잡아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지만, 내일 아침 9시 반에 Page 에서 예약해 놓은 Antelope Canyon Tour 시간이 발목을 잡는다. 해 뜨는 시각은 7시 반이고 촬영이 끝나면 대략 8시, 2시간 거리에 있는 Page 에 9시 반에 도착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아쉬운 마음을 애써 달래며 Page 로 향한다. Recreation 중심지인 Page 는 완연한 관광도시다. 관광객들이 많은지 빈 방이 있는 모텔을 찾지 못해 한참을 돌다가, 운 좋게도 예약 취소된 방이 하나 남은 모텔을 잡고 들어간다. 예전 아파트였던 건물을 개조해 모텔로 운영 중인 듯 한데, 좀 낡긴 했지만 거실, 부엌 딸린 2 bedroom 방이 하루밤에 $45이니 굉장히 저렴하다.

Arizona 의 밤이 깊었다. 이제는 자야 할 시간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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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ky 2009-04-20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곳의 석양을 못 봤어서 참 아쉬웠었는데, 이렇게 사진으로 보니까 역시 멋집니다. ^^저희는 마뉴먼벨리 진입로를 해 뜨는걸 보면서 달린후, 마뉴먼벨리 안을 구경하고, 오후에 Page의 Lake Powell에 갔었거든요. 해뜰때 온통 시뻘겋게 변하던 주변경관에 완전 압도당했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그곳의 비현실적인 빨강을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무척 경건하고 경이로운 장면이었어요.

turnleft 2009-04-20 07:13   좋아요 0 | URL
제가 못 본 장면을 보셨군요 ㅠ_ㅠ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꼭 다시 한 번 시도해 보고 싶더군요;;

마노아 2009-04-20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 전에 사진 인화하면서 턴님 사진을 몇 개 신청했는데, 웹상에서 제가 받은 사진은 용량이 작은 거였나봐요. 사진 품질이 좋지 않다는 메시지가 뜨더라구요. 여기 올려진 사진들은 해상도 큰데..ㅠ.ㅠ
그래도 뭐 어쩌겠어요. 그냥 신청했지요.ㅎㅎㅎ
후기 자주 올려주세요. 너무 뜸하게 올라와요ㅡ.ㅜ

turnleft 2009-04-21 03:39   좋아요 0 | URL
음.. 해상도 큰 사진들은 따로 보관을 하는지라.. ^^;
후기는 저도 자주 올리고는 싶은데.. 요즘 글 쓰는 속도가 너무 느려서리 ㅠ_ㅠ

가시장미 2009-04-24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사진 압권입니다. ^^
실제로보면 입을 못 다물 것 같은데.. 입 벌리고 찍으신거 아니죠? ㅋㅋ

턴형의 여행기는 여행에 대한 단순한 감상을 뛰어넘은 시사점이 많아서 쉽게 읽혀지지는 않지만, 읽고 나서는 철학적인 잔상이 남아 유익한 것 같아요. 이런 여행기를 쓰실 수 있으시다니.. 대단하세요. 늘 감탄합니다. 으흐

turnleft 2009-04-25 15:31   좋아요 0 | URL
"쉽게 읽혀지지는 않지만" 아픈 곳을 꼭 찌르시는군요 ㅠ_ㅠ

가시장미 2009-04-29 01:09   좋아요 0 | URL
에이~쉽게 읽혀지는 게 꼭 좋은 건 아니잖아요. ㅋㅋ 많은 생각을 내포한 글은 대부분 쉽게 읽혀지지 않죠. 그런 의미였어요. ^^

turnleft 2009-04-29 08:18   좋아요 0 | URL
ㅋㅋ 무슨 말인지 알아요. 그냥 장난 치는 거죠 뭐.. ㅡㅡ^

프레이야 2009-04-30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턴님 너무 부러운 페이퍼에요.^^
석양에 붉게 타는 사진이랑 모두 멋집니다.

turnleft 2009-05-01 02:34   좋아요 0 | URL
두 따님 대학만 보내시면 혜경님도 훌훌 떠나세요~~ ^^
이번에 부모님 미국 오셔서 여행하시는거 보니까, 더 미루면 늦겠다 싶더라구요;;

소나무집 2009-05-06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뉴스페이퍼락은 저의 가족도 다녀왔답니다. 국립공원 북스토어마다 있던 인디언 관련 기념품을 볼 때마다 불편했더랍니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원주민들에 대해 궁금증만 잔뜩 품고 돌아왔는데 마침 님께서 올리놓은 글을 보니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가 고민한다고 뭐 달라질 일은 아닌 것 같네요. 역시 님의 사진은 멋지네요.

turnleft 2009-05-07 02:23   좋아요 0 | URL
바로잡기엔 시간이 너무 지난 탓이겠지요. 뭐, 결국은 원주민들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그나저나, 고생 많으셨지요? 혼자 다니던 것도 벅차던데 아이들까지 데리고 다니시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