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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 이야기 세트 - 전4권
김은성 지음 / 애니북스 / 201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 엄마는 평양 출신이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그해 12월 3일에 온가족이 피난하였다고 한다. 엄마의 피난 이야기는 자라면서 줄곧 듣던 단골 메뉴였다. 가끔은 엄마의 이야기가 너무 지루해 듣는 둥 마는 둥 한 적도 있었다. 이번에 “ 내 어머니 이야기”를 읽고 나서는 많이 후회했다. 왜 그랬을까?, 그때 귀담아 잘 들어놓을 걸. 작가님처럼 엄마의 이야기를 기록해 놓지 않은 것이 무척이나 애석했다. 더 안타까웠던 일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기록하지 못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평북 정주가 고향이다. 엄마보다 더 파란만장한 인생을 사셨던 아버지는 10여 년 전 치매에 걸리셔서 이제 아무 기억도 못하신다. 자신의 삶을 들려주고 싶어도 들려줄 수 없는 것이다. 아버지가 살아오신 그 많은 내력은 육체에 갇혀 그대로 당신만의 기억으로 남았다. 죽음이 찾아오면 그대로 공백이 되고 말 것이다. 정말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되기 전에 엄마의 이야기라도 잘 경청해서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책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바로 그 결심이다.
놋새(이복동녀) 님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 엄마의 이야기였다. 아니 우리 엄마만이 아니라 그 시대 태어나 자란 여인이라면 대동소이할 것이다. 어린 몸으로 부대껴야 했을 일제 치하의 공포와 좌우 이념 대립에 따른 혼란. 그리고 갑자기 찾아온 한국 전쟁으로 인한 가족과의 생이별과 내일을 기약하기 어려운 힘겨운 피란 생활까지. 정말 놋새 님의 이야기는 내가 어릴 때부터 엄마에게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내용과 흡사하였다. 얼마 전, 엄마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니 우리 엄마도 놋새 님 못지않게 그때를 잘 기억하고 계셨다. 어쩌면 그게 당연한 것인 줄도 모르겠다. 전쟁이란 경험이 어디 그리 쉽게 잊혀질까…. 엄마는 피란 생활을 하셨던 그 곳, 거제도를 가보고 싶으시단다. 힘들었던 시절을 보내던 곳이었지만 이젠 제2의 고향처럼 그리우신가 보다.
얼마 전 위안부 피해자이셨던 김복동 할머니께서 나비가 되어 하늘 나라로 가셨다. 놋새 님도 정신대로 끌려가기 일보 직전에 결혼을 하여 그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고 했다. 우리 엄마도 러시아 군인들이 처녀들을 겁탈한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아 4자매만 있던 엄마 가족이 험한 꼴 보기 전에 부리나케 짐을 챙겨 피난을 나왔다고 했다. 결국 김복동 할머니가 겪여야 했던 그 처참한 비극은 그 시대 여성 누구나 겪을 수 있었던 그런 일이었던 것이다. 다만 누구는 운 좋게 거기서 비껴난 것이고 누구는 운이 안 좋아 끌려간 것일 뿐, 그녀들의 잘못은 결코 아니었다. 시대의 아픔일 뿐이다. 김복동 할머니가 하늘 나라에서는 나비가 되어 자유롭고 평화롭게 사시길…
살벌한 전쟁의 위협 속에서도 힘겹게 살아남은 놋새 님이 노름에 빠진 남편한테 욕을 얻어 먹고 구타를 당하는 장면을 보면서 정말 화가 나고 애잔하였다. 아내는 배가 부른 채로 함바집을 하면서 살아보겠다고 그 고생을 하는데 한가하게 노름이나 하고 그것도 모자라 만취하여 욕을 퍼붓고 심지어 때리기까지 하고 말이다. 실로 못난 남편이지 않나? 여자라고 차별당하고 무시당하고 구박당하는 그 모습이 정말 애잔하였다. 한번도 쉬지 않고 매일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아둥바둥 하는데 살림은 점점 기울어져만 가고 ….나도 어릴 적에 동네에서 만취한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 것을 자주 봤던 것 같다. 그때는 사는 게 팍팍해서인지 집집마다 싸우는 소리가 하루 멀다 하고 들렸던 것 같다. 감사하게도 우리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엄마에게 욕을 하거나 밥상을 엎거나 때리신 적이 없으시다. 그것만 봐도 아버지의 인품을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남아 선호 사상이 강하던 그 때, 우리 집은 딸만 셋이었다. 아들 타령을 할 수도 있었는데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우리 자매들 앞에서 “ 아들 없어서 서운하다”는 말을 하시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자주 들었던 것은 “ 딸 잘 키우면 나중에 비행기 탄다” 는 말이었다. 놋새 님이 살던 시대는 성차별도 심하고, 가부장적인 사회였으므로 여성이 더 살기 어려운 시대였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놋새 님의 남편에 대해 작가(즉 따님)가 말하는 것만 봐도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는 아니였던 것 같다. 반면 놋새 님의 친정 아버지는 더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도 꽤나 깨어 있던 분이었던 것 같다. 물론 소를 잘 먹여야 한다는 조건을 달긴 했지만 여자에게도 공부를 가르친 걸 보면 말이다. 우리 엄마는 아버지로부터 그런 대접을 받진 않으셔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설 명절 때 엄마를 찾아뵈었더니 “ 너희 아버지와 도란도란 이야기 나눈 적이 없더라. 사느라 바빠서” 이런 말을 하신다. 엄마도 아버지가 요양원에 저리 누워 계시니 함께 계실 때 좀 살갑게 굴걸 하는 후회가 드시나 보다. 교회 일 하시느라 가게 일은 엄마한테만 맡기고 늘상 밖으로 동분서주하시던 아버지를 두고 엄마가 나에게 뒷담화를 많이 하셨더랬다. 그런 기억들이 떠오르신 것 같다. 놋새 님의 가장 행복한 때는 처음으로 번듯한 집을 가졌을 때와 아들과 함께 온천에 갔을 때라고 한다. 아마도 우리 부모님은 엄마 환갑 기념으로 함께 제주도로 여행 갔을 때가 제일 행복한 시간이 아닐까 싶다. 놋새 님이나 우리 부모님 보면, 옆지기한테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보면서 고단한 놋새님의 삶이 “ 82년생 김지영” 과 겹쳐졌다. 1927년 생인 놋새 님과 1982년 생인 김지영과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거의 두 세대를 지나는 동안에 여성의 인권이 놋새 님 세대보다 많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다. 적어도 딸이라는 이유로 아들은 쉽게 가질 수 있었던 교육의 기회를 박탈 당하거나 하진 않으니까 말이다. 실제로 행정부엔 여성 장관도 여러 명 있고, 여성이 고위직을 차지하는 비율도 높아졌다. 드라마에 팀을 이끄는 여성 경찰이 등장하는 것도 자연스러워졌고 심지어 전직 여성 대통령도 나오지 않았던가. 이처럼 여성의 지위가 많이 높아진 것은 사실인 듯하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것은 녹록지가 않다. 명절 때마다 여성으로서 짊어져야 하는 고충만 봐도 알 수 있다. 종교를 떠나서 여성의 노동력을 무한 제공하는 제사나 명절 행사는 이제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 제사가 있을 때마다 혼자서 분주하게 바리바리 음식을 장만하시는 우리 시어머니는 놋새 님과 많이 비슷한데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제사 음식도 간소화하고 그 횟수도 줄이자고 말씀드리지만 당신은 조상 모시고 손님 맞이하는 게 좋으시단다. 그렇게 음식 많이 만들어서 가족에게 나눠 먹이는 게 당신의 기쁨이라고 말이다. 좋은 솜씨로 찾아오는 이들에게 맛난 음식을 대접하는 게 낙인 게 놋새 님을 참 많이 닮았다. 그러나 내게는 불합리하게 보이기만 한다. 시어머니 세대와 내 세대 사이에 놓인 간극일지도 모르겠다. 시어머니께서 좋아하시니까 존중은 해드리지만 그런 삶을 살고 싶진 않다.
어디 그뿐인가. 육아만 해도 그렇다. 요즘 젊은 부부는 그래도 남편이 많은 부분 육아를 담당하고 있는 듯하지만 스웨덴 같은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도 멀었다. 요즘 내가 다니는 직장에서 남자 후배들도 전과 달리 육아 휴직을 많이 하는 걸 보면 세상 참 달라졌다 싶은데 그런 직장이 그리 많지 않다고 하니 아직 갈 길이 멀다. 우리 옆지기만 해도 생각이 꽤 진보적이지만 나를 도와준다고 생각하지 육아나 가사를 분담하고, 공동으로 책임진다는 생각까진 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도 비록 성에 차진 않으나 조금씩이나마 좋은 쪽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우리 아이들 세대가 되면 확실히 많이 달라져 있을 거라 기대해 본다.
마지막 권에 이르러 놋새 님이 약한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현재의 안부가 조금씩 걱정이 됐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아버지의 치매도 서서히 진행되다가 갑자기 심해졌는데 이 만화가 무려 10년에 걸쳐 만들어진 것이라 그동안 무슨 일이라도 생겼으면 어쩌나 싶었던 것이다. 만화가 비록 완결은 되었지만 그래도 놋새 님 흉중에 아직 못다한 이야기가 남아 있을 수도 있는데 우리 아버지처럼 영영 전해듣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다행히 놋새 님은 그리 심각한 상황이 아니고 여전히 작가님과 아웅다웅 잘 살고 계신 듯하다. 놋새 님의 장수비결은 속에 담아 두지 않고 수다로 풀어서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게다가 신앙도 있으시고 말이다. 무엇보다 엄마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렇게 만화로 재현해 준 막내딸이 있어서 노년이 행복하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 동료 중에 간혹 작가님처럼 엄마와 단둘이 사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나름 고충이 많으셨다. 연로하신 엄마 때문에 잠자는 여행은 못하며 당일치기만 가능하고 병원 모시고 다니느라 바쁜데다 늘 집에서 아프다는 전화가 올까봐 좌불안석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든 건 어머니의 잔소리라고 하셨다. 하기사 엄마에게 딸이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애 같을테니. 100%는 아니지만 비혼을 선택하게 된 계기에도 혼자 계신 엄마가 마음에 걸려서가 들어있곤 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모두 효녀인 셈이다. 물론 과년한 자녀와 사는 부모의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닐 테지만. 나는 아이들이 일정한 나이가 되면 무조건 독립시킬 작정이지만 어쨌든 놋새님 같은 가정이 주변에 제법 많다. 어떤 이들의 눈엔 그렇게 사는 게 걱정스러워 보일지 몰라도 다들 마치 부부처럼 아웅다웅 잘 살아가고 있다. 특히 작가님이 엄마에게 대하는 걸 볼 때면 내게 도전이 될 때가 많다. 나는 엄마를 그리 살갑게 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엄마와 단둘이 살았다면 과연 저렇게 알뜰살뜰 살필 수 있었을까. 함께 공중 목욕탕도 가서 때도 밀어주고, 산책도 같이 다니고, 요리 하는 모습이 참 다정해 보였다. 그들만이 볼 수 있고 알 수 있는 그 깊은 속내를 만화를 통해 알알이 보고나니 어떤 가족의 형태이든 저마다 단단히 여문 곳이 있고 그렇기에 서로에게 든든하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가족의 겉모습만 보고 이렇다 저렇다 쉽게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비단 가족만이 아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남자가 여자를 보는 것도 그렇다. 그렇게 쉽게 판단했기에 놋새님이나 그녀의 동서를 비롯, 4권에서 한없이 춥고 불빛 하나 없는 어두운 곳에서 누구 하나 돌봐주는 이 없이 홀로 애를 낳아야했던 소개국집 할머니 같은 아픔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내 어머니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삶이 그 나름대로 얼마나 대단하며 제대로 헤아리기 위해선 천천히 아주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받아들이지 못할 것도 없다는 것을. 단정 보다는 대화가 정말 필요하다. 누구에게나 있는 히스토리를 허심탄회하게 나누는.
부모님과 진작에 그런 시간을 가져보지 못한 게 너무나 후회가 되는 지금 나는 ‘내 어머니의 이야기’가 많은 이들에게 읽혀져 누구나 어서 그런 기회를 가져보게 되길 몹시 바라고 있다. 너무 늦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