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상계동 아이들 ㅣ 사계절 아동문고 52
노경실 지음, 김호민 그림 / 사계절 / 2004년 12월
평점 :
서울 북쪽 끝에 위치한 상계동! 현재 내가 살고 있는 곳.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을 알고부터 언젠가는 꼭 읽어야지 하며 미루다가 지금에서야 그들의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97년에 초판이 나온 이래 지금 사계절 출판사에 나온 이 책이 바로 3번째 판본이다. 14년이 지난 지금 상계동 산152번지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인터넷에서 지도를 찾아 보았다. 아파트촌으로 변해 있을까? 아님 그대로일까? 인터넷으로 찾아가 보니 아직도 산152번지는 산동네 그대로였다. 강산이 한 번 변하고도 더 세월이 흘렀는데도 아직 그 <개발>이라는 것이 이곳에 오지 않았나 보다. 물론 개발이 되어도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이 혜택을 받을 리 만무하지만... 땅 투기꾼들이 덕을 보면 봤지.
단골미용실이 당고개역에 있어서 지하철을 타고 지나면서 봤던 그 산동네가 바로 여기였나 보다. 아파트 사이사이에 어울리지 않게 스러져 가는 집들이 있어서 이 곳도 머지 않아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불도저가 들어오겠구나 생각했었는데..... 바로 14년 전 이 곳에 살았던 이들의 이야기가 바로 <상계동 아이들>이었다.
산동네 이야기가 그렇듯이 정말 가슴 저미는 사연들 뿐이다. 예전에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읽었을 때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곳도 마찬가지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우리의 가슴을 저미게 했는데... 이 이야기들도 하나같이 어두운 사연에 희망도 보이지 않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무당인 엄마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 듣지 못하고 동네 친구들에게 방돌이라 놀림을 받는 깐돌이
생선 파는 엄마 때문에 온 몸에 비린 내가 배어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지만 착하디 착한 윤아
공사장에서 일을 하다 어느 날 갑자기 머리가 아파 그길로 몸저 누워 제대로 된 진료 한 번 받아 보지 못하고 엄마를 하늘로 보내고 팔 한쪽이 절단되어 술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아버지 대신에 소녀 가장이 된 기옥이
정신박약아지만 노래도 잘 부르고 춤도 잘 추워 동네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귀염둥이 형일이
고리대금업으로 산동네에서 악명 높은 할머니 덕분에 산동네에서 가장 부자처럼 살아가지만 부모님이 안 계신 종칠이
동네의 말썽 꾸러기로 명주네(맹인 가정)가 이사오던 날 뭔가를 훔쳐 달아나는 삐딱함의 대명사 광철이
맹인 부모에 한쪽 눈이 잘 안 보이는 큰언니까지 있는 명주네 가정은 결국 이 서울의 끝자락 산동네에서도 살지 못하고 결국은강원도로 가게 된다.
요즘 즐겨 보는 프로그램 중에 마이클 샌델의 <정의>특강이 있다. 그 강의 내용 중에 부자들에게 세금을 징수하는 것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자신의 재산에 새금을 매기는 것은 바로 절도라고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들에겐 빈곤층을 위해서 자신의 재산의 얼마를 기부하라고 국가가 요구하는 것도 바로 절도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 기부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국가가 나서서 세금으로 거둬 들이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는 주장이다. 왜? 정당한 방법으로 모은 재산은 나의 것이니깐 국가라도 그것을 내놓으라고 할 수없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것은 그들의 일이지 결코 나라나 부자가 책임져 주어야 할 부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담 빈곤층은 어떻게 되라는 것인가? 얼마 전 신문에서 읽었던 노부부처럼 자신의 생활고를 비관하여 부부가 함께 동반 자살을 하도록 내버려 둬야 하는가? 자유지상주의자들에겐 그게 정의로운 일이란 말인가?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은 바로 우리가 <정의>를 실현하는 것의 일종이라고 본다. 자유지상주의자들에게는 그게 바로 절도처럼 생각될지라도 그건 인간으로서 최소한 해야 할 책무이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함께 행복한 사회를 누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본다. 그들의 주장처럼 우리가 알 바 아니다. 내 재산의 일부를 그들을 돕는 세금으로 가져 가는 것은 절도라고 한다면 그들은 굳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한 국가의 일원으로서 있을 필요가 없다. 그들끼리 나라를 세우든지 공화국을 만들지 하면 되리라.
2011년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지원예산이 엄청 삭감된 걸로 알고 있다. 부자세는 깎아 주면서 하루하루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사람들을 위한 예산을 삭감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죽으라고 하는 것과 같다고 본다. 그들에게 그래도 희망 한 자락은 줘야 되지 않는가?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은 그들을 죽게 만드는 거나 다름없다. 살아갈 희망. 열심히 노력하면 그래도 살 수 있겠지 하는 그런 희망마저 없다면 도대체 어떻게 그 고통을 이겨낼 것인가? 그래서 부자가 나서서, 나라가 나서서 그들에게 최소한 살아갈 희망은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년초 대학교 청소부 할머니 집단 해고 사태가 또 한 번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대학교 재단도 재단이지만 어제 신문에서 읽었던 홍대 총학이 농성을 하던 할머니들에게 했던 처사들 때문에 또 한 번 할머니의 마음을, 지켜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분노하게 만든다. 최고의 지성이라고 하는 대학생들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할머니들에게 < 공부에 방해되니 중단하라>고 했다니, 더 나아가 총학이 친노조적이면 취업에 불리할 것이므로 이런 처사를 했다니...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들에게는 오로지 자신의 취업만 중요할 뿐 할머니들의 생존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최고의 지성이라는 대학생들이 이렇게 자신 밖에 생각할 줄 모르니 앞으로 우리 나라가 어떻게 되어갈지.... 부당한 해고에 자신의 머리를 삭발하는 할머니의 눈물을 그들은 보지 못했던가? 보고서도 아무런 느낌이 없었던가? 나도 대학 다닐 때 투쟁을 하던 사람은 아니다. 그래도 항상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은 가지고 있었는데 요즘 대학생들은 그런 마음조차 없나 보다.
2011년에는 은주네처럼 자신의 보금자리를 뒤로 하고 떠나는 사람들이 생겨 나질 않았으면 한다. 연탄가스에 함께 동반자살한 노부부처럼 생활고에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일이 더 이상 생기질 않았으면 한다. 부자와 가난한 자가 함께 가는 사회였으면 한다. 그렇게 함께 갈 수 있도록 나라는 <정의>로운 정책들을 했으면 한다. 감사원 내정자의 월급은 1달에 1억이 넘었다는데 어떤 노부부는 한달에 43만원 가지고 월세 30만원 내고 나면 13만원 가지고 약값도 되지 않아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만 되는 사회가 결코 정의롭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빈곤층에게 그래도 살아갈 희망 한 자락을 주는 사회가 되어야 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