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온이를 목욕시키려고 선배님의 딸이 우리 집을 방문한 적이 있더랬다.
온이는 숙련된 목욕미용사에게 엄청난 반항과 함께 상처를 남겨 그 후로 목욕시킬 엄두를 내지 못했다.
양이들은 워낙 스스로 털 핥기를 잘하는 터라 개처럼 자주 목욕을 안 시켜도 된다고도 하고
겉으로 보기에는 항상 눈처럼 하얘서 목욕의 필요성을 못 느꼈다.
동물 병원 선생님이 길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시는데 우리 온이보다 나이가 많다.
그 고양이도 한 번도 목욕 안 했다는 말에 조금 안심되 되었다.
이 곳에 오고나서는 지난 집보다 여기저기를 다 돌아다녀서- 심지어 화장실 안까지 말이다.-온이의
발이 지저분해졌다. 우리가 보기에도 좀 까무잡잡하다.
어제는 현관에 철퍼덕 배를 깔고 섹시 포즈로 누워 있어서
남편이 더 이상 더러워서 안 되겠다고 온이를 구박하기 시작했다.
온이를 만지지도 말라고 하고, 방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고.....
제발 목욕 좀 시키라고 나에게 잔소리를 해댔다.
나도 목욕시키고 싶지만서도
할퀼깝 봐 겁도 나고, 혹시나 온이 귀에 물이라도 들어가거나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라구?
엊그제 동물병원에서 발톱도 깎았으니- 발톱도 못 깎는다. 하도 난리를 쳐서-
이번이 목욕시킬 절호의 기회다 싶었다.
물에 풍덩시키는 것은 겁 나서 못하고
스프레이 제품으로 대충 시키자 싶었다.
남편과 딸이 온이를 붙잡았으나 완강한 저항 때문에 뿌릴 수가 없었다.
분노의 울음 소리를 들은 아들은
"엄마, 온이가 할머니 집에서 저렇게 울었어" 한다.
온이가 극도로 화 나고, 긴장하고, 두렵다는 표시다.
남편이 억지로 온이를 눌러대는 바람에 아이가 다칠까 봐 겁도 나고....
이대로 포기해야 하나!
온이가 스프레이를 피해서 안방 화장실에 몰래 숨어 있는 걸 보고 이때다 싶었다.
조용히 화장실 문을 닫았다.
나 혼자 해봐야지 싶었다. 고무장갑을 끼었다.
온이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샤워기로 물을 꼬리쪽부터 뿌리기 시작하였는데 의외로 순순히 있었다.
등쪽에도 뿌리고 다리쪽에도 물을 뿌렸다.
배쪽과 얼굴쪽까지는 뿌리지 못했고 고양이용 삼푸는 쓰지 못했지만
그래도 아주 성공적인 첫 목욕이었다.
이렇게 물만이라도 가끔 씻기면 좋은데....
수건으로 말려주는데 아까 그 울음소리를 계속 냈지만 도망가지는 않았다.
감기 걸릴까 봐 드라이기로 말려주려고 하니 그 소리에 기겁해서 도망을 갔다.
하는 수 없이 수건으로 계속 털을 말려 주었다.
" 우리 온이 예~쁘다, 예~쁘다" 계속 칭찬을 해주었다.
옆에서 아들도 예쁘다 소리를 해줬더니 점점 안정을 찾아갔다.
어느 정도 말린 후
자기 집에 넣어주니 혀로 핥으면서 털을 말리기 시작하였다.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된다.
양이나 개들도 어릴 때부터 목욕을 시켜야 습관이 들어 잘한다고 한다.
반려동물이나 사람이나 세 살 버릇이 여든 간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4/0329/pimg_772868196992276.jpg)
아들이 그린 온이의 모습들(누나 닮아 갈수록 그림 실력이 좋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