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주는 적응 기간 때문에 한 시간 늦게 등교인데도 불구하고
맞벌이 가정이 많은 탓에 아침돌봄을 하고 있는 도서실은 일찍 온 1학년 아이들로 북새통이었다.
괜히 내가 사서샘께 미안해졌다.
9시 40분 쯤에 사서샘이 한 줄로 세워서 일 학년 각반으로 데리고 오셨다. 감사하게도 말이다.
담임들도 차분히 수업 준비를 해야하는데
일찍 어린이 손님들이 들어닥치는 바람에 정신이 산만해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이런 불편함 때문에 작년에 1학년 교사들이 신입생도 첫주부터 똑같이 정상수업을 하자고 건의했는데
그게 절충안으로 결정이 나서 첫주만 3교시 수업을 하는 걸로 되었다.
하여튼 도서실, 교실, 가정 모두 불안정한 것 같아 보인다.
일찍 온 아이들은 아침독서 10분이 아니라 30분을 해야 하니 지루해서 미칠려고 하고....
내년부터는 반드시 그냥 1교시부터 정상수업하는 걸로 적극 건의를 드려야지.
유아때부터 어린이집을 통해서 더 이른 시간부터 단체생활을 한 어린이들이 대다수라서
굳이 적응기간을 둘 필요가 없는 듯하다.
오히려 지금처럼 혼선만 야기하는 것 같다.
아무튼 오늘은 어제보다 아침독서 분위기도 한결 좋아졌고, 어제 돌출행동을 하던 아이도 오늘은 정말 얌전히 생활하였다.
물론 오늘 처음 나눠 준 <학교생활 첫걸음> 앞뒤에 검정 크레파스로 낙서를 해 놓긴 하였지만.....
전체적으로 어제에 비하면 하루만에 전체적인 학습 분위기가 많이 나아졌다.
어제 하루 아이들과 수업 하고나서는 한숨이 푹푹 나왔다.
왜 아니겠는가?
작년 아이들과 지금 아이들과는 1년의 차이가 있는데
그걸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고, 아이들은 잘 따라와 주지 못하니 약간 절망감이 와서 어제 좀 우울했다.
첫째 시간은 8칸 공책에다 선 긋기를 연습을 하였다.
2007년 개정 교육과정 연수 때 배운 건데
8칸 공책(일명 네모 공책 또는 깍두기 공책)에 하면 선이 다 보여서 아이들이 훨씬 수월하게 선 긋기를 할 수 있다.
왜 선 긋기를 하냐면? 손에 힘을 기르기 위해서다. 악력을 말한다.
곧장 연필을 잡게 되면 아이들이 글씨를 제대로 잘 못 쓴다.
크레파스부터 시작하여 색연필, 사인펜, 연필 순으로 매일 조금씩 선긋기 연습을 하면서 악력을 기르는 과정이다.
3월 내내 선 긋기 연습을 하게 되면 아이들이 연필을 잡을 때 많은 도움이 된다.
그래서 1학년을 맡게 되면 꼭 3월 한 달 간은 선 긋기 연습을 한다.
하다 보면 꼭 집중을 안 해서 틀리리는 아이들이 3-4명 나온다.
실물화상기로 보여 주면서 똑같이 따라하라고 하는데도 못 하는 애도 있다.
그러면서 자연히 아이들의 발달을 파악하게 된다.
틀린 아이 수도 어제보다 줄었다.
나아지고 있다는 증거인 것 같아 기쁘다.
2-3교시는 드디어 <학교생활첫걸음>으로 수업다운 수업을 했다.
발표 연습도 해 보고, 발표 실전도 해 봤다.
앉아서는 그렇게 재잘대던 아이는 손 들고 발표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계속 해서 수업 방해를 할 뿐.....
첫 1학년 담임을 할 때
이 짧은 내용 가지고 어떻게 40분 수업을 하나 막막했었는데
이제 몇 년을 내리 하다 보니
고무줄처럼 늘일 수도 줄일 수도 있는 능력이 생겼다.
수업 시간에 장난 치다 종이에 손이 베인 아이가 있어
다같이 보건실 가는 공부도 해 봤다.
보건실까지 가면서 <사뿐사뿐 걸어요>를 실천해 보는 것이다.
우유당번도 정해서 우유상자 갖다 놓는 것도 알려 주고,
통신문 담당도 정해서 각반에다 통신물 배달하는 방법도 알려 줬다.
어제는 아무나 시켰더니 배달 사고가 났다. 한 반이 못 받은 것이다.
야무져 보이는 아이로 당번을 정해 줬다.
자질구레한 것들을 세세히 설명하다 보니 어느새 급식 시간이 되었고,
어제보다는 메뉴가 카레라이스라서 그런지 아이들이 급식을 잘 먹었다.
작년에는 내가 동학년에서 가장 늦게 급식이 끝났는데
올해는 가장 빠르다.
작년에 다른 반샘들이 어떻게 급식 지도를 하신 걸까 그 노하우가 궁금하다.
오늘 첫 숙제 검사를 해 보니 숙제를 안 해 온 아이가 3명 있었다.
숙제는 생활습관을 기르기 위해서 일부러 내 주는 건데
(난 아이가 해결할 만한 숙제를 내 주는 게 아이들의 생활 습관 및 학습 습관을 정착시키는 데 좋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집에서 공책을 안 가져왔다는 둥.
학교에다 공책을 놔두고 갔다는 둥 이런저런 핑계를 댄다.
입학한지 2일 밖에 안 되었는데 아아들이 뭘 알겠는가?
보호자가 챙기지 않아서 숙제를 안 해 온 거라고 생각한다.
알림장도 아직 안 쓰는 상태이기 때문에 오로지 아이들이 집중 해서 담임의 말을 부모님께 잘 전달해야 하는데
이것 또한 집중력 약한 아이들은 매번 놓친다.
2일째 크레파스가 없어서 짝꿍 것을 빌려 쓰는 아이에게는 내일도 안 가져오면 혼 낸다고 엄포를 놨다.
입학식 날 배부한 담임 편지에 분명히 <크레파스 준비>라고 써져 있건만.....
학년 초만큼은 힘드시고 바쁘시더라도 보호자들이 다른 때보다 몇 배 관심을 기울여서 신경을 써 줘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준비물과 과제만큼은 해결해서 괜히 아이가 담임한테 혼 나지 않도록 말이다.
담임한테 체크를 당하면 그게 바로 급우들에게 각인이 되기 때문에
가능한한 지각, 준비물, 과제 점검은 확실히 해 줘야 한다.
특히 저학년은 보호자의 관심이 아이의 성공적인 학교 생활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교에 자주 오시라는 의미가 아니라
가정에서 마땅히 챙겨줘야 할 것들 잘 챙겨주시라는 의미이다.
작년에 어떤 반 아이는 한겨울인데도 양말도 안 신고 와서 담임이 참 애처로왔다고 한다.
이건 아니라고 본다.
저학년인데도 고학년처럼 아이 스스로 알아서 하겠지 안심해선 안 된다.
아이를 키울 때 자기 스스로 걸음마를 할 수 있을 때까지는
부모가 안아 주고, 업어 주고, 손을 잡아 주는 게 맞다.
그래도 오늘 어떤 아이 두 명이
급식 먹기 전에
" 선생님, 학교가 정말 재밌어요" 라는 말을 해서 기뻤다.
그래. 내일은 더 재미나게 공부하도록 하자!!!