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독서 시간에 학급 문고에 있는 세 권의 인물전을 읽어 보았다. 우리 반 어린이들의 손때가 묻지 않아 나부터 먼저 읽고 소개를 해 줘야 겠다는 목적으로 읽어 보았다. 짧은 그림책임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들이 왜 읽지 않았을까?
이 그림책은 일단 칼데콧을 수상한 작품이다. 원서에는 메달이 보이지만 이렇게 우리나라 책에는 아무런 딱지가 붙어 있지 않아 불만이다.
읽은 친구가 몇 명인지 손을 들어 보라고 하자 3-4명이 손을 든다. 어느 나라 사람인지, 어떤 일을 하였는지 물어 보자 이내 고개를 푹 숙인다. 이게 바로 어린이들이 위인전을 싫어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동화는 대강의 스토리라도 기억을 하건만 인물전은 최소한 어느 나라 사람인지, 무슨 일을 하였는지 조차 모른다. 자기와 동떨어진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 어느 나라에서 태어나 무슨 일을 하는지 어린이들로선 이해하기가 어려운가 보다. 어른들은 위인전을 읽고 어린이들이 그와 같은 인물이 되기를 기대해 보는 것과는 달리 어린이들은 위인전을 좋아하지 않는다. 요즘 들어 어린이들에게 좀 더 쉽게 다가가기 위해 위인보다는 인물전이라고 해서 보통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동화보다 인물전은 어린이들에게 인기를 끌지 못하는 것 같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어린이들은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기가 읽지 않은 것에 대해 두려워하는 경향이 짙다. 인물전도 마찬가지이다. 그 인물에 대해 선지식이 없기에 선뜻 책을 고르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럴 때 주변의 어른이 한 마디라도 설명해 주면 금방 관심을 가지게 된다. 40쪽 내외의 얇은 그림책이지만 어린이들이 그 내용을 완전히 소화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야만 한다.
나 또한 오늘 이 책을 읽으면서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킹 목사의 생일이 국경일이 되었다는 것 말이다. 얇은 그림책 속에서도 킹 목사가 얼마나 훌륭한 인물인지 느낄 수 있다. 자신을 위해 살지 않았고, 고통 받고 차별 받는 민중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몸을 내던진 인물. 지금 우리나라처럼 교회의 지도자가 지탄 받고 있는 세상에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용기와 희생을 하신 분이다. 우리나라에는 사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킹 목사처럼 외치는 자가 왜 없을까 한탄스럽다. 교회지도자들이 앞장 서서 사회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애써야 할 터인데 앞장서서 부정한 짓들을 저지르고 있으니 하나님께서도 하늘에서 통탄하고 계실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먼저 나서서 헐벗고, 굶주리고, 핍박 받는 자들을 위하여 광야에서 외쳐야 하건만 자신들의 배만 불리고 있으니 교회 지도자와 교회가 욕 먹고 있는 건 당연하다.

이 책을 읽기 전 나 또한 윤이상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한두 번 이름을 들어 본 기억은 있는데 정확하게 알고 있진 않았다. 현대 작곡가로서 독일에서 주로 활동을 하셨는데 고국에 돌아오고 싶어도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그 이유는 박정희 정권때 간첩이라는 누명을 써서 베를린에서 체포되어 감옥살이를 하였고, 구명 운동을 통해 옥에서 풀려나긴 하였지만 영영 고국에 돌아오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박정희 정권이 정말 나쁜 짓 많이 했다. 죄없는 사람 잡아다가 간첩이라고 옥살이를 시키고, 고국에 발도 디디지 못하게 만들고....
우리 어린이들이 꼭 읽어 봤음 한다. 40 이 넘은 나이에 자신의 꿈을 찾아 떠날 수 있는 용기와 자신을 버린 조국을 위해 한 평생 그리워하며 음악을 만드는 그의 절절한 그리움. 그리고 죄 없는 사람을 감옥에 가두는 무지막지한 독재 정권에 대해서도 더불어 알기 바란다.
<윤석남> 이라는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어서 얼른 읽어 보았다. 처음엔 남자인 줄 알았다. 여자였다. 아마 남동생을 기다리는 마음에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나 보다. 이 분 또한 윤이상 작곡가 처럼 늦은 나이에 자신의 꿈-화가-을 찾아서 용기를 낸 사람이다. 셋째 딸로 태어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론 생계를 위해서 일해야 하였다. 나이 들어서는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였다. 결혼 후에는 여자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해야 할 일들이 많았고, 집은 점점 넓어갔지만 자신은 점점 작아져만 갔다는 그 말이 기억에 남는다. 존재감이 점점 없어져 갈 때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찾아 나선 그분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얼마 전 타계하신 박완서 님도 40 에 문단에 등단하신 걸로 알고 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이르다는 말이 있듯이 자신의 꿈을 찾아 용기를 내는 모든 분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우리 어린이들이 세 분의 용기를 배웠으면 한다.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용기
자신의 꿈을 찾아 떠날 수 있는 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