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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의 일기 ㅣ 눈높이 클래식 29
안네 프랑크 지음, 정미영 옮김, 김태균 그림 / 대교출판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얼마 전 신문 한 귀퉁이에 실린 글을 본 적이 있다. 바로 그 날이 안네의 생일(6월 13일)인데 안네가 13세 생일 선물로 받은 일기장을 가지고 2년여 동안 일기를 썼고 이 일기를 안네가 잡혀갈 당시 미에프라는 이웃이 몰래 책장에 숨겨 두었고 나중에 혼자 살아 남은 안네의 아버지가 그것을 책으로 출간하게 되었다고 한다.그 신문 기사를 보고 나서 강하게 안네의 일기가 보고 싶던 터에 이렇게 운좋게 당첨되어 책을 접하게 되었다.
너무 유명한 책들은 그 시기를 놓치면 안 읽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이 책 또한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너무 유명해서 지나쳐버렸던 책을 우연히 읽게 되었는데 참 잘 읽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안네를 비롯해서 은신처에서 살았던 8명의 생활이 우리들의 일상과 별로 다를 게 없었다는 것이다. 그건 바로 내가 그 상황이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고 누구든지 그 상황이라면 똑같은 일들을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기 전에는 막연히 안네의 일기에는 전쟁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절망과 독일군의 잔학상들이 절대적일 거라 생각했었는데 그것과는 달리 사춘기를 겪는 안네의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물론 전쟁 상황이라는 것과 은신 중이라는 특별한 상황은 곳곳에 나오긴 하지만 그것이 주를 이룬다기 보다는 13세~15세 소녀의 눈으로 바라본 온갖 생활의 단편들이 더 주를 이룬다는 생각이 든다.
2년 넘게 쓰여진 일기 속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은신처에 있는 8명의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다. 그 중에서도 안네는 다른 사람들에게 건방지고, 제멋대로이고, 천방지축이며, 수다가 많고 고집쟁이로 통하며 갈등 상황의 중심축이 되고 있다. 특히 반 단 부인과의 반목은 그런 씩씩한 안네에게도 매번 큰 상처를 주기도 하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와의 갈등, 그리고 페터와의 우정, 사랑 등등은 전시 상황, 은신처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여전히 존재함을 보여 준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슨 싸움이며 사랑이냐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거다. 똑같이 싸우고, 똑같이 사랑하고. 똑같이 화해하고.... 그런 위험한 상황에서라면 모든 것이 이해되고, 배려하며 살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8명은 평상시 생할과 똑같이 갈등하고 싸우고, 화해한다. 그것이 우리 인생인 듯 하다. 오히려 은신 생할이 그들을 더욱 더 예민하게 만들어 조그마한 일에도 더 화를 내는 상황을 보면서 인간의 연약한 모습을 보게 된다.
또 한 가지. 안네, 마고트(안네 언니), 페터 등을 비롯하여 은신처 식구들이 끊임없이 학문을 추구하고 독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언제 게슈타포에게 잡혀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공부는 무슨 공부? 이렇게 생각할 터인데 그들은 그렇지 않았다. 대수학, 속기, 프랑스어, 영어 등등 학교에 다닐 때랑 똑같이 공부하며 책을 읽으며 자신의 학문을 쌓아 나간다. 안네의 아버지 또한 디킨스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일기 곳곳에 나와 있다. 이렇게 일상 생활을 꾸준히 해 나가는 부분이 나에게는 감동적이었다. 그것이 바로 희망을 안고 사는 모습으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언제 잡혀 갈지 모르니깐. 언제 죽을 지 모르니깐. 아무렇게나 살자가 아니라 그렇게 차근차근 일상 생활을 해 나갔던 그들의 모습이 존경스럽다. 그 와중에도 책을 읽고, 희망을 가지며 미래를 준비하는 모습들이 오히려 읽는 이에게 난 그들과 비교할 때 현재를 열심히 살고 있나 반문하게 만들었다. 역으로 그들이 그런 생활을 하지 않고자포자기하며 매일 매일 불안에 떨고 있었다면 더 견디기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일상적인 일들을 해 나갔기에 견딜 수 있었고 책이 있었기에 위로가 되었을 거란 생각도 해 본다.
안네는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시절을 그 곳에서 보내면서 일기장 키티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써 나간다. 가장 좋아하는 아빠와 페터에게도 말 못하는 부분들을 오직 키티에게 말하며 그럼으로써 자신의 상처를 치료해 가고, 자신의 사랑을 키워 가고, 자신의 꿈을 준비해 나간다. 사춘기 소녀가 그 좁은 공간에서 느꼈을 답답함 , 반항심 등은 어른들에게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그런 안네의 언행이 어른들에게 못마땅한 대상이 되어 안네의 마음을 후벼 판다. 안네는 그래도 당당히 맞서 싸우며 자신의 꿈을 준비해 나간다. 안네 말처럼 하나님이 안네에게 글쓰는 재주를 주셔서 13-15세 소녀가 썼다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깊은 내용들도 있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중에 조작한 것이 아닌가라는 설도 있었다고 하는데 안네의 친필로 판명되었다고 한다. 그만큼 은신처 생활 속에서도 자신을 가꾸기를 게을리 하지 않고 여러 가지 책들을 많이 읽은 덕분에 안네는 박식할 수 있었다는 점이 우리 어린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아마 안네가 살아 있었다면 분명 훌륭한 기자가 되었을 거라 생각된다.
언젠가 암스테르담에 가면 안네의 은신처를 꼭 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