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어린이/청소년 분야 주목할 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케이트 그린어웨이 수상작가의 첫 그림책이라는 소개가 눈길을 잡는다.  일단 그림은 아름다울 것 같다는 확신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고 개라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동물 중의 하나를 소재로 쓰여진 그림책이기 때문에 어린이들이 무척 좋아할 것 같다.  겉표지에 그려진 다리 짤막하고 귀는 엄청 긴 개가 자신의 목줄을 질끈 씹고는 살짝 옆으로 눈길을 주고 있는 장면이 뭔가 재밌는 견공들의 이야기가 있을 듯 하여 읽고 싶다.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라는 사람의 작품은 놓칠 수가 없다. 뭔가 초현실주의를 표현하는 듯한 그림과 어린이 그림책이 아닌 듯 심오한 내용은 그림책이 단순히 어린이들을 위한 그림책이 아님을 증명해 주는 작가이다. 작가의 새 책이 나왔으니 당연히 보고 싶다. 이 사람의 그림은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해서 마치 내가 미술관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꼭! 읽고 싶다. 

 

 

 

이미 시공주니어에서 나온 책이 우리 집 책꽂이에 꽂혀있긴 하지만 출간 100주년 기념으로 완역된 책이 다시 한 번 멋진 그림을 만나 나왔다고 하니 갖고 싶어지는 책이다.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있다고 하니 영화를 보기 전에 꼭 읽어 봐야 하지 않을까? 

 

 

 

울렁증이란 말이 듣기에 참 재미있다. 무슨 사정이 있길래 학교 울렁증이 생겼을까 궁금해진다. 그리고 엄마의 치료법 < 미소 짓기 프로젝트>가 무엇일까도 함께 궁금하다. 우리 주변에 여러 가지 이유로 학교 울렁증이 있는 어린이들이 있는데 그런 어린이들을 이해하고 치료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추천한다. 

 

 

  조선 시대의 기록 문화는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 보기 어려울 정도로 아주 잘 되어 있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어린이들이 알기 쉽게 조선 시대 기록을 담당하던 <규장각>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고 하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자랑스러운 우리의 투철한 기록 정신과 빛나는 기록 문화를 읽을 기회가 생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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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바꿔 주세요 아이스토리빌 5
브리지트 스마자 지음, 이희정 옮김, 원유미 그림 / 밝은미래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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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매년 새 학년이 되고 새 담임과 새 친구들을 만나는 것은 당연히 두렵고도 설레는 일 중의 하나일 것이다. 우리의 주인공 막심 보노 또한 6학년이 되는 일이 두렵고 설레기는 마찬가지인데 지난 1년을 너무 힘들게 보냈기에 이번에는 자신을 그렇게 괴롭게 만든 카레트 선생님을 또 다시 만날까봐 밤에 잠도 못 자고 새 학년을 맞게 된다. 

지난 1년 동안 막심은 카레트 선생님께 이유 없이 구박을 받았다. 왜 자신을 선생님이 미워하는지조차 모르는데 선생님은 막심의 헤어 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셨고, 질문에 답하면 기다리지 않고 잘난 척 한다고 지적하시며, 열심히 수학 공부를 해서 1등을 해도 칭찬은 커녕 돌아오는 건 싸늘한 눈초리 뿐이었다. 도대체 왜 카레트 선생님은 막심만 미워하는 걸까 그 이유조차 모른 채 점점 막심은 학교 가는 게 도살장에 끌려 가는 것 만큼 싫어지고 친구들과 지내는 것도 쉽지 않다. (왜냐면 친구들도 선생님이 막심을 미워하자 막심을 멀리 한다. )

드디어 개학 날 제발 이번에는 카레트 선생님이 아니길 고대하며 학교에 왔는데 정말 다행으로 메지엠스키라는 새로운 수학 선생님이 담임이 되었다. 그 공포의 카레트 선생님은 다른 곳으로 가셨다고 한다. 이제 행복한 학교 생활이 시작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 구관이 명관이다.> 라는 말이 있듯이 어느 새 예전의 카레트 선생님을 그리워하는 자신을 보게 된다. 새로운 메지엠스키 선생님은 뚱뚱한데다 어울리지도 않는 빨간 색 꽉 끼는 바지를 입고. 수학도 재미없게 가르치고, 결정적으로 엄마와 친구인 사실 때문에 친구들 앞에서 막심을 편애하는 행동을 빈번히 하셔서 결국 막심을 친구들로 부터 멀어지게 하는 결과를 낳게 한다.  막심은 단정하고, 수학도 잘 가르치셨던 카레트 선생님이 진짜 진짜 그립다. 

아무 때나 애정 표현을 해대는 메지엠스키 선생님을 찾아 가기로 한 막심 보노.  선생님께 제발 자기를 미워해 달라고 부탁을 하기에 이른다. 메지엠스키 선생님은 어떤 결정을 내리셨을까? 

나를 무조건 미워하는 선생님과 나를 무조건 예뻐하는 선생님  

이 책은 두 극단적인 설정이 나오긴 하지만 학생으로서 겪을 수 있는 상황이 묘사되어 있다.  학생으로 지내면서 나와 잘 맞는 선생님만 만나라는 보장은 없다. 가끔은 나랑 전혀 궁합이 맞지 않는 선생님을 만날 수도 있다.왜냐면 학교 또한 작은 사회이기 때문이다.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나와 잘 맞는 사람도 있지만 그 보다 맞지 않는 사람이 더 많은 것처럼 말이다. 그러기에 학교라는 사회에서도 그런 경험을 해 보는 것은 사회 적응 훈련이 될 수도 있다.  

막심은 극단적으로 자기를 미워하는 선생님과 자기를 이뻐하는 선생님을 연속적으로 만난다. 하지만 둘 다 괴롭기는 마찬가지이다.  선생님과 학생이 잘 맞는 것은 학교 생활을 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다. 선생님이 좋으면 그 과목 공부가 저절로 잘 되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잘 안다.  이 책은 그런 문제 상황을 헤쳐 나가는 막심과 막심의 친구들, 가족의 이야기를 재밌게 들려 준다. 결정적으로 막심의 캐릭터가 너무 재미있다. 그의 소꿉 친구 르네 또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 내고 있다. 이 책을 보면서 < 잔소리 없는 날>의 악동 푸셀이 자꾸 생각났다.  그림도 엇비슷하다.  마지막 부분 왜 카레트 선생님이 막심을 미워했었는지 그 이유가 밝혀지는데 반전이 있어 또한 재미있다.

내가 막심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자문해 보며 읽는다면 더 재미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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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라크슈미입니다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9
패트리샤 맥코믹 지음, 최지현 옮김 / 보물창고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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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무렇게나 칠해진 벽에 난 자그마한 창문 사이로 슬픈 눈으로 어딘가를 쳐다 보고 있는 소녀가 바로 라크슈미이다.  라크슈미라는 이름은 온 세상을 돌며 가난하고 순수한 사람들에게 부와 축복을 내리는 라크슈미 여신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아마 부모는 라크슈미 여신처럼 이 아이가 부와 축복을 누리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름을 지었을 것이다. 

제비 꼬리 모양의 산꼭대기에서 사는 네팔 소녀 라크슈미는 가난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고 부지런히 일하며 학교에서는 공부도 잘하는 모범생이다. 소녀의 희망은 부자가 되겠다는 것도 아니고 다만 양철 지붕을 가지는 것과 온 식구가 굶지 않는 것 그리고 크리슈나와 결혼하는 것 정도이다. 이런 소박한 꿈을 지닌 열 세살의 소녀를 무참히 짓밟은 사람들이 있다. 

첫째 부모이다.먼저 새아버지는 노름꾼에다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으며 거저 먹고 살고 있으며 착하디 착한 라크슈미를 1000루피에 가정부로 팔아 먹은 그야말고 파렴치한이다.  그 다음은 네팔 사회 제도에 너무 순응한 나머지 자신의 딸의 운명이 어떻게 될 지도 모르면서 <그저 여자니까 견뎌야 돼. 그게 이기는 거야> 말하는 너무나 무책임한 아마(엄마)이다.  새 아버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어떻게 친어머니가 되어 가지고 그렇게 아무 것도 모르고 딸을 넘길 수 있을까 싶다. 착하다는 것과 무지하다는 것은 큰 차이가 있음을 아마가 보여준다. 아마는 착하다. 하지만 무지하기 때문에 라크슈미를 그런 고통에 빠뜨리는 장본인이기도 하다. 아마가 여자이기에 운명이다 생각하며 걸어왔던 길을  자신의 딸도 당연히 걸어가야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아마가 좀 더 진취적이고 좀 더 지혜로왔다면 새아버지를 보며 < 그래도 남자가 집안에 있어야 돼> 라는 식의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네팔의 사회 제도가 어떻든지 간에 아마가 좀 더 지혜로운 어머니였다면 라크슈미의 고통은 없었을 것이다.  

두번째 라크슈미를 짓밟는 사람은 바로 라크슈미가 잡혀 있는 인도의 홍등가를 찾아 오는 모든 남자들이다. 더러운 남자들, 늙은 남자들, 거친 남자들, 뚱뚱한 남자들, 술 취한 남자들, 아픈 남자들 그 모든 남자들이 라크슈미를 짓밟는다. 매춘의 역사는 거의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거와 비슷하다고 한다. 그리고 여자의 최초의 직업 또한 창녀라고 하니 이건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를 따지는 것처럼 어렵다. 단. 창녀를 찾는 남자가 끊이지 않고 있기에 인간의 역사 이래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는 직업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난 이 부분에서 왜 하나님은 남자의 성욕을 강하게 하셔서 이토록 고통 받는 여자가 생기게 만드신 걸까 묻고 싶어진다.  요즘 우리 나라를 들썩이는 끔찍한 성폭행 사건 모두 어린 여자 아이를 상대로 한 성폭행 사건임을 보면 정말 분노하게 된다.  여자가 남자를 성폭행했다는 사건은 듣도 보도 못했다.  물론 남녀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은 건 아니나 끊임없이 성욕을 발산하는 뭇 남자들 때문에 이런 어두운 현실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통탄할 뿐이다. 한 남자가 한 여자로만 만족하는 사회라면 이런 끔찍한 일들은 벌어지지 않을 텐데 말이다.

셋째는 바로 뭄타즈라는 포주이다.  이 아줌마야 말로 절대악이라는 생각을 한다. 본인도 여자이면서 홍등가를 찾은 남자들에게 이제 갓 12세, 13세인 소녀들을 넘겨 주면서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는 정말 괴물이다. 이 여자의 괴상한 계산법-고리대금업도 아니고-에 라크슈미는 마지막 가졌던 희망마저 꺾이어 스스로 남자들을 유혹하며 무슨 짓을 해서든 돈을 모아서 이 곳을 나가기로 마음먹지만 뭄파즈의 부하인 쉴파에게서 들은 네팔에 있는 식구들에게 단 한 푼도 돈이 가지 않았다는 것과  뭄파즈에게 진 빚을 평생 갚을 수 없다는 것을 듣고 절망한다. 결국 라크슈미가 홍등가에서 당한 모든 일들은 아무 소용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이 가장 마음 아프다. 정말 한 가닥의 희망마저도 사라져 버렸을 때의 라크슈미의 절망이 그대로 전해진다.  

넷째 뭄타즈를 묵인해주는 경찰이다.  예전에 보았던  <투 캅스>에 나오는 비리 경찰을 보는 듯하다. 뭄타즈가 있을 수 있는 건 바로 이 비리 경찰들의 비호가 있었기 때문이고 라크슈미 같은 소녀들이 홍등가를 벗어날 수 없는 이유 또한 비리 경찰들의 묵인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법이 만들어진 이래 제대로 지켜지기만 한다면 그런대로 괜찮은 세상이 되었으련만 이래 저래 법을 피해 가는 사람들과 권력을 남용하는 사람들 때문에 애꿎은 사람들만 피해 보는 세상이 되었다. 우리 나라도 법을 지키는 사람은 어느새 바보 취급하고 법을 안 지키는 사람이 능력자, 권력자가 되어 있으니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절망 끝에 있던 라크슈미를 도와준 사람들도 있다.  홍등가에 같이 있었던 샤한나 , 차 파는 소년, 데이비드 베컴 소년 등 이들이 있었기에 라크슈미가 그 힘든 일들을 겪고도 자신의 목숨을 놓지 않았던 것 같다. 예전에 중학교 영어 시간에 처음 배우는 문장 <내 이름은 라크슈미입니다.> < 나는 네팔에서 왔습니다. > <나는 열네 살입니다. >이 이렇게 자신을 증명해 보이고 이 어두운 터널에서 빠져 나오게 하는 한 줄기 희망이 될 줄은 몰랐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안네의 일기>와 <모래시계가 된 위안부 할머니>가 자꾸 떠올랐다. 안네의 일기는 이 책이 일기 형식으로 씌어져 있으면서 안네처럼 일정한 공간에 갇히어 지내는 것과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공부하는 모습이 흡사해서였고- 하지만 안네보다 라크슈미가 겪은 일이 더 비참하다고 생각된다. 안네에게는 함께 하는 가족이 있었지만 라크슈미는 그 끔찍한 일을 혼자 겪기 때문이다.- 위안부 할머니는 라크슈미가 겪은 일들이 바로 타의에 의해 여러 명의 남자들에게 처참히 짓밟히는 거라서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이 책을 읽을 때 언제쯤 라크슈미가 이 어두운 터널을 빠져 나올까 전전긍긍하며 숨가쁘게 읽었다. 그런데 갈수록 비참해져서 읽는 내내 분노하였다. 라크슈미를 짓밟은 사람들에 대해서 분노하였고 이런 일들이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몰랐던 내 무지에 대해서도 분노했다.  아마처럼 무지하면 안되는데 그리고 잊어서도 안되는데.... 자꾸 남들의 아픔과 고통을 잊어버려서 미안하다.

매년 50만 명 가량의 어린이들이 성 노예로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충격을 받았다. 예전에 위안부 할머니들이 끌려갔던 것처럼 똑같은 현실이 되풀이 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몇 년 전 사창가를 없애는 등 여러 가지 제도를 마련하였지만 암암리에 매춘 행위가 행해지고 있음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과연 인간의 역사가 끝나는 날 종영되는 것일까? 적어도 마음껏 뛰어 놀고 학교에서 공부해야 할 나이의 어린 아이에게만큼은 이런 일들이 일어 나지 않도록 사회 제도를 마련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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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요정 2010-09-26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어보지 않았는데도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되어선지 머릿속에 팍 와닿네요.
글도 참 매끄러워요. 즐겨찾기 하고 갑니다.^^

글샘 2010-09-26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화가 나서 욕을 막 퍼붓고 말았는데요. ^^
님은 그래도 간결하게 정리를 잘 해 주셨군요.
사회 제도를 마련해 주길... 누구에게 바라야 할까요?
좋은 글 많이 남겨 주세요.^^
 
다롱이의 꿈 동심원 11
이옥근 지음, 안예리 그림 / 푸른책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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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그것도 동시집을 읽은 것은 거의 처음인 듯 하다. 시라는 것은 감수성이 예민한 중고등학교 시절에 가끔 들여다 보던 것이었을 뿐 내 관심에서 멀어진 지 오래되었는데 시도 아니고 동시를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가끔 아이들을 가르치며 함께 읽곤 하였지만 그래도 동시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동시하면 왠지 촌스럽고 유치할 것 같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신형건 시인의 동시집 <거인들이 사는 나라>를 보고 생각이 달라지고 있던 터에 이옥근 님의 첫 동시집을 다 읽고 나니 나의 선입견이 완전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고 동시를 짓는 모든 어른들에게 존경의 마음까지 가지게 되었다. 시를 짓는다는 것도 참 힘들 터인데 어른이 아이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동시를 짓는다는 것은 갑절 힘든 작업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옥근 시인의 약력을 보고 반가웠다. 내가 졸업한 여수여자고등학교 바로 옆에 있는 여수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과 나와 같이 교편을 잡고 있다는 이 두 사실 때문에 더 관심을 가지고 시를 읽었다. 역시 뭔가 공통 분모가 있다는 것은 더 관심을 집중하게 하나 보다. 

이옥근 님의 대표작인 <다롱이의 꿈>은 읽을수록 인간의 욕심보다는 자연의 꿈을 이뤄져야 함을 깨닫게 해 주는 귀여우면서도 감동을 주는 시다. 특히 마음을 끈 것은 - 다람쥐 꼬리 닮은 억새들이 손짓하며 달려들었지만 단숨에 뿌리치고 뛰었습니다- 라는 구절인데 또다시 자연을 가지고자 하는 욕심을 억누르는 그 마음이 잘 전달되었다. 자연은 자연 속에 있어야 가장 아름다운 것임을 왜 인간은 자주 망각하는 것일까? 지금쯤 다롱이는 숲에서 열심히 도토리와 밤을 주워 먹고 있겠지.

대단한 상상력이다 했던 작품은 < 장롱 속 옷걸이>라는 시였다. 난 이제껏 옷걸이의 모양이 <? >를 닮았다고 생각해 본적이 한 번도 없는데 시인은 그걸 그렇게 시로 나타낸 그 기발함에 박수를 보낸다. 나처럼 보편적인 생각만 하고 사는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든 시였다. 창의적인 사람 앞에서 보편적인 사람은 항상 쪼그라들곤 한다. 

 가장 재미있게 읽은 시는 <도둑 방귀>라는 시다. 읽는 내내 미소를 짓게 만든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소재가 바로 방귀가 아닐까 생각하곤 하는데 역시 방귀를 소재로 아주 재밌게 쓰셨다. 

< 아저씨. 미안해요> 라는 시는 지금 현실을 그대로 나타내는 그런 시였다. 엘리베이터를 같이 탄 사람이 조금 무섭게 생긴 아저씨일 경우 누구나 한 번 쯤 느꼈을 공포감. 왜 이런 세상이 되어버렸는지... 씁쓸할 뿐이다. 

< 내 몸에 벌레 한 마리 산다 >라는 시 또한 공감이 간다.  자꾸 내 몸 속에 작은 벌레가 큰 괴물이 되어 가는 듯한 기분. 자꾸 나쁜 말을 하게 되고, 자꾸 미워하게 되고, 자꾸 분노하게 되고... 내 안의 작은 벌레를 없애 줄 예쁜 말들만 하고 살아야 할 터인데 말이다.  

< 정글 거리> 라는 시 또한 눈길을 사로 잡았다. 겨울만 되면 우리 나라도 어느덧 흔하게 모피를 보게 된 요즘. 밍크 코트 하나 만들기 위해 60-80마리의 밍크가 들어간다고 하는데 ....한쪽에서는 밍크 코트며 악어 가방, 물소 가방을 만들어 내고 다른 한 쪽에서는 동물을 보호하자는 시위를 하고....  정글 거리가 되어 가고 있는 현실을 적절하게 잘 표현한 시라고 생각한다. 

이런 기회가 아니었으면 접하지 못했을 동시집. 앞으로는 동시라고 절대 무시하지 않을 것이다.그리고 이옥근 시인의 말처럼 좀 더 주변에 관심을 가지고 깊이 들여다 본다면 나도 언젠가 시 한 줄 쓸 수 있지 않을까 라는 희망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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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멘타인의 편지 동화 보물창고 27
사라 페니패커 지음, 최지현 옮김, 말라 프레이지 그림 / 보물창고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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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큼한 주황색이 돋보이는 표지 전면에 나온 아이는 제멋대로 휘날리는 머리카락과 약간 놀란 듯한 동그란 눈,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이 안 되는 옷차림에 두 손에 편지를 들고 있다. 이 아이가 바로 클레멘타인이다.  개구쟁이처럼 보이는 이 아이의 모습에 분명 재밌는 이야기가 많을 거란 기대를 하였다.그런데....

솔직히 재미가 그닥 있지 않아서 끝까지 읽는 내내 고달팠다. 왜 재미없을까 생각해 보니 주인공 클레멘타인의 캐릭터가 2% 부족해서이다. 꼬마 아이가 주인공인, 그것도 약간 엉뚱한 기질이 있는 책들의 다른 주인공들- 삐삐 롱스타킹, 꼬마 니콜라, 에밀은 사고뭉치-은 이름만 들어도 그 아이들의 캐릭터와 함께 이미지가 잘 연상되는데 클레멘타인은 끝까지 다 읽는 내내 얼른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고 도대체 이 아이의 캐릭터가 뭐야? 하는 질문을 계속 해댔다.  

그렇게 엉뚱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악동도 아니고 보는 내내 클레멘타인은 다른 아이랑 다른 점이 무엇일까 고민고민만 했다. 3권까지 만들어졌다면 분명 캐릭터가 살아 있을텐데 난 왜 이리 이 아이가 사랑스럽지 않지 하는 의문에 옮긴이의 글을 읽고 나서야 해답을 찾았다.  옮긴이의 말처럼 3권은 전작 2권에서 보여지던 엉뚱발랄하고 천방지축의 모습은 사라지고 조금 성장하여 철이 들어 있는 클레멘타인의 이야기가 그려진 탓에 나처럼 3권만 읽는 사람들은 캐릭터가 애매하다고 느낄 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정독을 했다. 그랬더니 클레멘타인이라는 아이의 특성에 대해서 조금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다른 주인공 아이들처럼 그렇게 가슴에 깊이 와닿지 못하는 것은 여전히 1,2권을 읽지 못해서일까?  삐삐 롱스타킹도 3권 짜리이고, 꼬마 니꼴라도 5권 짜리인데 각권을 읽어도 그들만의 캐릭터가 살아 있고 악동임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 밖에 없이 빠져들게 하는 마력이 있는데 클레멘타인은 그 점에서 2% 부족한 캐릭터라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 전개 방식도 그다지 궁금증을 느끼지 못하게 약간 산만한 인상을 준다. 왜 클레멘타인이 드매츠 선생님을 교사 연수회에 가지 못하게 하려는지도 제대로 잘 전달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왜 클레멘타인이 편지를 써서 심사에서 선생님을 떨어뜨리려 하는지 잘 이해가 안 갔었다.두번 째 읽을 때야 클레멘타인이라는 아이가 다른 사람과 쉽게 쉽게 적응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겨우 호흡이 잘 맞게 된 선생님과 헤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던 것을 알았다. 클레멘타인의 편지라는 제목과는 다르게 중간에 소제목으로 들어가는 에피소드 또한 나에게는 연결점이 없고 약간 끼어 맞추기 식의 구성이 보여서 지루한 느낌을 주었다.   

그래도 감동적인 장면이 있다면 이걸 꼽고 싶다. 아빠와 딸이 공동작품으로 책을 만드는데 스케치북에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글을 쓰는 형식이다. 그러던 어느 날 충동적으로 재활용품을 돈을 받고 이웃에 팔아 넘긴 클레멘타인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잔뜩 화가 난 아빠가 화내고 혼내는 것이 아니라 딸 아이의 방에 들어가 스케치북에 조용히 < 어떤 일을 하기 전에 미리 생각해 보라>는 글을 쓰는 장면이 있다. 그 어떤 훈계보다 클레멘타인의 마음을 움직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부모로서 움찔하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두번 째 감동적인 장면은 임시 담임이었던 네이젤 선생님과 클레멘타인이 나누는 대화이다. 둘의 장면은 < 어린 왕자>에서 여우와 어린 왕자가  길들인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과 흡사하다. 여기서 클레멘타인은 자신은 드매츠 선생님의 규칙은 알지만 네이젤 선생님의 규칙은 모르기에 자꾸 실수를 한다고 한다. 그 대답으로 선생님 또한 클레멘타인이 속한 반의 규칙을 알고 싶다며 손을 내밀고 클레멘타인이 매번 하는 방법처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팔에 그 내용을 쓴다.문신처럼 말이다. 서로의 규칙을 안다는 것과 길들여진다는 것. 일맥상통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클레멘타인과 네이젤 선생님이 좀 더 빨리 서로의 규칙을 알려 주었다면 괜한 오해나 실수, 충돌은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외향적이어서 다른 사람이나 다른 환경에 빨리 적응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향적이라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클레멘타인 같은 아이들에 작은 배려- 규칙을 말해 주는 것-가 그들이 빨리 적응할 수 있고 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이 책은 보여 준다. 그래도 아쉬운 것은 3권만 읽는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 전작과 같이 주인공의 생생한 캐릭터가 좀 살아 있었으면 훨씬 더 재미있게 책을 읽을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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